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비평 204호 - 2024.여름
창작과비평 편집부 지음 / 창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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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창작과 비평 여름 204호는 한국 시 특집이다오연경 평론가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약진 중인 젊은 여성 시인들을 소개한다. 노동 현실, 교차하는 정체성, 변태하고 확장하는 세계의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 저항과 투쟁의 동력인 유머. 오연경 평론가는 이 네 가지 이슈를 최세라, 주민현, 한여진, 임유영 시인들의 시에서 읽어낸다.


‘헤드셋의 검은 쿠션 사이에 끼어서 존재 할 때’로 시작하는 최세라의 ‘콜센터 유감:뮤트’는 상품과 정보의 교환이라는 공식만이 앙상하게 남은 소비 사회에서 감정 노동이라는 옵션을 기본적으로 장착해야 하는 여성 비정규직 서비스 노동자의 현실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주민현의 시 ‘에리카라는 이름의 나라’에서 오연경 평론가는 여러 정체성이 복합된 이국으로서의 여성 존재를 발견한다. ‘내가 포착한 에리카와 그 포착을 빠져나가는 에리카 사이’라는 구절은 폭력적인 외부 규정을 단호하게 거부하는 여성의 자유가 느껴진다. 


‘나는 솥의 자랑일 것이다’로 호기롭게 마무리되는 한여진의 ‘솥’에서 오연경 평론가는 대문자 여성 너머, 무수한 여성들의 가능성이 펼쳐 보일 ‘폭과 깊이’를 가늠한다. 임유영의 시 ‘오믈렛’에 대해 오연경 평론가는 ‘몸속 깊은 곳에서 꺼낸 상처에 관한 농담‘이라고 말한다. ‘설탕을 잽싸게 뿌려 넣는 어떤 사람의 손’과 ‘묶인, 찔린, 찐긴. 손.’은 같은 손이다. 이 두 손의 이미지가 겹쳐지며 만들어내는 각성은 블랙 유머의 쓴 맛이다.


오연경 평론가는 리부트 이후 젊은 여성 시인들의 시에서 ‘파편화되거나 분절된 언어 또는 환상성의 언어’로 시도되는 독특한 모험들을 감지한다. 나는 이 모험들이 여성의 경험을 배신하고 기만하는 언어들을 폭로하고, 그것들의 저열한 민낯들을 광장에 매달 언어들을 수확해내리라 기대한다. 놀이이자 축제의 언어들, 처음부터 철지난 줄 몰랐던, 제 철이 없었던 언어들을 각성시켜 추방할 여성 시인들만의 만남은 언제나 신난다. 그런 면에서 오연경 평론가의 이번 글은 지면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슈의 발견과 시인들의 소개 면에서 모두 값지다. 젊은 여성 시인들의 시들이 여러 매체에서 더 많이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메타 비평글인 되찾은 의 시간에서 송종원 평론가는 최근 한국시 비평이 시의 공공영역(커먼즈)을 적극적으로 독해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그는 요즘 비평담론은 작품의 진실에 접근하는 매개로서가 아니라 작품을 새롭게 소비하는 방식으로 독자들을 이끄는 면이 있다고 최근 비평들을 진단한다. 그에게 소비로서의 시 비평은 사회적 맥락과 역사성을 소거한 해석들을 의미한다. 그는 이러한 독법의 대척점에 서는 비평으로서 시의 역사성 위에서 시 자체가 거대한 협동작업임을 이수명과 박노해의 시 겹쳐 읽기를 통해 보여준다.

