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 신부가 맞절을 하면 꽃이 피어난다.

나무에서 꽃이 피면 신랑 신부는 자리를 떠나 긴 여행을 떠난다.

그것을 신혼여행이라 부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실은 성인식의 일종이다.

그들은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서 긴 모험을 떠난다.

남자는 긴 칼을, 여자는 석궁을 들고 여행을 떠나

긴 여행동안 자신들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제압하고, 혹은 공격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꽃이 피어날 때쯤 되면 신랑과 신부는 돌아온다.

전리품, 혹은 부상과 함께.

그리고 돌아와 다시 서로 맞절을 한다. 그리고 꽃이 피어난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두 사람이 진정한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하고

꽃한송이를 신랑과 신부의 머리에 나눠서 꽂아준다.

그것이 이땅의 한 소수민족의 이야기이다.

나는 꽃 한송이 꽂아줄 여인도 없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항상 많은 민족들의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는 구석이 있다. 이젠 꽃을 꽂아주는 풍습도 여러군데로 퍼져서 어느 민족이 첫 시작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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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한다. 그 옆에 누가 있어도 상관없다. 상어가 같이 달린다. 복숭아가 같이 달린다. 심지어 좀비가 같이 달린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 때로는 붉은 어릿광대가 제 머리를 축구공 차듯이 차도 무슨 상관인가. 내가 내 삶의 순간을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달리기는 어느 시간이라도 상관없다. 아침이라도, 점심이라도. 심지어 맥도널드 햄버거를 들고 달린다고 해도. 소스를 질질 흘리면서 달린다고 해도. 저녁에 먹은 스테이크를 같이 먹은 맥주와 함께 게워내고 달린다고 해도.

해는 항상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 동쪽에서 달려 서쪽에서 마라톤을 끝낸다고 해도.

서쪽에서 달려 중간에 쥐가 나서 멈춘다 해도. 내가 달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당신은 달리기를 좋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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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이제 다깼는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미축의 얼굴이 보였다. 근심이라기엔 다소 밝은 그 얼굴에 잠시 궁금증이 생겼다.

 

대리는?”

 

대리답게 자네를 잘 짊어지고 왔더군. 그리고 이것도.”

 

미축이 두루마기 하나를 펼쳐보였다.

 

자네가 잃어버린 것이라고 그 친구가 말한 것인데, 그 독을 먹은 건 이야기 안하더군.”

 

?”

 

그 얼굴의 비밀이 잠시 풀렸다.

 

그 독을 먹인 것만으로도 자넨 패설사관직을 내놓아야 했었네만은...”

 

잠깐. 올해 황산 안 갔었나?”

 

그게 중요한가? 왕국의 패설사관이여.”

 

갑자기 격을 붙여 이야기하는 통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화미인의 초상화네. 자네의 그 유치한 계획을 패설사관부에서 알고 있었다네. 하지만 자네는 왕국의 패설사관을 할 정도로 유능한 자. 그래서 덫을 친거라더군.”

 

내가 급하게 두루마기를 풀자 그 안에서 눈부시게 아름답지 않은 화미인의 초상이 나타났다.

여기저기 기워진 자국이 있고, 낙서도 되어 있는 그 그림은 누가봐도 화미인의 것이 아니라고 할 터였다. 하지만...

 

진품이로군.”

 

궁중에 있던 물건이니까.”

 

미축은 가만히 앉아서 내 얼굴을 살폈다.

 

전에 듣자하니 왕실 패설사관에게 자리를 물려받을 때 꼭 패설사관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했었지...근데 이 꼴인가. 고급 관리가 도둑질이라니...”

 

그게 도둑질이라고? 우라질! 황금만 썩어빠지게 있는 자들이 가끔 놀이삼아 찾는 귀한 유물들을 내가 미리 찾아서 간수하는게 뭐가 나쁘다는 건가. 내가 패설사관이 된 이유가 너같은 놈하고 똑같을 리가 없지. 그 이유는 너같은 흔한 사내가 알만한 이유가 아냐.”

