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까지 날 정도면 이미 상당히 심각 단계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사람은 많은데 와야할 사람들이 없다고 한다. 실제로도 경력자 한 사람 찾기가 너무 어렵다. 지원자도 너무 적고 원하는 경력자와 매칭도 어렵다.

 

이런 현상은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건설업에 있어서 기술자를 대하는 태도 부터 글러 먹었다. 오래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고마운줄도 모르는 사업주들이 너무 많다. 제조업은 기계가 대체 할 수 있어도 건설업의 전반적인 절차와 과정은 기계가 대체가 불가능하다.그렇다면 사람이 재산일텐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그러니 그런 일 잘하는 능력자들이 외면하게 된 것도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건설업을 떠난 사람은 많아도 건설업으로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만큼 비교우위를 실패했다는 의미이다.

 

나 또한 아직 부사수를 만들지 못했다. 여전히 현역인 채로 은퇴를 해야 할 판이다. 미리 키워 놓지 않으면 신입은 경력을 쌓을 때가 없을 것이며,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되는 부분의 지점이 바로 인력 관리부분일텐데 말이다.

 

이제는 현장에서 직접 일하는 기능공보다 기술자 월급이 역전된 상태라면 어느 기술자가 현장에 투입되겠는지 아직 사업주는 모른다. 이런 현상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던지 정말 이젠 기술자 하겠다고 건축과 토목과로 신규 지원자들도 많이 줄었다.

 

대기업은 이제 대기업대로 기술자들이 전부 계약직이고 중소기업은 월급부터가 이미 기능공보다 낮은 수준이라면 신규인력을 끌어들일만한 메리트가 없다. 그러니 아무도 오질 않겠지. 은퇴한 늙은 기술자들이나 오갈 때 없어서 지원은 받지만 그런 경력에 걸맞는 페이를 맞출 수 없어서 실제로 채용으로 연결되기도 어렵다. 여전히 싸게 부려 먹을 사람들을 찾으니 없겠지.

 

그래, 알잖는가? 씨 뿌린대로 거두는 법이라는 것. 그동안 씨 하나 변변하게 뿌리지도 않고 출하를 기다린 탓이다. 나도 이제 길면 4년이다.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빠이빠이 하고 싶다. 14년 근무동안 급여인상 두번이었다.ㅎㅎㅎ미친. 워낙 어렵다는 사정을 감안하고 감안하다보니 호구가 되었거든.

 

후임? 알아서들 하시라.

네 물론, 사람없다고 망하는 곳은 없을 것이고, 다만 굴러가는게 얼마나 비걱거려서 발생할 손해야 뭐 감수하면 될 것이다. 옛 말에 든 자리는 표나지 않아도 난 자리는 금방 표난다 했다. 틀린 게 아닐 것이다.

 

PS :참고로, 건축학과는 5년제다. 5년동안 공부해서 뭐빠지게 자격증 공부해서 자격 따고 신입으로 건설회사로? 언제까지 현장으로 떠돌 건가? 생각해보면 암담하거든. 시간과 돈에 투자대비 수익이 다른 직종과 비교가 안되거나, 혹은 처지가 뒷자리라면 당연히 인기는 없다. 60-70년대처럼 중동 사막가서 건설하는 마인드로? 그때는 그렇게 해도 다 아파트 한채씩 사고 했다만은 지금은 택두 없잖아. 그러니 누가 가겠나...고삼 수험생에게 건축과 지원한다면 극구 반대할 명분은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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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6-22 12: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경제 이론대로라면, 인력 공급자가 줄어드면 급여가 올라가고, 급여가 올라간다면 다시 사람이 모여들어 균형을 이룬다고는 하지만,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하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사람이 최선을 다한다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사회가 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yureka01 2017-06-22 13:07   좋아요 3 | URL
급여 뿐만 아니라 시간적인 복지가 너무 형편 없습니다.
현장 따라 다니면서 시공 기간 맞출려면 토요일일요일도 없이 현장에 나가야 하거든요.
쉬는 날 조차 마음대로 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서요. 게다가 ,,,
공사비는 나날이 깍이는데 회사로 수익을 맟출려니
현장기술자들이 죽어나고,,협력업체로 전가되고...

이젠 현장 기능공 일당이 현장 기술자 임금보다 더 높아요.ㅎㅎㅎ역전현상 벌어진지 좀 됬습니다.

돈으로 위안을 못주고 시간으로도 복지가 않되니 기술자할려고 하는 사람이 사라지는 이유입니다.

이걸 보고 건축과 학생들이 현실을 알아버리니 전공을 바꾸거든요.

설사 학교 졸업하고 자격증 따서도 ..현장 시공 하는 일을 외면하게 되는 ..

이른바 장롱에서 잠자는 자격증이 늘어나죠....

반대로 건축 설계나 건축 역학, 건축 구조 쪽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도 됩니다.

아직도 사업주 대다수가 ..돈많이 주면 사람 찾기 쉽다는 생각 여전히 가지고 있는 이상,,,
반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죠.....

현장에 40대가 중추인데 어렵죠..50대는 은퇴각이구요..
신입을 안 뽑으니 경험을 이어갈 방법이 없죠....

아마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겁니다..

지금 대학에서 공부하는 건축학생들 80-90%가 건축 기술직 공무원..공사직 등 공공기관 쪽으로 방향을 틀었죠....

2017-06-22 1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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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2 14: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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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2 14: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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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2 16: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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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7-06-22 14: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건설업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뭘 건축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사장님 하고 싶다고 해서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조금 있음 직원은 없어지고 회사만 남아있게 생겼군요.. 하긴 제가 알고 있던 건설계통 사람들도 다 전업했어요.. 힘들다고~ 너무 열악해요~

yureka01 2017-06-22 14:38   좋아요 2 | URL
아마 지금 사장님들은 자신이 어릴 때 한창 잘나가던 건축 경기 좋을 때를 못잊고 있죠...
그때 한 건 크게 먹던 시절을 잊지못해서 지금도 손 못내리고 있는 이유일 겁니다.
한탕 칠 기회가 오겠거니.....
그런데 어쩌겠습니까..기술자가 부족한데...아무래도 혼자 일해야 하는 날 올거 같아서요....

