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나크 사냥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Q: 자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처참하게 죽었다. 그런데 법이 그들을 제대로 심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한번도 그런일이 없었기 때문에 생각해 본적은 없다. 그러나 만약 그런일이 일어난다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나의 몸을 태울 꺼 같다. 그 분노는 나를 태우고 나를 괴물로 만드리라.
용서도 없는 영원한 복수의 아귀지옥을 맴도는 괴물... 살인자의 죽음을 꿈꾸는 괴물...
 
2.
 
스나크 사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작자 루이스 캐럴의 1876년작. 스나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로 그걸 잡은 사람은 사라져 버린다. 즉. 괴물을 잡은 사람은 자기도 죽는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1.
게이코. 지방유지의 딸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그녀는 '타인은 도움 안 되는 쓰레기일 뿐'이며 이용할 수 있을 때 이용해야 된다는 신조를 가진 고쿠부 신스케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고 버려진다.
결국 그녀는 신스케의 결혼식날 자신이 취미 생활로 삼았던 산탄총을 들고 나타난다.
 
#2.
낚시 도구점 피셔맨 클럽 직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오리구치 구니오는 그날 자신이 가장 아끼는 직원 사쿠라 슈지를 노가미라는 여성과 이어주려고 하고 있었다. 그둘의 자리를 만들어주고 나서 오리구치는 할일을 하기 위해 단골 손님 중 하나였던 게이코의 아파트로 향한다.
 
#3.
신스케의 여동생 노리코는 오빠와 달리 양심적이고 인간적인 인물. 그녀는 자신의 오빠가 저지른 일에 대해 게이코에게 내심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식이 벌어진 그날도 그녀는 게이코가 어디 있지 않을까 생각하여 여러곳을 둘러보다가 총을 들고 있는 게이코를 보게 된다. 노리코는 게이코를 진심으로 설득하여 그녀를 돌려보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녀는 게이코가 아파트로 떠나 보내고 나서 그녀가 자살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그녀의 아파트로 향한다.
 
#4.
오리구치를 누구보다도 좋아했던 슈지는 그날 오리구치의 행동들이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그런데 우연이 겹쳐지며 슈지는 오리구치가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슈지는 오리구치의 헤어진 아내와 딸이 미성년자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과 그들이 자신들의 정신감정을 주장하면서 재판이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오리구치가 무슨일을 저지를까 내심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도 우연히 얻게 된 단서들을 쫓아서 게이코의 아파트로 향하게 되고.
 
#5.
법이 살인자들을 심판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눈치챈 오리구치. 그는 자신이 직접   괴물이 되어 그들을 심판하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와중에 산탄총을 가지고 있는 게이코를 알게 된다. 의도적으로 그녀와 친해진 그는 그날 게이코의 아파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가 돌아온 그녀를 클로로포롬으로 마취시키고 총을 뺏어 살인자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6.
기절한 상태로 노리코에게 발견된 게이코. 그리고 마침 모습을 드러낸 슈지. 그들에게 게이코는 진실을 밝힌다.

자신이 결혼식장에 가져갔던 산탄총은 총구에 납땜이 되어있는 상태로 총을 발사하면 발사한 사람이 죽게 되어 있다는 사실.

게이코가 원한 것은 신스케의 죽음이 아니라 그녀가 결혼식장에서 자살함으로서 결혼식이 파탄나는 것이었다.

 

#7.

이 모든 사실을 알아챈 노리코와 슈지는 오리구치에게 진실을 말하고 그의 살인을 막기 위해 그를 쫓아서 떠난다.

 

 

괴물을 죽이기 위해 괴물이 되기로 결정한 오리구치. 그러나 그는 괴물이 되는 순간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오리구치를 추적하는 노리코와 슈지.

마지막으로 그들 모두를 추적하는 경찰.

이제 그들의 숨막히는 하룻밤의 추격이 시작되었다. 이야기의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3.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중 가장 박진감 넘치는 작품. 인물의 심리묘사와 상황설정, 사건의 과정을 묘사하는데 주력하던 그녀가 이 작품에서는 긴박감 넘치는 상황 전개로 읽는 내내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박진감 넘치는 문체를 순식간에 다 읽고 나면 남는 것은 일종의 답답함이다.

법의 허점, 그 허점을 파고드는 영악한 살인자, 거기에 무기력한 법조계와 그걸로 인해 더욱 상처받는 피해자,

그리고 악을 처단하기 위한 악이 인정받을 수 있는가에 관한 문제.

괴물과 싸우기 위해서는 괴물이 되는 수 밖에 없는 것인가?

다른 해답은 없단 말인가?

아마도 여기에 대한 정답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 남겨진 건 끝없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일 뿐.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스나크 사냥은 끝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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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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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 규범. 최소한의 도덕이라고도 불린다.

1.

