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을 지나면서 유난스레 소설류(소설 장르를 별로 읽지 않는 것에 비해..)를 많이 읽었다.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는 까닭이다.

쉽게 이입이 되는 성정은 소설을 읽고 나면 오래도록 그 잔상에 힘들어했다. 감동적인 문장이 아닌, 말 그대로 심정적인 동요가 일어난 부분에 그어진 밑줄은 어느 순간 울타리가 되어 소설 속에 가두곤 했다.

그래서 꼼꼼히 보지 못하고 휘리릭 읽어버리거나, 쉬이 선택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문서를 많이 읽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사다가 쌓아두며 만족하는 허세족일지도 모르겠다. 오래도록 끼고 다니며 번갈아 펼쳐보는 시집이 그나마 위안이 되곤한다. 시집을 리뷰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리뷰는 늘 어렵다.일천한 이해력과 조악한 문장력이 빚어낸 결과물이 얼마나 옹색한지 너무 잘아니까 말이다.

 

어쨌든 책은 사고, 읽거나 읽다 덮거나, 아예 펼치지도 못하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도 책친구가 생겨 "이거이거..이거 읽자!"라고 안달을 하면 흔쾌히 '그러자'해주는 이가 있다.

2015년 첫 책으로 읽자고 약속한 책.

 

  공안정국과 닮은 시기를 산다. 거짓 자백을 위해 고문하던 시간이 그리 멀지 않다.

 그렇게 내어놓고 고문하진 않아도 심리적 회유와 협박은 여전하지 싶어진다.

 어이없는 수사의 결과물을 내어놓고 믿으라고 믿지 못하면 불량하다고 우기는 시기를 또 산다.

 수십년이 지나서야 무죄판결이 나는 사건들.

 

 종철군의 기억과 한열군의 기억이 더욱 또렷해지는 요즘이다.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소설을 읽지 않아도 저절로 울컥해지는 때..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건지, 어떻게 허위자백이 가능한건지 알아야겠다.

 

 

 

 

 

친구에게 선물을 받고 밀린 책들 뒤에 살짝 넣어둔 책도 있다. 읽어야지..

 시인 하이네와 마르크스의 우정. 두 권의 책이 하나에 담겼다.

 어쩐지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것도 같지만..이제는 하이네의 시 행간에 감추어진 혁명의 의지를 읽어낼 수도 있을 것만 같다.

 공산당 선언..새내기 시절 제본된 공산당 선언을 선배에게 받아 읽었다.

 그 긴장감이란..모두가 잠든 밤에 홀로 일어나 최대한 낮게 조절된 스탠드 불빛에 투박한 타이핑으로 쳐 낸 공산당 선언을 읽는 것..그것을 읽는 순간 내 속에서 혁명은 시작되었던 것 같다

 모르고 살 것인가 알며 살것인가..나의 존재성과 사회성, 정치성을 어떻게 획득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잠깐 "세상 참 좋아졌네..이런 책이 막 나오고.."하는 늙다리 꼰대같은 생각을 했다.

 좋아지긴..아이고..

 

 

 

 

  근대에 맞서는 근대..다양성의 사회를 사는 지금, 하나의 이데올로기와 하나의 체제만을 인정하라고 한다.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밀려나고 내쳐지고 있는지..아직 벗어내지 못한 근대성에 대한 고찰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더불어..한국"적" 자본주의가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여야만 하는 장하성교수의 글도 더불어 읽힐 것 같다.

개발과 이윤에 밀려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그려낸 정낙추의 복자는 울지 않았다도..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실상으로 더할 나위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다.

 

1월..

조금은 딱딱하거나 암울할지도 모를 책들을 목록으로 잡는다.

물론 간간히 숨돌리기처럼 시집을 뒤적이고 또 다른 책들을 사들일게 분명하지만..단단하게 시작하고 싶다.

그리고..그렇게 정리가 되면..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더 오롯이 기억하도록 복습해야할 일이다.

 

 

 

 

 

 

 

 

 

 

 

 

 

 

정치인, 전문인, 그 무엇보다 끌어안고 지켜내야 할 "굴뚝인"에 대한 마음 나누기와 응원 또한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남은 이틀..

