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날도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창문은 늘 그랬듯이 먼지로 더러웠다. 그건 그의 게으름 탓이었지만 방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건 게으름 때문만은 아니었다그는 새가 싫었다. 특히나 그것들의 배설물은 더욱이나!

그는 새가 싫었다. 특히나 그것들의 배설물은 더욱이나!

하지만 정부에서는 언제부턴가 특정 해초류를 먹고 싸는 그것들을 유망자원으로 분류했다. 당연하게도 그 전에는 면허라도 받아서 잡을 수 있었지만 이젠 그것조차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는 당연히 새들에 대한 살인면허가 있었다. 빌어먹을 정부

인권과 조권의 힘중에서 정부는 조권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게 무슨 인간을 위한 정부인가.

그는 부들부들 떨면서 정부에 항의서한을 작성했지만 답변은 불가였다. 별 다른 설명도 없었다.

하여간 그 이후부터 그는 세상에 절망해서 방안에 틀어박혔다.

인터넷으로 모든 것을 사들이고, 전화번호부로 수리공을 호출했다.

청소하는 것만은 직접 했는데 그나마도 창에 새똥을 싸는 그 새들이 건물에 새로운 거주자로 등장하자, 그는 청소하는 것도 어느 정도 포기하기 시작했다.

찌르레기가 지저귀고, 뻐꾸기가 슬프게 우는 계절이 순서대로 왔다가 사라졌다.

그래도 그는 봄의 상쾌한 바람과 여름의 미칠 듯이 푸른 신록을 거부했다.

그에게는 모든 새가 적이었다. 적을 눈앞에 두고 쏘지 못하는 그 격렬한 감정은 그를 침대에서 못 일어나게 만들었다. 가만히 있다고 해서 감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쏘고 싶어도 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빌어먹을 조권 때문에.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결국 창문청소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너무 더러워서 건물의 미관을 해친다는 항의때문이었다. 그는 인터넷으로 세제와 수세미를 여러개 구입한 후 어정쩡한 자세로 창문을 한 개 두 개 닦기 시작했다.

한 손은 방쪽에 두고 발을 창턱에 가로 두고 세제를 미지근한 물에 풀어서 수세미에 적셨다.

그 자세는 결국 자신이 거부했던 세상에 대한 항의처럼 읽히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창문에 잔뜩 눌어붙어 있는 새똥때문이었지, 다른 이유는 없었다.

잠시 기력을 잃은 사이에 그 적들은 엄청난 양의 배설물을 그의 닫힌 창문으로 투척했던 것이다. 그는 분노했지만 억지로 가라앉히면서 천천히 그것들을 닦기 시작했다.

천천히 닦아나가면서 그는 일말의 선의 경지에 도달했다.

왼손으로 다섯 번, 오른손으로 다섯 번, 연인의 등을 쓰다듬는 심정으로 그는 천천히 고동색 격자무늬 나무틀을 닦았다. 엄청난 양의 먼지와 함께 수세미에 뭔가가 묻어 나왔다.

반짝거리는 어떤 것이.

반짝?

그의 신경회로가 잠시 밝은 빛을 내뿜었다.

그것은 황금과 닮아 있었다.

포수로 일했을 당시에 박제취미로 인해서 그와 긴 고객 관계를 유지했던 보석상이 그에게 황금을 식별하는 법을 가르쳐줬던 기억이 잠시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남자는 결국 오래된 연락처를 뒤져 보석상에게 연락을 취했다.

 

 

아쉽게도 황금은 아니네.”

 

그는 낙담했다.

 

하지만.”

 

보석상은 오랫동안의 노련한 장사꾼이었다. 그는 잠시 혀를 말면서 어떡하면 이 불쌍한 남자를 자극하지 않고 보석을 손에 넣을까 한참 생각하다가...

결국 오랫동안의 우정을 위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황금보다 더 좋은 물건이지.”

 

?”

 

자네도 알잖는가. 특정 해초류를 먹은 특정 부류의 새들은 순수한 에너지 자원으로 쓸 수 있는...”

 

“......”

 

남자는 고민에 빠졌다. 그에게 있어서 새란 증오해 마지 않을 종들이었다. 특히나 그 배설물들은.