법은 완벽한가? 우리는 언제나 이런 질문과 마주치면 항상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런 고민은 항상 법의 한계와 효용성에 관한 문제로 이어진다. 법을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맞고, 우리가 법규법을 신뢰해야 하는 것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어떤 것도,더군다나 그것이 인간이 만든 것이라면 완벽한 것이 없듯이 법도 완벽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법치국가라는 멍에를 뒤집어쓰고 우리의 삶 곳곳을 조여온다면 그 법의 그물은 고정성과 경직성에 의존하기 때문에 현실이라는 공간에서 숭숭 자신의 구멍을 드러낼 것이다.
  

법의 구멍. 상상하기 싫은 현실이긴 하지만 그 법의 구멍을 악용하고, 이용하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그때 법은 방황하기 시작하고, 법을 믿고 따르던 평범한 피해자들은 갈팡질팡 하다가 파멸에 이르기도 한다.

 

2.

한 아버지가 있었다. 아내를 잃고, 딸을 자기 인생의 낙으로 애지중지 키워온 정많은 아버지. 그런데 어느날 그 딸이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두명의 사내가 있었다. 그들은 빈둥빈둥 거리며 놀고 부모 돈이나 뜯어내며 여자를 폭행하고 강간하는 것을 낙으로 사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여자를 강간하고 그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피해자들을 협박하여 자신들을 고발하지 못하게 했다.

 

언제나처럼 그날도 그들은 여자를 강간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수로 너무 많은 마취주사를 놓는 바람에 그녀는 죽게되고,

두려움에 떨던 그들은 그녀의 시체를 강물에 버린다. 그렇게 한 여자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한 사내가 있었다. 두 명의 친구에게 항상 맞고 그들의 시달림을 받던 사내. 그는 두 친구가 나쁜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공포심 때문에 그들을 도와주었다.
그러다가 그는 뉴스를 보게 된다. 시체로 발견된 한 여성. 두려움에 떨던 그는 죽은 여자의 아버지에게 몰래 문자를 보내어 자신들의 친구들이 범인임을 밝힌다. 자신의 정체는 밝히지 않은 채, 그는 그녀의 아버지가 자신의 친구들을 제거해 주기를 바랬다.

 
문자를 받은 아버지는 범인들의 아파트로 향한다. 몰래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범인들의 강간장면을 찍어놓은 비디오테이프를 보게 된다. 저도 몰래 자기 딸의 이름이 적힌 비디오를 보는 그.

 
비디오를 보면서 그는 분노가 자신의 온몸을 가득채움을 느낀다.
뇌에서 발생한 분노는 그의 온몸을 불타오르게 하면서 그를  악마로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마침 아파트에 들어온 범인 중 한명을 무참하게 죽인다.

그리고 남아 있는 범인 한 명을 찾아서 떠난다. 자신의 손으로 딸을 죽인 범인을 죽이기 위해서...

 
3.

법은 문자다. 그것은 현실을 완벽하게 반영할 수 없다. 거기에는 인간이 없다. 거기에는 피해자의 고통과 슬픔, 가해자의 범죄가 사람을 어떻게 파멸로 몰고가는지 적혀 있지 않다. 그리고 가해자가 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도 당연하게 적여 있지 않다. 정확하게 말하면 법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법은 인간의 나약함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살인범이 된 아버지. 이미 살인을 저지른 미성년자. 그 사이에서 법은 살인을 저지른 미성년자를 보호한다. 경찰들은 살인범을 보호하기 위해 살인범이 된 아버지를 잡으려 하고, 살인범이 죽을 것 같은 최악의 경우에는 그 살인범을 보호하기 위해 총을 발사하는 것도 용인한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일본의 소년법에 의거해 그 살인범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교도소에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해도 과연 그 칼날은 진짜일까? 정말로 악을 차단하는 힘을 가지고 있을까?'

소설 속에서 칼날은 방황하고 있었다. 일선의 형사들조차 회의를 제기하고 아버지를 동정하는 상황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것은 정의를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가장한 채 일시적으로 상황을 모면하는데 급급했다.

법의 그물에 드러난 구멍 속에서 정의는 부유하고 칼날은 방황했으며, 범죄자는 구멍 속에서 살길을 찾아 낸다. 어이없게도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들은 법의 가장 큰 희생자가 되어버린다.

 

'한 사람의 인생을 빼앗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는 인생을 빼앗기지 않는다.'

 

법은 어디로 가야할까? 법이 방황하지 않게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가? 만약 조금이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범죄가 일어난 상황에서 피해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서로 노력하는 정도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이 방황하지 않게 될 것인가? 알 수 없다. 정말 알 수 없다...

 

4.