2014년의 악몽들을 쪼개고 부수어 현실이 되지 않게 할 방도를 궁리해봐야겠다.

그래봐야 책읽기로 끝날 지도 모르지만..

 

아디오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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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을 기억할 때, 우리는 얼마나 참혹한 것들을 떠올려야 할지 두렵다.

 헌정 사상 최초로, 전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국가가 정당을 해산한 것이다.

 무엇이든 세계 최초, 최대에 열광하며 세계적 순위에 드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국가라서 그랬을까?

 아닌 걸 아니라 말하는 것이, 불편한 것이다.

 아프다고 못살겠다고 우는 소리를 듣는 것이 불편한 것이다.

 

 이 책은 증보되어 나와야겠다.

 본 책 분량만큼의, 어쩌면 더 복잡하고 냉정한 눈으로 이번 정당해산 사건을 넣어야한다.

 

 

 

 언론의 자유로, 집회의 자유도, 결사의 자유도 박탈당했거나 박탈중이다.

이제는 출판의 자유가 남은건가?

 

 절반의 인민주권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어쩌면 막연한 정당의 의미와 천박하고 부정확한 시사상식으로 바라본 '정당'의 역할은 아니었을까.

그래서..이 사단이 나도록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바라만 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자신에게 자꾸 반문하게 된다. 결국 그랬다. 어떤 의미에서 나 역시 이 사단의 소극적 공범이었던 것이다. 권력과 이익집단과 정당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찬찬히 보고 알아둘 일이다.

 

 

 

 

 

 

 

 

 올 해는 갑오년이었다. 동학농민운동..그 갑오년에 민중들은 봉기했었다.

이 갑오년에 우리는 수많은 아이들을 잃고, 정당을 해체당했다.

 

넋두리따위 아무짝에도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그래도 속상한 건 속상한 거다.

 

 

 

 

 

 

 

 

 

 

 

 

 

 

 

 

 

 

 

 

 

 

 

 

 

 

 

 

 

 

 

 

 

 

 

좀 많이 웃기지만..이제와서..라는 단서가 붙기도 하지만,

어쩌면 우리는 와해공작(?)의 치밀함을 배워야할지도 모를일이다.

 

구심점이 없는 지금..통진당의 해산은 , 그들이 대변해주어야 할 노동자 농민의 처절한 현실만큼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젊은 친구들의 ot 사고와 세월호로 시작한 한 해를 통진당 해산으로 마무리 하게 된건..아무리 생각해도 최악이다.

꼰대가 아닌 제대로 된 어른이 되어야만 할 절박함이 과제로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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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 해 꽤 많은 책들을 사들였다. 물론 개인적인 기준일테지만..주문내역서를 보니 다섯개의 주문을 한 페이지로 봤을 때, 스무페이지가 넘어간다. 내게로 온것만..기프티북이나 친구에게 선물로 보내준 보따리들은 다 제외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택배씨와 카톡에서 친구먹고 있을만큼 가까워진 까닭도 이때문일것이다. 일주일에 두세번은 마주보았으니까..

허전해서 그랬을거다.

뭔가 자꾸 잃어버리는 것이 아프고 아파서..마음 한 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넘어 더는 눈물도 나오지 않을만큼 물기를 빼앗긴 몸뚱이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서 그랬을거다.

책으로라도 무너지는 균형을 잡아보려고, 기울어진 그곳에 받침처럼 끼워넣고 싶었던 것이다.

 

도서정가제..이후로 잠시 주춤했다가 다시 시작된 책 사들이기..그래 명품 백이며 화장품이며 옷가지를 사들여 낭창하게 지내는 것보다야 낫지..라는 이젠 낡아빠질대로 낡아빠진 변명을 여전히 해대면서 말이다.

 

 억울한 죽음들 앞에서 할머니가 하시던 말씀을 고대로 하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여북했을까...'결국 같은 말을 두번이나 다르게 표현함으로 정말 답답한 지경을 표현하셨던것일거다. 그래..며칠 전 우리는 이전투구, 혹은 궁중암투같은 요상한 일을 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밀리던 사람 하나가 그렇게 떠났다. 21세기를 살면서 십상시라니..

