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나비

김귀정 학생을 생각하며


나는 죽어

검은 관 속에

하얀 나비가 되어 누워 있다


통곡하는 어머니의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너의

날개를 적시고....


전경들이 너의 죽은 원인을

확실히 가르쳐주겠다고

물대포와 최루탄을 쏘며

영안실로 쳐들어왔을 때도


너는 말없이

피 묻은 날갯죽지를

보여줄 뿐이었다.


설움도 없이 무덤 사이를

나풀나풀

날아다닐 수 있는 날은

언제일 것인가


태극기와 영정을 든

너의 학우들의 노래를 들으며

백병원 영안실 앞 은행나무들도

입술을 깨물며 비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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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초판이 나온 시집. 2011년 2쇄가 만들어진 시집.

1991년 5월 25일 김귀정은 떠났다. 성균관대 4학년 김귀정.

많은 이들이 어처구니없이 떠나야했던 1991년..강경대도 그렇게 떠났었다.

어처구니 없는 죽음은 세월 속에 더욱 간교하고 강고해져 매 해 데려가는 사람이 늘더니 급기야 수백의 어린 아이들도 한꺼번에 데려갔다.

그리고 숨쉬는 것만으로도 재앙이 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추모가 시작되었고 많은 이들이 그를 그리워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지는 그의 그림자를 만들어가고 있다.

산다는 게 뭘까? 생물학적인 생명징후를 믿을만한건가?


시인은 의사다. '시립병원에서'라고 제목이 붙은 시 모음들에서 지난 달 떠나신 어머님이 자꾸 어른거렸다.

중환자실에서..대여섯개의 기계가 지속적으로 약물을 투입하고, 인공호흡기가 강제로 숨을 불어넣으며 신장투석기가 돌아가던 시간..

이 모든 처치가 진행되는 동안 깊은 잠에 빠져 어떤 반응도 하지 못하시는 어머님은 그 상황을 알고 계셨을까? 의식은 있으나 움직일 수 없었다면..중환자실에서 100일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 시간동안 어머님은 살아계셨던걸까..

'통곡의 댐'이라 이룸 붙은 시 모음 사이에서 김귀정의 이야기를 만났다. 열흘 뒤면 베어낼 옥수수를 시청직원들이 환경정화한다며 베어버리고 옥수숫단 위에서 농약을 먹고 죽어버린 농부의 이야기를 만났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박종철, 수영미숙으로 인한 익사라던 이철규, 시위대에 눌린 압사라던 김귀정, 사격발사각도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을 뿐이라던 한국원..

변명이라기보다 비열하기 짝이없는 그래서 소중한 이들을 두번, 세번 죽이는 세월을 살아냈지만..우리는 아직도 죽어가고 있다. 더 많이 더 어이없게 더 치떨리게..


거룩한 추모의 대열이 이어지고, 통곡하는 이들의 붉은 눈매가 TV 화면에 가득하다.

어이없이 떠난 딸년의 사진을 끌어안고 흐느낄 어미는 누가 가서 위로해주나.

부채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빼곡한 비극의 시간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을 울고, 내일을 버틴 사람들은 25일을 기억하지도 알아채지도 못할게다.

하긴, 이렇게 떠난 사람들을 일일이 기억하며 달력에 동그라미를 친다면..우리가 눈물을 멈추어도 좋을 날이 과연 있을까 싶기도 하다.


불 붙은 가시덩굴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동안 제 몸을 던져 불을 끄고 동지의 손을 잡고 가시덩굴을 베어내며 '이쪽입니다' 외쳤던 사람들.

온몸으로 굴러 꺼 놓은 불 길을 조금씩 걸어나온 사람들..이젠 목소리를 내도 좋고, 이젠 남은 가시덩굴을 걷고 불구덩을 메워야하는데..오히려 제가 걸어온 길을 메운다.

이쪽으로 더 넘어오면 이 자유를 나눠야하지 않을까?