시인들이 서로의 꿈과 기록으로 현실의 모습과 의미를 한층 선명하고 두텁게 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듯이 비평 역시 민주적 대화의 공간을 열어 협업해야 한다고 송종원 평론가는 단언한다. 비평의 협업은 축적된 작품들의 관계 맺음을 통해 시간을 품는 문학사를 쓰는 동시에 서로가 꾸었던 꿈을 새롭게 활성화시키는 실천적 장을 마련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부여되었던 과도한 특권을 반성하는 것과 인간의 자리를 지워버리는 일은 당연히 다른데도 종종 혼동된다.’ 송종원 평론가는 시 비평이 기다리는인간의 자리를 상징했던 의 자리를 망각하지 말기를 주문한다. 시의 공공 영역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들을 설명할 책임이 여전히 비평가들에게 있음을 그는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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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작은 선물 - 어른들을 위한 동시
최승호 지음, 준한 옮김 / 담앤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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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맑으면 밤하늘은 깊고 푸르다. 공기는 상쾌하고 검푸른 하늘에 별빛이 노랗다. 파랗게 투명한 어둠, 노란 별빛은 절 마당 청삽살개를 깨운다. 멍 멍 멍, 밤의 환함은 멍 멍 멍, 청삽살개의 불성을 환하게 비춘다. 최승호 시인의 동시집 ‘부처님의 작은 선물’은 한 밤중의 고요를 깨는 ‘청삽살개’의 일갈, 멍 멍 멍으로 시작한다.

청삽살개의 짖음은 진리의 공명으로 밤공기를 쾌청하게 가른다. 상쾌하게 무명을 깨뜨리며 동시집은 이렇게 열린다. 청삽살개의 꿈벅 큰 눈, 과묵한 입은 노랗고, 정리되지 않은 긴 털들은 밤빛이 물든 남색이다. 최승호 시인이 크레파스로 쓱쓱 낳은 청삽살개다. 의뭉하고 익살스럽기 그지없다.

부처님에게 연꽃 공양을 바치려 연못에 들린 고라니, 고운 꽃등을 들고 연등행렬에 나선 너구리와 다람쥐, 스님과 함께 마루 위에서 비 구경에 하염없는 개구리, 사바세계를 번쩍번쩍 일깨우는 범종소리, 싱싱한 햇빛에 감사 인사 절하는 금개구리, 부처님 말씀을 우물우물 씹어 먹는 염소, 제비와 제비꽃 소식을 동시에 날아다주는 봄바람, 그리고 자라와 땅강아지, 조랑말과 우산 버섯이 최승호 시인의 동시 안에 그득하다.

시인의 시집 바구니 안에는 개구리들의 노래로 시끌벅적한 봄날의 논과 연못, 늪이, 거위와 오리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해질녘이, 스님을 쫓아가는 꿀벌의 야무진 날갯짓이, 나물 캐러 간 스님을 길 잃게 만드는 숲속의 안개가, 돌미륵과 두꺼비를 걱정시키는 빗줄기도, 오소리도 숨게 만드는 소소리 바람이 가득하다.

유정의 존재들과 무정의 존재들이 서로 곁을 내주고 어우러져 하루를 지나고 계절을 지난다. 시인이 채집한 바구니 속의 법계에 부처님의 미소가 달빛으로 비치고, 바람으로 스치고. 빗물로 내린다.

시인이 부처님의 작은 선물이라 부른 삼라만상은 민들레 씨앗처럼 가벼이, 표표히 인연 따라 머물고, 인연따라 떠난다. 무심하고 청정한 세계다. 시인은 깨끗한 언어 속에 그 시절인연의 풍경을 담는다.

동시들은 저마다 최승호 시인이 직접 그린 천진난만한 그림들 위에 편히 앉아 있다. 분별과 논리에 무겁게 발목 잡히지 않은 언어와 그림들은 매임이 없어 홀가분하다.

최승호 시인의 이번 시집 모든 동시들 옆에는 영문 번역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번역 감수는 홍대선원 준한 스님이 맡았다. 한글 동시를 소리 내어 읽어보고, 나란히 영문 번역문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수풀 수풀, 떠들썩 떠들썩, 미르 미르 푸르미르, 쓱싹쓱싹. 시인의 언어유희가 한글에, 영문에 실려 살아있는 입말이 된다. 일체가 청신한 문자와 그림에 이어서 소리로 장엄되는 순간이다.