요즘 젊은 친구들이 현장상황이 너무 열악한데, 오로지 돈만으로 유혹하기에는 유혹이 안되거든요..

돈으로 따지면야 공무원 월급보다 더 많이 주더라도 공무원하려드는 이유가 뭐겠나요..ㅎㅎㅎㅎ

저야 이제 얼마 안남았으니 버틴다지만 앞으로는 참 볼~~만 하겠다 싶습니다..

2017-06-22 16: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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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2 16: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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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17-06-22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친구 남편이 건설업자였는데요....
아파트 공사 하나 따내면 공사비를 대물로 받던데요.
대물 받아서 되팔아야 현금이 되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더라고요. 브렌드도 없는 소형 아파트다 보니.
집은 몇채나 되는데 현금은 없고, 나중엔 손해보고 집 팔아서 인부들 월급주고....
건물 공사 끝내주고 돈을 못받은 경우도 몇번이나 있었고
그 바닥이 아직도 어둡고 아날로그로 돌아가는 것 같던데.
유레카님은 고급 인력이신데 아직 부사수가 없으시다니 어리둥절???

yureka01 2017-06-23 08:59   좋아요 0 | URL
친구남편분의 그런 현장은 피해야 합니다.
대물받으면 손해가 이만저만한거 아니라서요...
특히 소규모 아파트들은 정말 팔아먹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거리를 받지 못할때가 제일 문제거든요..
네 맞습니다.아직도 아날로그형의 추억에 쌓여 있는 동네라죠..

고급인력이 아니라 사무실 개잡부라서요..ㅎㅎㅎㅎ전공이고 뭐고 없이 걍 닥치는 대로의..
그러니 작은 건설회사의 단점은 전문성이 현격히 떨어지고,
장점이라면 조금식 다 손댄다..라는 거죠..
 

 

 학습된 기억은  첫 학습후 하루만 지나도 학습 전의 10%대만 저장됨.

 

 

 

그래서 다시 복습을 하면 복구되었다가 계속 반복을 하게 되므로써

학습의 기억을 유지하는 곡선이다.

 

유명한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의 망각 곡선. 

 

기억 날때까지 반복하는 것이 공부의 기억 원리이다.

그러나, ㅎㅎㅎㅎ현실은 이제 1회 반복ㅠ.ㅠ.

 

물론 앞에 것들은 다 까먹었다.

몇 번이고 반복할 시간이 촉박하니 진퇴는 양난일 뿐.

 

나이들면 기억의 망각속도는 더 떨어진다.

반복이 더 자주 해야하는 원리가 숨어 있거든.

 

걍 1회는 테스트 삼아 해봅니다.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뭘 믿고 과욕을 부린 걸까. 펙 ㅠㅠ

 

------------------

 

PS : 알리딘에서 책에 대해 리뷰나 페이퍼 쓴다라는 것도

일종의 책에 대한 복습같은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책 읽은 것도 나중에 읽긴 읽었다는 것만 기억나죠.

내용은 다 도망가버리고 껍떼기만 남는 꼴입니다.

책을 읽고 나면 뭐라도 써보셨음 합니다.ㅎㅎㅎ

읽은 거나 안읽은 거나 비슷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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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20 1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읽었던 것을 기록해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려요.. ㅎㅎㅎ

yureka01 2017-06-20 10:39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약간 오래 머무르다 결국 몇몇개만 남겠죠..
아니면 전혀 ~~남지 않던가 할 거 같아요...

2017-06-20 10: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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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0 1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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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0 12: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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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0 12: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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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17-06-20 13: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망각곡선이라는 것도 있었군요.
그런 이론 없어도 하루만 지나면 다 까먹는다는 걸 몸소 체득한 1인, 여기 있네요.
복습이 그리 중요한 것인디.... 지구력이 떨어져서 한 자리에 붙어있기도 어려워요.
정신이 산만해서 책 몇줄 읽다보면 정신은 어먼데 가있고...ㅎ
저는 요즘 김경욱의 소설에 빠져있습니다만 ^^*

yureka01 2017-06-20 13:51   좋아요 1 | URL
나이들면 망각 추락 곡선이 더 떨어지죠..ㅎㅎㅎㅎ
그래도 책읽고 글쓰는 것이 나이들어 총명기 세우는데는 아주 좋습니다..
지우다님의 소설 읽기 멋쪄요.


무엇보다도 늙어서 치매 걸리지 않는 노력 해야겠더라구요....

stella.K 2017-06-20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억은 잊어버리라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어느 날 생각지도 않게 툭 삐져 나오는 법.
안 그러면 말고. 뭐 그런 거죠.
별 걸 다 기억하면 죽습니다.ㅋㅋ

yureka01 2017-06-20 13:46   좋아요 3 | URL
네 이게 기억의 딜레마죠..
잊고 싶은 것은 잊혀지지 않고
잊고 싶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쉽게 잊혀지는 ..기억...ㅎㅎㅎㅎ
공부할 때는 안잊고 싶어서 발버둥치는데도 돌아서면 잊혀지니....으~~~

2017-06-21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1 1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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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1 1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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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1 12: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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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1 20: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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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2 08: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냥 가볍게 읽어 주시길~!~~~~)

 

아 이제 몇일 안 남았습니다만, 조금 어렵긴 합니다. 

나이 들어서 외우고 반복 학습한다는 게 쉽지 않겠죠.

 

하기야 치이고 치이는 게 자격증이던데, 막상 내가 하려니 헬게이트!~

사람이란 남들 하는 거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아도, 막상 자신이 하면 어려워지는 것.

공부도 내로 남불.

 

고단하더군요.

