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당장 나가라고.이 멍청아!"

말이 더 심해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정의는 얼른 뒤로 물러섰다.
한때는 형제같이 친한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서로의 착각이었던 모양이었다.

"너무 화내지마. 형."

그는 상대방을 부드럽게 달래면서 현관문쪽으로 향했다.

"오늘은 형이 화가 많이 난 것 같으니까. 이만 나가볼게. 하지만 다음에는..."

"다음은 없어. 다시는 돌아오지마. 난 너한테 할 말 같은 거 없으니까. 잘 가. 경찰 나리."

비번인 날을 택해 오래 전의 동창생을 만나러 온 길이었다. 정의보다는 한 살 많은 그는 학교의 짱이었다.
짱이라고 해서 폭력사건을 일으켜서 1년 늦게 들어온 건 아니었다.
단지 배치고사를 치러 오는 날,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던 탓에 늦었던 것 뿐이었다.
하지만 이후로 그는 학교의 짱으로 군림했고, 그런 그를 눈여겨봤던 조직폭력배들에 의해서 역시 조직폭력배가 되었다. 



   그런 그를 정의가 만나러 온 건 다름이 아니라 울산에 정착한 그 형이 요양원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였다.
조직원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놓을 인물인 그가 왜 그 사건에 연관되어 있는지 알고 싶어서 찾아왔으나 형은 그 대답을 거부했다.

"네가 낑기면 안된단 말이다. 이 멍청한 놈아."

말보로 담배를 후우하고 내뱉는 그 뒤로 병률이 나타났다.

"잘 했어요. 내가 당신네 애들을 거둬들이지.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애초에 당신이 뒷 마무리가 어설퍼서 그랬던 거잖소."

정의의 형, 정의의 동창생은 그렇게 말하고는 현관문을 닫았다.

"그래서 당신이 필요했던 거지요."

병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가 몰래 듣는 사람이 없나 하고 확인하는 것처럼. 그는 심지어, 정의의 동창생이 닫은 현관문을 다시 한번 열었다가 닫기도 했다.

   "당신이 있어서 안심입니다. 당신은 믿을 만한 사람이죠."

"내 조직원 중의 한놈이 입이 어설퍼서 그랬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아니오. 난 당신과 당신 조직원들은 믿습니다."

병률이 싱긋하고 웃었다.

"내가 안 믿는 건 국회에 있는 내 동료들과 내 친구들이죠."

"다행이군."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병률의 말에 그가 차가운 눈으로 병률을 노려보았다.


"왜?"

"당신의 부하들은-그러니까 당신이 동생들이라고 부르는 -정말 뛰어난 인재들이죠?"

"인재라고 하니 간지럽군. 그냥 뒷조사 잘 한다고 말하는 거겠지? 그런 거라면 정말 잘 하는 놈들이지."

"그럼, 당신들이 파묻은 그 사건을 단번에 알아낸 그 검사와 그 소문을 낸 소식통은 금방 찾을 수 있겠군요."

"......"

"...찾아서 어떻게 할거냐고 묻진 마시죠. 난 이 악의적인 소문의 근본을 찾고 싶을 뿐이니까."

"당신 정말 위험한 사람이군."

병률은 싱긋 웃고는 그의 입에 물려 있는 말보로 담배를 그대로 빼내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진짜 위험한 건."

그리고는 그 담배를 발로 문질러 껐다. 치이익. 소리가 잠깐 났다가 사그라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들이죠. 난 그렇게까지 위험한 사람은 아닙니다. 가까이 다가오면 모를까...그리고 아까전에 말한 그 조사대상자들은 너무 가까이 왔어요. 난 덤비는 상대는 봐주는 사람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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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률을 처음 정치의 길로 끌어들였던 형은 현재 곤란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병률의 은인이라고 봐도 좋았을 의원이 수뢰죄로 감방에 들어간데다가 자신은 현재 동생에게 버림받은 상태였다.

"네가 나한테 그럴 수가 있냐."

면회를 온 지인, 그러니까 실제로는 형제 사이인 두 사람 사이에는  냉기가 돌았다.
한명은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정치인, 한명은 성매매를 알선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죄수.

"왜 당신 하나만 특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왜냐니. 난 너의..."

"그 말 한번만 더 반복하면 앞으로 쫄쫄 굶으며 살게 해주지."

냉랭한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제서야 그는 동생이 그 여자의 남편을 가뒀던 병원의 원장의 말로를 떠올렸다.
행방불명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는 그 시체가 울산 앞바다에서  콘크리트에 묻힌 채 발견되었다는 말에 동생을 떠올렸던 것이다.

"좋아. 그렇지. 당신은 내 목숨줄을 잡고 있소.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날 구해줄거요?"

"...구원은 스스로 하는 거지. 얌전히 형기나 채워요. 나오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동생이 돌아간 후 그는 배신감을 곱씹었다. 어떻게 키워줬는데 이런 보답이나 하다니...

"내일 면회가 되어 있으니 미리 준비 잘 하시오."

