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덮다를 반복한다. 어수선한 정국에 매일매일 분노와 통쾌함과 경악과 안도를 하는 요즘.

세월호 이후 모두가 앓고 있는 트라우마에 또 다른 트라우마와 피로감이 생기고 있는 듯 한다.

완벽하게 치유되지 않을 트라우마. 조급증이 자꾸 생기는 것도 그 이유일게다.

습관처럼 책을 읽지만 읽히지 않는다. 겨우 다 읽지만, 그래서 다른 책을 집어들지만 결국 다 잊고 만다.

왜 이 책을 집어들었는지를 이내 까먹고 구구로 읽는다. 이게 사는건가? 아니 이게 읽는건가?

 

그래도 오늘 민주당이 제대로 맞서주어 좀 다행이다 싶었다. 어설프게 세월호 합의 해주면 진짜..오래 묵혀두었던 잘 삭은 쌍욕을 쏟아주려했다. 배수진을 치고 탄핵 부결시 국회 해산. 괜찮다. 국민을 믿으면 된다.

 

어쨌든 책을 읽는다. 올 한 해 얻어읽은 책도 많고, 굳이 알라딘만 고집하지도 않았고, 다양한 경로를 확보하게 되어 즐거웠다.

배송을 해주는 서점들. 사실 지원하고 싶은 서점, 지원하고 싶은 출판사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렇게 마일리지와 굿즈가 없어도 받으면 반가운 책들이 있었다.

알라딘이 알려주는 올해의 책은 그래서 사실 많이 줄었다.

 

 

대형출판사들의 책이 빠져버리니 구입권수가 많지 않다. 시와 신화를 즐겨 읽은 것은 인정. 

 

결국 잊는다. 책을 읽고, 다음 책을 잇고, 그리고 잊는다. 읽는 행위만 유지되고 있는 것 같다.

이 상황이 정리가 되면, 진득하게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탄핵 이후가 더 치열해질게 뻔하다.

일상을 속에서 책 읽는 시간이 정세를 읽는 시간으로 대체되고, 예전처럼 읽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거나 억울해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래도 읽긴 해야하고, 사긴 해야한다.

SNS에 누군가 올린 포스팅이 떠올랐다.

 

[최순실이 개입하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어보이지만 한 군데, 출판에는 개입하지 않은 것 같다. 돈이 안된다] 라고..

 잊더라도 읽어보자. 잊기 위해 읽어보자. 덧없지 않음을 믿어보자.

책이나 읽어야겠다.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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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8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08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2-09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을 안 사고, 도서관 책을 많이 찾게 되니까 다 읽지 못한 책이 많습니다. 저도 마음을 차분히 가지면서 한 권씩 다 읽고, 리뷰를 기록해야겠어요.

2016-12-09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2-09 12:31   좋아요 1 | URL
평소대로 리뷰를 쓰시면 됩니다. ^^
 

정신을 차리는 것이 어려운 시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단히 정신줄을 붙들고 있어야만 한다.

날마다 터지는 이야기들이 놀라움을 넘어 천박할 지경이다. 이것이 어느 방송사의 특종때문에 일어난 일은 아니다. 이미 수없이 징조는 나타났고 서로 피해자라 이야기하며 덩달아 떠드는 정치인들, 재벌들, 부역언론과 관련자들이 공범이었다.

재벌은 뇌물을 주고, 준 뇌물의 몇십배 몇 백배에 달하는 이익을 거둬들였다. 그들의 커넥션에 함구한 댓가로 언론은 말하는 법을 잊었다. 그리고 이지경이 되었음에도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라며 반문하는 이가 있다.

해방이 되었을 때, 열혈 앞잡이 노릇을 하던이에게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했냐고 묻자 해방이 될 줄 몰랐다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읽었을거다. 저 단단한 탐욕의 연대를 이루고 있는 이들도 같은 대답을 할지도 모른다. 들통날 줄 몰랐다.랄지 국민들이 이렇게 나설 줄 몰랐다랄지..여전히 평화와 질서라는 프레임에 갖혀있긴 하다만, 87년 이후로 온 세대가 말 그대로 '공분'하고 있는 현상이다.

