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
알라딘에 첫 주문을 했다. 아이디도 만들고..지방 변두리에서는 서점을 찾기도 어려웠고 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찾기는 더 어려웠다.
바슐라르의 촛불의 미학.과 로트레아몽. 콜린 윌슨의 잔혹 1.2를 구매핬다.
그러니 햇수로 20년. 알라딘을 통해 책을 구입하고 읽은 역사가 꽤 되는 셈이다.
간헐적으로 책을 구매하고 혼자 읽었다.
2013년에 처음 서재에 뭔가를 적었다.
쑥스럽고 민망한..누군가 나의 함량미달의 끄적임을 볼 수도 있다는 건 참 부끄러운 일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람 자체가 작고 편협해서 누군가 좋아요를 누른걸 발견하면 이내 얼굴이 화끈거렸고 댓글이라도 달면 이를 어쩌나 당황하곤 했다. 그러다 올해의 서재(?)도 되고 서너해쯤 지나 쓰기를 거의 멈추었다.
꾸역꾸역 맥락없이 읽기는 이어가고 있지만 말이다.
독보적서비스가 런칭되고 어차피 읽는 거, 어차피 걷는 거..밑줄을 그으며 눈이 피로하면 잠시 걸으며 읽는다.

책은 나에게 오랫동안 마법을 걸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다른 책을 끌어 읽는 법을 찾고, 혼잣말로 삼키던 감상을 나누는 법에 익숙해지게 한다. 조금 더 나아가 이제는 좋아요를 발견해도 어쩔줄 몰라 하지 않고 고마워 하게 되었다. 어쩐지 책의 고수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주춤대던 것이 조금은 무뎌졌다.
짬밥이라고 해도 틀린말은 아니다.
이십년. 아이 하나가 성인이 되도록 책 창구 역할을 한 알라딘과 그 시간을 읽어 온 마법 같은 책을 생각한다.

가스통 바슐라르에 한창 빠져있던 그 때가 문득 생각났다.
조금 걸어야겠다.
몽상을 풀어두기 참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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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아내 봄날의책 세계시인선 5
캐롤 앤 더피 지음, 김준환 옮김 / 봄날의책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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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그러더군, 종신형이라고, 감방 안에서 죽어가는 것.
그 악마는 악하고, 미쳤지만, 나는 그 악마의 아내,
이게 나를 더 나쁘게 만들었어. 난 내 감방에서 울부짖었어.
만약 그 악마가 가버렸다면, 어찌 여기가 지옥일 수 있지?

(악마의 아내-2.메두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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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아내 봄날의책 세계시인선 5
캐롤 앤 더피 지음, 김준환 옮김 / 봄날의책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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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오싹한 저녁 산보를 하다가, 우리는 도랑에서 잠시 잠든늙은 토끼를 지나쳤어 - 그가 멈춰서 몇 글자 적더군 - 그러곤,
일 마일 정도 더 가서, 도로를, 결혼처럼 느릿느릿, 기어가는누군가의 애완용 거북이를 지나쳤어. "이솝 부인, 느리지만끝까지 믿고 간다면 결국 경기를 이기는 법이라오." 이런똥 머저리.

(이솝 부인 중에서)

인생이 다 그렇지 뭐.
내가 병들었을 때,
지옥처럼 아프더군.
신용카드로신장을 하나 샀더니,
곧 좋아지더군.
난 아직 파우스트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지 -영민하고, 약삭빠르고, 냉담하던 그 개자식에겐애당초 팔 만한 영혼이 없었다는 것.

(파우스트 부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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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 이 번지고 있다.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나오고 고발이 진행되고 마치 전쟁터가 된 것 같다.

피해자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스스로 상처를 헤집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패닉.

한 검사의 고발에 나는 망연해졌다. 어느 시인의 이야기에 역겨웠고, 어떤 예술인의 고백에 한참을 울었다.

비슷한 상처. 누군가는 깊이 베이고 찔렸으며 누군가는 슬쩍 스쳤을 수도 있지만 같은 무기에 의한 상처를 품은 이가 너무나 많았다. 어쩌면 이런 상처 없는 사람을 찾아내는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알 수도 있는 사람. 페이스북 뉴스피드 사이에 뜬 프로필과 이름들 속에서 알 수 밖에 없는 사람을 보았다.

한 겨울에 맨발로 뛰쳐나가 밤새 거리를 방황하게 했던 선배. 그 후 곱지 않은 시선으로 자기를 거절한 댓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눈에 힘을 주던 선배. 동기들은 발설하지 말라고 했고, 선배의 친구들은 세상 사는 법을 모른다며 힐난했다.

그 때, 자취방에 틀어박혔던 나는 이러다 죽지 싶어서, 이러다 죽이지 싶어서 오래도록 두려워했다.

그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고 그 기억은 딸아이를 단단히 단속하는 것으로 발현되었고, 아들녀석을 감시 하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그 때는 세상이 그랬으니까, 유교적인 전통이 있어서..남존여비가 팽배했잖아 따위의 말같지 않은 말들을 들었다.

그런가?

성폭력을 당한 남자는 없냐고 누가 그랬다. 있겠지. 있을 거다.

이 터져나오는 사태는 젠더의 문제라기 보다. '권력'의 문제다. 지배와 소유의 문제며 불평등과 억압의 문제다.

