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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26
에밀리 디킨슨 지음, 조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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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 에밀리 디킨슨 / 조애리

이번 을유문화사에서 출판된

에밀리 디킨슨의 시 선집을 읽으며

오랜만에 감동스러운 경험을 했는데

그건, 어떤 시집을 읽으며

시인의 영혼 안으로 내가 깊숙이 들어갔다 나온 듯한

실로 귀중한 느낌이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 선집을 읽고 난 후,

그녀의 마음 속 정원에 난 많은 길들을

며칠에 걸쳐 하염없이 걷다 나온 기분이다.

매일의 정원을 바라보다가, 매일의 자연을 응시하다가

정원이 된 사람, 자연이 된 사람.

그녀가 에밀리 디킨슨이다.

그녀의 시집에는

사랑의 속성, 사랑의 아픔, 사람의 힘,

슬픔과 상실 그리고 그리움의 여러 얼굴들,

외로움과 고독, 분노, 두려움...

그리고 탄생과 죽음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감정들.

인간이 겪는 거의 모든 감정들이 녹아있다.

그 감정들이 자연의 언어에 실려 표현된다.

꽃, 노을, 새, 벌, 새벽, 일출, 정오, 석양, 달과 태양, 불꽃, 숲, 나무...

그녀의 시어와 언어의 리듬은

그녀가 눈앞에 펼쳐놓는 자연에 그대로 스며들어 녹아있다.

그래서인가,

그녀가 말하는 슬픔이나 고독, 외로움, 두려움.

누군가 어둡다고 말하기도 하는 이런 감정들은

부정적이고, 어두운 에너지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에밀리 디킨슨은 슬픔이나 고독, 이런 감정들에서

많은 가능성을 발견해 내고, 이러한 감정들이

기쁨이나 환희로 변용될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음을

시로 보여준다.

자연의 변화가 그렇듯 슬픔과 고독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그것들이 기쁨과 조화처럼 삶의 조건이라는 걸 그녀는 받아들인다.

혹여 그 슬픔이 지상에서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 해도,

시 속의 그녀는 언제나 슬픔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와 힘, 여유를 갖고 있다.

(‘슬픔의 기병대를 지휘하는 사람이 더 씩씩하다는 것을 안다 p26)

오랫동안 여러 감정들에 규정되어진 특정 이미지와 정서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시인의 의지.

그것이 죽음이라 해도,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상황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견인할 수 있는 건,

우주와 자연에 대한 시인의 오랜 통찰의 선물일 것이다.

인간이 겪는 수많은 감정들을 그녀의 시어로 추체험하면서

그것들이 견딜 수 있는 어떤 것,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커다란 가능성의 창이 되는 것,

즐겨야 하는 어떤 것으로 변화되는 것을

그녀의 시를 읽으며 지켜보게 된다.

시인의 힘이란. 시의 힘이란.

에밀리 디킨슨의 종교는 자연이다.

그녀가 섬긴 자연의 사제들은 새, 귀뚜라미, 벌, 꽃, 돌, 어둠, 햇살.. 이다.

자연의 풍요로운 존재들은 언제나 그녀 주위에서

고결한 찬송가로 미사를 집전중이다.

이런 이유로 그녀의 많은 시들은 환희와 기쁨으로 반짝인다.

그녀의 시를 읽고 난 후

새삼 인간의 영혼 안에는 얼마나 광대한 바다와 하늘이 펼쳐져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이 넓은 우주를 마음에 품고 살며,

나는 얼마나 그 구석만을 헤매며 살고 있는지.

그녀의 시에는 죽음이 유독 많이 등장한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 역사 속 인물들의 희생,

아주 구체적으로 상상되어지는 자신의 죽음까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 시 속에 이 죽음들은

삶을 더욱 삶 답게 재생시킨다.

그녀의 시 속 죽음은 삶의 채도를 한껏 높여주고

삶의 윤곽을 더욱 또렷하게 해준다.

그녀에게 죽음은 생의 감각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따라서 삶 속에서 일상적으로 명상되어야 할 것이 된다.