바보같은 욕심이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자유는 여럿이 틀어쥘수록 더 커진다는 걸 모르는 탓이다.


5월 23일..

추모의 그림자가 너무 짙고 길어서 문득 가리워질 이름 하나를 떠올린다.

1991년 5월 25일 퇴계로.

쏟아지는 최루탄과 백골단의 토끼몰이의 현장에서 '학생이 죽었어요'라고 외친 목소리를 떠올린다.

잠시 멈추었던 시간. 그 사이 김귀정은..나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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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엔 멀쩡한 내 왼쪽 눈은

시력이 형편없다 있으나마나 한

왼쪽은 아예 맞보기 알을 넣고

오른쪽 시력에만 맞추어 안경을 끼고 산다

시력도 형편없는게 말썽은 많다

왼쪽 눈에 자주 핏발이 서고 따끔거린다

눈병도 오른쪽보다 꼭 먼저 옮는다

오른쪽에 맞추어 따라다니느라 깜냥에

힘이 부쳐서 그런다고 한다

차라리 없으면 좋겠다고 투덜거렸더니

안경 너머로 건너다보며  간호사는

그나마 그 자리에 있는 게 얼마나 고맙냐고

외눈보다는 훨씬 낫다고 나를 타이른다

사실 나는 이제껏 외눈으로 살지 않았나

핏발 선 눈을 안대로 가리고 거리에 나선다

남은 눈알에 헛힘이 쏠리고

발이 헛디뎌지고 손잡이가 헛짚인다

시력이 형편없어도 무슨 구실은 했던지

외눈으로 세상을 가늠하기가 만만찮다

핏발 선 눈을 끝내 가리고

헛디디며 헛짚으며 갈 데까지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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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에서 나온 첫 시집이다. 주류(?) 출판사와 서울 중심의 한국문단에 문학의 다양성과 지역 출판의 지속성을 기치로 문인 20명이 십시일반 모아 만든 출판사다.

전주를 근거지로 하는..

태몽이 좋았고 아낌없는 사랑을 받으며 자란 새끼도 다 자라선 망나니가 되어버리기 일쑤지만..잘 자라라..기원을 보탠다. 어차피 아이는 동네가 키운다고 하지 않던가.


시들이 재밌다. 응답하라 1950이라 제목이 붙은 1부의 시를 읽으며 한참을 웃었다. 그려진 상황이 절묘해서이기도 하지만 순박함과 치기가 교차하던 시절을 기억해낸 까닭이다. 그런 때가 있었다. 2부의 맹장은 어디쯤인가로 넘어와 '이게 나라냐'를 읽으며 더욱 간교해진 샤일록이 잘 벼린 칼을 가져와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살을 도려낸 느낌이었다. 도려내는 순간까지 피 한방울 나지 않을만큼 예리한..내 살점을 들고 저만치 떠난 후에야 울컥울컥 쏟아져내리는 피를 확인하는 것 같은 참담함이 거기 있었다. 순박함과 치기의 시간을 남겨두고 간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두 눈으로 보아야 수평이 맞고 거리가 맞고 사물의 형상이 제대로 투사되는거지만 어쩌면 시간은 하나의 눈만을 선택하라고 집요하게 강요하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찌그러진게 정상이야. 사실은 더 멀리 있지만 가까이 있다고 믿어줬으면 해. 기울어 보이지만 착시야 모두가 공평하거든 조금 더 노력해 봐..라는 속임수가 통하려면 하나의 눈만이 선택되어야 한다. 수없이 헛디디며 헛짚어대며 제풀에 넘어지고 뒹굴어야 한다. 제 발 앞에 있을 장애물에 집중하게 해야한다. 저 멀리 서 있는 저격수를 찾지 못하게, 오직 발밑만을 주시하게..

매체들은 오른쪽을 선택할지 왼쪽을 선택할지 결정하라고 밤낮없이 주문한다. 채널을 돌리다보면 선택받지 못한 한쪽 눈의 상실감을 잊게 할 것들이 튀어나오곤 한다.