교도관의 말에 그는 귀가 번뜩 띄었다.

"누가 옵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면회라고 하긴 그렇고, 성경을 읽어주러 신부가 온다는군."

"신부? 나같은 사람에게 신부가?"

"하긴 어울리진 않지."

교도관은 히죽 웃었다.
그 신부의 말이 우스웠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자는 다 형제니까..."

그 말에 갑자기 두 사람의 형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설마 아직 안 죽었단 말이..."

"살인죄까지 지었나? 아니면 잠시 돌은건가?"

교도관의 말에 그는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

"아니오. 내일 성경말씀 잘 듣도록 하지요."

그의 눈길에 살기가 돌았다. 아직 기회는 있는 것이었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동생을 다시 무릎꿇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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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속에서 하이킥!

가끔은 내가 전문 저자가 아니라는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할  때가 있다.
 그건 내가 어떤 만화나 소설로부터 강렬한 충격에 가까운 영감을 전해받고 노골적으로 모사하는 것을 후에 발견할 때다. [키스]도 내게 그런 만화다.
고등학생 시절 만화책방에서 그걸 보고 충격을 받고 모티브 몇개를 그대로 갖다쓴 내 나름대로의 대작!의 소품이 있었다. 쓰면서 의기양양해 했지만 후에 전자책으로 다시 읽고 나니 그게 몽땅 다 허세라는 걸 알았다.
노골적인 표절, 모사를 독창적인것으로 생각했었다니!
고등학생 시절에 [키스]의 일본판을 사모으기도 했던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더더군다나 나는 고등학생 시절 이후로 더 발전한 스토리텔러가 된 것도 아니고...
마츠모토 토모도 사실 그 이상의 실력을 보여주기에는 힘들어진 것 같으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사실 그건 토모씨의 최상치였고, 어느 누구도 그 정도의 최상치를 보여주기 힘들었을 것이다.
카덴차, 하드밥, 쿨재즈, 스튜디오 피아노 연주자.
클래식에서 모던, 재즈. 콜트레인에서 사카모토 류이치, 포레, 사티 등등...
사랑의 표시인 키스가 달콤함에서 야수의 날카로운 노림새, 어린 아이의 질투가 가지는 앙큼함 등등으로 변주되는 것도 매력이다. 보통 [키스]란 순정만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거 아니었던가.
하지만 토모씨의 [키스]는 첫 시작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의 안내자나 다를 바 없다.


피아노를 다루는 방법도 굉장히 매력적이다.단순히 피아노가 나오는 만화와는 이미 격을 달리한 만화다.
피아노 치는 손가락이 나오는 장면 장면이 잘라져서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거기서 전공자가 아니라면 대부분 다들 그 손가락에 넋이 나갔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전공자 빼고 라고 이야기한다는 건 전공자가 봤을 때 그게 뻥!같아 보일 수도 있어서다.)실제로 컷 수를 세아리고 있는 감상자도 있었다고 들었으니...

고시마의 매력이 두드러지는 부분은 피아노에서이고, 카에의 여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이 드러나는 부분은 천진난만한 관객으로 있을 떄이다. 연주자와 관객의 감정선이 어디서 만나느냐애 따라서 음악감상의 질이 드러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그 두 사람은 해피엔딩을 맞기에 가장 적절한 존재랄까.
사실 고시마의 옛날 그녀는 연주자이고, 감성이 다소 강해서 같은 연주자로서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헤어졌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학원 분위기는 학생과 스승의 관계에 대해 지나치게 판타지적이지만, 후에 두 사람의 결말을 결정짓는데는 크게 도움이 된다. 니키 류조가 좀 걸리긴 하지만, 두 사람은 아마 미국에서 잘 지내지 않을까...싶은 결말이다.
뭐 이런 판타지 만화가 다 있어. 라고 생각은 하지만 앞으로도 음악 생각이 나면 가끔 전자책앱에서 읽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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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미는 그 많은 금괴들이 화물트럭에 실려 옮겨져가는 것을 눈으로 보고서야 이 모든 일이 어쩌면 나라 하나를 뒤흔들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젖어 들었다. 

"여기서  뭐해?"

털보가 다가오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전화를 하고 있었어요."

"병률이한테 하고 있었군,"

털보는 그렇게 말한 후 그녀에게 금괴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그녀는 애써 냉정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무슨 일이시죠?"

"여기까지 따라온거면 이야긴 뻔하지 않아?"

"당신들은 정말..."

공포감에 젖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제서야 자신이 뛰어난 게임판이 그냥 게임판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초심자의 감같은 것이었다.

"당신이 병률이하고, 저 길준인가하는 녀석하고 둘 사이에 두고 저울질 하는 걸로 알고 있긴 한데..."

"......"

그녀는 애써 가장했던 냉정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내가, 내가 그렇게 한심해 보여요?"

"응."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털보에게 그녀는 그만 한숨을 쉬고 말았다.

" 이것 보세요. 털보씨. 이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요,"

"그럼?"

