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대의 트럭이 천천히 새벽 폭포부지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 말 그대로 그런 소리로만 들리는 굴삭기도 2대 들어와 있었다.
폭포는 크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만약 그 안에 금괴가 들어있다는 게 확실하다면
공사하는 기분으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할건데?"

그의 질문에 길준이 손가락을 폭포쪽으로 가리켰다.

"털보씨 보기에 역시 방해가 되는 건 저 폭포 아닙니까?"

"용제를 가지고 왔다기에 어떻게 하나 했더니만 그냥 저 폭포안으로 굴삭기를 그냥 넣을 거야?"

"....글쎄. 여기 환경론자로 변신한 파계 신부가 있군요."

지윤도 따라와 있었다.

"몸에 안 좋은 용제는 써서는 안됩니다. 주변 관광객이나 주민들을 생각하세요. 형, 형의 도의니 뭐니도 이거랑 상관이...읍읍...."

털보는 어느새 따라온 지윤의 입을 틀어막고, 길준에게 한 손을 들어올려보였다.

"잘 하리라 믿겠어."

"어딜 가는 겁니까? 당신의 그 역사적인 장면을..."

"난 은미 꼬시러 가야돼."

"후..."

담배 한개비를 입에 물고 길준은 생각에 빠졌다.

"주민들을 위해서...란 말이지?"

이준구가 인부들을 지휘하다가 잠시 쉬는 듯, 길준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폭포의 물보라가 여기저기 튀어서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길준의 말에 준구가 이맛살을 찌푸렸다가 폈다.

"음, 질소로 얼린 후 들어가기로 했습니다만, 신부님 의견은 다른 모양이더군요."

"더 들어볼 필요도 없군요. 마침 방해꾼도 없으니 시작합시다. 양은 충분하지요?"

"물론입니다."

그렇게 털보와 신부, 그리고 그 둘이 폭포의 물이 얼어붙는 것을 보는 동안
은미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작은 폭포지만 전체 물 근원에 질소를 붓고, 물줄기를 전체적으로 얼리는 작업은 꽤 힘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다 정리가 되었을 때 그들은 폭포안쪽에 들어있는 약 100여개의 놋상자를 발견할수 있었다.
놋상자는  각각 하나가 요즘의 컨테이너 박스와 비슷했고, 무게도 하나당 약 1톤급은 되는 듯 했다.

"울 아버지가 너무 국제적으로 놀았던 모양이야. 여기까진 미처 생각 못했는데?"

털보의 말에 길준이 피식 웃었다.

"아니 부자라면 이 정도는 돼야 되는 거 아닙니까?"

"...아니 난 그냥 금괴 하나만 있으면 되거든. 저건 좀 오바야."

"하긴, 싣고 가긴 곤란하겠군요. 저렇게 많을 줄은 몰랐으니 말입니다."

준구의 이름을 빌린 길준의 지휘로 2톤 트럭 30대와 1톤 트럭 40여대가 긴급 공수되었다.
그 차들은 폭포에서 상자를 끌어낸 후 잽싸게 포장되어 다시 고속도로로 달려나갔다.

"문제는."

길준이 천천히 하늘을 보았다.