 

 자존의 철학이라고 한다. '반자살론'이라고..

 뭔가 살아야할 당위를 찾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죽을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살되..사는 것처럼 살고 싶다는 것이다.

 

 

 

 

 

 

  후마니타스의 신간이 나왔다고 했다. '자백' 그것도 '허위자백'

 증거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자백'은 엄청난 구속력을 갖는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많은 사건들이, 특히나 사상의 문제나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문제들이 급히 종결되어질 때, '자백'은 유용하게 쓰인다. 그 자백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우리는 자백이라는 말보다 '실토'라는 말에 더 익숙하다.

 어찌할 수 없이 뱉어버리는 사실..혹은 진실..

 중요한 건 "어찌할 수 없"던 그 상황이다. 그 상황이 인권이 존중되고 합목적적이었으며, 합리적이고 , 억압되지 않은 상황이었는가를 묻게 된다.

 강요된 자백은 아닐까?

 

 

 

생각이 많아진다. 연말이라는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떠난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자꾸 떠오르는지..

 

 

 

  별 연관성은 없는 조합이지만..요즘들어 부쩍 눈에 밟힌다.

 그쪽은 어때요? 괜찮은가요?

 괜히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사실은..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건지도 모른다.

유난히 추운 날..고공 농성을 하고 있는 저들을 또 잃을까 두려워서 말이다.

쌍용자동차..이 길고 긴 싸움을 끝내야할텐데..저 시린 손을 잡고 호호 불어주어야 할텐데..저 떨리는 입술을 멈추게 해야할텐데..

어쩌면 더는 갈데가 없는 건..저들이나 이 나라나 마찬가지일것 같다.

미안함이..허전함이..안타까움과 분노가..자꾸 빈 가슴을 만들고 나는 자꾸 사들인다.

내년에도 이러면 어떻게 하지? 쫓겨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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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벤트]


 1. 모집 기간: 12월 16일(화) ~ 22일(월)

당첨자 발표 : 12월 23일(화)

서평단에 선정되신 분은 12월 28일(일)까지 개인정보를 비밀 댓글로 적어주세요!

12월 28일(일)까지 확인이 되지 않으면 선정이 자동 취소됩니다.

서평 기간 : 12월 29일(월)~1월 9일(금)


2. 인원: 10명 (최종 응모자 수에 따라, 추첨 인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3. 참여 방법


- 응모 방법: 이 책을 읽고 싶은 이유와 스크랩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 서평 방법 : 서평 기간 동안 알라딘 계정으로 서평을 작성 후, 

<녹스 머신> 서평단 발표 포스팅에 알라딘 개인 블로그와 그 외 블로그, 외부 채널에 남기신 서평 링크를 댓글로 달아주셔야 완료됩니다.




“본격 미스터리와 본격 SF, 두 장르의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의 탄생!” 

                  - 오모리 노조미(평론가, SF번역가)


시간여행과 같은 장르 장치에 그럴싸하게 들리는 현대물리학 지식을 총동원해 얹었다고 해서 《녹스 머신》에 실린 단편들의 SF적 속성을 직설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노리즈키 린타로가 이 책에서 들려주는 네 편의 현란한 모험담이, 퍼즐 추리소설에 대한 연구와 예찬이 극한에 이르면 어쩔 수 없이 SF의 지평선으로 넘어가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막힌 예라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듀나(영화평론가, SF작가)


첫 장을 펴면서 가졌던 호기심이 작품 내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서 오히려 마지막 장이 아쉬워졌다.향만 피워도 가능해졌던 유치한(?) 시간여행이 진지하게 자기자리를 찾았고, 지끈지끈한 양자역학 문제 역시 기발한 미스터리로 변신했다. 내게는 최고의 미스터리인 <열 개의 인디언 인형>을 작품 안에서 되살려준 작가에게 감사를!                                       

- 김상연(과학동아 편집장) 




▌2014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1위!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3위, ‘본격미스터리 베스트 10’ 4위 등 화려한 수상에 빛나는,

  논리와 기발한 생각의 원더랜드!

