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뒤에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가 뼈빠지게 일한 돈으로 놀고먹는 방탕아'가 그 100일을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이야기. 이야기 자체는 통속적이지만 통속적임을 잘 그려내고 있다는 사실이 좋다. 이야기의 중심은 '죽는 남자'이지만 그와 함께 그에게 이어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섞어내고 있는 감정표현 및 전개방식이 매력적이고, 여운을 남기는 마무리가 참 좋았다. 이 책 덕분에 다른 웹툰들도 보게 됐으니, 고마운 일이다. "하늘이 참 맑구나..."
판타지라는 이름답게 오히려 익숙치 못한 전승이나 신화 쪽에 주목한 판타지 라이브러리와는 달리, 이 책은 초기 성경시대 이후 기독교에서 지속해온 '악의 인격화'를 주제로 삼고 있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 아닌 존재를 이해할 수 없고, 때문이 신도 악마도 선도 악도 인격화를 시도해 왔다. 악마의 상징성을 나타낸 도판자료를 중심으로 하는 이 책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는 서구 문명의 특징상 어찌보면 예술사에 드러난 인간의 악의를 한데 모은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흔히 사용하는 악마의 대명사가 어디서 만들어져 어떻게 형상화되었는가, 그것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아니다. 국립전주박물관장인 저자가 저통미술을 주제로 내놓은 산문집인데, 각종 특강이나 잡지 원고 등을 토대로 쓴 것이라 이야기 전체가 유기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느낌이지만 어차피 신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7천년 미술사를 한방에 해결하고 있는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아니, 반대로 특강 형식으로 시간이 끊어져 있다는 것이 더 읽기에 도움이 되는 듯한 느낌도 있다. 한국 미술사의 전반을 한꺼번에 살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며, 깊이가 없지는 않지만 쉽고 간단하게 쓴 글이어서 교양으로 적합한 책이라고 할 것이다.
공대생 주제에 이제와서 철학과목에 취미를 붙이는 바람에 나온지 10년이나 된 매트릭스를 처음부터 다시 보고 있다보니(DVD... 왜 이렇게 비싼 겁니까) 영화로 철학하기는 참 재미있는 취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쉽게 구할 수 있는 영화철학 관련 작품들은 대부분 한 사람이 여러가지 작품에 대해 쓴 것이 일반적인지라, 영화는 다양하다고 해도 결국 그 영화를 보고 생각하는 것은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같은 주제, 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아 별로 안 좋아한다. 매트릭스 이후로는 하나의 작품에 대해 여러 사람이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서로의 철학적 사고에 대해 논쟁을 하는 책들도 조금씩 나오고 있지만 그다지 흔하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진경의 필로시네마는 그런 측면에서 꽤 재미있다. 한 사람이 쓰고 있다는 사고방식의 동일성이야 벗어날 수 없지만, 작품에 따라 주제를 잘 바꿔가는 실력은 주목할 만 하다.
이런 식으로 14를 만들다니, 역시 최근 일본 순정만화계에 빛나는 SM커플답다(농담이 아니다) 하고싶은 말은 무지 많지만 포기. 절름발이가 귀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