그 와중에 아직도 그들을 비호하고 빨갱이와 종북이라는 단어를 철갑처럼 두른 이들이 남아있다. 그들의 신념이라면 어쩌겠는가. 어버이라는 이름을 달력에서 도려내고 싶다. 엄마라는 이름을 돌려놓고 싶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라며 '사악한 사탄의 무리'라며 총궐기 한 쪽에서 울며불며 기도하고 찬송하던 이들도 생각난다. 리퍼트 대사가 다쳤던 때, 그 황당하고 민망했던 퍼포먼스도..

 

그들만의 연대에 기독교도 한 축으로 작용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속칭 개독이라 불리는 사람들. 우리나라 기독교의 짧은 역사와 한국의 특수한 환경 속에서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종교. 무엇이든 '한국적'이라는 말이 붙으면 해괴해지는 것이 참 그렇지만..

 

모태신앙은 아니었지만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주일학교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신앙이 좋은 아이였고, 성가대에서 찬양하기를 좋아했고, 성경퀴즈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학생회 임원이 되었고, 그 몸서리치게 설레는 교회오빠를 사랑하기도 했다. 청년부가 되어서 교회를 떠났다. 아니 쫓겨난거다.

봉천동 달동네 사람들의 철거반대 싸움에 같이 나섰던 것이 화근이었다. 가난했던 사람들을 위해, 그들과 함께해야했기에 거기서 머물다 끌려가고 단순한 처벌을 받고 돌아온 교회에서 장로회의가 열렸다. 그 싸움에 참여한 청년부 간부 셋을 제명했다.

수많은 항변의 말이 머릿 속에 그득했지만 굳어버린 그들의 신앙과 잘못 이해된 성경, 그리고 천박한 선민의식과 구원의 오해는 젊은 나의 항변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세상은 변했고, 성경은 화석이 되어간다. 믿음은 순결성을 상실하고 맹목이 되어가고 구원은 충성의 증거를 내밀지 않으면 내주지 않을 귀하디 귀한 것이 되었다. 거리로 나오는 성직자들이 배척당하는 것은, 마치 사회에서 내쳐진 자를 품은 예수의 모습을 닮았음에도 이미 굳어진 눈을 가진 이에게는 위협이 되는 불온함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겠는가.

 

우리가 읽어야 할 성서는, 우리가 알아야 할 예수는, 우리가 따라야할 제자의 길은 어디에 있겠는가. 어떤 모습이겠는가.

계간지 삶이 보이는 창에 연재되던 이야기를 책으로 묶었다고 한다. 200페이지도 안되는 분량. 여기에 우리가 봐야할 알아야 할 예수의 모습이 보였다. 신앙을 되찾는 일은 없겠지만 내가 알고 있던 예수와 닮았다. 반가움과 격한 동의로 읽어낸다.

 

가난한 출판사, 교정보는 일이 녹록치 않았는지 오탈자가 꽤 많다. 몇개를 제보해주었다.

부끄러워했다. 이런 모습으로 책을 내면 안되는데..라며, 자본력이 되면 전량 회수하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 사람에게 독자들에게 제보를 받아 재쇄를 찍을 생각을 해보자고 했다. 내가 뭐..그냥 독자지만 안타까웠다.

그럼 얼마나 뿌듯할까.

 

어떤 기대나 선입견 없이 제정신으로 반듯하게 만나는 예수..그 이야기가 시원하다. 구세주가 아닌 친구 예수. 그러고 보니 한달쯤 뒤면 그의 생일이다.

말빨이 되면, '이 책 한 번 보시겠습니까?' 라고 설득이라도 할텐데..그럴 재주도 없고..이렇게라도 응원을 보낼 밖에..

