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굿판이건 굿판이 한술 벌어졌다 하면 이 새 옷이 너덜너덜 다 닳아지도록 춤을
춰야 하는 거라고, 사람의 뜻은 채가 되고 사람의 마음은 긴북(장구)이 되어 가분재기 휘몰아치는 휘몰이, 그게 바로 이 벌개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없는 세상) 따위는 발칵 뒤집어엎어버리고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벗나래(참세상)를 만들려는몸짓, 그게 춤이라는 걸세, 알가서?" 

"사람들은 말이다, 빌뱅이가 찾아오면 식은 밥 한 술을 쪼개주고는 나누어주었다 그런다. 그것도 눈물겹게 아름다운마음이긴 하다. 하지만 가난은 말이다, 가난이란 그렇게 새름(정)만 나누어서 풀리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한 술 식은 밥이 아니라 솥째 빼주신 것은 무어냐.
그건 가난은 함께 갈라쳐야 할 거친 수렁, 사람과 사람의 새 름까지 삼키는 고얀 것들의 끔찍한 빨대, 그것을 그 뿌리부터 발칵 뒤집어엎어야 한다. 그런 뜻이란 말이다."

짐승들은 말이다. 한축(일단) 제 배지(배)가 부르면 더는 뚱속(욕심)을 안 부린단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뺏을 건 다 빼앗아 먹고도 모자라 사람을 갖다가서 사람의 머슴으로 부리고끝내는 사람을 죽여서라도 내 것을 더 만들겠다는 그 끝없는뚱속이 짐승과는 마냥 다른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려고 하면 말이다. 아무려나 사람부터 바꾸어야 하겠지만 사람과 사람 사는 이 살곳(사람이 사람으로 살 만한 곳)을 따로 떼서 생각하면 안 된다. 사람과 함께 사람의 이 얄곳(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없는 곳)을 아울러 바꾸어야 한단 말이다."

그것을 틀거리(체제)로 만들었다는 걸 알아야 한다네. 우리가 다 같이 똑같은 사람이면서 사람으로 살 수가 없는 이 벌 개(잘못된 세상)라는 게 그것이요, 그것을 한 묶음으로 다스리는 나라라는 게 그것이요. 그 나라를 한 오큼으로 거머쥔 쥘락(권력)이 그것이요, 이 벌개에 세울(도덕)이라는 것도 있질않나. 남을 속이지 마라, 남의 것을 훔치지 마라, 남을 헐뜯지말라는 세울 말일세. 그게 어찌 보면 말은 그럴듯하지.
하지만 그 세울을 알고 보면 그거야말로 말짱 거짓이라네.
 남의 것을 빼앗은 놈들이 꺼이(감히) 남의 것을 넘보지 말라 니. 그것은 제가 저지른 짓, 다시 말해 남의 것을 빼앗는 빼대기(강도) 도둑질은 도리어 보듬고, 이와 거꾸로 그네들의 잘 못을 숨기려는 꿍셈(음모), 거짓의 제 모습이지 딴 거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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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곶매 이야기 - 전2권
백기완 지음 / 노나메기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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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선발 잔치 벗치라고 했다.
버선발 잔치란 딴 게 아니다. 무엇이든 가진 것이라는 것은 이를 모두 내놓고 무엇이든 입고 걸친 것은 이를 모두 내던지되 그러나 이 세상 모든 것은 제 마음껏 제 바램에 따라 제 힘껏 실컷 가지는 잔치라는뜻이다.


날짐승으로는 까막까치 참새 새 방울새 부엉이 올빼미 숏쩍새 황새왜가리 그리고 커단 눈송이처럼 펄펄 날으는 학이 구름처럼 떼거리로몰려 드는 품이 그렇게도 볼거리였다. 또 들짐승으로는 노루 고라니 다람쥐 토끼 너구리 오소리 고슴도치 멧돼지 곰뿐이 아니다. 무시무시하고의젓한 얽은 칡범까지 득실대는 데도 서로 싸우는 것 같지를 않고 그넉넉한 솔밭을 마치 제 집 보금자리인 양 날짐승 들짐승들이 모두 한데어울려 살아간다.
이를 넉살판이라고 했다. 넉살판이란 힘이 세거나 약하거나 모두 어울려 사는 넉넉한 땅 하늘나라의 꿈이 이 땅위에 이룩된 땅천국이라는뜻이다.

