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harnaum

 

가버나움은 이스라엘 갈릴리 바닷가의 한마을 이름이다. 성경에 의하면 나사렛 예수가 활동한 제2의 고향이라고도 하고, 이곳에서 예수는 많은 환자들을 고치는 의사같은 기적을 만들어 낸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의 기적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아 결국은 예수의 예언대로 가버나움은 버려지고 마을이 폐허로 변한다. 배은망덕한 곳이기도 하다. 예수가 가난한 사람들을 호혜를 베풀고 병자를 치유하는 것은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이 땅에 태어난 임무이자 사명이었다고 성경에서 내내 나온다. 즉 하나님의 뜻은 방임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해서 부모에게 방임이 되는 순간이면 생명에 큰 위협을 받는다. 인간의 아이는 케어 받지 못하면 생명을 이어갈 수 없는, 죽기 십상으로 허약하다. 일반적으로 여타 포유동물에서 보듯, 태어나면 오래지 않아 바로 달릴 수가 있는 생존 본능이 인간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 이에 반해 인간과 같은 영장류는 근 1년이란 기간 동안 자궁에서 머물러야 되고 태어나자 일어서지도 못하고 달리지도 못한다. 그대로 방치되면 안 되는 방향으로 진화되었다. 그런데 왜 인간의 본능으로 자손을 일정 기간 동안 오래 돌보아야 하는 진화론적인 방향으로 설정 되었을까 생각해보면, 부모로부터 지능적인 삶의 방법으로 보육을 받음으로써 언어적 능력, 신체적 능력, 또는 지능적인 능력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장기적으로 여타 동물들과 달리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점하는 고도화를 이루고, 이것이 생존에 상당히 유리하다는 작용이 된다고 판단되었기에 동물들과 다른 훈련의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면 일정 기간 동안 케어해야 하고 방임되지 않는 것이 거의 본능처럼 굳어진 결과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이 태어남으로써 이루어지는 원죄에 대해, 그리고 삶의 병환적 상태에 대해 예수라는 목자가 양을 보호하고 돌보듯이 인간도 부모로부터 보살핌이 필요함을 싱징하기도 한다. ​

이 영화는 보지 않았다. 아니 시청하지 않을 작정이다. 상당히 불편할 것이 너무나도 뻔하다. 간략한 스토리만 읽어도 혹은 영화 포스터의 문구에서 나오는 방임한 부모의 과오를 탓하는 결과로써 고소하겠다는 것이 은유하는 바가 너무나도 자명하다는 결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무지한 부모의 본능적인 행위로 만들어진 생존의 고달픔. 그리고 이어지는 불행들. 흡사 부모라는 존재는 불행의 제조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행복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눈물을 흘리게 만들지 않는 상황을 전개시켜야 하는 것 또한 그 책임일 것이다. 인간의 생명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 이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유전자의 정보가 수천 수만 년에 걸쳐 기록된 명령서와도 같다. 그러나 이런 명령서에 나온 불복종은 방임이란 죄악을 만들고 불행이란 결과의 눈물을 만든다. 인간이 존재 자체를 혐오하게 만들고 인간이 인간을 증오하게 만든다. 차라리 이 지구상에서 인간이란 존재가 아예 없었더라면 과연 그런 불행이 존재할 수는 없었던 당위론이 아닐까.

그러나 한편으로 방임으로 치를 떨어도 다른 곳에서는 반대로, 자식을 통해 자신의 이루지 못한 욕망을 자식을 통해서 이루고자 욕망의 감옥에 가두려고도 한다. 과잉의 보살핌은 간섭으로 나타나고 과도한 사교육으로 하루하루가 싫은 고통의 불행을 만드는 것 또한 현실이기도 하다. 부모로서 현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하다못해 무슨 대회라도 나가려고 하면 훈련하고 연습이라도 하고 준비라도 되어야 할 텐데, 이 세상의 부모는 연습과 훈련을 해본 적이 없는, 무경험의 첫 경험으로 자식을 가지고 키운다. 훈련도 없는 미숙함으로 때로는, 결핍을 만들고 때로는 과잉을 양산하는 꼴이다. 고통스러움을 둘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가버나움이란 영화에서 던저 주는 메시지는 인간의 존재론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거다. 왜 태어나게 하며 왜 살아가도록 강요하는 것처럼 끝없이 임신하여 만들고 죽어가야 하는 것인지. 그 과정에서 만나는 수 없는 눈물과 고통과 기쁨과 슬픔에 대해 인간은 어떻게 해석하며 받아들이고 배척하며, 왜 살아가야만 하는지를 흡사 "붓다"가 인간의 고통, 윤회에 고민을 하고 깨달은 것처럼 요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모든 생명에는 종족 번식의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 이 욕구가 커지면 욕망으로 확대되고 이것은 지구 스스로가 가진 치명적인 실수였던 것이다. 하다못해 화성이나 금성 같은 별에는 풀 한 포기 조차 자라지 못하고 황량한 황무지로 빛과 그림자와 무기물의 덩어리만 존재한다. 과연 그 무기질 덩어리에 행복과 불행을 가늠할 이유는 없다. 감각이 없고 감각을 느낄 주체가 없는 그 황무지에서 그야말로 있으되 없고 없으되 있는 불교적인 교리를 특별히 떠올릴 것도 없이 마냥 평화로워 보일 뿐이다. 전쟁 같은 다툼으로 죽고 죽이는 고통도 없고 불행한 고통도, 고통을 느낄 감각도 감지할 주체도 없으니 그야말로 무성이다. 공기도 희박하니 흙바람에 먼지나 일었다 잠들기 마련이다. 생물이 살지 않는 곳의 역설적인 아름다움 평화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해필, 해필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저런 별들에 비해서, 왜 전혀 다른 종류의 현상의 작용이란 것인가라는 점이다.

그러나 무책임과 방임과 과잉의 불행에 대해 차고도 넘치는, 전 머리 굴리는 변명 거리만 늘어 내기 바쁘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역설법이다. 인생은 다 추악과 같다. 이거 잘못 알아 들으니 정말 아름다운 줄 착각으로 안다. 화성에서 활동하던 로봇, 오퍼튜니티가 보여준 황무지의 현실이 차라리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그곳엔 고통도 슬픔도, 그 어떤 욕망의 추악함도, 어떤 욕구조차도 없는 보기엔 무기물의 덩어리에서 완전에 가까운 무욕의 세계가 차라리 더 아름다워 보기는 것은 나만의 오류이었던가 싶은 정도이다. 맹목의 완전한 평화로움. 내가 본 화성의 오퍼튜니티가 보인 사진의 감상평이었다. 이에 반해 지구의 아름다움이란 것이 결국은 욕망이었던 세포들의 작용과 반작용이라는 것은 아닐까 한다.


그런데 어쩌랴. 지금의 현실이 화성 같지 않은 이상, 앞으로의 지구에서 인류가 더 아름다워지기 위한 전진은 어떻게 모색되어야 할 것인지는 결국 지금 살아 있는 자들의 당면한 과제이다. 욕망의 거부이든 욕구의 복종이든 앞으로 인간은 여기서 살아갈수록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란 예상은 빗나가지 않을듯 하다는 점이다.

오늘도 지구촌의 뉴스에서 해양 동물의 뱃속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나왔다는 연구 보고가 있었다. 미세먼지로 숨 막혀 하는 대기와, 미세 플라스틱으로 굳어가는 바다를 보고도 인간은 무심한 존재론의 무심한 욕망으로 계속 나갈 것이다. 언젠가 부처가 깨달을 아무 욕망이 없는 완전의 해탈 세상은 미륵이 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주 속에서 떠도는 지구의 종국적인 운명일 것이다. 45억의 지구의 존재 가치가 앞으로 45억 이후의 잔존 가치의 제로가 되기까지. 물론 세월은 지금의 백 년도 못하는 인간이 보기에 언젠가는 도래할 운명일 것이고, 그간 얼마나 많이 난리 법석을 일었다 잠들 것인지 상상하기가 너무 싫으다. 아마 우리 태양계에 속한 은하가 안드로메다의 은하와 뒤섞인다고 하니까.... 혹시 또 모르지. 우주 은하 철도를 만들어 타고 가는 철이와 메탈이 될지도, 그래서 또 영원한 생명이란 욕망을 가지게 될는지도. 그러나 궁극의 욕망은 아무 것도 없는 완전한 무(無)가 아닐까.

