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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100만부 돌파 기념 양장 특별판)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책 읽기에 대한 소고.
요즘 책을 거의 읽지를 못 합니다. 읽어야 할 책이 쌓였습니다. 북플에 읽는 중이라고 등록해 놓은 책들이 그대로 멈춘 책들이 태반인데도 계속 책을 사곤 합니다. 이웃분들이 간간이 보내주는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이 나를 좀 봐달라고 가끔은 하소연도 합니다. 내내 읽고자 쌓아 놓은 책 다 읽고 나서 책 사자라고 생각하지만 번번이 핑계를 댑니다. 사놓고 나면 언젠가는 읽겠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과욕을 부립니다. 책 욕심은 끝이 없나 봅니다. 책에 대한 읽지 못한, 이 부채감은 점점 압박이 심해갑니다.
그러나 왜 책을 쌓아 놓고 읽지 못할까요? 마음 같아서는 시집은 몇 페이지도 되지 않는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한 권 읽기가 주저되기도 합니다. 이는 사회적인 병리 현상에 대한 허탈증이 생긴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남들이 뭐라 하던 독야청청 책만 읽을 수 없나 봅니다. 우리가 밝을 딛고 있는 이곳이 공정성이 무너지고 편법과 탈법과 불법이 만연해지는 불안정성이 높아갈 때 보통 이런 심리적인 무력감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한마디로 집단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셈이죠. 흔히 이것을 새로운 신조어로 순실증이라고 하더군요. 일견 이해되는 부분입니다. 어느 책에서도 부정을 저지르라고 설명한 곳이 없거든요. 세상은 역시 책대로 되지는 않는가 봅니다. 그래서 책의 효용성에 실망하는 경우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아무리 공부하고 노력해도 부정으로 탈락된 그 학생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오는 게 정상입니다. 모종의 입김으로 성적이 안되는 학생이 입학하고 성적이 좋은 학생이 오히려 낙방해서 떨어집니다. 심지어 학교 과제물도, 학교에서 시험 보는 것도 각종 편리를 봐주고 놀아나고 밤을 새워 공부한 학생을 뒤쳐지는 사태를 학생들은 수긍하기가 도저히 어렵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열심히 노력한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가혹한 인간적인 학대와 폭력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진급하고 승승장구하고 열심히 일하며 바르게 성실히 일했던 공무원은 권력자에게 순치 당하여 쫓겨나거나 한직으로 밀려나고 부정한 방법의 지시를 충실히 따랐던 사람은 승승장구합니다. 처음 일을 하면서 표상으로 삼았던 바르고 성실했던 상관이 고위직에 올라갈수록 권력의 명령에 순치되어 결국은 두 손에 쇠고랑 차는 것을 보고 과연 나는 이곳에서 앞으로 열심히 일해서 승진하고서 고위직에 올라가서 부당한 명령에 거역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했다가 쇠고랑 차고 그 책임을 자신이 떠안고 철창 안으로 밀어 넣어져야 할 것인지, 이게 보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러려고 공무원 되었나?라는 자괴감은 어느 순간 치를 떨게 만듭니다.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자신들의 자부심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권력의 시녀들이 하는 짓과 같이 시키는 대로 따라 했다가 뒤집어쓰고 피고인의 옷을 입고 수갑을 차서 법정에 있어야 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나름대로의 자긍심이 산산이 부서지는 자기모멸감을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요.
대기업의 말단 직원들에게는 경비 아끼자고 직원들을 일상적으로 조르지만 권력자 몇 마디에 직원들은 평생 모아도 안되는 돈을 헌납하듯 징수당하고야 맙니다. 누가 번 돈인데 왜 직원들도 분명히 일조를 했고 그렇게 번 돈인데 번 사람 따로 있고 처먹는 놈 따로 있더란 말입니다. 오히려 복지는 줄이고 줄인 경비로 누군가에게 돌아가는 불편한 짓들. 이런 불공정한 일이 자꾸 반복되고 이어지다 보면 아무리 쎄빠지게 일해도 허탈감과 박탈감은 비례적으로 증폭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누가 열심히 일할 맛이 나겠습니까?