자꾸 헛짚으시죠? 눈이 문제가 아니라 걸음걸이에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요. 최저가. 더 이상 이런 구성은 없습니다. 구두를 사세요.

자꾸 헛디디시죠? 눈이 문제가 아니라 기운이 없는건지도 몰라요. 식약청 FDA가 인증한 건강보조제. 서두르세요.

선택된 한쪽 눈에는 자꾸만 헛힘이 실리는데, 아무리 구두를 바꾸고 보조제를 먹어대도 여전히 헛짚으며 헛딛는데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기만하다.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았을 아픈 눈의 효용을 깨닫는다. 잘 보아야 한다. 뿌옇게 보일지라도 그렇게라도 보아주는 눈이 있어야, 두 눈이 있어야 세상의 기울기를 알아챌 수 있다. 어차피 헛디디며 헛짚으며 사는 건, 눈의 문제가 아니라 헛다리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잘 보아도 엉뚱한 곳으로 길을 잡고야마는 헛다리..그래도 미숙한대로 서툰대로 처음의 모습으로 살아내야 한다.


노안이 오셨네요.

안구건조증이 심하시네요.

최근들어 자주 드나들이를 하는 안과에선 조금 더 잘 보게 처방을 내려주지만 시력은 자꾸 나빠지고 눈은 더 빨리 핏발이 선다.

그래도 아직 보이긴 한다는데 안도한다.

얼마나 더 헛다리를 짚으며 살아가게 될 지 모르겠지만..보아야 할 것들을 보아내고 눈 감거나 회피하지 않도록 훈련해야겠다.

내 눈이 더는 앞을 못보게 되더라도 이 눈이 안보이는 눈이라는 걸 탐욕스런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지금처럼 여전히 헛디디며 헛짚으며 가끔 절룩이며 살아야겠다.


수더분하고 깊은 시들이 거친 질감의 종이 위에 빼곡하다.

마지막 시 '잉어 한마리'의 마지막 연.


<뭘 물으려다 그만두는 날더러

 너는 지금 거슬러가는 중이냐

 휩쓸리는 중이냐

 주인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되묻고 싶은 눈치다>


아름다운 잉어가 어떻게 잡혔는지 주인에게 물을까 말까 고민하는 내용이다.

거슬러가는 중일까 휩쓸리는 중일까..꽃이 지천인 길을 헛디디며 헛짚으며 걸어보아야겠다. 분명 한쪽만 깊어진 발자국이 찍히겠지만 휩쓸려 가는 것은 아니라고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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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을 닫아도 햇빛이 가득하다

침묵만이 내 몸을 두르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눈꺼풀이 휘황한데


간판과 의자와

거닐고 또 앉은 사람들은 온통 주황빛이다

생경한 말들이 내 몸을 투과한다


긍지와 독설을 내뿜고

두려움으로 사람을 처형하는 동화의 광장


피의 압박 혹은 피의 이끌림

생체 시계는 조율 중인데


교수대에 걸려 부딪히는 시체들의 밤에도

소름을 경험하지 못하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기어가는 새를 경멸할 줄 아는 자들

피를 물감으로 아는 자들, 그들에게 경의를


침묵하는 개를 지나

경계석을 넘는 새의 그림자


통과할 듯이

단번에 날아오다, 멈춘 황금빛

나를 한번 쭉 훑고는 판단을 끝낸다


슬픔이 집시처럼 춤을 추고

음표는 걷고 음표는 가지에서 흔들린다

거위들의 행진 같은 것


변박과 고저를 번갈아 가며

끝나지 않을 내전의 지대를 건넌다


홀로그램처럼 세계가 겹쳐지고

그림자와 사람이 서로를 통과해 가는 광장에는

시간이 길게 꼬리를 내리고

웅크린 채 엎드려 있다


피의 흔적은

어느 순간 떠올라 흘러다니는 게 아니겠습니까

안개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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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 있다는 피의 광장을 떠올린다. 스톡홀롬 대학살이 있었다는 그 곳. 영문 모름과 억울함이 4분쉼표처럼 혹은 온쉼표처럼 적혔을 붉은 악보를 떠올린다.

