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디 프로젝트 - 깨발랄 인도계 미국인 코미디언 민디의 할리우드 물들이기 대작전 코믹 릴리프 4
민디 캘링 지음, 김민희 옮김 / 책덕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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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디 케일링의 최근작을 되짚어 보자면, <레이트 나잇>, <챔피언스>, <오션스 8>, <인사이드 아웃>, <민디 프로젝트> 정도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민디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에세이 《민디 프로젝트》는 이 모든 필모그래피에 앞서 새겨진 이력이다. 원제 IS EVERYTHING HANGING OUT WITH ME? AND OTHER CONCERNS ('혹시 다들 나만 빼고 노는 게 아닐까?'를 비롯한 여러가지 걱정)처럼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있다.

배우로서 그가 맡아온 캐릭터는 <오피스>의 캘리 카푸어로 대표되는 경쾌하고 시원시원한 성정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그에 비하면 《민디 프로젝트》에서 내밀하게 들려주는 민디의 이야기는 이러한 이미지와는 다소 상반된다. 이는 알고나면 그다지 놀라울 일도 아니건만 나는 그의 지나온 삶 이야기를 읽으며 의외의 친밀감과 편안함을 느꼈다.

2011년 이후 민디 케일링이 부지런히 쌓아온 커리어가 녹아들어 있을, 다음 저서 《WHY NOT ME?, 2015》도 코믹릴리프 시리즈로 번역 출간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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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
닐 셔스터먼.재러드 셔스터먼 지음, 이민희 옮김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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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기반한 이야기다. 어느 날 식수가 마르고, 정부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이동을 막는다.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무시하고 각개전투로 알아서 생존해야 하는 삶은 21세기 우리들에게 더 이상 픽션 속에만 머무는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닐 셔스터먼의 《드라이》는 굳이 장르 구분을 하자면 'Young Adult' 줄여서 주로 YA로 불리는 장르에 속한다. 이 속에서는 물리적 연령을 잣대로 청소년 층의 분별력을 단정짓는 대신 그들을 조금 어린 성인이라 칭한다. 런던의 대표적 서점 체인인 '워터스톤즈'에서도 YA 코너가 굉장히 크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걸 본 일이 있다. YA 장르 소설 작품들이 다양한 연령층에게 나날이 더 큰 사랑을 받게 되면서 그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는 가운데, YA 장르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딱 하나 꼽자면, 나는 '메시지'라고 말하고 싶다.

아직 가치관이 명확히 자리 잡지 않은 청소년 독자들에게, 먼저 살아본 경험을 통해 얻은 통찰력을 다양한 이야기 속에 잘 녹여 전하는 일이 이 YA 장르 작가들이 가져야 할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명이라 느낀다(물론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뭐 그리 대단한 통찰을 절로 얻게 되는 것도 아니니 모든 독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가 하면 《드라이》는 등장인물과 그들이 처한 사건을 단순화하거나 미화하는 대신 독자가 그 속으로 훅 빨려들어 몰입할 수 있도록 이야기 속 세계를 탁월하고 실감나게 그렸다. 예상을 깨는 신선한 사건이 연이어 시간차를 두고 벌어지는 가운데 그 속에 정성껏 불어넣은 적절한 핍진성을 통해 작품이 탄탄한 이야기로 완성됐다는 인상이다.

모든 것이 끝나고 다시 돌아온 익숙한 일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에는 한꺼풀 새로운 렌즈가 덧씌워지게 된다. 그 속에 살던 때에는 견고하게만 느껴지던 일상이 불시에 깨져버리고,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는 이 최초 붕괴의 순간은 아찔할 정도지만, 그 잔해를 딛고 서 바라보는 세상은 이제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이런 삶 속의 시련을, 우연히 꾸게 되는 묘연한 꿈처럼 이런 좋은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게 이 작품 《드라이》, 더 나아가 YA 장르 소설 전체의 의의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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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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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전체를 아우르는 감상을 적고 싶었는데 그건 내 역량 바깥의 일인 것 같아 단편별로 따로 남기게 되었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어쩌면 일상의 균열을 맞닥뜨린 사람들만이 세계의 진실을 뒤쫓게 되는 걸까?

