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논리의 싸움 끝에 두 사람의 말다툼은 엉켜버리고 말았다.

그들 무리의 사람들이 각각 두 사람을 뗴어놓았고, 냉정한 길준에 비해 선량한 신부이기를 원했던 지윤은 절망감에 빠졌다.

그나마 지윤의 입장에 가까이 있었던 은미는 지윤을 데리고 나갔다.

그들이 사는 주택의 베란다에서 지윤은 베란다에 놓여 있는 스툴에 앉아 봄바람을 쐬었다.

 

신부님...”

 

은미가 그의 손을 잡았다. 지윤은 아까 전의 험악한 태도를 누그러뜨린 채 그녀에게 시선을 향했다.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말았군요.”

 

지윤은 이마에 약간의 주름을 잡았다. 은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러실 수 있어요.”

 

“...천주교 신자이신가요?”

 

“......”

 

농담인지 시니컬한 자조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은미도 쓴 웃음을 지었다.

 

난 단지 그 사람이 이해가 안됩니다.”

 

“......”

 

용서도 안되고요.”

 

왜냐고 은미는 묻지 않았다. 지윤도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사람들은 종교인이라고 하면 원하는 게 많아요.”

 

띄엄띄엄 그가 말하는 것을 은미는 그저 듣고 있었다.

 

종교인이니 선량해야지. 부패하지 않아야지. , 너희는 신부니까 동정이기도 해야하지?라고.

허목사건은 내가 쓸데없이 예민했던 것 같긴 해요. 그 사람은 누명을 썼을 수도 있고, 법적으로 무지해서 그랬을 수도 있어요.“

 

진심이 아니신 건 알고 있었어요.”

 

은미는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내가 더 화가 난 건.”

 

화가 난 건?”

 

내게 단순히 어떤 복수심에 대한 책임을 느끼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 허목사건도 선량한 일을 하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위선에 불과한 행동이죠. 노숙자나, 녹차를 생산하는 일에 무슨 책임감을 느끼거나 경제적으로 공로를 세우려고 하는 건 아니에요. 그걸 느낄 수 있어서에요.

허목사가 가혹행위로 끌려가자 그 다음 대타로 날 세우는 데 조금도 의심도, 책임감도, 생각도 알 수가 없었어요. 그저 종교인이라는 껍데기가 필요했을 뿐이죠.“

 

은미는 그 말을 듣는 어느 부분에서 딱딱하게 굳어졌다.

 

복수심이요?”

 

복수심.”

 

일말의 주저도 없이 지윤이 말했다.

 

복수씨는 내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지만, 거기서 나는 다시 뛰는 내 심장에서 그의 복수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아마 복수의 큰 부분을 내게서 찾는 것 같아요.”

 

“...복수라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네요.”

 

은미가 손끝을 매만졌다.

 

제가 가장 바라는 것이죠. 그 점에서 그와 전 닮은 부분이 있는 것 같네요. 용서하세요. 신부님.”

 

복수는 하지 마세요. 남에게건. 자신에게건.”

 

몇 달만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지윤은 빙긋 웃었다.

 

나도 나 자신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것 같군요. 고맙습니다. 은미씨.”

 

“......”

 

떠나야겠군요. 복수씨에게 인사 대신 부탁드립니다.”

 

지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디로 가시게요?”

 

“...글쎄요.”

 

은미가 보기에 그것은 생각과 생각의 여러꼬리 끝에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지윤은 밝히려 하지 않았고, 은미도 굳이 밝히고픈 마음이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그건 심연에 가까운 것이어서 심연을 바라보는 자가 빨려들어갈 것 같은 것이었다.

 

적어도 바람직하지 못한 복수의 중간과정만큼은 막을 순 있겠죠. 전 그렇게 노력해 볼 생각입니다. 잘 해낼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렇게 돌아서서 짐조차 챙기지 않고 내려가는 지윤의 뒷모습에 은미는 자신도 모르게 그를 부르고 말았다.

 

신부님.”

 

지윤이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시죠?”

 

“......”

 

잠시 침묵하다가 은미가 말했다.

 

다음에 또 뵐 수 있겠죠? 그동안 이야기도 좀 많이 나누고 친해졌으면 좋았을텐데...”

 

, 물론.”

 

지윤이 짐을 다 내려놓고 떠나는 자의 여유로움으로 대답했다.

제 피정기간이 조만간 끝날 것 같군요. 제가 시무하는 성당으로 언제든지 오세요. 개종하고 오시는 거 알죠?”

 

물론 마지막 말은 농담이었다. 은미도 마지막에는 가볍게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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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사가 끌려갔다는 말을 듣고 이준구는 재빨리 길준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그를 처음 불러들였던 거리의 변호사도 불러 들였다.

 

뭔일이랍니까?”

 

노숙자들 중 몇 명은 이미 준구에게 고용되어 있었다. 그들은 준구가 이야기해주지 않고 침통한 얼굴로 사무실안에서 빙빙 돌고 있자 같이 불안해했다.

사무실에서 반쯤은 머리가 벗어진 남자가 방안에서 빙빙 돌고 있는 것은 좀 웃긴 일이었지만 같이 웃지도 못하니 불안할 따름.

