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시몬느는 정당을 경멸했다. 시몬느는 국민의 대리자의 기능에는 엄격한 제약을 두어야 한다고했다. 시몬느에게 법이란 개인의 인격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며, 정부를비롯한 그 어떤 권력도 자신의 일정한 한계를 벗어나서는 안 되었다.
국민은 직접 정치할 필요가 없이 법을 만듦으로써 정부를 규제하고대리권자를 선출하여 정부에 대한 규제가 올바르게 지켜지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을 다룬다는 것은 인간 역사의 진보에서 없어서는 안될 것이다. 말을 다룰 줄 모르면 무슨 일을 하든지 장님이나 다름없다.
이런 이유로 과학을 포함한 모든 인간 사고가 급격히 발전하게 된것은 본디 종교를 통해서였다. 그러므로 이제 노동자들이 지식인의지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부르조아들이 대표하는 문화를 경멸할것이 아니라 그것을 대신할 힘을 길러야 한다. 분명히 생산자에 대한지식인의 우월성은 노동자들의 손으로 부정되어야 한다. 그렇다고해서 노동자들이 인간 문화의 모든 유산을 거부해야 된다는 말은아니다. 노동자들은 이 값진 유산을 소유하고 스스로 주인이 되어계승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혁명이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가장 큰 과업은 머리로 하는일과 손으로 하는 일 사이의 괴리를 없애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의말대로 이 일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할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노동자들이 말을 다룰줄 알아야 하며 나아가서는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

「노동」지에 발표된 "자본과 노동자" 라는 글에서 시몬느는 이런 일부의 기계뿐만 아니라 공업 기술 그 자체를 비판하고 있다. 그녀는공업 기술이야말로 자본주의의 가장 압제적인 특성의 하나라고 말한다. "자본주의에서는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종속되어 있다. 그러나이보다는 노동자가 기계와 원료로 구성되어 있는 물질적인 자본에종속되어 있다고 하는 편이 옳다. 오늘날 자본주의 제도는 노동자와노동 수단의 관계가 서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가 노동의 수단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노동의 수단이 노동자를 지배하고 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기계는결국 인간이 단순히 기계적인 역할밖에는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한다. 기계를 사용함으로써 인간은 결코 기계를 감독할 수가 없다.
수공업 시대에 인간은 기계를 이용해왔으나, 오늘날 산업 시대에서는인간이 기계에 봉사하고 있다."
 따라서 시몬드는 참된 혁명의 조건 속에 공업 기술의 완전한 변혁을포함시켜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공업 기술은 그 자체로 노동의 막대한생산성과 관련되어 있으므로 "자본주의의 산물인 생산성을 파괴시키지 않고 노동자가 노동 조건을 지배할 수 있도록 변혁되어야 한다"
고 말한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완전한 혁명에 있다.

"모든 조직은 그 조직의 구성원에게밖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말을 들려주자, 시몬느 역시 그 말에 공감은 하면서도 이런 비판은노동자들에게만 들려주었어야 옳았다고 말했다. 이런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 경우에도 자본주의의 놀음에 휘말려들지 않도록 주의해야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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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가 사피 선생은 시몬느에게 앞으로 커서 무슨 일을 하고 싶 으냐고 물었다. 시몬느가 제 자신도 기억 못할 정도로 여러 가지를주워대자 사피 선생은 시몬느에게 일러주었다. "시몬드야, 나무는 키만 크게 자라서는 안 된단다. 이렇게 옆으로도 자라야 해요." 그러면서 사피 선생은 두 손을 힘껏 옆으로 벌려 보였다. 시몬드는 말년에 "나무는 뿌리가 아니라 꼭대기부터 시든다." "높이 올라만가려고 하는 자에게는 잎과 열매가 에너지의 낭비로 보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참으로 현명했던 덕분에 시몬느는 자신의 흥미를 끄는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시몬느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정치학이었다.
어떤 학생은 이런 시몬느를 공산주의자라고 놀렸다. 그러면 시몬느는
"아니, 난 볼셰비키야"라고 응수하곤 했다. 그 나이에 시몬느가 볼세비키란 말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때부터벌써 "버림받은 노동자들" 의 편에 서서 모든 것을 생각했다는 것만은확실히 알 수 있다. 얼마 후에 베르사이유 조약이 체결되었을 때에도시몬느는 이 조약을 "이미 패배한 적의 숨통을 누르는 행위"로 여겨,
프랑스에 대한 수치심과 약자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열렬히 간직해온 자신의 애국심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도 했다. 아직도 어린 시몬느의 가슴 속에서는 점차 모든 인간은 평등해야 된다는혁명적인 사고가 움트고 있었다.



때로는 지하철을 타고 드라이브를 하기도 했다. 시몬느는 지하철을타는 노동자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노동자들을 좋아하는건 정의감 때문만이 아니야. 난 본능적으로 그들이 좋아. 노동자들은부르조아보다 훨씬 아름답거든." 시몬느는 아름다움에 매우 민감했으며 부르조아들이 지나친 미의식 때문에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되는것을 역겨워했다.

시몬느는 누구에게나 신념과 생활 태도 사이에 차이가 잏어서는안 된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우리들이 이 문제에 관해 이아기했을때 그녀는 "내가 참을 수 없는 건 그 차이 자체가 아니라 현실과타협한다는 것이야" 라고 말했다.