이 세계가 어떤 비범한 한 사람의 시행착오에 의해 완전히 다른 곳으로 거듭났다는 설정은 그 비현실성 탓에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인류의 삶이란 생각보다 그리 논리적이지도 합당한 인과에 근거하지도 않음을 느낄 때면 스스로가 조금은 어른이 되었다는 착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내게 진짜로 주어진 고민도 아닌데 '마을'과 '시초지' 중 어느 한 곳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마을에서 누릴 안온한 행복을 열망하게 되면서도, 한편으론 시초지 조상으로서(?) 정제된 행복이 갖는 한계가 어느 정도 짐작 가능하므로 두 곳의 존재 모두를 알면서도 마을로 떠나기란 결코 자명한 선택의 문제는 아니리라 믿는다. 우리는 '다름'을 밀어내면서도 동시에 거기에 이상하게 끌리기도 한다. 최근 전기가오리를 통해 읽은 텍스트에서 배운 '과오없는 불일치'라는 개념을 생각해보게 됐다. 내가 이해한 대로라면 철학이라는 학문 안에서 이 개념은 엄밀히 말하자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 예시로 '마을'과 '시초지'가 주어진다면 나는 둘 중 어느 쪽이 '참'인지 고르지 못할 것 같다. 애초에 이 의문이 실재의 영역 바깥에 놓여있다는 한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은 너무 내밀한 내부에 놓인 문제이기 때문일지도. 표제작도 아닌데 가장 먼저 읽은 탓인지 이 단편에 대한 인상이 이 단편집 자체에 대한 인상으로 남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미온수로 꼼꼼하게 세수한 후 점차 피부가 식어가며 느끼는 묘한 개운함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내 머릿속을 딱 그렇게 씻어내고 싶다는 열망까지 함께 담아서.

"스펙트럼"

언어는 개체의 세계를 형성한다. 평생 한국어를 쓰다가 영어가 주 언어인 곳으로 잠시 이주했을 때 느낀 자유는 때론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함을 이겼다. 영화 <콘택트>나 테드 창의 원작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이를 초월하는 감정을 느낀다. 내가 감각하지 못하는 우주의 질서에 조금 더 가까이 가 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주는 설렘, 그리고 때론 우리가 알지 못하고 어쩌면 영원히 미지로 남을 '어떠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받을 때가 있다. 내가 그저 우주의 먼지일 뿐이며 그러니 내 눈앞에 닥친 시련 역시 그리 대단치도 않은 사건이고 그러니, 멋대로 살다 멋대로 가도 괜찮다는 결론이 주는 위안. 그런 생각에 도달하고나서야 일상에 숨긴 경이와 아름다움이 빼꼼 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공생 가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그건 상식이지." 같은 말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럴 수 있을 만큼은 그래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본 것 같다. 상호 공통으로 인지하고 있는 정보 혹은 통념, 같은 비교적 단단한 틀에 갇힌 생각을 무너뜨리고 그 공간을 넓히는 게 인간이 시간을 먹으며 생을 유지하는 유일한 의의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나 혼자만이 온전히 품고 살아야 하는 기억이라는 (일종의) 착각은 때론 서글프지만 가끔은 우리를 좀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류드밀라 마르코프에게 '행성' 역시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 리뷰를 쓰기 직전에 영화 <해리엇>을 본 게 문득 절묘한 우연처럼 느껴진다. 인위적인 길이 만들어지기 전 '길'이란 건 사람들이 꾹꾹 밟아누른 발자국이 쌓여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러한 길의 시대를 지나 이제 우리는 '만들어진 길' 위만을 걷는다. 가고 싶은 목적지를 정하면 그 경로는 잘 닦인 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나 철로 위 기차, 선박과 항공편, 인간의 여정은 이러한 노선에 의해 재구성된다. 바야흐로 자릿수가 달라져버린 2020년, 이제야 되묻게 된다. 우리는 언제부터 '노선'이 존재하지 않는 여정을 꿈꾸지 않게 되었을까? 영화 <해리엇>은 두 발로 자신의 여정을 밟아 만들어간 흑인 노예 해방 운동가이자 본인 역시 힘겨운 노예의 삶을 탈출해 자유를 찾아나선 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의 실제 여정을 그린 이야기다. 해리엇은 노선 없는 길 위에 서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다른 노예들의 자유를 찾아주기 위해 나중에는 캐나다 국경까지 몇 백 마일 거리를 쉼없이 걸었다. 이젠 거의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과거지만 당시에도 도보보다 따른 마차와 기차가 있었다. 다만 '자유'라는 도착지를 향하는 노선이 거기에 존재하지 않았을뿐.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안나가 그랬듯, 해리엇 역시 자신이 가야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었으니까.

