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
전영애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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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오래하면 길이든다. 흉내내기가 아닌 파고들기 들어앉기라면 더더욱 길이든다. 오랫동안 독일문학을 파고들어 들어앉은 이의 눈에 담긴 릴케와 하이네와 바하만,카프카, 괴테에 이르는 거대한 노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릴케의 싯귀를 편지 말미에 적어 보내던 열일곱 여자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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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적 체질을 사들고 온 날. 제목만 오래 보았다. 어떤 노래가 들었을까 짐작해보려는 것이었으나 짐작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처'라는 말에 몰입되어 처연해지고 애처로워지기 시작했다.
상처를 애써 피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시집의 제목은 운명적으로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는 새된 비명처럼 느껴졌던것이다. 슬퍼하거나 아파할 준비를 하고 시집을 뜯어 씹고 우물거린다.
이런..
상처적 체질은 맵싸했다. 기꺼이 상처받겠다는 한 사내의 선언 같았다.
마치 사랑하는 그니를 찾아 혹은 내것이 아니어도 그것이 사랑이기에 무심한듯 시크하게 심장의 한켠을 베이겠다는 선언같은 것이었다.
시집을 덮으며 돈키호테구만..하고 책장에 나란히 꽂힌 시집들 사이가 아니라 맨위에 올려두었다. 체질개선이 필요할 때마다..할매가 입이 심심하면 다락 문 뒤의 박하사탕을 꺼내 입에 물듯 뒤적거리기에 좋겠다 싶어서 말이다.
아직도 상처적체질은 약빨이 좀 듣는편이긴하다. 신약들이 쏟아지는 때에 아직도 간혹 꺼내드니..

 

김광석의 노랫말로 더 유명한 류근의 새 책.

페이스북에서 한꼭지씩 읽어보던 주인집 아저씨와의 에피소드는 신선했다.

그 이야기들이 묶여나왔다.


로시난테를 닮은 자전거와 집주인아저씨의 이야기..슬몃 웃다가 웃음 끝에 달리는 애잔한 물음들을 되받는다. 
아..되물음이 있는 이야기는 힘들다.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가면 좋으련만 살아 온 세월동안 닳고 물빠진 만큼 영악해진 촉은 그것을 감지하고 만다.
어쩌면 이이의 체질은 여전한지도 모르겠다.

과하게 비현실적인 비주얼(죄송)이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팔등신일줄이야.팔등신이 뭐야 구등신도 되겠네..

휘리릭 넘겨가며 가볍게 읽힐거라고 별의심없이 손댄것이 실수였다.
시집을 사오던 날만큼의 머뭇거림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왜?
싸나희 순정은 상처적체질인 두 남자와 로시난테의 대화인 까닭이다.

시바, 조낸으로 점철되는 서슴없음이 애잔하기까지 한 두 남자의 삶의 대화와 그 자리의 목격자처럼 우직하게 지켜보는 로시난테를 닮은 주인아저씨의 자전거.

나는..이 자전거의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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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아픈 날들이 연속이었다. 뭔가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사방에서 드글드글 끓어대는 분노와 알 수 없는 분풀이를 보고 있자니 피로하기까지 했다.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겠고, 어떤 방향인지도 알겠고, 무엇을 요구하는지도 알겠는데..저마다 와글거리니 머리가 아팠다. 그말이 그말이고..그소리가 그소린데..내 말이 더 정확하다 소리를 높이는..그러다보니 이런일도 있었대. 저런일도 있었대..따위의 가십들이 첨가되고 급기야 "한국문학" 전체가 조롱당하는 요상한 지경에 이르렀다.

욕지기가 났다.

표절이고 나발이고 권력의 카르텔이고 뭐고 간에 다 필요없고..조롱당하는 '문학'이 가여워 죽겠는거다

제 영혼을 쪼개가며 글을 쓰는 이들이 가엾어서 죽겠는거다.

제값을 받지 못하는 순한 글들이 안타까워 죽겠는거다.

 

제안이랍시고 내놓은 것은 비공개좌담이란다. 때려치워라.

문학권력이라는 것이 있다면..으로 시작되는 건방짐은 "함 해보자. 너,너,너,너..나와 봐..우린 꿀릴꺼 없으니까 문닫고 우리 꼬봉들 다 앉혀두고 허심탄회하게 풀어보자" 하는 오만함에 더함도 덜함도 아니다.

 

한 번에 휘리릭 바뀌어버릴 것 같으면 "권력"이라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고 "카르텔"이라 표현하지 않았을것이다.

