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관찰을 전제로 한다.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본 것을 내 갈망에

접목시킬 수 있는 의미일까.


그런데, 지금 관찰할 수가 없다.

관찰이 안되면 관조도 안된다.

관찰이 안되면 고찰 불가능하면

인생이 여전히 뻔할 것이다.


어쩌면 말이다.

우리는 다 눈뜬 장님처럼

여전히 깨우침은 멀었고

이다음 나중에,

또 왜 그렇게 살았나라고

처철한 후회를 하고

반성을 해봐도,

지나버린 삶의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그래서 우리네 삶이

시간 앞에서는 모두 불쌍한 존재들로

가버려야 할 것만 같다.


난 아직도 모른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를.

게다가 왜 눈을 감고 사는 건지를....

 

요즘 사진을 전혀 못찍고 있다.

지금의 삶을 바꾸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사는게 지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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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4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4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옥 2017-08-25 08: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벌써부터 지루하면 안 되는데예.....
나이들면 점점 지루해지는데예...... ㅠ.ㅠ

저도 카메라 안 잡은지 한참 됩니더.
가끔 나갔다가도 셔터 한번 못 눌러보고 돌아옵니더.
타성에 젖은, 전혀 새로울 것 없는 내 시선에 왈칵 짜증도 나구요

yureka01 2017-08-25 10:41   좋아요 1 | URL
아고 그래서 찾아야 하거든요..
찾을려면 일단 관찰해야 하는데 말입니다..ㅎㅎㅎㅎ

요즘 특히나 관찰이 안되서 카메라 들고 나가도 역시 마찬가지로
한장도 못찍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진 그래서 어렵나 봐요..아놔...

오거서 2017-08-26 0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마지막 문장이 짧지만, 함축된 의미가 엄청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

yureka01 2017-08-26 10:01   좋아요 2 | URL
아마도요.ㅎㅎ
관찰을 못하니 지루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혹시나 관찰주의자가 관찰력이 딸리면, 겪게 되는 지루함이랄까...
 

뉴스에 나오는 현장의 사고 소식이 유난스럽도록 자주 나온다. 사고의 고통은 사고가 크든 작든 다 아픔이다. 들려오는 사고 소식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는 관계 속에서 부대껴야 할지, 다치거나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직접적인 안타까움은 얼마나 클지 상상하기도 벅차다. 그러나 사고의 일상조차도 흔한 사고일 뿐이라는 인식으로 매몰되어 간다. 일상으로 사고의 인식이 매몰되어 갈 때마다 사람들은 점점 무기력화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사고의 대표적인 업종인 건설과 조선업인데 제조업에 비해 턱없이 사고율이 높다. 다른 업종도 비슷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두 개의 업종 특성이 소위 말하는 인건비 따먹기의 저임금이고, 인건비는 경비의 일종이니 무조건 줄이려 든다. 물론 일의 특성상 작업 환경이 제조업처럼 일괄적이고 고정적이지 못하고 작업 환경의 유동성이 많다 보니 안전시설 또한 그때 그때 달라질 것이고 보면 더욱 철저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일은 끝날 기미가 없어 보인다.

 

모 대기업 회사에서 발주받은 선박에 대해 안전 감리를 해외 업체에게 맽겼는데 연간 동원 인원이 6,000명이었는데 불구하고 인력 관리가 얼마나 철저하던지 사고 한 건이 없었다고 한다. 배를 싸게 건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를 만드는데 사람이 다치거나 죽지 않아야 하는 외국의 발주 선주사의 마인드는 새삼스럽게 놀랍다. 문제는 이 놀라움이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도 우리는 그저 입을 크게 벌리고 놀라는 것이란 점이다. 정말 부럽고도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 무엇이 문제인가.