"길거리에 붙어 있는 CCTV다. 천개의 눈같으니, 병률이 놈한테 조금 밀릴 수도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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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를 그리려다 갑자기 쫀득한듯한 토끼가 생각나서 그렸습니다,흐음...좀 더 예쁘게 찍을 수도 있을 걸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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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의 천인 교향곡에 대해서는 옛날에 한 첼리스트의 인터뷰로 들은 적이 있다.
천명의 편성을 천개의 첼로로 대신했다는...
그래서 난 엄청 우아하고 고상한 곡인줄 알았다.
하지만  어제 오늘 그 CD 두 개를 다 듣고 나니, 이건 우아이전에 이해도를 엄청 높이지  않으면 음악이라고 생각할 수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난 기본적으로 음 편향적인 인간이라, 듣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건 듣다보니 머리가 쪼개질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말러는 예전에 대지의 노래는 들어본 적이 있어서, 만만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은데 이건...한계를 넘어선 블록버스터-좋은 의미가 아니라 편성이 그렇다는 점에서-음악이 아닌가. 한구석 잘라내서 영화에 붙여도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은.
말러...정말 다 들어도 좋은 걸까...;;;;;;그냥 얌전하게 슈만, 멘델스존을 듣는 게 좋은 거 아닐까...
알마 말러가 대지의 노래를 듣고 말러와 소원해졌다더니만, 대지의 노래 이후더라도 이 교향곡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을 거라는데 백원 건다.
음악과 소음의 차이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 아주 중요한 계기였다.
또한 다음에  cd 골라서 듣는 것도 신중해야겠지...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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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보는 것은 해로운 것이다. 라고 말한 선생님이 있었다.
그 사람은 만화같은 것은 읽기에는 쉽지만, 머리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선생님이, 몇년 후에 만화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금은 우스웠지만 비웃기에는 너무 진지한 일이었다.
자신이 비난한 일을 자신의 직업으로 삼기로 한 사람은 도대체 어떤 마음으로 시작하는 것일까.

"잉킹 좀 도와줘."

만화부에 있던 친구가 한 말을 난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다.
잉킹? 그게 뭐지?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잉크는 만년필에 넣는 잉크와 같고, 펜은 습자용 펜인 줄만 알았다.

"잉크칠 좀 해달라는 말이야."

내 의문에 친구는 키득거리면서 대답했다. 손에는 잉크자국과 톤먼지로 얼룩이 져 있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더 멋져보였다.
학과 성적으로 보면 내가 더 성적이 좋았지만, 그녀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사람 특유의 건강함이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에도 안 하던 만화를 대학시절에 시작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유치한 일일수도 있다.
고등학생 시절에 만화부를 하던 친구들이 대학들어와서 만화를 그만두는 걸 보면 말이다.

"넌 언제부터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니?"

내 말에 그녀는 고개를 한번 흔들었다.

"처음이야."

"처음이라고?"

확실히 처음 그리는 것처럼 삐뚤삐뚤하긴 했다. 그림 그리는 실력으로만 보면 고등학교때 친구들이 더 잘그리는 것같았다.

"그런데 만화부가 좋니?"

"...응."

가끔 우리는 동아리실에서 술을 마셨다. 알싸한 맛의 수입 맥주-이름은 알 수 없다. 그때 우리에게 중요한 건 맥주의 이름이 아니라 그 알싸한 기분을 즐기는데 있었으니까.-를 마시면서 이런 모양이 더 낫지 않을까, 저런 모양이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내 부모님들은 때로 내게 물어보신다. 그때 그 좋은 시절을 만화만 그리면서 컴컴한 동아리방에 있는 게 정말 즐거웠냐고. 당신들이 보시기에 나는 고등학교때도 보지도 않던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는 좀 이상한 아이였던 것이다.
알싸한 맥주, 그리고 반 사회인으로서 어른이기도 한 사람이 시도하는 아이의 영역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우린 정말 즐거웠다.

난 만화를 즐겨보진 않았다.
그 점에 있어서는 내 만화의 소울 메이트가 안타까워하긴 했다.
점점 많아지는 만화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없으니까.
지금은 절판되고 스캔본으로 인터넷 서점에서 팔리고 있는 스바루, X, 엔젤릭 레이어 등.
(그녀는 클램프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래도 난 만화를 그렸고-내가 좋아하는 만화의 형식이라고 해봤자 텅 빈 배경에 고양이 한마리씩 얹어놓는 그림이랄까. 그녀는 그걸 타래팬다 스타일이라고 불렀다.-지금도 무슨 이야기인줄은 모르겠다.-

안 굴러가는 펜을-초심자에게는 펜 다루는 게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니-조심스럽게 굴려서
외곽선을 긋고, 배경을 하얀 백지로 놔두는 게 내 즐거움이었다.
가끔은 백지에 펭귄들만 수도 없이 그리기도 했는데. 그녀의 입장에서는 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던 듯 하다.