 

그럴 줄 알았지.”

 

패설사관 미축은 혀를 쯧 찼다.

 

화미인 초상화는 결국 잃어버린 게 아니었군.”

 

잃어버릴 리 있나. 황제국의 조상 중 한명인데. 소금기둥 이야기는, 지배자의 쉬운 굴종에 의해서 노예가 된 자들이 꾸며낸 이야기지.”

 

근데 그 초상화 잘도 반출시켰군. 일어경에서 나온 말도 짜깁기 한건가. 흔한 사내라는 말 취소하네. 흔하진 않군.”

 

칭찬이 과분하군. 난 아니니까 칭찬할 필욘 없네.”

 

근데 황제국의 조상이라니...왕실 패설사관부에는 없는 도서인데...”

 

이야기는 벌써 붉은 까마귀에게 들었을텐데...”

 

미축이 말을 흐렸다.

 

“...자네도 붉은 까마귀를 아나?”

 

자네가 도적떼를 끌고 다녔던 건 적오에게 들었네. 적오도 이름자를 풀이하면 붉은 까마귀지. 적오가 적당히 손을 써서 도적떼들을 합당한 처분을 해놓았다고 하더군.”

 

그건 요물이잖나. 항상 붙잡고 벌을 주고, 도움은 안 받는다고 하지 않았나! 비겁하게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지 않고 요물의 힘을 빌리다니!”

자네덕분에 고향을 찾게 되었다더구만.”

 

적오 이야기를 살짝 매듭지으면서 미축은 미소를 지었다.

 

요물이지만, 자네같은 지능범을 잡을 때는 도움도 받아야지. 더더군다나 자네를 잡은 건 적오가 아니니까.”

 

뭐라고!”

 

적오는 그녀처럼 나이가 많지 않다네. 아마 어미를 찾게 된 모양이야.”

 

“.....”

 

흐뭇해하는군. 황산에 가지도 않고, 그 요물년에게 단단히 홀린 모양이지.”

 

“...뭐라 말하든 좋다네. 난 황실의 패설사관이니까.”

 

영혼을 잃은 장교는 어찌 되었나. 영혼을 빨아들이는 돌을 가지고 있다는 적오가 데리고 있지 않았나? 근데 분명히 붉은 까마귀가 그 사내를 데리고 있던데...”

 

그는 여전히 적오와 함께 있다네. 영혼을 돌려달라 했지만 번번히 거절당했네만... 아마 어미가 맞긴 한 모양이지. 적오의 모습을 하고, 그 비슷한 종자를 데리고 다니는 걸 보면...”

 

그래, 대충 상황 돌아가는 건 알았고. 내 처분은?”

 

“...왕께서 처분을 내리시길 기다려야지. 아니면...”

 

미축은 흘깃 침상 저편을 쳐다보았다. 사락거리는 비단천 소리와 함께 옥음이 들려왔다.

 

왕실을 기망하고, 왕실의 물품을 몰래 보관한 죄 위중하나. 패설사관의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왕비였다.

 

강등하여 왕실 비밀 박물관장이 되게 하라는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후후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단지 지금부터 그대는 세상에 없는 남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 아우들은.”

 

처음으로 왕비에게 반말을 했다. 빈정대곤 했지만 반말은 한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반말을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진심이 담긴, 애절한 한마디였다.

 

목을 베어 햇볕이 쪼이는 곳에 두었지요. 왕과 왕비는 바보일지는 모르지만, 비위를 거스리는 자를 못 알아보진 않는답니다. 그대의 팔을 자르지 않고 그대 팔 노릇 하는 자들을 없앴으니 앞으로는 순순히 박물관을 지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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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은 그 명이 짧다. 명장 또한 그 명이 짧다. 미인이나 명장은 왕이 아끼지만, 자기 자신의 만족만을 찾기 때문에 미인은 정치놀음에 희생되고, 명장은 두 번 다시 같은 물건을 찾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죽음을 당하게 된다.