다시 깊고 푸른 밤. 청삽살개는 곤한 잠에 들었고 칠성장어와 칠성무당벌레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가끔

내가 북두칠성에서 왔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다시

북두칠성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고는 하지

칠성무당벌레야

너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니

- 칠성장어가 칠성무당벌레에게, 128

동그란 몸을 더욱 동그랗게 모으고 까무룩 잠이 들려는 참일지도 모를 칠성무당벌레는 칠성장어에게 어떤 대답을 했을까. 어쩌면 칠성장어는 혼잣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칠성장어는 이 질문을 세상의 일체만물에게 물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어디에서 나서 어디로 갑니까. 나는 불성에서 나서 불성으로 돌아갑니다. 부처님의 작은 선물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환하게 빛나는 동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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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숨결 가까이 - 무너진 삶을 일으키는 자연의 방식에 관하여
리처드 메이비 지음, 신소희 옮김 / 사계절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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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성. 작가 리처드 메이비가 2년여를 앓던 우울증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며 발견한 가치이다. 하지만 오해 없길. 그가 되찾은 ‘야생성’은 미개발되거나 오지로 남겨진 특정 장소들을 의미하지 않는다. 야생성은 그가 인용한 콜레트의 정의, ‘꿈꾸는’ 장소이다. 어딘가를 점유하고 있는 물리적 공간이 아닌 인류가 되찾아야 할 정신의 능력이다.

작가가 인용한 소로의 문장. ‘우리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우리가 돌아다니지 않을 곳에서 자유로이 풀을 뜯는 생명체를 목격해야 한다.’ 현대인은 과연 감각할 수 없는 어딘가 다른 장소에, 다른 존재들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온대의 우리는 냉대의 아무르 표범이 사냥하는 모습을 눈 감고 목격할 수 있을까. 그의 생존을 믿을 능력이 있을까.

저명한 식물학자이자 자연 작가인 리처드 메이비는 심각한 우울증에 앓는다. 어느 날 그는 수 십 년 동안 모아왔던 장서들, 그가 써왔던 책들을 낯선 사물처럼 바라보는 자신을 발견한다. 글쓰기는 그가 사물을 보는 방식이었다. 본능이었다. 사물을 인식하는 본능에 오류가 생긴 것이다. 이 자각을 계기로 그는 자신의 정신 상태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는 식물적 후퇴의 과거를 뒤로 하고, 식물적 전진의 시간으로 나아간다. 친구들의 우정 어린 도움과 연인 폴리의 사려 깊은 보살핌, 그리고 그의 새로운 보금자리 ‘이스트 앵글리아’ 그 곳의 찬란한 자연은 그를 서서히 회복시켜 준다.

이 책 ‘야생의 숨결 가까이’는 정신적 위기를 자연의 치유력으로 극복하는 개인의 서사를 저만치 넘어선다. 저명한 식물학자로 리처드 메이비는 과학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과거, 병력, 현재를 냉철하게 서술한다. 동시에 그는 투병과 회복 기간 동안 머물렀던 장소들의 생태계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 기록의 결과가 이 책이다. 과학자인 동시에 자연 작가로서 글을 써온 그의 글은 유려하기 이를 데 없다. 과학자의 정밀한 시선과 비판적 안목, 그리고 다정하고 따스한 정서가 문장에 배어있다.

공유지의 상실, 현대에도 막강한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의 생태학적 폐해, 생태계에서 인간의 위치와 역할,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기후 위기, 인간 중심주의, 생물종 다양성 감소, 산업형 농축산업, 전쟁과 생태계, 미디어에서의 자연 재현의 문제, 공유지의 실험 등등. 책을 관통하는 작가의 고민들이다. 식물학자로서, 그리고 한때는 자신 소유의 숲에서 공유지의 부활을 실험했던 사람으로서, 그리고 자연과의 최소한의 소통마저 불가능했던 질병을 앓았던 사람으로서,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를 바라보는 리처드 메이비의 시선은 날카롭다. 생각하지 못했던 많은 질문들과 곱씹어야 할 의문들을 남기는 책이다. 지구를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이 책 한권에서 복잡한 생태 이슈들을 끊임없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소개되고 인용되는 책들과 작가들 또한 더 없이 풍요롭다. 함께 읽기 좋은 책이다.