오래전 우리가 처음 배운 길의 본질에 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길이 있기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갈지 그 목적지를 혹은 자신의 힘으로 노선을 만들어간 여성들의 이름이 여럿 머릿속을 스치운다. 노선이 없거나 아주 많이 돌아가더라도 개의치 않고 꾸준히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었던 힘의 일부는 그들이 겪은 불편함에 기인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새로이 생겨나 단단히 닦여나갈 길들의 존재에 벌써부터 마음이 벅차오른다. 설령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 해도, 우리는 계속 길을 만들어갈 것이다. 속도는 언제나 방향을 앞서지 못한다. 중요한 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일 것이다.

"감정의 물성"

인간 감정의 물성을 이제서야 의식적으로 고찰해보게 된 것이 오히려 조금 놀랍다. 이런 종류의 물성을 떠올리면 나는 어딘지 진득진득한 감촉을 떠올리게 된다. 순전히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깔끔하게 떼어내지지 않아 마지막 순간에도 찝찝한 흔적으로 남는 스티커 접착면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이러한 감정이 유의미한 데이터로 정제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인간이 그다지 논리와 결부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라 주장하고 싶다. 혹시, 차라리 완전한 비논리적 잣대(라는 게 있다면)에서 바라본다면 우리의 정신적 내부를 더 투명하고 정연하게 밝혀낼 수 있게 되는 건 아닐까? 어째서 누군가는 이모셔널 솔리드 같은 제품을 사들이고, 또 누군가는 이 소설을 읽으며, 또 누군가는 이러한 리뷰를 중언부언하며 써내려가고 있는지도.

"관내분실"

처음 컴퓨터의 개념을 배울 땐(나는 그 개념을 배운다는 일종의 유행 같은 게 돌 때 학교를 다녔다) 모든 게 새로웠다. 억지로 외워야할 것도 많았다. 이후 나는 이런저런 우연으로 대학에 진학하면서도 계속해서 컴퓨터 과학을 배웠고, 몇 년 더 관련 직종에서 근무했다. 그걸 지금에와서 다시 돌아보면 이런 신기술 및 그 기반이 되는 체계는 전부 생각보다 인간적이다. 애초에 (어떤 우연에 의해) 인간이 고안해낸 개념인 탓일 것이다. 인덱스 분실은 알고 보면 이 인간세계에서 생각보다 왕왕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다만 그 분실의 대상은 고립되어 자신의 상태를 알아채지 못하고, 나머지 인간들은 그 분실의 대상이란 존재 자체를 우선 잊게 되는데, 실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의 수 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기가 쉽다. 마치 숫자 0이 다른 숫자들보다 한참이나 더 늦게 발견된 것과 비슷한 이치다. '없음'이 실제론 '없기 때문에 있음'이란 데이터값을 갖는다는 건 간과하기 쉬운 사실이다. 이 부재를 알아차리게 되고 나서야 우리는 '마인드'의 존재 의의를 감응할 수 있게 된다.

컴퓨터라는 장치가 생각보다 인간적이라는 점에서 이타보다 이기에 가깝다면, 이 마인드는 그럴싸하게 이타를 흉내내는 방식으로 개인을 위로한다는 점에서 이기적이다. 사실 모든 문명의 이기란, 인간의 이기주의에 그 근원을 빚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타주의마저도, 스스로를 이렇게나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혹은 그러려고 노력하는) 인간이라 느끼는 그 감정이 보상으로 전해지는 일종의 이기주의인지도. 이해한다는 행위를 때론 단순히 '이해한다는 감정을 느낀다'고만 한정하게 되는 건 그게 한 개인의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통제를 벗어난 바깥으로 필연적으로 이어져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아마 제목 때문에라도 표제작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되어야 했겠지만(?), 아무런 이유를 대지 않고 그냥 여기 실린 단편 중 딱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를 고르고 싶다(가장 좋아하는 걸 꼽으라면 가장 첫번째 단편을 대겠지만). 동화의 주 타깃 연령층에서 꾸준히 멀어져가고 있는 가운데 나는 이게 왠지 모르게 아주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샬럿의 거미줄》 같은 그런 동화. '어릴 때 이런 걸 좋아했지' 회상하는 대신, 나도 이런 걸 읽으며 자랐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미묘한 아쉬움을 남겨주는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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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번역가
임윤 지음 / 지옥탈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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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쩌다'를 영어로 번역한다면 아마 It happened to be…, 정도의 뉘앙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저자의 이 '어쩌다'는 사실은 저자에게 찾아온 기회 자체에만 한정할 수 있는 표현이다. 어쩌다보니 전업으로 번역을 하게 된 한 사람의 이후 과정은 누구보다 목적 지향적이면서 철저히 실천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니 책 제목의 '어쩌다'는 차라리 겸손한 너스레에 가깝다.


