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술래잡기
오은실 지음 / 동아발해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엄청난 책을 읽은 기분이 든다. 이렇게 절절한 사랑도 있구나 싶고,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필요없다고 외치지만 분명 사랑함에 있어 장애물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서로 마음을 숨긴채 애써 감춘채 결코 들키지 않으려 했던 두 남녀가 그 마음이 눈덩이처럼 부풀어올라 더는 참을수 없는 지경이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아보려, 지워보려 하는 과정들이 너무 애달팠다.
멋모르고 출퇴근 버스에서 읽다가 코끝이 찡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져 어찌나 당혹스러웠던지.
어머니의 재혼으로 새롭게 형성된 가정의 관계속에서 연희는 사촌오빠 수현을 바라보게 되었다.
큰 눈망울이 너무 예뻐, 그녀를 항상 친동생 이상으로 챙기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마음이 너무 커져버렸던 수현.
그둘은 절대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꾹꾹 눌렀다. 그렇지만 그들의 사랑은 더 이상 커질수 없을 정도로 커졌기에 도덕,윤리등을 무시한채 자신들의 사랑을 키워보려 한다.
난 유학을 떠나기직전 역사에서 연희를 등뒤로 끌어안으며 죽을만큼 노력해서 지워보겠다고, 그렇지만 그게 안될 경우에는 그냥 사랑하자고 하는 수현의 모습을 보면서 어찌나 가슴이 설레던지.
그 옛날 캔디의 한장면이 떠올랐다. 계단참에서 캔디를 백허그했던 테리우스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물론 수현과 연희의 모습이 더 달달하고, 예뻐보였다.
어렵게 임신해서 낳은 아들 수현이 다른 누구도 아닌 사촌여동생 연희를 마음에 담았다는 것을 아는 순간 수현의 엄마는 거의 제정신이 아닐 정도가 되었다. 그럴것 같다. 충분히 이해한다.
연희에게 수현이 너에게 누구냐고 묻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연거푸 대답할때마다 뺨을 때리는 수현엄마를 보면서 심하다 싶기는 했지만, 그 누구도 그 엄마를 탓할수는 없지 않나 싶었다. 내가 아니니까, 내가 바라보는 제3자의 입장이다 보니 수현과 연희가 친 사촌관계도 아닌데, 굳이 반대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사람도 있을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사회에서는 쉽게 용납되는 관계가 아님은 확실하다.
난 연희가 맞으면서도 끝끝내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수현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용기가 마음에 들었고, 자신에게는 작은어머니이지만 사랑하는 여자의 어머니이기도 한 연희엄마에게 자신에게 있어 연희는 심장이라고 말하는 수현의 모습도 너무 멋졌다.
수현의 마음이 결코 하루이틀된 감정이 아님을 그누구보다 잘 아는 수현의 아버지는 급기야 연희를 만나 무릎을 꿇게 되고, 자존심이고 체면이고 다 내던진채 카페에서 무릎을 꿇고 수현을 놓아달라는 큰아버지의 청을 거절할수 없었던 연희는 독한 마음으로 그를 떠나보낼 결심을 한다.
미국에 들어가서 어느정도 일이 정리된 후, 바로 데리러 나오겠다는 수현에게 결단코 자신의 결심을 보이지 않고, 아낌없이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연희.
그녀는 자신의 임신사실을 절친 주연에게만 말한채 수현이 떠나고 2주후 자신의 친부가 있는 곳으로 홀연히 떠난다.
난 연희 엄마도 상당히 매력적인 여자다 싶었다. 수현의 엄마를 찾아가, 내 딸이 원하니 두눈 막고, 두귀 막고, 한입 막고 수현이 그냥 보내겠다고. 그렇지만 수현의 심장을 쥐고 있는 내딸이 없어진 후, 수현에게 혹여 무슨일이 생겨 나한테 와 사정하게 될것이라고. 그럼 나도 그때 똑같이 어떻게 그럴수 있냐고 매몰차게 내치겠다고 그리고 이집을 찾아오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장면이 너무 멋졌다.
연희를 찾아 그렇게나 헤맸던 수현. 그렇지만 너무나도 꼭꼭 숨은 연희를 더이상 찾을수 없음을 알고, 절대 자신의 눈에 띄지 말라고 하라는 억지소리를 하는 수현. 힘든 프로젝트를 끝낸 후, 카레이싱을 나갔다가 호흡이 가파짐을 느꼈고, 순간 해서는 안될 결심을 하고 마는 수현.
병원에서는 골절외에는 별이상이 없다고 하건만, 깨어나지 않는 수현.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며 절규하는 수현아버지.
마침내는 연희엄마의 예언대로 그녀를 찾아가 수현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수현엄마.
결코 누가 잘못했다고 할 수 없다. 자식을 가진 부모이기에,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한국사람이기에, 인습과 도덕과 윤리를 저버릴수 없었던 그들에게 그 누가 잘못했다 할수 있겠는가.
너무나도 절절한 사랑을 보여줬던 수현과 연희.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