 그렇다. 뜻을 이루고저 할진대 제 목숨 따위는 이를 남김없이 버릴 수가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참으로 목숨을 챙기고저 할진대는 온 몸 온 힘으로 제 목숨을 챙길 수 있는 힘 다시 말하면 스스로를 마음대로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제 몸도 다스리고 아울러 하늘과 땅 이 온 널판(우주)을 다스린다 하였다. 이것을 무엇이라 했을까. 용맹? 슬 기? 지혜? 아니다. 우리네는 본디 그것을 그렇게 말을 해 오질 않는다.
 그러면 그것을 메라고 해왔을까.
 이것을 ‘제까닥‘이라고 해 온다. 어려운 말로 치면 스스로가 스스로를 놓아버릴 수도 있고 또 챙길 수도 있는 해방자, 알찬 자유의 몸이란 뜻 이다. 이렇게 제까닥이 되면 하늘을 가고 싶으면 하늘을 가게 된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멱치기를 아는 이만이 이 ‘제까닥‘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랬던가. 장산곶매는 그가 멱치기를 떠나기 전날 밤 "딱 딱"
하고 부리질을 하는데 바로 그 소리가 그 곳 장산곶 사람들에겐 스스로묶은 사슬을 끊는 소리로 들리기도 하고 또 한켠으로는 장산곶에 들이닥친 캄캄한 밤을 까는 소리로 들리는 거라.
 그래서 장산곶 사람들은 그 곳 장산곶매의 부리질 소리가 나는 날 밤이면 모두 하나같이 잠을 안 잤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장산곶매가 밤새도록 딱딱 부리질을 하다가 밝아오는 새벽녘, 하늘 높이 솟아 떡치기를 떠나게 되면 짜배기로 넉넉살이가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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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곶매 이야기 - 전2권
백기완 지음 / 노나메기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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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바다를 살며 땅을 지키고 있는 뿌리를 일러 뭐라고 했을까.
‘버선발, 옳지 버선발이라고 했다. 버선발이란 무엇일까.
가끔 사람의 된 품을 일러 버선발 같은 이라고 할 때가 있음은 잘 아는 일이다. 어떤 사람을 일러 버선발이라고 했을까.
 첫째, 제 몫으로는 무엇하나 챙길 줄을 모르고 있는 것 없는 것을 옛 다, 하고 모두를 툭툭 털어 다 내주는 이를 일러 버선발이라고 했다. 

둘째, 아니꼽고 더러운 것을 보고는 참지를 못하는 이를 일러 버선발이라고 했지만서도 또 의롭지 못한 것을 보며는 횃불처럼 벌컥 나서되 한번나서기만 하면 제아무리 어렵고 괴로워도 끝장을 보고야 마는 화끈한사람, 그런 사람을 일러 버선발이라고 했겠다.
 이 버선발에 얽힌 이야기는 이 땅별 안에선 딴 고장에 없고 오로지이 조선땅에서만 있는 이야기렸다. 

그러나 짐승보다 나은 사람의 꼴이라는 게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당집을 지어놓고 받들어 섬기는 귀신? 아니다. 그러면 서낭당? 아니다. 그러면 무엇일까. 사람만이 갖는 뱃짱이로다 뱃짱, 부닥쳐 깨지면서도 기어코 깨우치고야 마는 열린 눈 ‘누리하제다 이 말이다. 사람에겐 누구에게나 이와 같이 누리하제가 될 만한 바탕을 갖고 태어나게 되어 있는법이다.

옛부터 흰두루란 머리에 흰 띠를 두른 골굿떼를 이르는 말이다. 골굿떼란 쨩(도대체) 무엇하는 떼거리일까. 옳거니 골굿떼란 옛부터 알려져오는 의적 또는 마음씨 좋은 도둑놈, 이렇게들 알고 있지만 알로는 그게아니다.
골굿떼란 말 그대로 골난 놈들 골난 것이 더욱 골이 난 놈들, 다시말하면 아무리 일을 해도 사람으로 살 수가 없어 배알이 꼴리다 못해 온몸이 울뚝울뚝 꼴리는 놈들이 모여서 굿하는 떼거리라는 뜻의 준말이다.