 

《녹스 머신》은 2013년 3월 일본에서 출간되어 독자들을 뜨겁게 달군 그야말로 ‘핫한’ 소설이다. 많은 작품을 쓰지 않는 저자 노리즈키 린타로는, 신작을 펴내면 어김없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본격 미스터리 대상’,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이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등 미스터리 분야의 1~2위 상을 석권하는 거장 중 거장이다. 그 점에서는 《녹스머신》 역시 마찬가지다.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3위, ‘본격미스터리 베스트 10’ 4위에 올랐으며,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와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부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이렇듯 절대적인 독자들의 신임을 받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아마도 착상의 기발함과 신선함, 논리적이고도 과학적인 추리, 허를 찌르는 반전 등 미스터리 소설이 가져야 할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매번 독자들은 ‘이번에는 또 어떤 기발한 스토리와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나를 놀라게 하고 짜릿한 미스터리의 세계에 빠져들게 할까’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녹스 머신》에 수록된 네 편의 작품은 기발한 상상력과 탄탄한 논리력, 추리력으로 무장한 SF 미스터리이다. 각 작품은 연작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녹스 머신〉과 〈논리증발 - 녹스 머신 2〉는 발표 직후 SF 미스터리의 역사를 새롭게 쓸 위대한 소설로 찬사 받은 바 있으며, 〈바벨의 감옥〉은 천재적인 작가의 상상력에 한계가 없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준 공전의 히트 탈옥소설이다. 〈들러리클럽의 음모〉는 불멸의 고전 추리물에서 주인공인 셜록 홈스와 에르큘 포와로의 조수로 등장하는 왓슨 박사, 헤이스팅스 대위 등 이른바 ‘들러리’들이 모여 추리소설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서로 합종연횡하며 미스터리의 최고 거장 애거서 크리스티와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는 스토리로 신선함을 더해 준다. 

소설을 읽다 보면 머릿속에 퍼즐 조각이 펼쳐지고 작가가 걸어오는 두뇌싸움에 휘말린다. 각각의 작품들은 완벽하게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절묘하게 연결돼 있다. 촘촘한 논리의 구조 속을 헤치고 나와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 다시 첫 번째 소설의 처음 장면으로 돌아가 복기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탐정소설에 중국인을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

                              ― 로널드 A. 녹스(Ronald A. Knox)


대표작품이자 표제작인 <녹스머신>은 이 문구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가톨릭신부이자 추리소설가였던 로널드 녹스가 쓴, 추리소설의 원칙인 〈녹스의 십계〉중 한 항목이다. 녹스는 모두 열 개의 탐정소설 규칙을 정리했는데, 그중 도저히 해석 불가능한 독특한 항목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 제5항 “중국인을 탐정소설에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이다.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네 편의 소설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촘촘한 논리의 그물망을 치기 시작한다. 시간여행과 양자역학 그리고 미래사회에서의 소설읽기에 이르기까지, 상상할 수 없는 상상력을 풀어나간다.


2058년 4월의 어느 날, 유안 친루 박사는 국가과학기술국으로부터 소환장을 받는다. 영국작가 로널드 녹스가 1928년에 발표한 〈녹스의 십계〉를 주제로 쓴 그의 논문에 양방향 시간여행의 난제를 해결할 결정적인 실마리가 있다는 것. 유안은 녹스가 이 책을 집필하던 130년 전으로 돌아가 양방향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돌아오라는 임무를 맡게 되는데……. 


편집자 코멘트> 

200여 쪽의 짧은 소설집이지만 각각의 작품들은 서로 놀라운 반전을 거듭하면서 종에서 횡으로 연결된다. 그런 의미에서, 미스터리라면 흔히 떠올리게 되는 여름 휴가지보다는 잠이 오지 않는 깊은 겨울밤의 독서를 추천한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당신도 역시 일본 아마존에 남겨진 것처럼 “굉장한 소설이다. 이 한마디밖에는!”이라는 멘트를 내뱉게 될 것이다. 아, 밝혀둘 것이라면, 다음날 충혈된 눈은 보상할 수 없다. 또 이 작품 속에 언급되는 애거서 크리스티나 앨러리 퀸의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예정에 없던 지출을 하게 되는 것도.



