길준이 무사히 포위망을 뚫고 도망친 2주일 뒤 병률의 형이자, 그와 모종의 협력관계를 맺고 있던 자산가는 부친의 재산을 조회하던 중 등기가 모두 다른 사람에게 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등기까지 바뀌지는 않는다 해도 관공서에서 일방적으로 옮기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건 세금을 물릴 때의 이야기일뿐, 명의가 바뀌진 않는다.

명의자의 이름은 부동산마다 각각 달랐다. 불법적으로 손을 뻗쳐봐도 공문서에 기록된 것들은 일관성이 없었다. 법적인 아들들이 아니었기에 상속을 주장할 수도 없었다.

그저 노인을 살려두고 굶어죽지 않게 하면서 협박만 하는 것이 최선이었던 것이다.

함부로 금치산자로 만들 수 없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자의로 바꾸지 않는 한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명의가 바뀌었다고?”

 

이럴 때 믿을 수 있는 건 결국 병률밖에 없었다. 그는 병률을 불러내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하지만 병률의 태도는 싸했다.

 

난 또 뭐라고. 좀 더 심각한 일인줄 알았어.”

 

이게 심각한 일이 아니면 뭐냐.”

 

난 그 작자하고 연관된 일은 이제 끼기도 싫어. 그 노인네는 정말 성질이 더럽단 말이야. 내 셔츠에 피가 묻었다고.”

 

병률은 마치 노이로제라도 걸린 것처럼 치를 떨었다. 별 거 아닌 일이었다.

형사라면 자주는 아니더라도 시체를 볼 일도 제법 있을 것이고, 피는 가끔씩 자의든 타의든 흘리거나 흘리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노인의 피는 단순한 피가 아니라 마치 저주같았다.

빨아도 빨아도 옷에서 지워지지 않아, 병률은 그 셔츠를 갈갈이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너 이제 와서 발빼는 거냐?”

 

그의 말에 병률이 픽하고 웃었다. 얼굴 근육 하나하나가 인형이 표정을 짓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발빼는 거?”

 

“......”

 

그는 긴장했다. 아무리 피가 섞인 동생이라지만 그는 언제나 동생앞에서 떳떳할 수가 없었다. 피가 흘리는 일을 동생에게 사주하거나 더러운 일을 맡겨온 그였다.

처음 봤던 동생은 순수하게 사랑을 하고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런 동생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것은 자기 자신이라고 약간은 자책하기도 했다. 적어도 초기에는.

 

형은 날 너무 쉽게 보고 있어.”

 

병률이 목소리를 낮췄다.

 

이건 그냥 단순한 명의변경일 뿐이야. 노인네가 우리에게 재산을 건네주기 싫어서 대리인을 여럿 지정해서 상속했을 뿐이라고. 형은 왜 그 재산을 못 가져서 안달이지? 난 그 노인네의 한톨이라도 상속받기 싫어.”

 

“...갑자기 왜 그러냐?”

 

왜 그러냐고?”

 

병률의 표정이 굳었다.

 

형은 아직도 모르는가 본데. 난 더 이상 못 하겠어. 형이 시키는 대로 다 해왔지만 나한테 돌아온 건 뭐지? 난 그 여자를 가졌지만, 오히려 잃어버렸어. 형이 시키는 대로 한 결과가 다 이 모양이야. 난 이제 다른 걸 가지고 싶어. 형이 나한테 더 뭔가를-그 노인네와 연관된 거라면- 시킨다면 더 좋은 걸 나한테 줘야해.”

 

그건...”

 

형의 뒷마무리는 항상 내가 했지. 이제 그만한 대가를 줘. 그 노인네 피를 마지막으로 닦은 게 나라는 걸 알아달라고. 형의 어두운 그림자를 내가 걷어내고 싶을 때 어떻게 할지 알텐데. 형한테는 선택권이 없어.”

 

“.....”