 

트롤 되지 않는 욕망은 모든 불행의 근원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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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2-01 15: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보지 않아서 어떤 내용인지 잘 모르지만,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라는 문구가 자극적으로 느껴지네요.

yureka01 2019-02-01 16:00   좋아요 1 | URL
초경시작하자 누나를 나이 많은 남자에게 시집 보내고,
극의 주인공 아이의 부모는 또 다시 임신하고 .....
영화의 주인공이 겪는 고난의 드라마가 펼쳐진다고 하더군요..

대책없이 낳아지는 생명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그리는 영화라고 하더군요..
영화의 메세지는 존재론에 대한 의문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우리도 그런 아픈 경험 있었거든요..
큰오빠를 위해 학비는 대던 공장 다니던 여동생의 슬픈 스토리...
그 정도와 현상은 차이가 있으나 비슷한 것도 많았거든요..

서니데이 2019-02-01 21: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오늘부터 설연휴 시작인 것 같습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yureka01 2019-02-01 21:41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서니님도 해피 설 되시길....떡국도 드시고 오손도손 새해 복많이 받으시길.~

겨울호랑이 2019-02-02 0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록 부모가 자식을 낳지만, 자식의 생명이나 인생은 양도할 수 없는 자식의 것임을 알면서도, 사랑과 책임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갈등과 슬픔이 생산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영화를 아직 못 봤지만, 유레카님의 말씀만으로도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yureka01 2019-02-02 07:47   좋아요 2 | URL
지당한 말씀이네요..
부모는 자식으로 존재의 성찰할 수 있어야 자식에게 부모의 좋은 기질을 물려 주게 되거든요..
나쁜거 물려 주면 결국 되돌아 오거든요....

누구집 자식의 잘못을 보고 그 자식의 부모를 탓하는 이유거든요..

북프리쿠키 2019-02-04 15: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설 명절 잘 쇠시고 항상 건강하십시오. 이 영화는 꼭 봐야겠네요. ~

yureka01 2019-02-05 12:34   좋아요 2 | URL
영화 보는 것도 슬픔에 저항할 용기가 필요한 영화인듯하더군요...
감상평 부탁드립니다..

강옥 2019-02-06 10: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니, 어머니, 왜 나흘 낳으셨나요~~~
이용복이 번안해 불렀던 호세필리시아노의 노래가 생각나는군요
우리 모두 원치 않던 세상으로 던져진 존재들
역설적이게도 명절이면 갈등의 극점에 서게 되는 가정이 많다고들 하더군요
왜 나를 낳으셨나요....까지는 아니라도 나는 왜 이 세상에 왔을까, 는 많이 생각했죠 ㅎ

yureka01 2019-02-06 21:28   좋아요 1 | URL
낳으려는 본질이라고도 하더군요..코나투스...
던져진 존재...자아라는 의미가 본질일까...그런 생각이 많은 요즘입니다...

2019-02-06 16: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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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6 2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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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6 22: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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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6 22: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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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9-02-07 0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봉하고 바로 봤는데도 아직도 여운이 잦아들지 않네요.아이도 슬프지만 그런 상황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그 의지조차 갖지 못하는 부모도 참으로 딱하더군요.
그냥 저 자신부터 부모의 자세가 뭔지?
오늘도 고민에 빠집니다.

yureka01 2019-02-06 23:57   좋아요 2 | URL
아 영화 보셨군요..전 차마 볼 용기도 없어서요..각종 영화 정보를 접하다보니..스포일러가 상당히 많았으니까요..
영화는 그런 존재론적인 질문을 매몰차게 던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2019-02-06 2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6 23: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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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2 04: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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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2 0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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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2 11: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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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2 1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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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5 12: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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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5 12: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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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2 16: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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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3 09: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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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자기의 얼굴을 들여다볼까?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기 위해 씻는 과정에서 욕실 벽에 걸린 거울을 보면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매일 바라본다. 눈 밑에 주름도 살짝살짝 보이기도 하고, 어제 혹시나 피로했으면 퉁퉁 부어 버린 모습을 마주 하곤 한다. 혹은, 넌 행복하냐고 묻기도 한다. 흰머리가 늘어나는 걸 실감하기도 하며 염색할 때가 다 되었나 싶기도 하고, 자신의 얼굴에 자신의 삶이 거울처럼 반영된 얼굴이 아닐까 싶다. 거울 속에 비친 내가 과연 나인지도 묻기도 한다. 백설공주에서 나오는 계모가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고 묻는 대상도 다름 아닌 거울에게 향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묻는다. 거울이 영물이 아니고서야 거울은 아무런 말이 없다. 유시민의 책,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나오는 대목 중에 유시민조차도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 모습을 보고 정치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서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정치인을 그만두고 시민의 입장에서 정치를 바라보겠다며 정치 은퇴를 선언한 것도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말을 했던 건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으로 자신의 현상태를 파악하고 자신의 마음가짐의 태도를 얼굴에서 엿보곤 한다. 그래서 얼마나 자신의 얼굴을 거울 속에서 바라보는 것인지를 묻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끔 역사적인 사건, 사고와 관련해서 얼굴 사진의 상태로 사회가 혁명에 휩싸이기도 하고 얼굴 사진으로 유발되는 감정은 대단히 복잡하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이한열의 사진에서 의식을 잃어가면서 얼굴 옆으로 흐르는 피는 그의 상태를 단적으로 말해주기도 하고 얼굴 사진으로 인한 사람들의 감정적 판단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또한, 맞선 자리에서 처음의 인상. 바로 첫인상이란 얼굴의 느낌일 것이다. 인상으로 관계를 설정하는 중요한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어떤 첫인상을 결정하는 것인지에 따라 얼굴의 상태로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도 많다. 그만큼 인간의 얼굴에서 마음의 거울처럼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읽으려 표정을 바라본다. 그러니까 자신의 얼굴을 얼마나 자주 들여다볼수록 자아도취에 빠지기도 하고 자신의 현 상태에 자신의 모습을 혐오로 미워지기도 한다.

 

오늘도 내가 늙어감과 전혀 생뚱맞은 무덤덤함. 그리고 피로함의 얼굴에서 오늘의 시간에서 이 공간에서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얼굴에 쓰여 있다는 것이 바로 초상론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론이다. 자신의 삶의 결과가 얼굴에 쓰여 있다고도 하고, 자신의 삶의 결과로써 얼굴에 비치는 거울이라는 것은 우리는 삶의 과정을 들여다 볼 수 없으니, 대신 얼굴의 표정과 생김새에서 유추하려 한다. 얼굴의 주름이 많을수록 고생을 많이 했거나, 혹은 얼굴이 상해 보일수록 삶이 녹록하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파악하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결국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보자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 대한 성찰을 의미하기도 한다.

 