"이건 본래 일본이 국내에서 채굴한 금을 가공한 거에요.즉 엄연히 국가재산이죠. 우리가 이렇게 발견해서 들고 가긴 하지만, 몰래 얼마나 많이 가지고 갈 수 있는지는 모른다고요. 길가에 CCTV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해요?
그리고 더 나가면 이건 정치를 좌우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요. 더더군다나 도둑맞아도 신고도 못하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털보는 그녀의 손에 금괴를 꼭 쥐어주었다.

"그래도 한개 정돈 남겠지. 기념품이라고 생각해둬."

"그게 무슨..."

"길준이한테 들은 이야기야. 내 동생이 여기저기 폐를 끼치고 돌아다니니 형된 입장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어. 그동안 신세도 많이 지고 했지만, 이젠 헤어져야 할 것 같아. 난 나대로 동생이 한 일을 처리해야지.
내 본래 직업의 의미를 다시 찾으러 갈 시간이야."

"그럼?"

"이젠 못 본다고 생각해둬. 미운 놈이 금괴 하나 쥐어주고 사라졌더라...그 정도 의미만 남아도 좋은 거라고 생각해."

털보는 그 속의 말을 다 털어놓진 않았다. 어머니가 들려준 낭만적인 사랑이야기.
아버지는 헤어지는 날 어머니에게  금괴 하나를 쥐어주고는 그렇게 떠났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 이야기속의 비극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털보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부터 일어날 싸움은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 이야기를 이 여자에게는 하지 않으리라. 다만 보지 못할 것이라고만 눙쳐두자.
그는 그리고 트럭들이 출발할 때 길준 모르게 한 트럭에 얻어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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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대의 트럭이 천천히 새벽 폭포부지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 말 그대로 그런 소리로만 들리는 굴삭기도 2대 들어와 있었다.
폭포는 크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만약 그 안에 금괴가 들어있다는 게 확실하다면
공사하는 기분으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할건데?"

그의 질문에 길준이 손가락을 폭포쪽으로 가리켰다.

"털보씨 보기에 역시 방해가 되는 건 저 폭포 아닙니까?"

"용제를 가지고 왔다기에 어떻게 하나 했더니만 그냥 저 폭포안으로 굴삭기를 그냥 넣을 거야?"

"....글쎄. 여기 환경론자로 변신한 파계 신부가 있군요."

지윤도 따라와 있었다.

"몸에 안 좋은 용제는 써서는 안됩니다. 주변 관광객이나 주민들을 생각하세요. 형, 형의 도의니 뭐니도 이거랑 상관이...읍읍...."

털보는 어느새 따라온 지윤의 입을 틀어막고, 길준에게 한 손을 들어올려보였다.

"잘 하리라 믿겠어."

"어딜 가는 겁니까? 당신의 그 역사적인 장면을..."

"난 은미 꼬시러 가야돼."

"후..."

담배 한개비를 입에 물고 길준은 생각에 빠졌다.

"주민들을 위해서...란 말이지?"

이준구가 인부들을 지휘하다가 잠시 쉬는 듯, 길준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폭포의 물보라가 여기저기 튀어서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길준의 말에 준구가 이맛살을 찌푸렸다가 폈다.

"음, 질소로 얼린 후 들어가기로 했습니다만, 신부님 의견은 다른 모양이더군요."

"더 들어볼 필요도 없군요. 마침 방해꾼도 없으니 시작합시다. 양은 충분하지요?"

"물론입니다."

그렇게 털보와 신부, 그리고 그 둘이 폭포의 물이 얼어붙는 것을 보는 동안
은미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작은 폭포지만 전체 물 근원에 질소를 붓고, 물줄기를 전체적으로 얼리는 작업은 꽤 힘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다 정리가 되었을 때 그들은 폭포안쪽에 들어있는 약 100여개의 놋상자를 발견할수 있었다.
놋상자는  각각 하나가 요즘의 컨테이너 박스와 비슷했고, 무게도 하나당 약 1톤급은 되는 듯 했다.

"울 아버지가 너무 국제적으로 놀았던 모양이야. 여기까진 미처 생각 못했는데?"

털보의 말에 길준이 피식 웃었다.

"아니 부자라면 이 정도는 돼야 되는 거 아닙니까?"

"...아니 난 그냥 금괴 하나만 있으면 되거든. 저건 좀 오바야."

"하긴, 싣고 가긴 곤란하겠군요. 저렇게 많을 줄은 몰랐으니 말입니다."

준구의 이름을 빌린 길준의 지휘로 2톤 트럭 30대와 1톤 트럭 40여대가 긴급 공수되었다.
그 차들은 폭포에서 상자를 끌어낸 후 잽싸게 포장되어 다시 고속도로로 달려나갔다.

"문제는."

길준이 천천히 하늘을 보았다.

"길거리에 붙어 있는 CCTV다. 천개의 눈같으니, 병률이 놈한테 조금 밀릴 수도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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