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뭘까.
나는 위를 보았다.
방금 하늘에서 떨어진 게 뭘까.
나는 발에 묻은 하얀 것을 떨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바닥은 이미 그 하얀 것들로 덮혀 있어서 발을 빼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하늘을 보았다. 희고 보송보송하지만 차가운 것이 떨어지고 있었다.
내 얼굴에도 묻고 수염에도 묻어 있어서 털려고 했지만 잘 털리지 않았다.
차가운 기운이 온 몸을 파고 들었다. 나는 수염에 묻은 걸 혀로 닦아냈다.
낼름.
앗, 차가워.
나는 얼얼함을 느꼈다.
옆에서 동생이 내게 바보같은 짓 좀 그만하라고 말했다.
나는 꼬리를 든다음 그 녀석 목을 살짝 꺠물어주었다.
동생도 지지 않겠다는 듯, 내 등을 덥석 물었다.
그렇게 우리 둘은 태어난 첫 해의 눈을 맞으며,-주인이 눈이라고 알려주었다.- 몸싸움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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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남자를 위한 책이 나왔다고. 남인숙씨의 자기계발서다.
왜 이제야 이런 내용으로 나왔냐고 저자에게 따지고 싶을 만큼 알차다.
조금 아쉬운 점은 남자라는 라벨을 떼고 나왔으면 좋지 않았을까하고...
얼굴이 많이 알려진 분이다보니 표지가 저자의 얼굴이다.
남자에게 어필을 잘 할 수있을 것 같은 얼굴인 것 같기도 하고...
이런 말 하면 저자에게 실례겠지.
하지만 연세에 비해서 굉장히 아름다우시다.
(아직은 젊으신가...;;;;;;정확한 연세를 몰라서 나보다 15세는 더 많이 잡았다.)
하여간 내가 본 자기계발서 중에서는 깊이가 있는 것 같다.
나가서 행동하라고! 마지막 장에서 짤짤 흔들다 시피하는 강제력도 발휘하시는데
다행히 나는 직장인...;;;;;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는 것이, 책에서는 직장인이라도
자신만의 길을 찾지 못한 사람을 가리켜서 골방에서 고개만 끄덕거리는 사람.이라고 표시했으니...
류시형 박사님은 전에 이분의 저작에 나오는 남성상에 대해서 크게 비판하신 적이 있는데
이 책은 어땠는지 한번 들어보고 싶다. 그분 말씀도 나름의 논리가 있으셔서...
물론 저자 자신에 대한 비판도 있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 여성을 위한 자기계발서를 몇권 더 쓰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굉장히 보수적인 시각이라...나는 좀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내 20대 중반에 만났던 저자의 첫 자기계발서와는 어울리지 않는 시각이라서...
그 부진을 털고 또 자기계발서의 첫장을 열 수 있을까...
이런 것도 책 읽는 방법 중 하나이려니...하는데, 저자가 후미진 골방에서 뭐하나! 하고 야단치실까 조금 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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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향기가 있어서 의미가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꽃 하나는 하늘하늘 하지만,  꽃다발은 무겁고 가시가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일본도 아닌데 가업이라면서 강요하는 어머니를 납득할 수 있는 건 이 길 밖에 없으니까.

향기도 없는 꽃을 왜 짊어지면서 살아야 하나.

꽃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도 시들어버리면 끝이니까.
덧없는 생.
나는 꽃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단지 사람들의 시각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재배되고 잘라지는 허무한 생.
꽃집 아가씨는 예쁘다는 노래도 있지만, 이런 허무한 짓을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적성에 안 맞아요? 난 꽃이 좋던데요."

허무해하는 나와는 달리 어머니와 죽이 잘 맞는 어머니의 제자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애정결핍같아요. 하진씨. 꽃을 좀 더 긍정적으로 봐요. 아니면 연애를 해도..."

내가 인상을 찌푸렸나보다. 그녀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래도 향기가 있으니까 다행이에요."

나는 장미향을 맡으면서 그녀에게 말했다.

"안 그럼 정말 의미가 없을 테니까."