 

그랬다. 그는 그래서 결정을 내렸다. 동생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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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총성이 울린다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면서 뒷골목에 숨었다.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거지는 죽지 않았다. 그가 총을 꺼내들자마자 납작 엎드려서 목숨을 건진 것이었다. 아마 신고를 한 일반인 외에도 거지도 경찰에 알릴 것이다.

그러기 전에 피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떨고 있었다. 이런 일은 한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항상 쫓기만 하던 그가 쫓기다니. 이런 일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요양원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어머니가 권해서 들어간 것이었지. 노인과 엮이면서 그 요양원이 모두 음모의 일부분일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섣부르게 접근하지 말게. 진상을 알려주고 싶지만 자네가 입은 충격이 너무 커.]

 

알고 싶지도 않았다.도대체 아내의 환영을 보고서 노인이 알려줄 진상을 어떻게 견딘단 말인가. 아내는 여전히 아름답고 슬펐다.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 그의 진심은...

 

[어차피 자네가 접근하면 할수록 잘 알게 될 거야. 우선은...]

 

그렇게 떨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의 옷자락을 잡아챘다.

잡혔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풀썩 주저앉았다.

 

자네가 바로 길준이라는 친군가?”

 

그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려고 했다. 아내의 환영은 잠시지만 사라지고 없었다.

그 친구 좀 시끄럽군.”

 

허름한 옷을 걸친 사나이는 그 말을 하고는 그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섣부르게 총을 쏘면 어떡하나.”

 

“.........”

 

그리고 그의 비명이 끝나기도 전에 주먹으로 그의 배를 쳤다. 그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아직 [상속]도 못 받았는데 소리를 지르면 어떡하나. 이 친구야. 쯔쯔.”

 

노인은 그의 앞으로 [상속]했던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의 배를 친 사나이도 그걸 알 수가 없었다.

노인은 억대의 재산가였고, 인감을 위조하여 허위로 상속된 재산 외에도 다른 재산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권총을 발사함으로써 받을 수 있었던 [재산 상속]분을 날릴 뻔 한 것이었다.

-----------------------------------------------------------------------------그는 주먹을 맞은 지 30분이 지나서야 깨어났다. 그가 깨어난 곳은 어디에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은 허름하기 짝이 없는 술집이었다. 허름한 술집은 많고 많을 것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너무 허름해서 눈에 띄기 마련이었는데, 그는 한번도 이런 집을 알지 못했다.

그의 구역중의 한 군데인 곳인데도 그는 순찰을 돌면서 한번도 이곳을 알지 못했다.

 

깨어났나? 이 겁많은 친구야.”

 

그의 배를 친 사나이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얼핏 봐서는 나이를 알아보기 힘든 인상이었다.

나이를 보여주는 목의 주름도 별로 없었지만 얼굴에는 자글자글한 잔주름이 져 있었다.

 

!”

 

어느샌가 그의 입에는 청테이프가 발라져 있었다.

 

큰소리를 안 지른다면 그거 풀어주지. 우선 뭐 좀 먹어야겠지?”

 

읍읍!”

 

그는 이 사람을 자신의 편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라고 믿었던 병률은 아내를 살해하고 그를 그 요양원으로 밀어넣었다. 노인의 힘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그곳에 갇혀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노인도 믿지 못했다. 복수를 대신 해달라는 그 뜻도 아직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시작하면 알게 될 것이라는 그 말뜻을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풀어주지 뭐.”

 

사나이는 식칼을 들고는 이내 그의 몸을 묶고 있던 끈을 풀어주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청테이프까지 아프지 않게 떼어주었다.

 

그 친구 깨어났나?”

 

날카롭지만 어딘지 모르게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얼른 해치워버리자구. 영감이 말한대로 되었으니까.”

 

그는 청테이프를 뗀 입으로 말을 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상실감이 먼저 들었다. 아내의 환영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 날카로운 목소리의 소유자는 달걀같은 두상에 짧은 머리를 하고, 볼품없는 염소수염을 기른 남자였다. 그는 그 사람만은 제대로 알고 있었다. 그는...