 

심지어 안전감시단에서 안전 점검사항을 지적하면 무시하거나 잔소리로 듣는 작업자의 마인드와, 회사의 마인드와 같은 거라면 사고가 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아무리 작업 전 중 후에 확인한다 해도 놓치는 부분이 늘어갈수록 사고의 압력은 켜져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무시하고 귀찮아한다. 그래. 귀찮음이다. 사람의 목숨에 걸린 일들이 일상이 되다 보면 귀찮음이 될 때가 바로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와 결합한다. 하나 죽어도 눈도 끔쩍하지 않는 세상에서야 얼마나 피동적인 것인가 말이다. 사람 목숨 따위 자본 앞에서는 얼마나 하잘것없는 가치의 똥값만도 못한 것인가? 현실은 똥값만도 못한 슬픈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솔직히 말하자. 사람 목숨이 돈보다 가치가 싸다. 사람값이 싸구려다. 누구 하나 죽는다 해도 죽는 놈만 병신 되지 보상금이나 합의금은 네가 죽고 나서이니 네 돈은 아니지 않는가? 남은 가족들에게 돌아갈 뿐. 그런데 왜 자신의 목숨을 가치 없이 버리려 하는가 말이다. 안전은 귀찮음을 이기는 극기와 인내로 이루어진다는 사실. 우린 늘 잊고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신호를 무시할 때 약속은 의미가 없고 이 의미 없음이 바로 사고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횡단보도를 돌아가야 하는 귀찮음. 바로 건너면 빠를 텐데라는 조급증들. 모른 것이 빨리빨리라는 조숙증에 걸린 사회에서 사는 사람은 마음만 급할 따름이 아닌가? 이런 불감증은 어디 횡단보도뿐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한 사회. 그러니 더 슬플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본은 늘 시간을 다툰다. 빨리빨리 해내야 만이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급조의 생각은 생명이라는 가치를 무참하게 짓밟아 버리고 약탈한다.

 

어느 사고이든 간에 단순하지 않다. 작은 사고라 할지라도 원인은 상당히 복합적이고도 얽혀있다. 제도적 문제점, 현장 상황의 인식, 관련 비용의 지출, 사업주 및 노동자들의 인식 등등 모든 것이 맞물려 있으니 어느 개개인이라 한들 한 둘로는 사고 예방이 어림도 없다. 누구 하나 아무리 주장을 해도 누가 들어주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고 그 누구 하나는 점점 제풀에 지쳐버리고 만다. 이것이 개개인의 조직 내에서의 무력감으로 나타난다. 결국은 사고에 대해 안전을 포기당한다. 어떻게 해도 안된다는 절망감.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무기력한 상황에 빠진다. 이는 안전을 관리하고 조절하고 제어하는 관리자도 같은 상황에 빠진다. 우선 당장 취직이 급해서 자격증으로 관련 학과를 전공하고 입사를 해도 막상 닥친 일들은 안전에 사명감도 없다. 안전은 이기는 공격적인 싸움이 아니라 늘상 불안전의 공격으로부터 수비를 해야 하는 입장이다. 따기보다는 지키는 업역이니 수비에는 공격보다 더 많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으니 허물어지기 일쑤이다. 그러니 작은 현장 서너 군데를 떠돌아 아니면 이런 무기력에 서서히 안전기술자들이 무너지거나 타성으로 상황에 맞춰가게 된다. 아니면 종사하던 업종을 떠나든가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공부하기 전에는 심각하게 생각을 못했던 부분들이 알아갈수록 구조적 심리적 부조리에 대해 역시 마찬가지로 무기력에 치를 떨 지경이다. 불안한 오늘은 반드시 불안한 내일을 잉태한다. 오늘이 불안한 사회. 당장에 안전하지 못해 언제 나가떨어질지도 모르는 위험성을 상시 안고 있어야 하는 삶은 과연 어떤 살아감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사람의 특성중 하나를 꼽으라면, 어떤 일이든 하던걸 생략할 때 잘 먹히는 반면에 하지 않았던 일을 하라 하면 먹히지 않고 저항하는 경우이다. 안전도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게 될 때 발생하는 저항이 만만하지 않는다. 전에는 대충 넘어갈 일도 이제는 법으로써 제도로써 하게 될 때 사람은 정말 바뀌기 어렵다. 이제는 두렵다. 사고라는 것이 흡사 가슴에 시한폭탄 하나 들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작동시킨다. 앞으로 얼마간 여기에서 있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불안한 환경을 벗어나야 하는 시간을 재촉할 수밖에 없다. 이때까지 소규모 업종의 건설업에서 종사하다가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 내년부터는 원청이든 하청이든 사망자가 나오기만 해도 사업자의 책임은 어떻게 감당할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지금 그 대비를 해야 할 텐데 오늘이 늘 어제와 같은 마인드는 내일도 변할 길이 없다. 점점 압박이 심해지고 강도는 강해질 것이 뻔하다. 그런데 여전히 요지부동일 때,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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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8-21 2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전 대책을 강구하지 않아 생기는 사고가 발생한다면, 사전 점검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귀찮다던가 아깝지 않을텐데요... 그런 일이 우리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안전 불감증의 또다른 요인이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yureka01 2017-08-21 23:51   좋아요 2 | URL
대부분 사고가 만약이라는 가능성을 무시해버리죠..괜찮을 거란 근거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건지 참 이해가 안되죠..불안전의 상태를 인지와 행동부재로 나타나더군요..

