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사다리 - 불평등은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키스 페인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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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불평등과 상대적 빈곤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부러진 사다리>는 무척 흥미로운 책이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빈곤과 계층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되는 모든 것에 대해 새로운 시작을 보여주는 <부러진 사다리>는 읽어봐야 할 책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만큼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라는 사실을 먼저 말하고 싶다. <부러진 사다리>를 읽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졌음은 인정하지만 그것을 알기 위해 조금은 인내를 가지고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분명 끊임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왜 늘 가난한 것 같은지 의문이 든다면 <부러진 사다리>가 해답을 알려줄 것이다. 저자인 키스 페인이 말하는 상대적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 인류가 생겨난 이후 없어지지 않는 계층과 그 계층 간의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 등 이 책은 우리가 알지 못한 채 당하고 있는 불평등이라는 것을 떨쳐버릴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 준다. 저자는 말한다. 불평등이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왜 그런 상황이 될 때마다 추락하는 느낌이 드는지.

왜 상대적 빈곤감은 실제 가난만큼이나 우리의 수명을 단축시킬까? 왜 이웃사람의 집이 크면 우리 몸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될까? 왜 주머니 사정이 빡빡하면 자멸적인 결정을 내릴까? 왜 부자가 되고 나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멍청이, 바보 천치로 보이기 시작할까?


<부러진 사다리>는 불평등과 빈곤에 대해 총 9장으로 나눠 이야기한다. 상대적 빈곤은 실제 가난만큼 상처가 되는지에 대한 1장을 시작으로 왜 우리는 비교를 멈출 수 없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2장 상대적 빈곤, 3장에서는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는 불평등을 보여준다. 불평등이 어떻게 우리의 정치 성향을 가르는지에 대해 알게 된 4장, 5장 수명과 묘비 크기의 상관관계, 왜 사람들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지에 대한 6장, 불평등과 차별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인종차별과 소득 불평등의 위험한 역학 관계를 보여주는 7장, 8장에서는 일터에서의 사다리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9장에서는 수직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 현명하게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책을 읽기 전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 '나는 가난한가?' 정확한 답을 할 수 없었다. 가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유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중산층에 해당하는가? 중산층이라고도 대답할 수도 없다. 사람들의 기준에서 보자면 나는 가난한 부류에 속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서 판단하면 나는 그다지 가난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부러진 사다리>를 읽기 시작했다. 저자인 키스 페인은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가난과 부를 가르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돈이라고 대답했다면 당신은 아주 단순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부러진 사다리>에서 가난과 부는 특정 시대와 장소에서 남들이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되며 결국은 가난과 부를 가르는 것은 절대적인 금액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부에 대한 생각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키스 페인의 아이가 대학 내 보육 시설에서 함께 지내는 아이들을 가리키며 가난한 아이, 부자 아이라고 구분 짓는다고 한다. 아이는 교수나 의사의 자녀는 부자, 대학원생이나 대학 직원의 아이를 가난한 애로 분류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나 자신이 아니라 주변의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부와 빈곤에 관한 기준 역시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결정된다. 끊임없이 나와 다른 사람의 부를 비교하며 그들이 더 부유해지면 나는 더 가난해졌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부유한 동네와 가난한 동네가 함께 공존하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더 비참하게 가난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만약에 당신이 주변인의 부와 지위를 부러워하는 경향의 사람이라면 <부러진 사다리> 속의 상대적 빈곤에 대해 더 꼼꼼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그동안 스트레스였던 남들의 부를 전혀 다르게 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부러진 사다리>는 여러 분야의 불평등과 빈곤, 그것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한다. 불평등이 어떻게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바꿔놓는지에 대한 이야기, 왜 가난한 사람들은 미래를 보지 않고 현재만 바라보는 근시안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어느 사회 보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책인 것 같았다. 특히 그중에서 불평등과 가난이 정치적 성향을 가른다는 것과 수명과 묘비 크기 역시 불평등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사회적 계급이 다른 사람들은 다른 인생을 살고, 그래서 죽음도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개 스코틀랜드 잭 러셀 테_
무함마드 모스크 이슬람 테-