우리는 세월호 때를 똑똑히 겪었습니다. 위기의 절체 절명의 순간에는 국가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접 목도했던 것입니다. 내가 위기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동안 세금 냈던 일들이 소용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위기관리 시스템은 무력화되어 있었고 매뉴얼조차 변변찮았음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대규모의 전염병이 창궐할 때 공공 방역체계도 속수무책 임도 알았습니다. 전염병으로부터 가족조차 지켜 줄 수 없었다는 위기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하다못해 일개 회사의 제품이 생명에 치명적인 독극물을 감춘 채 팔릴 때도 국가의 성능 검사가 제품 안전에 대한 보장이 되지 않고 이에 보상은 터무니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죽어간 사람들이 몇인지 그 가족들은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겠습니까?
개인적으로 모 연예인의 말 중에 우스께 소리로도 가장 듣기 싫은 말이 하나 있었습니다. "나만 아니면 돼". 얼마나 독단적입니까. 위기의 순간에서 나만 아니면 되는 식의 생각은 결국 나를 죽이게 된다는 사실이 극명하게 오버랩되기 때문이거든요. 내가 이곳에 살아가는 이상, 도저히 혼자는 못 삽니다. 도로를 달리는 차 속에서 어떤 위험이 불시에 닥칠지, 어디 여행을 가다가 어떻게 비행기가 추락할지 모를 일입니다. 심지어 지난 번 경주에 지진이 났을 때 모두 집이 무너질까 흔들리는 가운데 운동장에 나와 그저 손만 붙들고 부들부들 떨어야만 하는 천재지변의 일들에서 어떤 게 나만 아니면 되는지 정녕코 모를 일이며 이해가 안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압니다. 결국 이곳은 나만 아니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서로가 서로를 외면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터득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다치고 죽고 아파하는 것은 결국 너 혼자의 사정일 뿐이라는 것의 결집된 결과가 이 사회를 이루는 주축이라는 사고방식이었던 셈입니다. 혼자 잘 살면 다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우리가 안고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자, 각자가 살길이나 찾아야 하는 각자도생의 시대가 우리 사회의 민낯임을 들어 냈던 것입니다.
이러다가 집단 허탈감과 사회적 무력감에 빠져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하고 의기소침해질수록 삶의 흥과 신명이 달아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산을 오르다가 조난을 당했어도 희망이 정신을 차리게 하고 위기를 헤쳐 나갈 힘을 얻고 절망감과 체념이 의지를 꺾고 죽게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전체가 체념이 되어 내면화되어 가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까지 합니다.
아파 본 사람의 상처에서 아물어도 흉터는 남습니다. 그 흉터의 표식이 또 누군가 아픈 사람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거든요. 나도 아파 봤어. 그러니 너도 많이 아프지?라는 이 단순하고도 간결하고도 절대적인 이심전심의 논리에서 나만 아니면 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이런 위안과 위로의 이야기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고 그 감정의 공감력이 생길 수 있지나 않을까 싶습니다. 무력감에 저항하고 일상의 사사로운 감정의 동화됨에 따라 삶의 의지로 다시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이 온통 타락하고 지옥 같아도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고 멸종할 것도 아니라면 우리들 스스로가 촛불을 들듯이 책의 등불을 밝혀야 하고 앞으로도 잔잔한 감흥이 돋는 그런 이야기들이 꾸준히 나와야 할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아마 그렇지 못하고 끝내 좌절로 점철될 것 같으면 지금 당장에 혀 깨물고 죽어도 하등에 이상할 것도 없으니까요.
이 책의 제목이 "언어의 온도"였더군요. 한마디 말에도 체온의 온기를 느끼는 말들이 우리가 사는 사회를 좀 더 따스하게 품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훈훈하게 살아갈 수 있을는지요.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느낌. 인생의 생기가 돋아는 것을 느끼고 이 무력감을 물리치는 힘이 생기게 되니까요. 촛불 들듯이 파이팅 해야겠습니다.
Ps : 워낙 책이 안 읽혀져서 딸아이에게 읽어 달라했습니다.
글씨가 눈에 안들어 오니 대신에 읽게 했던 것이죠.
잘 읽어 주더군요.
그렇기 때문에 딸아이도 같이 읽게 된 셈입니다.
이 책도 마음의 선물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