그런데 사고나서 사람 죽고 나면 그제서야 호들갑이 왠말인지요..

나와같다면 2017-08-21 2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놈의 하청의 재 하청 ㅠㅠ
이 죄를 다 어찌하려고..
세상에 큰 목숨. 작은 목숨이 어디 있다고..

yureka01 2017-08-21 23:52   좋아요 2 | URL
계속 저가 저가..절감 절감이 하청에 하청을 부르죠..
그래야 누군가는 그 차액을 쉽게 먹을 것이고...

여전히 일부에선 노력없는 부가 횡행하는 이유가
서로 타산이 맞아서 겠지요..

2017-08-24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4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雨香 2017-08-29 08: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조적 심리적 부조리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yureka01 2017-08-29 09:01   좋아요 2 | URL
그럼요..단순하지 않죠....결과는 늘 복합적이더군요..
날만한 사고에 나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너무 어처구니 없는 사고는 황당하더군요..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나오고 먹을 수 없다며 폐기한다. 전량 성분 검사를 철저히 하고 등등등 온갖 대책을 마련하며 부산을 떨며 발표를 하기 바쁘다. 그러나 이게 이것만으로 앞으로도 건강한 식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보장은 할 수 없다. 그럼 대체 뭘 먹어야 할까? 원래는 자급자족하지 않으면 먹을 것이 없는 게 맞다. 그러나 이 많은 인구가 전부 자급으로 해결하기란 역시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자. 닭이 사는 닭장, 소위 말해서 철망으로 만든 케이지(사각형 방)에 꼼짝없이 갇혀서 먹고 싸고 산란하는 삶이 무얼 의미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 이 자체가 고통일 따름이다. 닭의 습성이나 본능이 방목으로 돌아다니며 벌레를 잡고 채소를 뜯어 먹고 닭이 제일 좋아하는 모래 목욕이다. 그렇지만 이런 본능 자체를 말살한 케이지에 갇혀 있다는 것은 그냥 계란을 생산하고 고기로 만들어지는 기계처럼 살지만 결국 닭들은 살아 있는 생명이기 때문에 본능에 저항하게 되면 병이 걸리고 해충이 붙는 게 이치가 아니겠는가.

 

하루 종일 어두운 닭장 내부에 불은 밤마다 켜져 있고 잠을 거의 잘 수 없이 지속되는 스트레스가 살아 있는 내내 겪는 고통으로 만들어지고 기온이 높아서 생기는 벌레도 계속 피를 빨아먹어 대니 닭들이 살 수가 없다. 그래, 이렇게 삶이란 거의 자포자기형의 그 전형이 닭장 케이지에서 꿈틀거리고 눈만 껌뻑거린다. 공장식 닭장에서의 닭의 인생은 몇년 갈 수도 없다. 닭의 생존기간이 12년인데 12년 된 닭은 세상에서 존재하기나 할까?

 

우리가 먹는 치킨이 결국 닭이 겪은 고통의 결과물이었음을 우린 모른체한다. 단지 세치 혓바닥에 전해져 오는 감각의 황홀함으로 치환되면 닭의 고통이야 내 알바는 없다. 알고 싶지도 않고. 그저 오늘 저녁에 치맥으로 하루를 즐기는 기뿜만으로써 만족이 되면 문제는 없다. 그런데 닭들이 아프고 병든 몸을 방어하기 위해서 살충제를 뿌리고 다시 이것이 우리 입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닭들의 몸을 치유하기 위한 뿌린 약이 사람을 공격하는 꼴이다. 혹시 어쩌면 인간으로써는 벌어지는 공장식 자본주의 양계산업에 대한 공격이자 닭들의 조용한 자기 저항은 이런 방식으로 해대는 것은 아닐까 의문이 생긴다.