 이 때 굿이란 쇠 징 장고 북 이런저런 풍물가락에 덩덩 덩더쿵~ 하고 한판 벌리는 무굿 그것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구나.
 온몸이 꼴리는 놈들이 모여 다 함께 할 바를 매듭지은 다음 그것을 한판 치르는 온 몸의 트림이 바로 굿이라는 거구나. 이런 뜻에서 보잘것 같으면 "굿을 하러 가자." 라고 하는 것은 같은 뜻을 진짜로 이룩하러 가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굿의 참뜻이란 한판 어르기, 한판 싸움이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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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손 - 살아있지만 인격의 일부라고 말할 수 없는 인간적인 어떤 것에 대한 법적 탐구
장 피에르 보 지음, 김현경 옮김 / 이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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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 표지와 제목에 끌려 구입해 읽게 된 책이다

며칠 전 읽은 '블랙미러로 철학하기'도 그랬지만 혹해서 구입한 책들이 엄청나다. 요즘 내가 책 고르는 눈이 생긴건가? 책을 하도 지르다보니 지름신도 지쳐서 딱 필요한 책만 고르게 한건가? 싶어진다

횡재한 기분으로 읽어가는 책

시작은 그렇다. 신문사 서평이나 출판서 서평에서 읽히듯 내 몸에서 잘려진 손을 누군가 임의로 처분했다면 이것은 절도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방대한 대답인 셈이다.

절도라는 것이 성립하려면 손은 물건이어야 한다. 인체를 물건으로 보는 것이 맞는가? 그렇다면 시체는 물건인가?

사실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딱 봐도 간단치 않은 문제인데..왜 이런말을 굳이..)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가 태어나고 세상은 놀라움과 우려로 넘실댔다.

생명의 탄생은 신의 영역이라 생각했는데 그곳을 인간이 침범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까닭이다.

생명윤리랄지 신성에 대한 도전이랄지 하는 이야기들이 많아졌다.

그렇다면 인간의 몸, 인간의 생명을 무엇으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시작되는건 당연하다

 

수혈의 예만 들어도 장기이식의 예만 들어도 그렇다. 판매가 아닌 증여라는 형식을 갖겠지만 그렇다면 내 신체는 물건인가? 누군가에게 내어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 것인가? 증여받은 이의 것인가?

인간의 신체에 부여된 성과 속의 의미들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이것을 민법과 의료법으로 혹은 종교적 문제와 접목시켜 풀어내는 과정이 매우 방대하고 치밀하다.

고대 로마법, 유스티니아누스의 법전과 그 이전의 성스러움에 대한 기원까지 파고 들어가는 시간적 양만으로도 방대하기 짝이없다. 철학적 인문학적 인용과 논증은 이루어지지 않으며 오로지 성과 속에 대한 논증으로만 써내려간 글임에도 충분한 사유와 사고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서사의 힘이 막강하다

대단한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느 부분에서는 '이거 완전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건가?' 라는 생각도 든다 . 하지만 이내 그것이 치밀한 장치였음에 놀라워하게 된다

 

역자가 혼자 읽다가 너무 흥미로워서 번역을 결심했다고 한다. 의료나 법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서 자문을 구해가며 번역했다고한다. 그 수고로움이 얼마가 되었든 감수하고라도 번역하고 싶었다는 의지였으리라

과연 그럴만 한 가치가 있는가?

있다.

 

내 몸에 대한 소유권, 그것은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가도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잘린 손은 물건인가? 그렇지 않다면 잘린 손에도 인격이 있는가? 나의 인격이 잘려져 나간 신체에도 존재한다면 떼어낸 신체조직 일부가 어딘가에 전시되거나 더 잘려서 연구용이 된다면 나의 인격은 존중되고 있는가? 인격은 언제 존재하는가? 생명이 있는 순간동안이라면 생명이 사라진 이후에 시체를 (몸을) 파기하는건 괜찮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시체조차 함부로 하지 않는다면 시체는 인격인가? 물건인가?