행복해 보이는 얼굴, 온화해 보이는 얼굴, 탐욕같이 욕심이 덕지 덕지 붙은 얼굴, 섬세하게 날카로운 턱 선의 얼굴, 웃음 띈 미소의 얼굴. 이렇게 얼굴에 대해  전반적인 해석을 하고자 했던 것이 동양에서는 관상학이라고도 한다. 얼마 전에 송강호 주연의 관상이란 영화에서 보면 왕의 얼굴을 묻고 왕의 입지에 대해 따지는 관상가의 인생을 표현한 스토리가 여사로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얼굴이란 살아온 상태와 앞으로 살아갈 자세의 표정이 얼굴에서 반영되어 얼굴이 변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진학에서도 얼굴이 중요한 정보중에 하나임을 일찍이 간파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증명서나 신분이나 자격을 나타내는 증명서에 증명사진이 들어가는 이유이다. 얼굴로써 신분과 자격을 증명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얼굴의 모습이 사람의 신분을 증명하거나 구별하려고 했다. 아마도 대표적인 것이 주민등록증일 것이다. 그래서 증명사진은 바로 신분을 증명하는 메인의 자리에 차지한다. 또한, 선거 벽보에도 후보자들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프린트되어 내걸리며 얼굴의 인상으로 후보자가 유권자들의 의사를 대변하겠다는 신분의 증명으로 포스터를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초상 사진에서는 최대한 인자한 모습과 시민들의 뜻을 받들겠다는 부드러운 모습으로, 그리고 미소를 띠며 내가 열사 봉공의 마음을 가진 얼굴이라며 어필하는 것도 다 얼굴의 인상학에서 나오는 것들이다. 이렇게 얼굴의 모습에서 표정은 시대를 대표하는 아우라를 만들고 인간이란 존재론의 한 뼈대를 일루기도 한다. 와이프나 남편의 선택도 결혼이란 제도에서 얼굴을 보고 판단하는 기준의 한 종류가 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상을 바꾸고 시대의 트렌드에 따라 성형술이 발전하는 것도 다 얼굴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IT기술로 얼굴 인식하는 인공지능으로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지문처럼 등록하고 길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을 인식하여 얼굴로 범죄자를 가려 내는 것까지 발전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러니 이렇게 얼굴의 화장과 분장은 오래전부터 얼굴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인 일종의 장치가 되었으며 나아가 문화적이며 예술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아우르게 나타난다. 화가들이 그리는 인물화에서부터 인간의 얼굴을 묘사하는 스케치를 비롯한 초상화에 이르기까지 얼굴에 관련한 인간의 연구를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사람의 얼굴에 관련된 근육은 표정으로 나타내고 근육의 움직임으로 마음의 표정을 상징하기도 한다. 슬프거나 웃기거나 고민스럽거나 화나거나 이런 표정에서 얼굴 연기는 연기자의 연기 수준을 가름하는 척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렇게 얼굴에서 나타내는 인류학의 본질은 얼굴의 현상에서 유추되는 것도 얼마나 얼굴에서 사람이 달라지는 것인지 충분히 간파하고도 남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미적인 기준은 시대상에서 힘의 반영하기도 한다. 따라서 얼굴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서양의 백인 인종이 인류 문명에 중심에 있다 보니 얼굴 성형도 서양의 기준으로 미적 기준을 삼고자 하기도 하고 성형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서양 여자들처럼 하겠다고 하는 걸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행동은 어떻게 얼굴을 바뀌게 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사람의 행동도 마찬가지로 얼굴에 그대로 녹아들어 얼굴의 상을 바뀌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범생의 스타일에는 모범생의 얼굴의 전형을 편견처럼 작용하기도 하고 우락 부락하고 모난 얼굴에서 조폭의 스타일을 편견처럼 가지게 되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순간에 찍힌 동영상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의 얼굴 표정을 읽은 적이 있는가? 이번에 경북 시골 모 지역의 기초 의회 의원들이 외국에 나가서 버스 이동 중에 벌어진 폭력 사건의 당사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주먹을 휘두르는 그 순간의 얼굴 표정을 CCTV 동영상에서 직시할 수 있었다. 과연 그 폭력의 당사자 본인은 얼마나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봤을까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간의 살아온 삶의 과정에 따라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얼굴에 덧대이진 자신의 삶의 과정의 얼굴이 어떠한지에 대해 본인은 한 번도 따져 봤을까? 만약 이런 질문들을 자주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서 물어봤더라면 과연 외국에 공무 출장 중인 버스 속에서 가이드에게 주먹을 달리는 폭력성을 가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초의회 의원 후보로 지명을 받고 자신의 얼굴을 사진에 담아 커다란 포스터에 인쇄되어 "내가 이런 후보자입니다"라며 동네방네 알리고자 초상 사진을 내걸었을 것이다. 그런 얼굴에서 과연 자신은 무엇을 느꼈을까?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했던가? 인상학이나 관상학이 오늘날에 그리 크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못 배워 먹은 티가 얼굴에서 줄줄 흐르는 것은 나만의 과정의 관상 간별법인지 의심이 되기도 하였다. 역시나 다를까, 기초 의회 의원 출마 전에도 이미 벌써 도로교통법 위반의 법률 위반 벌금 전과가 나오는 걸 보니 그런 못 배운 티가 얼굴에서 나타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잘 생긴 얼굴이라는 것이 그 사람의 행위에서 드러난다. 아무리 미적인 서양의 얼굴이 아니고 못생겼다 할지라도 어떤 사람의 행위가 그 사람의 얼굴을 바꾸어 보게 하는 것은 하루 이틀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못생겨도 이뿐 짓은 못생겨 보이지도 않는다. 어느 미적 기준에서 보자면 아무리 못생긴 얼굴이라도 어렵다는 시험에 합격한 사람의 얼굴에는 못생김의 주눅 들어 있는 표정이 아니라 자신감의 표정이 들어 있는 것과 같은 이치가 숨어 있다. 즉, 이쁜 짓은 얼굴을 이쁘게 만들고 못난 짓은 얼굴을 흉측하게 만든다. 행동이 얼굴의 인상을 결정하는 것도 이런 원리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아기들이 왜 귀엽고 사랑스럽고 이쁠까 따져 보면 아기들이 태어나서 자신의 행동이 없다. 그래서 아기들의 얼굴에서 때묻지 않는 순수함이 이뻐 보이는 것은 거의 본능과도 같다. 그러나 아기에서 성장해서 살아가면서 가정에서 부모의 얼굴을 닮아가고 자신의 사회적 소속에 대한 얼굴을 닮아가고 시대를 닮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못 배운 티가 얼굴에서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그래서 얼굴이 그 사람의 인생의 거울이란 말이 낯설지가 않다.  행동이 이쁘면 얼굴도 이뻐 보이는 것. 이게 관상의 결론 아닐까 한다. 반대로 행동의 불법적인 폭력이나 쓴다면 얼굴도 그대로 폭력화되어 가는 얼굴로 변한다. 성형으로 얼굴 백날 뜯어고쳐 봐야 소용없다. 삶이 얼굴에 그대로 인상을 반영시킨다는 거. 생김새가 삶을 결정할 수도 있지만 삶의 결정이 생김새로도 들어간다.

 

이쁘게 하고 살아도 짧은 인생이다. 못난 짓으로 혐오스럽게 먹칠하는 얼굴로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지 주먹을 날린 놈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제 어디 얼굴 들고 나가 살 수 있을까. 그런 말이 있다. 후안무치라고도 한다. 자신의 얼굴이 쪽팔린 줄도 모르고 고개 쳐들고 다닐 수야 있다. 그러나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사람의 삶도 영향을 지대하게 받는다. 그런 얼굴로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될 때, 얼굴에 써진 오명의 문신을 하고 주먹을 날린 놈이라고 얼굴에 써져 있는데 과연 누가 남아 있을까 싶다. 혹시나 이 세끼와 어떤 수가 틀리면 또다시 나에게 주먹을 날리게 될지도 모르는 불안한 얼굴을 마주 보려 드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얼굴이 되어 버렸다. 순간의 욱~하는 마음. 이거 하나 컨트롤이 안되는 얼굴에서 과연 자신의 삶이 어떻게 왔는지 따져 묻지 못한, 그의 실수는 후회가 아무리 깊다 해도 물릴 수가 없게 되었다. 물론 자신의 얼굴도 말할 것도 없고 자신과 연관된 가족들의 얼굴은?, 또한 사회적으로 관계 맺은 동네 사람들의 얼굴은? 심지어 죽고 나서 저 세상에 가서 조상님의 얼굴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두렵지 않을까 한다.

 

 

 

PS : 참고로, 사진을 오래 찍어 왔지만, 얼굴 사진은 거의 찍은 적이 없습니다. 특히 증명사진 이런 건 절대 안찍습니다. 얼굴 사진은 사진 분야에서도 특화된 분야로 가끔 얼굴 사진 찍어 달라면 증~말!!! 난감하기 그지 없거든요. 또한 제품 증명사진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로 풍경과 관련된 이면의 표정 사진이 주로 많이 찍었거든요.....나에게 사진 쫌 찍어 달라하면 거절하는 이유입니다. 간혹 무슨 사진 안찍어 준다고 섭섭하다는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입니다. 사진이라고 다 같을 분야를 다루지 않거든요. 카메라 오래 든다고 아무거나 다 잘 찍는 줄 아는 사람,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이유기도 합니다. 

 

약은 약사에게 사진은 그 분야의 전문 사진사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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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1-28 1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거군요. 저는 풍경 사진을 찍을 때가 제일 좋습니다. 그래서 제 전공?은 풍경 사진입니다. 그림으로 말하면
풍경화인 거죠. 그림도 정물화보다 풍경화를 좋아합니다. 인물화는 아직 재미를 모르겠어요.
아름다운 풍경을 찍기가 어려운 게 네 계절 중 겨울인 것 같아요. 눈이 오지 않는 한, 그래요.

yureka01 2019-01-28 13:26   좋아요 1 | URL
네 저도 비슷합니다.인물사진을 못찍습니다.
요즘 함부로 사람에게 카메라 들이 댔다고 초상권 때문에 멱살 드잡힐 수 있거든요,,,,,
무서워요 ㄷㄷㄷㄷ
그러니 인물사진을 못찍으니 자연히 풍경에로 카메라 시선을 돌리게 되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 인물사진을 재대로 못찍고..인물의 표정을 재대로 잡을 수 없어서
인물사진 스킬이 거의 없게 됩니다.....