나는 손가락으로 새로 들어온 도자기를 매만졌다. 흠결없이 매끄러운 도자기를 나는 손으로 내리쳐 깨버렸다.

 

나으리.”

 

명장이 아니라 특장이라는 명을 받아도 아깝지 않을 젊은이가 겁에 질린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이번에도 형편이 없는겝니까?”

 

“......”

 

패설사관은 수많은 정치와 민초들을 본다. 그 와중에 사그라져가는 역사를 본다. 하지만 나는 그 사건 이후 왕실에 갇혀 왕실에 어울리는 호사스러운 도자기들을 수집한다.

화려한 물건들, 잔인하고 인정사정없는 왕실에 어울리는 물건들을.

 

자넨, 다음주까지 멀리 떠나게.”

 

내 말에 그가 눈알을 굴레굴레 굴렸다,

 

어디로 가란 말씀이신지...”

 

납품받을 건 없네. 자넨 이대로도 장인이니, 멀리 가서 살게나. 자네 솜씨 정도면 먹고 살만할게야.”

 

화미인이 살아남았던 것은 소금기둥이 되어서가 아니라, 왕보다 더한 권력에게 의탁했기 때문이다. 영웅왕은 왕이었지만 원래 신분은 상인이었다.

그런 자가 소금기둥이라는 민담에 힘을 실어주었던 것은 그가 왕으로서 역시 살아남기 위해서 황제국에 무릎을 굽혔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던 것때문이었다.

그래서 왕실에는 없고 황제국 패설사관부에는 있었던 것이다.

받는 대접이란 바로 그림에 낙서나 그려져 있는 것이었다.

 

먹고 살만하면 그대로 만족하느냐?”

 

어느새 목소리가 바뀌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먹고 사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소. 하지만 형제들을 희생시키고 살았으니...”

 

“...영혼이 없는 자로 살겠구나.”

 

적오의 긴 머리칼이 내 어깨를 스쳤다.

요물이라고 욕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애초에 내게 이 길을 열어주었던 것은 그녀였으니까.

 

가자꾸나. 작은 아이야. 아직 더 넓은 세상을 보아야 할 의무가 네겐 있단다.”

 

그녀의 손을 나는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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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멀리로 퍼지고

현실은 말라붙어 있다.

태어나 반복만을 계속하는 우리는

과연 처먹는 동물에 불과한가.

흐린 하늘아래

울부짖는 자는

아직도 내 앞에 길이 있다.

외치는데.

 

 

아직도 머나 먼 남은 길.

연기처럼 사라져가는 그 꿈의 마지막을

붙들고 우는 자도 있다.

 

 

길이 있노라고

외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적어도 볼 수 있기에.

 

 

보지 못하는 눈으로 더듬 더듬 나아가자

아직 길이 있는지 모르나

외치는 자는 못되더라도

걸어가는 자는 될 수 있으리.

 

 

이 길이 그대에게 힘든가.

누가 묻는다면

대답은 유보하리.

 

 

하지만 가야할 길이라는 것은.

세상 모든 이가 가야할 길이라는 것은

이미 정해져있으니.

울면서, 혹은 외치면서, 눈을 감고

걸어가야 하리라.

 

처먹는 동물이 되어도 좋다.

갈 수 만 있다면

이 인생의 끝까지 걸어갈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내 인생은 결정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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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쓰면서 들은 노래는 뮤지컬 영웅 류정한 버전의 곡이었습니다.

정성화 버전으로도 들었죠...

그런데 류정한 버전으로 들으니 확 깨이는 느낌이

 들어서요..

그 음악의 영향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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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림은...”

 

내 안목에 여주인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손을 흔들어보였다.

 

옛날 이곳을 다스리던 여자라는 사람의 그림이랍니다.”

 

옛날 이곳을 다스렸다면 화미인?”

 

털보의 말에 여주인은 비웃었다.