 

낮에 입 빠이 스트레스받아 가며 신경 날 서고 짜증 나는데, 저녁에는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서 볼펜질을 해야 하니, 이른바 다른 세상을 왔다 갔다.

주야로 어 너 더 월드를 오고 갑니다.

아니구나 체인지 더 월드.

 

제일 좋은 점은 공부 핑계 댈 수 있습니다.

무슨 모임이든 연락 와서 무슨 일을 도모하자고 할 때, 참 거절하기 힘든 관계들이 있습니다.

무 자르듯이 자를 수 없는 경우가 자주 있거든요.

 

"나 요즘 시험공부한다. 미치겠다. 힘들어. 너도 공부해봤잖아? 쉽지 않아."라고 하면, 거의 다 공감해 줍니다.

"그래 공부하는데 넌 빠져도 된다. 공부 열심히 해라. 이해한다. 고생이 많네"라고 다 공감 받습니다. 헤헤헤...

 

우리나라는 공부 지상주의 아닙니까.

공부 앞에선 주눅 드는 사람들에게 뭐 공부가 두려움이거든요.

경험으로도 알죠. 공부 잘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떤 모습을 하는지.

길을 가다가 작은 병원이나 의원급만 봐도 원장 선생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인지.

법원에 가봐도 압니다. 그기 앉아 있는 법관이나 변호사들이 얼마나 공부를 많이 한 건지 바로 느끼는 부분이거든요.

 

그러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부에 기가 눌려있거든요.ㅎㅎㅎ

하기야 조상님들도 다 사대부들이어서 평생을 공부하다가 관직에 나가면 관직을 쓰지만 공부만 했다면 전부 학생부군이셨거든요.

공부하는 학생이 어떻다는 건 유전자적으로도 느끼는 나라 아니겠습니까.


쥐뿔도 가진 거 없이 몸뚱이 하나로 버티는 건 공부가 그나마 최고 일수 밖에 없다는 신념.

믿음이 강고하거든요.

  

그러니 시험공부한다고 하면 뭐 두말할 것도 없이 그래그래, 넌 빠져도 이해해.

하나도 섭섭하지 않아. 괜찮아... 이렇게 나오거든요.

  

이거 좀 적당히 써먹는 거 아주 좋습니다.

인간관계를 흩트리지 않고서, 아니 참석하지 않았다고 섭섭해하지 않게 하면서도 거절하는 좋은 방법이더군요.

  

어느 누구라도 학교 다녀 본 사람은 시험 공부가 뭔지 아무리 공부 안 했더라도 대충 그 느낌을 잡거든요. 

그러니 공부라는 핑계는 아주 유용하게 써먹죠.

  

이런 심리에는 공부의 콤플렉스가 하나 쯤은 있거든요.

지금 내가 살아가는 꼴이 공부를 좀 더 잘해서 어디 입사시험 혹은 어디 대학 등등했더라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자기 최면들이 있죠.

그러니 공부에 한이 조금 맺힙니다만, 공부라는 풍선을 가슴에 품었던 사람에게 이걸 바늘로 콕 찌르면 뻥 터지는 이해력이 높아서 굳이 길고 장황하게 설명할 것도 없이 다하게 됩니다.ㅎㅎㅎ

하다못해 국민학교도 나오지 못했던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되어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 졸업시험을 치는 이유가 은연중에 이데올로기처럼 된 겁니다.

입시든 취업이든 자격이든 고시이든 공부한다고 하면 심리적으로도 이해받기가 상당히 쉽습니다.

고3만 되어도 온 집안에서 이목을 집중하고 잘하나 못하나 관심받기 일상이고 집안 전체가 늘 떠받을게 되거든요. 그래 열심히 하라는 말을 꼭 빼놓지 않고서.....

  

"나 요즘 책 읽는 게 있어서 바쁘다, 나중에 연락할게." 이러면 섭섭해합니다.

'이 세끼 한가하게 책이나 보고 나보다 책이 더 ???'라고도 할 생각 가질 가능성 높습니다.

반대로,

"내가 시험 얼마 남지 않아서 공부가 급해. 이해해줘."라고 하면 "그래그래 고생이 많타.!"라고 합니다.

나이 들어서 무슨 공부냐 핀잔하는 사람을 못 봤습니다.

진짜 하기 좋은 말로, 혹여라도 공부 뭐할거 있냐라거나, 그 나이에 무슨 공부식이냐라고 따졌다가는, 졸라게 까임 당한다는 사실이죠.

  

쉬운 말로, 현대 사회에서 자기계발 따위를 설명하게 되면 따지는 놈들도 바로 깨갱합니다.

  

이 세꺄 니 돈 많냐?

여기서 버티려면 몸땡이 하나로 버티는 게 얼마나 조 빠지는지 알지?

그래서 부단하게 자기개발이 필수라고.

서울 가봐 온통 학원가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개발 학원들이 얼마나 불야성인 줄 알지?

니처럼 술이나 퍼마시고 넋놓은 시간에 그들은 하루도 시간을 헛쓰지 않아.

넌 뭐 잘난 거 있냐?라고 쏘면, 나태함과 게으름을 비판하고 자신에게 방임하는 모습을 꼬집으면 거의가 쪽팔려야 하는 게 정상인 사회에 놓여 있거든요.

이게 다 자신을 가꾸는 일이라고 쏘면 ㅋㅋㅋ.

  

공부가 자기성찰 운운하면 비웃어도, 자기계발이 어쩌고 하면 십중 팔구는 먹힙니다.

공부와 자기계발 이 두 가지 타이틀에 대해 주눅 든 사회에서 이 두 가지로 밀어 부치면 그래서 먹히는 이유입니다.

  

네 우리 사회는 정말 고단한 사회입니다.

금수저가 아니라면 누구나 다 이 두 가지에 매달리게 마취된 사회입니다.

거대한 자기개발과 공부에 자본은 철저히 이용해먹거든요.

여기에서 자유로울 사람도 얼마 없죠.

