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꾸역꾸역 산다. 인터넷으로 지역서점에서 중고서점에서 어떤 이가 갖고 있다는 시집을 수소문해서..

이렇게까지 사들일만큼 좋은가?

그것은 아닌듯하다. 도대체 뭔가? 시가 뭔가? 감각되는 언어들의 정체를 알고 싶은 욕심때문이다. 찌릿찌릿하고 간질간질하고 욱신욱신한데 그 정체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미련한 머리통과 감성때문이다.

서툰 시선으로 자꾸만 읽다보면 알게 되겠거니 읽어대는 것일 뿐이다. 그 뿐이다.

다시 질문을 해 본다. 그렇게 정체를 알아내서 뭐할건데? 글쎄...세상에 살았다는 증명같은 걸 알 수도 있지 않을까?

다양한 시인선들이 시집출간의 묵직한 기둥역할을 하고 있다 창비시선, 문지시선, 문동시선, 실천시선, 민음시선...

아직은 문지의 손을 들어주고 있지만,..

시집들에도 패턴이 있다. 최근의 소위 세련된 시들은 어렵다. 또 서로 닮았다. TV에 나오는 어떤 노래 하나를 다양하게 편곡해부르듯 그렇게 닮아보인다. 솜사탕처럼 입 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예전 어떤 시들은 찐득한 엿처럼 오래 입속에 물고 우물거리다 치밀하게 잇새에 끼어든 마지막 한 조각까지 빨아먹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든든했다. 외할머니의 말처럼 근기가 있었다. 한조각을 먹어도 든든하고 만족스러운, 다음에도 또 먹고 싶은, 그것을 먹기 위해 착한 일을 기꺼이 하고 싶게 만드는..그런 것.

 

신선한 기획으로 나오는 시집들을 구매했다.

  등단시인들이 여러 지면에 발표한 시를 묶어내는 기존의 방법이 아닌 한권 분량을 한꺼번에 투고받아 검토하고 시집으로 묶어낸다고 한다. 등단의 조건인 신춘문예당선, 기타 공모를 통한 등단, 서너편의 시를 읽고 시인을 발굴하는 것의 비합리성(?)에 대한 문제제기였을지도 모른다. 공모전 출품작 서너개를 읽는 것과 한 권 분량의 시를 읽어냈을 때 찾아지는 시의 결을 보겠다는 의도 같은 것일게다.

 

유진목, 문학과 죄송사라는 독립출판사에서 시집을 냈었다고 했다.

조인선, 이미 다섯권의 시집을 낸 경력이 있지만 다시 등단한다는 자세로 시집을 엮었다고 한다. 안성에서 소를 키워 팔고 있다는 시인의 소개는 슬쩍 웃게한다.

 

 

 

시들이 탄탄하다. 재미도 있고, 오래 고아 만든 엿까지는 아니더라도 단단한 눈깔사탕만큼은, 아니 할배 제사상에 놓였던 무지개사탕만큼은 되고도 남는다. 내가 이런 평을 할 깜냥이 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랬다. 그런 느낌이다.

 

 삶창의 시선집에 뒤늦게 꽂혀서 역주행하듯 하나씩 사들이고 있다.

 대체로 투박하다, 표지는 늘 단촐하다. 문동시선의 컬러풀과 대조된다. 문동시선은 빠진 색을 채우듯 하나씩 구비하게 된다. 대체로 파랑계열의 색들이 내 책장엔 많다. 기호탓이다.

 '무명시인"이라는 제목에 끌렸다. 어쩌면 요즈음의 시인들은 모두 무명시인일지도 모른다.

노태맹의 시집. 시집 끝에 자리한 산문을 읽는다.

 

 

뜨겁다.

 

 

 

 

며칠 전, 유희경 시인은 시집전문 서점을 냈다고 했다.

그것이 시의 해방구가 될지 훼방구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시의 뜨거운 폭력을 견딜만한 독자들이 얼마나 있을지..등단이 아니더라도 만나게 될 시들의 힘을 얼마나 지지해 줄 수 있을지..그저 또 다른 유통창구가 될지..

 

시여..시를 낳아라.

간절히 주문하고 싶다.

시를 찍어내고, 시를 가공하고, 시를 포장하지 말고..

벌거숭이 핏덩이로 불덩이로 낳아라. 온 힘을 다 해 낳아라..라고 말이다.

 

아직도 시가 뭔지 왜 좋은지 나는 모르겠다. 아, 좋은게 아니라 궁금한거였지..

