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 날 고양이를 호수에 던지셨어요? 알버트 삼촌."

유산을 물려받기 전 임종을 맞이하고 있는 삼촌에게 했던 말이다.

"......"

삼촌은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었다. 최후의 순간까지 비밀로 지키려는 걸까.
그러다가 다른 생각이 났는지 조용히 말했다.

"고양이는 아홉개의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알버트를 잘 부탁한다."

그것이 내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내 질문에 대한 근원은 3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내가 티없고 철없이 뛰놀던 시절, 어느날 삼촌은 내게 수영을 가르쳐준다면서 어디에선가 고양이 한마리를 주워왔다.
집고양이인지 길고양이인지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런 추물은 다시 못 볼 듯 싶었다.

"삼촌?"

"지금부터 이 고양이가 수영하는 걸 보자꾸나."

삼촌은 그때당시 직업이 없는 상태였고, 하루하루 꾸려나가는 생활도 전적으로 전당포에 의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 할머니는 마치 백년은 더 묵은 사람같았는데, 별로 수익도 안나는 전당포를 꾸려나가면서도 그다지 쪼들려보이지는 않았다.
하긴 우리 삼촌같은 사람이 열명만 더 있어도 꾸려나가는데는 지장이 없었을 테니까.
삼촌은 고양이를 번쩍 들어서 호수를 향해서 던졌다.

퐁당.

다행히도 멀리 던져지지는 않았는지 고양이는 헤엄을 쳐서 우리쪽으로 다시 건너왔다.
삼촌은 다시 한번 고양이를 집어들었고, 고양이는 삼촌을 할퀴려고 했지만 민첩한 삼촌은 할퀴어지기도 전에 다시 고양이를 호수에 멀리 집어던졌다.
세게 집어던졌는지 이번에는 더 큰 소리가 났다.

야옹!

고양이가 비명을 질렀지만 이번에도 고양이는 우리쪽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몇번의 던짐과 몇번의 돌아옴이 있었고, 마지막에 삼촌은 말 그대로 고양이를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보내버렸다. 말 그대로 가라앉아버린 것이었다.
후에야 그 고양이가 전당포 할머니가 매우 아끼던 고양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삼촌은 알고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도망치듯 마을을 떠났다.
전당포 할머니는 얼마 되지 않아서 마을을 떠났고, 이내 모 도시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했다. 고양이 한마리가 없어진 일에 지나치게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여간 그렇게 고양이를 싫어했던 양반이 그때 그 고양이보다 더 못생기고 재수없는 고양이를 남길 줄이야. 생각같아서는 삼촌이 그랬듯이 호수에 넣고 익사시키고 싶었지만, 고양이를 기르는 일이 조건에 들어있으니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아홉개의 생명 운운했으니 특별한 고양이긴 한 모양인데.

"알버트."

내 부름에 알버트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야옹

보면 볼수록 기분 나쁜 종자다.
내가 더 오래 살지 저 추물이 더 오래 살지 모르겠다. 하긴 알버트 삼촌도 몇번 기르는 고양이가 바뀌었다고 하니까 저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아니, 꼭 길러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잃어버렸을 때의 경우에 대한 말은 없었으니까 몰래 길을 잃어버리게 하면 된다. 왜 이 생각을 진작 못했을까.

그 다음날 나는 알버트의 목에 목줄을 매고 걸어가다가 저 멀리 공원에 풀어놓고 와버렸다.
그리고 저택의 문을 열고, 집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럴 수가, 물려받은 알버트를 그만 길에서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집사는 지그시 날 바라보더니 짧게 말했다.

"싫어하시더니 잘 되었군요. 알버트 주인님께서도 고양이를 자주 잃어버리셨지요."

집사는 내가 고양이를 갖다 버리는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마디 덧붙였다.

"알버트는 그래도 늘 집을 잘 찾아왔답니다."

"네?"

"고양이 이름말입니다. 알버트. 알버트 주인님이 8번만에 다시 찾으시면서 그렇게 고양이 이름을 지으셨죠. 그 고양이, 30년동안 한번도 주인님 곁을 떠난 적이 없답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야옹하고 발치에서 소리가 났다. 알버트였다.

"제 말이 맞지요? 30년동안 한번도 길을 잃어버린 적이 없답니다."

"30년? 알버트가?"

"네."

집사는 알버트를 번쩍 들어올리고는 알버트에게 간식을 주었다.

"고양이 생명은 9개라죠? 전 주인님이 그렇게 자주 말씀하시곤 했죠."

