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께 소리로, 70까지는 돈을 벌어야 한다고 와이프가 주장한다. (혹은, 요청이든가 요구이다.) 전기 조선시대나 기원 전후에서부터 유럽 중세 전기까지만 해도 사람의 평균 수명이 30이었는데 이제 수명이 늘어나서 80까지 특별한 질환이 없다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70세까지 벌어야 한다는 것은 수명이 늘어나서 돈벌이로 더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뭘까 싶었다. 더욱이 현대 산업 자본사회에서 자본에 종속된 삶을 죽을 때까지 지속해야 한다는 것은 오래전, 노예들이 평생토록 주인에게 복종하고 무릎뼈가 다 닳도록 일을 하는 것처럼 이젠 주인이 돈으로 바뀐 것이나 다름없음에 대한 슬픔이 크다.

 

현 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인생에서 돈 버는 일 빼고, 돈 쓰는 일 빼고 나면 뭘 할 수 있을까. 잠자기와 먹기를 또 빼면 당최 뭘 할 수 있는 인생이란 도대체가 뭘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곤 한다. 일생의 대부분은 돈을 벌고 돈을 쓰다 죽는다. 자본주의 시대에 활동과 삶이라는 두 가지가 따지고 보면 자본적 활동이 거의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돈을 벌다가 돈을 쓰다가 죽는 삶이다. 시답잖게 말하자면 역시 돈벌이가 주된 삶의 활동이다. 성경에서는 이를 노동이라고도 하고 근로라고도 하고 일이라고도 하고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도 한다. 일하지 않는다면 생존하지 말고 살지 말란 소리일 텐데, 그렇다면 인간은 일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견해가 아닐까 한다. 태어난 자는 노동의 숭고함이 자본의 위대함으로 대체된 오늘날의 시대에 과연 노동의 자체에 대한 보람 따위나 혹은 사명감은 없다. 다만 노동이 돈으로 치환되거나 등가교환일 뿐이다. 물론 등가로도 잘 안되겠지만 말이다. 그러니 태어났으면 일을 해라는 강요이거나 요구이라는 뜻이다. 태어난다는 것은 노동력, 일을 하게 함으로써 부를 축적하는 농경사회의 대표적인 경향이다. 부족사회에서도 강력한 힘은 결국 머리 숫자인 쪽수로 대변되고 무리의 힘이 인구수와 비례한다. 그러니 생산량이 많을수록 권력의 힘은 크다는 것이 인간의 역사였다. 그러니 뭐 빠지게 일을 해야만 그 체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었을 것이고 그러도록 태어나게 되어 있었다. 소처럼 일하라는 사명감은 그간의 권력자들이 주장하는 최대의 이데올로기가 되었고 일반적으로도 신념이 되어 버렸다. 게으름을 터부시하게 뼈가 빠지도록 일을 하는 것이 훌륭한 삶이라고 인식되었다. 이게 노동이 곧 삶이었던 시대의 강박과 편견은 오늘날까지 지속된다. 열심히 일을 많이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편견은 그 과거의 시대에서는 맞는 의견의 지배적 사상이었으나, 지금은 대기업 총수가 어디 노동을 많이 해서 일반 직장인들처럼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세계는 무조건 일만 많이 한다고 해서 돈을 많이 가지는 것처럼 비례적이지도 않다. 지금은 일의 시대가 아니라는 것과 전통적인 가치관의 어긋난 초점일 것이다.

 

누구는 놀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하면 이상하게 쳐다본다. "사람은 일을 해야지"라는 생각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서 일하지 않거나 일하지 못하면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다. 이른바 백수. 즉 일을 할 수 없는 무직자를 사람들이 어떤 인식으로 바라보는지 금방 계산이 되는 거다. 그런데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할 때는 어떨까? 현대 산업 자본 사회에서는 특히 점점 사람이 할 수 있는 단순 일자리는 줄어 간다. 출산을 많이 하라지만 일자리를 늘릴 생각이 없다. 사람의 일자리가 기계로 대신할 때라면 사람은 필요가 없다. 그러니 출산이 곧 비용이고 경비의 지출이거나 또는, 담보 없는 투자적 성격이라고 생각하니 출산율을 떨어지지만, 한편으로 출산율을 올리기 위해서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이유가 뭘까. 사람은 점점 필요 없어지지만 일할 수 없는 자도 소비는 해야 하는 물질문명 속에 있다. 핵심은 소비자가 필요하지 경비 투입이 많은 노동자는 필요 없어지는 시대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는 어떻게 소비할 수 있을까? 노동으로는 현대적인 소비사회를 따라 가기란 솔직하게도 버겁다. 자본의 정점에 있는 주식회사나 투자회사는 이익를 창출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경비 지출을 증가시키는 수익 대비 지출이 많은 사람이 필요 없다. 경비를 줄여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좋은 수단이 경비를 많이 들어가는 사람을 줄이는 방법이 첫째가 된 거니까 단순 노동력을 제공할 사람은 쓸모가 없다는 결론이다. 그러니 사람 대신에 경비가 적게 드는 기계가 사람을 대체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노동자는 소비자로 어떻게 될 수 있는가? 다시 말하자면 돈을 벌지 못하는데 어떻게 돈을 쓸 수가 없다는 거다. 

 

70까지 대체 어떻게 일을 할 수 있을까? 당장 지금도 50대뿐만 아니라 40대 초반만 되어도 퇴물이 되고 사람이 나사 개체처럼 교체되기 일쑤인 시절인데 과연 70까지 어디서 무얼 하며 소위 돈벌이를 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도 50이 넘어가는 나이가 되다 보니 그리 썩 좋은 머리가 아닌데 나쁜 머리가 더 나빠지고 돌아가지지 않는다. 기민하게 즉각적인 사고 작용과 신속한 기억력과 판단력의 젊은이들하고는 비교되지 않게 밀린다. 머리도 점점 나빠지고 기억력도 감퇴하고 젊음의 열정도 사그러 들며 20대, 30대 젊은이들의 신체처럼 건강한 것도 아니라 근력도 딸리는데 무얼로 자본주의 체재에서 70까지 일을 해야 한다고 요구를 하는 것일까. 현대 사회는 과거와는 점점 고도화, 지능화, 정보화가 됨으로 살아온 업무의 경력은 소용이 없다. 새로운 것들은 기존의 지식과 경험을 못쓰게 한다. 경험은 낡은 지식으로 전락하고 그렇다고 새롭게 나오는 지식을 습득하기도 쉽지 않다. 경력자의 경력은 그저 살아온 이력일 뿐이지 앞으로의 업무에 도움이 크게 되지 않는다. 타자기를 잘 안다고 해서 스마트폰을 잘 아는 것은 천지 차이인 것처럼 결국 나이 들면 타자기가 된 사람은 설자리가 없어진다는 것. 그런데 돈을 계속 벌어야 한다는 것이 어려운 까닭이기도 하다. 연금이라도 수급할 나이가 아직 멀었고 퇴직이 가까이 오고 은퇴자들의 선택지라는 게 재취업을 노리지만 갈 곳이라고는 패지 줍기나 경비원 자리가 대부분이다. 어디에도 늙은 경력자에게 도움이 크게 되지 않는다. 새로운 것들에게 대해서 기민하게 대처도 못하는데 여기에 비용 지출할 기업이 점점 사라진다. 기업이라고 자선사업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돈벌이에 내몰려 평생 돈만 벌줄 알다가 일을 놓게 되면 낙동강 오리알보다 못한, 오갈 곳 없는 신세로 급진 추락하는 사례는 주변에서 이젠 너무나도 흔하다.