테_로 시작하는 두 단어에 무엇을 적어 넣을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러진 사다리>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답을 적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자신의 가치관에 상관없이 이미 암묵적 편견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백인과 흑인의 차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문제 되는 인종차별은 이제 어느 한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이런 인종차별이 또 다른 불평등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부러진 사다리>가 인종차별과 불평등을 바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왜 우리는 차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지, 상대편의 방식으로 생각해 보면 조금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첫걸음을 시작한다.

사다리의 맨 아래층에 있는 사람들이 계급 구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일하는 시간과 방식을 마음대로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러진 사다리>에서 말하는 직장 내 계층과 스트레스에 대한 구절이 인상 깊었다. 일터에서 나는 사다리의 제일 아래층에 있는 사람이다. 나보다 더 많은 돈을 받지만 나보다 일을 더 하지 않는 것 같은 상사들을 볼 때마다 일하기 싫어진다. 8시간 꼼짝없이 앉아서 일하는 나와 달리 그들은 여유롭게 일하는 것만 같다. 일터에서의 수많은 생각들 역시 내가 기준아 아닌 타인과의 끊임없는 비교를 통해 스스로 만들어낸 스트레스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상대적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불평등한 사다리에서 내려올 수 있을까?

삶의 복잡함을 단순하게 몇 가지 이야기로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각각의 분야에서 일어나는 불평등들을 종합해 분석하고 서로 비교해 봐야 한다. <부러진 사다리>에서 들려주는 수직사회에서 사는 기술 중 내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나왔다. 상향 비교와 하향 비교가 그것이다.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면 목표가 될 수도 있지만 나는 왜 이렇게 밖에 되지 않는지 자괴감이 들 수도 있다. 먹고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데 부족하다고 느낄 때면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는 하향 비교 방법을 쓰면 인생이 무척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굳이 하나하나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세상은 불평등 천지고 나는 늘 가난하다. 이런 생각들이 각자의 삶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괜찮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런 불평등과 상대적 빈곤 때문에 무척 힘들어한다. 그럴 때면 생각하길 바란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내가 가진 것과 내가 바라는 것을 정확하게 안다면 남들과의 비교로 깊어지는 불평등과 빈곤의 늪으로 빠져들지 않을 것이다. 불평등과 상대전 빈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알려준 <부러진 사다리>를 통해 지금 위태롭게 서 있는 당신의 사다리에서 내려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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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온리 - 일상이 된 모바일 라이브, 미디어의 판을 뒤엎다
노가영 지음 / 미래의창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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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영상의 시대가 온다고 했다. 어느 날 그림과 글보다 짧은 영상이 인터넷을 채우기 시작했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유튜브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날부터 동적인 영상이 정적인 사진과 글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예전에 블로그 글쓰기 등을 알려주는 강연들이 유튜브와 관련된 강의로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말 영상의 시대가 왔구나. 홈트나 놓친 드라마, 예능을 보기 위해 유튜브를 검색하는 걸 제외하면 나는 아직 텍스트 정보에 익숙하다. <유튜브 온리>를 읽으면서 순간순간 흐름에서 벗어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의 어린 자녀들이 나보다 더 능숙하게 유튜브를 검색하고 본인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찾아서 집중하는 걸 보며 시대가 바뀌고 있구나 싶었다.