 

오래전 미라를 갈아서 약으로 쓰거나 성인의 관에서 나오는 물을 받아 마시거나 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고 들었다 그들을 치료한 것은 성인의 몸인가? 그의 성스러움인가?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아버지를 낫게 하기 위해 시신의 다리를 잘라온 며느리(아들?)를 단죄해야 한다면 그 죄명은 무엇이어야 하며 성인의 관에서 나오는 물을 마신이들은 어떻게 다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물음과 현란하고 치밀한 답변이 과연 압권이다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가차없는' 글이다.

여지를 주는 것 같지만 결국 그 여지를 닫는다.

쉽지 않은 질문이니 쉽지 않은 대답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중요한건 나의 몸은 나의 소유인 것이 분명하다는 것.

그것을 놓치지 않고 읽으면 되겠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다. 할로윈 분장을 한 채로 말이다. 나의 코스튬은 시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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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틴어로 사케르 Sacer는숭배해야 하는 것과 두려움을 일으키는 것을 동시에 가리킨다. 이는, 루돌프 오토에 따르면, 무시무시하면서도 매혹적인 어떤 신비에대한 직관이다.게다가 성스러움은 또 다른 점에서도 양가적이다.
성스러움은 숭고하기까지한 초자연적인 것과 접촉하며, 동시에, 혐오스러운 심연을 내포하는 현실적인 것과도 접촉한다. 시체의 복잡한 상황은 이를 잘 보여준다. 시체는 성스럽다. 그러면서도 음식이자 약이자 공해이다.

성물에 대한 기독교 교의 전체는 인류가 하나의 유일한 신체를 이룬다는 관념에서 출발한다. 이브를 만드는 데 사용된 살은 아담에게서 떼어낸 게 아니었던가? 그리고 우리는 모두 최초의 부부의 자손들이 아닌가? 이 육체적 결합에,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신비로운 몸corps mystique 안에서의 기독교인들의 결합이 덧붙여진다.
이러한 접근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물과의 접촉이 갖는 치료효과에 대한 믿음은 처음부터 일종의 이식 적합성 이론에 의해 정당화되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이 최초의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성자의 몸은 성자가 신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 덕택에 치료적 효능vertu을 갖는다. 그리고 전체의 효능은 부분들(성물 들) 속에서 재발견된다. 

시체를 연구함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특히 견고한 명제들은다음과 같다.
명제 1. 시체는 물건이다.
명제 2. 시체는 성스러운 물건이다.
명제 3. 시체는 음식이자 약이다.
명제 4. 시체는 해롭다.
명제 5. 시체의 처리는 자연스럽게 사제와 의사가 나누어 맡는다.
명제 6. 민법학자는 시체의 처리에 개입하기 싫어한다.

시체의 성스러움 (명제 2)을 다루어야 하는 사람들은 시체가 음식이자 약이라는 점(명제 3) 및 시체가 해롭다는 점(명제 4)을 떠올리지 않으려 한다. 반면 시체의 해로움(명제 4)을 과학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 성스러움(명제 2)을 불편하게 여기며, 시체를 음식과 약으로 쓰는 것(명제 3)의 야만성에 대해서도 거북함을느낀다. 
사제(명제 2)와 의사 (명제 3, 4)는 서로 협의 아래 행동하지만, 시체에 대해 정반대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경쟁관계에 있다.(명제 5) 성스러운 물건은 해로운 물건/음식/약을 검열하고 후자는 역으로 전자를 검열하는데, 이는 최종적으로 물건 자체를 검열한다.
민법학자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주변적 위치(명제 6)는 시체의 현실에 대한 그의 분명한 언급 (명제 1)과 대조를 이룬다. 여기서 우리는다시 한번 악순환의 형태를 띤 검열을 발견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다음을 증명하고 싶다. 로마법에서 나온 분류 방식들을 고려했을 때 살아있는 인체는 물건의 범주에 들어가야한다는 것, 인체의 법적 성격은 죽음의 순간에도 바뀌지 않는다는것, 그리고 인체의 구성 요소들은 몸에 붙어 있는 아니든 동일한 실체적 성질을 지닌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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