도시는 자본의 바탕이다. 도시의 집적화된 시장이라서 기업이 도시에서 가까이 있거나 도시 속에 있으려 하는 이유이다. 한적한 시골에서 기업의 매장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장사 잘 되는 곳이 시골보다 도시기 때문이다. 도시는 생산기지이지만 거대 소비시장이다. 생산기지는 시골일 수 있지만 소비시장은 시골일 수가 없다. 소비처가 도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도시로 사람은 모여서 바글바글하는 것도 소비와 생산에 있어서 도시가 더 자본적으로 유리한 까닭이기도 하다. 소비자로서의 사람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돈벌이가 되는 소비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소비할 수 없다면 도시는 사람을 배척한다. 문제는 도시에서 살면서 소비하지 않고 자급자족은 불가능하다. 비싼 가격의 토지비, 주거비는 노동력으로는 이제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열심히~! 일해도 도심 근처에 집 한 칸 장만이 불가능한 수익을 내는 노동력이라는 점이다. 지금도 자본이 대자본으로 더 집약시키는 자본주의적 속성에 일부 극소수의 자본가를 제외한 대부분이 허덕거리는 이유이다. 대자본은 작은 자본을 압도하고 더 큰 자본으로 옮아간다. 돈이 돈을 버는 시대라 사람이 돈을 버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 자본주의적 체재를 뭉개지 않고서는 노동의 진짜 숭고함은 없다. 이자비용보다 생산하고 소비하는 비용보다 항상 급격히 적어야 한다. 아무리 소비하고 생산해도 자본적인 이자보다 못한 것이라면 누가 일하려 들겠는가. 돈놓고 돈벌이만 하는 시스템 속에서는  열심히 고통스럽게 일하려 들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우리나라 상황을 자본 시장에 놓고 보자. 우리나라에서는 자본주의 시장도 유례가 없을 만큼 격변했다. 노동자와 소비자는 항상 동일하다는 가정을 해보자. 인구 대비 출산율이 떨어진다고 앓는 소리를 한다. 이것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최저치이다. 결국 노동자 숫자도 줄어들 것이고 나아가 소비자도 줄어든다는 의미이다. 노동자 숫자는 줄이고 싶고 소비자는 늘리고 싶은 목표는 애초부터 계산이 안되는 모순적 항목이다. 그런데 막상 현실은 노동자는 줄이고 소비자를 늘리는데 목적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소비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역으로 생각해보면 생산력이 떨어지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내수시장은 점점 축소될 것이 뻔하다. 기존의 사업을 하던 소비자 시장을 노리던 기업들이 매출 감소가 확실할 것이다. 노동자가 줄어들고 소비자도 줄어드는데 어떻게 기업만 계속 이익을 바랄 수 없는 계산이 나온다. 매출 감소는 결국 노동자의 수익 하락으로 나타날 것이고 소비력의 저하로 나타날 것이다. 인구가 줄어드는데 어떻게 이익이 계속 나길 바랄 수는 없다. 그렇다면 개개인들은 여전히 도시에서 소비력으로 지속할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점점 가난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도시에서 계속 소비와 생산만으로는 그간의 삶과 비슷하게 유지시키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바뀐 패러다임으로 삶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분명 도시에서의 빈한한 삶을 산 게 된다는 뜻이다.

 

일요일 이른 새벽부터 교회에서 나눠주는 500원을 받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교회로 찾아가는 궁핍한 삶이 결코 남의 이야기는 아니다. 노동력을 상실하고 노동시장을 잃어버렸는데 도시는 계속 주거비 의료비 때문에 소비를 해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에 축적된 자산이라도 있으면 그 쌓아놓은 자산을 야금 야금 파먹고 살면 문제가 없겠지만 대부분의 노후생활에 대한 보장을 하지 못했다면 별다른 수도 없다.

 

그래서 자급할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다. 도시는 끝없이 외부로 에너지나 재화를 공급받지 못하면 유지되기 어렵다. 자급을 할 수 없는 도시의 삶이란 모든 것을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물질문명의 한가운데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는 한계의 불행이다. 도시민의 삶이란 바로 여기에서 숙명이 도사리는 셈이다. 자본 얻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반신불구니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 물론 능력이 좋아서 젊을 때 열심히 모아 쌓아둔 재산을 까먹어도 충분하다면 모를까. 우리나라의 노후대책이 제대로 된 노인이 그리 많이 되지도 않는다. 도시에서 일반 서민이 살아가는 행위가 축적하고 살 만큼 여유로운 사람이 별로 안된다. 매달 벌어먹고 쓰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는데 언제 모아서 노후까지 대책을 세워야 할 수 있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렇다면 그런 삶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오래전 소로의 책 "윌든"에서 도시의 삶을 버리고 시골에서 자급자족하는 삶을 설파한 것이 상당히 유의미하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여전히 기억나는 영화의 한 장면이 있다. 스티브 맥퀸 주연의 빠삐용에서 마지막 신. 탈옥과 구속을 반복하던 빠삐용이 마지막으로 갇힌 곳이 섬이 감옥인 곳이었다. 결국 빠삐용은 야자수를 담은 포대를 벼랑 위에서 바다로 던지고 자신도 그 바다로 뛰어내린다. 그리고 섬으로부터 멀어지는 장면은 섬의 감옥 동료가 지켜보고는 영화가 막을 내린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더 이상 탈출에 의미가 없을 법도 한 빠삐용의 나이가 70을 넘겼고 다 늙어서까지 마지막까지 포기할 수 없는 그 자유에 대한 갈망을 벼랑 위에서 바다로 뛰어내릴 때가 영화가 피날레인 것이다.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자유로의 의지가 이 영화를 일약 세계적 명화로 거듭나게 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시골로 향해 도시를 탈출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위치나 공간으로써의 시골은 아니다. 시골에서 살면서 도시의 습성대로 산다면 시골에서의 자급형은 어렵다. 따라서 공간적 이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장소만 바뀐 것일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시골에서는 도시에서 할 수 없는 자급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만들 수 있는 밑바탕이 있다는 점이고 자급을 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이 자급으로 인해서 현대 물질문명에서 비롯된 것을 최소화시킬 때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조금이나마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수입이 없어도 아니 최저의 연금이나 보험만으로도 자족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70살이 되어도 여전히 젊을 때처럼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은 그야말로 주인이 시키는 대로 죽어라 일하는 노예가 따로 없다. 자본이 시키는 대로 죽어라 일만 하다 죽는  것이 인생이면 정말 슬픈 삶을 사는 것과 뭐가 다를 바가 아니다. 완전히 원시인처럼 모든 것을 자급하고 살 수 없는 생활 습성이 있어도 이런 도시적 삶을 최소화시킴으로써 자본에서 자유롭기를 원한다. 굶어 죽어도 굴복하고 싶지 않은 자본인 까닭이다. 평생을 돈 벌다 죽으라는 운명을 거슬러 이 자본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며 그래서 자유로운 내 삶에 대한 의지가 자급할 수 있는 곳을 원한다.

