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요즘 '자기 주도적 학습'이 열풍(?)인가보다. 참 이상하다 생각했다. 그 학습 방법의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문자 그대로 해석해 볼 때는 스스로 학습을 이끌어가고 새로운 것들을 터득해 가는 방법인 같다. 즉 독립적인 배움의 길을 가라는 의도인 것 같은데, 배움의 내용와 정도를 측정하는 도구는 천편 일률적인데 이게 앞뒤가 맞지 않다. 자기 주도적 학습의 '자기'는 같은 꼴을 하고 있어야 한국에서는 높이 평가 받는 것 같은데 말이지...희한하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경우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자기 주도적 삶,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 둘이 있다고 하자. 다른 여러가지 요소들이 동일하다고 가정 했을 때, 주도적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남자와 여자의 삶을 사회가 두 사람을 향해 바라보는 시선은 동일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봤을 때, 비교적 공부하는 학생 때는 대략 비슷한 잣대로 평가한다. 공부 잘하는 건 성별에 따라 다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 이후 부터가 문제이다. 연애를 하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결혼 생활을 하면서....그 뒤에 이어지는 생애주기를 맞이하며 같은 독립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남여에 따른 서로 다른 가치판단이 이루어진다.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이 남자들에게는 당당함으로 평가되지만 여자들에게는 '기센 여자'라는 표현되어진다. 일을 열심히 하는 남자들은 성실하고 직장 충성도가 높다고 평가되어지는 반면에, 야근하며 열심히 일을 하는 여자는 '성공에 미친 여자' 또는 '가정을 버린 여자'라는 등으로 표현되어지며, 일에 대한 성실함과 책임감에 야유한다.
"사람들의 험담이나 앞으로 강조되어 드러날 시몽과의 나이차에 대한 두려움 이상으로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모욕감이었다. 사람들은 얼마나 신이 나서 떠들어 댈까. 그녀 자신은 스스로가 늙고 지쳤다고 생각되어 약간의 위안을 얻으려는 것뿐인데, 그들은 그녀가 젊은 남자나 좋아한다며 요란스럽게 입방아를 찧어 대리라. 사람들이 자신에게 입에 발린 말을 하는 동시에 잔인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자 그녀는 구역질이 났다. 그런 경우를 수없이 보아 오지 않았던가. 로제에게 배신당하자 그녀는 "가엾은 폴." 이라고 불리는 한편 "지독히도 독립적인 여자." 라는 말도 들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102p)
이번에 한국에 나가서 소위 잘나가는 여자 변호사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생물학적으로 여자인 그 분은, 남자들이 득실거리고 판치는 기득권층에 입성에 성공한 사람이라서 그런지, 생물학적인 여성이라는 표식은 더 이상 문제가 되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사회에서 사회적으로 군림하며 정신적으로 통제할 능력을 갖춘 남성의 탈을 쓰고 있었다. 허탈하고 씁쓸했다. 개인의 삶은 독립적일 수 있지만 한 개인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른 행위는 결코 독립적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거나, 장애물을 뛰어넘을 만큼의 능력을 가진 자들이 장애물이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능력 없음을 탓하는 사회는 결국 소수만 살아남는 사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