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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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미디어가 세상을 전달하고 분류할 때 사용하는 언어가 더해진다. 그것은 전문 경영인들이 사용하는 전문용어나 논리와 매우 비슷하다. 그 언어는 모든 것을 ‘계량화 하고 본질,
혹은 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좀처럼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공식적으로 말해지는 것들, 그리고 그것들이 말해지는 방식이 시민들로 하여금 일종의 기억상실에 빠져들도록 부추긴다. 경험이 지워지고 있다. 과거와 미래라는 지평선도 희미해지고 있다. 우리로 하여금 끝없이 불확실한 현재에만살게 하려는 조건들이 갖추어져 있다. 망각 상태의 시민으로축소된 것이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여러 물리학자들이 설명했듯이 시간이 서적인 것이 아니라 순환적인 것임을 기억하자. 우리의 삶으 하나의 선 위에 찍힌 점이 아니다. 이 선은 전례가 없는 전 지구적 자본주의 질서의 일시적 탐욕에 의해 절단되고 있다. 우리는 선 위의 점이 아니라, 원의 중심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가 아는 그 모든 언어로 칭찬하고,
욕하고, 저주하는 일을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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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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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는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그와 함께 어떤 특별한 기술도 익히게 된다. 그는 혼자 살아가는 프리랜서가 된다.

오늘날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투기 금융 자본은 정부를노예 주인처럼 활용하고, 전 세계 미디어를 마약 공급상처럼활용한다. 이 폭정의 유일한 목표는 이윤과 자본 축적인데, 이를 위해 사람들에게 소란하고, 위태롭고, 매정하고, 설명할 수없는 세계관 혹은 삶의 패턴을 강요한다. 

명할 수 없는 것들은 매일매일 늘어나고 있다. 국가의 정치가들이 하고 있는 논쟁이 더 이상 그들이 할 수 있는 일 혹은해야만 하는 일과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에, 보편적 참정권이라는 것도 의미 없게 되어 버렸다. 오늘날의 세계를 결정하는근본적인 판단은 모두 투기 자본가와 그 대리인들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그들은 이름이 없고 정치적인 발언은 전혀 하지 않는다. 열 살 소년이 추측했듯이 "매일매일 발생하는 문제들, 채우지 못한 욕구와 좌절당한 욕망을 일컫는, 혹은 설명하는 단어는 없다."

 채플린의 익살이 지닌 에너지는 반복적이고 점점 커진다. 매번 넘어질 때마다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일어난다. 같은 사람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인 어떤 사람, 넘어질 때마다 다시일어날 수 있게 하는 비밀은 바로 그 복수성複數性이다.
또한 그 복수성은 그의 희망이 반복적으로 산산조각 나는 일 에 익숙해진 후에도 여전히 다음 희망을 놓치지 않을 수 있게해 주었다. 그는 반복해서 굴욕을 당하면서도 평정심을 잃지않는다. 심지어 반격을 할 때도 그는 유감스럽다는 듯이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그런 평정심이 그를 무적의 존재로, 거의 불멸의 존재로 보이게 한다. 희망 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사건들틈에서 그 불멸성을 감지한 우리는, 웃음으로 그 알아봄을 인정한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여름이 되면 사람들이 나이에 상관없이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옷을 벗는다. 그렇게 햇빛과 물,
그리고 보상을 받는 몸이라는 세 개의 순수가 서로 접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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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진 언어는 하나의 몸이며, 살아 있는 피조물이다. 피조물의 얼굴은 말이며, 신진대사는 언어학이다. 그리고 이 피조물의 집은 발화된 것뿐만 아니라, 발화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모국어는 한 인간의 첫번째 언어,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입을 통해 처음 듣게 되는 언어다. 그래서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 내가 묘사하려는 언어라는 생 명체가 분명 여성적이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아마 음성학적자궁이 있을 것이다.
 하나의 모국어 안에는 모든 모국어가 담겨 있다. 다른 말로하자면 모든 모국어는 보편적이다.

오늘날 주된 정치적 담론에서 사용되는 언어들은 그 어떤 언어 생명체에도 속하지 않는, 무기력하고죽은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죽은 ‘공허한 말의 사용‘은기억을 지워 버리고 무자비한 자기만족을 낳는다.

당신이 적었죠. "현대의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어떤 책이나이론에서 제시한 계획에 따라 자신들의 투쟁을 수행하는 것이아니다. 현대 노동자들의 투쟁은 역사의 일부이고, 사회적 진보의 일부이며, 역사 한가운데서, 진보 한가운데서, 싸움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반드시 싸워야만 함을 배운다."