시를 읽는다. 가만히 읽는다. 읽기만 한다. 그래야 할 것 같다.

10-6-2
그러나 앞서 들뢰즈의 말을 빌리자면 "시의 임무는 보이지 않는 힘을 보이도록 하는 시도"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람직한 소통`은 가능하지도 않고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옳지 않다. 보이지 않는 힘을 보이도록 하는 시도는 소통이 아니라 폭력에 가깝다. 존재하지 않던, 보이지 않던 힘들이 독자들에게 폭력을 가한다. 과거의 예언자들이나 사제들처럼 소통이 아니라 불덩어리 하나를 던져준다.

10-6-1

그렇다. 시는 소통이 아니라 불덩어리다.

(벽암록을 불태우다/ 벽암록을 읽다(산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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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3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타샤 2016-06-03 14:47   좋아요 0 | URL
읽으려고 펴보니 페이지가 서로 붙고 울고 난리도 아니네요..이 또한 무명시인의 표정인가? 하고 웃었습니다..^^
 

명제는 참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 참인, 참에 가까운. 은 거짓이다. 단 하나의 예외라도 있으면 가차없이 거짓이 되는..그래서 참이 되는 조건은 아주 까다롭다. 오랜 시간을 애도와 애도를 징검돌 처럼 디디며 살아내다 보니 마음이 다소 늘어진 것 처럼 느껴졌다.

'어차피 한번 사는건데 뭐..'하는 소리를 생각없이 뱉어내곤 한다.

분명한 것이 필요한건지도 모른다. '나는 안전합니까?'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네'라는 대답을 듣고 싶은건지도 모른다.

'안전하다고 할 수 있죠'라든가 '거의 안전합니다'라는 말이 아닌 '네'라는 단단한 대답.

 

  한정판 세트가 눈에 들어왔다. 뉴턴. 길죽하게 생긴 아저씨. 어린 시절 뉴턴은 참 재수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직관에 대한 생각을 못할 만큼 어린 나이였을때. 하필이면 뉴턴 위에서 사과가 떨어져서 만유인력을 알게 되었다고 말이다. 귀여운 발상이었다. 그 비밀을 눈치채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구와 노력이 있었을까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단순한 과학자, 수학자가 아닌 뉴턴의 사유는 얼마나 넓고 깊은지, 머리가 굵어지며 뉴턴을 동경하기도 했다.

 

그의 전기의 결정판이라고까지 하는 이 비싸고 비싼 책을 감히 눈독을 들인다.

너무 간절히 읽고 싶어서..

한정판이라는 말에 마음은 조급해진다.

굳이 넘버링서비스 (?) 같은 걸 하지 않더라도 뉴턴을 읽고 싶은 사람들은 제법 될 것도 같다.

 

그간의 판매과정을 보자면, 신간이 나옴과 거의 동시에 중고서적이 나타나곤 했다.

이 책도 그럴까? 

콩닥거리는 설레임으로 책을 장바구니에 담으려는 순간, 밑에 보이는 중고서적..참 김빠진다.

도대체 그 출처는 어디란말인가..신간 알림을 받자마자 구매하러 들어오는데도 중고서적이 있다는건..도대체 알 수 없는 미스테리다.

어쨌든..모든것이 '참'의 요건을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고, 나는 어떤 확실한 것이 필요하다.

 

 얼마 전 읽은 생물학.."쉽게 쓰여진 철학책"이라는 말을 믿지 않듯이 '쉬운 과학책'도 찾기 힘들다. 하지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은 있다. 흥미로운 문제제기들,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던 범주에 대한 이야기들이 잘 정리되었다. 생물의 범주에 들어있어서 다행이야..

 

 오늘 받은 책.

 식물이 외부의 환경에 반응한다는 이야기는 들어왔지만 '뇌'라고 지칭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것인가? 아니면 뇌의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인가..여러가지 궁금증이 작용했다.

 

 

 

 

 

 

 

 

 

어떤 것 하나라도 분명하게 설명되는 것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아이작 뉴턴을 사기 위해..자꾸 통장 잔고를 확인하게 된다. 커피를 줄이고..식대를 줄이고..구매목록을 줄이고..

이런 노력이 과하지 않은 책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혜택, 사은품..이런 거 말고 '진짜 사길 잘했어!!'라고 환호할 책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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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01 1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뉴턴 평전 책 가격 너무하지 않습니까? ㅎㅎㅎ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사기도 망설여지는데, 거기에다가 한정판 프리미엄까지 내세우니 이 책 품절되면 현재 가격보다 더 비싼 중고책이 나올 거예요.