이제는 자본주의에 대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치킨이 먹고 싶으면 먼저 닭을 키우고 빵을 먹고 싶으면 밀을 심고 밥을 먹고 싶으면 벼를 심어야 하듯이 대규모 공장 생산 방식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삶이 그립다. 도시에서 치킨 한 마리 시켜 먹는데 몇만 원도 들지 않는다. 우리는 전화 한 통으로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배달해 주는 이 도시적 편리함은 먹는 재미도 음식을 만드는 재미도 박탈당한다. 도시에서 자신이 돈을 들이지 않고 먹거리 하나 해결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은 현대인의 치명적인 불행이다. 늘 종속된 삶이라는 게 고대의 노예제나 마찬가지이다. 먹거리도 문제지만 주택비는 또 어떤가. 대기업에서 닭장처럼 찍어낸듯한 아파트 한 채 사느라 평생을 바치고 이마저 다 채우지 못해 은행의 노예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월세 살 듯이 매달 지출해야 하는 원금과 이자비용을 들이느라 자신의 가처분 소득의 큰 부분을 지출하는 것은 자본의 종속 논리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다. 몇 평에 사는 게 삶의 질을 결정하겠는가. 은행 이자로 인해서 삶의 질이 결정될 것인지는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넓은 집에서 산다는 게 공간적 확보이나 심리적으로는 항상 주눅 들어 있는 셈이다. 먹거리, 거주 공간, 이 두 개의 자급적 충족이 되지 못한 삶은 자유의지라고 할 수는 없다. 늘 얽매이는 삶이라는 게 자유의 반대의 개념인 건은 누구나 다 아는 거 아닌가.

인간은 시간의 철새이다. 공간을 타고 시간 속으로 떠돌지 않는 사람이 없다. 언젠가 나도 떠나야 할 필연적 존재이다. 그렇다면 이 필연적 떠남의 존재에 왜 자본의 구속에 안주하는 것이 행복이라 여기는 이 거대한 이데올로기적인 착각이 나는 두렵다. 도저히 행복해지지가 않는다. 얽매인다는 거. 운명에 얽매이는 것도 주체할 수 없는 부대낌일 텐데 사회적 현실과 개인적인 자본력의 차이가 운명을 결정하는 부자유는 분명한 고통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 떠나자고 생각한다. 빠삐용처럼 마지막으로 벼랑 끝으로 몸을 던지는 듯이 꼭 한 번은 자신이 생각하는 헤게모니를 찾아가야 한다. 묘비명에는 "무한대의 자유를 찾고자 여기서 탈출하다." 이거면 딱 좋겠다. 끝으로 70까지 노예로 살라는 것 아무리 농담이더라도, 지금 죽어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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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5 10: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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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5 1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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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5 12: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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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5 12: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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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5 1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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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5 1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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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0-05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 70까지 돈을 벌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서글퍼 지네요...

인간 수명이 그만치 늘었으니 어쩌면
필연일까요.

yureka01 2018-10-05 11:09   좋아요 1 | URL
네 존재론적 비애..현대 사회의 인생에 대한 우울이
70넘어서까지 경제적 활동이 없으면 유지를 못하는 불행함입니다..

그래서 시골로가서 도시적 삶을 청산하고
안빈하려는 이유입니다..

적게 먹고 적게 쓰고 젊을 시절에 부은 보험과 연금으로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을 이미 준비를 해둬야 합니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자급할 바탕조차 준비가 안된다는 점입니다.

2018-10-05 10: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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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5 1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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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5 1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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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5 11: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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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6 2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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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7 08: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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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10-08 14: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은 점점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것 같아요. 열심히 살아도, 느긋하게 살아도 더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것 같아서, 가끔은 속도감에 적응이 되지 않는 기분입니다. 내일은 월요일인데, 내일이 공휴일이어서 금요일 같습니다.
유레카님, 좋은하루보내세요.^^

yureka01 2018-10-08 16:25   좋아요 1 | URL
제일좋은건 조금씩 스스로가 여유를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바쁠 땐 정신만 없어서 부산할 뿐이니..ㅎㅎㅎㅎ
네 가을날 물씬 물드시길 !~~~~

강옥 2018-10-08 15: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들어와서 읽다가 끊고 이제 다시 끝까지 읽어보네요.
저는 평생 현역으로 사는 분들이 참 부럽던데요
늦게까지 돈을 번다는 것보다는 자신의 전문 분야가 있고,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게 좋아보여서.
시숙님(69세)도 옆지기(62세)도 70까지 일하겠다고 하시던데요. (제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ㅎㅎ)
대기업에 30년 이상 근무했던 분들도 소일거리가 없으니 못견뎌 하시더라고요.
취업박람회 같은데 가보면 젊은 사람들보다 퇴직자들이 더 많으신 것 같던데요
많이 벌면 많이 쓰고, 적게 쓰면 적게 쓰고, 못 벌면 안 쓰면 되지 않을까요?
걱정은 가불할 필요가 없어요. 우좌지간 살아가게 돼있어요.(만고, 지우당 생각 ㅎㅎ)

yureka01 2018-10-08 16:24   좋아요 2 | URL
돈벌이만 할줄 알면 돈벌이 빼면 할줄아는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죠..
돈벌다가 돈 쓰다가 가는 삶이죠..
늙어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돈벌이만 생각할 수 밖에 없고 그것만이 전부라서요..

어느 시대나 그랬을것만 같아요..
전쟁 시대는 전쟁 하다가..농경시대는 농사만 짓다가 ..요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에 얽매이다가 가는 삶이라니 말입니다..

전 하고 싶은 게 많아서 탈이네요.ㅎㅎㅎㅎ 일단 다 돈은 안되는 것들로만 하고 싶으니..문제입니다.ㅋㄷㄷㄷㄷ

2018-10-09 08: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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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9 23: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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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0-12 12: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일을 해야지˝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삶이 더 피로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게으름에 대한 찬양>을 버트런드 러셀이 썼나 봐요. 그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ㅋ

yureka01 2018-10-12 14:44   좋아요 1 | URL
먹고 살만큼 일하면 된다지만 현실적으로는 먹고 살만큼보다 훨씬 더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점이라서요.

