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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천재들의 자본주의 워크숍 - 스미스, 마르크스, 케인스는 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가
울리케 헤르만 지음, 박종대 옮김 / 갈라파고스 / 2024년 8월
평점 :
“부르주아지는.. (중략).. 인간과 인간 사이에 적나라한 이익과 냉정한 ‘현금 계산’ 외에 어떤 끈도 남겨두지 않았다. 또한 신앙적인 열광과 기사도적인 감격, 그리고 소시민적인 우수에 담긴 전율을 이기적 타산이라는 차가운 물속에 넣고 익사시켜버렸다.. (중략).. 한마디로 종교적, 정치적 환상들에 가려진 기존의 착취를 노골적이고 파렴치하고 직접적이고 인정사정없는 착취로 대체했다.”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이다. 그는 이 생산방식이 인간성, 관계, 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할지까지 내다보고 있다. 200여 년 전 이미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은 마르크스의 문장들은 이어진다. “부르주아지 시대를 이전의 모든 시대와 구분 짓는 두드러진 특징은 지속적인 생산 혁신, 모든 사회적 상황의 부단한 뒤흔듦, 영구적인 불안과 동요다.. (중략).. 성스러운 모든 것은 모독당한다.” 생산과 소비, 만성적인 욕구불만의 폐쇄적인 굴레에 갇히게 될 인류의 운명을 마르크스는 내다봤다. 그는 세계화라는 중립적 언어에 가려진 자본의 제국주의적 침략 또한 예견했다. “세계 시장의 수탈을 통해 모든 나라의 생산과 소비를 범세계적으로 조직한다.. (중략).. 한 나라의 산업적 토대까지 허물어뜨린다.”
저자 헤르만이 인용하는 경제학자 마르크스의 핵심 문장들은 21세기 자본주의를 간파한다. “자본가는 의지와 재능을 가진 의인화된 자본이다” 이 문장을 어떻게 반박할 수 있겠는가. 개인은 “이윤의 쉼 없는 움직임”으로 전락하고, “자본가에 의한 자본가”의 흡수로 독과점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 또한 마르크스는 예측했다.
그렇다고 마르크스의 핵심 이론이 담긴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이 무오류인 것은 아니다. 저자는 시간이 증명한 마르크스의 오류 또한 밝혀낸다. 하지만 울리케 헤르만은 “천재도 실수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마르크스의 변하지 않은 업적은 “자본주의의 역학을 정확하게 기술한 최초의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마르크스의 문장들을 읽다보면 저자의 평가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한 복판에서 시름시름 살아가는 현대인보다 더 맹렬히, 더 민첩하게 그는 자본주의를 파헤치고, 해부했다. 그리고 놀랍도록 예리하고 정확한 문장들에 자신의 통찰을 남겼다. 우리가 거센 파고를 헤치며 헤엄치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바다를 조망하고 싶다면 (티셔츠에 프린트된 그의 얼굴처럼 취향이 아니라, 당위로) 마르크스를 읽어야겠다. 그는 현시대인들보다 먼저 신자유주의 세계와 변해버린 인간성 안에 당도해 있었다. 마르크스는 천재다.
“나는 전체로서의 경제 시스템에 관심이 많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말이다. 케인스는 개별 소비자, 개별 생산자에 매몰되어 있던 신고전주의의 맹점에서 탈출해 전체 수요와 전체 투자로 관찰의 시점을 옮겼다. 이로써 그는 경제전반의 “일반적인” 규칙성을 다루는 “거시 경제학”을 창안한다. 그는 “돈의 흐름”이 신고전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중립적이고, 수동적인 결과가 아니라 그 자체로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제 “고용”, “실업”, “돈”, “이자”는 병치적인 관계를 회복하고, 거시 경제의 틀 안에서 이해되기 시작한다.
신고전주의자들의 경제 모델은 개별 수요자, 개별 공급자를 주요 변수로 시장을 이해했다. “전체 경제가 마치 개별 기업처럼 작동한다고 순진하게 믿은 것이다” 요동치는 주식 시장과 금융 시장의 풍랑에 좌지우지되는 경제 현실을 우리는 24시간 체감한다. 그리고 그 주식 시장과 금융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진짜 기업”만이 아니라 “투자자”들과 “투기꾼”들이다. 저자는 단언한다. “현대 자본주의는 투기에 의해 움직인다.” 어떻게 이 문장을 부정할 수 있을까. 신고전주의자들의 관점은 얼마나 미시적인지 안타까울 지경이다.
케인스에 의하면 경제를 움직이는 주식과 금융 투자의 위험도는 계산할 수 없다. 미래는 확률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알 수 없을 뿐이다.” “케인스는 타인들의 집단행동을 잘못 예상했을 때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쓰라린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케인스는 인간들이 미래를 알 수 없음에도 어떻게 기대를 하게 되는지를 연구했다.” 우리가 투자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 행위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에서 시작해 엄청난 파급력을 일으키는 집단 수행으로 이어져 경제를 불확실성으로 몰아가는지 케인스는 밝혀냈다. 이렇게 그는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연구하는 행동경제학까지 선취했다.
