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안도현님의 백석 평전이 항간에 화제다. 하긴 "백석"이라는 이름 앞에 가슴 떨리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백석을 싫어한다면 그에 걸맞는 이유를 찾아 설득해야 할것이라고, 언젠가 들은 팟캐스트의 진행자는 말했다. 그가 좋다면 그 이유는 또한 무엇일까? 

백석의 시는 좋고 싫음, 즉 호불호의 선택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 그것이 주요한 내용일것이다.

백석의 노래. 그 절절하고 서늘한 노래를 논리적으로 거부할 수 있다면 그는 대단한 논리가일거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교과서에서, 혹은 수능 언어영역에서 만나는 백석은 어렵고 힘들다. 하지만 시인 백석은 얼마나 로맨틱하며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언어를 풀어 놓는지..






왜 하필 백석이었을까? 특별한 일은 아니다. 태풍이 온다고 했다. 귀여운 이름의 커다란 태풍이라고..

텅 비어있던 바다에 피항 온 배들로 꽉 차버리고, 시선은 멀리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터덜거리며 걷는 방파제위에서 만난 하얀 돌맹이 하나.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 노란 방파제 위에 덩그러니 놓인 흰 돌맹이 하나에서 나는 백석을 떠올린다.

온몸으로 바다를 느끼며 눅눅한 대기 속에서 저 홀로 노래를 부르는 저 당당한 돌맹이 하나에 온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고 보면 내게도 백석의, 혹은 백석에 대한 책들이 몇권 있다.


















저렇게 멀끔하게 잘 생긴 청년의 시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나보다.

여름이다.

입 속으로 조용히 백석의 이름을 불러본다. 

어쩐지 눈발이 흩날릴것 같은 그의 이름을 말이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면 어쩌면 나는 그의 사생팬(?)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안도의 숨을 쉬어본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잡을 수 없는..온전히 온 맘으로 귀를 기울여야 나즈막히 들려오는 그의 노래라서 이렇게 애절하고 쓰리고 아프고 애틋한가보다.

그의 사랑과 그의 노래.


어쩐지 속에 쌔한 바람 한가닥 부는 것 같으다. 어둑해진 하늘 아래 만난 흰 돌멩이의 파장은 생각보다 길다.

애써 웃음 지으며..여름 논의 아이들 웃음 소리를 떠올려본다.

백석의 이름을 부르기에 참 좋은 날이다.



   하답(夏畓)

 

 

 

   짝새가 발부리에서 일은 논두렁에서 아이들은 개구리의 뒷다리를 구워 먹었다

 

   게 구멍을 쑤시다 물큰하고 배암을 잡은 늪의 피같은 물이끼에 햇볕이 따가웠다

 

   돌다리에 앉아 날버들치를 먹고 몸을 말리는 아이들은 물총새가 되었다



  <사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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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2014-11-28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에도
폭폭 눈이 내린다
.
.
백석평전을 읽기 전부터 좋아했던 시였다.
평전을 읽는 내내 모던한 백석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알라딘 15년 이벤트로 나의 15년간을 보여주는 페이지가 있다.


 나의 첫 주문서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촛불의 미학>이었다. 과학철학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까지 또한 바슐라르의 몽상을 이해하기까지 참 녹록치 않은 시간과 이해력이 동원되었다.

 물론 아직도 혼자서 묻고 깨달아가는 과정이지만 말이다. 이것이 정말 맞게 이해하는 것인지, 아닌지..확인할 길도 모호하다.그렇게 꿈을 꾼다. 끝없는 몽상의 길을 더듬어 새로운 사유의 폭을 만들어가는 것..

 여튼, 15년 전 나의 첫 주문책은 촛불의 미학이었다.









아마, 남진우님의 책을 선택한 것도 바슐라르로부터 시작된 여정이었지 싶다.

바슐라르의 로트레아몽 분석이 흥미로웠고,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를 파고들다 

<로트레아몽 백작의 방황과 좌절에 관한 일곱 개의 노트 혹은 절망 연습>을 만나고 남진우의 글에 빠져들었으리라.