"잠깐만, 애슐리. 그럼 알버트가 언제부터 알버트 삼촌옆에 있었단 소리에요?"
 
"주인님이 자수성가하실 무렵이 아마 고향을 떠난 후였죠? 그때부터 주인님을 모셨으니 아마 제가 알버트보다 좀 더 뒤에 들어왔을 겁니다. 그렇지? 알버트?"

그 말에 알버트는 딱 한마디를 했다.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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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즘은 생각이 좀 많아집니다.
안녕 안녕 검은새야 는 원 착상과 거리가 멀어졌고, 덕분에 써놓은 것도 하나도 안 맞게 되어버리는 바람에 연재를 접었습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얼마 전 지인과 대화를 하면서 생긴 일 때문이었죠.
칭찬받기 위해서만 쓴다...
한때는 쓰는 게 그저 즐거울 때도 있었고, 괴로웠던 적도 있었는데 글쎄요...그런가봅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블로그에는 자주 옵니다. 글이 안 올라와서 그렇지 하루에 한번은 꼭 오지요.
근데 생각이 안 납니다. 무엇을 어떻게 무엇때문에 쓰는 건지.
그래서 연재를 접고, 연습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블로그에는 앞으로 글들이 올라올 겁니다. 단지 연재를 안 할 뿐이고,
노출도 아마 비밀글은 아니겠지만 중앙노출은 안 될겁니다.(이걸 뭐라고 부르죠?)
그러니까 블로그에까지 오시는 분들은 연습중인 글들을 보시게 될 겁니다. 아마도.
그리고...글을 안 남길 뿐이지, 종종 블로그에 오니까 저하고 이야기하고 싶으신 분들은 댓글 남겨주세요.
냉동 블로그 아닙니다. 그냥 글을 안 쓸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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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2018-06-09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코로님께는 죄송하지만 창작블로그 없어지면서 여기서는 더 이상 쓰지 않습니다,검은새야는 예전부터 중단되었고요....아마 다 보셔도 완결된 건 어둠의 대륙횡단열차 정도일 겁니다.나머지는 개인적인 취향이 지나쳐서 연재중단이거나 네이버로 옮긴 상태이구요, 여하간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사정으로 연재를 접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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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뼈다귀를 찾자는 말에 나는 화를 낼뻔했다. 그렇지. 옛날의 나라면 화를 내다 못해서  뺨때기를 날려야 시원할터였다. 하지만 전화를 준 건 대학신입때까지 친했던 친구가 건 전화였다. 그것도 내가 그 애의 남자친구를 뺏은 후 절교한 이후로 처음으로.

"무슨 뼈가 필요한데?"

갑자기 뼈타령을 하면 필연적으로 우리 유년시절의 스티븐 킹이 생각나기 마련이었지만...

"이번에 동창회를 했는데 안 온 사람이 두명 있더라?"

그애의 말에 또 울컥했다. 또 나왔다. 저 버릇.
말 하다말고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드는...

"그게 뼈랑 무슨 상관인데."

"얼마 전에 신문기사 읽었어?"

아마도 예전처럼 노랗게 물들인 머리를 하고서 멍한 눈동자로 앞을 응시하고 내 전화를 받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까 애인을 뺏기고 마는 거다!라고 소리쳐주고 싶다. 정말.

"어떤 신문기사?"

"무연고묘지에 들어간 시체 하나. 붉은 비즈로 하나하나 수놓은 공들인 옷을 입은 아름다웠을거라고 추정되는 여자 한사람."

"그래서?"

"걔 우리 동창 아닐까?"

무연고 묘지에 묻힌 신원미상의 시체가 갑자기 동창생이라고 생각되는 건 도대체 무슨 이유때문이냐...싶었지만.

"동창회 안 나온다고 다 시체니? 그럼 나도 시체겠다."

"어머, 너도 시체야. 좀비지. 투명인간이고."

예의 머리를 비비꼬면서 말하는 어투라서 그런가 말투도 신랄하게 꼬여있었다.

"미안하다."

"어머, 미안해할 필요없어. 나도 결혼했는걸."

그 애 말에 따르면 올해 결혼했고, 결혼하자마자 연락을 끊다시피한 동창들이 그리워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창회장을 닥달, 올해 동창회를 10년만에 처음으로 열었는데 거기 빠진 사람이 바로 나와 그 신원미상의 여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여자가 걔라는 보장은 없잖아. 어디 멀리 가서 연락이 끊어졌을 수도 있고."

"난 걔라고 생각해."

