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중우는 깜깜한 방안에서 자신이 꽁꽁 묶여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제 도착한 식당앞에서 일격을 받고 정신을 잃은 게 기억이 났다.

 

"으..."

 

"정신이 드나?"

 

그르르륵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긴..."

 

"골방이지.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골방. 넌 여기서 못 나가."

 

"왜!날 가두는 거지?"

 

[유령]은  그 어둠속에서 천천히 진중우에게 손을 뻗었다.

 

"네 아비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 그 소린 쑥 들어가게 될 걸. 그리고 윤승아를 사랑한 것도 얼마나 큰 죄인지 알게 될거야..."

 

"승아가 길대표랑, 네가 하는 일에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네 아비가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 밀수를 했었지. 그리고 그 밀수를 담당했던 기술자가 자백하더라도 별 문제가 없도록 염산을 뿌렸어. 뿌려서 지문도 없어지게 만들어버렸지. 난 결국 내가 나라는 걸 증명하지 못한 채로 정신병원에 갇혀 있어야했어."

 

"뭐...?"

 

진중우는 그제서야 형이 했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필요하다면 마피아도 될 수 있는 것이 우리들...]

 

"그럼 형을 죽인 것도 너냐! 이거 당장 풀지 못해!"

 

"서두르면 서두를 수록 네 손해야."

 

[유령]은 여유롭게 손에 든 것을 들어올렸다. 어둠속이라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얼핏 보니 침같은 것이 박혀 있는 것 같았다.

 

"뭐지..주사기?"

 

"네가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이 신경마비독이 담긴 주사액을 주사할 거다. 미량이라도 치명적이지. 하지만 효과는 천천히..."

 

"제길. 우리 집안이 잘못한 건 이제 처음 알았어. 미안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건 법정에 가서 해결할 문제지. 여기서 이런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

 

"아니, 대한민국은 유전무죄의 세상이야. 네가 도와준다 해도 아니, 모두가 자백한다 하더라도 내가 잃은 세월을 보상하지 못해."

 

"그럼 어쩌겠다는거야!"

 

중우의 말에 유령은 조용하게 대꾸했다.

"네 아비에게 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꼴을 보여주려고 한다. 자기 눈앞에서 네가 죽는 모습을..."

"뭐야! 아버지까지 부른 거야? 아버진 오시지 않으실걸. 이런 얄팍한 수에 넘어갈 리가..."

"아니, 벌써 와 있어."

 

유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밖에서 문을 요란하게 두들기는 소리가 났다.

 

"중우야! 중우야! 거기 있냐!"

"도련님! 괜찮으세요? 금방 열어드릴게요."

"회장님 위험합니다. 좀 물러서계세요."

 

"네, 아버지. 라고 말해봐."

 

유령이 미친 듯이 웃어댔다.

 

"지금 웃을 때야?아버지, 물러서세요!"

 

진중우는 불안한 눈동자를 방안을 둘러 보았다. 저쪽 한켠에 매캐한 기름냄새가 나는 것이 여차하면 불을 지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문이 열리면 너도 죽어. 아버지가 그냥 오신 것 같아?"

 

"내가?"

 

유령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잠깐 꺽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더니 유령이 처량맞게 대꾸했다.

 

"몸이 이꼴이 되었는데 죽은들 뭔 상관이 있겠어? 어차피 고쳐지지도 않을 몸 너희 부자를 다 죽여버리고 그렇게 가겠어. 아, 참고로 데려갈 사람이 하나 더 있지, 참.?"

 

"누구...말하는 거야."

 

불안감이 그를 엄습해왔다.

 

"길원택이라도 데려가겠다는 말이야...?"

 

"아니. 그 사람은 나하고 같은 피해를 입었어. 너희 부자들때문에. 물론 그 사람이 날 이용한 것도 괘씸하지만...내가 데려갈 사람은..."

 

"누구...를 말하는 거야...도대체..."

"길원택 그 놈도 날 이용했지.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약혼녀를..."

 

말이 끝나기 전에 진중우는 몸부림을 쳤다.

 

"그애만큼은 내버려둬! 도대체 걔가 뭔 잘못을 했다고. 아무 상관도 없는 네가 그 앨!"

 

"순진하고 예쁜 애지. 벗은 몸도 예쁘던걸. 하얀 웨딩 드레스도 잘 어울리고, 말 그대로 더럽혀 지지 않은 순수함...난 그런 존재들을 오래 전에 너희들때문에 잃어버렸어."