  

경쟁을 해본 사람이 터득해가는 과정들이 결코 녹록하지 않음을 알아차리는 거죠.

그러니 나 공부하니 건들지 말라 고하면 뭐 깨갱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안 먹히는 사람도 있어요. 와이프 .ㄷㄷㄷ

 

뭐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ㅋㅋㅋ 미치겠뇌가 작동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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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6 15: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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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6 15: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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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6 21: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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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8 17: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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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6-16 15: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그래도 한 여름까지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어딥니까?
지금도 더운데 한 여름은 더 할 것 아닙니까?
결과야 어찌됐든 빨리 끝내고
수박 한 조각 베어 무시면서 자유를 누리십시오.^^

yureka01 2017-06-16 15:51   좋아요 2 | URL
ㅎㅎㅎㅎ 더해야 할 거 같습니다..아놔........ㅋ

떨어지면 제시험을..
붙으면, 다른 거 또 ...해볼까 궁리중입니다.

이게 뭐라고 이러는 건지..ㅎㅎㅎㅎ

stella.K 2017-06-16 15:56   좋아요 2 | URL
헉, 그런 거군요.ㅠ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하는 거죠.
더 나이들면 못 합니다.
그리 생각하시고 열심히 홧팅!! ㅋㅋ

yureka01 2017-06-16 15:58   좋아요 4 | URL
그런데요..
이거 좀 중독성이 있더군요..

히한해요..여튼.....

stella.K 2017-06-16 16:08   좋아요 2 | URL
ㅎㅎㅎ 젊어지고 싶으신게로군요.
저는 시험이라면 시베리아 벌판에라도
도망치고 싶은 1인입니다.ㅠㅠㅠㅠ

yureka01 2017-06-16 16:44   좋아요 1 | URL
이참에 마음은 이미 고삼수험생처럼 ~~^^..
그럼 많이 젊어진거죠?ㅋ

시험이야 까이꺼 불합격해도 됩니다..ㅋ

서니데이 2017-06-16 15: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더워요.
유레카님 좋은하루되세요.^^

yureka01 2017-06-16 15:56   좋아요 3 | URL
아 여긴 대프리카 지역이라서
이정도 쯤이야 가볍게..큭~~~하다가도,역시나...
아 덥네요.ㄷㄷㄷㄷ

커피소년 2017-06-16 21:02   좋아요 3 | URL
작년 여름처럼 덥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ㅎㅎ 그나저나 대프리카는 이번 여름에도 장난아닐 것 같습니다..ㄷㄷ

yureka01 2017-06-18 17:27   좋아요 2 | URL
오늘 여기 날씨 기온이 35도 넘었네요.

덥지만 그래도 습도는 높지 않아서 인지..아직은 견딜만합니다.

예년 같으면 지금 장마시즌인데...가뭄이 극심하다니...뭔가 좀 이상한 날씨 ㄷㄷㄷ

2017-06-16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6 16: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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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6-16 17: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남부도서관은 요즘 눈치보며 에어컨을 틀었다 말았다하더라구요.

지나가다 휙휙 보면 유레카님이랑 같은 공부하시는 분도 많은것 같아요ㅎㅎ

yureka01 2017-06-16 17:29   좋아요 3 | URL
네, 요즘 거의 범용자격증 처럼 된듯한 느낌이랄까요..

워낙 현장에서 사고가 많이 나니까
기업체 마다 안전 관리해야 할 인식이 점점 커지죠...
그래서 수요도 날로 날로 늘어날 것이죠.

많으면 많을수록 안전에 더 신경쓸 수 있다는 점이 좋죠....

살기 좋은 세상이 될려면 일단 사람이 적어도 일하다가 다치지 않아야 됩니다.


겨울호랑이 2017-06-16 22: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 유레카님 잘 마무리하시고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화이팅입니다^^!

yureka01 2017-06-17 09:50   좋아요 2 | URL
나이들어 무슨 싸서 고생인지 모르겠네요..ㅎㅎㅎㅎ
젊을때 뭐하다가 이제와서 이러는지 좀 한심하긴 하지만,
일단 마무의리는 지켜야 겠다는 생각으로 화이팅 하겠습니다.ㅋ^^

감사감사~~

강옥 2017-06-18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부지상주의가 아파트값을 좌우하게 됐지요.
역세권만큼 학세권도 힘이 세고.
대중의 심리가 기울면 그게 민심이고 시류겠지요.
근데 청문회 보니 엘리트코스 밟은 사람들도 별수 없더만요 ㅎㅎ

울 아들도 주말에 일어학원 다니더라고요....
매주 쉴 수 있는 여건이 안되니 학원비는 한달꺼 내고 출석은 반 밖에 못하는...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는 사회, 언제쯤 터질까 불안불안하기도 해요.

yureka01 2017-06-18 21:14   좋아요 1 | URL
요즘 가끔 그런 생각해봅니다.
공부 무지하게 잘해서 판 검사 되고..의사되고 고위 공무원 되고 나서
감방가는 사람들보면...공부가 또 전부는 아니구나 싶더라구요..

아드님도 오죽 했을까요..쉬고 싶은데 어학 학원에 다녀야 하는 그 심정을
전 백번 이해하게 됩니다....

AgalmA 2017-06-19 01: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치겠뇌ㅋㅋ 고생하며 뻘뻘 공부하시니 더 응원합니다!

yureka01 2017-06-19 08:43   좋아요 1 | URL
아고 감사합니다....쉽지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힘내서 ~~~^^..

페크pek0501 2017-06-19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님이 공부하시는 동안 저는 제가 좋아하는 책만 골라 읽으며 더위를 잊겠습니다.
점수가 따라다니는 공부는 1도 싫어요. ㅋ
응원은 하겠습니다. 파이팅!!!

yureka01 2017-06-20 08:2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리뷰도 자주 써 주세요 ^^.