<유튜브 온리>는 순수한 궁금증에서 읽기 시작한 책이다. 유튜브를 알고 싶었고 앞으로 다가올 영상의 시대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 책은 나의 니즈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책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미디어의 시대와 유튜브를 비롯한 수많은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유튜브 온리>는 그동안 궁금했던 미디어 세계의 맛을 보여준 책이었다. 궁금해서 더 열심히 읽었고 그만큼 흥미로웠다. 비록 잘 알지 못하는 분야라 약간은 전문적으로 접근하는 내용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 역시도 새로움 앎이라 재미있게 읽어 나갔다. 미디어에 대한 개념 정의를 시작으로 <유튜브 온리>는 본격적인 미디어 설명에 앞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용어 설명을 친절하게 곁들여 준다. 그동안 여러 책에서 읽었던 MAU, OTT를 비롯해 대체 광고, 스낵커블 콘텐츠. SVoD까지 각 장에서 등장하는 모든 용어에 대한 정의부터 설명해 준다.

총 7장으로 나눠 미디어의 세계를 소개한다.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모바일 미디어에 대해 묘사하는 구절을 읽으며 현재 내가 얼마나 모바일에 기대어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미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모바일 미디어는 누구에 의해 주도되는가부터 유튜브의 장점, '옥자'를 통해 알게 된 넷플릭스, 수많은 TV 미디어 대체재까지 현재 한국의 모바일 미디어를 순식간에 훑어 보았다. 어느 날 콘텐츠 크리에이터라는 말을 들었다. 카페에서 아주 어린아이들까지 유튜브를 능숙하게 검색하는 것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TV만 시청하시는 어르신들까지 알고 있는 유튜브는 앞으로도 미디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유튜브가 앞서가는 것을 수많은 포털들은 지켜만 보고 있을까? <유튜브 온리>에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유튜브 온리>를 신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막연히 그럴 것이라는 예상이 아니라 현재 SK브로드밴드 모바일 미디어 전략 모듈장으로 일하고 있는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정확한 통계를 바탕으로 설명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마냥 쉽게만 생각했거나, 유튜브를 이용해 수입을 얻기 위한 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잠깐 실망을 던져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미디어 그리고 유튜브의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책이나 영상이 아닌 <유튜브 온리> 한 권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유튜브뿐만 아니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페이스북, 네이버와 넷플릭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그들이 준비하는 미디어들을 미리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한다는 모바일 세상답게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검색만 하던 내게 그들이 준비하는 세상은 너무 먼 곳, 먼 시대의 이야기와도 같았다. <유튜브 온리>를 읽으며 모바일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렇게 자라왔고 또 자라고 있는 10대들과 미취학 아동들이 포털을 소비하는 형태는 분명 지금의 20~40대와는 다를 것이고 이는 이미 다른 세대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포털의 이용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즉, 텍스트로 기사를 검색하는 행위가 어색한 10대들이 네이버에 들어오는 이유는 오로지 '유튜브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검색'이라는 확실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지만 분명 한국은 한국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유튜브 온리>는 이제 전 세계 모바일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국 미디어족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들을 끌어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한국인의 빨리, 빨리 성향이 미디어 소비에서도 묻어날 뿐만 아니라 한국은 자국 지향적인 미디어 소비 형태가 강한 편이다. 그리고 우리는 바빠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힘들다고 하면서도 드라마와 예능을 섭렵하고 있듯이 TV 방송물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이런 한국 미디어족의 특징 때문에 전 세계를 지배한 수많은 포털들이 한국에서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변하고 있다. 다음 세대에는 어떤 콘텐츠와 플랫폼이, 누구에 의해서 주도될지 주목해 봐야 할 것이다.