"펭귄, 고양이...너는 배트맨을 좋아하나보구나."

수험생활의 폐해로 만화는 물론, 슈퍼 히어로 영화는 보지도 않던 나였기에 그 말은 좀 황당했다.

"배트맨? 그게 뭐야?"

"뭐? 한번도 보지 않았어?"

그걸 시작으로 그녀와 나는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교내 비디오방에서 배트맨을 하나씩 봐가고, 비록 불법이나마 구할 수 있었던 마크로스 -기억하고 있습니까?-를 첫 시작으로 마크로스 시리즈를 다 봐나갔다.
그래도 내 그림은 변하지 않았다. 텅빈 방, 펭귄이 찾아오고, 토끼가 시계를 차고 달려나가는 그림들.
비록 그림체는 조금씩 수려하게 변해갔지만,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나와는 반대로 그녀는 점점 상업적인 스토리를 구현하기 시작했다.
보는 만화도 다양해져서 클램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쿠스모토 마키 등을 읽기 시작했고
단순히 번역된 만화를 책방에서 빌려보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책을 주문해 보곤 했다.
하지만 그림체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노력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는데...

만화부의 실체없는 선배 하나가 극동 문화제에서 만화부문 시상이 있다면서 만화부에서 1사람만 나갈 수 있다고 했다. 그때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선배가 계속 날 찍어서 이야기하는 바람에 그녀의 기분이 꽤 상했던 모양이다. 

"좋겠어. 극동 문화제에 나갈 수 있어서."

"난 별 생각 없는 걸. 나가봤자 또 앨리스나 그리고 있겠지."

"넌 정말."

얄미워. 하고 그녀가 내뱉듯이 말하고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문화제가 시작되기 1달전까지 나오지 않았다.

"부실에 안나올거니?"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친 내가 그녀의 옥탑방에 가서 본건 그야말로 기가 질릴 정도의 원고들이었다.
새카만 잉크로 얼룩진 팔 다리. 라면만 끓여먹어서 부은 얼굴에 엄청난 양으로 쌓인 뭉뚝한 펜들.

"넌 문화제 준비 안 해?"

그녀의 말에 나는 잠깐 웃었다. 밤에도 만화, 낮에도 만화.

"난 안 나갈거야."

"아냐. 넌 나가야 돼."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왜? 난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스토리도 엉망인걸..."

"나랑 같이 하면 되잖아!"

그녀가 자존심도 버리고 그렇게 말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 틀림없었다.
 1달 동안 우리 둘은 그녀가 스토리를 내가 그림을 맡아서 작업하기 시작했다.
물론 시상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우리 둘다 시원하게 미역국을 마셨다.

"흐..."

그녀는 뜻모를 신음을 흘리면서 펜을 집어들었다. 손에는 물집이 가득했는데도 그리고, 또 그리고 계속 그려댔다.

"이제 됐어."

나는 그녀와 화해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렸다.
만화는 그리면 그릴수록 어려웠기때문에 이제 그만.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 반대였던 모양이다.
소울 메이트같았던 우리는 그 일을 계기로 헤어졌다.
나는 현실세계로, 그녀는 만화부에서 만화 그리는 세계로...


"어, 바닐라 에센스 12월호다. 어디, 주네브가 떴는지 볼까?"

가끔 나는 그녀가 투고하는 원고를 바닐라 에센스에서 본다.
그녀는 주네브라는 필명으로 개그만화를 그리고 있다.
그림실력이야 일취월장했겠지만 가장 그녀다운 색채를 볼 수 있는 것이 개그만화여서 그럴 것이다.
지금 사회인 친구들에게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30대  오피스 레이디들의 삶을 개그로 만든 주네브는 인기를 엄청나게 끌고 있다.