사진에서 사람을 못찍으면 큰 주제가 빠진 셈이죠..그런데 현실적으로 사람 사진을 함부로 못찍으니까요...
특히 얼굴 사진은 찍을 순 있어도 게시는 절대 동의없이 안되니 말이죠..

stella.K 2019-01-28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마지막 멘트 압권입니다.ㅎㅎㅎ
그렇죠. 사진도 분야가 따로 있는데 말입니다.

그게 좀 서글플 때가 있더라구요.
내 예감이 빗나가지 않을 때.
가끔은 못 배운 것 같아도 안 그런 면이 발견되면
역시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지 말아야 해. 이런 반성을 하게 되는데
그럴 여지가 없으니.
나이 드니까 사람의 생김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이
없어지더군요. 그 대신 인상이 어떤가가 중요해져요.
인상은 생김 보다 복잡하고 총체적인 것 아니겠습니까?
더불어 그 사람의 목소리 톤이나 말씨에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를
가늠하려는 경향이 뚜렸해져요.

yureka01 2019-01-28 14:04   좋아요 1 | URL
네 재대로 보셨습니다..

단순 외모의 생김새 보다는 삶에서
나타나는 행동 거지나 말투...이런 총합적인 인상 에게 더 중요한 판단의 잣대가 되니까요.

흔히 ....사진 찍는다고 하니...사진관에 증명사진까지 다 잘 찍는 줄 아나 보더군요..
사진 찍어 달라고 부탁할 때. 진짜..거절하면
무척 섭섭해 하더군요...

속을 모르니 답답할 때가 가끔 있어요....

어디 써야 할 사진이라면 정당하게 전문사진사에게 의뢰해서 퀄리티를 얻어야하거든요..

단순히 돈아낄려고 사진 좀 찍어 달라고 한다면...이건 너무 아니라서 말입니다....

가끔 사진 부탁 받으면 정말 난감합니다..
물론 전문가들이 가진 장비도 전혀 없거든요....
사진 퀄리티는 반 이상은 장비빨에서 나오니 말이죠..ㄷㄷㄷㄷㄷ
그 흔한 조명 장비 하나 없습니다.(인공조명을 전혀 쓸 줄도 모르고 그런 사진을 선호하지 않아서요..)
카메라 후레쉬 하나 없거든요....ㅠ.ㅠ

2019-01-28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8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28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얼굴을 찍지 않는 사진가가 좋습니다! ^^

yureka01 2019-01-28 17:30   좋아요 0 | URL
흐 얼굴 사진 못찍어서요..
자칫 얼굴 사진찍다가 욕 바가지로 얻어 먹습니다. 그래서 무섭~

2019-01-28 1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8 2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9-01-28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 해전 로이터 사진전을 갔었어요.
거기서 이한열의 사진을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 사진을 마주한 순간 저도 모르게 ‘헉!‘ 소리를 내며 그 앞에 한참 서있었어요.
사진 한장이 설명하는 그 모든 것을 경험했어요

yureka01 2019-01-28 20:20   좋아요 1 | URL
네 브레송의 결정적인 순간..그 한장의 사진이 곧 민주화의 상징이 아이콘이 되었어요..
기호성.상징성의 효과겠지요..

일전에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건너던 배에서 빠진 아기 사진...그 사진으로
EU에서 난민을 받아 들이기로 한 결정적 계기가 된 거라서요..

사진중에 특히 인물사진에서 얼굴 사진은 특별한 힘이 있거든요..
방송사나 신문사..하다못해 잡지사의 사진기자만 되었어도,,,,
취재 현장에서 인물사진 막 찍었을텐데..ㄷㄷ 많이 아쉽긴해요..
사진의 근간이 인물사진이라서요..

강옥 2019-01-29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명절 앞이라 살림 사는 주부들은 바쁜데
며칠 새 책을 두 권이나 읽고 리뷰를 쓰시다니 대단하십니다 ㅎ

처녀시절 회사에서 발행하는 사보를 만들었지요
타블로이드 4면짜리였지만 취재, 원고, 사진, 편집, 교정.... 일이 많았어요
펜탁스 FM2 필름카메라가 회사에 있더군요. 정말 겁없이 찍었지요. 그것도 인물사진을
필요에 의한 사진은 기술이라기보가 기능이라고나 할까요 ㅎㅎ
행사사진, 인물사진, 기념사진 많이도 찍어봐서 지금도 사진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한 마디로 무식해서 용감한 거죠.
유레카님같은 사진쟁이는 제 주변에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사진이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갸우뚱 ㅎㅎ

yureka01 2019-01-29 15:35   좋아요 0 | URL
먹고사는 일만 없으면 까이꺼..책이나 신나게 보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리뷰 쓰는 거야 인풋이니 아웃풋은 나와야 하니까요..

회사 사보 만드는 경력이 있어서 일까요..그래서 찍어 보여주는 사진이 그리도 찰지게 다큐적이었나 봐요.

네..여전히 사진 찍으면 찍을 수록 점점 더 어렵네요..예술이 벌거냐..라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전 별게 아니라서 말이죠..이게 무슨 돈 버는 일도 아닌데 왜그리 열심이냐고 와이프가 늘 불만이긴 합니다...
어쩌면 이게 자신의 모습이 가진 정체성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없었더라면 뭔 낙으로 살았을까 아찔하네요..ㄷㄷㄷㄷ

서니데이 2019-01-30 1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얼굴이 살아온 시간을 보여준다는 말을 며칠 전에 들었어요.
그 이야기를 해주신 분의 얼굴이 무척 곱고 예쁘게 보여서, 조금 많이 부러웠어요.
유레카님,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잘읽었습니다.^^

yureka01 2019-01-30 14:32   좋아요 1 | URL
네 사람의 행동이 얼굴도 바뀌게 하죠...
그래서 자신의 얼굴에 책임이 들어가는 이유가 될 거예요...
행동이 이쁘면,,얼굴도 이쁘게 보입니다.
따스한 오후 되시고요~~:^^.

2019-03-12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진과 죽음
주형일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9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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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진은 모순이다. 유한적 시간을 기억으로 늘리고자 하는 영원성에 대비해서, 지나버린 과거로 돌변해 버리는 본질적인 빛의 속성이 사진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진이 영정 사진 즉, 죽음에 대한 사진일 것이다. 사진은 찍는 순간에서 이미 과거가 되는 절대적인 속성에 이를 두고 하는 빛의 편린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진은 한때 존재했음의 증명이자 소멸되거나 소멸되어가는 것들의 부존재로의 증명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거의가 주로 풍경 사진을 찍었으나 가끔은 의도하지 않게 인물사진을 찍을 때도 있다. 의도하지 않았던, 우연스럽게 포착한 인물 사진이 영정 사진이 될 때, 사진을 찍었던 당사자로써 만감이 교차할 순간이 오래 지속되는 편이다. 특히 사진 속의 인물의 영정 초상의 기억이 망자와 결부되어있을 때는 더더욱 그러하다.


오래전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이라 결혼식에 마침 매형도 함께 갔던 적이 있었다. 당시 사진을 처음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처음으로 D-SLR 카메라를 들고 갔던 결혼식에서 흔히 담는 사진들이 대부분이었고, 이왕에 찍는 사진으로는 가족들의 기념하듯 모습을 담았었다. 그리고 사진은 백업 하드 드라이브에 파일로 저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후, 매형은 불의의 사고를 중상을 입었고 끝내 사고의 영향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했다. 전혀 예측이 안되는 상황이라 사고의 수습과 장례는 난감했다. 떠날 나이도 아니고 한창 일할 나이였던지라 장례준비가 될 거도 없었으니 당연히 장례식에 쓸 초상 사진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기억해낸 사진이 앞서 언급한 사촌의 결혼식에서 찍은 매형의 사진이 초상화로 쓰일 줄은 전혀 예상을 못했지만 그때 담은 사진이 영정사진이 되었던 거였다. 혹은 계획한 바대로, 앞으로 살아갈 날이 멀지 않은 노인네들의 비중 있는 행사가 영정 사진을 찍는 일중에 하나일 것이다. 격식에 맞게 옷을 차려 입고 사진관에 사진가의 지시에 따라 포즈를 잡으며 얼굴에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표정을 차려 내는 행위야말로 자신의 마지막 생전의 모습을 담는다. 이는 자신이 보려는 목적의 사진이 아니라, 자신이 타자에게 보여주려는 자신의 기록이다. 즉 남을 위해서 또는 평소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와 부존재의 증명을 사진으로 보여주는 행위일 것이다.