멍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생각보다 머리 회전이 빠른 게 장점이다. 경찰도 못 찾은 신원미상의 시체를 어떻게 찾겠다는 건지.

"손가락이 다 없어졌는데 무슨 수로 찾아."

내 말에 그애가 대답했다.

"손가락을 찾으러 가는 거야. 마침 사고난 곳에서 10m도 안된 곳에 우리 집이 있거든."

내가 그렇게 한가한 인간처럼 보이냐고 말하려다가 또 참았다. 나는 남의 애인을 빼앗아 결혼까지 한 사람이다. 아무래도 상대에게 심리적으로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알았어. 도와줄게. 근데 동창회에 안 나왔다는 애는 도대체 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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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로 장식한 화려한 옷을 입은 여인이  추락사했다.
아무도 그녀가 누군지 무엇때문에 죽었는지 몰랐다. 경찰은 불상으로 처리했고 그녀는 무연고 묘지에 묻혔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남편이 있었고,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그녀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가 처음부터 이름없는 존재였던 것은 아니었다. 나름 잘 사는 집에서 자랐고, 남편과는 유학시절 만나 연애결혼을 했었으니까.
무연고자로서의 자격요건을 처음부터 갖고 있지는 않았던 셈이다.
단지 문제가 있었다면 남편이 직업을 가지려 하지 않았던 것이랄까.
아이엠에프 시절의 아버지 세대가 실직할 위기속에 전전긍긍했던 것을 생각하면 의외의 일이었다.
아무리 집이 잘 살아도 그건 돈을 버는 세대가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어느 누구 하나라도 돈을 벌지 못한다면 그 집은 단번에 추락해버린다.
그런데도 그녀의 남편은 유학파라는 딱지를 단채로 취업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확실히 노는 것도 아닌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의 무의욕에 대해서 논할라치면 단번에 취업하기에는 자신의 양심이 있어서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취업하지 않는 편이 있다고 대답했던 것이다. 말이 나오는 족족 그렇게 대답하니 다들 유학파이니 알아서 하겠거니...라고 넘어가버렸다.
더더군다나 양쪽 집안 모두 독립성을 중요시하는 집들이라서 한번 두번 도와주고는 끝이었다.
그런데도 남편은 유학파 딱지를 단채로 계속 노는 것이었다.

물론 거기에 그녀의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녀 또한 유학파.
하지만 남편과는 다르게 그녀는 영어도 제대로 할 줄 몰랐다. 단지 그녀가 공들이고 잘 하는게 있다면 몸단장 정도?
그리고 성격이 꼼꼼하고 애살발라서 적어도 아르바이트 자리에 앉혀놓으면 돈을 제대로 번다는 것 정도였다. 중소기업에도 몇번 취업해서 실적을 거둔 그녀는 거기에서 자신감을 가졌다.
하지만 중소기업이라는 것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생겼다가 사라지고 하는 것이라서 얼마 안가 그녀의 자신감도 사그라들고 말았다.


어느날인가는 남편이 잘 입지도 않았던 양복을 꺼내서 정성껏 다림질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야? 어디 가?"

매일 의욕을 상실한채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던 남편이 움직이는 게 의외였던 그녀였다.
그녀에게 남편이 대꾸했다.

"당신도 옷 갈아입어. 부부동반 모임있어."

"......"

무의욕이건 어쨌건 유학시절에 연애했던 기분이 아직도 조금은 남아있었기에 그녀는 순순히 그와 부부동반을 했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현실감이 있었더라면 결혼 초기에 이미 이혼을 해도 몇번이라도 했을 터였는데도 말이다.


그 모임은 유학파들 모임이 아니라 남편 고등학교때 모임이었다.
고등학교라도 명문으로 소문난 곳이어서 그런가 남편 동창들 중에는 변호사도 있고, 행정사무관도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백수가  끼일만한 곳이 못되었던 것이다. 
보통 그런 곳에 끼이면 기가 죽거나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본래 그런데는 무심한 사람이라서 무난하게 넘어갔다. 다들 남편의 성격은 잘 아는지 특별히 모독주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만 그랬을 뿐, 아예 남편은 열외였던 것이었다.
자기들끼리는 직함을 두고 낄낄거리거나 놀리거나 하곤 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그날 남편에게 말못할 비밀이 생겼다.


