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시대 - 공감 본능은 어떻게 작동하고 무엇을 위해 진화하는가
프란스 드 발 지음, 최재천.안재하 옮김 / 김영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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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공감능력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 <공감의 시대>는 재미있다. 하지만 그 재미만큼 빠르게 책장을 넘길 수는 없는 책이다. 저자가 한 글자 한 글자에 정성을 가득 담아 꾹꾹 눌러 적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만큼 <공감의 시대>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공감이 인간만이 가지는 능력이 아님을, 수많은 사례를 통해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 주지만 그 예시만큼이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흥미롭게 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동물들의 행동 연구를 통해 인간을 보다 더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공감의 시대>는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더 넓혀준다.


세계적인 동물행동학자이자 영장류학자인 프란스 드 발은 <공감의 시대>를 통해 경쟁이 미덕이라고 여기는 탐욕의 시대가 가고 공감의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 공감이라는 능력이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는 편견을 깨뜨리고 왜 우리에게 공감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은 경쟁만으로 살 수 없으며 또한 서로에게 무관심해도 생존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인류의 긴 역사가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은 분명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그동안 잊고 살아온 그것, 인류 진화의 긴 역사가 증거가 되는 그것을 공감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동안 공감이 아닌 경쟁이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서 살아왔다. <공감의 시대>는 인류 진화 정신이 남을 짓밟고 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와주며 이해하고 협동하는데 있다는 사실을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와 동물들의 공감 사례를 통해서 보여준다.


인간의 본성이 사회적 학습을 통해 어떻게 변화되는지, 유인원과 동물들의 공감 능력, 인간 사회에서 나타나는 공감의 부재에 관한 여러 사례들은 다윈이나 동물행동학, 진화심리학 등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도 공감하며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고 흥미롭다.

"우리가 아무리 도시에 살고 자동차와 컴퓨터에 들러싸여 있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근본적으로 똑같은 심리적 욕구와 욕망을 갖고 있는 동물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만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바깥을 바라본다. 자신은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다른 사람들은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잊고 있다. 인간은 절대적으로 지독히 집단적인 존재이며 수많은 세대를 지나왔어도 본능은 변하지 않았음을 <공감의 시대>를 읽기 전에 그 사실을 먼저 인식하고 시작하길 바란다. 최첨단의 시대를 살아가지만 우리는 여전히 동물이다.

<공감의 시대>는 총 7장으로 나눠져 있는데 나는 처음부터 순서대로가 아니라 흥미로운 이야기부터 먼저 읽었다. 만약에 이 책이 조금 어렵게 느껴진다면 각 장 안에 다시 나눠진 작은 소주제를 기준으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각각의 이야기는 인간과 동물, 진화에 대해 들려주는 짧은 칼럼과 같다.

"침팬지가 다른 원숭이나 동족을 죽이고 사냥해서 먹는다면 그들이 어떻게 공감이 있다고 할 수 있나?" 가장 놀라운 것은 이 질문을 우리 종에게는 물어본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는 공감하는 종으로서 가장 먼저 실격이다.


유인원들에게 나타나는 이타주의와 동정심의 증거들, 다른 동물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인간처럼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 동물들도 같이 일할 동료를 까다롭게 고른다는 등 <공감의 시대>를 통해 유인원과 동물들의 행동과 공감능력에 대한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공감의 시대> 인간뿐만이 아니라 유인원과 동물들도 공감하는 존재라는 사실만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인류가 발전을 거듭하면서 잊고 있었던 공감이 다시 필요한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공감은 그동안 급격히 변하는 사회와 사람들이 원하는 가치관에 묻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수많은 공감을 통해 함께 울고 웃으며 변화를 만들어왔다. 공감이 어떤 사회를 만들어 주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공감이 필요한지 모르겠다면 인간의 본성과 동물행동, 진화를 통한 공감의 필요성을 들려주는 <공감의 시대>를 통해 정확한 시각을 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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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 문학상 제정 작가 10인 작품선 대한민국 스토리DNA 15
김동인 외 지음 / 새움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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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한국 단편소설을 읽었다. 작년 한창 필사에 빠져 있을 때 읽었던 '무진기행'을 제외하고 나머지 단편 소설들은 아마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처음 읽어보는게 아닐까. 내게 1970년 이전의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근대 단편소설은 국어 시험에 나오는 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열심히 밑줄을 긋고 문맥의 의미를 따라가기 급급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도 한국 단편소설은 고리타분하고 읽기에 힘들며, 펜을 들고 집중해서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장르가 되었다. 당연히 찾아서 읽어보지 않았다.