<유튜브 온리>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생각해 봤다. 만약에 이 책을 유튜브 영상으로 소개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볼까. 분명 영상은 매력 있는 매체이다. 나 역시도 요즘 유튜브에서 인기 있다는 영상을 볼 때면 텍스트를 읽을 때와는 전혀 다른 집중력이 생겨난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어떤 미디어가, 어떻게 흐름을 주도할지 <유튜브 온리>를 읽으며 점점 더 궁금해졌다. 책을 덮으며 또 다른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내가 누른 영상 속에 어떤 장면이 등장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알고 싶은 모바일의 새로운 시대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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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 - 온전히 나를 위한 어른의 공부
와다 히데키 지음, 장은주 옮김 / 더퀘스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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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이후의 사람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었다. 공부하는 즐거움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와다 히데키가 알려주는 방법들은 마흔 전후의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이었다. 먼저 <마흔,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라는 제목에 현혹되지 않길 바란다. 이 책의 진가는 제목이 아니라 '온전히 나를 위한 어른의 공부', '틈틈이 원하는 만큼 독학의 즐거움'이 잘 나타내고 있다. 저자는 시작하는 글에게 정확하게 알려준다. '이 책은 자격증을 취득하여 직접적인 돈벌이로 이어지는 공부법을 소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학을 하는 하는 사람은 길게 일을 계속해갈 수 있다. 수동적인 인풋 공부나 획일적인 학교 공부에서 벗어나 깊이 있는 공부로 독자적 관점에서 아웃풋 할 수 있는 사람이 늘기 바라는 마음을 담아 이 책을 썼다.'

마흔, 한창 일을 하고 육아를 해야 할 시기가 아닐까. 나보다 가족과 아이를 생각하며 동시에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중간 나이. 매일 아침 출근을 하고 바쁘게 일을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늘 다른 무언가를 배워야 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일만 하다가 십여 년이 지난 다음에 난 뭘 하고 있을까라는 걱정이 맴돌고 있다. 나 역시도 그렇다. 뭔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미래에 도움에 될만한 자격증을 검색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지금을 즐기지 못한채 늘 불안해하는 내가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마흔, 많은 것을 이룬 나이이기도 하지만 아직 많은 것을 모르는 나이이기에 진짜 공부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마흔,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는 마흔이 되었으니 당신도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나이가 들수록 왜 공부를 해야 하며, 어떤 공부로 시작하는 게 도움이 될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가볍게 읽기 좋은 입문서이다. 일본의 유명 정신과 전문의인 와다 히데키 자신이 직접 공부를 하고 그 속에서 느꼈던 즐거움과 터득한 방법들을 상담을 하러 온 고객에게 들려주는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걱정하는 내담자는 마흔이다. 그에게 의사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당신도 아직 늦지 않았으니 조금씩 진짜 하고 싶었던 공부를 시작해보라 조언한다.

책은 총 7장으로 1~3장에서는 어른이 된 후에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공부를 하기 전에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을 이야기한다. 덧붙여 저자가 공부를 하면서 느꼈던 점과 겪었던 몇 가지 간단한 에피소드로 소개한다. 혼자 시작하기 좋은 분야별 공부법을 알려두는 4장은 공부를 하고 싶지만 어떤 것부터 하는 게 좋을지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된다.

<마흔,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에서는 저자가 그동안 공부해 왔던 역사와 경제, 심리학, 와인, 영어공부 방법에 대해 말하는데 몇 가지 과목 중에서 나는 심리학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어졌다. 5장 바쁜 독학자를 위한 시간 공부법은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저자만의 방법을 소개한다. 특히 7시간 수면 지키기와 아침형 인간이 성공한다, 1개월 단위로 일정을 짜는 방법을 내일부터라도 당장 실천해 볼 수 있는 방법들이었다. 읽기와 말하기, 쓰기에 대해 궁금하다면 6장과 7장에서 알려주는 독서법과 글쓰기 방법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저자는 어른의 공부가 좋은 세 가지 이유, '독자적 시점에서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다, 시간도 돈도 제한이 없다, 젊은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를 말한다. 그리고 어른의 공부를 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한다. 아무리 도움이 되는 공부일지라도 흥미가 떨어지면 그걸로 끝이다. 흥미가 없는 공부를 하고 그것으로 돈을 벌게 된다 해도 과연 그 공부가 제대로 된 공부라고 할 수 있을까.