나타샤 2016-06-01 17:04   좋아요 0 | URL
가난한 독자들 사정 따윈 안봐주네요..갈등 중입니다..예약을 해야지가 조금 우세합니다..ㅠ

마립간 2016-06-01 18:59   좋아요 1 | URL
4명이 돈을 모아 구매 돌려 읽은 다음, 한 권씩 소장한다. 필요시 대여한다... 택배비가 지출되는 것일까요, 낭비되는 것일까요. 그냥 책이 마음에 들어 상상해 봅니다.

나타샤 2016-06-02 15:18   좋아요 0 | URL
@마립간 친구가 없어서..제가 좀 히키코모리입니다.

yamoo 2016-06-01 2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합성명제의 논리합은 하나의 명제만 참이면 전체 명제는 참이 됩니다. T(참인 명제) V F(거짓인 명제) = T(참) ..
논리 합은 그나마 그리 엄격하지는 않다는...^^;;

나타샤 2016-06-01 20:56   좋아요 0 | URL
ㅎㅎ 깊이 들어가시네요..네 그렇죠^^
 

스물 세개의 시들을 깜도 안되는 감상과 함께 쓰기 시작한 5월.

어쩌면 5월은 시를 읽어야만 할 것 같았다.

어느 하루도 빠짐없이 애도와 애도로 이어지는 참담한 하루하루를 살아남은 자로 버티는 건 아무래도 힘겨웠을거다.

공동묘지 위에 지어진 집처럼 밤이면 알 수 없는 존재들이 서럽게 울어대는 곳.

죽었지만 죽지 못하는 존재들 사이에 살았지만 살았다고 말할 수 없는 존재는 비명을 질러대는 것 외엔 더 할 것이 없었다.

그러니..노래가 필요했고 쓰다듬어 줄 손이 필요했다.

그렇게 시작된 시읽기는 5월이면 족했다.

 

개인적인..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은 때론 공해가 되었을지도 몰랐다.

매일처럼 적어내며 나는 나의 습관 같은 것을 본다.

단 한번도 깨닫지 못했던 습관. 말투, 혹은 생각의 흐름. 또는 넋두리..

자신의 어느 한 부분을 발견하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겠다.

 

더불어..별 것도 없는 감상을 같이 읽어주시며 격려해주신 분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

소리없는 격려 혹은 공감의 표시들이 힘이 되었다.

시집 한 권을 읽고 나면 진이 빠지곤 한다. 마치 CD 한 장에 수록된 모든 트랙을 따라 하루 종일 춤을 춘 것 같은 느낌이다.

생경한 리듬도 있었고, 익숙한 가락도 있었다.

어쨌든 마지막까지 읽어내고 낯익은 행간을 발견하는 일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시를 일게 했다.

 

앞으로도 또 이런 무모한 일을 더 할지는 미지수다.

별 것도 아닌 것이 제법 힘이 들었다고..

 

관심을 보여주신 분들께 감사를 전하며 이 연재의 공동저자라고 생각한다는 말씀을 전한다.

본격 혼잣말 리그였으나 대답이 없었다면 공허했을 일이었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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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31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묵묵히 글을 열심히 쓰는 분의 서재를 좋아해요. 사람 흔적 없는 서재의 썰렁한 분위기에 외롭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 너무 시끌벅적한 분위기도 좋지 않아요. 사실 서재 친구 아닌 이상 다른 분의 서재 글을 보는 기회가 별로 없어요. 저도 어쩔 수 없이 친구로 맺은 분들의 서재만 들러봅니다. 친구 아닌 분들의 서재도 찾아가고 싶은데, 어떻게 첫인사를 하면서 댓글을 남겨할지 망설입니다. 용기 있게 댓글을 남겼는데, 답글이 없으면 허무한 느낌이 들어요. 아무튼 연재하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타샤님 덕분에 하루에 좋은 시들을 매일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나타샤 2016-05-31 23:54   좋아요 0 | URL
지켜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가 좀 읽히면 좋겠다는 작은 속닥거림이었습니다.
소통이 낯선 사람인지라 거의 혼잣말에 가깝지만요..고마워요^^
 

그러면 다시 말해볼까

삶에 관하여, 삶의 풍경에 관하여,

주리를 틀 시대에 관하여,

아니 아니, 잘못하면 자칭 詩가 쏟아질 것 같아

나는 모든 틈을 잠그고

나 자신을 잠근다

(詩여 모가지여,

가늘고도 모진 詩의 모가지여)

그러나 비틀어 잠가도, 새어나온다

썩은 물처럼,

송장이 썩어나오는 물처럼.