2017-06-19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20 0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교롭게도 선택한 책 두 가지가 죽음에 관한 책이다. 하나는 자살론, 즉 어떻게 스스로를 죽일 것인가에 대한 논서이고 또 하나는 어떻게 죽어 갈 것인가에 대한 책이다. 우리 모두는 생명의 거대한 시스템에게서 죽음의 예외를 허락받지 못한 존재이다. 따라서 반드시!~, 그리고 절대적으로 다 죽는다. 영원히 살 것처럼 사는 오늘일 수도 있을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랫든 저랬든, 결국 오늘만큼 죽었고 오늘만큼 죽어가고 앞으로도 죽어 갈 것이다. 차라리 죽는다는 표현보다는 사라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죽음은 즉 부재 이 자체를 의미한다. 생명이라는 유기체가 움직이는 주체로써 사라질 때를 우리는 죽는다는 말로 그저 대신 할 뿐이다. 모든 죽음은 애도와 엄숙을 가진다. 사라짐은 곧 이별을 의미하고 내가 마주하는 공간과 시간과의 작별을 의미한다. 관계로부터 이별이자, 곧 해방이고 더 이상은 사라진 것에 대해 과거형으로의 기억만이 남게 된다. 물론 과거에 살았던 이 기억마저도 희미해져서 완전히 망각되면 그때야 온전한 죽음, 그러니까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 아무것도 아니었던 원래 상태로 원상 복귀하는 셈이다.

 

원래부터 없었는데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태어나기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곧 죽음이다. 그러나 문제는 오기 전 상태로 되돌아가는 과정이 그리 녹록하지 못하다는 것의 관건 때문이 아니겠는가. 한 번은 거쳐야 할 과정일 텐데, 결코 쉽지가 않다. 우리는 모든 죽음을 타자의 죽음으로써만 인식한다. 단 한번도 내가 죽어 본 적이 없이, 누군가가 죽어가는 것만 봤다. 내가 죽고 나서 본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니 모든 죽음은 타자의 죽음으로 우리는 죽음을 마주했을 뿐이다. 내가 겪은 죽음은 아예 없다. 그래서 죽음은 철저하게도 객관적일 수밖에 없다. 혹은 누가 관 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살아서 튀어나온 사람들이야 죽음이 주관적일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죽는 것도 피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개별적 사안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죽어 갈 것인가'에도 죽음을 대하는 태제도 다르다. 또는 어떻게 죽을 수 있을까. 어떻게 죽어야 잘 죽었다고 소문이 날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그래 그 누구도 죽어 본 적이 없어서 아무도 모른다. 죽고 나면 그 어떤 증명할 만한 논리를 전할 수도 없다. 내가 해봤는데 따위를 직역해서 "죽어 봐서 아는데 말이야"라는 경험론도 허용되지 않는다. 죽음에는 경험이 없다. 혹여 경험했다면, 그래 넌 귀신이구나. 죽고 나서 나오는 건 사람이 아니라 귀신일 테니까. 역시 죽음 이후의 존재를 가정한 인간의 상상력일 뿐이다. 죽음은 사실 상상조차 불허한다. 내심장과 뇌의 세포가 멈춘 이후는 내가 나를 모른다.

 

안회인가, 제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스승님,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제자야.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리오?

라고 현답을 내렸다.

 

죽는 거야 사는 것보다 중요하지는 않다는 의미를 말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어떻게 죽는 것보다 중요하다. 모든 죽음 동일한 것은 결과적으로 사라진다는 현상만이 공통적이다. 한때 웰빙이 웰다잉으로 된다는 신드롬이 있었다. 잘 살아야 잘 죽는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잘 죽으려면 일단은 잘 살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 이유이다. 그래서 공자는 사는거나 좀 신경 써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사는 것도 제대로 못 살면, 죽는 것도 제대로 못 죽는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되고 미래의 죽음을 대비하여 지금을 잘 살자는 현실론으로 결부된다. 김광석의 노랫말 중에 우리는 매일매일 이별하고 산다고 했다. 이는 다른 말로는 매일매일 죽어간다는 은유의 표현이다. 매일매일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결국은 매일 죽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거다. 이 당연한 사실에 있어서 새삼 놀랍지 않는가?

 

법률적으로 죽음은 모든 계약의 해지를 의미한다. 어제 누군가에게 수억을 빌렸더라도 오늘 당사자가 죽음을 맞이했다면 채무채권 관계는 소멸된다.(물론 상속의 문제는 상속받을 사람의 선택사항, 상복 받지 않으면 빛도 상속될 수는 없다.) 이렇게 모든 계약이 소멸되는 것이다. 죽음은 즉 관계의 소멸이라는 것도 법률적으로는 맞는 이야기가 되는 까닭이다. 오늘의 계약은 내일의 이후의 이행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죽음은 이 전제를 무효로 만들어 버린다. 장래에 관계의 청산과 같다. 죽고 나서도 유효한 약속은 없다. 모두 무효. 효력이 없음, 효력의 상실이라는 것이 곧 죽음이다. 노랫말처럼 우린 매일 매일 죽어가면서도 미래를 전제로 계약하고 이익에 대해 사투하듯이 달려들어 챙기려 든다. 혹시 모르지, 지금 당장에 죽을지라도 끝까지 이익에 매달리는 삶은 과연 무엇일까라고 묻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죽을 죄를 지은 놈도 죽고나면 그 죄를 사면하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다. 죽음은 죄가 해지된다는 뜻이고 더 이상 처벌도 없으며 처벌의 최대치가 곧 죽음이다. 죽음은 모든 관계를 무효화시키니 상당히 편리하다. 죽은 사람에게 계약을 요구할 수가 없으니까. 요구해봤자 아무것도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걸 타자의 죽음을 통해서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장 큰 용서 또한 죽음.