<무진기행>을 통해 다시 읽어 본 한국 단편소설들은 내가 알던 그 이야기들이 아니었다. 국어를 꽤 좋아해서 열심히 읽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던 건가? 나는 어떤 소설을 읽고 시험을 쳤던 걸까. 아마 학창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게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 꽤 오랜만에 읽어 본 한국 근대의 단편소설들은 너무 재미있었다. 분명 교과서와 고등학생이 읽어야 할 한국단편소설집에서 읽었던 이야기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투리와 낯선 용어들, 감정 투성이였는데 새움에서 출판된 <무진기행>을 통해 다시 접한 많은 단편소설들은 가슴 아프고 슬펐다.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작품을 만나보는 대한민국 스토리 DNA 시리즈의 15번째로 출간된 <무진기행>은 한국 대표 문학상의 시작점이 된 작가 10인의 작품들을 엮은 책이다. 작가별로 1~2편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에는 학창시절에 읽어본 책도 있지만 이번 <무진기행>을 통해 처음 만난 작가와 이야기도 있었다. 한국 단편소설의 깊은 맛과 의미를 다시 느껴보고 싶은데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무진기행>에 수록된 한국문학상 10인의 작품들을 먼저 읽어보길 권한다.


읽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다. 좋은 이야기는 시대에 상관없다는 말도 있지만 지금과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각과 고뇌가 그때의 감성으로 담겨있는 이야기가 막힘없이 술술 읽힐 수는 없다. 다시 읽어봐도 애매모호한 이야기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은 작가가 전해주고자 하는 의미를 일번, 이번 번호를 매겨가며 줄쳐 읽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10명의 작가들 중 누구를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학창시절에 재미있게 읽었던 작가의 작품부터 보며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려봐도 좋고 <무진기행>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작가의 작품부터 읽어도 좋다.


10명의 작가들의 작품 모두 재미있지만 나는 그 중에서 김동인의 소설들이 가장 좋았다. 특히 '광염 소나타'는 읽은 듯, 처음인 듯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점점 변해가는 천재 광인의 모습을 자극적인 묘사없이 표현하는 것과 예술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눈감아 줄 수 있다는 또 다른 의미의 광인의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상은 여전히 어느 정도쯤 아리송했고 신춘문예 최초의 여성작가인 백신애와 이무영의 글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야기였다. 작가들의 소설 마무리에는 각 문학상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와 작가의 약력, 누가 1회 수상자인지 등에 대해 알아가는 즐거움도 더해져 있다. 


<무진기행>을 읽으며 예능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교과서에 싣는 것을 반대했다던 이유가 문득 생각났다. '단편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도록 쓴 작품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한두 단락만을 잘라서 답을 찾게 한다. 문학은 자기만의 답을 찾기 위해서 보는 거지 작가가 숨겨놓은 주제를 찾는 보물찾기가 아니다.' 김영하 작가의 말처럼 나에게 한국 단편소설은 단락으로 기억되었고, 문제와 답이라는 단 두단어로만 각인되어 있었나 보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한 후에 수많은 책을 찾아 읽으면서도 단 한번도 교과서에 실렸던 그 이야기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까.


<무진기행>을 읽으며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여전히 학교에서는 한국 단편소설들은 몇 단락만으로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있으며 그들 역시 나처럼 이 이야기들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단지 해석해야만 하는 존재로만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의 재미를 발견해서 기분좋았던 <무진기행> 읽기는 동시에 왜 이런 재미를 늦게야 발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아쉬움으로 마무리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한국 단편소설의 반전 재미가 궁금하다면 <무진기행:문학상 제정 작가 10인 작품선>부터 시작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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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 박상 본격 뮤직 에쎄-이 슬로북 Slow Book 2
박상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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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제목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특히 더 재미있었고 인상깊었던 책의 경우에는 몇 일을 제목만 곰곰히 생각한 적도 있다. 꼭 글을 읽지 않더라도 어떤 책인지 느낄 수 있도록 -아무도 모르겠지만- 나름 제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에 작가정신에서 나온 박상 작가의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을 읽으며 적어보고 싶은 제목이 떠올랐다. 하지만 막상 쓰고 보니 왠지 너무 성의없어 보이는 것 같아 얼른 지워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 내가 쓰고 싶었던 제목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와 함께 한 웃음을 제목을 통해 알려주고 싶었다. 박상 작가 특유의 병맛 유머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오랜만에 온 몸에 힘을 빼고 편하게 읽은 책이었다.