 

창문을 새로 달아줄테니 저 창을 내게 통째로 넘기게. 어떻게 하다가 저 물건들이 이 창문에만 가득 붙어 있는지 알 수가 없군.”

 

“.....”

 

황금보다 더 나은 물건이라지만 그는 굉장히 낙담했다.

적에게 동정받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의 일생에 새는 증오해마지 않을 존재였고, 박제당해야 마땅할 생물이었다.

그것들이 새끼를 까고, 날아다니면서 자유를 만끽...하고.

그와는 상관없는 일들을 마구마구 자신의 창문 밑에서 벌이고 있다니 생각만 해도 우울해졌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잘못하면 건물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재산을 거의 다 써가고 있었던) 남자를 구제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자네도 창문 청소하기 싫을 거 아닌가.”

 

남자의 마음의 빈틈을 예리하게 읽은 보석상의 말에 그는 항복하고 말았다.

3일 뒤 인력공사에서 그의 창문 8개를 떼어가고 새 창문을 달아주었다.

남자는 다시 방안에 틀어박혀서 창문 닦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 시작했다.

이전처럼 인터넷으로 의식을 해결하고, 증오스러운 새들을 언젠가 쏴버리기 위해서 총을 품에 안고 기름칠을 했다.

물론 그건 꿈에서만 가능할 일이었다. 조권이 신성하게 수호되고 있는 이 나라에서 가능할 턱이 있나. 그렇다고 언제까지 밥을 갖다 차려주시는 저 짐승들에게 증오심을 품는 것도 어려울 듯 싶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1년이 지났다.

보석상은 또 그의 보석을 채취하기 위해서 직접 납셨고, 전에 그랬던 것처럼 창문을 뜯어가고 새창문으로 갈아끼워주었다.

보석상은 남자가 한 곳에 곱게 세워둔 공기총을 보고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포수시절부터 집요하기 짝이 없었던 그 증오심을 아는 터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새들은 그와 보석상에게 한재산을 불려주었다.

이제 남자는 새들에게 생계를 의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는 자살까지 시도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장례비조차 그 새들이 마련해준다고 생각하니 죽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남자는 한가지만을 원했다. 어느 순간, 죽기 직전이라도 좋으니까 저 똥덩어리들을 다 쏴버리고 싶다고. 그게 남자의 마지막 소망이었다.

 

 

그가 세상에 나가지 않는 동안 세상은 많이 변하고 있었다.

물론 인터넷으로도 세상은 알 수 있지만, 그것 외에도 사람들과의 접촉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자료들도 있었다.

그런 모든 것에서 남자는 멀어져 있었다.

어느샌가 남자의 창문은 보물의 집합지로 알려져서 그가 모르는 사이에 어린아이들과 도둑들이 몰래 새똥을 긁어가는 곳이 되었다.

하지만 남자는 거의 대부분을 창문을 닫은 채로 생활했고, 새들과 도둑들은 주로 새벽이나 밤을 이용해서 실례를 했기 때문에 그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어느날 통장계좌에 문제가 있어서 직접 와야 한다는 말을 은행직원에게서 들었다.

그는 인간이 싫어서 은둔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새똥을 피하기 위해서 킬힐을 신고, 모자를 꾹 눌러쓴 채 거의 3년만의 외출을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우스웠던지 은행직원은 웃음을 참느라 애를 써야 했다. 그녀의 스타킹아래쪽에 든 푸른 멍이 그걸 증명했다.

하여간, 은행에서의 에피소드야 나열해서 더 좋을 것도 없겠지만 남자로서는 그 배설물에 닿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던 것이다.

사소한 오류가 있었고, 남자는 계좌의 문제점을 해결한 후 집으로 돌아가 그 빌어먹을 신발을 집어던지고, 모자를 제 자리에 걸었다.

그리고 창문을 무심히 응시하다가 <도둑님>과 눈이 마주쳤다.

도둑은 후다다닥 급하게 창문에서 도망쳤다. 하지만 그는 딱히 기분 상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적어도 자기 손으로 그 똥을 만지지만 않으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조금은 미묘했다.