 

공장에서 부화되고 산란된 닭은 어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어미의 날갯짓의 온도를 모른다. 한 번도 만난 적도 없었던 사랑이었으니 직접 알을 만들지도 못한다. 철저히 사육식의 자본적 생산 공장 산업의 생산품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도 가지고 있는 신경 세포로 전달되는 고통이 끊임없이 스트레스로 받은 것은 병적 질환으로 순환한다. 살아 있음의 고통은 차라리 케이지를 벗어나 딱 한번의 외출이 되는 육계 공장으로 가는 동안에만 세상을 마주했고, 다시 공장의 분해 칼날 앞에서 삶은 순식간에 멈출 뿐이다.그 어떤 묵념따위는 없다. 누가 닭의 장례식을 치룬 적이 있었던가?  살아 있을 동안 단 한 번도 흙을 밟아 보지 못해서 본능마저 거세되어 버린 고통의 육체는 또 누군가의 입에서 맛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닭들의 삶을 보며, 과연 우리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끝없이 묻는다. 사실 따지고 보니, 닭들이야 일차적으로 공장식에서 입속으로 끝나는 자본적 순환의 제품이자 소비품이겠지만 우리네 삶도 닭들처럼 자본에 매여 오늘도 사료를 먹고 싸고 일하고 알을 낳듯이 생산을 하고 서비스를 하며 이 속에서 감정을 거세당하고 사는 건 아닐까.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 오늘의 내 삶의 시간이 소비되는 것은 닭이나 나나 뭐가 다를 것인가. 치킨은 닭이었을 뿐이고 나는 돈 앞에 늘 쫄아 있는 노예이었을 뿐이라는, 이 극한 점의 차이점에서 묘하게 서로 공통점이 발견되는 것도 새삼 놀랍지도 않다. 닭은 자기 몸에 들러붙는 진드기의 고통을 받으면서 병든 몸을 만들고 약이 묻은 달걀로 공격하는 걸 보면 난 이 공격할 무기도 없이 내 몸의 죽여서 자학하는 것도 저항의 일종은 아닐까. 혹시 내 몸 어딘가에 암덩어리 하나 자기 모순처럼 살고, 자신이 자기를 죽여 가는 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치킨을 시키고 맥주를 마셔야겠다. 운명이란 거절할 수 없는 초대에 맺어진 우주의 지랄 맞은 욕망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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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08-18 14: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동물 복지로 키우는 곳이 위로를 줍니다만
사실 이 동물 복지란 말도 그렇게 안하는 인간들이 있으니까
나온 방식이고 말 아니겠습니까?
자연은 절대로 침묵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몇 배로 되갚아주죠.
인간들 언제나 철들까 모르겠어요.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죄스러울 다름입니다.ㅠ

yureka01 2017-08-18 14:11   좋아요 2 | URL
물론입니다..자연을 거스른 대가는 반드시 언젠가는 되갚더군요....

하기야 아직도 사람의 복지도 걸음마 수준이니
사람의 생명에 대한 복지는 갈길이 멀었거든요.
하물며 동물 복지는 요원하니까요...

결국은 생명이죠..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훼손될수록,
사람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오늘도 태어난 것에 대한 죄스러움이 가득한 날이네요...

겨울호랑이 2017-08-18 15:3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원하는 것을 ‘양‘껏 저렴하게 먹을 수 있기 위해 우리는 ‘질‘을 포기해 왔다는 생각이 네요. 영양과잉 시대에 살면서 우리 앞에 놓여진 음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yureka01 2017-08-18 16:20   좋아요 2 | URL
먹거리에 있어서 자본적인 편리함에 잃어가는 것들이 많을 거예요...
돈을 벌기위해서 많이 생산하는 과잉의 시대에
생명의 존엄은 필연적으로 대표적으로 잃어 버린 것들이겠지요....
적게 만들고 적게 먹으면,,,굳이 대량생산 방식을 따르지 않아도
가능한게 지구의 자원일 겁니다..

살아 있을 동안만이라도 모래로 목욕하는 그 본능조차
허락받지 못하니..오죽 할까..싶습니다.