이처럼 이 책에서는 사진과 죽음에 대한 연관성에 대해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하고 있음을 저자의 연구에 대한 업적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때까지 죽음에 대해 가급적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단지 장례절차에 따른 병원의 영안실에서 마주하는 그런 일상의 숨은 죽음에 대해 사진으로써 관련성을 깊이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사진을 오래 찍어 온 나로서 꼭 보고 싶은 책이었다. 사진과 죽음의 연관성은 사진의 본질에서부터 죽음이 현재의 사회적, 개인적 정치적, 문화적인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앞으로도 인간의 소멸과 기억이란 테마의 주제는 계속될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죽음은 단지 병원의 닫힌 공간에서 장례적인 의식으로 끝나버리고 만다. 이때까지 사진을 찍어 오면서 사진을 찍어 가는 과정의 저변이나 밑바탕에는 항상 시간과 변화를 염두 했다. 결국은 사라지는 것은 무엇으로 변화라는 과정이고 이를 우리는 소멸이라고 하고 소멸은 다시 무엇으로 변한 생성의 연결고리를 갖는다. 여기에 죽음은 변화라는 변곡점의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사진은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시간의 단면을 짜르고 영원성을 부여하려는 의지이며 반대로 그 영원성조차도 결국은 소멸과 생성이라는 순환의 과정이라는 점이다. 변하는 것만 영원할 뿐이라는 것에서 인간의 죽음도 예외가 아니라는 절대적 사실이다. 그래서 모든 사진은 모순이자 허망함과 공허함의 대표적 상징이 되었다. 단순히 빛의 담는 도구가 존재론적인 상징이자 기호가 되고 이를 모으면 지표가 되며 아이콘이 되는 절대적인 과정을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사진은 과거의 영상으로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추억할 수 있고 나아가 미래의 유사성과 상징화되기도 한다. 미래의 반영은 과거이며 과거의 환영은 미래일 수도 있다. 사진은 오로지 현재를 찍고 과거로 돌변하는 자각을 위한 것이다.


사진이 초상화에 비해 빠르게 장례식의 메인으로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초상화는 일반 대중이 그리 쉽게 요청에 의해서 제작될 수가 없었다. 시간이 비교적 많이 소모되고 화가에게 부탁을 하는 등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드는 작업이라서 초상화는 아무나 그릴 수도 없었으며 영정으로 쓰이지는 못했다. 귀족이나 권력자들의 전유물처럼 되었던 이유이다. 초상화는 실제 하지 않는 가공적일 수도 있고 또한 초상 인물의 직접 만났던 사람들의 구술에 의해서도 그려지기도 했다. 화가의 사견도 상상도 가미될 수도 있기도 하다. 특히 유교에서는 초상화가 실제 했던 인물의 일치성이나 유사성이 제일 큰 주안점이었던 점에서 보자면 사진이 등장함으로써 사진으로 초상화를 빠르게 대체된다. 사진의 기본적인 원리를 안다면 사진의 프레임 속에 있는 인물의 영상은 반드시 존재했던 사람의 순간이라는 점이 초상화와는 크게 차이가 있다. 그림은 상상으로도 그리지만 사진은 반드시라는 절대적인 빛의 작용이 있어야 하는 차이점. 이를 두고 도식성과 지표성으로 나누었던 저자의 긴 설명은 이해되기 충분했다.


이처럼 사진으로 인한 존재와 부존재에 대한 고민을 사진에 투영시키고자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다 소멸의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영원한 것처럼 살려고 한다. 작은 이익에 전력투구하며 다툼이 번번한 것도 사실은 욕망일 것이다. 따라서 사진을 통하여 부존재에 대한 욕망의 허망함을 알아차리고 또한 알아 차림으로써 현재의 존재에 대한 삶의 방식의 변화에 있다. 내일 당장 죽을 지도 모르는 존재가 지금의 욕망에 일희일비하는 짓은 참으로 안타까움이 크다는 것은 사진으로 인한 상징성이 아닐까 한다. 사진을 찍음으로써 존재가 가질 수 밖에 없는 본능적 욕구와 욕망에 대해 따져 묻는 질문이 사진이라는 것에서 비로소 욕망의 내려놓음을 실천할 충분한 동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100년을 더 살든 1,000년을 더 살든, 시간의 길고 짧음으로 욕망의 강도에 영향을 미치면 반드시 불만이 생기고 이 불만으로 인간의 관계가 갈등에 놓이는 이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다. 아무리 말로 내려놓음을 주장한다 해도, 어제 만난 사람이 오늘날 영정 사진으로 만날 때, 인생의 허망함에서 마주하는 깨달음이 없다면 이 역시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다.


죽음은 개일적인 차원의 수많은 이야기들도 있다. 나아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사진과 죽음이란 책에서도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되었음을 증명한다. 이 책에서는 사진의 아이콘화, 지표성에 대한 사회 문화적, 그리고 정치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걸 연구한 업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은 사진의 초보자를 위한 사진과 죽음의 연관 관련성이기도 하지만 사진을 오래 찍은 분들이 읽으면 사진의 의미에 대해 더 심사숙고할 수 있는 계기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의 가장 극단적인 갈등의 현장인 전쟁에서 사진으로 나타낸 것은 그림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사실적이고도 충격적인 장면들이 많았고 이런 전쟁의 참화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와 연결되고 사진은 프로파간다로 돌변하는 현상을 사진으로 설명하고 있다. 죽음은 개인적이기도 하고 사회적 정치적이기도 하다. 각종 사건의 현장과 사고의 과정에서 찍어 온 수많은 사진으로 사회는 그 요청과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또한 이 요청으로 인해 다시 사람들은 인식하게 되었고 계속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간 소위 감성 사진이라고 하는 에세이류의 사진만 읽어 왔는데 정말 뜻밖에도 이런 사진에 관한 연구가 치밀하게 피력된 책은 드물었다. 사진학에 대해 이 책만큼 심도 있는 연구업적을 만나는 것도 정말 드문 일이다. 물론 이 책의 저자는 언론 정보학을 연구한 학자이지만 사진에 대해 또 사진과 언론에 대해 관한 저자의 연구 업적에 깊은 사유는 그동안 사진을 찍어 오면서 어렴풋한 정보를 학술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읽어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책이었다. 저자에게 웬만해서는 고맙다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 편인데 이 리뷰를 통해서 감사함을 나누고 싶다. 언제 기회 되면 학교로 찾아가서 꼭 한번 뵙고 싶은 분이기도 하다. 나 같은 사진 애호가를 만나줄지는 모르겠지만...


이 밖에도 이 책에서는 죽음과 관련된 심령사진, 사회적 사고 사건이 된 역사적으로 기록된 사진에 대한 다양한 의미들이 굉장히 많이 나온다. 단순히 짚고 넘어가는 수준이 아니라 심도 있는 연구업적이 사진 분야에서도 나태내고 있다는 것이 반갑기 그지 없었단 책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존재론에 대한 사진과 관련한 마음을 묵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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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9-01-27 1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책 두께나 가격이 만만치 않네요.
어렸을 땐 죽음이 막연했는데 나이들수록
바로 코 밑에 있다는 게 서늘합니다.
올 한 해도 잘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으로 한 해를 맞고 보내는 실정입니다.ㅠ

yureka01 2019-01-27 20:41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생성과 소멸이라는 화두로써,,흡사 사진학의 학술눈문처럼 연구한듯한 느낌...
죽음이 멀리 있지 않는...흡사 존재의 그림자처럼 죽음은 항상 같이 있으니 말이죠...
늘 겸허함으로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카알벨루치 2019-01-27 15: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과 죽음...진짜 흥미로운 주제인 것 같습니다 사진은 남겨지는 것이고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고...

yureka01 2019-01-27 20:42   좋아요 2 | URL
삶과 죽음이 달리 둘이 아니라 하나이니 말이죠..
그래서 사진은 찍는 즉시 소멸을 의미하고
찍은 사진으로 다시 반복되는 듯한...하여간 모순성이 존재의 본질인듯합니다.