오랜시간에 걸쳐 그 근본부터 물어야 할 일이다. 그들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신예작가들을 포함한 작가들이 버텨주어야 할터인데..그 힘의 일부,혹은 대다수를 독자들이 보태야하지 않겠나?

어쩜 이 판을 깨지 못하는 이유는..독자들의 절대부족에 기인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답답한것이다.

 

  답답해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친구가 보내준 책이다.

근대를 날짜로 풀어낸 안목이 대단하다. 지루하지 않고 쓸데없이 권위적이지 않으며 사건의 나열로 그치는게 아니라 그 배경과 전개, 그 속에서 국민들의 역할 혹은 희생에 대해 꼼꼼하게 짚어낸다.

 말 그대로 역사인문학이라 할 만하다.

 

 

 

 

 

 

 

 

 

  SNS에서 보게 된 책.

 전태일의 누이 전순옥이 창신동과 성수동 일대의 장인들을 만나 쓴 인터뷰형식의 책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그들. 때론 산업역군이라는 허명을 덮어쓰고 죽기살기로 일했지만 그 결과는 공유하거나 정당하게 분배받지 못한 이들이지만. 아직도 자신의 자리에서 미싱과 가죽을 다듬으며 기술을 키워가는 이들이다.

기술이 있어서 살아낼 수 있었던 사람들. 그것은 손기술이라기보다 삶의 기술이지 않았겠나 싶다.

눈물을 깁는 법..무시당함을 무두질하는 법..이런..

 

 

 

 

 

아!

 

  오츠와 작가들이 쓴 동화집이라고 무려 40인. 그 목록을 보니..존 업다이크도 있다. 우왕..

 얼마전 전량회수된 잔혹동시가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삶은 잔혹하다. 그 삶을 기록하는 손들은 인정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이어졌고..삶은 이어지며 잔혹함은 삶의 일부분이 되어진다. 그 누구도 조롱을 받아 마땅할 사람은 없으며 그 누구도 함부로 조롱의 입을 열어서도 안된다.

희망은 절망의 빈틈에 강하게 뿌리내린 씨앗에서 자라지 않겠는가.

지금..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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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부키의 책을 처음 접한 것은..바로 플라톤의 위염이었다.

 2년 전, 이 잔망스런 제목에 혹해서 집어든 책은 그 표지 때문인지 자꾸만 타부키의 신간을 기다리게 했다. 그렇게 하나, 둘 모아진 책들..

 

 

 

 

 

 

 

 

 

 

 

 

 

 

 

 

표지들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품는다. 다음 표지는 어떤 모습일까?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새로 구입한..

 페르난두 페소아를 알림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아닐까? 또한 그 딱부러지는 야무진 문장은 어떻고..이 못난이 아저씨 때문에 훌렁훌렁 읽어제끼던 페소아의 글들을 좀 더 묵직하게 읽게 되었다. 만만치 않은 두께의 불안의 서..

 조금 얄팍한 불안의 글..       

 

 

 

 

 

 

 

 

 

 

 

 

 

이런 타부키에서 페소아로 넘어가는 과정에 좀 더 깊이를 외치게 되는건 어쩜 당연한 요구였을지도 모른다.

 

 워크룸프레스의 제안들 시리즈..이 작고 심플한 책은 얼마나 유용하며 합리적이기까지 한지..

 

 

 

 

 

 

 

 

 

 

 

 

 

작가의 얼굴로 이어지는 표지시리즈..맘에 든다. 책에 표지가 무슨 의미겠냐고 따지고 든다면 뭐 딱히 할 말은 없다.

저급 독자는 표지에도 유혹당하곤 하니까..

 

아. 그러고 보니..페렉도 시리즈였다.

 

 

 

 

 

 

 

 

 

 

 

 

 

 

 

주말에 타부키의 책을 한권 더 선물을 받고 기분이 좋아져서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대는 거다.

자랑질을 하고 싶은데 살짝 민망하고 뻘쭘해서 ...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잘 받았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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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인이

손끝으로 종이를 넘기며

글자로 그린

소식을 읽고 있네

 

변하지 않는 표정 속에

비스듬히 앉은 채로

낡은 의자처럼

삐걱거리며

<이선욱 -우편>

 

시인의 말 :타이프로 친 시도 있고

              시로 친 타이프도 있다.

 

 

 

 

 

 

 

 

풍경이다. 손 대면 바스라질 듯 아슬아슬한 평온을 드러낸 채 별일 아니라는 듯 미소를 띠고 있는 풍경이다.