광장..대학마다 있었던, 혹은 아직도 있었을 민주광장. 왕궁이 있던 곳이면 있었던 왕궁광장..아, 지금은 여의도 광장이라 불리는 옛이름이 5.16광장이었던 곳..

광장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 혹은 팔짱을 끼고 지나는 사람들, 또는 그곳에 모여 외쳐야 했을 사람들..광장은 그런 곳이리라. 지나가고 모여들고 환호하거나 비명으로 마감하는 공간. 광장으로 이어지는 골목들만이 발자욱 소리를 기억하고 내밀한 사연을 담았을게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함구한 채 광장으로 놓인 골목이라는 것에 자랑스러워하거나 수치스러워할게다. 실핏줄처럼 이어진 골목들에 둘러싸인 광장..광장의 보도블럭 밑에 켜켜이 쌓여진 피의 화석을 허리 굽혀 찾는 사람이 있을까.

그랬었구나..라는 밑도 끝도 없는 정보 수집으로 끝날지도 모를일이다.


교수대에 걸려 부딪히는 시체들의 밤에도

소름을 경험하지 못하는 동화 속 주인공처럼

기어가는 새를 경멸할 줄 아는 자들

피를 물감으로 아는 자들, 그들에게 경의를


최근 우리는 광장을 경험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광화문 광장을..시청앞 광장을, 그리고 광주의 도청 앞 광장을..

모두가 떨쳐 일어서는 광장의 힘과 광장의 생태를 현실 속에서 체득하고 역사로 기록한다.

그런 광장을 겪었음에도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가혹하다. 아직도 광장에 수혈이 덜 된 탓일까?

피폐해진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독설을 하고 비난하고 조롱하며 그 행위의 정당성을 폭력적으로 확인한다.

비난은 혐오가 되었다. 혐오는 누군가를 이유없이 죽일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 까닭도 모른 채 한 생명이 죽었고 이유는 간단했다.

여자에게 상처를 받아서..여자라서..

어떤 이들은 피의자가 정신질환을 겪고 있어서였다고 한다. 정신질환의 시작이 무엇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생래적인 질환이 아니었다면 무엇이 그를 그렇게까지 만들었을까..남성과 여성이라는 것이 전선을 만들고 마주서야 할 존재인것인가.

사람들의 추모가 이어졌고, 피해자를 다시 조롱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를 되묻게 된다. 저들은 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피의 광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 교수형을 당해도 '그랬대'라고 이야기할 만큼 건조하게..울며 추모하는 사람들을 조롱할 만큼 참혹하게..이어지고 있다.

강남역 출구 앞에 만들어진 추모의 광장은 드러난 광장이겠지만 수없이 많은 피의 광장들이 골목마다 도사리고 있다.

쫓겨나는 사람들의 눈물이 고인 광장. 땅 위에 광장을 허락받지 못해 높은 굴뚝으로 올라가 만든 하늘 위의 광장, 깨어나지 못한 사람에게 어서 일어나라 간절히 부르는 병원 앞 광장, 폭력과 조롱을 고스란히 받아낼 수 밖에 없는 여성의 광장,


결코 안녕인 세계..

많은 공간들이 들어차 있다. 그림처럼 고요하게 그려진 시 속에서 시의 혈관을 찾고 심장이 박동을 느끼는 것이 흥미롭다.

맥을 잘 짚는 용한 한의사에게 진맥을 받는다. 그는 심장이 안좋군요. 이렇게 치료를 해야겠어요. 조심하셔야 할것들이 있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도 아직 신장은 건강하군요. 이 아이를 살려봅시다. 이 놈이 힘차게 움직이면 다른 것들도 좋아지겠어요. 노력하셔야 할것들이 있어요..라고 말한다.