케인스는 금융시장(돈의 흐름)을 중심에 놓고 경제를 연구한 최초의 경제학자이다. 금융시장에서 시작한 그의 연구는 “저축”, “투자”, “이자”, “임금”, “자본”, “통화”, “세계 무역”의 의미를 처음부터 다시 고찰하고, 그 의미들을 다시 발견해낸다. “공포, 낙관 또는 불안”과 같은 감정이 어떻게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지, 경제가 어떻게 “집단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지, 경제는 각 부분들의 합 “이상”이며, (순진한 신고전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시장은 마법처럼 저절로 “균형”으로 나아가지 않으며, 왜 그렇게 자주 실업이 발생하는지 밝혀내고 설명해낸다. 이제는 현실로 증명 된 발견들이 정리된 그의 저서 <일반 이론>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확실한 건 불확실성뿐이다.”
울리케 헤르만이 기술하는 케인스의 경제이론 설계 과정은 치밀하고 정교하다. 케인스의 경제학은 실전 경험(그의 가족사와 개인사는 얼마나 흥미로운지)과 집요한 현실 경제 흐름의 관찰 결과물이다. 현실에 대한 철저한 이해에서 출발한 케인스는 “이론적 분석뿐만 아니라 정치적 해법 또한 제시했다” 그는 시장이 실패하면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금융 시장의 힘을 제안할 필요성을 인식했다. 그는 국가와 민간 경제의 혼합 시스템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승수 효과를 낼 수 있는 정부의 부양책, 공기업 강화, 부자들에 대한 세금 부과 (원한에 의해서가 아니다, 케인스의 이유는 달랐다.)를 통해 그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고치고 싶어 했다”
오래전 사회 교과서. 시장 가격은 시장에서 수요량과 공급량이 같아지는 지점의 가격으로 결정된다고 읽었다. 수요량과 공급량에 의해 균형 가격(시장 가격), 균형 거래량을 찾아가 시장이 결국 “균형”을 찾아간다는 매끄러운 결론. 납득이 안가는 점이 많았다. 수요량과 공급량을 결정하는 요인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을 텐데, 책은 그 동인들을 주체의 ‘욕구’라는 한 단어로 일축했다. 욕구를 움직이는 변인들은 또 어떤가. 심리 상태, 국내외 경기 변동, 기후와 날씨, 사건과 사고. 너무 단순화하고 있다는 느낌, 뭔가, 순환 오류에 빠진 것 같다는 생각.
시장 가격과 시장경제체제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는 결론에 이르러서는 의문이 더 커졌다.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의미는 자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간다”는 의미였다. 정말? 현실에서 시장 가격에 의해 자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간다고?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독과점의 출현, 부의 불균형, 정부의 개입, 현실의 혼합경제체제는 그 단원의 말미에 몇 줄로 요약되어 나왔다. 그 단원의 요점은 이랬다. 시장경제체제 즉 자본주의는 “조화”와 “균형”을 갖춘 이상적인 경제 체제이고, 이 체제의 몇몇 부작용은 정부의 개입으로 해결될 수 있다.
나는 이 책 ‘경제학 천재들의 자본주의 워크숍’을 통해 알았다. 사회 교과서의 아름다운 결론(조화와 균형을 찾아가는 자유로운 시장)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공식화한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현실의 경제 현상은 신고전주의들의 주장대로 “저절로” 시장의 단독 수요자와 단독 공급자의 결정으로 “균형”을 찾아 가지 않는다. 현실은 자유 시장 그래프의 수요 곡선과 공급 곡선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케인스의 주장대로 현실 시장의 자본과 자원을 움직이는 것은 “금융 시장의 투기와 투자”이다.
“신고전주의자들은 케인스 이론을 일단 위조한 다음 자신들의 이론에 축약시킨 상태로 삽입함으로써 그의 이론을 중화시키고자 했다” 울리케 헤르만의 진단이다. 교과서의 설명 방식(내용과 구성의 배분 면에서 모두)은 헤르만의 설명을 너무나 정확히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교과서 편집위는 청소년의 건전한 경제관, 사회상 성립과 이해력을 감안했을 수도 있겠다. 경제는 금융 시장과 주식 시장의 자본의 흐름으로 움직인다, 돈이 돈을 번다, 확실한 것은 불확실성이다, 라는 설명이 청소년에게는 소화가 어려울 수 있으며, 사행심을 조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때로는 ‘선별된’ 진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나는 이렇게 선해해 본다. 이 책은 사회 교과서를 읽고 의문을 갖는 학생, 선생님, 양육자에게 유익할 것이다. 모든 덕과 악덕의 알리바이가 된 자본주의를 차분히 처음부터 되짚어보고 싶은 성인들에게도 훌륭한 재입문서가 될 것이다. 독서 모임 스터디용 책으로도 그만이다. (경제학자의 삶과 이론이 촘촘하게 교차하니, 나눌 수 있는 이야기 소재가 그만큼 풍요롭다.)