왠지 몰랑몰랑한 음악에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가 가득할 것만 같지만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제목과 전혀 다른 음악과 이야기가 가득한 책이다. '모쪼록 달콤한 사랑이 쩍쩍 달라붙는 날들 되시길'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그의 말과 달리 지금 당장 저렴한 항공권을 검색해 카드로 긁은 후 훌쩍 떠나고 싶게 만든다. 이 책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사랑은 없다. 여행과 일상, 그리고 그 곳이 어디든 자신만의 세계로 만들어 버리는 그가 사랑하는 음악이 있을 뿐이다.


본격뮤직 에쎄-이 라는 부제에 어울리게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하나의 CD처럼 구성되어 있다. 이 CD 안에는 하루종일 들어도 절대 지루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음악이 들어있는데 SIDE A에는 세계 곳곳을 여행다니며 겪었던 에피소드와 그 순간을 함께 했던 음악들을 소개해 준다. SIDE B 에서는 저자의 일상과 추억이 담겨 있는 음악과 이야기가 들어 있으며 꽤 멋진 보너스 트랙도 함께 한다.

책을 소개해주는 책을 좋아한다. 같은 책을 다른 느낌으로 읽은 글도 좋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숨은 보석같은 책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나에게 그런 책이다. 각각의 음악이 저자에게 어떤 추억으로 기억되는지를 함께 돌아보는 것도 좋았고 다양하고 멋진 음악을 선물로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덧붙여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것 같은 저자의 이야기인데도 곳곳에서 의외로 비슷한 부분이 많이 발견되어 더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다.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즐거움을 누리고 온 이비자에서 들었던 'Get Lucky'는 현실로 돌아온 후 생의 초라함과 울적함을 튕겨낼 카드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인생을 살면서 이만한 약을 갖고 산다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는 저자의 말을 들으며 나에게 일상의 피로를 날려버릴 음악과 추억이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봤다.


어째서인지 가방에 여권이 들어있었다거나 항공권이 의외로 무척 저렴해서라는 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에는 저자가 훌쩍 떠난 많은 나라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뮤직 에세이답게 음악에 집중해서 책을 읽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게 이 책은 음악보다는 음악 소개를 가장한 본격 여행 뽐뿌 에세이로 다가왔다.

버스 두 대는 나를 사이에 두고 부르릉 지나갔고, 인간이란 얼마나 고독한 존재인가, 그 순간 생각했다. 마침내 나는 오토바이 다섯 대와 롤스로이스 한 대를 더 피한 뒤 건너편 육지에 상륙했다. 건너고 보니 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으며, <걱정 말아요 그대>의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부분을 종교의 기도문처럼 반복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읽을수록 사람을 긴장시키는 책이 있고 처음에 가졌던 기대가 무너져 뒤로 갈수록 설렁 설렁 읽게 되는 책도 있다.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음악이 스며들어있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점점 그의 병맛스러운 유머에 반응하게 되고 키득거리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자꾸 뭔가를 가르치고 이해시키려는 책들에 지쳤다면 박상이 알려주는 음악을 들으며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치고 들어오는 저자만의 재치가 가득한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이 그런 피로감을 해소시켜 줄 것이다.


뒷장이 궁금해 덮을 수 없는 소설처럼 고생스러웠던 여행 에피소드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특별한 순간들이 궁금해 주말 오전 잠시 읽으려고 집어든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을 결국엔 끝까지 단숨에 읽어버렸다. 재미있는 책 한권 뚝딱 읽은 것도 좋지만 조금씩 아껴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모두 모두 하루에 백 번씩 즐거운 농담이 생각나길 빕니다' 라고 책을 끝내는 문장처럼 지친 일상과 우울한 영혼을 그의 장난같은 농담과 순간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음악으로 깨우기 위해 사무실 책상 한 켠에 꽂아둘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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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
오가와 사야카 지음, 이지수 옮김 / 더난출판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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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에는 세계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는 의미의 '문화상대주의'라는 용어가 있다. 인류학에서 다루는 수많은 정의 중 가장 좋아하는 단어이다. 너와 나는 다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끼리 다른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오며 쌓아온 문명과 문화를 나의 시각으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꽤 좁은 시야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오래 살았든, 남들이 해보지 못했던 많은 경험을 했든, 수많은 철학자들의 이론을 다 공부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딱 그만큼의 시각 안에서 판단할 뿐이다. 그래서 누구든 상대방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내가 보는 세계가 모든 것이 아님을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는 그렇게 읽어야 한다.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라는 제목만 두고 봤을때는 매일 출근, 지옥같은 회사 생활에 지친 우리들에게 과감히 사표를 던질 용기를 담고 있을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은 책을 읽을수록 보기좋게 날아가 버렸다. 이 책은 '자, 직장생활이 힘들지? 적게 벌고, 하루 벌어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줄께.'를 말하는 책이 아니었다.