암담함에서 해볼만 한으로 바뀌는 상황. 의사의 마지막 인사 '안녕히 가세요'를 기껍게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안녕하다고, 안녕해야한다고..결코 안녕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문득..

광장 모퉁이에 서서 인사하고 싶어진다. 우리는 안녕할겁니다. 광장을 벗어나지 않고 끊임없이 싸우며 저 붉은 도로가 물감이 아닌 피의 역사인걸 말하겠습니다.

조롱과 혐오가 아닌 분리와 적대가 아닌 '우리'가 될 때까지, '우리'가 아니라고 우기는 저 입들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안녕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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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20 1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터넷 세계에도 피의 광장이 많아요. 같은 의견이 보이면 단합하다가, 의견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려고 합니다.
 

창작블로그란게 있다는 걸 알았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꾸역꾸역 읽어대는 습관에 어떤 변화 같은 걸 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하는것이 순전히 개인의 의지여야 하는 까닭에 별것 아닌 변명에도 곧잘 밀리고 밀리다 잊곤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서..읽었다는 사실조차 불분명해 질 때 블로그를 뒤져보면 리뷰가 있기도 했다. 서툴고 거칠고 투박하고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는 소리들로 뒤범벅인 걸 읽는다. 남들은 무슨소린지 모를 글이 신기하게 해독이 된다. 그 리뷰를 썼을 때의 감상같은 것이 기지개를 켜는 것이다.

짧은 메모 그런걸 해 두기도 하지만 수첩을 통째로 버리는 만행을 자주 저지르는지라 별 효과는 없었다.

 

스스로 강제 해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하다 창작블로그를 생각해내고 설정을 했다.

5월부터 한달간 매일..

제대로 하면 꼭 30개의 글이 만들어지겠지만 처음부터 틀어졌다.

1일과 2일..뭘 써야하지? 고민이 되었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결국 아무것도 못했다.

 

누가 본다고..어차피 혼잣말 아니었어? 라는 생각이 머리를 친건 3일.

3일부터 하나씩 시와 감상이랄것도 없는 생각을 쏟아냈다. 매일 시집 한 권을 독파하는 일은 고달프고 즐겁다.

단지 그걸 써내는 시간과 깜이 안되는 함량이 문제가 될 뿐.

뭐 대단한 거 한다고 가족들을 등한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휴일은 나도 쉰다.

14개의 시와 시집을 적어둔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그걸 내가 읽었나?'싶어질 때 증거물처럼 확인할 요량으로..

 

앞으로 5월말까지 성실하게 쓴다면 열개쯤은 더 쓰겠다. 장담할 수는 없다..하지만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것은 생긴다.

왜냐하면..매일처럼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어떤 격려처럼, 어떤 응원처럼..그렇게 느껴진 시선들에 감사한다.

 

이 연재를 마무리 하고 난 후, 다시 시작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눈길 보태주시는 이웃님들께 감사하고 싶어..중언부언 말을 골라본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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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5-19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천천히조급하지 않게 꾸준히 부탁드립니다..마라톤처럼요..100미터로 오래 못달리거든요^^

나타샤 2016-05-19 23:04   좋아요 0 | URL
좋은 경험이 동력이 되면 좋겠지만..^^
감사해요.

cyrus 2016-05-19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글을 보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사실 서평을 읽고나면서 느낀 생각을 댓글로 쓰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에요. 글을 읽었는데 아무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있어요. 아니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일이 수줍어서 안 쓰는 사람도 있어요. 아무튼 이유는 많아요.

나타샤 2016-05-19 23:03   좋아요 0 | URL
^^ 늘 감사드립니다.
 

너무 심심해서

그리고그러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


싸우기가 귀찮아

말줄임표로 숨은 너, 너희들을 찾아서


오월의 빛과 시월의 바람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 같은 언어들...