 

바깥에서 문이 열리려고 하고 있었다. 희미한 빛줄기로 진중우는 그가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그 앨 가지고 싶었어. 하지만 현실은 어때? 어설프게 화상 입은 길원택 놈이 걷어채가버리고, 네 녀석은 그 돈가지고 그 앨 꼬여내고. 그 앤 더럽혀졌어. 더 이상 너희들에게 농락당하기 전에 그 순수한 모습 그대로 내가 데려가겠어. 아니, 벌써 데려갔지. 흐..."

 

"뭐라고?"

 

"그 아이 차에 조금 수를 썼어. 아마 지금쯤..."
 
진중우는 눈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그 사이 들려오는 희미한 목소리.

 

"문이 열렸다. 저 놈 잡아!"

 

"아, 저 놈 손에 든 거...회장님, 조심하세요..."

 

"중우씨!"

 

그 사이에 희미하게 섞여 들어오는 승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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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그 다음날, 진성훈은 아들이 실종되었다는 것과 동시에 중우와 함께 일하기로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중태에 빠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길원택 이 자식이..."

 

누구 짓인지 더 이상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진성환은 길원택이 어떤 인물인지 알았다.
그는 바로 길원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길원택은 전화를 받지 읺았다.
10분후
뜨르르르르르.

전화벨이 울리자 길원택은 전화를 잡았다. 전화번호는 승아의 것이었다.

 

"승아씨가 전화를 먼저하고 무슨 일이야?"

 

"죄송해요. 지금 어디세요?"

 

"oo시."

 

"저도 거기 가면 안될까요? 우리 간만에 데이트 좀 해요."

 

데이트라는 말에 길원택은 심한 위화감을 느꼈지만 기분 탓으로 돌렸다.

 

"...그래. 알았어. 빨리 와. 3시간 뒤에 보자."

 

길원택은 그렇게 말한 후 전화의 전원을 뽑았다.
갑자기 승아의 태도가 바뀐 것도 수상쩍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 남은 건 승아를 아이돌 중의 아이돌, 스타 중의 대스타로 만드는 일 뿐이었다.
조직의 힘을 빌어 나쁜 소문을 내는 놈들도 다 척결하면 그만이었다. 스튜디오에 대해서라면 그는 지금의 아이돌 체계를 만든 인물들 중 하나나 다를 바 없었으니까.
승아는 지금 그를 오해하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이라서 제대로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것 뿐인데, 승아는 그저 첫인상만으로 그를 피하려고 들었다.
이제는 달라질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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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그동안 몸이 좋지 않아서 연재를 못했습니다 기다리시는 분이 있으신지는 모르겠지만 한동안 휴재하겠습니다. 완결편까지 마무리짓고 돌아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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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그 뒤에는 초기에 서술한 것과 같이 흘러갔다. 길원택은 조직에 들어갔고, 거기서 연줄에 연줄을 대어서 초기에는 작곡가, 가수로 활동했다. 그리고 그나마 남아있던 선량함마저 잃어가면서 바지사장까지 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소녀의 아버지를 구하지 않았던 그들에 대한 미움이 싹텄다. 언젠가 그들과 맞대면할 날이 오리라 생각했지만 이런 식이 될 줄은 몰랐다.
자신은 승아를 지금까지 이 위치에 올리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는 유령과 헤어진 후 TV를 켰다. 녹화해놓은 승아의 모습이 화면에 비춰졌다.
언제나 자신이 그녀와 함께 부르기위해서 키를 조정해놓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다친 얼굴을 손으로 천천히 만졌다.

 

"아프다..."

 

그리고 이틀 후 진중우는 산간 고속도로를 타고 있었다.
받지 말까 하던 전화였다. 발신자 번호가 뜨지 않는 전화였다. 하지만 무슨 운명같은 느낌에 그는 그 전화를 받고 말았다.

 

"진중우씨 되십니까?"

 

"......"

 

"길원택에 대해서 알려드릴 것이 있습니다."

 

"당신 누굽니까?"

 

"그건 별로 중요한 이야기가 아닐텐데요."

 

"......"

 

"길대표를 망가뜨릴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저하고 약속만 잡아주시면 녹음 정보를 그대로 넘겨드리겠습니다."

 

컬컬한 목소리에 목소리내기 조차 힘든지 중간중간 잡음이 섞였다. 그르르륵하는 듣기 싫은 목소리였다.

 

"oo시 oo식당 앞에서 뵙겠습니다. 혼자 오십시오."

 

"......"

 

너무 잘 맞춰 돌아가는 이야기였다. 길원택을 몰락시킬 도구를 찾는다는 걸 그 사람은 어떻게 알았을까. 마치 자신의 맘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꼭 혼자 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중우는 고속도로를 타면서 생각했다. 자신이 타도하기로 한 길원택이 살인 용의자일수는 있어도 그 전에 폭로될만한 악행을 저질렀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진중우는 아직 어린 학생이었고,  승아보다 3살 연상일뿐인 그런 남자였다.
재벌의 아들이라는 껍데기를 벗기고 나면 그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에 비하면 길원택은...