 

그러나 달리 말해서 죽어 가야만이 오늘을 산다. 지금 우리 역시 죽어가길래 오늘을 버티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배고파도 안 죽는다면 밥도 안먹고도 버틸 수가 있을 테니까. 영원하면 좋을 거 같지만 결코 아니다. 열심히 살자는 것도 다 죽기 때문에 가능한 인간의 유한성이 가끔은 고맙다. 혹여, 무한대로 계속 돈 벌고 밥 먹고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거라면 이게 곧 지옥 같아서다. 수백억 년을 살았던 별도 언젠가는 식어가는데 사람인들 영원하다는 게 사실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다 마지막인데 기분 나쁜 사람이 있더라도 내 삶에게 화해하듯이 내려 놓기를 바란다. 사는게 다 결과는 똑같으니 따져 아둥버둥도 부질없는 거 아니겠는가. 괜히 기분만 잡칠 뿐이다. 짧은 인생시간에  사랑하고 살기에도 짧은데 미워하면 불편한 시간만 자꾸 길어질 뿐이다. 사진을 오래 찍다보면 세상의 모든 풍경이 죽어가는 것을 본다. 시간은 죽는 게 아니라 사라진다는 거였다. 다 사라질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는 동안만이라도 손이나 한번 더 잡는게 맞다. 악달 받게 살아봤자다. 이거니는 죽었나 살았나? 그런들 뭔 소용인가. 자신의 죽음조차도 알리지 못하고 부고장 조차 만나지 못한다면 그 또한 슬픈 역사가 아닐런가. 시간하고 원만히 사귀는 것. 그래서 우린 오늘도 열심히 잘도 넘어가듯 시간을 넘는다.

그래 우리 열심히 잘 죽어가자. 응?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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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3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3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3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4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6-13 18: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숨을 쉬고, 꿈을 꿔서 그렇지 잠도 ‘작은 죽음‘입니다. 아이러니한 게 잠을 못 자면 건강이 나빠지고, 수명이 단축됩니다. ‘작은 죽음‘을 자주 피하면 진짜 죽음이 찾아옵니다.

yureka01 2017-06-13 19:02   좋아요 2 | URL
ㅎㅎ 재미난 표현입니다.
작은 죽음 큰죽음 ~~^^..
무의식도 죽음이긴 해요~~^^..
마치 살아도 산것이 아닌 뇌사.
몸은 살았어도 영혼이 죽은 불감증...이런거 말이죠..

munsun09 2017-06-13 19: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번뿐인 삶이고 앞에 놓인 시간은 유한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자고, 맘 먹다가도 또다시 망각하면 허투루 또는
미련을 떨기도 하니 참^^ 산다는게 녹록지 않네요. 저를 되돌아보게 하는 의미있는 글입니다.

yureka01 2017-06-14 00:06   좋아요 2 | URL
그럼요..한번 뿐인데 악달 받게 아둥바둥 해도 결국 부질없거든요..
사라진다는 것은 한편으로 조금은 좀 너그러워지는 마음 가질 수 있게 하죠..
충분히 즐기면서 후회없이 살아야 좋은 것이니까요..
마음의 무장해제가 가능한 것이라서요..

나와같다면 2017-06-13 23: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 아무것도 아니었던 원래 상태로 원상 복귀하는 것..

내가 존재하기 이전의 나, 죽음 이후의 나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소멸의 극한 공포감도 느껴봤구요..

yureka01 2017-06-14 00:04   좋아요 2 | URL
거부할 수 없다면 받아 들일 수밖에 없죠...
역으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생각해보면,,이것도 참 문제겠다 싶어요..

없었던 것이 본래의 그것인지도 모르죠...

2017-06-14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4 12: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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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4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4 1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옥 2017-06-14 1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오래 찍다 보면 세상의 모든 풍경이 죽어가는 것을 본다.....
미처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네요. 정말 아무 생각없이 찍었던 겁니다 ㅠ.ㅠ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까지는 아니지만
저는 문상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일지도 모를 사람들을 위해
나의 죽음을 절대 알리지 말라고 유언하고 싶은데..... 문상객은 가족으로도 충분하지 싶고 ㅎ

yureka01 2017-06-14 11:43   좋아요 1 | URL
그럼요.시간이 죽어간다는 것이나 사라진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더라구요.
그 가운데 내가 변하고 있거든요..조금식 조금식...
늙어가면 기능을 다한다는 것은 결국 사라짐의 전조현상을
우리는 매일 매일 이별하면서 겪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사진은 참 괴로운 작업이 아닐 수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가는 현실에서 작은 꽃에게서 받는 위로를 찾는다는 발견의 미학..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저야 이날 까지 ..결혼식은 빼먹은 적은 있어도,
어떤 문상으 ㅣ부고장 오면 안갈 수가없더군요..
사라짐에 대한 이별은 그래야 했으니까요...

겨울호랑이 2017-06-15 14: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죽어야만 오늘을 살 수 있다는 유레카님 말씀에 동감입니다.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과 하루하루를 죽어가는 것이 결국 같은 믜미인 것을 생각한다면, 너무 죽음에 대해 과도하게 생각하지 않는게 더 나을것 같습니다.^^:

yureka01 2017-06-15 15:03   좋아요 1 | URL
죽는다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사라져서 다른 것으로 변화한다는 표현이 정확할 거같아요...
사라지며 변화하는 것이 어찌보면 너무나도 일상적이거든요..

글샘 2017-08-02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김광석이 아쉽죠..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이런 말을 살게 해 준 사람이...


yureka01 2017-08-02 10:09   좋아요 0 | URL
그래서 일까요..김광석은 너무 일찍 이별했더라구요..
그야 말로 준비없는 이별...
 

조선시대 노비들이야 관습이나 풍습 혹은 예의를 익혔어도 지식적인 교육은 받은 것도 없었으니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살았을 것이다. 노비에게는 삶이란 것의 유일한 방식이었던 거다. 어릴 때부터 자라면서 집안일을 하고 각종 농사를 지으면서 소처럼 일하며 커나갔을 테고 혹은 대감님 아드님 몸종 노릇도 했을 것이다.