 

모르겠어요. 아까전부터 대표님이 저렇게...”

 

그렇게 다들 웅성거리고 있는데 20분 후에 지윤이 들어왔고, 30분 뒤에는 변호사가,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길준과 은미가 같이 들어왔다.

 

어떻게 된 겁니까.”

 

담담한 어조로 길준이 물었다.

 

허목사님이 무슨 일로 끌려가셨답니까?”

 

예측 못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길준의 물음에 비아냥섞인 어조로 지윤이 말했다.

 

무슨 뜻입니까. 신부님.”

 

애초에 기독교 단체에 맡긴 게 잘못이죠. 부패의 온상 아닙니까.”

 

길준은 냉담한 어조로 맞대꾸했다.

 

이준구씨가 추천한 인물로 허목사님만한 분이 없었다는 건 신부님도 아실텐데요.”

 

“...미인가 단체에 맡기는 것도 해결방법입니까? 여기 변호사님도 계시니 답변은 더 잘 아시겠군요.”

 

변호사는 얼굴 근육을 팽팽하게 긴장시키고 있어서 안쓰럽게 보였다.

 

변호사님, 정말 입니까?”

 

길준이 한자 한자 똑똑 끊어 질문했다.

 

미인가 단체이고, 뉴스에서 나오는 가혹행위가 저질러졌다는게 정말입니까?”

 

가혹행위까지는 모르겠고, 미인가 단체인건 지금 막 확인했네.”

 

이준구씨. 확인 안 해보셨습니까?”

 

이 사람은 한번도 대장 노릇은 안 해봤던 것 같은데, 목소리며 행동이 마치 오랫동안 대장노릇, 회장노릇한 것 같다. 라고 은미는 생각했다.

물론 해야 할 시점이 늦어진 건 사실이었다. 만약 제대로 대처를 했더라면 이 일이 일어날 일이 없었을 테니까.

어째서 왜 처음부터 제대로 일을 꾸려나가지 못했을까.

자신이 처음부터 길준의 옆에 있었더라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었다.

 

한번도, 단 한번도 허목사님이 그런 분...”

 

전문성의 부족일따름입니다.”

 

길준은 조용하게 한마디했을 뿐이었다. 딱히 충격받은 것 같지도 않았다.

 

허목사님을 다시 모셔오려면 가혹행위가 없다는 걸 증명하면 됩니다.그건 변호사님이 도와주실테고. 그 단체가 미인가단체인 것은 우리와 상관없으니 넘어가면 됩니다. 그리고 시설을 세울 때 이지윤 신부님의...”

 

싫습니다!”

 

딱 잘라서 지윤이 소리를 질렀다.

 

거절합니다!”

 

차가운 길준의 눈과 뜨겁다 못해 모든 것을 불태워버릴 정도의 혐오감을 보이는 지윤의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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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러면 안된다.”

 

병률의 배다른 형은 문을 닫고 애원했다.

 

이게 다 뭐냐. 점점 도를 넘는 이유가 뭐냐고.”

 

형은 자금만 대면 되는데 왜 그렇게 참견을...”

 

간밤에 잠도 제대로 못잤다면서 손을 휘젓는 병률에게 형은 애원했다.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한 거냐. ? 그 여자때문이냐?”

 

“.....”

 

병률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무 관련 없어. 그냥 어쩌다보니 그 치가 스스로 총을 쏜 것 뿐이야.”

 

뭔 소리를 하는거냐. 원하는 게 돈이야? 정치인이 되고 싶은게 돈때문이냐? 돈이면 내가 어디서든 구해서 올게. 아니, 지위때문이냐. 지위도 얼마든지...”

 

아무것도 원하는 거 없어.”

 

그럼 왜. 정신병원에 가뒀던 그 친구 어머니를 여기 감금한 거냐고. 여긴...위험한 곳이잖아. 여기서 그 친구 엄마가 죽기라도 하면!”

 

빨리 죽으면 더 좋지.”

 

?”

 

그가 경악했다.

 

이게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방법이라면...그렇게 할 거야. 그렇게. 내 뒤를 쫓고 있는 놈의 모든 것을 짓밟아주겠어. , 할 수 있는만큼 내 뒤를 봐줘. 의장님의 앞을 막은 놈도 누군지 알았으니 의장님을 위해서, 형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라도 이번 일은 꼭...”

 

그리고 두 사람의 반대편 방에서 도청기구가 두 사람의 대화를 녹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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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준은 천천히 옛집을 둘러보았다. 며칠, 아니 몇 달인가, 아니 좀 더 들어가서 몇 년쯤은 지났던가? 이 집에서 아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시간. 가끔 어머니가 방문해서 조그마한 고부갈등이 몇번 일어난 그 집. 그는 초인종을 누르려다가 잠깐 멈춰섰다.

 

어머니는 보통의 여인이었다. 고부관계에 대해서 한정하자면 그가 행복한 공무원이었던 시절, 아내는 어머니를 이겨먹을 수 있는데도 그저 그런 여자인양 시끄러운 행사를 했다.