겨울호랑이 2019-01-27 19: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처음에는 책의 내용이 빛을 좋아하시는 유레카님과 맞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빛과 그림자‘는 항상 같이 다니는 것을 생각하면 책의 내용에 대해 유레카님께서 공감하시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yureka01 2019-01-27 20:44   좋아요 3 | URL
네 빛와 그림자가 둘이 아니듯...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겠지요..
빛이 있느니 삶이 있고
그림자가 있느니 죽음이 있고..그러게요..
사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도 나쁘지는 않는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진에 데해 관심없는 분들은 읽기가 좀 어렵겠지요...^^..

서니데이 2019-01-27 2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진짜 사진은 과거만을 담는 거군요.
늘 현재였지만, 찍는 그 순간부터 과거가 되면서 그 때로부터 멀어지는 느낌이예요.
잘읽었습니다.
유레카님, 따뜻하고 좋은 밤 되세요.^^

yureka01 2019-01-27 23:04   좋아요 2 | URL
네 시간 속에서의 내삶의 기간의 소멸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진 찍을 때마다 느끼겠더군요....
네 좋은 밤 되시고요.~~~

雨香 2019-01-28 0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음은 개일적인 차원의 수많은 이야기들도 있다. 나아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는 사진과 죽음이란 책에서도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되었음을 증명한다. 이 책에서는 사진의 아이콘화, 지표성에 대한 사회 문화적, 그리고 정치성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걸 연구한 업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만만치 않은 책으로 보입니다. 저자가 그만큼 혼신의 힘을 담았다고 보여지는 책입니다. 사진이라는 주제로 읽어볼지.. 고민을 좀 해야겠습니다. 사두고 읽지 않고 있는 수전 손택의 책과 함께 일어야 하나라는 생각도 좀 들고요. 일단은 메모해 두었습니다.

2019-01-28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1-29 2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카메라 앞의 이미지들은 현실적으로 생생함을 잃은 뒤 일종의 기억으로 필름 위에 남는다. 죽음의 영역으로 기나긴 하강이 시작되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의 지적처럼 카메라의 발명과 보급 이후 우리 세계는 거대한 이미지의 무덤으로 변했다. 매 순간 앃여가는 수억만 장의 사진 속에서 산 자보다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풍경보다 이제는 사라져 찾을 수 없게 된 풍경들이 더 많이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수많은 사진 이미지에 둘러쌓여 사는 우리는 죽은 시간의 지충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어쩜 말씀하신 글과 책 내용이 같은지, 감탄하며 윗글 읽었습니다. 통하면 통하는 것 같습니다. ^^

yureka01 2019-01-29 23:15   좋아요 1 | URL
100년후에 지금 있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 사라지거든요..그런 소멸이 확정된 지금의 사람이 기록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물론 이 기록 마져도 언젠가는 사라질테니까요..
소멸의 확인...사진의 숙명이죠..
그러므로 이 소멸을 순간 순간 인식함으로써 우리 현재의 삶이 어떠해야 될 것인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어떠해야할지...어떻게 의연하고 덤덤하게 맺으며 이별해야할지...
눈앞에 십원 이십원으로 다투는게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19-02-06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6 2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잎이 없는 겨울나무는

가지가 그 얼굴이다.

 

 

 

화장도 하지 않는

맨 얼굴은 나무가 가진

진면목!~ 

 

 

 

가지가 뻗어 자란 그 모습

그대로의 생김새


가끔 나무는 진실한 모습을

겨울이 되면 한 번씩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했다. 

 

 

먹빛의 진한 농도를 더할수록,

나무는 제 스스로의 언어로

존재의 방식을 말하는 듯하다.

 

온통 가식과 허례적 자존심으로

뭉친 위선의 시대에서

겨울의 나무가 말하는

진솔됨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가끔은 마음에 담겨진 진짜 털어놓고 싶은 말을

나무에게 고백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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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1-24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색깔만 그린이고 사진도 사진속의 피사체도, 그리고 글자도, 여백도 블랙 화이트 그레이군요! 사진이 너무 좋습니다! 진짜 나무도 화장도 하지 않는 맨얼굴인데 그 자연이 너무 자연스럽고 경이적이네요! ㅎㅎ

yureka01 2019-01-24 14:42   좋아요 1 | URL
시골 가서 매일 나무를 보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나무와 대화하며 살고 싶습니다.
더 아상 바랄 것도 없는 소박한 소원!~~

그런데 이 소박한 소원이 지금까지는 무척 어렵네요..^^..

카알벨루치 2019-01-24 14:44   좋아요 1 | URL
그 마음 제게도 좀 나눠 주십시오 ㅎㅎ

yureka01 2019-01-24 14:46   좋아요 1 | URL
ㅎㅎ 가까운 시골이나 들판으로 산으로 나가면 나무들이 많죠..
겨울인데 그 나무가 전하는 말..카메라 매고 서 있으면 듣기기도 해요....

어느 산이고 나무가 없는 산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 자연이 고마울 때가 많습니다.
나누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나무의 마음을 읽으면 나눠지는 거라서요~ㅎㅎㅎ

2019-01-24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4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4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4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9-01-24 15: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땅을 보러 갈 때 여름에 가지 말고, 겨울에 가라고 누군가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사람도 어려운 시기에 그 진면목이 드러나듯, 겨울의 앙상한 가지가 유레카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진짜 얼굴임을 깨닫게 됩니다. 5월의 신록 뿐 아니라 한겨울의 마른 가지도 같은 아름다움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yureka01 2019-01-24 16:05   좋아요 2 | URL
아 아시네요..맞습니다.땅보러 갈 때는 땅 모습이 잘 들어나는 겨울에 가야 하는 게 여론입니다...

사람들도 춥고 시린 시간을 만나면 비슷하게 바탕이 들어나거든요..

카알벨루치 2019-01-24 17:13   좋아요 2 | URL
‘...겨울에 가라....어려운 시기에 그 진면목이 드러나’ 오 이거 내 마음에 내려앉아야할 문장입니다 아...나무야 나무야...ㅎㅎ

yureka01 2019-01-24 17:31   좋아요 2 | URL
자세히 ..오래 보면 ..흥미로운 나무들의 얼굴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있는지 보입니다.^^..
특히 무채색의 겨울에는 더더욱 그러하죠..^^..
흐 멋진 문장입니다~~~

겨울호랑이 2019-01-24 17:58   좋아요 2 | URL
쓸쓸한 겨울에도 모두가 느끼는 감정은 같나 봅니다. 자연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것과 감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cyrus 2019-01-24 16: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잎이 없어도 나무는 살아 있어요. 그리고 여기에 새로운 생명들이 태어나고 자랄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기 때문에 하찮게 봐선 안 되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이파리 없는 나무로 보이겠지만, 다른 생명들의 눈에 그곳은 삶을 지탱해줄 세계이며 소중한 안식처입니다.

yureka01 2019-01-24 17:09   좋아요 1 | URL
지당하고도 당연한 말씀!~
네 겨울에 동면하는 나무들이 참 부럽습니다.
겨울잠 자는 게 비단 동물뿐만아니라 나무들도 잠을 자니까요..~~~...
언젠가 숲속에서 살 날만 손꼽아 기다려요..ㅎㅎㅎㅎ

데굴데굴 2019-01-25 09: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너무 멋있네요. 사진 책만 보신다고 하시더니.. 사진의 끝을 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주 놀러와서 멋진 사진 감상해야겠네요!! 감사합니다^^

yureka01 2019-01-25 09:5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알라딘은 텍스트 기반의 블로그라서 사진하고는 좀 맞지 않는데..
그래도 가끔 사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019-01-25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5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5 16: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5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5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7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7 0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7 08: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옥 2019-01-26 1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만 봐도 알겠네요. 유레카 표 달성습지 ㅎㅎ

올 겨울 눈을 너무 굶어서, 눈이 보고 싶어서
오늘 삼척까지 올라갔다 왔네요
지난밤 그쪽에 폭설이 내렸다고 해서....
결과는? 허망하게도 몇 시간만에 다 녹아버렸더라는....