"하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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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의 바나나 키친을 읽었다.
제목이 재미있어 보여서 샀는데 원제는 그게 아니라고 한다.
원래 출판할 계획이 있었던 책이 아니라고 하던데 읽어보면 정말 그렇다.
일기의 한부분을 그냥 편집해서 내놓은 듯한.
그렇다고 내용이 나쁜 건 아니고, 육아와 식사에 대한 정감있는 일기같다.
나는 소설가라고 하면 폼잡고 글쓰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 수필은
할 말 다하면서도 자신의 개인적인 면을 잃지 않는다.
그래...좋아...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할 말이 뭐가 있겠는가...
다만 불만인것은 역자가 일본어를 옮기면서 과카몰레라는 소스이름을 와카모레로 옮겼다는 점 정도? 다소 대중화된 소스 이름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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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쉬는 게 일이다. 나는 어제까지만 해도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쉬고 있다. 그러니까 퇴직한 게 아니라 그냥 쉬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아직까지 야근 수당, 출장비 정산이 끝나지 않아서 완전히 그만둔게 아니니 말이다. 


설마하니 그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아니, 정정한다. 내가 어리석었지.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는데...
재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왜 하필이면 그때 나여야 했던 걸까?

그 노숙인이 어쨰서 내 바지를 잡았던 걸까.
그리고 나는 왜 하필이면 그때 발길질을 했던 걸까.


"돈좀 주세요...1주일을 굶었어요..."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는 그 사람을 왜 나는 발길질을 했나.
1주일을 굶었던, 한달을 굶었던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고.
사실은 그저께 마구 달렸기 때문에, 어제 굉장히 피곤했던 탓도 있다.
그리고 그 피로때문에 아침에 늦게 일어났던 것이다.
출근시간에 한참 늦은 시간이었다.
초조했고, 나는 바지를 잡은 손을 놓게 하기 위해서 발길질을 했다. 무의식적이었다.
혐오였는지...아니면 초조함때문이었는지...


그리고 그때 플래시가 터졌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내가 발길질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SNS는 빨랐다. 하루만에 나는 인터넷 공간을 달구었고 이틀만에 회사에서 잘렸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나는 실수를 했을 뿐인데...
그리고 사흘만에 나는 왜 갑자기 잘렸는지 알게 되었다.
내가 발길질을 한 그 노숙인이 죽었던 것이다.
발길질을 해서 죽은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발길질녀와 노숙인의 죽음을 같은 것으로 보고 있었다.
사과하라는 내용이 인터넷을 덮었다. 가족애게 사과하라고. 가족에게 보상금을 내라고.
주소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매일매일 내 아파트 문앞에 살인자!라는 종이가 붙었다.
그리고 그 노숙인의 가족이 날 찾아냈다.
보상금을 내고 나니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겨울인데 충분히 난방할 정도의 돈도 없었다. 나는 구직 등록을 하고, 최소한으로 난방비를 줄였다. 나는 물론 알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집을 팔고 좀 더 작은 집으로 가야 한다는 걸.
하지만 인터넷은 내 개인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집을 팔기로 하면 인터넷의 악소문때문에 집값을 적당히 받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난 한가지 이유를 더 가지고 있었다.
집을 판다는 건 내 등급이 한단계 내려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노숙인과 같은 단계에 있고 싶지 않았다.

난 방을 나가기가 힘들어졌다.
사람들은 잊어줄만도 한데 잊지 않았다.
매일매일 문앞에 붙은 종이를 떼내고 빨간 스프레이가 묻은 낙서를 지우는 것도 일이었다.
길을 나서면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나는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자동이체, 카드 결제...
그렇게 2년을 보내고 나니 진짜 돈이 하나도 없었다. 대출도 받았지만, 집밖을 안나가는 걸 오래 하니 구직에 대한 욕망도 희미해졌다.
돈을 갚지 못해 집달리들이 온 날, 나는 처음으로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2년만에 보니 더 이상 문에는 스프레이도 뿌려지지 않았고, 종이도 붙어 있지 않았다.

나는 옷장에서 후드티를 꺼내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거리로 나갔다.
그리고 내가 발길질을 한 장소에서 양철 그릇을 앞에 내놓고,엎드렸다.
땡그랑 소리가 울렸다. 나는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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