그런데 또 포기하고 살기에도 참 버거울 것이고...ㄷㄷㄷ

커피소년 2017-08-19 08:39   좋아요 3 | URL

겨울호랑이님의 댓글을 읽고 닭과 사람의 연관성을 더 찾아보았습니다. 사람 과잉의 시대에 질보다 양을 포기했던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에는 아이들을 많이 낳아서 키웠지만 지금의 아이들이 크는 것처럼 건강이나 교육문제에 있어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거의 방임 비슷한 식으로 키웠었지요. 아이들에 대해서 이런 표현(양과 질)을 쓰는 것은 좀 아니다 싶지만 아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질에 신경 쓸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을 겁니다. 과거에 아이들을 많이 낳아서 키우는 것을 당연시 생각했고 지금과 같은 시대를 생각할 수 없었지만 결국 지금과 같은 시대가 왔으니 또 다시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싶더군요. 한 두 번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문제가 생기고 있으니.. 사육 방식에 있어서 진보가 있지 않으면 안 되지 않을까 싶더군요...

예전에는 사람은 양이였고 닭과 계란 등 가축은 질이였을 겁니다. 상대적으로 희귀했으니까요... 이제는 사람도 질.. 가축도 질... 모두 질적인 방향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떠한 존재의 수가 적어지면 귀해지겠지요... 그 존재가 귀해질 때.. 그 수는 적어지기 마련이니까요... 가축에 대한 복지 또한 질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때 더 발전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댓글은 이렇게 적었지만.. 고기 과잉의 시대에도 고기의 영양소를 포기하지 못 하는 저 자신을 보면서 이 모순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중입니다... 한참 채식을 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채식을 하는데도.. 그렇게 건강이 썩 좋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당한 고기를 섭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서민은 질 좋은 고기를 조금만 섭취할 수 있는 그럴 조건도 안 되고 여유도 없으니.. 난감하더군요... 특히나 고된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은 빠르게 에너지를 회복할 수 있는 고열량의, 고단백질 음식을 먹어줘야 힘을 낼 수 있으니까요.. 사람과 가축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시대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대량 생산 방식은 왜 닭에게 아주 조금의 권리도 줄 수 없는 것인지.. 누군가가 이득을 취하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존재의 불행이 있어야 된다는 것에 대해서.. 부정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두 평등하던 시대는 아주 오래전에 있었거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2017-08-21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08-18 17: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먹는 이 고기에 고통스러운 기억이 남아있는건 아닌가..? 하는

yureka01 2017-08-18 17:43   좋아요 3 | URL
그러고 보면 지구에 식물들만 있어도 참 편안하게 보일런지도..

cyrus 2017-08-18 2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살충제 계란 때문에 생일에 케이크를 못 먹게 됐습니다.. 웃긴 건 케이크 대신에 먹을 수 있는 특식이 치킨.. ㅎㅎㅎ

yureka01 2017-08-18 23:41   좋아요 1 | URL

싱싱한 야채가 그리울 때가 많아요..밭에서 바로 딴 채소요리...
생일때도 야채케익 추천드립니다..

아참 생일도 축하드립니다...~

2017-08-18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9 0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9 0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1 0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옥 2017-08-19 10: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천박한 자본주의의 결과물이죠.
비단 계란 뿐이겠어요.
인간으로 태어난 게 죄다 싶네요 ㅠ.ㅠ

yureka01 2017-08-21 08:41   좋아요 2 | URL
닭들이 갖혀 있는 케이지와
우리네의 환경도 아파트같은 닭장....
비슷하죠..네...맞을 거예요..인간으로 태어난 원죄.

지구는 왜 인간을 허락했을까요....

오거서 2017-08-28 19:56   좋아요 1 | URL
지구는 인간이 이렇게까지 천박해질런지 몰랐을 테지요…

yureka01 2017-08-29 00:32   좋아요 1 | URL
아 그럼 인간은 지구의 미필적 실수였던 것은 아닐까요..^^.

2017-08-20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1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1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2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선계.

선계가 운무 속에서

보이질 않는다.

 

승계.

운문사 사리암에 퍼지는 염송 자락,

승계가 분명하다.

 

속계.

나는 산 아래에서

카메라로 선계와 승계를

바라보는 속물계의 속인.


분노에 차고 지쳐버렸던 저속한 속계에서

불가의 승계를 바라보고

선계의 놓음, 이 가르침을 여쭙게 된다.


오늘, 가물었던 그 동안의 여름을 뒤로하고

종일 내내 비가 내렸다.

문득 비에 푹 젖은 산 내음이

서늘하다는 걸 느꼈다.