▌책 속으로


불겅그레받이가 일곱 색깔 무지개로 빛나는가 싶더니 난로가 아지랑이처럼 흔들리고, 거기서 끝없는 심연의 검은 구멍이 열렸다. 그 구멍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얼굴 전체를 덮은 희한한 모양의 헬멧을 쓰고 은색 잠수복 비슷한 차림을 하고 있었으며, 등에는 커다란 상자 같은 것을 짊어지고 있었다. 녹스는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린 채 헤벌쭉 입을 벌리고, 그 인물이 헬멧을 벗는 것을 지켜보았다. 가늘게 찢어진 눈매의 동양인 남성이었다.

“자네, 대체 어디로 들어왔나?”

녹스가 억누른 음성으로 묻자 남자는 겨우 정신을 차린 듯 이쪽을 보고 되물었다.

“혹시 로널드 녹스 사제이십니까?”

직위인 사제와 경칭인 신부를 혼동하는 점만 빼면 동양인 특유의 어투가 느껴지지 않는 매끄러운 발음의 영어였다. 피부에 윤기가 흐르는 젊은 남자로, 유약한 인상을 벗어던질 수는 없지만 눈동자에는 지성의 빛이 살아 있었다.

“그렇네만, 자네는 아직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네.”

“죄송합니다. 그 질문에 답변하기 전에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여기는 1929년 2월 28일 옥스퍼드입니까?”

참으로 이상한 질문을 하는 남자라고 생각하면서 녹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자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무사히 도착했군요! 집필 중에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녹스 사제님. 소개가 늦었는데, 제 이름은 유안 친루입니다. 2058년 중국에서 온 시간여행자입니다.”

  ― <녹스머신> 중. 본문 52~53쪽



밴 다인은 클럽의 긴급이사회에서 크리스티 여사에 대한 탄핵 연설을 했다. 들러리 클럽에 대한 모욕죄,

독자에 대한 사기죄 그리고 탐정소설 형식 자체에 대한 모독죄로 《에크로이드 살인사건》의 죄상을 열

거하고는 큰 소리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탐정소설계의 규율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 <들러리클럽의 음모> 중. 본문 100쪽



고전 탐정소설을 읽기 시작한 계기는 거린다 고모의 양자장서에 있던 애거서 크리스티 컬렉션이었다. 크리스티 작품을 다 읽고 추천 목록에 이끌려 황금기의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빠짐없이 찾아 읽은 뒤 어떤 가상현실보다도 자신의 감성에 맞는, 미스터리와 논리의 이상향에 다다랐다. 그것이 바로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였다.

  ― <논리증발> 중. 본문 194~195쪽


▌저‧역자 소개


지은이_ 노리즈키 린타로

추리소설 작가이자 평론가. 일본 추리소설의 흐름을 뒤바꿔놓은 신본격파(新本格派)의 대표작가 중 한 명이다. 1964년 시마네 현에서 태어나 교토 대학교 법학부를 졸업했다. 명문으로 널리 알려진 교토 대학교 추리소설 연구회에서 현재 일본 추리소설을 이끌고 있는 아비코 다케마루, 아야쓰지 유키토 등과 함께 열정적으로 활동했다. 1988년에 쓴 첫 소설 <밀폐교실>을 눈여겨본 대작가 시마다 소지의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했으며, 에도가와 란포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미국 추리소설의 거장인 엘러리 퀸에 매료되어 그녀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예컨대, 천재 탐정이 등장해 단숨에 난제를 해결하는 현실성 없는 전개에 의지하기보다는 차근차근 치밀한 논리와 추리를 전개시켜 범인을 좁혀나가며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또 추리소설의 존재 의의나 밀실 구성의 필연성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는 등 ‘고뇌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엄격함을 기반으로 치밀하게 구축되는 추리소설을 쓰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는 장르의 근원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다고 평가받는다. 