내 삶의 썩은 즙,

한잔 드시겠습니까?

(극소량의 詩를 토해내고 싶어하는

귀신이 내 속에서 살고 있다.)



--------------------------------------------

최승자의 세번째 시집.

로트레아몽과 보들레르에 매혹되었던, 매혹되는 한 시기를 홍역처럼 거쳤던 때, 최승자는 달콤했다.

나는 어쩌면 설익은 염세주의자였는지도 몰랐다. 스물이 안되었던 나이부터 세상은 언제나 고함을 질러대는 검고 추악한 덩어리였고 그 속에서 한껏 맞은 뒤 제 상처를 핥으며 내는 어린 강아지의 신음처럼 있는 그대로의 고통을 드러내는 시들에 탐닉했다.

사춘기여서 그랬을까? 늦은 사춘기를 겪었다. 중학교 무렵부터 엄마는 딸년의 사춘기를 대비했다. 언제고 뻗어나올 그 시기에 상처없이 지나쳐갈 방도를 준비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딸년의 사춘기는 오지 않았고, 엄마는 이미 지났나? 의아해하다 지났나보다. 확신하고 사춘기대비책을 모두 폐기했다. 그 때, 모든 방비들이 무력화되었을 때 사춘기는 시작되었다. 애써 준비한 방책을 하나도 사용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감당해야했던 딸년의 사춘기..엄마의 고생은 차마 말하기도 어려울만큼 ...

'딱 같이 죽었으면 좋겠더라.' '진짜 내가 낳은 게 맞나 싶더라' '자고 있을 때 얘를 데리고 세상을 떠나는게 죄를 덜 짓는 길일까 싶더라..' 라고 엄마는 그 한 때를 이야기하곤 했다.

그 때는 그랬다. 분명하고 선명하고 노골적이며 파괴적인 에너지에 빠져들었다. 어쩌면 자신이 뛰어들어야 하는 세상이라는 괴물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것이 분명하다는 걸 눈치챘을지도 몰랐다. 싸워봐야 이겨내지 못할거라면 제 상처라도 핥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상처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아물고 있는 살집 사이로 삐집고 나오는 선홍빛의 피의 움직임에 그 비릿한 맛에 중독이 되어버렸는지도 몰랐다.

최승자를 읽고 상처를 읽고 분홍빛으로 꿀렁대는 내 속의 모든 상처받기 위해 준비중인 것들을 상상했다.

이 처절한 여인을 통해서..

시를 쓰고 짓고 만드는 이가 아니라 시를 토해내는 이 여인을 통해서 말이다.


빛나는 눈동자를 연인의 눈 속에서 찾기보다 제 눈알을 뽑아 들여다보며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하듯..최승자의 시는 본래적이다.

태초에 그 시어들은 그렇게 맞추어 쓰여지기로 약속한 설명서가 있었고, 최승자는 그 설명서를 엿본게 분명했다. 그 댓가로 시를 앓게 되었는지도 몰랐다.

완벽하게 말해지는 시들..그 사이에 빨갛게 배어나는 선홍빛 피처럼 배어 나오는 그 녀의 신음.


<그리하여 이제 휘황한

고통의 춤은 시작되고,

슬픔이여 보라,

네 리듬에 맞추어

내가 춤을 추느니

이 유연한 팔과 다리,

평생토록 내 몸이

얼마나 잘

네 리듬에 길들여졌느냐 (고통의 춤/ 중에서)>


<촛불이 타고 있는 동안은

심장이 타고 있는 동안은

결코 결코 기도하지 않으리라. (기도하지 않으리라/중에서)>


이 결연하고 영민함. 시를 토해내기 위해 시의 비밀을 엿본 댓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말은 차라리 시리다.


최승자는 무녀일지도 모른다. 시와 사람의 경계에 서서 시의 신탁을 전하는, 온 몸으로 시를 받아내고 사람의 말로 풀어내는 고단함을 기꺼이 수행하는 무녀.

참혹할 수 밖에 없는 삶을 잔혹하리만큼 투명하게 들여다보며 쏟아놓는 시.

이것봐요 내 심장은 이렇게 뛰어요. 이..것..좀 ..보..세..요..

여기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는 내 것이예요. 이렇게 맑은 피를 보셨나요?