<마흔,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방법은 바로 아웃풋에 관한 설명이었다. 저자는 책의 시작부터 인풋보다 아웃풋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웃풋이라는 것은 여러가지로 표현할 수 있는데 SNS에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다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그리고 글쓰기 또는 책을 통해 공부했던 것을 활용할 수 있다. '글을 쓸 기회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공부에 적극적이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저자의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끝없는 인풋은 공부라기 보다 자기만족에만 그치는 공부일 뿐이다.


'인간의 뇌의 전두엽이라고 불리는 부분은 40대부터 눈에 띄게 수축한다. 전두엽이 수축하면 어떤 것에든 의욕이 점점 떨어진다.'

어떤 일에도 흥미가 없고 사는 게 재미없다고 느끼는 것이 일상에 지치고, 사는 게 힘들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면 <마흔,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를 통해 의욕저하가 단지 신체적인 변화일 뿐이라는 것을 알길 바란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로 우리는 수축하고 있는 전두엽을 다시 예전과 같이 돌려놓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재미있고 꾸준히 할 수 있는 공부를 시작하고 지속하는 것, 일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하고 싶어도 계속 미뤄둔 공부를 더 늦기 전해 시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나이가 들어도 흥미를 가지고 세상을 활기차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꼭 뭔가를 이루기 위한 공부를 해 왔다면 이제 내가 좋아하는 것, 해보고 싶었던 공부를 해야 할 때가 왔다. 더 깊이, 더 오래가기 위해서는 눈앞의 이익만을 위한 공부보다 행복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 <마흔,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를 통해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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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시 - 힘 빼고, 가볍게 해내는 끝내기의 기술
존 에이커프 지음, 임가영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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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관찰하고 쓴 책인가. 책을 읽는 내내 누가 옆에서 날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용두사미형 인간이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순간 욱하는 열정이 강해서 참 많은 일을 시작하고 배운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다. 용두사미라는 말처럼 시작은 거창한 목표와 함께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곧 포기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존 에이커프의 <피니시>는 너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격려와 함께, 이제 더 이상 그러지 말라는 조언을 함께 들려주는 책이었다.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는 작가의 말처럼 시작만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어떻게 제대로 마무리하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책은 없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 우리는 여전히 오직 '시작'이 제일 중요하다고 여긴다. 본격적으로 <피니시>를 읽기 전에 스스로의 습관을 생각해 보길 바란다. 나는 몇 개의 목표를 성취했는가. 2018년이 시작된 지 아직 보름도 되지 않은 지금. 아마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 생각한 목표들을 포기하거나 포기하려는 중일 것이다. <피니시>는 2018년의 목표를 재점검하고 이번에는 진짜로 완수하기 위한 여러 가지 팁들을 알려줄 것이다. 


<피니시>는 제목 그대로 결승선 테이프를 끊어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목표를 완수하지 못한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너무 완벽하길 바라서, 목표가 높아서, 제한된 시간에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스스로의 은신을 타당하게 만드는 것등 우리가 목표를 중간에 포기하는 데는 참 많은 이유가 있다. <피니시>를 읽으며 내게 해당되는 이유를 체크하며 읽어봤는데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 내가 이러니 지금까지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수많은 시작의 끝을 보지 못한 거겠지.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왜 나는 시작만 할까?라는 의문이 든다면 <피니시>속의 이유들을 체크해 보길 바란다.

저자와 함께 출발선에서 결승점까지 함께 달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페이스메이커처럼, 저자는 적절한 곳에서 용기를 주고 적당한 지점에서 주저앉지 말고 힘내서 달리라고 호통을 친다. <피니시>는 8장으로 나눠 왜 우리가 수많은 시작을 마무리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꼼꼼하게 알려준다. 많은 곳에 밑줄을 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나는 <피니시>를 꼭 읽어야 할 이유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이 책은 내게 안도이자 희망이다.