 

나이가 차서 옆집 김 참판 댁에 꺾쇠의 딸, 곱단이 처자 노비가 있는데 혼례를 올려야 하는 돌쇠는 주인이 시키는 걸 거절할 수 없을 것이고, 곱단이도 거절할 수 없으니 둘이 함께 외거로 사는 거다. 아이가 낳고 싶어 낳나, 몰라서 낳나. 결국 아이도 태어나면 대감님의 소유의 노비인 것. 태어날 때 아버지가 대감댁을 모셨듯이 나도 지극히 당연하다고만 생각하고 한 번도 이에  궁금증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뭐 배운 게 있고 글이라도 알아야 생각을 하는 거니까. 바람이 왜 부는지는 몰라도, 구름이 왜 흘러가는지, 강물이 아래로 왜 가는지도 몰라도, 당연한 것처럼 그렇게 전혀 이상할 것도 하나도 없이, 대감님을 보필하고 섬기는 돌쇠라는 규정됨일 뿐이었다. 대감은 처음부터 대감이었고 돌쇠는 당연히 그 집안의 가솔이었으니 왜 대감을 모셔야 하는지는 처음부터 당연히 구름이 흘러가듯이 바람이 불듯이 궁금할 것도 전혀 없었다. 그게 돌쇠가 사는 방법이자 인생이었고, 곱단이는 돌쇠에게 시집와야했기에 대감님이 김찬판에게 몸값으로 얼마를 주었다. 고마워해야 했다. 곱단이를 대려 오게 돈까지 줬으니까 대감마님의 황송한 은덕이었라 믿었다. 마님은 장가를 가면 꼭 아들을 낳으라고 곱단이와 돌쇠의 혼례식에서 명령 같은 덕담을 지엄하게 내린다. 말이 곱단이지 투박한 노비 츠자의 억센 손 대신에 펑퍼짐한 허리가 아이를 잘 낳겠다는 관상이 선택의 조건이었다. 반드시 아들을 낳아라. 가솔들이 하나 더 늘어 남으로써 대감님의 재산을 불어나는 예상을 대감도 마님도 안다. 가솔들은 나의 재산이기 때문에 가솔이 늘어나는 것은 곧 생산력이 늘어나고 생산력은 곧 부로 연결된다. 그래서 돌쇠의 아들이 테어 나면 호적이 없는 대신에 노비 문서가 만들어진다. 대대로 이어갈 재산 목록이다. 내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노비를 벗어날 생각을 한 적이 아예 없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고 주인이 하라면 하는대로 하는 것이 돌쇠가 할 일이고 돌쇠의 존재할 이유이자 유일하게 살아야 하는 명분이다. 싫다는 말은 할 생각조차 없다. 어디 지엄한 분부에 대해 토를 달 수가 없다. 어디 안전이라고 감히 대들 생각조차 할 의문문이 떠오를 수 없는 돌쇠의 생 전체가 주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이게 대감의 아버지에서부터 지금의 대감에서까지, 그리고 대감님의 도련님까지 이어진다. 간혹, 노비가 드물게 똑똑해서 대감님 아들의 서당을 따라다니다가 글을 배운 적이 있다면, 그래서 아이가 글을 알게 되었다면, 글을 아는 노비를  죽였다. 글을 배우면 안 되는 노비가 글을 알면 죽는다. 노비는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할 의무만 있을 뿐 자기 스스로 하나 라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밥 먹고 똥 싸는 것뿐이다. 그러나 밥 먹어야 하는 것은 배고픈 고통이요, 똥 싸는 것은 배설이라는 압박의 고통의 감각이었다.

 

그렇게 돌쇠는 같은 마을, 참판 댁 곱단이를 아내로 맞았다. 대감 댁에 돌쇠만 있는 게 아니라 갑돌이도 있었다. 갑돌이는 대감집의 근처에 사는 친구인 김진사의 가솔인 갑순이를 한번 딱 마주치고서 사랑에 빠졌다. 아무리 못 배우고 몰라도 인간적으로 이성에 대한 끌림과 배격은 있는 터라서 갑돌이와 갑순이는 첫눈에 맞아 버렸다. 그런 갑돌이는 갑순이에게 장가들고 싶었다. 답답한 마음을 돌쇠도 잘 안다만은 대감마님이 허락을 해줄지 모르는 것이었다. 돌쇠가 장가가던 날, 곱단이와 친구였던 갑순이를 얼른 스치면서 본 적이 있었고 동네 물레 방앗간으로 나오라고 언질을 주었다. 그날, 갑돌이와 갑순이는 만났다. 갑순아, 내가 대감마님에게 갑순이에게 장가보내달라고 말해 볼 터이니 조금만 참아. 그런데 갑순이는 다른데 시집가야 한다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준다. 미치겠네. 우짜노. 갑돌이. 아 씨바, 그럼 우리 둘이 도망이라도 칠까? 아 턱도 없는 소리 하지도 마라. 지난해 옆 마을 아무개가 그 마을 누구랑 함께 도망쳤다가 잡혀 온 거 못 봤드나? 가다가 잡혀오면 다리가 분질러지고 팽생 절뚝거리며 도망간 놈이라고 구박받고 살아야 될지도 모르고 어떻게 잡히면 저얼단 날 텐데 함부로 그러는 거 아이다. 그래도 갑돌이는 열이 받는다. 왜 내가 사랑하는 갑순이와 혼례를 올릴 수 없이 대감마님이 시키는 곳으로  장가를 가야 하고 갑순이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보내야 한단 말인가?