비를 흠뻑 맞아도

여기에 오면 이렇게 편안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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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4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4 2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4 2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4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4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4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4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4 23: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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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4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4 23: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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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5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5 0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7-08-15 04: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기 집이 보이네요. 사찰이겠지요?

yureka01 2017-08-15 08:14   좋아요 1 | URL
네 청도 운문사 사리암이랍니다.산 꼭지 바로 아래 암자...사진 자세히 보셨네요.^^.

겨울호랑이 2017-08-15 1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산안개가 멋지네요. 저는 여름하면 ‘삼계‘탕이 생각이 나는데..ㅋ 역시 유레카님과 수준 차이가 나는 것을 느낍니다.^^:

yureka01 2017-08-15 20:04   좋아요 2 | URL
비오는 날이라 운무가 더 짙게 깔려 내려 오더군요....아 삼시세계 ㅎㅎㅎㅎ

우민(愚民)ngs01 2017-08-15 1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멋진 사진 덕분에 눈이 호강하고 갑니다...^^

yureka01 2017-08-15 20:04   좋아요 1 | URL
매일 보고 싶었습니다.....^^..

강옥 2017-08-15 19: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호거산이라고도 불렀다는 운문산.
요즘 비가 자주 와서 이름값 제대로 하겠는데요.
울산 근교 최고의 단풍 명소로 손꼽히는 산자락에 깃든 사리암.
새벽에 올라가면 나반존자 나반존자 끊임없이 염불하는 소리 들리지요.

여기 오면 이렇게 편안한데- 편안은 너무나 잠깐이지요?

yureka01 2017-08-15 20:06   좋아요 2 | URL
산행 시작부터 내려와서 떠날때까지 나반존자라는 독송이 끝까지 들렸습니다.
사리암이 소원하나는 들어 준다는 영험함이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는데요..
아무 소원도 빌지 않고 백팔배만 했습니다.

네 너무 짧은 편안함...ㅎㅎㅎㅎ백퍼센트입니다..~
 

 

 

우리 부모 세대 50년대 60년대만 해도 굶주림이 있었죠. 초근 목피, 즉 풀뿌리나 나무의 껍질을 파먹고 뜯어 먹던 조선시대의 보릿고개라는 소리 가끔 들었거든요, 그 시대에는 절대적인 가난의 문제였을 테고 오늘날의 기근은 우주선이 달나라 가는 때에도 여전한 이유를 이 책에서는 말해주고 있더군요. 지구가 생산해 내는 식량은 자원 배분의 문제였던 거죠. 어디에서는 과잉의 음식으로 다이어트가 종교처럼 행하는 시대인데 또 한편으로는 어디에서 하루하루 연명이 목숨의 부지하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모순적이 세계인 거죠.

 

인간이 유토피아를 상상하고 근접하려는 노력은, 어차피 유토피아는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일종의 불가능함 때문에 상상을 하게 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다 알죠. 이 문제의 답도 따라서 다 압니다. 그러나 행동할 수 없거든요. 무관심과 외면으로 고통은 각자가 짊진 자들의 고통일 뿐이죠. 앞으로 그 어떤 예수가 나온다 하더라도 천국은 오지 않고 우리 스스로가 만들 수 없다는 것. 너무 비관적 낙관인가요? 하기야 역사적으로도 인간은 단 한 번도 상상하던 천국같은 세상을 경험해 본 적은 없었습니다. 앞으로도 상상으로만 남을 테니까요. 그렇죠. 마음은 유토피아의 세상을 갈구하며 바라보려 하지만 현실은 늘 디스토피아로 발걸음을 자기도 모르게 옮기고 있다죠. 기아의 원인이 단순히 농사를 제대로 못해서가 결코 아니었던 까닭을 생각해보면, 전쟁, 부의 분배 불균형, 자원의 편중과 법과 제도의 운용의 편차, 민족 간, 또는 종교 간의 갈등 등등 무수한 이유들이 이 책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기아의 문제는 인류가 당면한 모든 문제의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책은 왜 철저히 누구에게는 천국이지만 누구에게는 지옥인지를 굶주림의 현상을 통해서 전체적인 구조적 문제를 조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굶주림의 해결에 대한 대책은 마땅히 나오지 않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지 않거든요. 민족에 따라, 지역에 따라 국가에 따라 다 입장이 다르고 환경이 다르니 생각도 같을 수가 없죠. 우리가 여기에서 먼 나라의 국민들이 굶주림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은 없거든요. 근본적인 해결은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이 인간적인 한계를 극복하기는 요원해 보이기도 합니다. 어느 책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요. 인간이 전쟁이 시작된 원인이 곡식을 저장하기 시작할 때부터라고 하더군요. 채취하고 당일날에 다 소비시키면 전쟁은 없었다는 추론이었어요. 빼앗기 위한 전챙과 이로 인해서 침략과 방어가 나왔을 것이고 이기기 위해서 무기를 만들고 새로운 무기를 찾고 개량하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이기 때문이죠.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결국 인간이 가진 자원의 불균형은 평균을 이루기 거의 불가능하다는 뜻도 됩니다.