언급했듯이 이 책의 미덕은 천재 경제학자들의 이론과 더불어 그 경제학자들의 삶 또한 비중 있게 다룬다는 점이다. 먼저 애덤 스미스, 간단한 경제 입문서에 무분별하게 인용된 ‘보이지 않는 손’과 ‘제빵사의 이기심’ 때문에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시장 만능주의자’로 인식된다. 한편에서는 냉정한 자본주의의 사상적 바탕을 제공한 이로 공격받는다. 하지만 저자는 이 낙인이 얼마나 편협한 것인지 보여준다.
나는 특히 마르크스와 엥겔스라는 두 인물에 대해 새삼 놀라고 관심을 갖게 됐다. (두 사람은 너무나 유명해서 그 정수는 가장 덜 알려진 아이러니한 위인들이다. 상징과 기호로만 남은.) 그들의 학문적 열정, 성실함, 책임감. 두 사람이 나눈 우정은 특히 눈부신데, 어떤 사명감이라는 복음 없이는 불가능했을 업적들이 둘 사이의 내밀한 교감에 의해 성취된다. 거대한 사유를 한 번에 휘어잡아 한 문장 안에 녹여내는 마르크스의 시적이고 터질 듯한 문장의 장력. <공상에서 과학으로의 사회주의의 발전>을 씀으로써 그들 연구의 대중화에 애쓴 엥겔스.(이 책의 언급을 보고 책장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수 십년 된 그 책을 찾아봤으나 찾을 수 없다. 세월에 낱장들이 시큼하고 노랗게 바랜 얇은 책) 헤르만에 의하면 엥겔스는 죽으면서 마르크스의 딸과 그 가족에게 상당한 재산을 남겼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케인스. “돈은 그의 직업이자, 학문적 열정이자 취미였다” 저자가 묘사한 그의 삶을 읽다 보면 저 문장에 실로 동의하게 된다. (사족이지만, 블룸스버리 회원이었던 케인스는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에도 흔적을 남긴다. 어느 날 울프는 일기에 케인스와의 길고 흥미로운 대화를 기록한다. 칭찬 받는 것을 좋아하고, 칭찬이 필요하다고 케인스는 말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그에게 말했다고 울프는 일기에 적었다.) 대단한 부와 천재적인 지능과 열정까지 가졌던 그가 아닌가. 헤르만이 묘사한 내용만으로도, 케인스는 삶 자체가 드라마틱하다.
이 책의 밀도는 높다. 저자는 종횡무진 세 학자들의 가족 내력, 사생활, 저서, 그들이 교류한 사람들, 편지, 메모 등을 넘나들며 자본주의의 거대하고 정교한 토대를 드러낸다. 덕분에 독자는 18세기에서 21세기에 이르는 자본주의의 지형도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게 된다. 그것도 무척 흥미롭게 말이다.
이 책은 우리가 호흡하는 대기가 된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 안내자들은 자본주의의 구조, 작동 원리, 그 영향을 연구하는데 온 삶을 바쳤다. 물론, 그들을 움직인 열정의 동인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자본주의라는 말조차 없던 당시에 이미 이 학자들은 노동과 자본의 의미, 파급력, 변화상을 예측했다. 현상은 천재들의 관찰과 발견에 의해 ‘설명’되고 ‘이해’될 수 있는 어떤 것이 된다. 우리가 공부를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
자본주의라는 경제 구조를 처음으로 손에 잡힐 듯 인식했을 때의 각성의 느낌들을 기억한다. 그 뒤로 30여 년, 세계는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너무나 빠르게 변했다. 안개 같은 피로감과 무기력. 경제적 불공정과 불평등은 이제 거의 ‘자연화’되는 듯하다. 자본주의는 세계의 유일한 본성, 선천적 조건이 된 듯하다. 선택의 여지가 원천 봉쇄 된, 외부가 없는 세계, 피부와 내장이 된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와 표상들.
나는 자본주의의 가장 음험한 점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인간성’ 자체를 변화시킨 점이라 생각한다. (그런 만큼 헤르만이 인용한 마르크스 문장들의 흡입력은 대단하다.) 욕망, 쾌락, 향락, 효율, 경쟁, 성공, 편리로 기울어진 저울추는 너무 무거워져 인간성안에 한때 존재했던 정의나, 형평성, 중도라는 눈금은 사라져가고 있다.
이 책은 인간의 얼굴까지 변화시키는 자본주의를 들여다보게 한다. 그것도 아주 깊이, 치밀하게. 내가 숨 쉬는 대기의 주요 성분과 그 흐름의 방향을 아는 건 중요하다. 어떻게 살까와 연결되니까. 그런 만큼 이 책은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안락과 피로로 반수면 상태에 잠긴 정신을 깨운다. 어떻게 하면, 덜 착취하고, 덜 착취당하고, 덜 현혹되고,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삶의 물질적 토대에 관심과 고민이 많은 분들에게 맞춤한 책이다. 자본주의 입문서를 찾는 청소년에게, 자본주의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재점검할 시점이라고 생각하는 성인들에게 반가울 경제학 책이다. 경제학과 자본주의에 관한 스터디 교재로도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