 

이 출판사..LG홍보실만큼 홍보를 못한다. 에구..

 

제정신으로 살자. 무정부상태임에도 지금껏 나라를 끌고 온 것은 우리들이지 않은가. 우리의 구원은..우리가 만드는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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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에 나오는 모든 존재가 거리로 나섰다. 아침에 네 발, 점심에 두 발, 저녁에 세발..

저마다 서 있는 시점은 아침이며 점심이며 저녁이었지만 그 모든 시점사이를 흐르는 한마디 "씨발됨"

황정은의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한 대목이다.

폭력적인 너무나 폭력적이고 비상식적이고 몰염치한 여자의 제정신이 아닌 폭주상태를 앨리시어는 '씨발됨'이라고 했다.

어쩐지 너와 나, 우리는 제정신이 아닌 여자의 폭력에 무참히 굴욕을 강요당하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 그럴 때 그녀는 어떤 사람이라기보다는 어떤 상태가 된다. 달군 강철처럼 뜨겁고 강해져 주변의 온도마저 바꾼다.

 씨발됨이다. 지속되고 가속되는 동안 맥락도 증발되는, 그건 그냥 씨발됨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씨발적인 상태다.

앨리시어와 그의 동생이 그 씨발됨에 노출된다. 앨리시어의 아버지도 고모리의 이웃들도 그것을 안다.

알기 때문에 모르고 싶어하고 모르고 싶기 때문에 결국은 모른다."(p40)

 

 

 

 

마치 비련의 주인공인양, 순수하고 순진하여 악한이들의 희생양인양 울먹이는 여자는, 어떤 것이라도 협조하겠다는 여자는, 결국 검찰조사에 협조적이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고, 백만이 모인다고 대통력이 바뀌어야 하냐는 말로 자신의 거취를 분명히 했다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자 간사한 야당것들은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기어이 뻘짓을 하고야 말았다.

어제 내내 '니가 뭔데?'라고 추미애에게 물었다. 도대체 니가 뭔데?

오늘 또 다시 묻는다. '당신이 뭔데?' 문재인에게 묻는다.

도대체 무엇인가? 어째서 이 엄중한 국민적 심판 앞에 의연하게 나설 생각을 하지 않고 권력의 부스러기라도 핥으려는 작태를 보이는가 말이다.

 

특검이 이야기되고 사람들은 '이정희'를 찾았다.

그녀를 찾지 말자. 두려움과 몰상식으로 그녀에게 돌을 던지고 정당이 해체되는 걸 지켜만 봤던 사람들..그 순간 민주주의는 심한 균열이 생긴거다. 정당해산이라니..

이정희라면 말 그대로 제대로 조져(?)버릴 수 있을거다. 하지만 그렇게 그녀를 소비해서는 안된다.

강요해서도, 압박해서도 안된다. 그녀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에도 노동자들과 싸우고 있었다. 김앤장이라는 거대한 탐욕의 집단을 상대로..

 

  그녀의 모습을 복기 한다. 그녀의 단단한 이야기를 읽는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걸까, 혹은, 우리의 현 위치는 어디쯤이며 이 씨발됨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어째야 하는지..잠시 호흡을 골라야 할거다.

 

 

 

 

 

 

 

 

 

 

 

 

긴 싸움이 될것이 분명하다. jtbc가 버텨주고 있지만, 끝까지 함께 파헤치겠지만 국민의 권력은 아직 초보적이며 양질전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착하고 순한 군중..

오월대, 녹두대를 생각했다.

연희동에 전두환을 잡겠다고 밤낮으로 쳐들어갔던 소위 체포조 친구들도 생각했다.

비폭력 불복종이 한반도에서 얼마나 적절한 것인가도 생각한다. 군사정권의 그들이 깊은..이 땅에..

 

씨발됨의 한가운데를 걷는다.