"나는 있었고, 지금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라고 당신은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보여 준 본보기 안에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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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1 14: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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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1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01 15: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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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너도 일을 하고 나도 일을 하고 그리하여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사는 노나매기라니, 그 노나매기야말로 역적짓이라 그저 한칼에 쳐부시라고 했다.
하지만 쳐들어온 관군이 기찬이들한테 기가 차게 판판이 깨지지 이 얼때 임금이 뙤나라한테 도움을 비는 것이었다.
‘저 쌍놈들의 노나매기 세상을 쳐부시지 않을 것이면 이참 뙤나라이 돌쌍놈들도 노나매기 세상을 만들겠다고 들고 일어날 지도 모를 것이 다. 그러니 얼핏 도움을 보내라는 바람에 똥끝이 타지 않을 수 없는나라 군사가 엄청 몰려와 장산곶 그 아름다운 세상을 또 다시 쑥밭을만들더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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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무엇이더냐. 사람의 소갈머리, 그 내 거라는 거짓을그냥 내버려둘 것이면 사람이라는 것은 마침내 바글바글(구더기)이 되어 사람을 서로 썩혀먹고, 그렇게 썩은 사람들은또 서로 죽기 살기로 다투어 이 땅별(지구)을 몽조리 한 뼘도 안 남기고 네 거 내 거로 갈가리 찢어발기는 싸움터로 만든 다네. 거기에 그치질 않고 이 누름과 저 너른 누리까지 말짱썩혀 서로 피투성이가 되어 내 거로 하려는 싸움터로 만듦으로써 너도나도 쌔코라지고(망하고) 이 땅별과 누름도 쌔코라뜨리고(망치고) 말 것이니, 사람들이여 넋살(정신) 차리라고한바탕 괏따쳤다(거짓을 깨뜨렸다) 그 말일세.

그러니까 이 다슬이란 무엇이겠나. 어느 깨우친 이가 일러준 엄청 거룩한 말따구인 줄 아는가. 어림 쪽푼어치도 없는소리! 아니란 말일세. 시키는 대로 일을 하고 주는 대로 먹으면서도 죽어라 하고 끌려만 다니는 안타까운 일꾼들, 이른바 니나(민중)들의 피눈물이 깨우친 된깔(본질)이요, 그 든메(사상). 그러니까 다슬이란 땀이 깨우친 다락(경지), 우리 온이(인류)의 참든메요, 나아가 사람이 짐승과 갈라서는 갈림덕이라네. 때문에 이 다슬을 알아야 끊임없이 사람으로 거듭날수가 있다 그 말이지."
-ורד

"여보게, 아 여보게, 자네가 바로 참짜 노나메기일세, 노나메기. 야 이놈들아, 남의 목숨인 박땀, 안간 땀, 피땀만 뺏어먹으려 들지 말고 너도 사람이라고 하면 너도나도 다 함께박땀, 안간 땀, 피땀을 흘리자. 그리하여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벗나래(세상)를 만들자. 너만 목숨이 있다더냐. 이 땅별(지구), 이 온이 (인류)가 다 제 목숨이 있고 이누룸(자연)도 제 목숨이 있으니 다 같이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거, 그게 바로 노나메기라네.
 그렇다고 하면 이 노나메기란 어디서 나온 것이겠나. 어 느 깨우친 이의 괴나리봇짐에서 나왔겠는가. 어림 쪽도 없는 소리. 아니라네, 아니야. 그러면 어느 거룩한 세울이 (도덕가)의 나발에서 나왔을 것 같은가. 아니라니까. 그럼 어디서나왔더냐. 자네 같은 니나(민중), 그들이 흘린 그 박땀, 그 안간 땀, 그 피땀의 갈마(역사)에서 스스로 깨우친 것이라네. 그러니까 노나메기란 우리 사람의 참짜 꿈인 바랄이요, 온이의하제(희망)라네, 알가서?"

그러니 참된 하제란 무엇이겠어요. 남을 시켜만 먹으려 들면 그건 참짜 하제를 죽이는 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 너도 일을 하고 나도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너도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살아야 그게 참짜 하제지요. 무슨 말이냐. 잘살되 나부터 잘살겠다고 하면 그건 남이 흘린 피눈물의 땀을 내가 뺏겠다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첫째, 나부터라는 뚱속(욕심)을 찢어 팡개치는 참된 깨우침으로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해야 합니다. 둘째, 사람 만 잘살겠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이 누룸(자연)과 더불어 다 함께 잘살아야 합니다. 사람만 잘살아보자고 하면 이 누룸,

이 아름다운 누리(우주)까지를 모두 쌔코라뜨리게 망치게) 될니다. 셋째, 사람의 몹쓸 된깔(본질)의 하나가 무엇인 줄 아세 요? 깜빡 깨어났다가도 깜짝 잊고 마는 깜짝(나밖에 없다는 뜻 된 생각)입니다. 무슨 말이냐. 사람이라는 목숨 생명)으로 다른 모든 목숨을 몽땅 다 내쳐버리는 그 못된 된깔입니다.
 어떻게 제 목숨만 목숨입니까. 다른 모든 목숨도 목숨이지.
 그러니까 그런 몹쓸 된깔일랑은 그대로 찢어 팡개치고는 찰 목숨, 다시 말하면 목숨 아닌 댄목숨(반생명)과 싸워 틔은 참 목숨인 살티를 살려내야 합니다. 그게 무엇이겠어요. 그게 무엇이겠느냐구요. 그게 바로 노나메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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