 

, 유언을 읽겠습니다. 본인 노영생은 본인이 죽은 이후, 그가 지정한 성경책을 준 인물에게 모든 재산을 상속한다. .”

 

명쾌한 목소리로 그 유언장을 읽은 또 다른 사나이에게 그가 억지로 입을 떼어서 말했다.

 

지금 무슨 장난하는 겁니까? 한변호사님? ...노영생이라는 사람을 모릅니다.”

날 아네? 이 친구? 뭐 어쨌든 좋아. 내 일은 이걸로 끝이니까 난 가네. 혹시나 이후에 재산상속건이나 그밖의 다른 건이 있으면 불러주게. 고인은 나한테도 자네를 도와줄 것을 의뢰했으니까.”

 

“......”

 

아내의 환영이 그들을 공허하게 응시했다. 그리고 잠시지만 아내가 웃었다.

 

이제 시작하게나. 자네가 할 일이 이제 시작된 거니까. 원하는 걸 하게.”

 

한변호사는 그렇게 말한 후 몸을 돌려 술집을 나갔다. 그는 멍한 눈으로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사나이를 바라보았다. 사나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에게 말했다.

 

뭐든지 말하게. 친구. 난 자네 일을 도와주기로 되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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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감이 죽었나?”

 

무심한 표정으로 가족들 중 가장 나이 많은 남자가 말했다.

 

결국.”

 

병률의 짧은 말에 다들 피식 웃었다.

 

뒈졌지. 기분 더럽더군. 하필이면 아내가 깨끗하게 다려준 옷에 피를 튀기다니.”

 

.”

 

가족들 중 가장 어린 여자애가 약간은 찝찝한 기분이 드는 듯 대꾸했다.

 

그래도 말은 조심해줘. 오빠. 그래도 그 사람은 우리 아버지잖아.”

 

..?”

 

8명의 형제들 중 그래도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남자가 대꾸했다.

 

싸지르고 책임도 안 진 그 작자를 아버지라고 말할 수 있어? 더더군다나 우리도 마찬가지. 서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냥 모인 이 모임을 오빠, 동생이라고 부를 수 있나?더더군다나 가족이라고 부를 수는 전혀 없을 것 같은데. 네 감상적인 기분은 이해하지만 날 거기에 끌어들이진 말아라.”

 

그의 직업을 아는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초기에는 그저 그런 물품을 파는 잡상인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런 부를 쌓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서로 친밀한 관계가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고, 가족들 중 몇몇이 불평하는 것처럼 노인네의 재산을 몰래 독점해서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병률은 알고 있었다. 그는 높은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바치고 있었다.

물론 그도 그 단계에 개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무엇으로 돈을 벌건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그를 형이라고 생각해서도 아니고, 다만 병률도 그 관계에서 많은 것을 얻기에 그랬다.

명예를 얻는 건 아니었지만 그는 그 관계와 행동을 통해서 아버지에게 복수할 수 있었다.

그 지긋지긋한 노인네가 족쇄였던 것이다.

 

지윤이는 또 안 왔나?”

 

맏형의 말에 그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그 놈은 안 온다니까. 그래도 지 생각엔 지 아비라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지.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신부짓도 못할 짓일텐데. 그런 하등종자의 자식이 고해성사실을 차려놓다니.

여전히 길함동에 있나?“

 

...그럴 거야. 아마도.”

 

나이 어린 여동생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병률아. 갈 곳은 딱 정해져 있는 것 같다만.”

 

그말에 병률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시금 알려줘서 고마워.”

 

냉소를 머금은 그 얼굴은 교회에서 기도를 올리던 모습과도 전혀 닮지 않았다.

 

그 녀석은 거짓말은 못 하지. 더 싹이 크기 전에 잘라버려야겠어.”