그녀의 음성으로 듣는 죽음은

삶의 절정과 삶의 대담한 진실들을 전면에 드러내주는 빛이다.

그녀가 열어젖힌 죽음의 창으로 세계를 내다보면

삶은 생명, 기쁨, 환희로 충만한 장소가 되고,

지상의 생명들은 셀 수도 없는 가능성 속에 던져진 존재들이 된다.

죽음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은

‘조그만 손을 쫙 펴서 천국을 모으는 p157’ 복된 것이 된다.

에밀리 디킨슨은 열렬히 우주와 자연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그런 만큼 열렬히 인간의 삶을 사랑한다.

그리고 인간의 삶을 우주와 자연의 질서 안에 통합시킨다.

우주와 자연의 섭리 안에서 인간의 종교와 법은 참으로 초라한 것이 되기도 한다.

조악한 종교와 관습, 제도에 갇힌 존재들에게

그녀가 발견한 광활한 섭리의 언어들은 얼마나 해방감을 주는지.

석양의 아름다움이 인간이 가진 가난한 색채분류 언어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듯이,

인간의 생명과 삶을 억압하는 어떤 종교와 제도는 결국 실패하게 될 거라는 걸 그녀는 시로 말하고 있다.

어떤 시집을 읽는다는 건

그 시인의 영혼 속에 내가 깃드는 거라는 걸,

또한 그 시인이 나의 영혼 안에 깃드는 거라는 걸,

이 일이 이렇게 아름다운 사건이라는 걸,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느끼게 준 소중한 시집이다.

인간에게는 영혼과 마음이 있다.

이 진실을 기쁘게 되새겨준 시인,

그녀는 에밀리 디킨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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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26
에밀리 디킨슨 지음, 조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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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 디킨슨 시 선집

/ 에밀리 디킨슨

/ 조애리 옮김 / 을유문화사

오늘 에밀리 디킨슨의 시 선집이 도착했다.

얇은 그녀의 시집을 읽어오며 언제나 갈증을 느껴오다

이리도 묵직한 시집을 접하니 그 동안의 목마름,

또 앞으로 한동안의 목마름을 해소해 줄 아주 커다란 잔의 청량한 물을 5월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듯 기분마저 청량하다.

에밀리 디킨슨에게는 고립과 은둔이라는 꼬리표가 자주 붙는다.

이 꼬리표에는 세간의 관심과 편견이 동시에 담겼다.

집 밖에 나오지 않는 사람의 편협함, 고집, 세계와의 불화.

외출을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편견은 대략 이런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은 정말 외출을 하지 않을까.

외출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는 걸 모르는 시선들이야말로 편협한 건 아닐까. 어떤 이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외출한다.

분주히 외출한다. 멀리 떠난다.


야행, 그들만이 찾는 시간대의, 그들만의 장소로의 산책,

일년 내내 계절을 감지하는 예민한 시선으로 떠나는 창밖으로의 외출. (사각형의 그 작은 창으로 어떤 이들은 매일 우주와 만난다. 그 우주와의 만남은 지구라는 행성의 신비로운 만남으로 이어진다 ) 우정을 나누는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형식의 보다 더 간곡한 외출, 그리고 무엇보다 시라는 형식으로 자신안에, 그리고 결국 타인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길을 내는 한 생에 걸친 외출.

분주하고 산만한 외출을 고의로 삼가하는 대신,

그 고의적인 머무름을 통해 간직할 수 있었던 고도의 집중력과 섬세함으로 그것이 마음으로 난 길을 따라가든, 물리적 세계로 난 길을 따라가든 은둔자의 한 번의 외출은 세계와의 유일무이한 만남이 된다. 그런만큼 그 외출은 세계와의 진실한 대면의 순간으로 빛난다. 순간이 영원이 되는 농밀한 접속인 셈이다.

어쩌면 그녀야말로 외출의 천재일지도 모른다.

형식적인 친교를 위한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

하지만 내가 매일 찾는 산책로의 하늘, 나무와 풀, 하천, 새들,

작은 벌레들, 물고기들, 돌, 그리고 사람들 ..