오늘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매일 5km씩을 걷는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하자. 회사에서 늦게 퇴근한 어느 날, 어쩔 수 없이 3km밖에 걷지 못했다면 그날의 다이어트는 성공한 것일까? 실패한 것일까? 완벽주의를 원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오늘은 실패했어. 그러니 다이어트도 실패했어.'

존 에이커프는 말한다. "우리는 작은 성장 따위는 가당치도 않게 여기며, 하룻밤 사이에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고 싶어 한다. 이렇게 완벽주의는 약삭빠르게 빈틈을 파고들며 조금씩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선한 욕심을 철저히 이용한다." 완벽주의는 그것을 추구할수록 목표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이미 꾸준히 하고 있던 일까지 그만두게 만드는 파괴적인 마법과도 같다.

완벽주의를 물리치며 어떻게 끝까지 갈 수 있는지 <피니시>에서 알려주고 있으니 스스로 완벽을 추구하고, 아주 높은 목표를 잡아야 제대로 된 시작을 하는 거라는 착각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피니시>의 방법들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목표에 접근해 보길 바란다.

뿐만 아니라 나는 모든 걸 다 해낼 수 있다는 헛된 희망에서 벗어나는 방법, 만족도와 성과 둘 다를 챙길 수 있는 목표를 즐기는 방법 등도 소개한다. 특히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동기를 당근과 채찍으로 구분한 설명을 나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보상이 보장될 때 일종의 동기부여 엔진이 순식간에 점화되는 사람들을 '접근 동기', 미래에 대한 공포가 그들로 하여금 현재를 바꾸도록 강요하는 '회피 동기'로 정의하는데 두 가지 중에서 나는 '회피 동기'에 조금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공포에 맞서지 말고 적절하게 활용하며 목표에 달성할 방법을 익혔다.


중요하다고 느끼지 않는 일에 매진하는 것을 스트레스라고 하고, 사랑하는 일에 매진하는 것을 열정이라고 부른다.

목표 설정을 이렇게 쉬운 일로 만들어준 책이 있냐는 저자의 말처럼 불가능한 일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들과 더불어 <피니시>에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비밀 원칙을 이야기한다. 자신에게 맞는 비밀 원칙을 알기 위해 우선 <피니시> 속의 네 가지 질문에 솔직하게 답해야 한다. 1. 내가 _을 좋아하긴 하던가? 2. 나의 진짜 목표가 뭐지? 3. 목표 달성을 위해 선택한 방법이 나에게 맞는 방법인가? 4. 지금이 포기할 때인가? 비밀 원칙을 알게 된다고 해도 수십 년간 굳어버린 습관 때문에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 속에 숨겨져 있는 비밀 원칙을 찾기 위해 고민한다면 더 나은 삶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피니시>를 읽으며 리뷰는 어떤 이야기로 마무리할까 생각했다. 본문을 다 읽고 저자의 에필로그를 읽으며 앞선 내용 못지않게 인상 깊었던 구절이 있었다. <피니시>는 에필로그의 한 구절을 소개하며 마무리할까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생 대부분을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며 보낸다. 막연히 상상하고, 꿈꾸고, 소망한다. 그렇게 보내는 한 주가, 한 달이 되고, 그 한 달은 일 년이 된다. ~ 그러나 그와 같은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진 목표는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라는 모래가 우리의 목표를 덮어버릴 거라고, 결국 잊히고 말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이루지 못한 목표가 빚을 잃을 수도 있지만, 그 빛은 절대 꺼지지 않는다. 자신과의 약속을 상기시키는 어느 영화 속 주인공이, 서점 유리창에 진열된 내가 쓰려던 책과 유사한 책이, 친구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우리의 목표에 다시 불을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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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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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작가는 '빨간 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통해 먼저 알게 되었다.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엉뚱함이 재미있어서 작가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역시 팟캐스트를 통해 느꼈던 작가의 감성이 책에서도 잘 표현되었다. 이런 느낌의 책을 읽는다면 김중혁 작가풍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생각했었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 역시 이전에 느꼈던 김중혁이라는 작가의 느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었다. 바로 옆에서 김중혁 작가 특유의 말투로 시크하게, 글쓰기는 별게 없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물론 세상의 모든 글쓰기에 관련된 책의 결론은 하나다. 하지만 그 하나의 결론으로 가기 위해 독자를 얼마나 격려하느냐, 초보자들도 잘 따라갈 수 있게 얼마나 쉽게 설명해 주느냐가 좋은 글쓰기 안내서인지 아닌지로 나눠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기준에서 보자면 김중혁 작가의 창작 글쓰기 비밀을 알려주는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그의 말처럼 당장 노트북을 켜고 뭐라도 쓰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창작 글쓰기의 비밀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들이라 누군가는 '뭐야~이게 비밀이야?'라며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가 자신있게 '비밀'이라는 단어를 말한 것은 글쓰기 방법뿐만 아니라 작가 본인이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지 못하는 작가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소설가 김중혁의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우리는 책을 열면서 소설가의 서재를 똑, 똑 두드린다. 어서 오세요. 김중혁 작가가 친절하게 문을 열고 그의 작업실 구석구석을 안내해 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안내를 따라 느긋하게 창작의 준비 단계부터 창작 과정, 그리고 작가가 알고 있는 글쓰기의 비밀을 찬찬히 듣기만 하면 된다. 자, 그럼 이제 소설가 김중혁의 작업실로 들어가 볼까?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김중혁 작가가 사용하고 있는 창작의 도구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글쓰기 비법을 알려준다는 책에서 글을 쓸 때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를 소개하다니. 작가들은 어떤 방에서 어떤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지, 그리고 그들은 글을 쓸 때 어떤 음악을 듣는지 알고 싶었다. 작가는 나처럼 이런 독자의 마음을 제대로 간파했구나.

