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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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작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아마도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큰 힘이 되지 않을까라는 말밖에 할말이 없다. 부디 평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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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매일 하던대로 말을 해봅니다.

너무 덥다라는.^^;;

덥지만 책읽기는 계속 됩니다.

아니 에르노, 아니 에르노, 에마뉘엘 카레르...

어쩌자고 계속 프랑스 작가들 책만 읽는지...

어떤 큰 의도를 가지고 그런 건 아니고

읽다보니 그렇게 됐다는 말밖에 못하겠네요.

아니 어쩌면 내 무의식의 큰 그림인가?^^;;

다음에는 더 다양하게 읽어보겠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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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용도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마크 마리 지음 / 1984Books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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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용도-아니 에르노,마크 마리

 

책을 펼치면 저자 중 한명인 아니 에르노가 말을 합니다. 책 속에서 M이라 불리는 마크 마리와의 사랑의 기억을 사진으로 남겼다고. 사실 사랑의 순간들은 필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언가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면. 아니 에르노와 마크 마리는 사랑의 흔적들을 사진으로 찍고, 거기에다 둘의 글을 덧붙여서 책을 만듭니다. 자신들의 사랑의 기억을 영원화시키려는 의도로.

 

<사진의 용도>에 나오는 사진들 속에는 인물이 부재합니다. 대신에 물건이 가득하죠. 인물의 부재와 물건의 존재. 이걸로만 책이 끝날 리가 없죠. 사진 뒤에는 글이 따라붙습니다. 글은 사진 속에 남겨진 인물의 부재와 물건의 존재를 설명합니다. 사진이 무슨 행동의 결과로 나타났는지를. 행동에는 두 사람의 삶이 따라나옵니다. 어떤 행동이 있을 때는 그 삶의 맥락이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어떤 삶 속에서 이 사진들이 나왔는지를 설명하는 것이죠.

 

이색적인 건, 그 둘의 사랑의 흔적에는 유방암의 그림자가 따라붙는다는 겁니다. 책의 저자 중 한명인 아니 에르노가 마크 마리와 사랑하던 시기에 유방암에 걸렸으니까요. 암에 걸려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니 에르노와 그런 그녀를 지켜보는 마크 마리의 시선이 책에는 가득합니다. 죽음의 위협과 생의 욕망 사이에서 몸부리침는 연인들의 삶의 흔적은, 사랑의 흔적에 쌓여서 오롯이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의 흔적으로만 남겨집니다. 결국 유밤암은 아니 에르노의 삶을 스치듯 지나가죠.

 

그들의 삶의 흔적에는 유방암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이라크전의 흔적도 그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들이 들었던 노래, 그들이 갔던 장소들, 그들이 함께 했던 행동들도 그들의 사랑의 흔적에 쌓여갑니다. 모두가 그들의 삶이라는 이름이 되어 남겨집니다. 사랑 또한 삶이 되는 것이죠. 삶이지만 사랑이라는 특수한 행동을 했던 것으로서.

 

사랑의 흔적을 사진으로서 남긴 그들이지만 사진의 용도를 묻는 질문에 둘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 마치 질문의 대답을 독자들에게 넘기는 듯한 이 장면은 독자의 사유로 이어집니다. 사진의 용도에 대해서 독자들은 무슨 대답을 할까요? 과거로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사랑을 담은 자신들을 앞에 두고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각자의 대답이 다르겠지만, 저는 과거의 흔적으로서의 사진오래된 미래로서 독자의 앞에 현재화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할 수 있겠네요. 이것이 저만의 대답이라고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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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더위 얘기만 며칠 째 하는지 모르겠지만,

더운 건 더운 거니까요.

더운 걸 덥지 않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고,

더운데 더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건

진실의 외면이죠.

거짓말도 하기 싫고, 진실의 외면도 하기 싫은 저는,

덥다는 얘기만 계속 해야할 거 같습니다.^^;;

어쨌든 더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남아서 근처 산을 올랐습니다.

그런데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올랐다 내려갔는데,

상의를 입지 않고 자신의 상부를 나체로 드러난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걸어올 때부터,

내가 지금 현실에 있는 건지 아닌건지

의심이 들었는데,

스쳐 지나고 나니 더 의심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현실을 사는 게 맞는건지.