 

이 땅을 다스리던 사람이 그 여자 하나뿐인줄 아십니까?”

 

하긴 그 이전에도 이 땅은 존재했을 터이니.”

 

나는 그 그림에서 화미인을 느끼진 못했다. 하지만 귀한 그림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다만 인정을 받지 못할 뿐, 그 그림은 명화였다.

 

그 고귀하신 분의 이름을 자네는 아는가?”

 

남주인에게 묻자 남주인이 턱을 덜덜 떨면서 대답했다.

 

“...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지요. 붉은 까마귀라고...”

 

붉은 까마귀라? 형님은 아십니까?”

 

동생들의 물음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붉은 까마귀...붉은 까마귀...

 

제가 한가지 여쭤봐도 좋을까요?”

 

여주인이 종이 하나를 꺼내서 내게 건네주었다.

 

어르신은 단순한 상인같아 보이지 않으시니 건네드리는 것입니다. 아니오 정체를 숨기시려 해도 소용없습니다.”

 

아니...나는...”

 

이것은 화미인을 그린 마지막 그림이라고 전해져옵니다.”

 

여주인이 조용히 말했다.

 

감정가가 정해지지 않아, 시중에 내놓을 수 없었답니다.”

 

“.....”

 

복이 굴러들어왔다고 생각했지만 뒤이어 여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감정가만 정해진다면 이걸 궁에 올려 일평생 호사스럽게 살려 한답니다.”

“...내가 가짜라고 한다면?”

 

어르신은 그럴 분이 아니실거라 믿습니다. 이 그림은 진품입니다.”

나는 그림을 펼쳤다.방금 그림을 그린 듯 상쾌한 묵향이 번져왔다.

화미인을 그린 그 그림은 방금 붉은 까마귀의 그림을 보다 보면 생동감은 더 있었지만 한 지역을 다스리던 사람으로서의 품위는 없었다. 확실히 아름답기는 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형님, 이거 진짭니까?”

 

형님, 답 좀 해주시지요. 답답합니다.”

 

나는 번개를 맞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얼굴은 분명히...

여주인의 얼굴이...

 

이 그림은 진품이다.”

 

나는 여주인에게 그림을 내밀었다.

 

확실히 궁중에 내놓으면 비싼 값을 받을 것이다.”

 

“.....”

 

허나 그 이전에.”

 

이전에?”

 

점점 이전에 봤던 그 여인의 얼굴로 여주인의 얼굴이 변해갔다.

 

[도적질을 하다 붙잡혔으니 어쪄겠느냐. 내 너를 물에 빠뜨려 죽일 수도 있느니라. 앞으로 도적질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면 널 좋은 곳에 보내주마. 부모를 잘 만났더라면 너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궁에서 이것을 진품으로 여기느냐 여기지 않느냐가 관건이겠지. 나라면 지금 내게 은 800냥을 주고 넘기겠다.”

 

과연...약속을 지키셨군요.”

 

그 말과 동시에 동생들의 얼굴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매운탕도, 두부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우리는 입에 모래를 가득 물고 바닥으로 추락해갔다.

 

약속을 잘 지켰구나. 소년이여. 허나 이제껏 그 자리에 앉으면서 해온 자잘한 도둑질은 봐줄 수 없느니라. 마지막 시험은 잘 지켰으니 이 곳에 버려두고 가는 것으로 벌을 정해두겠다.

널 구해줄 사람이 있을때까지 너는 이곳에 있어야 한다. 독주를 먹인 패설사관 대리가 널 구해줄 것이니라.“

 

안돼...난 입에서 모래를 토하면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뻘은 여전히 내 발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안된다...안돼...

 

저 먼 시선 둔 곳에 그 여주인이 남주인이 끌고 온 말에 올라타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저 남주인은 바로 얼마 전에 영혼을 잃은 무사라고 알려진 자가 아니었던가. 이름만 듣고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어서 알지 못했다.

이런...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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