"돈 많이 벌겠지? 프리랜서라서 시간도 자유롭고."

친구들 중 몇명이 몽상을 시작한다.

"주네브라는 애 그림도 그렇게 잘 못 그리는데 책이 엄청 팔린대잖아."

"아서라. 쉬워보이는 게 어려운 법이란다."

킥킥거리면서 이야기는 종료된다.
나는 바닐라 에센스를 가방에 담고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간대학교 졸업 이후로 그녀와 나는 만난 적이 없다. 전화통화조차도.
하지만 나는 그녀가 자신의 진정한 길을 뚫었다는 걸 안다.
부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건 그 아이의 길이니까.
나는 방안에 있는 뭉뚝한 펜들을 생각했다.
문화제에 제출하기 위해 인정사정없이 그어댔던 펜들.
모두 추억속의 물건이지만, 이제는 완전히 내려놓고 가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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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독한 아이였습니다.
그의 첫마디로 문장은 시작되었다.
그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고독한 인형사를 떠올렸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인형을 만들겠지.
그게 구체관절인형인지, 천인형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땀한땀 인형옷을 만들고 인형 머리에 머리카락을 심을 거야.
아아, 고독하지 않으면 하지 못하는 직업이 아닐까...

내 망상에 책상에 앉아서 소설을 쓰고 있던 사촌언니가 비웃었다.

"그건 다 팔아먹기 위해서 하는 거야. 별다른 의미가 있는 말이 아니라고. 더더군다나 인형만 만들고 있다고 누가 밥을 준대니..."

다른 건 몰라도 실행력 하나만은 알아준다는 나인만큼 신문에 실린 그 기사의 주인공을 찾아가기로 했다.
미리 전화를 하고-제자인듯한 사람이 받으면서 곤란하다고 흘리긴 했다.-그 사람에 대한 기사를 모으고-기껏 가서 할말이 떨어지면 안되니까.-거기까지 갈 여비를 계산하고-돈이 모자랄 일은 없지만-하면서 근 열흘을 시간을 보냈다. 예전에 어느 누구랑 소설을 같이 쓰면서 살다가 머리끄댕이를 잡혀서 온 사촌언니는 여전히 냉소적이었지만 가족들은 내가 정말 대견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손재주는 우리 집에서 알아주는 손재주이고, 지금은 고등학교 1학년에서 진로 탐색하는 중이니, 잘하면 예술가 하나 나오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예술가는 뭐 별건가."

그러는 자기도 밥만 먹으면 책상에 앉아서 글만 쓰는 주제에...
사촌언니는 빈정거리기를 밥먹듯 했다. 그 열흘동안.

"네가 인형을 만드는 법을 배운다고 예술가가 될 것 같니? 아니면 내가 3년동안 내내 글만 쓴다고 해서 소설가가 될 것 같니?"

물론 그 말에는 일말의 진실이 숨어 있었다.
바로 자기가 소설가가 되지 않을 거라는 말.
보통 말에는 자신의 마음과 미래가 담긴다. 그러니까 언니는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열흘 뒤, 나는 경기도 파주에 있다는 그 인형사의 작업실앞에 서 있었다.

보통 고독하리라고 생각되는 작업실이 아니라, 파주 외곽에 있는 아주 조그마한 동네였다.
그리고 그 작업실에서는 떠나갈듯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이, 왜 그래..."

딩동.
차임벨을 울렸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딩동.

미리 내가 오는 것을 알고 문 열어주지 않기로 한 것이 아닐까.

딩동.

세번째 울리자 벌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렸다...하는 것은 내가 기다리는 문이 열린 것이 아니라 옆집의 문이 열렸다는 것이지만.

"까르르르...아이. 이러지 마."

소스라칠 정도로 교태 넘치는 목소리에 문을 열고 나온 아주머니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 쌍년이. 새벽부터 저녁까지 도대체 그칠 줄을 모른다니까."

"저기, 안녕하세요.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뭘 여쭤봐. 저 소리 못 들었어?"