낯익은, 혹은 낯선이들을 만난다.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안다.

결국 여기서 싸울것이다. 앨리시어처럼..동생을 위해서, 친구를 위해서..가족을 위해서..

무언지도 모를 '위함'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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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이야기 - 음식에 숨겨진 맛있는 과학
최낙언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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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밥투정을 할 때면 밥상 맞은 편에 앉아계시던 할머니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시며 보릿고개 이야기를 하셨다.

'니들이 배고픈걸 몰라서 이러는거야. '라며..

조금 더 자라서 아무때나 틈이 날 때 급하게 밥을 먹고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곤 했다. 엄마는 늘 걱정이었다.

'규칙적으로 먹어야지. 집 밥을 먹어야지..'하며

아이들을 키우고 그 아이들이 독립해서 혼밥족의 대열에 합류하고 덩그러니 남은 내외는 머리를 맞대고 늘 회의를 한다.

'뭐가 맛있을까?'..


먹는 일의 의미가 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떠올린다. 포만감에서 건강으로 그리고 맛으로..먹는 행위는 이 세가지를 모두 담고 있지만 어디에 방점이 찍히느냐의 문제였던 것 같다. 먹을 것이 넘쳐나고 먹방이 대세이고 스타세프들이 티비를 평정하는 요즘. 그렇다면 '맛'이란 뭔가에 대한 의문은 자연스레 생기게 된다.

그 맛의 정체를 묻고 대답하는 책.

VJ특공대 같은 티비 프로그램에서 맛집을 취재하면 사람들의 대답은 어느 순간부터 한결같았다.

"담백하고 맛있어요."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고 맛있는 것.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있고 인공의 맛이 없어서 좋아요."

재료 본연의 맛은 있나? 인공의 맛의 경계는 어디지?

"시골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오로지 손맛으로만 음식을 하시나?

늘 갸우뚱 거리던 것들의 답을 찾는다.

의심하고 있던 맛의 비밀, 혹은 오해때문에 누명을 쓴 재료들. 설탕, 소금 같은 흰 가루들은 참 억울했을 것이다.


'맛'을 이야기하는데 다양한 의견들을 인용하고 여러가지 분야의 증명들이 첨가 된다.

식품영양학자나 요리전문가의 글이 아닌 생리학자와 인문학자, 철학자와 심리학자 작가의 이야기까지 모두 모아놓은 이야기는 한마디로 광대한 인문학이라고밖에.

맛의 인문학. 그렇게 정의해도 좋겠다.

과학적, 사회적으로 증명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속에 감성적인 부분들, 우리가 기억하는 '맛'의 왜곡점을 이야기 하는 대목에선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잘 조합되어지는 맛. 그 맛엔 맛과 맛 사이의 조화와 시너지 뿐 아니라 그걸 먹는 사람의 정서까지 포함되어야 한다면 정말 방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유, 정말 맛있네" 라는 말에 담기는 여러가지 의미들은 맛이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비밀들의 총합일지도 몰랐다. 따로 분리해서 짠맛이 어느 정도이고 단맛이 어떻게 배치되었으며 매운맛과 신맛의 첨가 정도는 얼마나 되어서 조합이 잘 되었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 그저 맛있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상황에 '맛'은 그 모호성만큼의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100퍼센트 동의한다고는 할 수 없겠다. 아직도 고집스레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며 그 오해를 철회할 만큼의 설득이 되지 않은 까닭이다. 너무 방대한 이야기여서 내 반론이 무참히 깨지는게 싫어서부리는 오기일지도 모른다.


얼마전 높으신 분들의 식탁이 세간에 회자되기도 했다. 비싼 재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은 사람들. 단지 비싸다는 이유 뿐 아니라 그 음식이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비윤리적 행위에 대한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에 대한 지탄일지도..