 평론이 다만 분석 보고서가 아닌 다분히 문학적일수도 있다는 것을 "김 현"이라는 인물을 알게 됨으로 절감하게 된다. 딱딱하고 분석과 비교가 나열되는 건조한 평론에 어쩌면 우리는 감성마저 희석되고 있지 않았을까? 냉철함과 냉정함을 앞세운 차가운 평론이 아닌, 명료한 분석과 적절한 은유가 곁들여진 평론을 마주하게 된다는 건 얼마나 새롭고 놀라운 일이겠는가.

 그렇게 바슐라르에서 남진우와 김현으로 연결되는 시간에 있었다.












      

김현의 시칠리아의 암소는 가장 아끼는 책 중 하나다. 절판도서이기도 하려니와, 진중권의 같은 이름의 책으로 오해받기도 하는 책이다. 



그리고 뜬금없는 조합이겠지만..

콜린 윌슨의 잔혹 1, 2를 같이 구입했었다. 절판되었고 그 후에 개정판이 나왔으나 이 역시 절판되었다. 초판은 이미지도 안찾아진다. 이런 서운하고 안타까운 일이 늘 있기에 좋은 책을 자꾸 사서 쟁여(?)두는지도 모른다.


15년 전, 

알라딘의 첫 구매 기억은 이렇다. 책을 주문하며 소녀처럼 설레던 마음..책이 오기까지 거의 일주일을 가슴 두근대며 기다리고 기다리고 확인하던 시간...그렇게 애틋하게 만난 책들이 나의 첫 구입목록에 있다는 것이 좋다.

잘 그려진 눈썹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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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

"수학쌤 되는거요. 학원이든 학교든 상관없어요."

이런 뜬금없고 어이없는 장래희망을 이야기 하는 녀석이 있다. 녀석의 장래희망을 들은 아이들의 진저리치는 모습과 야유가 교실에 가득차도 녀석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싱긋이 웃는다.

-으~수학 어렵다 아이가?

-헐, 수학쌤이래 미칬는갑다.

-왜?

녀석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 나를 바라본다. 뭔가 도움을 달라는 표시일게다.

-왜 하필 수학쌤이 하고 싶은데?

-뭔가 재밌잖아요. 문제 푸는것도 그렇고 개념들도 그렇고.

-재밌다고?

-네!

녀석의 <수학은 재밌다>에 아이들은 드디어 한계에 이른 비명을 지르고 지우개가루를 던지는 지경에 이르른다.


독특한 녀석이다. 새로운 개념을 이야기하기 위해 수학사나 수학자들의 이야기를 에피소드처럼 이야기해줄 때 혼자서만 "오오~~"하며 감탄을 한다.
















시큰둥한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그래서요?"를 연발한다. 결국 새 개념에 대한 설명은 다음 시간으로 미루어지고 그 개념이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한 이야기만 한시간동안 이야기하게 된다. 그 녀석과 나, 둘만 신나는 시간인셈이다.

























  수학이 좋다는 녀석이 그런 말을 했다.

 "수학은 푸는게 아니라 묻는거 같아요. 뭔가 자꾸 제게 묻고, 저는 되묻고 그렇게 자꾸만 왜? 왜? 하다보면 뭔가 짜릿해요"


대단한 녀석이라는 생각을 한다.

열다섯살 짜리, 그냥 수학이 좋은 그 아이의 말이 내 심장에 박혔다.

사실, 아이의 열성에 비하면 성적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그래서 내심 걱정이 많다고 했다 수학전공을 못하게 될까봐말이다.

까짓것 전공 안하면 어때? 수학은 수학과만 하란법있어?


수학은 모든것이고 수학은 전체이고 부분이며 어떤것이고 모든것인데말이다.

성적으로 성취의 정도를 가늠하는 상황에서 수학만큼 어려운게 없을게다. 

수학은 數學 이라기 보다 搜學이며 修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고, 사유하고 증명하는 과정이 그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계산력이 중요하긴 하지만, 사실 계산을 잘하는 건, 계산기를 잘 다루는 것보다 효율적이지 않다.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부쩍 늘었다. 논리로 해결하지 않고 계산으로 해결하려다보니 수학은 배배꼬인 꽈배기 같고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 처럼 느껴진다. 아이들에게 여러가지 책을 읽힌다. 문제집보다 책이 더 많이 쌓인 내 책상은 아이들의 방앗간이다. 