 

다른 가족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를 하면서 병률과 졸부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다른 화제에 빠져 있는 동안 형제들은 장례를 누가 주관할 것인가를 두고 말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건 마치 쓰레기가 있는데 그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고민하는 모습과 같았다. 쓰레기는 결국은 치워야 한다. 하지만 치우는 과정은 불결하고 괴롭다. 바로 형제들의 고민거리가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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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복수를 완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와주는 사람이 우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는 총소리를 듣고 달려오는 사람들을 피해서 정신없이 달렸다. 거지가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달려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것이 진실일까.

이때까지 그를 달리게 해 온 그녀가 진실일까 아니면 요양원에서 투약받은 마약의 중독성일뿐일까.

 

-당신들 이게 무슨 짓이야!-

 

자신을 보러 온 남자 요양사를 둘이서 합심해서 붙잡고, 쇠로된 포크를 흉기삼아 원장실까지 쳐들어간 후에야 그는 진실을 알았다.

어머니는 병률에게 속았던 것이다.

 

-뭐 왜 그렇게 새된 소리를 지르나.-

 

노인은 빙긋이 웃으면서 원장의 허리를 포크로 쿡쿡 찔렀다.

 

-우린 환자가 아니라고-

 

-당신들은 미쳤어! 미쳤다고!-

 

능글맞은 노인의 얼굴에는 이 정도는 장난이라는 표정이 드러났다. 이 노인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기에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걸까. 그는 그 순간조차도 그런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 그래? 마약류를 투여하고, 안정제를 있는대로 다 퍼붓고, 수면제란 수면제는 종류별로 다 먹이는 병원도 있나? 여긴 성형의사들이 있는 곳이 아니잖아. 우유주사라도 놓고 있는 건가?-

 

-당신은 한번 두 번 성공하니 재미가 들렸나본데. 당신네 자식들이 봐주라고 했기 때문에 그런거야. 잘못하면 구속복을 입게 될 걸.-

 

-그 새끼들이 뭐라 하건 나하곤 상관없고-

 

느긋하게 노인이 대답했다.

 

-관리하고 있던 내 돈이나 내놔. 우린 지금 여길 나갈거니까. 당신을 볼모로 잡아서 말이야.-

 

-그렇게는 안돼!-

 

원장이 으르렁거렸다.

 

-흐음, 그래?-

 

노인이 다시 한번 포크로 원장의 목을 쿡쿡 찔렀다.

 

-어디 산채로 껍질 벗겨지는 고생하기 싫으면 알아서 내놔.-

 

그건 농담이 아니었다. 원장은 떨리는 손으로 금고에 있던 돈을 꺼내서 노인에게 주었다.

벌벌 떨리는 손에 쥐어진 돈은 몇천만원이 넘어보였다. 노인은 잊지 않고 원장에게 그 돈을 직접 가방에 넣으라고 지시했다. 위조지폐인지 아닌지는 노인의 관심대상은 전혀 아닌 것 같았다. 전직 경찰이었던 그는 사실 이 흥미진진한 광경이 전혀 달갑지 않았다. 그는 단 한번도 이런 식의 대상이 되어 본 적이 없었다.

 

-좋아. 다 넣었군.-

 

세어보지도 않고도 아는 것처럼 노인이 말했다.

 

-그럼 내 옷도 꺼내야지. 잊지 말고 말이야. 그 아르마니니, 에르메스를 네 멋대로 처분하지 않았다면 어딘가에 있겠지.-

 

-젠장. 괴물같은 노인네.-

 

결국 노인과 그는 있는대로 다 털어서 요양원을 나왔다. 그는 정말 노인의 정체가 궁금했다.

이런 노인을 어떻게 요양원에 집어넣었을까. 그는 생각만 해도 기가 질리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그의 말에 노인이 하품을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노인은 구겨진 옷 여기저기를 손으로 매만졌다. 아르마니 양복을 폼나게 걸친 그는 병원에 있는 동안 오히려 성형수술이라도 받은 것처럼 빛났다.