그건 그의 <재산>이기도 했던 탓이었다. 만지고 즐길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건 그의 재산이었으므로 그는 그것을 지키기로 했다,

그는 총을 잡고 총구를 밖으로 향하게 한 후 창문안쪽에(굉장히 더러웠다.)다음과 같은 문구를 적었다.

 

<새똥을 긁어가지 마시오. 긁어가면 발포하겠음.>

 

그리고 그는 잠자리로 돌아가 꿈을 꿨다.

기관단총으로 창문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아대는 자신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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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인 해안도시라 그런가 단청색깔도 밝고 화려했다. 진중한 맛을 살리는 궁과는 달랐다.

거리에서는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사신에게 올리는 다과도 다담맞은 것이 아주 훌륭했다. 하지만 그것들을 들지는 않았다. 독살의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을 믿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패설사관이었다. 패설사관은 젊은 시절부터 궁을 떠나 이곳저곳을 다니기 때문에 수많은 위험에 처해진다.수많은 패설사관들은 30대부터 줄어들기 시작해서 내 나이인 40대에 이르면 숫자가 적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 대부분의 얼굴이 굳어지고,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왕의 명을 받고 민간과 접촉해야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왕의 신임을 받지 못하고, 민간인들을 적대시하게 된다.

그 모든 것의 원인이 인간을 못 믿는 것에서 시작한다.

나 또한 인간을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적오를 대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들이 나를 죽이려고 든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는 것. 적의 손아귀에 있을 때는 노력이라도 하는 편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이었다.

 

산조인차를 안드시더근요.”

 

잠이 까무룩히 들었을 때 나는 적오의 목소리를 들었다.

 

“......”

 

나는 얼른 일어나 들고 있던 검으로 그녀를 후려치려고 했다. 하지만 몸이 딱딱하게 굳어져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독은 차에만 탈 수 있는 건 아니랍니다. 의원이 하나만 가르쳐주고 다른 하나는 안 가르쳐준 건가 보군요. 무색무취무미의 독은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어요. 인간들이 게을러서 그 과일을 맛보지 못할 뿐이지.”

 

“.....”

 

입술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거울 속의 내가 대답했다.

 

[...도대체 뭐냐. 이번 일에는 왜 개입한 것이냐. 이 패설사관 대리의 죽음도 네가 계획한 것이냐?]

 

제 정체에 대해서 너무 쉽게 알려고 하시는군요. 패설사관 나으리.”

 

그녀가 빙긋이 웃었다.

 

당신네 사람들은 어째서 그렇게 인간이 아닌 자들에게 각박할까요. 내가 인간이 아니라서 인간사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할까요...천사요곡에 대해서 쉬운 답안을 알려드리려 했는데...어렵겠네요. 하긴 답을 알려드려도 또 전서구를 날리는 방식으로 해결하실 모양이지요?”

 

[전서구는 황제폐하께 올라가는 가장 정당한 길이다. 넌 오적에게 못할 짓을 했어. 오적같은 정당한 상속자에게 요마가 깃들게 해서 병을 앓게 했으니...]

 

오적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은 모르시겠죠. 사랑의 방법이 항상 똑같은 건 아니랍니다. 나는 인간들을 사랑해요. 그래서 이번 일도 당신에게 알려드렸지요, 말씀은 전에 안 드렸지만 전 당신도 흠모한답니다.”

 

[요망한 것!]

 

그제서야 내 몸이 움직였다. 내가 검을 들어 후려치자 그녀는 깔깔 웃으면서 나가버렸다.

일어났을 때는 거울만 깨져 있었다. 검을 휘두르는 기세에 거울이 깨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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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시지요.”

 

성주는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나도 예를 표한 후 온 목적을 이야기했다. 왕의 패설사관 대리가 참살당했다는 말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패설사관 대리가 왔다는 말도 저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공문을 못 받으셨다는 말씀이십니까?”

 

참요를 다 들으시는 건 아니시겠지만 요즘 희한한 노래가 돌고 있습니다.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천사요곡이란 노래입니다만. 그 노래는 왕도 부하도 없는 세상을 그려내고 있지요. 요망한 노래입니다.”