그 구석구석의 주인들을 누구보다 섬세하게 아는 나는,

그 길에서 우주와 세계의 경이로움을 알게 된 나는,

십년 넘게 다닌 그 길의 내일이 매일매일 궁금한 나는

에밀리 디킨슨에게 오래전부터 우정을 느껴왔다.

그녀의 시들이 좋다. 어떤 이들이 고립과 은둔이라고 말하는 에밀리가 '선택한' 삶의 방식을 이해한다.

이렇게 우정을 느끼는 그녀의 시들을

페이지가 줄어드는 아쉬움을 덜 느끼며

당분간 마음 놓고 읽을 수 있다니 두꺼운 이 책이 반가운 이유다.

표지의 사진은 그녀가 시를 쓴 창가 앞의 테이블이라고 한다.

저 테이블앞 의자에 앉아 창밖으로 들어오는 빛의 변화를 온 몸으로 느끼며 시를 썼을 테지. 시를 쓰다 자주 몸을 일으켜 창 밖의 나무들과 하늘의 변화를 오래도록 지켜봤겠지.

책을 펼치자 마자 나온 페이지가 시인에 대한 시이다.

시인은 멸망한 이웃 종족에게서 엄청난 장미유를 짜내는 사람이라니, 예전에는 우리도 그런 능력이 있었다니,

그런데 우리는 그런 능력을 자각하지 못하고

끊임없는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니,

시간을 초월한 자신의 부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도둑을 맞아도 손해를 보지 않는 시인이라니,

누가 그녀를 세계와 불화하는 괴팍한 고집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사랑뿐인 사람에게 말이다.

( 이 글은 도서제공으로 쓰여졌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글입니다.

좋은 기획으로 멋있는 책을 세상에 내놓은 출판사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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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교육의 미래 - 왜 기술만으로 교실을 변화시킬 수 없을까
저스틴 라이크 지음, 안기순 옮김, 구본권 감수 / 문예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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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교육의 미래

( 저스틴 라이시 지음, 안기순 옮김, 구본권 감수, 문예출판사 )

음성 기계를 통해 들려오는 강사의 쇳소리 나는 목소리, 카메라에 촬영된 강사의 경직된 얼굴근육들, 선명한 프레젠테이션 박스 안에 몇 개의 문장으로 요약되는 강의 요점, 단답식으로 진행되는 학습 평가. 이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아, 정확히 표현해 견디기 어려워 적지 않은 강의료를 내고 수강 신청한 몇 개의 사이버 학습 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않은 나로서는 이 책의 주된 쟁점인 MOOC( 온라인 공개 수업, Massive Open Online Course)의 여러 측면이 흥미로웠다.

교육의 목적은 실로 다양하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무슨 강의를 선택해 들어본 경험이 있느냐에 따라, 혹은 어떤 목적을 위해 어떤 강의 선택을 앞두고 있느냐에 따라 이 책에서 논의하는 교육과 기술의 결합 가능성의 여러 맥락이 다르게 체감될 것이다. 원예학과 사이버 강의의 접목, 원시 불교 이론과 사이버 강의의 접목은 각각 결이 다른 교수이론이 적용될 테니 말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기 전에 셀 수 없는 다양한 학문의 맥락은 잠시 접어두는 것이 좋겠다. 모든 학문의 복잡한 맥락과 MOOC와의 연결 가능성의 수만 가지 경우의 수를 따지려들었다면 저자는 이 책을 끝내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 저스틴 라이시는 MIT의 비교미디어연구학 교수이다. 교육과 테크놀로지의 결합, 그 결과물인 에듀테크를 활용한 디지털 학습 설계가 그의 주된 연구 분야이다.

MOOC는 교육의 형평성에 기여했는가?