예약구매로 한참 전에 받은 택배를 집에 돌아와서야 열어보았다. 이런 표현은 좀 웃기지만, 저자는 한국 산업번역계의 선구자 같은 존재다. 나 역시도 저자 덕분에 산업번역이 뭔지를 구체적으로 배웠다. 나는 출판번역-영상번역-산업번역에 다 애매하게 조금씩 발을 담가보았는데 저자가 책에서도 소개하지만, 이 러프하게 나눈 세 분야만 해도 필요한 소양이 퍽 달라서 같은 언어쌍이래도 저 사람은 출판번역만 해야겠는데?랄지, 영상번역에 딱인 사람, 산업번역에 최적인 사람이 제법 극명하게 나뉘어서 재밌다. 물론 잘 맞는지 여부와 실제로 어떤 분야를 주력으로 맡을지 여부는 별개지만.

제목 탓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일화식으로 풀어놓은 에세이로 착각하기 쉽지만 막상 열어보면 간결하고 담백한 정보성 비문학에 가깝다(굳이 구분을 해보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 군더더기 없음이 어떤 느낌이냐면, 광고에서처럼 책을 탈탈 털어 뿅뿅 튀어나오는 각설탕을 주워다 버리고, 꽉꽉 손에 힘을 주어 비틀어 짠, 순도 100%의 무설탕무지방 실용서라고 한다면 설명이 될까.

이 책은 1) 재택근무를 원하며 2) 비교적 영어울렁증이 덜하고 3) 머릿속이 시끄럽지 않아 저자가 이끄는대로 의심없이 잘 따라갈 수 있는 이들이라면 제법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특히 3번이 중요하다. 현재 나는 굳이 저 세 분야 중 하나를 고르라면 영상번역 쪽 일을 가장 많이 경험해봤고 이쪽이 상대적으로 내게 가장 잘 맞다고도 생각하는데 세부 분야가 달라도 이 책의 내용이나, '한국산업번역교육(이자 번역실미도)' 커뮤니티의 도움을 톡톡이 받았다. 그리고 사실 기본적으로는 일감이 넘치지 않고서야 애초에 분야를 고르기도 쉽지가 않다. 그냥 셋 다 들어오는 대로 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지원하고 공부하는 게 차라리 속편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나 신기한 건 저 세 분야 모두 꾸준히 지원하고 준비하면 어느 정도는 길이 뚫린다는 점이다. 몇 년 전 나와 함께 스터디하던 출판번역 지망생들 대부분이 지금은 번역 란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책을 갖게 되었고(자리를 잡는 건 또 다른 일이긴 하겠지만. 초반 3-5권까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 경우도 아직 자리를 잡았다고 보기야 어렵겠지만 매달 소소하게 영상번역을 하기도 하고, 데드라인이 하루 이틀 남아 내게까지 넘어오는 산업번역 일감을 맡기도 한다. 솔직히 벽에다 대고 혼잣말 하는 기분으로 메일을 보내던 1년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지 못한 일상이다.

요즘 나는 듀오링고에 푹 빠져서 매일 아침 빼놓지 않고 하고 있는데, 거기에서도 왕왕 산업번역의 흔적을 발견한다. 맞춤법이 사람이 한 건지 기계가 한 건지 헷갈리는 번역을 만날 때면, 내가 납품한 번역도 나사 하나 풀린 채로(?) 인터넷 세계 어딘가를 돌아다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묘한 뿌듯함이나 겸연쩍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가뭄에 콩 나듯 하지만 이따금 피드백 메일을 받을 때면 기분이 두근두근하고, 좋은 말을 들을 때면 '그냥 하는 말이겠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고, 잘못한 부분을 지적 받으면 정신이 퍼뜩 들어 반짝 공부에 몰두하기도 한다.

학부를 겨우 나와 가늘고 짧기까지한 회사 생활이 경험의 전부였던 내게 산업번역은 자립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내가 어디가서든 컴퓨터와 와이파이만 있으면 어떻게든 먹고는 살겠는데?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 건 분명 저자의 혁혁한 공이다. 《어쩌다보니 번역가》와 '한국산업번역교육'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이런 가능성과 자유를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책에 담기지 않은 저자의 사적인 산업번역 영업글(?) 및 그 외 다양한 관련 정보들은 블로그와 한국산업번역교육 사이트(포럼 게시판은 무료 열람 가능)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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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가방끈이 길어졌습니다만
전선영 지음 / 꿈의지도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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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를 영어로 번역한다면 아마 It happened to be…, 정도의 뉘앙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저자의 이 '어쩌다'는 사실은 저자에게 찾아온 기회 자체에만 한정할 수 있는 표현이다. 어쩌다 미국 유학을 가게된 한 사람의 이후 과정은 누구보다 목적 지향적이면서 철저히 실천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니 책 제목의 '어쩌다'는 차라리 겸손한 너스레에 가깝다.