그녀는 돌아와서 줄곧 생각했다.
어째서 남편은 직장을 가지지 않는 것일까.
직장을 가지지 않는 것은 좋다. 요즘같은 세상에는 여자만 놀고 먹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일하고 있다면 적어도 남편은 가사일이라도 해야 되지 않는가? 왜 일을 하면서 가사일까지 도맡아해야 하는가.
고등학교 동창 모임의 화려한 진영을 보니 그런 생각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그때 건네받은 명함에 조금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던가.
여성은 남성의 권력과 힘에 매혹된다고.
그녀는 자신에게 명함을 건넨 모 기업의 사장에게 마음이 조금씩 끌리는 것을 느꼈다.

"요즘 형편이 많이 어렵다면서요. 제수씨. 필요할 때 연락주십시오. 그리고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제수씨 정말 미인이십니다."

그 말에 넘어가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달콤한 꿈을 꾸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그녀는 그에게 연락해서 그가 운영하는 회사의 소규모 사무소에 간단한 일자리를 얻었다.


남편은 그녀가 자신의 친구직장에 입사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저 텔레비젼 리모콘이나 돌리고 있을 뿐이었다.
유학시절에는 날씬했던 그의 몸매가 점점 두리뭉실해지고 있는 것도 그녀의 마음을 차갑게 식히는 요인 중의 하나였다. 아무리 세상이 험하다고는 하지만 그건 남녀모두에게 똑같은데 그녀에게만 짐을 지우는 남편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이번에는  중학교 동반 모임이 또 있었고, 그 다음에는 유학파들 부부동반 모임이 있었다.
대부분 사정은 비슷했고, 그녀는 저번과 엇비슷하게 명함 몇개를 남편 모르게 받았다.


어느날인가, 그녀가 근무하는 곳의 사장-그러니까 남편의 친구-가 그녀를 불렀다. 해외에서 바이어가 부부동반으로 왔는데 자신도 사적으로 만나야 할 일이 있으니 같이 가자는 것이었다. 엄연히 부인이 따로 있는 그가 말이다.

"우리 부인은 너무 뚱뚱해서 분위기에 잘 어울리지도 않아요. 더더군다나 너무 촌스러워서..."

"하지만..."

"제 얼굴 좀 세워주세요."

그는 사람을 통해서 새옷도 그녀에게 몰래 보냈다.
이쯤 되면 통보나 다를 바 없었다. 그의 비위에 거슬리면 이번 직장에서도 해고를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알겠다고 하고 하루, 그의 부인으로 행세했다.
점점 더 그런 일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명함을 준 사람들은 그녀에게 소소한 부탁을 하기 시작했고, 그 부탁의 댓가로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한편 더 많은 것을 챙겼다.
점점 더 뚱뚱해진 남편은 그녀에게 새옷이 얼마나 늘었는지, 밤 늦게 나갔다가 돌아오는 일이 얼마나 잦은지 무관심했다. 아니 오히려 그 무관심으로 더 부추기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그녀는 이혼을 결심했다.


"이혼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긴 하니?"

여자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그 말을 털어놓았을 때 나온 말들이었다. 부모님에게도 알렸지만 부모님은 그저 참고 살아보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단지 어머니는 사위가 밉기는 미웠는지 정 힘들면 3년정도 버텨보고 이혼하라고 했을 뿐이었다.
사장이 그녀를 따로 불러서 인간적인 이야기를 나눌때도 살짝 그 이야기를 언급하자 사장은 반색을 했다.

"아니, 그 놈이 그 정도 밖에 안되는 놈이었어요? 학창시절 공부도 잘 하고 해서 다르게 봤는데...제수씨가 고생하시네요. 그렇게 힘들면 하셔야죠...힘들면 저한테 꼭 이야기해주세요."

그러면서 사실 자신도 부인때문에 고생이 심하다고 했다. 부인은 눈치도 없고 의부증이 있는지 질투심도 심한데다가 못 생기기까지 했다고 했다.

"언제 한번 우리 힘든사람끼리 툭 털어놓고 대화합시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마무리한 사장은 유쾌하게 웃었다.

"시간 비워둘테니 연락받아둬."

마지막은 편하게 반말이었다. 조금 기분은 이상했지만 나이로만 따지면 사장이 몇살 많았으므로 이해했다.

 
이혼하자는 말에 남편의 반응은 뚱했다.
그녀가 뭘하건 무관심했던 것만큼이나 이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혼하자. 우리. 미적지근하게 대꾸하지 말고 확실하게 대답해줘."

그녀의 말에 남편이 역시나 뚱하게 대꾸했다.
내용만으로만 따지면야 열렬한 반대말이었지만.

"너, 나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니?"

"당신은 수입도 없잖아. 있건 없건 상관없어."