요즘 구미 지산샛강에 철새들이 많이 온다던데 거긴 안 가시나요?
하긴, 달성습지에도 철새도 깃들었겠죠.....

yureka01 2019-01-27 00:35   좋아요 0 | URL
여긴 낙동강 변 어느 부분입니다. 물론 달성습지에서 조금 위쪽이긴해도
다 그기서 그기니까요...

그러게요..올해 겨울은 가뭄이네요..눈보기 어려우니 말이죠....

요즘 겨울 철새는 AI영향을 감안해서 가급적 멀리하시구요.^^.

조만간..달성습지로 초대 한번 하겠습니다.^^..
 

뉴스를 꼼꼼히 읽어 보지 않아서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크게 관심은 없습니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견해의 차이로 인한 다툼이야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것도 아니고 일상의 지루한 반복의 갈등 같아 보여서 말이죠. 그러나 사실관계나 정확한 팩트에 대해 왜곡이나 확고한 저의는 밝힐 수 없지만 편향성이 엿보일 때는 분명히 바로잡아야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손 의원의 문화재 관련에 대한 부동산 투기라는 시선을 상당히 불편한 뉴스가 보이더군요. 하기야 문화재 문자도 모르는 사람들이야 당장 눈에 띄는 단어가 부동산 투기, 부동산 차명, 불법 증여 등등 이런 일상적인 단골 정치인들의 행태를 비슷하게 들먹인다는 점입니다.  자 들어가 보겠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재는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로 나눕니다. 지정은 국가의 강재적인 사항이고 등록은 소유자가 등록 신청하고 심사를 거쳐 등록 여부가 판단됩니다. 물론 역사학의 각 분야의 심사자가 있습니다. 역사적인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판단합니다. 여기서 지정문화재는 다시 국가에서 지정하는 경우도 있고 지방지차단체에서 지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동산의 문화재 지정은 소유자가 기를 쓰고 받아 내고 싶어 합니다. 오래된 도자기나 고고학적인 가치가 있어 보이는 물건, 역사적인 사건에 관련된 유물 등이 해당될 것입니다. 동산으로써 문화재의 가치가 곧 동산의 가격과 직결되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니 당연히 내가 가진 물건이 문화재로 지정된다면 가격을 매길 수 없을 지경의 가치로 일확천금의 기회를 만나게 되거든요. 그러니 고고학에서 박물학까지 물건을 수집하고 찾아다니는 등등을 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습니다. 게 중에는 정말로 문화재를 사랑하고 역사적 가치의 보존을 위해 힘을 쓰는 간송같은 분들도 있습니다만, 반대로 문화재의 역사적 가치에 따라 돈벌이를 삼는 사람도 훨씬 많거든요.

 

그런데 문화재적 가치가 동산이 아닌 부동산이 될 경우, 소유자는 정반대의 스탠스를 취합니다. 부동산의 문화재 지정을 기를 쓰고 피하려 합니다. 부동산에는 공공성이 강조되어 사유재산을 제한하는 경우가 몇몇 가지 있습니다. 군사시설구역, 상수도보호구역, 개발제한구역, 축사제한구역, 문화재보호구역등. 이런 구역의 설정은 사유재산을 재한하여 개발을 하지 못하고, 구역의 목적에 맞게 부동산이 보호되지 못하면 법적으로 처벌받도록 강제합니다. 문화재보호구역도 마찬가지로 구역으로 지정되면 소유자는 그 부동산의 가치 하락을 겪어야 합니다. 특히 문화재보호구역의 땅을 투기로 매입하는 바보는 없거든요. 매입해도 마음대로 개발을 할 수 없고 개발해서 가치를 올려서 시장에 내놓을 수가 없고 구매자가 없다면 누가 가격을 높혀 사드릴 이유가 없겠지요. 투기꾼의 입장에서는 문화재보호구역의 땅은 처다도 안 봅니다. 이익의 관점에서 투기꾼의 시각으로 보자면, 문화재보호구역의 땅은 투기 차액을 실현할 수 없는, 가치 없는 땅이 되겠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문화재를 소유자가 지정하려 든다고 하면 투기꾼의 자살골이 되겠지요. 미치지 않고서야 지정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의 살아온 삶의 과정에 비추어 보면, 문화재의 순수한 사랑이라는 관점을 투기꾼들은 이해를 전혀 못하죠. 돈 벌이가 안된다는 것에 자살골을 차는 게 이해가 안 되는 지점이라서요.

 

이처럼 동산과 부동산의 문화재적 시각은 너무나도 극명하게 대척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몇 채를 사들였냐, 차명이나 증여나 등등의 논란 따위는 사실 투기꾼들의 이익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편향성이야 없을 수가 없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 땅을 사들여서 얼마만큼의 시세차익을 누렸고 얼마의 돈을 통장에 입금된 현금이냐라는 점에서 불 수 있습니다. 단순히 개발 호가만 높였다고 투기했다는 것도 엄밀히 말하자면, 아니란 거죠. 직접 번 돈이 없이 땅값이 얼마라는 호가만 올랐다고 돈 벌었다는 논리는 말이 안 되는 거였습니다. 특히 문화재로 지정되면 땅값 절대 오르지 않습니다. 개발 행위 제한받습니다. 재개발 전혀 못합니다. 여기서 포인트. 소유자가 자신의 부동산을 등록문화재로 지정받겠다는 점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그 땅을 대규모로 매입해서 개발사업을 진행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기도 하다는 뜻도 됩니다. 그 땅이 문화재로 지정됨으로써 개발행위 자체를 할 수없다면 사업 시작도 못합니다. 주변의 토지 소유자들도 엄청 난감할 것입니다. 오래된 집을 팔리지도 않는데 시행사가 나서서 매입하여 팔고 나갈 수 없게 된 셈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주변 일대를 개발해서 아파트 지어 팔아먹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어떻게든 문화재 지정을 막아야 하고,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겠지요.

 

최근에 제가 다니는 회사에 아파트 시행자와 건축 계약을 했습니다. 해필 사업 부지가 문화재 출토 구역으로 설정된 곳이었거든요. 그것도 청동시 시대의 돌도끼같은, 그런 문화재가 나올 가능성이 있는 구역이었거든요. 두 달 동안 공사를 못했습니다. 착공하기 전에 문화재 지표조사를 해서 문화재가 출토되지 않았음을 문화재 조사 기관에서 (조사의뢰도 돈이 많이 듭니다.) 의뢰하여 조사하고 문화재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공사를 할 수 있거든요. 이 조사 기간만 2달이 걸린 겁니다. 다행히?도 문화재는 출토되지 않았고 문화재가 없음으로 공사를 진행해도 된다는 승인을 받긴 했습니다. 2달간 공사를 진핼 할 수 없는 시행자는 분양을 두달간 늦춰야 하는 손해를 입은 셈이죠. 왜냐면, 사업이 자기 자금이 아니라 대출을 끼고 있음으로 이자 부담이 두 달 동안 더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비용이 발생이 늘어가는 거라서요. 솔직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화재적 가치에 대해 무지합니다. 문화재에 대해 크게 따져 본적도 없고 살아가는데 상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이게 자신의 재산적 가치와 연결될 때, 그제서야 난리 블루스를 추게 되는 겁니다. 자신의 이익과 역사적 문화적 가치의 충돌이 생길 때 과연 어느 것을 선택할지는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살아왔던 이력이 증명하는 셈이거든요. 개발사업자 입장에서는 당장에 비용이 들어가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손해로 연결될지도 모르는 마당에 그깟 문화재에 의해서 내 재산의 침해가 발생하는데 광분하기 마련이거든요. 대부분은 그래요. 대부분은. 그러나 이런 재산가치에 전혀 연연하지 않고 문화적 가치에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는 사람은 당연히 보존하고 보호하고 싶어가는 것이 희귀한 케이스입니다. 개발업자적 시각에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거죠.