망할 놈의 수학은 없다.

수학이 망하진 않는다. 수학과 싸우려들지 말아야 한다. 

살아가면서 맞게되는 모든 결정의 순간에 합리적인 결정을 유도해내는 과정..그것이 수학적 논리이고 사고력인것이다. 그런 훈련을 하는 것이 수학교육이 되어야한다. 점수집계를 위한 계산훈련이 아닌..


"쌤, 수학은 진짜 멋있어요!"

오늘도 야유와 지탄(?)속에서 꿋꿋이 수학이 좋다고 외치는 열다섯 꼬맹이의 눈동자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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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의 글은 덧난 상처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상처의 처음과 만나게 하는 시간, 그래서 처음의 고통과는 다른 강도와 색채의 고통을 되짚게 한다. 아플 줄 알면서도 딱정이를 떼고, 앙다문 입술로 `그래도 괜찮아`라고 이야기 하게 하는 고집스러움이 있다. 시릴 줄 알면서 맨손으로 눈덩이를 만들듯이..아니, 어쩌면 눈덩이는 맨손으로 시리게 만들어야 단단해진다는 걸 알려주듯이 전경린의 글은 그렇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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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후의 시집을 선물 받았다.

마치 페스츄리처럼 찢어지는 시어들..열 두겹의 자정을 넘어 어떤 노래가 어떤 향기로 불리워질지 기대된다.

2012년 출간 된 후 아직 초판본을 구입할 수 있다. 어떤 시집은..출간되고 1,2주일만 지나도 2쇄..3쇄..그런 의미에서 김경후의 시집은 아직 열두 겹의 비밀을 덜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 하나를 읽어내고 긴 숨이 뱉어지는 시집을 읽는다.


시집을 읽어 내리다..시 하나를 옮겨적는다.


 <모래의 악보 - 김경후>


(나는) 침묵을 한 소절 놓쳐버린 폭풍

흘러가고

(너는) 폭풍을 폐와 핏속에 담고

흘러간다

(나는) 모래의 악보

흘러가는 동안

(너는) 백지의 탯줄

흐르겠지

(그리고 우리는) 입을 다문다

말들의 십팔방위로 짜인 살갗이 찢어지는 소리를

단 한 번 내기 위해

 

 


시를 찢는다.
 
/
흘러가고
흘러간다
흘러가는 동안
흐르겠지
말들의 십팔방위로 짜인 살갗이 찢어지는 소리./
 
/
나는
너는
나는
너는
그리고 우리는
입을 다문다/
 
/
침묵을 한 소절 놓쳐버린 폭풍
폭풍을 폐와 핏속에 담고
모래의 악보
백지의 탯줄
단 한 번 내기 위해/
 
결따라 잘 찢어지는 시..김경후의 시를 필사하려면.."ㅍ"을 잘 쓰면 좋겠다.
수없이 나오는 "ㅍ"들..폐와 피와 폭풍..
시를 잘 찢어 재배치한다. 내 마음이 이끄는대로 찢어진 살갗의 노래에 귀기울이기 위해..
말들을 십팔방위로 찢어놓는다.
파동..
말의 파동이 느껴진다.
말의 비명이 들린다.
말의 신음이 울린다.
그 사이 가늠하고 싶지 않은..아픔이 누워있다. 아직 부패가 완료되지 못한 시체처럼..고약한 냄새와 덜 썩은 살점을 남긴..
그런 아픔이 말이다.
폣속에 들어간 공기의 무의미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아픔에게
떨어져 나간 귀, 구멍조차 불분명한 그 곳에 대고 귓속말을 한다.
나는..
너는..
우리는..
 
모래는 은밀하게 움직이며 악보를 고치기 시작한다.
조금 더 느리게..아직은..여지가 있어..라며.
A tempo 를 주문한다.

 
흥미로운 시 읽기는 늘 설레임이다. 게다가 잘 알려지지 않은 시라면..마치 시인이 내 귀에만 들려준 이야기인양 더 설레인다.
사진으로는 잘 느껴지지 않는..멋진 표지를 가진 이 시집을 사랑할것 같다.
열 두 겹이라니..잘 구운 크로아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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