2018-10-12 15: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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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2 16: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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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ALA 2018-10-15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먼저 유익한 긴글을 써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노동을 한다는 것이 자체로서 보람되고 뿌듯한 일인데 현실에서는 왜곡되고 소외되어 있다는 점에 공감합니다. 결국 도시화를 해체하고 되돌리는 작업이 개인적, 사회적 수준에서 일어나야 하겠는데요, 여전히 구상만 있고 어찌 실천해야할지 막연합니다. 그리고 욕심을 조금만 버려야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수고하세요.^^

yureka01 2018-10-16 08:57   좋아요 0 | URL
스스로의 노동으로 하루의 양식이라기 보다는
뭔가 다른 걸로 바꿔야 하는 대가성이다 보니
비교가 되거든요..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자본적 시스템으로 나가면
노동은 설 자리가 없을지도 모르겠더군요..
감사합니다~
 

 

 

"STILL IN THERE "

 

1983~ 2018 까지 사진 평론가이자 작가인 진동선의 작품집.

단순 계산만해도 35년간 그의 사진 작업을 압축하고

정리한 사진 책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한다.

 

35년 동안의 사진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한 걸까.

다큐멘터리로의 사진이나, 혹은 예술로의 사진이나, 혹은 그 무엇으로 명명되는 사진이더라도,

35년간 카메라를 놓지 않고 사진 작업 하는 자기열정의 도취가 무척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도 누군가 사진이 예술이네 아니네 마네해도 신경 안쓴다.

누가 예술이라 하면 어쩔 것이며 아니라면 또 어쩔 것인가.

갑론을박할 시간 있다면 한 장이라도 더 찍을 일이다.

 

내가 좋아서 내가 사진 찍고 싶은,

그래서 사진을 통해서 감정을 말하고 이야기 할 수 있고

카메라를 가지고 한 세상 피상적으로나마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의 복제 그리고 섭렵에 대해

예술이든 아니든 사유이든 아니든 연연하며 따질 필요가 나에게는 전혀 없다.

사진 가지고 더 많은 걸 바라지는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누가 뭐라하든 카메라가 있어서 사진 찍을 시간적 공간적인 틈이라도 있어서

빛을 보며 비집고 들어가는 그 사진의 광활한 세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돈 벌이보다 훨씬 더 재미나다.

 

화가는 붓을 들고 그림에 빠져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고

피아니스트는 피아노 건반에 손가락이 마구 건반 위를 달릴 때가 제일 행복하고

마찬가지로, 카메라 맨은 카메라 셔터 박스 버튼에 손을 올리고

뷰파인더에 눈을 접안시켜 볼 때가 행복하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그 어떤 이유를 제차하더라도 맹목적인 사랑이 제일이다.

목적을 가지고 목표를 이루고 이상과 욕망을 얻으려 발버둥치는 사랑이 아니라,

그냥, 막,  그 시선의 무조건적인 사랑.

그런 맹목에서 이것 저것 이유를 대고

예술입네 아니네 따지는 것들을

덕지덕지 붙는 핑계라도 대는 것일 뿐이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고 핑계없는 인생이 없다는데,

나도 사진 핑게 하나 만든다고 무슨 저주받을 나쁜 것도 아니다.

 

딸아이 간난 아기 때부터 카메라를 들었으니 얼추 20년이 다 되간다.

그동안 대놓고 겔러리에 사진 한번 못걸었으니

사진의 이력서에는 작품이랍시고 주입된 사진 몇 줄 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카메라를 놓지 못한다.

혹시 비록, 사진이 내 삶의 전부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어쩌라고?

사진 하지 말라고?

무엇이든 마음 닿는 것들에게 열정을 쏟아 자신의 삶에 핑계삼아

뭐라고 해봤나라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네, 사진이라도 조빠지게 찍었어요. 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공허의 시간만 소모시키고 살지는 않았음을 피력할 수만 있다면

사진의 목적이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일부분이라도 차지할 거라 여기면 된다.

어차피 또찔이나 개찔인 개 허접이 인생 아닌가 말이다.

이게 자뻑이든 자괴이든 상관없다.

일단 찍고 볼 일이다.

그럼 그만 두면 뭐할 수 있는데?

사진 찍고 보는 거 말고 재미나게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다.

그저 여전히 찍어 볼 일만 남았다.

아직도 나는 이 작품집 책의 사진에 대해 평론할 수 없다.

그의 작품을 평가할 정도면 비슷한 사진 이력쯤 되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35년간 찍고 나서 평가할 자격이 있을테니까.

 

하여간 사진 수십 년 찍어 보지도 않고 주절 주절 대는 입만 바른 소리들.

별로 와닿지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이다.

블로그에서 사진 작품집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냉큼 주문했다.

내가 찍은 사진이 예술인지 아닌지 내 죽고 나거든 따져도 늦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고, 아니면 어쩔 것도 없다.

찍고 보면 그만이고 아님 말면 된다. 사진이 나와 이별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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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9-28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지금 출간되었나요? 오늘 사울레이터 책 읽었는데 너무 좋네요~

yureka01 2018-09-29 00:37   좋아요 2 | URL
지금 예판중이더군요..그런데 저자가 책에 자필 서명 넣어 준다고 해서 직접 구매할려고 선 입금 해뒀습니다.

사진작품집이라서 책 값이 좀 비싸요.

일반적으로 보는 단행본 책이 아니라서요~~~

카알벨루치 2018-09-28 20:51   좋아요 1 | URL
검색해보니 안나와서요 ~ㅎㅎ아마도 가격이 좀 세겠죠!

yureka01 2018-09-28 21:00   좋아요 1 | URL
네 사진집이라서 일반 온라인 서점에서는 구입하기 어렵죠..

https://naingeun.blog.me/221352412383

참고하시면 됩니다...^^..

꼬마요정 2018-09-28 2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즐겁다면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 뭐라하든 무슨 상관이겠어요. 그들이 나를 즐겁게 해주지 못하는데 말이죠. ㅎㅎ 꼭 성과를 내야하는 것도 아니고 꼭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 마음이 즐겁기만 하다면 충분히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유레카님 사진 사랑 부럽습니다. ㅎㅎ

yureka01 2018-09-29 08:50   좋아요 2 | URL
그럼요..자신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도 있어야죠..
사진이 만약 괘락과 같았다면 달랐을 거예요..ㅎㅎㅎ

뭐라도 지긋하게 오래 즐길수 있는 거 하나쯤은 만드시길 바랍니다^^..