 

저는 공문의 수신여부에 대해서 여쭤본 것입니다만.”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적오의 건과 내용이 동일하였다.

혹시 적오가 다시 끼어든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적오는 전서구로 중앙의 압박이 심해지자 사라졌다. 물론 죽은 것은 아니지만, 이미 이 정도 일을 기획하기에는 그녀의 힘이 약했다.

그녀는 물론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종교열을 자극하기에는 그녀의 권력욕이 강했다.

 

그럼 그 천사요곡을 한번 볼 수 있겠습니까?”

 

“...혹자는 그 노래에 마법의 기운이 스며들어 가만히 있는자도 미치게 된다고 합니다. 저도 소문만 들었고, 일부분만 확인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패설사관님께 알려드릴 수가...”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전하의 명을 받들어 온 것입니다. 지금 그대는 전하의 명을 필부의 명으로 여기시는 것입니까?”

 

그 말에 그는 읍했다.

적어도 행동에 실행력은 있어 보였다.

 

좋습니다. 배후에 있는 자를 잡으면 그때는 확인이 되겠지요. 다만...”

 

“...다만?”

 

그 천사요곡을 듣고 미친 자들을 한번 보고 싶군요.”

 

알겠습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한 여자가 방으로 들어섰다. 머리를 여러갈래로 땋아서 윗머리에 붙인 모양이 오랑캐의 머리장식을 보는 듯 했다. 그녀는 성주에게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다구를 내려놓았다.

 

차를 권한다는 것이 늦었습니다. 한잔 드시지요.”

 

. 저는 조사가 끝날 때까지 차는 마시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이라면 독을 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무색무취한 독이 있다면 당하기 쉽겠지만, 그런 독은 아직까지 의원들도 접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차는 다르다. 그 향기와 맛이 독이 섞여도 알 수가 없거니와, 각 지역별로 향미를 가하는 곳도 있어서 독살당할 위험이 있었다. 특히나 이미 적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명을 받들고 간 패설사관이 참살당한 곳이 아니던가.

 

산조인차입니다만, 소화를 돕고 잠이 잘 오게 해주는 약입니다. 여독을 푸시기에 좋은 것 같아서 내어오라했는데...”

 

섭섭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걸 보니 호인 중의 호인이라는 인사평이 크게 틀리지는 않은 듯 했다.

걱정마십시오. 여행에는 익숙한 몸입니다. 늙었지만 아직까지 왕의 패설사관으로 일하는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 말을 믿지 못한다는 투였다.

하여간 그와 3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사신들이 묵는다는 저탞에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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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나는 용안을 뵈었다. 근심이 어린 그 눈동자에는 한숨이 가득하였다.

패설사관의 대리를 하는 중이라 바쁘긴 했지만, 전하의 말씀을 어길 수는 없었다.

해안가의 어느 성에 바다 건너 나라의 종교가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어느 신을 믿는 족속들이었는데 그들에게는 왕도 없고 백성도 없다고 했다.

전하는 내게 밀명을 내리시며 패설사관이 돌아오기 전까지 문제를 해결하라 하셨다.

존안에 나는 무릎을 꿇고 명을 받들었다.

 

-패설사관 대리 이준안-

 

 

그때의 기록이 정확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이준안은 내가 없는 사이에 해안 성곽인 유랑안에 내려갔다가 참살되었다. 왕도 없고 백성도 없는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자들이 왕의 신하를 죽였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일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만큼은 전하께 특별히 말씀드려서 검을 패용하고 내려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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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경과보고 5

 

 

예전에 적오에 악사들이 사라지기 전, 적오는 물이 풍부하고 상업이 융성하던 도시였다.

물론 지금도 융성하고 있긴 하지만, 상업보다는 도박에 의존하는 정도가 더 커지고 있었다.

내가 아는 장안의 귀족들도 적오의 도박장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가산을 탕진했다고들 했다.

나도 예전에 직급이 낮았을 때는 전국을 유리하고 다녔으니, 이곳에 대한 내용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민중에서 내려오는 노래는 대체적으로 희망과 미래예언의 뜻을 담고 있는데, 노래가 현실이 일어난 한참뒤에 나온 노래라도 예언형식으로 만든다. 그것이 바로 참요다.