그는 자신의 모든 창작의 도구들을 친절하게, 직접 그림까지 덧붙여 알려준다. 아주 사소한 에스프레소 잔, 몰스킨 뿐만 아니라 1993년부터 현재까지 글을 쓸 때 사용했던 컴퓨터도 소개한다. 작업실 안의 물건들을 봤으니 이제 작가의 일상을 들여다봐야겠지. 작가는 글을 쓸 때의 일상과 글을 쓰지 않을 때의 일상을 시간대 별로 정확하게, 마치 일기처럼 들려준다. 마지막으로 글을 쓸 때 음악이 꼭 있어야 한다는 사람이라면 빼놓지 말아야 할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만드는 법'도 무척 흥미로웠다.


많은 책과 여러 작가들의 말을 덧붙여 창작의 방법에 대해 소개한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글쓰기 방법을 하나하나씩 번호 붙여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각각의 주제에 따라 한 편의 단편과 같이 창작의 방법을 들려준다. 김중혁 작가가 문장 속에 숨겨놓은 비법들을 숨바꼭질을 하듯 잘 찾아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시작과 끝을 경험하는 일이다. 글의 시작이 어떠해야 할지 생각하고, 글의 끝까지 달려가본 다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글을 마무리하게 된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를 재미있게 읽은 이유 중에 하나는 작가의 솔직함이 좋아서였다. 많은 책에서 글은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써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언제나 두 가지 마음을 동시에 품어야 하며 글쓰기의 시작은 두 개의 마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글쓰기 방법을 설명하면서 문장을 써서 벽에 붙이기, 책을 읽을 때 밑줄 치기 등 몇 가지 팁을 소개한다.