세상에는 많은 나라가 있고 그 중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인류학자인 저자가 직접 현지 사람들과 살고 체험하고 느낀 점들을 탄자니아로, 중국으로 가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들려준다. 인류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서는 안 될 책임에는 틀림없다. 앞으로 일을 계속해야 할지, 말지에 대한 답은 없다. 다만 스스로 해답을 구할 수 있는 시야를 넓여주는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나라는 남아프리카의 탄자니아와 중국, 홍콩에서 아프리카 상인들과 관련된 지역이다. 주류 경제가 무시할 수 없는 비공식 경제가 이끌어 가는 그 곳의 일과 삶은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걸까' 라는 의문이 들만큼 척박하고 무질서한 탄자니아에서 그들은 과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 책은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삶을 둘러싼 가치, 실천, 인간관계, 그 연속선상에서 나타나는 사회 및 경제의 양상을 밝힘으로써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미래 우위, 기술과 지식의 축척에 근거한 생산주의적이고 발전주의적 인간관에 질문을 던지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문화인류학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의 방식과 그것을 지탱하는 지혜, 사회구조, 인간관계를 밝히는 학문이다.


탄자니아 도시민은 '일은 일'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고 한다. 살아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을 구하고 일의 높고 낮음에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만 생각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무계획적인 삶을 듣고 있다보면 어이가 없을 때도 있지만 그 역시도 내가 살아온 사회를 기준으로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저자 역시 이야기한다. 우리에게는 삶의 목표와 직업적 정체성 없이 부유하고 표류하는 그들의 삶이 불안해 보일수도 있지만 영세 자영업을 전전하는 그 사람들이 그 곳에서는 사회 경제의 주류이다. 일의 질이 삶을 특정하고 개인을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그들의 삶에 열등감을 느끼거나 멋지다고 떠벌릴 필요가 없다.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를 읽으며 탄자니아와 홍콩, 중국 등의 비공식 경제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사람들의 돈에 대한 생각과 왜 중국에서 모조품과 복제품이 사라지지 않고 시장이 점점 더 넓어지는지에 대한 이유는 무척 흥미로웠다. SNS 와 송금시스템의 등장으로 돈과 경제가 바뀌고 변화에 대한 실제 사례들을 보며 앞으로 탄자니아의 상인들과 세계의 비공식 경제가 어떻게 변화할 지 궁금해 졌다.


오늘에 충실해 돈과 시간을 바꾸지 않는 그들의 삶이 옳다고 하지 않는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고 일하는 우리가 틀렸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자본주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세계 곳곳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개인과 사회의 복잡한 실타래 속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내가 속한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를 통해 다른 나라, 그 곳 사람들이 일하는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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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한 - 북아일랜드 캠프힐에서 보낸 아날로그 라이프 365일
송은정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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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떠나면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몇 개월이라도 한국을 떠났다가 돌아오면 그 전과는 전혀 다른 내가 되어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적이 있다. 그래서 떠났고, 돌아왔지만 변한 건 없었다. 그녀와 나의 차이점은 그녀는 견뎠고 나는 타국에서의 낯섬을 견디지 못했다는 것이다.

떠나보지 않은 사람들, 며칠간의 여행이 아닌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선 곳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익숙함을 그리워하지 않고,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낯섦 속에서 지내야 한다는 것. 물론 그 과정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긴 인생의 빠른 속도를 반 템포 정도 늦추는 휴식기가 될 수도 있지만 낯섦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어떤 이유에서건 살아보고 견뎌낸 사람들을 보면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녀는 떠났고, 살았고,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보는 법을 배웠다.

책은 읽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 지기도 한다. <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한>을 읽으며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느낌으로 이 책을 읽을까. 그녀의 용기가 부러웠고 분명 힘들었던 적이 꽤 많았을 텐데도 평온하고 담담한 그녀의 이야기가 놀라웠다.