시몬드는 정치적인 사고와 철학적인 사고를 가능한 한 서로 접근시키려고 노력했다. "법의 안티모니에 관해서"라는 글에서 시몬느는법, 즉 사회 정의를 수직선에 비유했다. 자연에 수직선이 있듯이 정의는 인간 정신의 산물이다. 그러나 법은 감각적인 직관에 서, 독립된정신에서 생겨나지 않는다. 법은 원칙적으로 권력이나 실질적인 행동과는 다른 것이지만, 세속적인 권력이나 실질적인 행동으로부터완전히 독립되어 있지는 않다. 이 때문에 시몬느는 이 글의 앞에 "법은권력에 의해 규정된다"는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했다. 시몬느는 법은권력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의해 규정된다고 생각했다.
노동의 뒷받침을 받지 않는 법이란 무의미한 것이다. 또한 순수한관념이나 권력에만 의존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시행되지 못하는 법도역시 무의미한 것이다. 시몬느의 이러한 법 개념은 마르크스의 법개념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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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이 집필 활동으로 생계비를 벌 수 있게 되자 글쓰기는 직업이 되었으며 소설가와 시인이라는 신흥 계급은 출판업자에 더욱 많은 인쇄거리를 가져다주었다.

 이 시각에는 20세기에 유행하던 책에 대한 관념-
"책은 사상, 아이디어, 이미지를 한 정신에서 다른 정신으로 전달하며 서체 디자이너, 책 디자이너, 인쇄업자, 출판업자의 임무는 이 아이디어를 최대한 투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다-이 반영되어 있다. 책이란 천재적 저자의 순수한 지적활동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되는 생각이다‘라는 관점을 취하면서 책의 사물로서의 지위는 대다수 독서 대중에게서 사라져버렸다. 우리가 유리잔을 들어 흡족하게 내용물을 비우듯.

나는 아티스트북이 예술 작품을 구현하고 생산하는 형식적 수단을 [그 작품이 주제적 또는 미적 문제와 결합하 는 독창적 작품으로서 채으 창작하는 예술가와 작가의 행위 영역"이라는 드러커의 규정에 동의한다. 이 정의에 따르면 아티스트 북은 예술품 사진이 담긴 카탈로그가 아니요, 출판 공방(fine press)에서 유명 미술가의 삽화를 신고 정교하게 가공한 가죽 표지와 마블링 한면지로 감싼 소설도 아니다.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그 선택이 탐구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작품이 의미를 만들어내는 방식에 그 선택이 접목되어야 한다. 

그 페이지 아래쪽의 "W. 블레이크 짓고 찍다"(TheAuthor Printer W. Blake)라는 문구는 그의 작품에서 창의력과 기예가 하나가 되었음을 똑똑히 보여준다. 블레이크는 당시의 사회 문제에 참여하고 책이라는 형식을 통해 아동 노동, 도시 위생, 노예제 등에 맞서 목소리를 냄으로써 아티스트 북과독립 출판의 중요한 흐름을 확립했다. 그것은 사회 정의를 퍼뜨리는 수단으로 책을 활용하는 것이다.

1897년에 발표한 장시(長詩) 한 번의 주사위 던지기는 결코 폐기하지 못하리라, 우연을」에서 페이지는 그릇이 아니라 바다이며 그 파도에 던져진텍스트는 반짝이는 수면을 가로질러 독자의 눈길을 끌어당기는 언어의 난파선이다. 어떤 면에서 말라르메는 책의 이데아를복권하려는 블레이크의 작업을 계승했지만, 채식 사본을 본보기로 삼은 것이 아니라 시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더 보편적인매체— 당시의 신문-에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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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사가들은 1501년 이전에 유럽에서 인쇄된 책을 인큐내뷸러(incu-nabula)라고 부르는데, 이 단어는 ‘요람‘을 일컫는 라틴어로 인쇄코덱스의 요람기에 빗댄 표현이다. 

인큐내뷸러는 우리에게 친숙한 책 형식인 ‘인쇄 코덱스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량 생산되는 책처럼 균일하지는 않았다. 근대 초기의 책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책‘(book)과 ‘책권(冊卷, book copy)을 구분한다. 인쇄기를 한 번 돌려 찍어낸 각각의 코덱스마다 고유한 유통, 내력, 물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책을 보관할 때 책등이 안쪽을 보도록 넣었기에, 독자가 책을 찾을 수 있도록 책배를 문양이나 금박, 정교한그림으로 장식하는 경우가 있었다. 우리는 책등에 저자 이름과 책 제목이 박혀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이것은 16세기 중엽 들어 독자가 장서가로 바뀌고 서재를 확장하는 것이지성과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면서 책등이 바깥을 보기 시작한 이후의 일이다.

우리는자신이 책 속으로 사라졌다가 독서 경험에 의해 변화된 채 몇시간 뒤에 다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식자들은 이 탈육(脫肉)의 로맨스를 일종의 식물인간 상태로 묘사되는 텔레비전 시청의 수동성과 대조한다. 

 18세기에 잉글랜드의 출판업자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지식 재산권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저작권 논쟁은 ‘책‘을생각하는 관점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책을 인쇄하는 것뿐아니라 번역하고 다른 매체에 맞게 각색할 수 있게 되자 권리는 사물로서의 책이 아니라 그 책에 담긴 텍스트로 넘어갔다.마침내 세계 최초의 저작권법인 앤여왕법(1709)은 작품의 소유권을 저자에게 부여함으로써 내용이 형식보다 우위에 있음을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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