사람들은 점점 '미식'을 탐닉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한끼조차 맛있게 먹고자 한다. 어쩌면 이것은 존중받고 싶어하는 심리의 발현이 아닐까? 생명을 유지하는 최초의 단계 섭식을 맛있게 해결함으로 위로받고 싶은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재미난 책이다. 도대체 안 다룬 분야가 뭐야? 싶게 방대한 분야에서의 분석이 흥미롭다.

가방 속에 언제든 시간이 나면 먹으려고 사발면 하나를 넣어다녔다던 청년을 생각하면 '맛'을 탐닉하는 것이 어쩐지 죄스럽기까지 하다.

어쩌면 가장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할 시간은 노동의 시간이 아니라 식탁의 시간이며 밥상의 시간이지 않을까?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데 '맛' 따위가..라는 생각은 접어야겠다.

그 한끼 마저도 사람답게 '맛'있게 먹어야 할 권리가 있을테니까..


'미식의 가치는 행복에 있"다고 말하는(p315) 대목에서 무릎을 친다.

맛은 개인적인 행복일거라고..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떠올려본다. 모든 맛을 분석하며 행복해하는 주인공..

'그래, 이맛이야!'

오래전 할머니의 손에 들려있던 천사모양의 용기..인공조미료 아이미의 기억을 용서하기로 한다.

맛있었다. 할머니의 손끝에서 적당히 계량된 그 맛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든 맛있게 음식을 해주려했던 그 마음을 기억한다.


맛과 행복의 인과관계를 이해한다면 이제 이렇게 인사해야겠다.

"늘 맛있으시길. "

삶의 맛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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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의 할매들이 또 시집을 들고 나오셨다.

아침 뉴스에서 구미의 한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났고 칠곡 인근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말을 듣고 할매들을 생각했다.

사상자들과 미흡한 안전조치, 또 죽음으로 문제를 드러내는 현실.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겠냐는 한탄보다 할매들이 먼저 떠오른건 안심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뭔가 부족하고, 뭔가 성에 안찰 때, "할머니~"하고 달려가면 어떻게든 해결해주던 신묘했던 경험이 불러낸 데자부 같은 것이었으리라.

 

 

 

 

 

 

 

 

 

 

 

 

 

 

 

 

시가 뭐고? 를 읽으며 찌릿찌리했던, 콤콤하지만 그리운 할매냄새를 떠올렸던 기억은 그 2탄일지도 모를 '콩이나 쪼매 심고 놀지머'의 출간 소식에 마음이 바빴다. 얼른 사야지 싶었고, 득달같이 주문을 했고, 겨우 받았다.

그저 시집인데..심심한 손주년에게 '콩 쪼매 심고 놀자'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저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할머니들의 시집이 종종 나온다.

할머니 시집들에서 서툴고 어설픈 이야기와 그 속에 녹아든 삶의 이력, 뭐 이런 것들을 찾아내며 애잔해하는 것.

그것만 볼 것은 아니다.

진정성이라는 묘한 말로 얼버무릴 일도 아니다.

절묘하게 떨어지는 리듬. 구석구석 파고드는 은유도 직유도 까짓 시적 작법 따위를 몰라도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 시어들..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배우는 할매들, 그렇게 써내는 작품들..그것을 모으는 손길. 이 모두가 참 건강하다.

이 시집은..건강하다.

 

아, 얼마 전에 본 할머니시집 중에 인상 깊은 것들도 있었다.

칠곡 할매들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그 나름의 맛이 있다.

 

 

 

 

 

 

 

 

 

 

 

 

 

 

 

 

 

일흔이 되면..시를 배워야겠다.

시나 쪼매 쓰고 놀지 머..하며 합죽하게 웃어보는 것도 이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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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10-19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할아버지들도 시를 많이 썼으면 좋겠습니다. 연세가 많은 남성 어르신들은 몸을 움직이는 활동의 취미를 선호하는 것 같아요. 등산, 운동, 악기 연주를 좋아해요.

yureka01 2016-10-19 2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할배들도 분발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