가끔 그는 글을 쓰기 위해서 노트북을 몰래 챙겨들고 서재로 가야했다.

하지만 대개 그렇듯이, 눈치를 챈 아내와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곤 했던 것이다.

그는 그때를 추억하듯이 눈을 초승달처럼 가늘게 떴다.

어머니는 과연 있을까?

있을 것이다. 자신이 전화를 했을 때 보였던 그 모습 그대로라면.

 

[길준이냐?]

 

전화속 어머니의 음성은 다정했었고, 슬펐었다.

 

[......]

 

[어디에 있니.]

 

길준은 그때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어머니를 그때 모시고 오고 싶었지만 복잡한 감정이 그걸 막았다. 어머니는 자신의 어머니이지만, 자신을 정신병원으로 보낸 사람이기도 했던 것이었다.

 

[다시는 그러지 않으마. 돌아오렴.]

 

감정에 이끌리진 않았었다. 그 순간만큼은.

 

[조만간 모시러가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기다려달라, 오늘을...

 

길준은 초인종을 눌렀다.

누군가가 말하는 소리가 인터폰에서 울려퍼졌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길준이 아내의 환영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환영이 된 이래로 그랬듯이 또다시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건 무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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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미는 시끄럽게 울리는 휴대폰을 끄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항상 휴대폰이 울리기 전 일어났던 그녀답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반사적으로 폰을 집어던진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보세요. 아, 이의원님.”

병률의 전화였기 때문에 던지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다년간의 정치인 보좌관 일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건 모를 일이었다. 지금의 그녀의 마음은 아무도 몰랐다.

 

“아, 잠을 깨웠군. 내가 깨어 있어서 그런가 나도 모르게 그만...”

 

“아니오. 뭐 하실 말씀이라도?”

 

“...긴히 할 말이 있어. 지금 잠깐 나와줄 수 있을까?”

 

“네.”

 

은미는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이준구의 저택에 있는 동안 그녀는 그다지 많은 일을 하지않았다. 사단법인 등기는 아직이었다. 이준구가 추진한다는 유기농 녹차 사업도 아직은 지지부진이었다. 죽일엽의 죽엽차 개발도 아직은 시도중일 뿐이어서 그녀가 개입할 부분은 많지 않았다.

 

복수라고 불러달라는 남자의 정체는 애매모호했다. 하지만 그녀는 약간은 실마리를 잡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 병률이 요구하는 것이 그것이 아닐까...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그녀는 눈치가 예전부터 빨랐고, 정치인의 길을 걷기를 희망했었다. 그래서 그 직감이, 이 수상한 무리에게 향해진 것이었고, 그녀는 병률의 전화에서 그걸 읽었던 것이었다.

 

“새벽 3시네. 아직까지 안 주무시고 있었던 걸까...”

 

뭐가 근심할게 있을까? 그녀는 병률에 대해서 잘 안다고 자부했지만, 다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도 사실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감정을 뺀다면 그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의혹과 복수로 차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 무리에 대해서 가지는 감정도 그와 유사했다. 다만 사랑한다는 감정은 없을 뿐.

 

그녀는 문을 살짝 열고 집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조용했다. 가끔 돌아가는 공기청정기 소리 외에는...

그녀는 누가 봐도 변명을 할수 있게끔 트레이닝 복을 입고 계단을 밟아 현관쪽으로 내려갔...

아니, 아니었다.

현관에 복수라고 불러달라 했던 길준이 서 있었다. 한쪽 손에는 물컵을 들고 있는 채였다.

 

“어디로 갑니까?”

 

“운동...하러요.”

 

그녀는 조심스럽게 응대했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한번 본 적이 있었다. 아니 단지 닮은 인물일지도 몰랐다. 사촌언니의 결혼식에 신랑이었던 그 남자.

아마도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름으로 추적해 본 결과 언니의 죽음에는 이 남자도 끼어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체력단련실은 별채에 있습니다만, 그리고 별채는 잊어버렸나 싶어서 알려드리지만 오른쪽입니다. 현관 반대방향이죠.”

 

“.....”

 

치밀했던 자신이 빈틈을 보였다고 자책하면서 하은미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친구를 만나러 갑니다.”

 

“새벽 3시에?”

 

피식 웃으면서 길준이 그녀쪽으로 돌아섰다.

 

“새벽 3시에 만날 정도면 각별한 사이겠군요. 실연한 걸 받아달라고 징징거리던가요? 아니면 정치인이 되려고 하니 기밀이라도 하나 터뜨려 달라고 하던가요.”

 

“......”

 

“뭐, 표정을 보니 대충 짐작이 가는군요. 잘 다녀 오세요.”

 

길준은 냉랭한 어조로 그렇게 말한 후 현관쪽에서 돌아섰다.

 

“그리고 말해두지만 누군지는 몰라도, 우리 일을 캐려하지 말라고 하십시오. 그리고 은미씨.

당신도 우리하고 일을 하려면 누군가의 하수인 노릇은 그만둬야 할 겁니다. 적과 아군 정도는 미리 정하고 일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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