- 온라인 공개 수업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미래

책은 우선 온라인 공개 수업 (MOOC)을 강사 주도 학습, 알고리즘 학습, 동료 주도 학습으로 세분화해서 설명하고 각 유형을 분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이 분석들 안에 드러나는 MOOC의 현실적인 모습들이 특히 흥미로웠다. 가령 저자는 MOOC 수료증의 가치가 불분명하고, 고용주들이 이 수료증들을 유의미하게 인정하지 않는 현실을 꼬집는다. 취업난이 야기한 불안에 사람들은 각종 학위와 자격증을 따기 위해 MOOC를 수강하는데, 그것이 취업과의 연결성이 희박하다면 참 암담한 이야기다. 또한 MOOC로 교육의 민주화가 앞당겨질 거란 일군의 전문가들의 예측과는 달리 이미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실질적인 성과를 주었다는 점도 의외의 결과였다. 알고리즘 학습이 교육의 질을 진일보시킬 것이라는 주장과 같이 교육 기술 분야에서 나오는 장밋빛의 극단적인 주장들은 대부분 사기 행각이라는 저자의 단언은 명쾌하다.

교육 시스템 알고리즘은 어떻게 인간 존재와 교육 현장을 재편하는가.

- 온라인 공개 수업의 여러 딜레마들



저자는 온라인 공개 수업이 가지는 딜레마들을 살펴본다. 우선 저자가 친숙함의 저주라 표현한 학교 현장의 보수성이 교육 기술과의 접목을 지연시키고, 불화시킨다는 점이다. 저자가 사례로 든 립 밴 윙클, 스큐어모피즘은 흥미로웠다. 학교는 신기술로 혁신되기보다는 오히려 신기술을 기존 기술로 길들인다는 저자의 분석은 학교가 얼마나 복잡하고 보수적인 장소인지 말해준다. 이렇게 변화에 더딘 현장 문제의 해법을 저자는 교사들간의 커뮤니티에서 찾는다. 저자에 의하면 교육자의 교수 방식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동료 교사로, 이들 간의 학습 네트워크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이해하고 옹호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디딤돌이 된다는 말이다. 이 교사들의 커뮤니티에서 신기술은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는 도발적인 방식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예측한다.




 MOOC의 또 다른 딜레마는 ‘마태효과’(마태복음의 ‘있는 자는 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가진 것 마저 빼앗길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기술이 불평등 시스템을 혁신하기 보다는 강화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배경에서 야기된 여러 차별과 배제는 MOOC의 접근도과 활용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기술이 구조적 불평등을 완화하기보다는 재생산한다는 말이다. 디지털 격차가 내포하는 접근성과 이용능력의 격차 면에서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나타난다는 분석이다. 이 분석을 설명하는 근거로 저자가 제시한 사례들은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들을 접하게 해준다. 저자의 아래의 문장들은 그래서 울림이 크다.




‘교육 기술과 형평성이라는 난제에 대처하려면 무료 온라인 교육 기회가 저절로 민주화를 이룬다는 사회적 통념을 거부해야 한다. 대신에 교육자, 개발자, 정책 입안자들은 교육 기술이 불평등을 영속화하는 데 개입하는 현실을 드러내는 광범위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고심해야 한다. 이제 이러한 역학을 충분히 알고 있으므로, 교육 분야에서 과대광고 주기의 다음 물결이 밀려올 때, 그것이 가상현실과 관계가 있든, 인공지능과 관계가 있든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새로운 혁신으로 누가 가장 큰 혜택을 입을 것인지 질문할 수 있다’ (227페이지)




저자의 분석은 디지털 격차의 원인 분석에서 해결 방안 분석으로 나아간다. 저자는 디지털 형평성을 추구하는 설계 원칙을 제시한다. 그 원칙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디지털 학습의 공동 목표를 설정하여 단결하고, 이어 디지털 설계자들은 가정, 학교, 커뮤니티와 연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육자들은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관심사와 정체성을 반영해야 한다.




MOOC가 해결해야 할 또 다른 딜레마는 평가의 함정이다. 온라인 공개 수업의 평가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저자가 비판하는 온라인 공개 수업의 평가 방식의 대표적 허점은 구상화의 오류이다. 평가 대상으로서의 인간은 기계적으로 단순하게 평가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이다. 컴퓨터 교수의 맹점은 컴퓨터로 평가될 수 있는 것들만 교육한다는 점이다. 채점의 알레고리가 교육 내용의 알레고리를 구성한다는 딜레마이다.