 

결론적으로 굶주림의 문제는 나아가면 절대적 빈곤의 문제죠. 자원이 아무리 많아도 분배의 불균형, 분배가 차단당해 있다면 무용지물이고 자원이 특정 소수의 집단이나 개인으로 들어가서 문제거든요. 독점하게 될 때 발생하는 것이 역시 빈곤이거나 마찬가지죠. 누군가에게는 자원을 얻을 권리가 있고 없고의 차이. 이것이 지구가 결코 유토피아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PS : 리뷰도 좀 짧게 써야 겠습니다. 너무 길게 쓰다보면 읽기에 부담스러워질까 싶어서요.

 

다음 사진은 재미삼에 찍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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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8-09 16: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기아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은 많은데 이것을 현실적으로 적용하기가 힘든 게 문제입니다. 곡식을 저장해도 더 모으고 싶은 욕심에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 즉 전쟁을 반복합니다. ^^

yureka01 2017-08-09 16:38   좋아요 2 | URL
어느 쪽에 넘치는 곡물을 나누면 간단하죠...
문제는 분배가 거의 불가능거든요...

맞습니다.
욕심은 끝이 없으니.행하기 어려울 따름이죠..

겨울호랑이 2017-08-09 18: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현대의 기아문제가 분배 문제라는 유레카님 말씀에 매우 공감합니다. 한편에서는 남아도는 옥수수를 처리못해 원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자동차 원료로 만드려 했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yureka01 2017-08-09 23:14   좋아요 2 | URL
네 심각한 불균형....어딘가는 남아 돌아 버릴 지언정 나눌 수가 없는 경제적 체제가 때론 원망스럽죠..
남아서 버리느니 나누는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봐요...

가넷 2017-08-09 19: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집착을 놓기는 너무 어렵나 봅니다. 저자는 몇번 테러의 위험도 있었다고 들었던 것 같네요. 저자가 하는 이야기가 누군가에는 불편하다 못해 절대 밝혀져서는 안될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네요.

yureka01 2017-08-09 23:12   좋아요 2 | URL
아마도 그럴 거예요.불편한 진실을 퍼트리는 자를 막겠다는 것.이게 주범일지도 몰라요..

2017-08-09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9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0 0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0 0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0 21: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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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0 2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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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0 22: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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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0 23: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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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옥 2017-08-11 07: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흔히 하는 말로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잖아요.
자본주의는 부의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밖에 없는 구조지만
공산주의라고 해서 굶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겠죠.

지구에 인간이 너무 많아요. 포화상태라 조물주도 고민하고 계실 거예요.
8월전쟁설이 난무하던데 동아시아부터 정리에 들어가는??? ㅎㄷㄷ

yureka01 2017-08-11 08:24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자본의 불균형..불공정성.편파성...현실은 늘 디스토피아...

8월 전쟁설은 뭔가요..ㄷㄷㄷㄷㄷ

뭔 이젠 무기가 워낙 발달 되어서 전쟁나면 피아구별없이 피해가 복구불능하게 막심할 겁니다....

서니데이 2017-08-11 17: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아침부터 안전안내문자가 폭염주의보라고 하면서 더울거라고 했어요.^^
그래도 더위에 익숙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는 사이에 잘 모르고 있다가 더위가 지나갈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오늘 말복이라고 합니다. 맛있는 저녁 드시고, 여름 건강하게 잘 보내세요.^^

yureka01 2017-08-12 00:49   좋아요 2 | URL
아 예상대로 오늘 저녁은 선선하더라구요.벌써 가을의 길로 문턱을 넘으려나 봅니다..
말복이 그냥 말복이 아니었나 봅니다...
입추~~~~가을의 초입에 들어 섰으니까요.

휴일 열공시간 되시구요....파이~~팅입니다...

2017-08-13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4 2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