책에는 그가 막 떠나온 영국 남동부 칠턴의 숲지대, 그가 이제 막 도착한 이스트 앵글리아 늪지대의 생태계가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여기에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사상가, 과학자, 문학가, 여러 장르의 예술가의 연구들과 작품들, 그리고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신화, 민담, 일화, 향토사들이 자연에 대한 그의 사유를 확장시키며 인용된다. 자연 묘사는 사실적이며 무엇보다 아름답고 이야기들은 흥미롭다. 포도꽃이 필 때면 잘 숙성된 와인에도 갑자기 탄산 거품이 생기는 이유는? 난 이 이야기가 너무 좋다. 달 표면에 영원히 토끼가 살게 된 이유의 중국 버전은? 등등 이 책 덕분에 알게 된 이야기들이 많다. 정말 재미있다.

해야 할 하루 일과를 모두 마친 후, 가장 편안한 시간에 이 책을 아껴 읽었다. 노란 스탠드 불빛 아래서 나는 작가, 그리고 세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칼새, 흰턱제비, 검은머리흰죽지, 검은다리솔새를 기다렸다. 어떤 날은 두루미의 춤을 보려고 수풀을 헤치며 돌아다니고, 쇠물닭과 회색기러기를 피해 날아가는 백로를 보았다. 구별조차 어려운 다채로운 난초들과 사초들의 싱그러운 여름 축제에 넋이 나가기도 했다. 매혹적인 구애의 춤을 추는 유령 나방을 목격하기도 했다. 셀 수도 없는 다양한 동식물의 생의 한 순간들을 작가의 시선을 통해 만끽했다. 그 자체로 충만한 순간들이었다. 매일 밤 한 권의 책이 생태계의 찬란한 순환 속으로 나를 초대한 것이다.

리처드 메이비는 셀본(그가 한때 머물렀던 곳이다)의 명물인 1500살 수령의 주목 나무가 강풍에 쓰러지자, 작은 토막을 간직했다가 조각가 친구에게 준다. 조각가 친구는 그 주목 토막에, 새를 조각하기로 한다. 잘라진 주목의 균열과 틈새에 맞춰 새가 조각되면, 주목 토막은 그 새들의 둥지가 되는 것이다. 나무의 결에 따라 탄생하는 새, 그 새들의 은신처인 나무, 그것들을 연결해주는 예술가. 이 상상력.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숨결을 감지해내고, 그것들을 연결하는 상상력이야말로 리처드 메이비를 회복시켰던 ‘야생성’이 아닐까.

주목 나무가 쓰러졌을 때 수백 명의 사람들이 조의를 표하기 위해 셀본을 찾는다. 그들은 주목 토막을 나누어 간직한다. 목공예 작가들은 셀본의 주민들을 위해 그릇과 걸상을 만들어 준다. 마을 사람들은 쓰러진 나무 둥치 옆에 잘라낸 주목 가지를 심는다. 이 모습들을 보면서 리처드 메이는 생각한다. 주목 나무에 어쩌면 1500년 동안 주민들의 숨결에서 나온 분자가 포함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주목 나무는 세상의 고른 숨결 그 자체라고. 여기서 더 나아가 작가는 생각한다. 인간과 비인간들이 서로 나누는 숨결처럼 우리의 마음은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유하는 하나의 장이라고. 작가의 이 상상의 능력 혹은 통찰력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할, 우리를 살릴 ‘야생성’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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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가면 일곱 번 태어나라
아틸라 요제프 지음, 공진호 옮김, 심보선 해설 / 아티초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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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나를 강인하게 단련시킨 반면 더 이상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1937년, 시인 아틸라 요제프가 입사를 위해 쓴 자기소개서의 일부이다. 그는 이 글을 쓴지 10개월 후 화물열차에 몸을 던졌다. 그의 나이 32살이었다. 기시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더 이상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리라는 자각. 32살 젊은 시인의 문장이 가슴을 때린다. 이 독백은 삶이 자신을 강인하게 단련시키는 중이라고 위무하며 오랫동안 스스로를 단속하고, 닦아세우고, 몰아세웠던 청춘의 자기 고백이다.