남자는 여자와 달라서 따위의 말로 퉁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거다.

 

선배는 안정되어 보였다. 예전보다는 덜 날카로워 보였지만 여전히 단단한 눈매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전체적으로 '안녕'한 것 같았다.

비슷한 이름만 들려도, 비슷한 뒤통수만 봐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소름이 돋는 건 내가 예민해서만은 아닐거다.

결국 도망을 쳤음에도 이렇게 데인 상처를 만지듯 소스라치는데, 도망조차 치지 못했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무력감은 얼마나 치명적일까.

 

누구는 음모라고도 한다. 누구는 벌써 지친다고 한다. 누구는 여자들 무서워서 회식도 못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누구는 '나는 그런 사람 아니'라고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가해자일 수도, 피해자일 수도 있다. 인식하고 있을 수도 있고, 인식조차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선배의 '안녕함'을 발견한 이후로 일상이 진정되지 않는다.

책도 읽히지 않고, 생각도 모아지지 않고, 일도 자꾸 까먹고, 멍하니 먼 곳만 보게 된다.

그 때, 어두운 방에 허깨비 처럼 앉아 마른 울음을 삼키던 그 여자애처럼 자꾸 시선을 잃는다.

 

힘겨운 싸움이 될거다. 아니라고 발뺌하고 윽박지르고 조롱하며 2차, 3차의 피해들로 협박할거다.

이건..'권력'의 싸움이니까.

이젠 숨지 않아야 할텐데. 상처는 자꾸만 벌어지는데 꽃 같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

어째서 당신들은 '안녕'한 건지..자꾸 되묻고 싶다.

그래도 되는거냐고?

'안녕'할 수 있냐고?

 

책을 사 놓고 읽지 못하는 시간이 자꾸 길어진다.

하루 하루를 '겨우' 살아내는 것 같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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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3-07 23: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펜스 룰‘은 남성이 ‘착한 남자‘로 스스로 규정하는 수사입니다. 아내 이외의 다른 여자를 상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남자들은 자신을 ‘성폭행, 성차별과 무관한 남자‘로 드러내는 것이죠. 펜스 룰은 여성 운동의 본질을 흐려뜨려요.
 

  며칠 전 신간 알림 메시지를 받고 예약 구매를 한 책이 오늘 도착했다. 친구에게도 보내고..친구가 좋아할지 말지는 그냥 믿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니까 좋아하지 않더라도 싫어하진 않을게다. 착한 아이니까..

 10월에 게세르를 읽고, 에다 이야기를 다시 읽고 어쩌다 보니 일본과 중국의 고전에 빠져 지냈다.

 바진, 마오둔, 라오서, 왕멍, 츠쯔젠, 류전윈..어떤 자극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책읽기는 늘 맥락없이 튀는지라 놀랍지도 않았다.

스토리텔링으로서 세계 신화..신화라는 분야에서 신뢰할 수 있는 작가로 김남일을 꼽는다. 주관적인 기준에서 그렇다. 연구하는 폭과 양은 말할 것도 없고, 작가 자신이 즐겁다. 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고는 못배기겠다는 느낌. 그래서 쉽게 쓴다. 그렇다고 내용이 헐거운 것은 아니다. 지독하게 파고 든 사람이 들려주는 충분한 이야기. 그것이다.

 

 

 

얼마 전 책정리를 하다 발견한 이윤기의 책.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상은 '국산'과 '국내산'의 미묘한 차이 같은 것이었다.  우리 신화 에세이지만..어쩐지..

 

 

 

 

 

 

 

 

 

 

 

 

 

김남일의 신화. 믿고 읽는 만큼 기대가 크다. 훑어만 봐야지 하다가 어느새 3부를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일은 해야하는데..책을 놓고 싶지 않다.

만약 이 책을 구입하고 읽는다면..단숨에 읽을 시간을 확보한 연후에 읽으라고 조언하고 싶다.

 

  신화는 비현실적이거나 기복을 위한 어떤 상징에 대한 앙망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인간의 이야기에 투영체는 아닐까 늘 생각했다. 마당놀이처럼..오래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 때론 각색되고 호도되기도 하지만-, 예를 들어 이슬람의 여왕처럼..해적이 되었던 알프히드 공주가 한 남자에게 정복되었다는 사회, 정치, 종교적 이유로- 그 바탕에 흐르고 있는 정의와 평화, 혹은 평등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삶과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백 개의 아시아를 다시 찾아놓아야 겠다. 분명 읽고 싶어질거다.

꽃처럼 신화를 읽으면서 점점 더 간절히 읽고 싶어질거다.

 

 

 

 

 

오래 바빴다. 이사도 했고, 수능도 끝났고, 책을 읽어댈 시간만 빼꼼하게 남겨두고 지냈다.

맨 손으로 시간을 뺏어먹는 악마들을 처치해야만 신과 맞설 수 있다는 퀘스트를 받은 가녀린 인간처럼 지냈다.

그 인간은 결국 이겨낼 것이고 신과 협상을 하게 될것이다.

그리고 여유롭게 책을 읽으며 휴식을 가져도 좋을 보상을 받게될 것이다.

그래야 신화니까. 신화는 정보가 아니라 이야기니까.

 

한 석달만인것 같네..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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