상의를 탈의하고 자신의 젓가슴을 당당히 내민 채

산을 걷는 남자와

땀이 주룩주룩 흐르는 무더위와

곳곳에서 뛰쳐다니는 귀뚜라미들과

시끄럽게 외치는 매미 소리

앞에서 여전히 제가 현실에 있는건지,

환상을 겪은 건지 의문이 듭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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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트의 꿈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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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트의 꿈-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잃고, 아내를 잃은 충격으로 자식들을 친적집에 맡긴 아버지를 둔 남자. 친척 집에서 성장하며 모험가를 동경하고, 야만인들을 문명화시키는 성스러운 백인의 의무를 자신의 삶의 신념으로 받아들인 남자. 그 이상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아프리카로 가서 직접 모험가가 되고, 자신이 존경하던 모험가가 아프리카인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고 크나큰 실망을 하는 남자. 영국의 외교관으로 아프리카 콩고에 가서 벨기에 레오폴드 2세의 대리인들이 콩코인들을 다루는 잔혹한 모습을 보고 고발에 나서 유럽에 반향을 불러일으켜 벨기에의 콩고 지배 형태를 바꾼 남자. 페루에 가서 아마존 회사가 저지르는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수탈을 보고 고발에 나서 큰 좌절감을 느꼈으나 결론적으로 아마존 회사의 비인간적인 실태를 널리 알린 인권 운동의 아버지격인 남자. 아일랜드 신교도로 영국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인권 운동으로 훈장과 귀족작위도 받았으나 말년에는 아일랜드 민족주의에 심취한 남자. 자신의 고향인 아일랜드의 급진적인 독립 운동을 지원하며 1차 대전에 영국의 적인 독일의 지원을 얻어 아일랜드의 독립을 쟁취하려다 실패하여 영국의 감옥에 갇힌 남자. 아일랜드 독립을 위한 부활절 봉기와 그 결과로 자신의 동료들이 죽음을 맞는 걸 감옥에서 묵묵히 듣던 남자. 자신의 명성 때문에 감형운동이 일어나나 영국 정부가 공개한 그의 일기 때문에 동성애자라는 논란이 일어 여론이 분열되고 조용히 죽음을 맞은 남자. 동성애자 논란 때문에 아일랜드에 유해가 가지 못하고 뒤늦게서야 아일랜드에 묻힌 남자. 보수적인 아일랜드가 자유로운 분위기가 된 1990년대 쯤에 가서야 아일랜드 독립운동가의 주류로 자리매김한 남자.

 

이 남자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왜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이 남자의 삶을 소설을 쓰려고 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드라마틱합니다. 급전직하, 상승과 하강, 절정과 나락의 파노라마가 거대한 삶의 에너지를 뿜어내는데, 어느 소설가라도 이 남자의 삶을 소설로 쓰고 싶어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경쾌하면서도 리드미컬한 특유의 문체는 이 남자의 드라마틱한 삶을 따라가면서 이 남자의 삶에 드리운 무게감을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수준으로 머물게 노력합니다. 무더운 아프리카와 남미의 정글에서 마주친 참혹한 세상의 진실을 보여주면서도 우리는 마리의 바르가스 요사 덕분인지 지나치게 어둡지 않게, 그러면서도 세상의 진실을 받아들 수 있게 책을 읽어나가게 됩니다. 사지절단, 폭력, 학살, 강간, 참혹한 인권유린과 차별의 무게감에 파묻히지 않으면서도 그 진실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또 이 소설이 그 무게감에 파묻히지 않는 건 책의 구성 덕분입니다. 책은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사형을 앞둔 로저 케이스먼트가 자기 앞에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고 말년의 삶을 회상하는 부분과 어린 시절을 거쳐 영국 외교관이자 인권운동가를 거쳐 아일랜드 독립운동가로 활약하다 실패하는 부분. 앞 부분이 뒤 부분의 무게감을 줄여주고, 동시에 뒤 부분의 결말이 앞부분으로 이어지는 이런 순환적인 구성은 각 부분이 서로가 서로를 도우면서도 이야기를 커다단 삶으로 모으는 문학적인 힘을 보여줍니다. 이런 구성을 통해 우리는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고, 한 남자의 드라마틱한 삶을 우리 삶의 보편성과 일치시키게 됩니다. 그가 행했던 놀라운 업적과 한 인간으로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뇌와 분노, 공포와 무력감을 함께 느끼며.

 

저 자신을 엄습한 무더위를 감내하며 이 책을 읽는 건 제게 기묘한 경험이었습니다. 책의 주인공인 로저 케이스먼트가 무더위로 고생하면서 참혹한 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더위로 고생하는 저와 묘한 일치감을 느꼈으니까요. 물론 제 앞에는 학대받는 식민지의 주민들 대신 저 자신의 삶의 모습 밖에 없고, 아일랜드 독립을 외치는 투사들 대신 인터넷과 SNS에서 말로서 치고 받는 키보드 워리어들 밖에 없지만.^^;; 무더위 속에서 무더위와 싸우며 인권 운동을 했던 한 남자의 삶을 소설로서 읽는 건, 촉각의 무더위와 시각의 무더위라는 이중의 체험을 하는 것이었으며, 그 외에도 드라마틱하고 문제적 삶을 읽는 즐거움을 제시했습니다. 이 이중의 체험을 쉽게 잊을 수 없겠죠. 쉽게 잊지 않는 만큼, 저 자신의 삶에 로저 케이스먼트라는 이름은 각인되어 남을 겁니다. 잊혀지지 않는 문제적이고 드라마틱한 삶을 산 남자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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