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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전의 밤에
미나모토 다카시 지음, 정윤아 옮김 / 문학수첩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북미 방공 사령부, NORAD는 (핵폭탄을 직격으로 맞아도 안전한) 록키 산맥 아래에 기지를 마련하고 미국과 캐나다, 궁극적으로는 전 지구의 하늘을 감시하는 눈이자 두뇌이다.
이런 그들은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50년에 걸쳐 쌓아올린 능력을 총동원해 매우 특별한 표적을 추적한다. 루돌프와 산타를. 그리하여 그것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는데,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웃어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날, 수명이 다 된 인공위성 하나가 추락한다.
원래대로라면 아무도 없는 빈 바다에 떨어졌을 그 위성은 ‘산타의 비행경로를 따라 날던 무언가’와 충돌,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어 이야기의 무대인 일본 - 그것도 도쿄의 주요 배전설비 하나를 직격으로 때려버리고야 말았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어울리지 않는 완전한 암흑.
그리고 평온.
어둠 속에서의 혼란도, 범죄도, 폭동도, 심지어는 정부의 부패나 무능도, 존재조차 감추어진 인공위성의 정체도, 그것과 부딪힌 코드네임 SANTA의 실체도 그 무엇도 신경쓰지 않고,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당황하고 속삭이고 고백하고 마주보고 슬퍼하고 화내고 사과하고 후회하고 기뻐한다.
빛이라는 이름의 두꺼운 가면을 벗겨낸 어둠 속에는 그런 것이 있었다.
인간은 어머니의 자궁 안이라는 ‘어둠’에서부터 빛을 향해 추방되었다는 시적인 해석이 있다. 평온하고 지극한 어둠. 귓가를 울리는 어머니의 심장 소리, 그 무엇조차 두려워할 필요 없는 따스한 평화 속에서 느닷없이 눈과 코와 귀와 피부를 찌르는 ‘빛’ 속으로 내팽개쳐진 나머지 두려움에 울어버리고 만 인간은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헤메이며 나라를 만들고 문명을 만들고 예술을 만들고 부를 만들고 수없이 많은 빛을 만들고 마침내 죽어 어둠으로 되돌아가는 그 순간에야 자신이 찾던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는,
두려우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대정전의 밤에], 빛의 장막을 걷어버리고 인간과 인간이 나누는 이 이야기는, 너무나 아름답다.
인간이 어둠을 되찾았을 뿐 아니라 그 안에 아주 작은 빛을 다시 만들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