'북아일랜드 캠프힐에서 보낸 365일'이라는 소개처럼 <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한>은 저자가 캠프힐에 가게 되는 순간부터 그곳에서 일 년을 보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의 모든 시간을 담은 책이다. 모든 것이 낯선 곳에서 하루 일과를 마친 후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써 내려간 일기처럼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녀가 머물렀던 북아일랜드 캠프힐에 있었다. 단숨에 읽었다. 조곤조곤 적어내려간 저자의 글은 그녀가 머물렀던 북아일랜드의 풍경처럼 조용했지만 계속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캠프힐은 장애인과 함께 일하며 무료로 숙식을 제공받는 프로그램으로 처음에 그녀는 무료 숙식이라는 말에 솔깃해 캠프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캠프힐에 대해 알아보면서 점점 더 그곳 생활에 대해 매력을 느꼈고 특히 그곳에서는 지금과는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10여 곳의 커뮤니티로 메일을 보냈지만 북아일랜드에 위치한 몬그랜지 커뮤니티에서만 승낙 메일이 왔다. 그녀는 우연히 알게 된 캠프힐, 더군다나 생각해 보지 않은 북아일랜드로 떠난다.

일상을 산다는 말만큼 다정하지만, 또 겁나는 게 있을까. 출근길 지옥철과 야근, 다달이 빠져나가는 카드 값과 게으른 자신과의 싸움이 일상의 맨얼굴이었다. 언제나 여행을 갈망했던 건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잠시나마 나를 분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한>의 차분한 글도 좋지만 일상이 아니면 담아내지 못하는 그곳의 사진들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출근길에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 예뻐서 찍고, 갑자기 내리는 비가 만들어낸 창밖 풍경이 분위기 있어서 찍은 사진처럼 캠프힐의 일상과 그곳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의 사진을 보니 왜 그녀가 이 책의 제목을  <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한>이라고 지었는지 십분 이해되는 것 같았다.

책 속에는 물론 그녀가 생활하면서 힘들었던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성격일까. 힘들었던 상황 역시도 참 즐거운 추억이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만약에 캠프힐을 경험해 보고 싶어서  <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한>을 읽는다면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도 있다.

좋은 환경과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더라도 사람들마다 기억은 제각각이다. 살만하다고 느꼈던 그녀의 캠프힐과 이전의 누군가, 또는 이후에 그곳에 가서 일 년을 살아갈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곳으로 추억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만약에 내가 그녀와 비슷한 또래거나 한국에서의 생활을 잠시 접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분명 나는 캠프힐에 관한 정보를 찾고 있었을 것이다.


느슨한 일상이란 삶에 대하는 태도의 문제이지 시간적 여유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 부끄럽게도 이곳에 오면 모든 고민거리가 자연히 해결될 줄 알았다. 대책 없는 긍정이었다. 혹은 그저 당장의 처지를 벗어나는데 만 혈안이 되어 나 자신을 속여온 것이지도 모르겠다. '어딜 가든 삶은 따라온다'라는 마루야마 겐지의 따끔한 충고는 옳았다. 우리는 여전히 다음을 걱정하고 또 두려워하는 중이었다.

두려웠다. 캠프힐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진 몸과 마음, 다시 한국에 돌아간다면 그곳에서 생각했던 것들을 잘 지켜가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다. 다시 한국에서의 삶에 익숙해져 살겠지만 캠프힐에 오기 전보다는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녀가 인용한 마루야마 겐지의 '어딜 가든 삶은 따라온다'라는 말이 깊은 울림을 던져주었다. 떠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 하지만 결국 살게 되는 모든 곳이 내 인생이다. 문제는 어디서 사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삶을 대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잠시 멈추고 앞으로의 인생을 위해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녀는 캠프힐에서 그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면 그곳은 추억의 순간이 된다. 하지만 그 추억의 모든 순간이 기억 속에 새겨져 앞으로 그녀의 인생을 함께 할 것이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견고한 나를 만들어 준 순간순간이 <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한>에 담겨있다.

격렬한 고통의 순간이나 힘겨움은 없다. 너무 편하게 지내다 온 게 아니냐라는 반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저자는 무척 평온하게 그곳에서 생활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요점은 이것이다. 비록 한국과 전혀 다른 환경이었지만 그녀는 그곳의 일상 속에서 자신을 찾았다. 만약에 완벽하게 현재를 바꿀 수 없다면, 그럼에도 나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우선 일상을 다르게 보는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늘 똑같은 일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본다면 분명 되풀이되는 일상 속에서도 나를 변화시킬 수많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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