강옥 2018-09-29 0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도 사진이지만 저 분이 글도 참 잘 쓰세요
사진 분야만 해박한 게 아니라 인문학적 지식도 상당하더군요
저분 강의를 몇 번 들은 적도 있고 사진 포럼에 참가한 적도 있어요
진동선씨 저서가 많은데 이번엔 자신의 사진세계를 집대성한 책을 낸 모양이죠?
평생 한 길만 보고 걷는 것도 인생에 큰 의미가 있겠죠. 더군다나 자신이 좋아하는 거라면.

yureka01 2018-09-29 09:46   좋아요 1 | URL
네 이미 출간한 사진 책만해도 여타 다른 작가와 다르게 아주 많죠..
그럼요..책이 사진만 가지고 나올 수 있겠습니까요..다른 인문학적 밑바탕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게 또 책이 아니겠습니까요..
하여간 우리나라 사진계에서 사진 평론분야에서는 독보적인 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정말 대단하죠. 이 척박한 우리나라 사진 소비시장에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사진 작업을 오랜기간 동안 이어 온다는게 어떤 의미인지를요..
맞습니다.사랑이 없으면 도저히....나갈 수 없는 작업입니다...

2018-09-30 06: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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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30 16: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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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2 12: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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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2 14: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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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3 15: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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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3 17: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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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3 23: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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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4 09: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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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4 10: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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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4 1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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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4 16: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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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4 17: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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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가 갑자기 운전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로서는 너무나도 "갑!짜!기!"였다. 그러나 와이프는 오래전 부터 운전을 배우고 싶어 했었지만 운전할 엄두도 내지 않았으나, 주위의 직장 동료들 또는 친구들의 운전 권유에 이제서야 용기를 내고 싶었던 타이밍이었던 모양이다. 이 때까지 조수석에서만 앉았던 와이프가 핸들을 잡겠다고 하니 이만 저만 걱정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와이프보다 지켜보는 내가 더 미칠 지경이라는 거였다. 운동 감각이 별로 없는 와이프가 자동차의 속도를 제어하고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의도하는 대로 움직이는 능력이 과연 습득할 수 있을까. 혹은 물론 누구나 익히는 대로 연습하면 습득이 되겠지만 편안하고 불안하지 않게 운전하게 될 때까지 또 얼마나 초보운전의 아슬아슬함을 이겨 낼 수 있을 것인지 까마득한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연휴 내내 운전 연습을 시켰다. 너무 피곤했다. 운전 때문에 이렇게 위험 노출된 높은 피로감은 녹초로 만들었다. 차를 몰아야겠다는 생각은 대부분은 운전을 해야만 하는 어떤 절박한 이유가 있어야 빨리 습득이 된다. 취직을 했는데 직장이 멀다면 차가 필요하다던가 혹은 운전을 꼭 해야 하는 상황에서 빨리 차를 몰아야 하는 이유들이 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까지 와이프는 운전을 직접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게 했던 것이 결국 내가 운전을 못하게 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차가 필요하면 거의 대부분은 내가 태워다 주었고 근무 특성상 대형 마트의 늦은 퇴근 시간에는 거의 퇴근시키러 데리러 갔었다. 멀리 볼 일을 본다든가 하면 거의 태워다 주었으니 직접 운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탓도 크다.

언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시골로 내려가려고 마음먹고부터 내가 옆에 없으면 어떻게 다닐 수 있을까라는 나의 부재가 결국 와이프의 운전 동기유발이 되었던 셈이다. 혼자 운전을 하며 시골에도 가고 친정집에도 가고 이동의 자유를 늘 상상만 했던 것을 이번 기회로 한번 시도해보겠다고 운전대를 잡고 싶었던 거다. "더 늦기 전" 이라는 걸로는 그리 절박한 느낌이 없었는데 운전 바람이 와이프가 운전대를 잡겠다고 나선 이유이다.   


이왕 운전을 하겠다고 운전 학원에 도로 연수를 신청하고 일주일간 몇 시간 동안 연습을 했다. 이왕 운전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으니 와이프에게 차를 사주었다. 와이프가 가지고 싶은 차를 알아보고 새 차나 중고차를 검색해보고 가격을 보고 새 차는 자신이 없었던지 중고차로 일단 몰아 보고 싶다고 했다. 새 차의 흉터에 가슴 졸이고 싶지 않은 마음까지 내비쳤으니 그나마 지역의 중고차 상사에서 운행거리가 굉장히 짧은 믿을 만한 곳에서 바로 차를 구입까지 했다. 차에 편의 장치 옵션이 없어서 가격이 싼 승용차라서 내부 운전 편의 시설 옵션까지 모두 달았다. 내비게이션도 달아 주었고 블랙박스도 달았고 주차의 안정성 때문에 후방 카메라까지. 그러니 통장 잔고가 비어가니 딸랑딸랑 경고음이 들렸다. 게다가 보험까지, 아이고....


마침 추석 명절 때 동네 주변을 돌아다니며 그동안 학원에서 연습하며 익혔던 운전 경험을 바탕으로 와이프가 운전대를 잡아 봤다. 아니나 다를까 핸들을 잡고 익힌 대로 배운 대로 운전은 그리 쉬울 리가 없었다. 초보 운전의 제일 큰 난관은 자동차의 운전 요령이 아니었다. 바로 운전대를 잡고 달리며 발생하는 이 속도의 제어를 체감이 안되는 상태에 따른 속도감의 두려움이 제일 컸다. 그동안 조수석에 앉아서 타고 다녔던 차가 자신이 직접 제어해야 할 속도에 대해 주체할 수 없는 공포감으로 초보가 가지는 속도에 주눅 들어 원하는 바대로 운전에 항상 걸림돌이었다.


특히 무엇보다도 학원 운전 연습할 때 운전 강사는 한 번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편안하게 가르쳐 주는데 왜 남편이란 놈은 소리부터 지르고 난리인 것처럼 광분스러운 지적질인지에 대해 무척 섭섭해했다. 운전 때문에 부부싸움의 원인이 바로 이런 거다. 옆에서 가르치며 보는 나도 돌아버릴 것만 같아서였다. 조수석에 앉아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실전의 운전으로 알려주면 바로바로 적용시킬 수가 없는 자신의 속도에 대한 불안감으로 차를 제대로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은 바로 사고로 직결되는 불안감이다. 순간 순간 핸들링 조작이 불안하고 차선의 유도 방향대로 주행하지 않고 도로에서 나오는 각종 신호를 무시하게 되면 사고의 위험성은 극대화된다. 속도의 두려움이 두 손에 힘이 들어가고 정보를 차단시키며 오로지 전방에만 주시하는 등 백미러도 안 보고 사이드 미러도 보지 않고 등등등... 이른바 운전은 속도의 종합적인 멀티 정보의 인지력으로 차를 제어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도착하기 위한 수단인데 이것이 전혀 안되는 거였다. 속도감의 두려움을 익히지 못한 상태였다. 대체 운전 학원에서 무얼 배웠나 싶었다.


