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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의료는 가능하다 - 한국 의료의 커먼즈 찾기
백영경 외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평점 :
누군가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라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이것이 무엇인가...'라고 했을 의사 국가시험 응시 거부 사태.
시기적절한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정말 궁금했다. 의료를 하나의 커먼즈(commons, 공동 영역)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인가.
1977년 의료보험 제도가 시작되고 1989년에 전 국민 의료보험으로 확대되면서 대한민국의 의료 서비스는 전 세계인들이 롤 모델로 삼고 싶어 하는 모범이 되었다. 유래를 찾기 힘들지만 그 출발이 가히 순수하지는 않았다. 정치적 의도에서 시작된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이제는 노골적인 손이 되었지만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그 영향력이 우리의 생명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골적인 손에 대한 비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좀 더 자세히 살피고 알려주고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한다는 데 의미가 있는 책이다.
한국 의료에 대해서는 근거 없는 장밋빛 희망이나 현실성 없는 비난이 난무할 뿐, 차분하게 현장을 듣어보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논의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저자는 내과 전문의 백재중, 서울대병원 간호사 최원영, 산부인과 전문의 윤정원, 문화인류학과 교수 이지은,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김창엽과 나눈 대담을 기록했다.
의료의 공공성을 높이려면 의료재정의 공공화, 병원들의 공공성 확충, 지역사회 돌봄 시스템 구축 등을 밀접하게 연결하면서 추진해가야 합니다.
백재중
부서별로 똑 떼어서 별도로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영역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함께 굴러가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마치 우리의 삶이 복합적인 것처럼 의료도 그랬다. 왜냐하면 인간은 의료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밀접하지 않다면.... 삶의 질이 매우 낮아질 것이 뻔하니까.
의료 문제의 가장 큰 근원은 공급자와 수요자의 지식 차이가 현저하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커피는 맛없으면 사람들이 안 가서 그 가게는 자연히 문을 닫게 되지만 병원은 공급자가 수요자를 창출할 수 있어요.
MRI 사진 보면서 의사가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면 누가 그걸 거절할 수 있을까요.
최원영
'공급자가 수요자를 창출할 수 있다.'라는 문장이 주는 폭력성이 대단했다. 마치 누군가가 잔혹하게 나를 때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모든 의사가 그런 건 아니라는 전제를 하지만 일부 의사의 전횡은 수요자인 우리를 쥐고 흔들기에 충분했다.
양약도 기본적으로 70킬로그램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으니까요. 더 다양하고 구체적인 몸무게 가이드가 나와야 합니다.
윤정원
아... 이 생각을 왜 못했지? 권장하는 약의 용량은 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는... 대부분의 기준은 70킬로그램인 성인 남성이라는 걸 알면서도 몰랐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용법과 용량이 있었다. 성인 여성은...?
윤정원은 우리나라에서 여성과 트랜스젠더... 상대적 약자에게 행해지는 의료적 차별이 자행되고 있다. 나는 성인 여성임에도 모르고 있었다. 왜?
아직까지 특별하게 병원에 갈 일이 없었다. 아니다. 있었다. 큰 아이를 낳을 때 대형 산부인과에 입원해 있다가 응급수술을 하기 위해 구급차에 실려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워낙 위급했고, 산부인과끼리 트랜스퍼가 잘 되어서 전혀 몰랐던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인식부터 살펴봐야 할 부분이고, 많은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주류를 기준으로 세워진 의료적 판단의 기준 때문에 여성을 포함한 약자들은 '내가 약자임'을 계속 증명해야 한다. 피해를 입었다고 증명해야 하고, 아프다고 내보여야 하고, 배려가 필요하다고 까발려져야 한다는 것이다.
질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있고, 스스로도 그러한 낙인을 내면화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아픔을 숨기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질병을 드러내는 것이 자기한테 흠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 혹은 상대가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변할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흔히 있는 것 같습니다.
이지은
한국 사회는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지나친 연명치료를 하고, 없으면 없기 때문에 아무 준비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돈의 유무를 떠나가지는 공통점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 어색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스스로의 마지막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특히 가족과 함께 연명치료를 어떻게 할 것인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충분히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는 문장에 고개를 들고 눈을 감고 생각해 봤다. 나의 부모님과 이런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었던가...
엄마는 수목장을 해달라고 하셨고, 아빠는 절대로 싫다고 하셨다. 두 분이 말다툼을 하실 것 같아 그냥 거기서 일단락했다. 여러 대안을 가지고 부모님과 대화를 다시 시도해야 할 것 같다.
돌봄이 미성년과 노인, 장애인을 위한 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 필요한 삶의 필수 요소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필요한 모든 사람이 돌봄을 받을 수 있어야 정의로운 상태일 것입니다.
김창엽
이러니 돌봄과 의료는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동시에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국가적 위기 속에서 곪아 터진 의료계 안팎의 충돌을 오히려 기회로 삼는 것이 좋겠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다 보니 어느새 책의 마지막이었다. 과연 한국 의료는 커먼즈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인가! 희망적이기는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영리와 비영리의 어중간한 줄타기 속에서 의사라는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되어 버린... 수요자의 선택권은 무시당하는 의료분야.
하지만 지금, 여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한다면 답이 나온다고 했다.
https://blog.naver.com/cau9910/222185570478
*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었습니다. 읽고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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