컴퓨터 학습과 평가의 딜레마는 곧 교육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만이 해결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에 대한 물음으로 연결된다. 저자는 그 답으로 복잡한 의사소통과 구조화되지 않는 문제 해결을 제시한다. 그렇담 복잡한 의사소통과 구조화되지 않는 문제해결에서 여전히 인간이 비교 우위를 갖기 위해 갖추어야 할 능력은 무엇일까? 저자는 두 학자 레비와 머레인이 노동 시장에서 찾은 해답, 즉 창의성, 비판적 사고, 의사소통, 협업에서 그 열쇠를 찾는다. 컴퓨터와 로봇이 복제할 수 없는 영역에 교육의 초점이 맞춰져야 하며, 이 문제는 미래의 노동 시장과도 연결된다.

교육 시스템안의 데이터는 누가 어떻게 저장하고 관리하는가.

- 교육 플랫폼 데이터 수집과 실험의 사회적, 윤리적 난제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구성을 MOOC 학습에 수반되는 대규모 데이터 수집과 무분별한 실험에 대한 문제 제기에 할애한다. MOOC에 진입하기 위해 학생들은 이름, 생년월일, 성적, 주소, 사회보장번호, 영주권 등 개인신상정보를 요청받는다. 학교관리시스템은 신분증, 건물출입증, 와이파이 연결지점 등을 통해 학생의 동선을 추적할 수 있다. 학생이 디지털 중재 서비스를 더 많이 제공받을수록 학생의 신상 정보는 디지털 시스템에 더 많이 축척된다. 학생 정보 수집의 양과 범위, 그 강제성은 어떻게 조율되어야 할까? 학생들은 자신들의 정보가 수집되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까? 저자의 우려는 다음 문장들에 담긴다.

‘비평가들의 주장에 따르면, 광범위한 데이터 수집에 학생들을 강제로 참여시키는 것은 기술 네트워크를 선전하고 감시 상태를 증가시키는 감시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도록 학생들을 길들이는 것이다’ ( 290페이지)

MOOC 학습의 학생 정보 수집의 극단적인 사례로 저자는 제시하는 부정행위 금지 소프트웨어는 이 고민을 더 깊게 한다. 또한 이렇게 수집한 데이터들이 컴퓨터 시스템 알고리즘을 불평등하게 강화하는 패턴으로 구조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다분하여 우려가 크다. 이 문제는 다음의 문장으로 요약된다.

‘데이터에 근거한 이러한 추천 엔진은 역사적으로 불평등한 패턴을 강화하는 추천을 제공할 가능성이 있다’

( 302쪽 )

MOOC 운영과 교육 연구를 위한 학생 신상 데이터 수집의 혜택과 비용의 조율은 MOOC가 해결해야할 또 다른 딜레마이다.

기술이 교육 분야에서 무엇을 할지를 결정하는지는 정치적인 문제이다.

- 기술 시대의 진보적 교육을 위한 제안들

저자는 진보적인 교육 발전을 위한 기술 접목을 위해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하다.

첫째, 혁신적인 교육과 교육 형평성에 헌신하는 교육자, 연구자, 설계자들의 커뮤니티 내의 협력이 절실하다. 교육 현장에서 필요한 것은 기술 분야의 영웅이 아니라 교육 주체들 간의 협력이다.

둘째, 기술은 교육 제도 변화라는 광범위한 작업에서 제한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셋째 기술에 의존한 극적인 교육 변화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교육 시스템 변화를 팅거링과 지속적인 향상을 추구하는 긴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의 말대로 MOOC의 현장은 오프라인 교육 현장처럼 복잡하고, 불균일하고, 불평등하다.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교육 현장은 복잡한 시스템이고, 학생, 학부모, 관리자, 정책 입안자 등 수많은 이해관계들이 다양한 측면에서 서로 연결된 결합체이다. 이 복잡성과 불평등성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가 MOOC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저자는 그 조율이 성공한 사례들을 제시하지만, 변혁의 징조는 아니라고 섣부른 낙관론을 제지한다.