 

길원택은 스포츠 기사 하나하나를 정성껏 훑었다. 연예인이 아무리 선호 1위의 직업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대중들의 먹이감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그걸 충실히 보여주는 예가 스포츠 신문의 연예란이었다. 얼마 전, 자신과 반대되는  소속사를 세운다고 나왔던 진중우 이야기도 모 스포츠 신문에 실린 이야기였다. 그 뒤로부터 길원택은 그렇지 않아도 꼼꼼히 챙겨보던 스포츠 신문을 스스로 먼저 챙기곤 했다.
어차피 기차를 타고 있었기 때문에 챙기는 여유시간이 많았다.  그렇게 다 훑고 있는데 이런 기사 하나가 걸렸다.

 

[모 대표와 열애중인 모 아이돌 임신설]

 

임신은 무슨! 길원택은 코웃음을 쳤다. 나중에 <형님>들에게 부탁해서 처리해야할 문제인듯 싶었다. 그는 조직에 몸 담았을 때 저장해놓았던 한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형님 잘 계셨습니까...저 원택입니다. 부탁드릴 일이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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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진중우의 아버지는 청렴결백한 관료로 있다가 대를 이어 기업가가 된 인물이었다. 공무원이 사업을 하면 거의 말아먹기 일쑤였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의 기적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뒷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건 다 거짓이었다.관료시절부터 그는 위로 올라서기 위해서 몰래몰래 뇌물을 바쳐왔고 그건 기업가가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길원택이 처음으로 가요계에 맘을 두었을 때, 진성환은 병원에 줄을 대었다.
모 관료와 모 기업가가 일반인이 쓸 수 없는 대량의 환각제를 빼돌려달라고 요청해왔고, 그 실무를 맡았던 것이 길원택이었다.

그리고 길원택은 대담하게도, 그 일을 맡자마자 진성환과 약속을 잡고 그의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무립니다. 장부를 어떻게 조작한다고 해도 나중에는 들통 날 테..."

 

사실 머릿속에 계획은 다 서 있었다. 그가 맡든 안 맡든 그 부분은 다른 사람이 맡게 될 것이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네. 자네 역시 그걸 모르진 않을테고. 뭔가 원하는 게 있나?"

 

"원하는 거 없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지. 나한테 원하는 게 있으면 나중에 편지나 한장 보내게. 뜻대로 하게 해주지."

 

"하지만 증거는 남습니다."

 

"걱정말게.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그 말을 믿었다. 믿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뒤 며칠 뒤에 그는 아름다운 소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정말 즐거운 목소리였다. 천사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중우야. 저기 꽃 있다.]

 

[아, 저기까지 달리기 시합 하자.]

 

[응.]

 

속살대는 듯한 그 아이들의 목소리가 싫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 남자아이의  부친이 바로 진성환이었다는 것이었다. 진성환은 병문안을 핑계로 움직이지 않는 그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멀었나? 자넨 협박만 할 줄 알았지. 굼벵이로군."

 

"경찰은 언제나 진지합니다. 간단한 장부조작같은 장난에 속아넘어가지 않지요. 더더군다나 결정적으로 지문이 남습니다. 장부조작은 해두겠지만 그 밖의 문제는 어렵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도와주지."

 

진성환은 그렇게 말하고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저,혹시..."

 

"응?"

 

"약속은 아직 유효합니까?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그럼 일 끝나고 나서 나한테 부탁하게나."

 

진성환은 그렇게 거드름을 피우면서 자리를 피했다. 애초에 그에게 지시할 때와는 다른 태도였다.
그리고 얼마 뒤에 병원에서 사고가 생겨서 기술자 중 한명이 염산을 뒤집어 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진성환이 원했던 대로 마취제가 대량 없어졌다.
그건 소녀의 아버지가 수술 날짜를 잡지 못하고 있을 시기의 일이었다.

 

[부탁입니다.]

 

길원택은 머리를 조아렸다.

 

[약속대로...그 환자의 병원비를 내주십시오.. 제발 수술을 빨리 해야 목숨을...]

 

[자넨 너무 느렸어.]

 

진성환이 말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청년이 비꼬았다.

 

[부탁을 하려고 했으면 빨리 했어야지. 더더군다나 우린 거지를 먹여살리고 싶진 않아. 살리고 나면 나중에는 먹고 살게 해달라고 한다고. 찢어지게 가난한 집이던데.]

 

길원택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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