무자르듯이 냉정하게 대꾸하는 그녀였다.

"너, 내 친구랑 뭐하고 다니는지 내가 모르는 줄 알아?"

표정 변화없이 그런 말을 구사하는 남편에게 그녀는 오싹함을 느꼈다.

"무슨 일.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럼 어디서 없던 옷이 새로 생기고, 밤늦게 돌아다니냐. 그리고 휴대폰 문자는 어떻고..."

"당신이 오해하는 거야."

그녀의 대꾸에 남편이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
지금까지의 미적지근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입다물고 밥이나 먹으니까 바보같냐. 그래, 남편친구들에게 뒷공작해서 어설픈 일거리나 얻어걸리고. 남의 부인 행세나 해주고, 밤에까지 같이 놀았는지 안 놀았는지 알 수가 있나."

그러면서 남편은 그녀 핸드백에서 꺼냈다면서 도청기를 꺼내들었다.

[언제 편한 시간 비워둬.]

그녀는 옴쭉달싹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도 기묘한 상황은 반복되었다. 남편은 취업할 의지도 가지지 않고 여전히 리모콘을 돌려댔고, 그녀는 편한 시간대에 남편의 친구들과 만났다.
남편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알고 있는 이상 간통죄로 이미 걸리려고 하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터놓고 상담받으려 한 것이었다.


[이혼하는 것보다는 지금 이대로 지내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여럿의 의견이 같았다.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가 근무하는 곳의 사장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남자들이란 그런 것들이라는 인식없이 순진하게 만나고 다닌 것이었을까. 그녀는 후회했다.
하지만 그 중에는 진짜도 있었다.

[이혼하고 저랑 결혼합시다.]

때늦은 미혼남의 구애에 그녀는 설레기 시작했다.
잘 생겼고, 잘 나가는 회계사였다. 그녀는 도청기가 설치되었거나 말거나 이내 그와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몸으로나 마음으로나 이렇게 따뜻한 연애는 처음인듯 했다.
남편과도 물론 연애로 시작해 결혼하기까지 했지만 그때는 뭔가 빠진 듯한 연애였다면.
지금은 조건이나 마음으로나 확실히 달랐다.
문제는...


남편이 아니라 회사 사장에게 있었다. 그는 그녀가 연애를 시작한다는 걸 알자마자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네깟 년이 뭔데 멀쩡한 남편 이혼하고 말고 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낚아?"

사람들 없는데 불러다놓고 욕설은 기본이고 얼핏얼핏 성추행을 일삼기도 했다.
처음의 따뜻한 응대와는 눈에 띄게 다른 태도였다.

"네 남편한테 다 일러줘서 간통죄로 넣어버릴까? 그 놈도 같이 넣으면 좋아하겠지? 회계사가 다 뭐야? 콩밥 먹으면 끝이지."

남편도 그녀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이혼하면 그대로 그녀의 부정을 폭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도저도 못한채 사장과 남편이 시키는대로 사장을 만나기 시작했다.
회계사는 그런 점을 알지도 못하고 그녀에게 왜 이혼이 늦어지느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서류 준비 중이라는 말로 둘러댔다.
이쯤 되면 이혼을 할래야 할 수가 없었지만, 그녀는 애인에게 그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이혼은 귀책사유 있는자가 신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장과 남편은 그걸 알고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었다. 그녀는 계속 그 두 사람에게 끌려다녔다.
악질적인 것은 그렇게 질질 끌고 다니면서도 회계사와 헤어지게 하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그녀가 양심에 찔려 회계사와 헤어지려고만 하면 헤어지면 모두에게 사실을 알리겠다면서 협박을 일삼았다. 
사무실에서는 그녀의 그런 행태를 알고 그녀를 왕따시켰다. 사장은 그리고 그걸 빌미삼아 그녀를 해고했다.

한때마나 인간으로서의 자긍심은 충분히 갖고 있던 그녀가 추락하기 시작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믿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 그녀를 그렇게 유린하자 그녀는 빌딩에서 떨어져내렸다. 하지만 경찰과도 결탁하고 있던 남편의 친구들 중 하나가 그녀의 신분증과 유서를 빼돌려 그녀는 불상자로 기록되어 있다가 얼마 되지 않아 무연고 묘지로 가게 되었다.
 
회계사는 그녀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고 사라지자 잠시 슬퍼했지만, 이내 새로운 사람을 사귀었고 사귄지 3개월만에 결혼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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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2012-04-09 0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자에서 모티브를 좀 따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