 

말로는 5,000년 역사의 전통문화가 살아 있는 단일 민족이니 하며 자뻑질하겠지만 현실은 조카리 마이싱이라는 거죠. 도시 골목 도심의 빌딩 사이 등등 어디를 둘러봐도 고작 100년도 넘은 건물 하나 없는 곳이 수두룩합니다. 100년 전까지 올라갈 것도 없습니다. 50년만 지나도 의미 있는 건물이 거의 없어요. 어떤 가치와 문화의 가치를 세길만 하면 모조리 부숴 버리고 새로운 건물을 올리기 바쁘거든요. 동유럽의 도시만 가더라도 중세 시대의 건물이 많아요. 일상의 사람이 살았던 주택에서부터 공공건물까지 현재의 시점에서 직접 건물이 사용되고 있거든요. 사람의 인적이 활발하고 사람의 체취가 배어든 건물은 빨리 상하지 않습니다. 빈 건물은 몇 년만 지나도 쇠락하지만 이용되는 건물은 여전히 숨을 쉬거든요. 100년 전에 할아버지가 살았던 집에서 손자가 여전히 살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는 거니까요. 그러니 동유럽의 여행을 가서 중세 시대의 모습을 보러 가는 것도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어주거든요. 요즘은 100년전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았던 집에서 사는 사람 아무도 없을 거예요. 심지어 어떤 개개인마다 조부모가 쓴 기록이라도 있다면 명문가 대접을 받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부수고 새로 짓는 건 참 잘하는데 보존하는 것은 아주 빵점이라는 거죠. 그래서일까요. 흔히 그런 말 한 번쯤 들어 봤을 겁니다. 근본 없는 자식이라고. 뿌리가 없는 놈이 근본이 없다는 말이죠. 90%가 가짜인 족보에 이름 석자 올랐다고 가문이 명문이라고 자뻑하는 꼴이 웃습지 않습니까요. 집안에 하다못해 웃대 어른의 기록 담긴 무슨 쪼가리라도 있다면 모를까 아무것도 없잖아요. 빌딩 몇 채, 아파트 수 채 가진 게 불나방의 가치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그래서 근본 없는 자식이란 전통이 없는 천박한 쌍놈이라고 하는 이유가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릴 적 나고 자랐던 집 다락방에는 오래된 고서적 몇 권과 대대로 물려받은 일기와 족보가 있었던 나무 상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챙기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라서 그 가치를 전혀 몰랐었고, 또한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기도 하고 집을 새로 신축하면서 그 나무상자에 들었던 것을 모두 망실했거든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나의 뿌리였고, 내가 태어나게 된 근본이라는 점입니다. 조부가 만든 책도 있고 윗대로부터 받았던 책도 있고 누렇게 빛바래서 너덜너덜한 것도 있었거든요. 이걸 챙기지 못했다는 것은 윗대 조상들의 뿌리를 버린 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이 적은 기록이 오늘날의 내가 존재한 원인이나 같은 건데 이걸 몰랐으니까요. 그러니 나도 개상놈이 된 거예요. 입증할 수 있는 기록을 잃어버렸으니 증명할 방법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우리는 어쩌면 역사의 주민등록증이 없이 사는 거나 비슷할는지도 모르죠. 그러니 역사의 신분증도 없이 사는 거라서요. 요즘 같으면 복사라도 하고 스캔이라도 하면서 백업이라도 받아 두는 건데 말입니다. 너무나도 후회되는 일중에 하나입니다만, 그때는 몰랐으니까요.

 

그렇다면 앞으로는 지금 우리들이 지금 생산해 내고 있는 기록들이 후대들의 뿌리가 되어 줄지 또 누가 압니까.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자료를 남기는 기록들 차곡차곡 정리하고 알아보기 쉽게 분류하여 저장하고 망실에 대비한 백업화가 있어야겠지요. 어쩌면 오늘 지금 당장 알라딘 서재에 글을 몇자 쓰고 올리는 기록도 어느 누구 손자가 우리 할아버지가 쓴 기록임을 명시하는 일. 바로 그런 게 이어지는 전통이 되어가는 점일 것입니다. 역사는 그리 간단하고 쉽지가 않거든요. 이런 개개인들의 유물과 유산과 기록들이 모이고 모여서 관습이 생기고 관습이 곧 전통으로 역사로 집대성이 되고 누적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 근본 없는 불나방으로 살아야 하겠는지요?

 

PS : 그래서 뒷이야기를 찾아 봤습니다. 역시나.!~기레기들이 문제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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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9-01-22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브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은 정말 어처구니없죠. 문화재 지정되면 쌍수를 들고 반대합니다...
스브스와 중알일보가 미친듯이 물어뜯는데.
이게 과연 그럴 정도의 위법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스브스는 손혜원 투기 위혹만 가지고 뉴스에서 20분을 할애하더군요. 이게 말이 되는지.......

yureka01 2019-01-22 14:52   좋아요 1 | URL
태영건설..지역개발 부동산 업자. 증흥건설..이런 이름이 오르더군요..

그 지역의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됨으로써 개발사업은 전면 백지화가 뻔하거든요.....

두고 볼 일입니다..그런데 문제는
이런 이해 관계자들에 현혹되어서 부동산 투기니 차명거래이니 잘 못알아듣는 게 뉴스의 목적이라면.,,
기레기짓이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겟지요....

2019-01-22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2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9-01-22 14: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랜 기간 자연 부식과 전쟁을 견뎌온 문화재들이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파괴되는 것을 보면,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되묻게 됩니다...

yureka01 2019-01-22 14:47   좋아요 1 | URL
기념할 건물들이 모조리 무너지죠..

개발독점주의적 시대거든요.

stella.K 2019-01-22 1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 보고 또 유레카님 뿔나셨구나 했습니다.ㅋ
정말 그렇군요.
그저 모든 것을 돈이 되냐 안 되냐,
부동산 프레임으로 보는 시각부터 고쳐야 하는데.
어느 당대 유명한 지식인 생가는 없고 터만 표석으로 남아 있는 것
보고 좀 많이 씁쓸하더군요.ㅠ
정말 근본없는 것들입니다.

yureka01 2019-01-22 14:48   좋아요 1 | URL
네,,, 부동산의 욕망 광풍은 문화재가 곧 적이 되어 버렸어요.
그러면서 명절에 성묘간다고 고속도로에 차들이 빼곡한 근본없는 자들의 행렬이 웃습기만 하죠...

곰곰생각하는발 2019-01-22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해충돌방지에 위반된다는 스브스 논리도 웃긴 말이죠. 그렇다면 태영건설이 주주인 스브스 또한 그동안 건설 관련 뉴스에서 이익을 대변하는 뉴스를 많이 송출했는데 스브스 또한 이해충돌방지 위반인 거죠. 결국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꼴입니다. 어론이 기레기‘인 것만큼은 빼박 진실이죠.. 기자 새끼들, 90%는 사형을 시켜야 합니다..

yureka01 2019-01-22 15:02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스브스의 대주주가 태영이었으니 부동산 개발업자의 시선으로 보는 개연성은 없다고 볼수는 없으니 말이죠..
하여간 일개 사기업에게 국민의 소유의 공공재인 전파 사용허가를 내준다는 게 정말 잘못된 정책이었습니다...
방송과 전파가 사기업이 되면 언론이 얼마나 개양아치가 되는 걸 보고 있으니 말이죠..

강옥 2019-01-23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EBS 세계 테마기행
새해들어 크로아티아 방영 편을 다 봤어요
길바닥이며 집이며 수백년된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
어부들이 바다에서 돌아올 때마다 돌을 하나씩 갖고와 쌓기 시작했다는 인공 섬 등등

30년만 돼도 때려부셔서 새로 짓자고 야단법석인 이 나라엔
전통이니 뿌리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지요 아마.
근데, 숱한 외침을 받은 이 나라에서 족보라는 게 진짜 신빙성 있는 걸까요?
가끔 생각하네요. 하도 돼먹지 않은 인간들이 많아서 ㅎㅎ

yureka01 2019-01-23 17:22   좋아요 0 | URL
하도 언론에서 떠들어서 뭔가 하고 조금 찾아 봤습니다.

구목포 시가지의 집의 구조와 등기부가 상당히 흥미롭더군요..

집 한채에 등기가 11필지로 나눠진 곳도 있더군요.
왜그런가 보니, 일제 해방후 처음 보존등기 당시에 집집마다 살고 있는 그대로를 짜갈라서 필지로 분할하여 등기가 되고 집은 그대로였더군요..

그런데 뉴스에는 1채가 11채로 둔갑되었더라구요..ㅎㅎㅎㅎㅎ

거의 매일 등기부 등본 지적도 보는 입장에서 뉴스는 전혀 팩트와 다르더군요...



네 보존은 커녕 있는 의미조차 아파트 개발로 싹 밀어 버리는 돈놀이 사업들이 만든 결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