‘에듀테크의 가능성과 잠재력에 대한 질문이 성질상 기술적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기술을 사용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은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334)

저자는 이러한 딜레마와 난제들을 장애물이 아니라, 도전이라 생각한다. 이 도전을 위해 저자는 디지털 교육의 설계의 원칙들을 세우고 점검하는 것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원칙들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나비의 비행을 닮은 교육은 가능한가?

- 교육의 진보는 지속적이고 점진적으로 달성된다.

저자는 플루타르코스의 문장 ‘교육은 양동이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불을 붙이는 일에 가깝다’을 인용한다. 저자가 생각한 불은 한 번에 화려하게 타올라 이내 쉽게 꺼지는 불꽃놀이 같은 불이 아니라, 많은 구성원들이 오랜 시간 거두어들인 낙엽과 장작으로, 변덕스러운 바람에 꺼지지 않을까 하는 관심과 협력으로, 지속적으로 지펴가는 그런 불이다. 저자가 이 책 전반에서 일관되게 하는 주장은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변화가 곧 큰 변화’라는 것이다.

저자는 서론에서 민족학 연구자 필립 잭슨의 말을 인용한다. ‘교육 진보의 길은 총알보다 나비의 비행을 더 닮았다’ 기술을 발전시켜 학습에 발전을 가하려는 움직임은 나비의 날개에 로켓을 매다는 것과 같은 형국이라는 일침이 이어진다. 동력 추가가 반드시 진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교육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늘 너무나 복잡한 쟁점들을 안고 있는 난제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사회의 규범을 교육하는 일, 경제적 자립을 위한 기본적인 기능을 교육하는 일, 더불어 사는 시민 사회의 성숙한 시민으로 교육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조력하는 일까지. 여기에 더해 현재는 기술 사회라는 맥락까지 추가되어 기술이라는 변수가 교육의 전 분야에 조밀하게 엮이게 되었다. 그러고 더해 팬데믹이라는 변수까지 (제발! 이 변수가 상수가 되지 않기를). 그렇지 않아도 불평등하고, 복잡한 교육이라는 장에 기술의 다양한 변수까지 개입되어 교육 현장과 다양한 주체들은 혼돈 그 자체이다. 어디를 가나 고민의 말들이 이어진다. 학생들은 학생대로, 양육자들은 양육자대로, 입안자들은 입안자들대로, 행정 실무자들은 행정실무자들대로. 고민, 고민들이 이어진다. 이 고민들이 향하는 방향은 여러 갈래일 것이다. 누군가는 교육의 형평성에, 누군가는 개인의 성공에, 누군가는 수익에, 누군가는 편의에 각자의 방점을 찍을 것이다.

기술 사회에서 교육의 다양한 면모와 맥락을 이해하는 데 더없이 많은 쟁점과 고민들을 던져주는 책이다. 그런 만큼 저자의 고민과 연구가 400여 페이지에 매우 촘촘하게 밀도 있게 담겨있다. 사이버 대학, 교육 방송, 각종 사설 인터넷 교육 기관의 무수한 광고에 노출되어 사이버 교육 환경에 익숙하다고 여겼으나, 그 익숙함이 얼마나 피상적인지 생각하게 된다. 기술 사회의 교육에 대해, 온라인 공개 수업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그것들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생각해 봐야할 단초들이 빼곡하게 숨겨져 있는 책이다. 인류는 총알이 될 것인가. 나비가 될 것인가. 채워지길 기다리는 양동이가 될 것인가, 스스로 연소하는 불빛이 될 것인가. 저자의 주문대로 지치지 않고 물어야 할 질문들, 점진적으로 가야 할 교육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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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에 대한 또다른 의견- 바슐라르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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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슐라르- 바슐라르와 상상의 미학, 그 무한의 나라로의 여행
곽광수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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