장안국이 세워지기 전, 수많은 나라들이 생겨났고 합쳐지고 다시 갈라지는 상황속에서 참요는 실생활에 뿌리를 내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악사들이 아무리 많아도 적오에만큼은 참요가 뿌리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단 한번도.

 

그것은 지금 성주의 부친이 대에서 효시를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온후한 제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죽음에 대해서 예언하는 노래는 나오지 않았다.

전대 적오가 죽으면서 현 적오가 대로 불러올려져 현 황제 체제에 대한 충실한 교육을 받고 내려간 것이 불과 8년전.

그에 대한 어떤 노래도 불리워지지 않았다. 다만, 악사들이 부르지 않는 대신, 죽임당할 이유가 없는 적오에 도박을 하러 갔던 이들이 부르는 노래만이 전해져 왔다.

요마가 깃들어 사람의 기를 빼앗는다는 목걸이와 적오의 영주들은 대대로 사람이 아니어서 아무리 목을 쳐도 죽지 않고 살아돌아온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악사들은 어느 누구도 그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좋은 소식인데 왜 찢으시는 겁니까.”

 

 

나는 담담하게 그녀에게 맞섰다.

 

적오는 대답대신 빙그레 웃었다.

 

 

“제가 이 지방에 내려온지 8년이 넘었답니다. 근데 이제 와서 매년마다 제사를 지내러 올라오라고 한다면 이 지방은 누가 다스리지요? 오적에게 맡길까요? 그도 굉장히 바쁜 몸이랍니다.”

 

나는 그녀가 왜 황제의 공문을 찢었는지 생각했다. 단순한 반발행위는 아니다. 반발행위에 불과하다면 지금껏 왔던 신하들을 죽였을 리가 없다. 그렇다. 그건 살인행위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 목걸이가 정말로 그런 힘이 있는 걸까?

 

 

“하여간 오래 가둬놓을 수는 없으니 곧 풀어드리죠. 반가운 얼굴도 보여드릴 겸해서. 내일 잠깐만 묶여 있으세요.”

 

 

그렇게 그녀는 말하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스치듯이 지나가버렸다.

반란행위의 기초를 목격한 내게 저렇게 말한다는 것은 반란 준비가 시작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묶여 있었고, 다른 방법이 주어져 있지 않았다.

 

 

“아, 말 한마디 안했는데.”

 

 

다시 그녀가 돌아왔다. 오적의 모습을 한 채로. 그제서야 나는 회담때 만났던 것이 남자 오적이 아니라 진짜 적오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자유의 시간을 만끽하는것도 오래지는 않을 거에요. 첫째 왜 이 곳에는 노래가 울려퍼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전에 왔던 사신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하여간 맞춰보도록 하세요. 시간을 죽이는데는 아주 좋은 질문들이죠.“

 


사건경과보고 6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말과는 달리 나는 한밤중에 푸대에 담겨 수로에 던져졌다.

푸대에는 쇠공이 매달려 있었고, 나는 수많은 모험 소설에 나오는 장군이 아니었기에 속절없이 강바닥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바닥으로 가라앉으려고 했을 때 그 푸대를 누가 잡고 흔드는 느낌이 났다.

숨이 거의 막히려는 순간, 그 누군가는 쇠공을 자르고 나를 꺼내주었다.

 

 

“수리!”

 

 

나는 그 얼굴을 보자마자 반가움보다는 놀라움이 앞섰다.

 

 

“어떻게 된건가.”

 

 

“저야말로 여쭙고 싶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입니까.”

 

 

며칠전의 수리와 비교하면 인간이 좀 된 것 같았다. 이젠 더 이상 떨지도 않고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같지도 않았다.

 

 

“자네가 날 꺼내줬나?”

 

 

“아니오? 저는 약간 찢어져 있는 푸대 사이로 사관님 얼굴이 보여서 다 찢어드린 것 뿐인데요.”

 

 

“누가 날 위로 끌어올렸는지 아나?”

 

 

“어머니가요.”

 

 

어머니? 장안국에서 물에서 그런 별명으로 불리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인어.