 

사랑은 비로소 눈을 뜬다는 것의 또 다른 인식의 발견이자 표현이다. 아무것도 몰라도 그저 세끼 밥 먹고 죽어라 일만 하고 똥만 싸는 사람일지라도 몸에서 마음에서 끌어 오르는 욕망은 다름 아닌 사랑이다. 갑순이와 함께 살고 싶은 욕망. 걸쇠처럼 곱단이에게 아무 감정도 없었는데 장가가라니 가고 곱단이처럼 시집가라니 가는 식으로는 나는 못살 것만 같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낫이라도 들어야 하나. 이럴 바에는 우리 둘이 우물에 빠져 죽어 버릴까. 그래 동반 자살이 제일이 아니겠는가. 죽어서라도 우리의 사랑이 영원할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무슨 원이라도 가질 것인가? 그날 갑돌이는 처음으로 어미와 아비를 미워했었다. 날 왜 노비로 살게 했는지. 차라리 낳지나 말 것을. 그러나 아비 어미를 탓해도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오늘의 현실. 아비도, 어미도 주인이 시키는 대로 살았으니 선택권이 없었을 것이고 나 또한 어미 어비의 욕망이자 주인의 욕망이었으니 온전한 선택은 없었으리라. 내가 나오고 보니 어미 아비가 노비였던 운명을 피할 길은 없었다. 그렇다고 낫을 들고 대감을 협박할 수도 없고, 갑순이와 함께 살게 해달라고 간청해도 들어주지 않을 바에는 내가, 나를. 그리고 내가 우리를 죽이고, 이것의 당대 현실을 끊고 말리라.

 

그 다음날 아침. 돌쇠와 곱단이는 마을 우물에 물 기르러 갔다가 갑돌이와 갑순이가 우물에 빠져 둥둥 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끔은 욕구가 스스로를 죽이고야만은 욕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들은 운명으로 부터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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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페이퍼 글 급조인데도 저녁 시간이 화살처럼 빠져 나간다.아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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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6-07 2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갑자기요?

yureka01 2017-06-07 21:55   좋아요 1 | URL
갑자기가 아니었을 거예요..
더 큰 욕망으로 작은 욕망을 버렸으니까요.......
갑돌이 아들 딸은 더이상 노비로 살지 않아도 되니까요....

결말이 뜬금없게 없게 보이지만, 드라마틱한 반전은 없었습니다...

종속된 삶의 이루어질 수없는 무선택적 욕망의 사랑에 해피엔딩같은 희극은 없더라구요.

나와같다면 2017-06-07 23: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를 낳지 않았을텐데..
본인이 노비라면.. ㅠㅠ

yureka01 2017-06-07 23:43   좋아요 2 | URL
그 때 당시에는 낳지 않는 것에서도 선택권이 없었기도 하였지요.
특히.. 태어날 때부터 노비로 살았다면 사는 행동 자체가 다른 생각 조차 들지 않았을 텐데,
노비인줄도 모르고 노비로 산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니까요.
요즘 처럼 자기 정체성..주체적인 관계성..이런 철학은 상상도 못하고 살았을 테니까요.
소처럼 일만 시키면 사실 고단한 일상에 다른 생각이 끼여틀 틈도 없을 거 같았어요.

사대부들과 권력자들의 기록은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이 있지만,
피지배층인들의 스스로를 표현한 자신들의 기록은 없었죠.
그러니 추측만 해댈 뿐이랍니다.

커피소년 2017-06-08 12:53   좋아요 1 | URL

예.. 과거 노비들의 삶을 보면.. 억지 교배되는 가축이나 반려견과 같은 느낌입니다..

요즘이라고 뭐 달라진 것은 없죠.. 틈만 나면 연애와 결혼의 여부를 묻는 어른들이 많으니까요..

게다가 결혼식과 같은 허례허식은 아직도 헬 조선시대의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 한 노비들의 “나 그래도 이 정도는 하고 살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허세와 비슷한 면이 없지 않아 있죠.

여기서 또 모순은 애는 낳지 않겠다면서 반려동물은 입양해서 외롭고 우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 또한 존재는 다르지만 같은 의미에서 폭력이죠.

겨울호랑이 2017-06-08 07: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선시대 때보다 지금 분명 선택의 자유가 많아졌음에도, 사람의 뜻대로 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네요.. 우리 모두는 운명의 노예인 것 같기도 합니다...

yureka01 2017-06-08 08:45   좋아요 2 | URL
태어남이라는 것부터가 이미 시간의 노예가 아닐지요..ㅎ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대를 이어가는 시간을 또 넘으려 했으니까요.

커피소년 2017-06-08 12:55   좋아요 2 | URL
겨울호랑이님, 유레카님의 댓글 매우 공감 됩니다..

2017-06-08 0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7-06-08 08:44   좋아요 2 | URL
선사시대 사냥과 수렵생활 이후부터 계층 사회가 아닌 것이 없었드랬죠...
앞으로도 계층은 희박해질지는 몰라도 사라지지는 않을듯합니다.

강옥 2017-06-08 08: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도는 다르지만 우리 모두 선택에서 자유롭지 못하잖아요.
오고 싶어 온 것도 아니지만, 가고 싶을 때 갈 수도 없고.....
어느 나라에 태어났느냐에 따라 이미 운명은 결정된 거나 다름없고요.
내 몫이 이것 뿐인갑다 생각하고 사는 거지요 뭐.
다시 태어난다 한들, 전생을 기억할 수도 없는 거고 ㅎ

yureka01 2017-06-08 08:46   좋아요 1 | URL
네 그럼요..이왕 되돌릴 수 없다면
차라리 이게 내 몫이려니 하며 긍정해야 사는 날 까지 살 수 있잖아요..^^.

cyrus 2017-06-08 0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그렇고, 옛날에도 현실의 벽을 넘어서지 못해 사랑을 포기하는 일이 많았을 겁니다. 사랑을 포기해야하는 충격을 감당하지 못해서 결국 삶을 포기하게 됩니다.

yureka01 2017-06-08 08:56   좋아요 0 | URL
사랑과 제도가 충돌하면 벌어지는 불행들이죠....^^..

2017-06-08 12: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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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8 13: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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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8 16: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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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8 16: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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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8 18: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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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8 23: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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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9 17: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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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9 19: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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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9 1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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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9 2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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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2 14: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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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3 00: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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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3 08: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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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3 16: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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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3 17: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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