자동차 운전 연습 학원에서 자동차는 일반 승용차와 다르다. 운전석에 연습자가 탑승하고 조수석에는 강사가 탑승하는데 강사의 조수석에도 브레이크와 악셀 페달이 똑같이 듀얼로 장착되어 있다. 이는 운전 중에 돌발할 위험으로부터 강사가 유사시에 대처할 수단이 있기 때문에 강사가 소리 지를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일반 자동차는 강사가 아닌 동승자가 있을 뿐이다. 흔히 가족에게 운전을 배우지 말라고 하는 말이 왜 생기는지 바로 운전 연습에 있어서 자동차의 연습에서 일반 승용차가 전혀 맞지 않는다. 일반 승용차로는 연습하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동승자가 운전을 가르치게 되면 그래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는 이유이다. 동승자가 위험으로부터 제어할 수 없어 그 불안한 운전을 고스란히 겪어야 하는 공포는 그래서 싸움으로 번지는 요인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운전 학원의 연습용 차량이 아니라 일반 승용차였으니 순간순간 사고의 위험성에 그대로 노출되니 내가 스트레스 안 받을 수가 없었다. 타박하는 소리가 자동으로 나오고 큰 소리가 와이프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악감정을 유발하게 된다. 차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서 부딛히는 위험을 눈으로 뻔히 뜨고 지켜 보라는 고통은 비명처럼 나오기 마련이다. 내가 무슨 자해 공갈단처럼 달리는 차에 달려들겠다는 게 아니라 위험을 피하고 싶은 본능이라는 점이다. 동승자인 내가 조절할 수 없고 운전자가 이를 인지를 빨리 못하니 어떻게 비명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상태이다. 또한 가장 큰 문제는 한 번의 실수와 오류를 빨리 캐치하고 다시는 그런 실수와 오류가 반복되지 않아야 하는데 계속 습관처럼 재발하는 경우에는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다행히 실수해도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행운일 뿐, 어디 도로에서 차선을 지키지 않아서 생기는 위험은 사고의 가장 큰 불안 요소이다.


운전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초보 시절을 겪는다. 달리 말하자면, 초보운전이란 바로 차의 속도감을 체감하고 익히는 연습 기간을 말한다. 차의 속도를 제어하는 것은 악셀과 브레이크일 텐데 이 속도의 제어는 악셀과 브레이크의 조작 감각에 따른다. 그런데 이 속도에 편안하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브레이크와 악셀의 감각부터 익히고 차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순간순간 몸으로 체감돼야 한다. 물론 좌우의 방향은 핸들의 조작으로 이루어지고 그래서 주행과 멈춤은 악셀과 브레이크이며 전진과 후진은 기어로, 좌우 방향은 핸들이 담당한다. 차는 이런 기계적인 조작감으로 종합적으로 이루어지는 도구이다. 운전대 조작으로 속도를 체감하고 차의 흐름과 상대방의 속도의 상대속도에 나의 속도를 비교하며 달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조작감에 유기적인 흐름의 약속이 운전 법률로 정해진 것이 곧 자동차 운전이다. 그러나 초보는 이 속도감의 체감이 이루어지지 못했으니 차의 속도에 대한 조작감으로 빨리 익히는 연습을 하는 것이 목표인데 이게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둔해도 너무 둔한 이 버벅거림을 어떻게 빨리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싶었다.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달리는 모든 차는 속도의 흉기이다. 즉 운전이란 이 흉기 같은 속도를 가진 차를 어떻게 이기로 바꾸는 것인가 이게 운전의 핵심일 것이다. 빨리 속도의 불안을 떨쳐내야 하는 것. 바로 용기일 것이다. 속도가 무서우니 이 공포가 운전대 핸들을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가고 핸들링 조작을 뻑뻑하게 한다. 가벼워야 할 핸들이 너무 무겁게만 느껴지고 차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속도에 대한 적응은 누가 대신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게 남편인 나로서의 결정적인 한계일 수밖에 없다. 이걸 대신해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하는 와이프가 차 운전 미숙으로 다치거나 또는 나에게 있어서 거금을 들인 차가 손상 입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당장 다음 주 월요일 출근부터 차를 끌고 나가겠다는데 벌써부터 내 마음이 조마조마한 것도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어떻게 빨리 이 속도감에 자신감을 붙일 수 있을까. 어제는 유튜브에 운전 연습을 동영상 강의하는 걸 내내 지켜봤다.

듀얼 운전대라도 있으면 가르치지도 너무 쉬울 텐데....지금은 와이프의 운전은 안전이 확보된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어떻게 빨리 운전 스킬을 익히게 만들 것인지, 자신의 속도감의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게 만들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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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10: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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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1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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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1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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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1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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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8 10: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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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8 10: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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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8-09-27 1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스틱이라 무조건 저만...ㅎㅎ

yureka01 2018-09-27 13:05   좋아요 1 | URL
앗 수동기어...이게 또 드라이빙의 묘미가 있죠...
초보는 수동기어 차를 운전하기 꾀 어렵죠.
클러지와 기어 조작 서툴면 시동 꺼버러기 일쑤라서요..ㅎㅎㅎㅎ

stella.K 2018-09-27 14: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안 봐도 알 것 같습니다.
와이프님께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가장 못 믿을 사람이라는 걸
아신 거죠.ㅋㅋㅋㅋ
그게 아니더라도 남자와 여자는 나이들면 바뀐다잖아요.
여자는 대범해지고, 와일드해지고.

와이프님께서 지금 한창 차와 연애에 빠지셨나 봅니다.
그냥 지켜보시고 도와주시죠.^^

yureka01 2018-09-27 14:57   좋아요 2 | URL
ㅎㅎㅎ 그런가 봅니다...^^.
일단 연습을 많이 시켜서 적응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수퍼남매맘 2018-09-27 15: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부간에 가르치는 거 진짜 서로에게 스트레스라고 하던데...
그래도 아내분이 많이 서운해 하시니 도 닦는다 생각하시고 조근조근 가르쳐 주세요. ㅋㅎㅎ
전 옆지기가 운전면허가 없답니다. 대박이죠? 제가 운전사.

yureka01 2018-09-27 15:36   좋아요 1 | URL
우아..어마무시하게 부럽습니다....ㅎㅎㅎㅎ

앞에 눈 뻔히 뜨고 위험을 지켜보는 마음이 너무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최대한 자제하며 알려 주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스톱이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와서 미치겠더군요..ㅎㅎㅎㅎ

2018-09-27 16: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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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17: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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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17: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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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18: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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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18-09-27 18: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좀 늦었다 싶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한 게 다행입니다
나이들소록 순발력이 떨어져서 한살이라도 젊을 때 시작해야지요.
차는 날개예요. 언제 어디라도 갈수 있는 자유로운 도구 ㅎㅎ
건너편 차가 다 내게로 오는 듯한 착각, 작은 접촉사고로 인한 두려움
그런 것만 극복하면 훌륭한 드라이버가 되실듯.