이 책은 저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방송 프로그램 PD를 꿈꿨던 탓인지 컨텐츠 구성이 알차서 재밌게 보고 있다. 《어쩌다 가방끈이 길어졌습니다만》는 에세이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저자가 유학으로 시작한 미국 생활을 통해 쌓은 온기 있으면서도 잘 벼린 통찰을 들려준다. 전에 들어본 영작 문체 수업에서 배운 신-구 순으로 글의 화제를 전환하는 방식(단락 안에서 익숙한 화제-> (소개할) 낯선 화제로 배치하는 방식)이 문득 떠올랐다. 나 역시 책을 좋아해서 그런지 중간중간 언급되는 책 인용구를 유심히 읽었고 제목을 알아두기도 했는데 그런가 하면 저자가 즐기는 산 타는 취미 같은 건 내 취향과는 영 거리가 멀었음에도 이미 한껏 친밀감을 갖게 된 후여서 그런가 나도 모르게 스르르 난생처음으로 '나도 등산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미국이라는 비교적 낯선 타지(이제는 저자에게 또 하나의 보금자리가 되었지만)에서의 생활과 유학 경험을 읽으면서 미국 국경도 넘어보지 못했건만 깊은 공감을 느꼈다. 책의 중후반부는 지난 주에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는데 주책맞게도 아주 조금 울었다(나는 뭘 읽고 보든 잘 우는 편이기는 하지만). 이미 문자로 인쇄되어 당사자는 훌쩍 지나온 과거의 이야기를 뒤늦게 쫓아가며 응원하는 마음으로 읽다가 그 속에서 간접적으로 느끼게 되는 주변의 온기에 자못 찡한 기분으로 안도하게 되는 건 참 웃기고도 신기한 감정이다.

특히 삶이란 결과가 전부가 아님을 책 전반에서 여러 일화를 통해 세세하고도 맛깔나게 곱씹어볼 수 있어 좋았다. 영국에서 지낸 1년 여의 시간 동안 아주 친한 친구나 가족 외에는 사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다, 딱히 얘기할만한 게 없어서, 기를 쓰고 다른 나라로 나와놓고는 고작 이렇게 지내도 되는 건가? 정답을 전부 비낀 답안지를 무작정 채워만 가는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했는데, 《어쩌다 가방끈이 길어졌습니다만》을 읽고 찍찍 소나기가 내리던 내 답안지도 소심하게나마 반달 모양으로 채점 결과를 고쳐주었다.

금요일에 도착해서 거의 비몽사몽으로 보내다가 일요일에는 아주 오랜만에 동네 도서관에 가 저자가 소개한 올리버 색스의 책 두어권을 빌렸다. 런던에서는 서블릿으로 지내느라 대영 도서관은 커녕 동네 도서관 출입도 시도 한 번 못 해 봤다(주거 증명이 필요하다). 그러고보니 도서관에 들르기 직전엔 조조로 한국어자막을 띄워주는 영화도 한 편 보았다. 평생 누려온 한국어책과 한국어자막이라는 게 호사로 느껴지는 시기야 잠깐이겠지만 그 동안만이라도 만끽해보려 한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은 익숙함에 가려, 이후 영국에서 지내면서는 저자의 표현대로 '생소함에 짓눌려' 곧잘 놓친 풍경들이 많았다. 살아간다는 건 특별한 순간을 기념품 삼아 예쁜 틴케이스 안에 그득히 모아가는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먼지 쌓인 틴케이스만이 오롯이 남는 삶이라면, 그래서 말년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 속에 든 빛바랜 기억을 만지작대는 게 전부라면, 그보다는 딱히 내보일 게 없대도 현재의 아름다움을 지나치지 않고 느끼며 사는 삶이 되면 좋겠다.

새로운 풍경 속에 놓일 기회를 '어쩌다' 한 번 더 만나게 된다면, 그땐 이번보다 더 생생하게 감각할 수 있도록, 그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내 안에 잘 새길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꾸준히 단련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해보게 되는 하루다. 저자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도 함께 소개해본다. 덕분에 알게된 '미라클 모닝' 루틴을 시도해보려 요즘은 관련 책을 읽는 중인데 새해를 맞이하여 새 마음으로 도전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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