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이 식습관을 바꾸지 않을 수 있다. 분명 식품 시스템의 산업화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의 뇌를 우리의 몸과 단절시켜놓았고, 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 사고할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이 일이 조금 더 어렵게 돌아가기를 원한다면 어떨까?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하고, 기록하고, 느끼고, 보기를 원한다면 어떨까?
내가 하려는 일을 적법하게 인정해주는 허가증 같은 걸 발급해줄 수는 없을까? 당신이 하려고 하는 일에 대한 허가증은 없어요. 이들이 말했다. 나는 이 말에 전율을 느꼈다.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온갖 합당한 방식으로 저항적이라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헛기침을 하고, 체중을 이쪽 발에서 저쪽 발로 옮겨 싣고, 손가락 관절을 꺾었다. "그런데, 음, 위스키 좋아해요? 좋아하게 생겼는데. 언제 내가 위스키 한번 살게요. 당신의 그 고기 학교에 대한 얘기 좀 해줘요."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지금 내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건가? 내게 추파를 던지는 건가?
나는 오하이오에 있는 여자가 대부분인 작은 인문대학을 다니던 시절 이후로는 여자와 연애 같은 걸 해본 적이 없었다. 대학시절 어느 날 밤 파티에서 줄스라는 이름의 한 무례하고 목소리 큰 레즈비언과 여섯 개들이 라바트 맥주를 함께 마셨는데, 그녀는 내가 "캠퍼스에서 제일 인기 많은 이성애자 레즈비언"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정육용 종이를 조금 찢어서 전화번호를 적었다. "내 이름은 조엘이에요. 그렇지만 당신은 그냥 조라고 불러도 돼요." 이렇게 말하면서 눈을 찡긋했다. "전화한다고 약속할 거죠?" 그녀가 말했다. "약속해요." "우리 같은 여자들은 같이 뭉쳐야 되거든요. 게다가 난 당신의 그 고기 학교에 도움을 주고 싶어요."
남자가 프랑스에 도축을 배우러 갔다 왔다면 절대로 이런 식으로 입방아에 오르지 않았으리라고 확신한다. 이런 표현들 밑에서 나는 나처럼 생긴 여자(그게 어떤 의미건 간에)가 도축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의구심을 감지했다. 물론 나는 도축사가 아니었고 아직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도축사가 되고 싶은 야망이 있었고, 섹시한 도축사와 잠자리의 날카로운 칼에 대한 온갖 농담 속에서 바로 그 야망이 문제라는 걸 느꼈다.
만일 우리가 고기를 먹는다고 할 경우, 어떻게 잘 먹을수 있을까?" 내가 이 질문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바로 그것이 복잡했기 때문이었고, 육식에 대한 논의에 너무나도 자주 따라오는 독단적인 사고에 본질적으로 도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 일을 할만한 적임자인지는 자신이 없었지만 그 질문에 답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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