인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젖먹이는 모습이 인간과 흡사해서 붙은 별명일 뿐이었다.

 

 

“어머니가 저도 끌어올려다주셨습니다. 그때는 진짜 죽는 줄 알았는데 말이죠.”

 

 

패설사관으로 있으면서 단 한번도 내가 채록하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아련한 이야기일뿐, 전설일뿐. 날조된 기록일뿐.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아니었다.

 

 

“인어...가 말인가?”

 

 

“사람처럼 노래도 부른다더군요.”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전설에서 인어는 악사들의 어머니였다.

별로 좋은 의미의 어머니는 아니었지만.

전설에 따르면 인어는 본래 인간을 사랑해 결혼했다고 한다.

그 자식은 악사가 되었는데,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지울 수 없었던 인어는 지상을 떠나면서 악사들을 모두 자신의 자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그래서 노래부르는 사람은...앗!

 

 

“이제 알았다.”

 

 

나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신들이 공문을 전달하지 못했던 건 인어를 이용한 수법이었다. 노래를 부르기만 하면 인어는 그것이 어느 배건 가리지 않고 덮쳐서 노래를 부르는 인간들이나 그 외의 인간들까지 물속으로 끌고 들어갔던 것이었다.

공문은 틀림없이 그녀의 손으로 들어갔었을 테고. 그녀는 풍부한 수공예품과 쏟아져들어오는 돈들을 이용해 반란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네, 군에 있을 때 보직이 뭐였나?”

 

 

내 말에 수리가 머리를 긁적였다.

 

 

“지금은 개인적으로만 사용하지만 최근까지 전서구 담당이었습니다.”

 

 

“자네 비둘기도 배를 탔었나?”

 

 

“네.”

 

 

“그럼 부근에 있겠군.”

 

 

“아?”

 

 

“내가 부르는 걸 그대로 받아적어서 날려보내게.”

 

 

“알겠습니다.”

 

 

 

 

사건경과보고 7

 

 

 

전서구를 날려보내고 나서 나는 수리에게 물었다.

 

 

“혹시 전에 봤던 괴물 말인데...”

 

 

“예.”

 

 

수리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괴물에 대한 충격에서는 벗어났으나 여전히 동료의 죽음은 괴로운 모양이었다.

 

 

“혹시 삼켰다는 보석이 주황색 아니었나?”

 

 

“아닙니다.진홍색이었어요.

그 괴물이 영감님을 잡아먹고는 제 앞에서 영감님 모습으로 변했죠,,,그 보석을 먹고는...“

 

 

울분을 못 참는 표정이 된 수리를 보자 확신이 들었다.

이 성의 주인은 그 여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 여자도 아닌지도 몰랐다.

패설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었다.

 

 

[인간의 정기를 뽑아먹고 사는 요괴가 어떤 보석을 하나 손에 넣었다. 인간의 기를 빨아내거나 뱉어내는 보석으로 인간에게 먹이거나 목에 걸게 하거나, 역으로 요괴가 그것을 가지게 되면 원 인간의 능력과 외모를 가지게 된다.고...하지만 기존에 정해진 성별은 바꿀 수 없다.]

 

 

“전서구 이 동네에 남아있는 게 있다면 다 구해오게.”

 

 

난 수리의 등을 탁 쳤다.

 

 

“자네 덕분에 모든 게 풀렸어.이제 남은 건 진실을 알리는 것 뿐일세. 아무리 선정을 베풀어도, 지방재정을 융성하게 만들어도 올바른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지배자가 된 자는 자격이 없어. 그것이 인간이 아니기에 더욱! 거기서 더 나아가 옳은 방법이 아닌 폭력으로 지배하고 정복까지 하려는 것은!”

 

 

사건 경과 보고 8

 

 

그리하여 적은 진짜 적오가 되었다.

두 마리의 요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이 공문을 정식으로 전달받은 진짜 적오는 제후들의 제사에 참가해 황제를 배알하였다. 그는 더 이상 광기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 주민들도 노래부르는 것을 방해받지 않는다.

지금 적오는 평화로운 노랫소리로 가득하다.

이 이야기는 패설장에 한 줄 더 늘여서 기록한다.

후에 그들과 더 부딪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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