아주머니는 저것들때문에 집값내려간다면서 투덜거렸다.

"저기, 여기가 소oo 인형사님 댁이 아닌..."

"맞아. 하지만 인형은 1년에 3개 만드나 마나하지. 나도 처음에 몇번 갔었는데 맨날 남자만 끌고 돌아다녀서 실망했어. 요즘도 술에 떡이 되서는 거의 매일 우리 집문을  발로 찬다구. 정말 쌍년이야."

고독하긴 개뿔이...
라고 투덜거리던 사촌언니의 혜안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미련을 못 버린 나는 차임벨을 30번 가까이 울렸다.
그제서야 문이 열렸다.

탈색해서 흰 머리카락을 하고 영구 화장을 해서 모양새 있는 진한 눈썹에, 아침부터 화장을 두텁게 했는지
붉은 입술에 하얀 설화석고같은 얼굴을 한 여자가 등을 벅벅 긁으면서 문을 열었다. 물론 옆에는 아까 전 웃음소리를 내게 한 주인공이 있었음은 물론이었다.

"아이 참 끈질기기도 하지.  잡지 안 봐!"

그 한마디를 툭 던지고는 두 사람은 다시 문을 닫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놀란 나머지 문이 닫기기 전 들고 간 가방을 문 사이에  끼우고 말았다.

"잠깐만요 인형사님을 뵈러 왔어요!"

"...인형사? 너  아직도 인형 만들고 있었냐? 별일이네."

남자가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는 높은 음으로 씨발! 이라고 투덜거리더니 내 가방을 확 밀어버렸다.

"너 당장 돌아가!"

그녀가 말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가방을 들이대! 너같은 것들이 요즘 얼마나 많이 오는 지 알아? 귀찮아죽겠어. 정말."


그리고 두 사람은  작업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요란한 -무슨 사람들의 비명소리같은-음악이 동네를 가득채웠다.

"그래서 예술가는 찾았니?"

돌아와보니 창가의 햇살을 받으며 사촌언니가 담담하게 물었다.

"...아니."

"쫓겨났구나."

"...아니야."

"뭐 보아하니 실망한 것 같은데?내가 너무 김을 뺐나?"

사촌언니가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나랑 살던 언니는 데뷔했는데...그 언니도 예술가스럽진 않았어. 노력만 계속 하고..."

"...천재는 노력 안 해도 되나봐."

사촌언니는 책상에서 일어나 커튼을  다시 쳤다.

"순간의 관심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도 일하고 있으니 네가 못 할 일은 없을 거야...근데 아직 인형사 하고 싶어?"

응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아니라고 대답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응이라고 대답해버리고 말았다.
언니는 쿡 하고 웃더니 헐렁한 옷주머니에서 조그마한 상자를 꺼내서 내게 내밀었다.

"?"

"미니 재봉도구야. 한번 해보라고. 우선은  천인형부터 해야 하지 않겠어? 첫 시작이 튼튼해야 되니까."

"응. 고마워."


십년이 지난 지금 나는 미술계에서는 조금  이름을 알린 인형사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내 인형에서 요시토모 나라의 세계를 읽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내가 소oo작가를 사숙했다고들 한다. (그건 그녀의 주장이다.)하지만 내 첫시작은  사촌언니가 준 단순한 재봉도구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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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토모 나라가 남자라는 걸 안 게 최근입니다. 최근 그를 다룬 영화를 보고 있거든요.
인형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표정이 고정되어 있으니까 굉장히 따분하죠.
이 초쓰기는 창작블로그에 있는  꿈같은 소설의 연작입니다.
저 머리끄댕이를 잡혀서 끌려왔다는 아가씨가 거기에 나오죠.
그러니까 이건 미래 소설입니다 미래소설이에요. 암요.
이것도 오마쥬라고 하면 오마쥬인것이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의 타에코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세설 한번 읽어보세요. 정말 재미있으니까요. 타에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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