사면초가. 태어난 순간부터 시련 속에 시인은 던져진다. 극한의 가난, 세 살 때의 아버지 가출, 열네 살 때의 어머니의 죽음, 일을 해도 어찌해 볼 도리가 가난, 낙인과 조롱, 차별과 처벌. 사방에서 옥죄어 오는 철벽의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시인은 어떻게 정신을 가다듬고, 분투할 수 있었을까.

아틸라 요제프의 바리케이드와 횃불은 시였다. “뼈가 닿는 소리를 아는 나”는 “우리의 입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음식이 아닌 비겁한 침묵”이라는 것을 알기에 “도끼와 칼과 돌을 집으려 손을 내민다.” 그의 시는 세계의 비참과 고통을 증언하고, 반역과 저항의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한다.

이번에 재출간된 아틸라 요제프 시집 ‘세상에 나가면 일곱 번 태어나라’는 국내에서 단행본으로 만날 수 있는 그의 유일한 시집이다. 시편마다 남겨진 거의 1세기 전, 다른 공간을 살았던 청년의 목소리는 지금, 여기 대한민국 청년의 목소리와 공진한다. 여전한 불평등과 차별, 여전한 배제와 억압 속에서 아틸라 요제프의 시들은 일깨운다. 늪이 깊을수록 각성과 저항의 언어를 길어내라고, 어둠이 깊을수록 자기 안에 빛을 스스로 밝히라고. 아틸라 요제프의 음성으로 묻는다.

대답해 보오,

원래 여기 사는 사람이요?

그리움이 무섭게 사무쳐

그치지 않는 이곳

억겁의 세월에 눌린

비참한 현인

말마다 주름마다 표정마다

일그러진 얼굴들

24페이지. <애가> 중에서

우리 각자가, 아니 우리 모두가 무서운 그리움에 사무쳐 그리워하는 그 장소는, 시간은 어디인가? 그곳에 사는 사람은, 그곳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누구인가. 아틸라 요제프는 그를 일곱 번째 사람이라 부른다.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할 때에는

적에게 일곱 사람을 보여라-

일요일 하루는 쉬는 사람

월요일에 일하기 시작하는 사람

대가 없이 가르치는 사람

물에 빠져 수영을 배우는 사람

숲을 이룰 씨앗이 되는 사람

야만의 선조들이 보호해 주는 사람

하지만 그들의 재주로는 충분하지 않아 -

너 자신이 일곱 번째라야 해!

29페이지. <일곱 번째 사람> 중에서

아틸라 요제프는 우리에게 태어날 때에도, 저항 할 때에도, 사랑에 빠졌을 때에도, 시인이 되어도 일곱 번 변신하라고, 다시 태어나라고 선언한다. 자기 갱신과 자기 변용. 시인인 우리는 “자신의 영혼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스템과 권력에 의해 대량 복제되는 복사물이 아니라 스스로의 영혼을 발명해내는 해방적 주체로 끊임없이 재탄생하라는 기도이다. 일곱 번에 머물 이유도 없다. 여덟 번, 아홉 번... 거듭 태어나는 존재는 전체주의적 폭압에 포획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아틸라 요제프의 ‘일곱 번째 사람’의 무덤에는 단정할 수 없는 무수한 사람이 묻힐 것이다. 또한 그런 이유로 “세상이 너의 비석이 될 거야-” 세상 전체를 비석으로 가진 사람이라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확 트인다.

젊은 시인의 전망은 얼마나 눈부신 것이었나. ‘서리’, ‘누런 풀’, ‘유리 제조공’, ‘어머니’ 등 다른 시들을 읽는다. 출구 없는 가난과 노동에 꺾이고 꺾이는 신체와 정신. 이 고단한 목격 속에서 정신의 창발을 위해 애썼던 부단한 그의 고투는 어떤 것이었을까. 시집에 실린 시들이 보여준다. 그의 사랑과, 그의 이상과, 그의 낙담과, 그의 절망을. 그리고 그의 애씀을.