수많은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충고를 한데 끌어모았을 때, 그 교집합이 최고의 비법일까. '열심히 쓴다', '꾸준히 쓴다' 정도만 교집합에 남아 있겠지. 충고 따위 무시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해설을 보지 않고 문제집을 풀 때처럼, 작가들의 충고는 모두 잊고 혼자서 밤을 꼬박 지새우며 글을 쓰다 보면 저절로 작은 깨달음이 올 때가 있다. 자기만의 공식이 하나씩 생겨나고, 작가들의 충고가 무슨 말인지 몸으로 알게 되는 때가 온다. 그 사소한 깨달음이야말로 글쓰기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의 대부분은 창작 글쓰기에 대한 A to Z를 소개하고 중간에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실전 그림 그리기에 대해 설명한다. 책 속에 함께 하는 모든 그림은 김중혁 작가가 직접 그런 거라고 하는데 '실전 그림 그리기'에서 작가는 예전에 짧은 웹툰을 그렸다고 이야기한다.  '무엇이든 그리게 된다'는 <무엇이든 쓰게 된다>의 별책부록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모아야 하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흐트러뜨려야 한다'라고 말한다. 글을 쓴다는 것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찌 보면 같은 창작 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작가의 말처럼 글이 안으로 모으는 집중이라면 그림은 바깥으로 분산해야 하는 집중이다. 그림이든 잘 그리기 위해서는 그림을 못 그리거나, 손재주가 없어서 창피하다는 마음을 버리고 일단 그냥 그려보는 것이 중요하다. 글도 역시 그렇다. 완벽한 한 편의 글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한 문장, 한 줄부터 시작한다. 일기도 되었다가 넋두리도 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 외의 등장인물이 나오고 주제가 생겨나는 것이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에서 글과 그림, 두 가지의 창작에 대해 설명하지만 본질은 딱 하나다.


마치 수능 문제처럼 독특한 방식으로 글쓰기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험 문제가 나왔으니 문제 해설을 보기 전에 먼저, 문제를 풀어보길 바란다.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틀렸다. 문제 해설을 읽어보면 아하, 무릎을 치게 되지만 이미 답을 틀렸으니 어쩔 수가 없다. 아직 나의 뇌는 작가의 뇌가 되려면 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 접하는 방식이라 조금 낯설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차근히 문제를 풀어보고 작가가 설명해주는 문제 해설을 읽다 보면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창작의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2018년을 시작하며 이제 더 열심히 글을 써볼까 생각해 봤다. 열심히 써야지, 기필코 한 편의 글을 완성해야지라고 쓰지 않은 이유는 작가의 말처럼 나도 아직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글쓰기 비법을 찾아 헤매고 있는가 보다.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는다고 글을 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글쓰기, 창작 방법에 대한 책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글을 쓴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해보고는 싶지만 어떤 가시밭길이 펼쳐질지 잘 알기 때문에 앞서 간 사람들의 작은 조언이라도 들어보고 싶은 가벼운 열정이 자꾸만 글쓰기 책을 읽도록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무엇이든 쓰게 된다>는 무조건 쓰면 된다든가, 일단 이런 방법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라고 말하는 책이 아니다. 글을 쓴다는 것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미 소설가이기에 가벼운 듯 보이지만 <무엇이든 쓰게 된다>에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안쓰러운 시선과 어떤 글을 쓰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힘들게 나온 것임을 알기에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낸다는 위로가 담겨있다.

누군가는 책을 통해서 어떻게 글을 처음 써야할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작가의 소품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했을 것이고, 또 다른 이는 그림 그리는 연습을 해보고 싶어 할 수도 있다. 나는 <무엇이든 쓰게 된다>를 읽고 내가 걸어보고 싶은 길이 쉽지 않은 길임을 다시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필사를 하고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책을 통해 어렵지만 걸어보고 싶은 길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더 확인했기 때문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작가 김중혁의 서재에서 나왔다. 맛있는 차를 마시며 작업실도 구경하고 그의 책장에 꽂힌 책들도 살펴보았다. 무엇보다 '건투를 빈다'는 작가의 응원을 들어서 좋았다. 나도 언젠가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단 한 줄을 써보고 싶다. 이제, 읽었으니 쓰는 일만 남았다. 무엇이든 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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