불룩해진 배가 신경쓰여 한껏 공기를 들여마시고 홀쭉해진 배를 보아달라고 눈짓하는 간절함 같은..그런..

그렇다고 억지스럽거나 위장된 풍경이라는 말은 아니다.

 

처음 시집의 출간소식을 듣고, 아니 시집의 제목을 듣고 음란마귀에 휩싸인 영혼임을 인증이라도 하듯, 뭐라고? '탁탁탁'이라고? 되물으며 어느 음침한 방구석을 떠올렸다.

시집을 받고 그 표지를 본 순간 맥이 풀린다.

아니 이건,

 

토이크레인의 색과 닮았어.

 독한연애의 도발적인 색도 아니고,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의 붉은 색도 아닌..

뭔가 배신당한 느낌적인 느낌?

 

 

 

 

 

 

 

 

 

 

그러니까..박현욱의 "동정없는 세상"을 읽었을 때의 느낌 같은 것이었다.

 

"한 번 하자."라는 도발적인 말로 시작하는 그 소설을 읽으며 얼마나 낄낄대며 공감했던가. 첫 문장의 강렬함이 이야기 속에 녹아버려 중간중간  "한 번 하자."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한 번 해라 쫌."이라고 대꾸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었다. 재밌었다.

그런건가?

 

 

 

 

 

 

두번째 시, 표제와 같은 '탁탁탁'의 뒷부분을 읽는다.

 

(....)

사방으로 길이 없는

벌판의 한가운데였지

끊이지 않는 서술의 소리를 따라

손끝에는 굳은살이 피어났고

그렇게 타자를 치던 어느 날이었다네

어둠에 날리는 글씨들은

점점 더 흐려졌고

타자기에선 부서진 낙타의 뼈가

흘러내리고 있었네

연달아 같은 문구들을 치고 있을 때였지

모가 닳은 자판 하나를

누르는 순간

무형의 뒤늦은 타점이 울렸네

무언가 손등에 떨어졌지

빗방울이었네.

 

가문 들판에서 염소들도 떠난 들판에 홀로 남아 타자기를 두드린다. 정확한 타법인지 익숙한 타법인지, 그것이 정타인지 오타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사실 중요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척 한다.) 그곳에서 타자기를 두드릴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사막과 닳아버린 잉크들, 때때로 제법 묵직한 소리가 나거나 경쾌한 소리가 나기도 하지만 일순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은살이 배기도록 타자기를 두드리는 그 일을 멈추지 않는다.

시인의 노래. 가뭇없이 사라져버린, 모래로 그득해서 비어버린 사막 한복판에 하나의 문구가 그득하게 사라져버린 그 곳에 무형의 타점이 불러온 유형의 증명.

탁탁탁...

타자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라, 바람에 모래에 텅 빔으로 가득한 그곳에 안간힘을 다해 다듬는 소리였을것이다.

 

제목을 헤아리고 나니, 모든 시들은 거대한 사막의 한 가운데 경쾌하게 쏟아지는 건조한 풍경을 닮았다. 어디에도 오아시스는 없다는 팻말이 입구에 있을것도 같다.

(입구도 출구도 없을테지만) 바람이 불거나 어둠이 스쳐가면 변검술사의 표정처럼 순식간에 바뀌어지는 풍경이겠지만 그곳에 펼쳐졌던 '탁'의 흔적도 없어지겠지만..

그는 끝없이 탁탁탁 소리를 흩어 놓는다. 그렇게 열심히 쪼거나 새기며 발자국을 남긴다.

어쩐지, 이 건조하고 변화무쌍한 곳에서 살아남진 않을테요. 하는 결기마저 느껴지는 것이다.

그의 마지막은 "탁"소리와 마무리 될지도 모르겠다.

타자기 치는 소리?

아니, 마지막에 떨어지는 차갑고 명징한 노랫소리..또는 그의 숨이 닫히는 소리.

 

그의 타자기 소리에 맞춰 빠른 속도로 다가서는 사이드와인더 한마리 쯤 있을 것 같은 시집.

 

타자기 하나 얻지 못한 사람은..뜨겁게 달구어진 사막에 손가락을 푹 찔러넣어 파도라도 그려보고 싶게 만든다.

탁,탁,탁..

모르스 부호처럼 저편에서 들려오는 시인의 노래에

톡,톡,톡..

아직 남은 이야기를 보태 사막으로 돌려보낸다.

 

나는..시인이 계속 투박했으면 좋겠다. 세련되려 애쓰지도 계획하지도 말고..굳은 살이 배긴 그 자리에서 빗방울을 기다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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