어깨에 봄을 두르고 다니며

가슴에 봄을 먹이는 나

- 중략

아무것도 나의 무릎을 꿇리지 못한다.

잡초로 무성한 어머니의 무덤 말고는, 아무것도.

75페이지, <격려의 노래> 중에서

다시 처음으로. “삶은 나를 강인하게 단련시킨 반면 더 이상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견디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지금쯤 조금은 편안해졌을까. 앞서 간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고된 삶을 살고, 살았던 모든 이들, 그리고 스스로를 애도하는 시를 그는 남겨 두었다. 고즈넉한 별 아래, 따뜻한 빵 조각의 온기를 간직하고 그가 영면하기를.

나는 어른도 아이도

‘헝가리인’도 ‘동포’도 아니다-

여기에 누운 나는 당신처럼 지친 한 사람.

저녁은 고요를 퍼 담고

나는 따뜻한 빵 한 조각인데

고즈넉한 하늘의 별,

강가에 나앉더니 내 머리를 밝히네.

56페이지, <지친 사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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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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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들은 한 사람의 지성과 정서에 지워지지 않을 영향을 남긴다. 너무도 당연한 이 사실은 당연한 만큼이나 신비로운 일이다. 가벼운 종이 위에 새겨진 잉크 활자가 한 사람의 마음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 그 사람과 내밀한 한 생을 함께 한다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모종의 내통과 연애, 배신과 전쟁을 치루면서.

 

이 에세이는 비비안 고닉이 문자로 건축된 또 다른 세계, 독서에 첫 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그 미로 같은 궁전의 수많은 언어의 길들을 거쳐, 그만의 건축 설계도, 즉 그만의 글쓰기, 일인칭 저널리즘(personal journalism)을 세공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비비언 고닉은 마르크스와 국제 노동 계급을 절대적 가치로 신봉하는 좌파 집안에서 자랐다. 얼마나 흥미로운지! 사회적 불평등을 향한 열렬한 저항부터 시작해 그녀의 성장 과정은 낱낱이 정치적 삶이었다고 그녀는 회고한다. 독서 또한 그랬다. 그에게 독서는 단 하나의 목적에 복무하는 것이다.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힘에 얽혀드는 주인공의 행보를 통해 드러내는 대문자 L로 쓰인 Life, 그 삶의 압력을 느끼려고 그는 책을 읽어왔고, 읽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야기. 여성 해방 시위 취재를 권유하던 동료에게 여성 해방 쪽이 뭔데?’라고 되묻던 그녀가 일주일 만에 완전히전향하게 된 통찰의 순간, 그리고 이후의 의식과 삶의 변화 과정이 에세이에 기록됐다. 이어 그의 고백이 이어진다. 고닉은 흥분에 들떴던 해방과 연대의 전선, 그리고 정치적 분석과 이데올로기, 열렬한 수사와 엄정한 현실 여기저기에서 이론과 실천이 불일치하는 분열된 개인, 그 자신을 발견한다. ‘검증되지 않은 확신이라는 무인지대는 모순적이고 편협한 독선, 고립으로 그를 이끌고 있었다.

 

세계와의 불화와는 또 다른, 자기와의 불협화음이라는 이 절체의 위기. 비비언 고닉은 내면의 번뇌라는 드라마가 그 우주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라고 그 시기를 회고한다. 그악스러운 열패감과 좌절, 좌절. 그는 통찰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 할 수 없음을 똑똑히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깨달음을 삶에 적용시킬 당사자 또한 온전히 자기 자신이다. 그는 이 두 번째 자각을 안톤 체호프의 언어로 대신한다. ‘타인이 나를 노예로 만들었(을지 모른)다 해도, 나 자신을 쥐어짜서 내 안의 노예근성을 한 방울 한 방울 뽑아내야 할 당사자는 바로 나였다’(25)

 

그는 다르게 읽기 시작한다. 읽었던 책들을, 특히 소설들을 다시 꺼내, 다르게 읽는다. 그렇게 다시 펼쳐든 문학의 무대에서 상연되는 중심 드라마는 천 갈래, 만 갈래로 찢기고 분열된 자아상들의 미스터리였다. 그 미스터리는 주인공들을 무지와 두려움, 수치심으로 질식시키고 있었다. 문학은 거울에 비친 고닉의, 우리의 삶이고, 문학 속 인물들은 우리 자신들이다.