〈도시 전설 퍼즐〉로 제55회 단편 부문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으며, 장편《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로 제5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수상, 2005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2005년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에 올랐다. 《킹을 찾아라》는 교환 살인을 소재로 도입부에서 범인과 동기를 밝히는 ‘도서(倒敍) 추리’를 도입한 형식으로 2013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이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2위 등 각종 미스터리 문학 순위에 올라 저력을 과시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 《요리코를 위하여》, 《1의 비극》, 《또다시 붉은 악몽》, 《노리즈키 린타로의 모험》, 《눈 밀실》,《수수께끼가 다 풀리면》 등이 있다. 《녹스머신》은 2014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1위에 선정되었다. 


옮긴이_ 박재현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상명대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외국어전문학교 일한 통・번역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도서 저작권 에이전트로 일했으며, 현재는 출판기획 및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에 《유령인명구조대》, 《하늘색 히치하이커》,  《도망치지 마 미하루 씨》,  《움직이는 집의 살인》, 《회오리바람 식당의 밤》, 《토막 난 시체의 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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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북스에서 제인 구달 신간, 나의 조선미술 순례』가 출간되었습니다.

디아스포라 서경식의 신간으로, 조국의 미술가들을 직접 만나 예술을 탐구하고

그에 얽힌 조선의 역사와 더불어 자아를 찾아가기까지의 여정이 담겨 있는 책입니다.


***







『나의 조선미술 순례』


디아스포라 서경식이 만난

조국의 미술과 미술가들



나의 서양미술 순례』 이후 20년, 

디아스포라 서경식의 또 다른 미술 순례기



한국의 많은 독자들이 서경식이라는 이름을 저자로서 기억하게 된 것은 1993년 번역 출간된 『나의 서양미술 순례』 덕분일 것이다. 이 책은 이제는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와 거의 하나의 분야로 자리 잡은 ‘미술 기행’의 거의 첫 출발에 해당하는 책이었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판매되는 몇 안 되는 미술 기행기이기도 하다. 

많은 독자들이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통해 그림 읽기의 새롭고도 친근한 방법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조국에서 옥살이를 하는 형들(서승, 서준식)의 옥바라지를 하는 30대의 재일조선인 청년에게 유럽의 다양한 미술관에서 만난 작품들은 지하실에 난 창문으로 겨우 들어오는 희박한 공기였다고, 저자는 그 책에서 기록한 바 있다. 예술이 역사와 현실과 삶과 독특하게 뒤섞이며 서로를 해석하거나 확장하는 놀라운 장면들이 그 책에 가득 담겨 있었다.   

이번에 출간되는 『나의 조선미술 순례』에서 저자는 이제 60대가 되어 유럽의 미술관이 아닌 한국의 미술관들을 순례한다. 30대의 재일조선인 청년이 집착했던 주제들, 죽음, 섹슈얼리티, 가족, 민족…… 같은 것들이 여전히 60대 재일조선인 노교수의 눈과 귀와 온갖 감각들을 사로잡고 날카로운 통찰들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과 삶의 변화를 따라 미묘하게 달라진 지점들 역시 드러난다. 

가령 저자는 이제 홀로 유럽의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작품과 고독하게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 F와 함께 때로는 제자들과 함께 ‘조국’의 미술관을 찾는다. 그리고 정말로 원한다면 그 작품을 만든 작가들과 직접 한국어로 대화를 할 수도 있다. 조국은 더 이상 그가 70년대에 보았던 군사독재 치하의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또 이제 형들의 옥바라지를 위해 조국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와 활동을 위해 찾게 되었다. 이렇듯 달라진 상황에서 저자는 20년 전, 30년 전 그림들 앞에서 던졌던 것과 똑같은 물음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이번에는 이 물음들에 답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이전에는 단순히 목격자에 머물 수 있었던 독자들을 이번 순례에는 더 깊이 동참시킨다. 위의 답을 혼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20~30년 전의 그 순례와 지금의 이 순례의 미묘한 차이들을 읽어내는 것은 작가 자신의 변화를 읽어내는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나 자신의 변화를 읽어내는 일이 된다.

한편 『나의 서양미술 순례』와 『나의 조선미술 순례』를 나란히 놓고 보는 일은 마치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나란히 걸린, 렘브란트의 34세 때와 63세 때의 자화상을 보는 일 같기도 하다.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삶의 질문, 궁극의 질문에 대한 답을 갈구하는 그 빛나는 눈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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