까르르, 백지에 알을 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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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에서 최영미 시인의 근황을 읽는다. 참담했다.(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9&news_seq_no=2886460)

 

 

이틀전만해도 한국문학의 위대함이 어쩌고, 가능성이 저쩌고 떠들어대며 축제의 잔을 높이 들고 있었으나 잔 아래, 팔 아래, 허리 아래 감추어진 현실은 엄혹했다.

글을 써서 먹고 살기 힘든 시절, 혹은 나라.

김중혁은 글로 벌(어먹고 살 수 있는) 작가가 되어야 겠다고 메이드인 공장에 써두었었다.

그것을 읽으며 짧게 웃었던 것 같다. 길게 웃을 수 없는 현실이 거기 있었으니까..

첫 시집으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시인은 글을 쓸수록 가난해진다고 했다.

어쩌면 시인이란 제 삶을 굴리고 부수고 끓이고 우려서 한 글자, 한 문장을 뽑아내는 아라크네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염없이 뽑아내어 세상에 내놓는 일을 멈출 수 없는 것..그러니 이내 피폐하고 곤궁해지는지도 ..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아서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정말 그런가?

책을 읽는 것이 생존에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하는 위태로운 삶이 지속되기 때문인건 아닌가?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요구 이전에 '살고 싶다'는 요구가 해결되지 않은 현실에 '인간답게'를 충족시켜줄 행위는 요원했던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시를 쓸게다.

왜냐하면,그녀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착찹한 마음에 책더미를 뒤져 최영미의 시집을 꺼냈다. 

후기에 쓴 마지막 문구를 읽었다. 최영미답다.


"시는 내게 밥이며 연애이며 정치이며, 그 모든 것들 위에 서 있는 무엇이다. 그래서 나의 운명이 되어버린 시들이여, 세상의 벗들과 적들에게 맛있게 씹히기를...

으자자자작  1998년 4월 최영미"


분명 시는 그녀의 연애이며 정치이며 모든 것들 위에 서 있는 무엇이다. 그녀의 운명인 것도 분명하다. 때로 그녀의 시를 왜곡해 씹어대는 얼토당토 않은 이들도 있었다. 신영복 선생과 엮어내려했던 추악한..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선언한 그녀의 시에 환호했던 이들도 있었다.

다만..시는 그녀의 밥이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와 그러나는 언제나 싸울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알을 낳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배고플 것이다.

그리고 온 삶을 뽑아내 직조한 글들은 잊혀질 것이다. 텅 빈 비문이 거기 남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러나'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참혹하게 이어지는 '그리고'를 인정치 않고 그녀의 알주머니에 씨가, 시가 그득해지길 반란군처럼 응원할 것이다.


오월의 빛과 시월의 바람 사이를 서성이는 날 선 언어들을 읽는다.


<싸워야지

낡은 수법으로 새롭게 길들이려는 손들에 맞서

싸워야지, 다짐해도

알량한 점심값 걱정을 하며 국수집 우동 앞에서

또 한번 살뜰히 오그라드는

오전과 오후 사이

폭삭,

주저앉는다

-최영미, 어떤 실종 중에서>


어떤 실종을 읽으며 긴 한숨을 뽑는다. 다만 읽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독자' 라는 이름이 자꾸만 '독사'처럼 오독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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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9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타샤 2016-05-19 09:53   좋아요 0 | URL
그렇죠..속상하고 화나고..한강의 쾌거와 최영미의 현실을 같이 보는게 비극인거죠..

2016-05-19 1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타샤 2016-05-19 10:21   좋아요 0 | URL
드러나지 않은 생활고가 이뿐일까? 생각하게 되요. 소위 베스트셀러를 찍은 작가도 이럴진대..ㅠ

cyrus 2016-05-19 1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아는 시인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김소월, 고은, 하상욱(?) 등을 많이 거론할 겁니다. 극단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시와 시인이 환영받지 못한 곳입니다.

나타샤 2016-05-19 17:57   좋아요 0 | URL
춤과 노래를 즐기는 민족임에도 불구하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