 

반복하는 다시 읽기를 통해 고닉은 글 속에 내재한 힘의 원천 또한 발견한다. 이 힘은 분열하는 자아들이 빠져있는 균열을 봉합하고 갈증을 해소하는데 이정표가 되어 주는데, 그 힘이란 바로 인간의 상상이다. 하지만 이 상상의 힘은 통합된 실존이라는 업적을 지향하지 않는다. 작가는 문학이 견인하는 상상력이란 통합된 실존을 향해 발버둥 치는 인간에게 각인된 분투의 기록이라고 말한다. 에세이 초반에 작가가 썼던 통제할 수 없는 삶의 압력을 버텨내는 문학 속 인물들의 Life를 이끌고 가는 궁극의 힘, 그것은 바로 상상력이었다.

 

비비언 고닉은 여전히 대문자 Life, 삶의 압력을 느끼려고 읽는다.’ 마찬가지로 그는 독자가 그가 겪은 대로 경험하고, 그가 느낀 것을 체감하기를 바라며 쓴다.’ ‘읽기쓰기는 같은 욕망의 다른 이름들이다.

 

 

삶의 통제 불가능성앞에 우리는 얼마나 자주 아연실색하는가. 번번이 고개를 숙이는가.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행히도 이라는 것이 있다. 비비언 고닉이 발견했듯 속에는, ‘문학속에는 삶의 압력에 압사당하지 않으려고 여전히 분투 중인 인물들이 살고 있다. 우리도 비비언 고닉처럼 우리 어깨가 짊어지고 있는 세계의 무게를, 삶의 무게를 느끼려고, 체감하려고 읽는다. 언제고 다시 읽는다.

 

이어지는 장들은 비비언 고닉에게 대문자 Life와 상상력들, 그리고 많은 영감들을 느끼해준 책들에 관한 이야기란다. 자기에게서 시작한 글쓰기는 들뜨지 않는다. 비비언 고닉의 글들이 그렇다. 그가 맞닥뜨렸던 현실, 지금 처한 현실에서 시작한 시선은 겉돌지 않는다. 이 날렵한 관점의 안정감 덕분에 그의 글은 재치와 유머로 여유를 잃지 않는다. 친애하는 작가의 그것도 에 관한, ‘읽기쓰기에 관한 에세이라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르이지 않은가. 거기에 다시읽기라니. 뒤이은 장들이 궁금하다.

 


출판사의 티저북 제공으로 개인적으로 읽고 쓰인 글입니다. 


 









‘내 경험으론, 인생 초년에 중요했던 책을 다시 읽다 보면 긴 의자에 누워 정신 분석을 받는 느낌이 들 때가 꽤 있다.’ - P9

독서는 머릿속 가득한 혼돈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며 순수하고 온전한 안식을 허한다. 이따금, 책 읽기만이 내게 살아갈 용기를 준다는 생각이 든다. - P11

나는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힘에 얽혀드는 주인공의 행보를 통해 (짜릿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대문자 L로 쓰인 Life, 그 삶의 압력을 느끼려고 책을 읽었다. - P13

나는 깨달았다. 일하는 인간이라는 자아 관념을 일차적으로 떠올리지 못하는 무능력, 이제 보기 그것이 바로 여자라는 존재의 핵심적 딜레마였다. - P20

그들이 헤치고 나아가는 삶의 행보는 내가 언감생심 꿈꿀 수 있는 삶과는 결정적인 단절이 있거니와 어느 한구석 닮은 데도 없는데, 독자로 살아온 일평생 나는 그 남자들과 동일시해왔던 것이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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