 

-, 그거? 요양원에 있으니 별별 책이 다 있더군. 그래서 그 중에서 제일 폼나는 대사가 나오는 책을 열심히 읽었지. 거기에 비슷한 대사가 많더라고. 생각하고 생각해서 읊조린 거야. 완전히 나올 생각이 없어서 그랬지.-

 

-......-

 

-자넨 한동안 숨어 있어야 할 거야. 그 몸으로는 복수는커녕 며칠 버티는 것도 힘들어. 자네가 먹는 약을 일일이 보진 않았는데 마약류도 있는 것 같더군. 내가 우선 눈길을 끌어서 자넬 쫓는 걸 막아줄테니까 자넨 천천히 움직여. 그동안 내 친구들이 자넬 도와줄거야. 행여나 쓸데없는 짓 하진 말아주게. 내 복수를 위해서라도 자넨 조용히 움직여야 해.-

 

복수는 이미 시작되었다. 노인이 뭐라고 하건 그 총성은 그동안 쌓여있던 감정의 표출이었던 셈이다.

막을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복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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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젊은 친구에게 가르쳐줄때도 그는 그걸 잊어버린 적이 한번도 없었다.

복수의 가장 강한 무기는 돈이었다. 돈 없이, 사람없이 진행되는 복수라는 건 그는 믿지 않았다. 자식들에 의해서 돈을 빼앗기고 병원에 처음 감금되었을 때 그가 느낀 건 한없는 막막함이었다. 자식이 각기 다른 여자에게서 태어나 자라고 있는 동안에는 느끼지 못했던 막막함이었다. 그는 돈이 있었고, 그걸로 여자들과 아이들을 지배했다.

아이들이 싫은 소리를 하면 때렸다. 그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아이도 때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가장 현명하게 구는 아이도 때렸다.

도대체 기준이 없어보이는 그 훈육 방식은 아이들에게 일종의 생존감각을 기르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그가 노쇠해질 기미가 보이자 합심해서 그를 병원 아닌 병원에 가둬버렸다. 그가 겨우 오십을 넘어서는 그 나이에 갇혀버린 것이었다.

 

도대체 복수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안 가능하면 어떡할테냐.”

 

노인과 병률은 나란히 걸었다.

발자국을 한번 한번 디딜때마다 두 사람은 키들거리고 웃었다.

 

역시 당신이란 사람 웃기네요.”

 

그런 놈밑에서 일하는 네놈은 썩은 놈이지.”

 

병률은 총구를 노인의 허리께에 갖다대었다. 실탄이 묵직한 것이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요양원 탈출하기 놀이는 없습니다. 재미있기는 하지만 성가셔요. 그분은 그렇게 생각하시고요.”

 

네멋대로 하려무나. 아들아.”

 

노인은 자리에 멈춰섰다. 그들이 산책하는 동안 주변은 형사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네 동료를 그런 식으로 가둬버린 건 정말 좋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내가 없는 곳에 보냈더라면 더 좋을 뻔했구나.”

 

당신은 위험한 노인네니까 감시원이 필요했거든요. 이렇게 뜻대로 움직여줘서 고맙군요.”

 

병률이 선량해보이는 미소로 답변했다.

 

하지만 이제 그 아들 아버지 놀이도 끝나는군요. 이번에는 진짜 병원으로 보내버릴테니까. 알아서 하시죠.”

 

넌 친구가 한명밖에 없었을텐데...”

 

한명밖에 없으면 어때서.”

 

병률이 날카롭게 대꾸했다.

 

그 한명밖에 없는 친구에게 복수 당하는 기분을 한번 맛보거라. 내가 낳은 자식들에게 철저하게 복수당했듯이. 네 녀석들도 그런 복수를 당할 거야.”

 

당신 그럼...일부러?”

 

그리고 그와 동시에 탕!하는 소리가 났다. 노인이 병률의 총이 아닌 옷 어딘가에 숨기고 있던 총을 자신의 머리를 향해 당겼던 것이다. 피가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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