저 운전 배울때 남편이 하도 옆에서 소리를 지르니까 울 아들이
뒷좌석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엄마, 클러치 밟고~~~˝ 같이 소리지르던 생각이.... ㅎㅎ

yureka01 2018-09-28 08:55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좀 더 일찍 운전 하게 했더라면 제가 더 편했을 거예요..ㅎㅎㅎㅎ

동승자가 위험한 상황에 차를 제어 할 수 없을 때 나오는 비명같은 소리는
어쩔 수가 없었더라구요..아고야....ㅎㅎㅎㅎ미치겠습니다..~

2018-09-27 23: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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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8 08: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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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8 21: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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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9 08: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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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30 06: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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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30 16: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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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2 21: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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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3 00: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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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4 09: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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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4 23: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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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5 0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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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5 09: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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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04: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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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6 08: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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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죠. 사진은 전부가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디카시 장르에서 주장하는 날시, 즉흥시 같은 사진은 아닙니다. 무작정으로 담는 표현의 즉흥일 수가 없겠지요. 가급적 무의도적으로도 무심코 카메라 뷰 파인더를 접안 시키고 셔터를 누르지 않습니다. 물론 비의도적으로 찍는 경우는 카메라 테스트할 때나 해당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건 비의도적이므로 나는 사진이라 보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지 이미지를 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한 달 전에 모 문학제에 신인문학상에 디카시를 응모해봤어요. 사진 이웃분의 권유가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무슨 변명 같아서 조금은 머쓱하지만 사진을 오래 담아 왔던 나로서는 문학 상이라는 메리트가 별로 없기도 하고 하다못해 어떤 주제의 사진 공모전조차 한 번도 출품해본 적도 없는데 문학 상이라니 사진을 찍어 왔던 의도적 성격과는 사뭇 맞지는 않는 그런 행사였기도 했습니다. 시인되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 온 게 아니라서 말이죠. 시인이 되고 싶었더라면 사진을 찍지 않고 시를 지었어야 맞겠죠.


때로는 사진에 글을 억지스럽게 붙인 적도 있었거든요. 사진으로 사진 글이 비약하는 경우도 있었기도 합니다. 즉 억지 글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진은 사진만으로 메시지가 전달되는 게 사진의 최대의 목표이자 사진적 가치의 궁극적 표현이기도 하거든요. 왜 사진에 자꾸 글을 붙인 것인지는 원하는 사진에 대한 메시지의 전달력 부족과 사진 표현력의 부족이라는 큰 단점의 보완적 성격이 글로 나타나기도 했던 것입니다. 뭐 따지고 보면 사진을 참 잘못 찍어서 글이 나온 셈이니 사진의 결핍이 글을 불러들인 결과를 낳게 되는 거라서요. 원하는 대로 사진을 못 찍어서 글로 그 사진의 부족한 면은 보충하는 목적도 있었더란 말이죠. 그러니 그게 시처럼 보였을지라도 따지고 보면 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사진 표현의 부족으로 나온 글을 시같은 형식이라고해서 디카시 문학상에 응모를 한다는 게 좀 말이 안 되는 거라서요.


사진에는 의도와 작위성이 반드시 따라붙습니다. 무의도적이거나 무작위라면 사진 안 찍거든요. 내가 어떤 이야기를 사진의 형식으로 빌어서 말할 때 그 어떤 이야기가 사진이든 시이든 방식이 다르지만 언어로 표현하거든요. 그것이 이미지의 언어이든 텍스트의 언어이든 표현이란 속성은 사실 비슷하거든요. 다만 형태가 다를 뿐이라서요. 사진이든 시이든 즉흥성과 무작위성이라는 날 것의 싱싱함이라고 말한다면 과연 내가 찍는 사진이 흡사 낙서와 뭐가 다르겠는지 모를 일입니다.


사진을 매게로 한 문학의 장르인 디카시에 사진이 배제된다는 것은 조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디카시라는 장르에 디카라는 것은 디지털카메라로 만들어지는 사진을 통해서 시를 연출하는 형식이라고 정의한다면 디지털카메라, 디카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나 혹은 사진은 시를 위한 보충제 역할인지. 혹은 이미지를 뺀 기존 문학 장르의 시와는 다를 바도 없는 셈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디카시 장르에 왜 사진작가가 심사위원으로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사진의 작품성은 아예 배제하겠다는 의미였나 싶었거든요. 얼핏 디카시라는 분야에 사진 혹은 이미지 이 자체의 작품성은 아예 제외해 버린 것처럼 보였는데 상당히 아쉬웠습니다. 사진도 사진 자체로는 시보다 덜 심오한 세계가 아니거든요. 오히려 현대 사회의 발터 밴야민의 이야기처럼 이미지나 사진의 해독의 부족은 현대의 문맹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으니까요. 사진은 글의 사족 같은 역할이 아니거든요. 사진도 사진 본연의 표현적 방식으로 연출되고 각색하는 것도 있으니까요.


사진은 기본적으로 빛의 복사라는 차원에서 접근해보면 아무리 핸드폰 기계가 좋아졌다고는 하나 카메라를 따라갈 수 없는 기계적 한계가 있어요. 예를 들어 카메라 렌즈 85MM 구경에서 빛을 받아들이는 사진과 핸드폰 렌즈 1mm로 빛을 받아들이는 광량과 광의 세기는 차이가 너무나도 크죠. 하다못해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갤러리에 전시를 하면 아주 크게 프린트가 됩니다만 핸드폰 사진은 프린트를 할 수가 없거든요. 픽셀이 다 께지는 뭐가 뭔지도 모를 정도의 조악한 화질을 냅니다. 그러니 어느 사진작가치고 프린트 크게 하는 걸 원합니다. 가끔 객기같이 핸드폰 사진으로 작품을 여는 경우도 있는데 전혀 일반적이지도 않고 컴퓨터 모니터 상에서만 보이는 것이 대부분이라서요. 열악한 화질과 조악한 사진을 가지고 시를 넣는 것도 일단 사진 감상에서는 최악의 요소로 작용하거든요. 


앞으로도 누군가 정해 놓은 형식대로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진과 시가 예술의 한 범주로 포함을 시키는 거라면 누군가 정해 놓은 것의 테두리 내에서 나의 사진과 글을 제한하고 싶지는 않다는 의미입니다. 예술이란 규정과 비규정의 끝없는 치열함일 것이니까요. 시의 은유가 비틀듯이 사진 또한 마찬가지겠지요. 이렇게 이웃 분의 문학상 응모 권유로 그동안의 사진과 글에 대해 더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그런 디카시 형식의 규정으로 사진과 글을 제한할 이유는 나에게는 없거든요.