자신의 심장을 꺼내들고 천진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그녀가 최승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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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1 09: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타샤 2016-05-31 09:5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신탁을 받는 중이시겠죠? 2010년 기사로 본 야윈 근황이 전부라서 궁금합니다..
 

아내가 시장에서 양미리 한 두름을 사왔다

스무 마리 한 묶음 노란 비닐끝에 묶여 왔다

사천 원의 생이 합동으로 엮여 늘어진.

그래도 생을 품을 땐 팔팔하게 바다를 거슬렀을 양미리

늙은 시인은 저녁밥상에 앉아

마리 당 일금 200원짜리 생을 이빨로 씹는다

난 얼마짜리의 생일까

뼈째 꼭꼭 씹어요 골다공증에 좋대요

마누라의 영양가 있는 말, 귓전으로흘리며

누가 내 생을 질기게 씹어줄 수 있을까를 시인은 곰곰 생각한다

마이너스 통장에 줄그어진 늙은 시인의 생

양미리 한 마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메마른 생을

누가 강한 턱으로 억세게 물어뜯어 줄 것인가를

시인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이제 허명뿐인 그의 이름을 누군가가 꼭꼭 씹어주길 바라면서

틀니 잇새에 낀 가시 하나에 잇몸이 찔리운다

아뿔사 갈매기 울음소릴 듣고 만 것일까

끼우룩!

목이 메어

손에 든 소주잔이 맑게 흔들리는 저녁



-----------------------------------------------------------------

 

시집의 제목만으로 울컥했다. 사람이 먼저다. 라고 쓰인 현수막을 본 적이 있다. '여기 사람 있어요!'라고 외치는 어느 현장을 지나친 적이 있다.

사람은 피상적으로 우선되어야 할 가치처럼, 내게 인식되어 있다. 그저 사람이라서..

그런 막연함은 사람에 대한 상처를 깊게 했다. 사람이 있다며, 먼저라며, 거기에 힘이 있다며?

사람에게 받는 상처는 무엇보다 크다. 비약하자면 같은 종족으로서의 존재성을 거부당한 것 같은 참담함이 들기도 한다.

또는 저 이와 나는 같은 부류가 아닌가보다, 라며 예단하여 선을 그어버리기도 한다. 구분과 구분..그 속에서 사람이란 얼마나 외롭고 유약한가.


해 질 무렵, 까마귀가 저녁 하늘의 한 귀퉁이를 물고 떼로 날아가고 어느덧 이윽한 밤이 되었을 때, 자꾸만 작아지는 인간의 섬에 슬며시 팔을 끼며 먼 바다를 같이 보아주는 사람. 그런 사람. 애인.

영양가 있는 말로 양념한 양미리를 내어 줄 수 있는 사람,

마이너스 생을 마주잡고 걸어 줄 사람.

바짝 말라버린 삶을 물어뜯어 줄 수 있는 사람. 수없이 많은 잇자욱으로 다만 외로운 생은 아니었다고 확인시켜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애인이겠다.


여백이 많은, 그림처럼 풍경처럼 쓰여진 최돈선의 시집을 읽다 문득 떠오른 정현종의 시.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중에서)>


최돈선의 시는 흑백영화처럼 읽힌다. 아무도 대사를 말하지 않는다. 촌스럽지만 귀에 박히는 배경음악이 흐르고 한 장면이 지나면 자막이 화면 가득 쓰이고 다시 다음장면으로 넘어가고..무성영화처럼 ..그러니 정작 시는 읽은건지 본건지가 묘연해진다. 때때로 까마귀의 소리가, 갈매기의 소리가, 할렘가의 눅눅한 소리가, 섬에 파도가 부딪는 소리가 사람의 말을 대신해 소리의 여백을 채운다


사람이 정말 애인일까.

내 팔뚝을 물어 뜯듯, 내 이름을 물어 뜯어줄 믿음직한 그대를 아직도 기다리는 시인은 풋사랑에 몸서리치는 소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덧 먼 생의 길을 걸어버린 시인.

< 생


잠이 햇살처럼 쏟아지네요 늙어가는 생 (생/ 전문)>


어쩌면 꿈이었을까? 사람이 애인인 꿈.


<사랑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고 오랜 기다림이라는 것을

처마 밑에서

비 맞는 푸른 산 바라보며 고양이가 운다. (새벽밥/ 중에서>


양미리처럼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늙어 꼬부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사랑. 기다리게 하는 이유. 그것은 사람이 애인이기 때문이다.

단 한 번 물어뜯기기 위한 간절한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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