앞으로도 여전히 사진과 글로 자유로운 사유와 세상의 피사체에 통찰하고 싶은 시인(是認) 하고 살아갈 일들일 뿐이죠. 사진에 글을 붙인다고 시인(詩人) 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사실 예술적 허영심으로 사진은 맞지 않아서요. 그간 많은 사람들이 이 허영심 체우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었지만 수년간 지켜보니 모두 나가리 되는 게 왜 그렇게 사진을 그만 두는지 알게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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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5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8-09-25 10:39   좋아요 1 | URL
그럼요..단적인 예로,,
음원 저적권에 자유롭다면,,,전 사진에 음악을 붙혔을지도 ^^..
음악에 사진도 아주 잘 어울리는 거라서 말이죠.....
사진에 적절한 음악은 사진의 효과를 배가 시키고
반대로 음악에 사진을 곁들이면 음악의 표현이 시각화되니
음악의 향미가 더 진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네 연휴 좋은 시간 되시고요..감사합니다1~~

강옥 2018-09-25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디카시의 주어는 詩이고 서술어는 사진이라고 봐야죠.
서술어가 고급스럽거나 현학적일 필요는 없는 것 같구요
순간포착 이미지를 날시로 옮겨쓰는 거라고나 할까요?
하동, 고성, 안장환까지 디카시문학상 수상작을 보면서
지금까지 내가 디카시를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싶었어요.
사진의 작품성은 전혀 상관없는, 형상에서 느낀 순발력 있는 날시
그것이 디카시의 정체였나봐요. 유레카님과 안 맞는 게 정상인지도.... ㅎ

yureka01 2018-09-25 12:02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저랑은 좀 안맞더군요...
어디까지나 사진이 주어라서요..
저도 이번에 느낀 점은
사진글은 시처럼 보였을 뿐이지 시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글의 순발력은 저도 없나 봅니다.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09-25 14:13   좋아요 1 | URL
안 그래도 프로사진작가 분과 이야길 나누면서 다카시 이야길 했는데 다카시는 글이 주체이고 사진은 사진이 주체란 생각이 들었는데 여기서 확인하게 됩니다~ㅎ

yureka01 2018-09-26 06:49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전 글보다 사진활동이 주로 했으니...
사진이 주재료인 셈이죠...
아무리 글이 좋아도 사진이 마음에 안들면 글도 ...마음이 안가더라구요..ㅎ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09-26 07:37   좋아요 1 | URL
다카시가 아니고 디카시인데 ㅜㅜㅎㅎ

yureka01 2018-09-26 10:05   좋아요 1 | URL
네 디카시로 알아 듣잖아요...ㅎㅎㅎ^^..

북프리쿠키 2018-09-25 13: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레가님 좋은 글 읽고 갑니다.
남은 추석연휴 잘 보내세요^^

yureka01 2018-09-26 06:50   좋아요 1 | URL
흐...감사합니다..남은 휴일도 화이링 !~~

겨울호랑이 2018-09-25 17: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유레카님의 멋진 사진과 글 감사합니다!

yureka01 2018-09-26 06:5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사진도 많이 찍어 오세요..
구경시켜 주시고..ㅎㅎㅎㅎ

stella.K 2018-09-25 1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그런 거 잘 모르겠구요,
어쨌든 유레카님 글과 사진만 좋습니다.
보는 사람이 좋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유레카님은 정말 너무 말이 많으십니다.ㅠㅋㅋ

yureka01 2018-09-26 06:5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아무리 디카시라는 문학장르이지만...
사진이 홀대 받는 느낌이 들어서 좀 섭섭하더군요..
그래서 말이 많아진거 같아서요..ㅎ^^..

2018-09-25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6 0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목나무 2018-09-26 0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과 글은 몇 번을 다시 보고 읽게 됩니다.
다카시는 처음 들어봤는데 이런 사진과 글의 조합은 와닿음도 더 배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요.



yureka01 2018-09-26 06:54   좋아요 0 | URL
네 새로운 조합으로 와닿음의 배가 효과..이게 하이브리드..즉 융합의 효과라죠..

2018-09-27 1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7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8 1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8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8-10-05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보면서, 사진이 엄청 멋지긴 하지만, 거기에 시를 보태니 말씀하신 것철머 작위적인 느낌이 더해지는 듯했어요. 그래서 저처럼 못찍는(비의도적으로?) 사진에도 의도적인 글이 들어가면 뽀대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는데, 밑에 텍스트로 쓰신 글을 읽다보니는데, 아 바로 그 내용이었군요. 못찍은 사진에 모호한 시어가 담기면 달리 환생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 잘 찍은 사진에는 당연히 시가 사진을 망칠 수도 있겠구요. 그래도 시인과 사진가가 공동작업을 하면 근사한 작품이 나올 거 같기도 해요.

yureka01 2018-10-05 16:30   좋아요 1 | URL
사진의 큰 매력 포인트가 이미지는 직관적인데 이해는 제각각인게 재미죠.해석의 재미..
그런데 글은 사진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효과도 있고.반대로 모호한 사진의 해석에 주관적 시선을 더할 수도 있죠..
세상에 잘못 찍은 사진은 없다고했습니다. 다만 잘못 해석하는 게 문제라고도 했죠...

아무래도 좋은 사진과 좋은 시..둘 다 잡기가 상당히 어렵죠..하나로도 버거운게 사진이나 시라서 말이죠..
 


Bless the day I found you

I want to stay around you

And so I beg you

Let it be me

당신과 만난 날은 축복이에요

당신 곁에 머물고 싶어요

이렇게 당신에게 부탁해요

곁에 있어줘요


Don't take this Heaven from one

If you must cling to someone

Now and forever

Let it be me

이 천국같은 행복을 거두지 마세요

​당신이 누군가에게 빠지게된다면

그 사람이 언제까지나

내가 되게 해줘요


Each time we meet love

I find complete love

Without your sweet

love what would life be

우리가 만날 때 마다

나는 완전한 사랑을 발견하죠

당신의 달콤한 사랑이 없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요


So never leave me lonely

tell me you'll love me only

And that you'll always let it be me

그러니 나를 혼자 버려두지 마요

오직 나만을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항상 당신은 내 곁에 있어줘요


And that you'll always let it be me

항상 내 곁에 있어줘요


And that you'll always let it be me

항상 내 곁에 있어줘요


- 알라딘 이웃 서재분들. 즐거운 연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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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9-22 22:2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추석명절 잘 보내시고 항산 건강하십시오^^

yureka01 2018-09-23 01:18   좋아요 1 | URL
즐겁고 편안한 휴식되는 연휴이기를 바랍니다!~^^

서니데이 2018-09-22 22: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추석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오늘이 연휴 첫 날이었는데, 편안한 하루 보내셨나요.
가족과 함께 즐겁고 좋은 명절, 기분 좋은 연휴 보내세요.^^

yureka01 2018-09-23 01:19   좋아요 2 | URL
좋은 시간 많이 만나시길 바랍니다..
여유로운 휴식되시구요!~~

카알벨루치 2018-09-22 23: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명절 연휴 잘 보내십시오 ^______^

yureka01 2018-09-23 01:19   좋아요 2 | URL
네 카알벨루치님도 즐거운 시간 되기길..^^

나비종 2018-09-22 23: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3분 15초의 편안함을 명절 선물로 주시는 군요.^^ 낮게 깔리는 베이스기타의 선율이 좋았습니다.

yureka01 2018-09-23 01:20   좋아요 1 | URL
원곡과는 또다른 느낌이 아주 좋더군요..즐거운 연휴 되시길!~

2018-09-23 1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4 0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5 0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5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7 0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7 0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7 1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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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7 10: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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