이 소설을 읽으며 난 강렬한 분노를 느꼈다. 근데 그 분노의 대상이
범죄자나 사회가 아니라 작가였다. 작가가 지나치게 냉정했다는 게 내 불만의 이유였다. 그가 너무 냉정하게 결말을 내려 버렸기에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조금 더 낭만적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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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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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사랑 part1.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 사랑은 내가 아주 갑자기 느끼게 된 것이다. ...
클로이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그녀의 두손이 베이지색 양모 외투의 허리띠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지켜보았으며,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문장을 끝맺는 법이 없다는 것이, 약간 불안해하는 것이, 귀걸이의 취향이 아주 세련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너무 어색해 보였지만, 그래도 그녀가 사랑스럽다는 결론은 피할 수가 없었다. 

완전한 이상화의 순간이었다.'

-사랑은 그렇게 순간적으로 찾아온다. 그녀(그)가 단지 거기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은 시작된다. 그러나 순간적으로 찾아온 사랑은 또 순간적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사랑part2. 독일인의 사랑/ 막스 뮐러

'마리아:하지만 왜 당신은 나 같은 병자를 사랑하고 있나요?

나: 왜냐구요? 마리아.

어린 아이에게 왜 태어났는지 물어 보십시오. 꽃에게 왜 피어 있는지 물어 보십시오. 태양에게 왜 빛나는지 물어 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 

마리아, 당신은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훌륭한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에게 호의를 가지며 당신을 좋아하고,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은 운명 그 자체이다. 우리는 그(그녀)를 사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운명적인 사랑이 아니라 운명 그 자체인 사랑. 그것이 사랑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사랑part3.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질투. 사랑에 빠질 수 없는 요소. 이 악마적인 사랑의 조미료는 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사랑을 파멸의 수렁텅이로 빠트리기도 한다. 이 소설은 질투에서 시작한다.

'사랑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됐다면 거기서 멈춰야 한다. 너무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광수와 선영의 결혼식.

13년간 선영을 사랑했던 사랑의 약자 광수는 결혼식 하기 직전 신부 대기실에서 전애인 진우가 선영에게 불러주었던 노래 '얄미운 사랑'과 그 노래에 대해 히스테리를 부리는 선영의 모습, 부케를 던지는 순간 부케 윗 단의 꽃 팔레노프시스가 꺽여진 모습을 보고 자신들의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질투는 그렇게 그를 찾아오고....

*얄미운 사랑의 가사: 사랑만 남겨놓고 떠나가느냐? 얄미운 사랑~

'우리가 사랑이라는 관계에서 혼자서 빠져 나올 때 마다 뭔가를 빼놓고 나온다는 점. 그리하여 사랑이 되풀이 될수록 그 관계 속으로 밀어 넣을 만한게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질투때문에, 자신이 바쳤던 사랑의 억울함 때문에 진우를 노래방으로 불러낸 광수는 '몰래한 사랑'만 계속 부르다가 화가 나서 진우를 때리고 '그날' 선영이랑 잤는지를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결국 그날의 진실이 드러나고...

'사랑은 나를 확장시키고 사랑이 끝나면 우리는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간다.'

 
광수의 아이를 밴 선영은 어느 비 오는 날 광수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광수가 선영이에게 처음으로 듣는 사랑고백이었다.

''사랑해'라고 말한다는 건 자신을 먼저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의미.'

선영을 너무 사랑했기에 자신의 사랑을 의심했던 광수.
사랑 받기만 원하지 사랑할 줄 모르는 진우.
그리고 사랑을 믿지 못하고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던 선영.
그들의 관계에서 사랑은 연약하고 불완전한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신의 모순적 면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사랑은 진짜 어떤 것일까? 그것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일까?

작가 김연수는 그런 물음에 대한 대답을 이 소설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그는 능청스럽고 사색적인 문장으로 삼각관계를 조망하며 우리에게 말한다. 사랑은 사랑의 당사자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가는 그 무엇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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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
김기찬 사진, 황인숙 글 / 샘터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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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리뷰 

우리 모두에게는 고향이 있다. 시골이면 시골, 도시면 도시...
나에게도 고향이 있다.
도시 한 동네에 조용히 틀어박혀 동네 아이들의 쉼터가 되는 골목,
그 골목이야말로 나의 고향이다.

누군가는 흙길에서 놀거나, 논두렁을 뛰어다니거나,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들처럼 골목길을 뛰어다니고 ,
구석구석 숨어있는 동무들을 찾고,
갑자기 집에서 튀어나온 누렁이한테 쫓겨서 달아나고,
골목길에서 야구하다가 누군가가 유리창을 깨뜨려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가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은 내가 잃어버리고 있었던 고향의 기억들을 펼쳐보인다.

재건축과 아파트 붐으로 점점 사라지는 도시의 골목들, 그 골목들에 스며있는 기억과 흔적들을 다시 들여다 보면서
나는 내 과거를 장식했던 그들이 그립다.
 

언제나 그곳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던 이름모를 꽃과 식물들아, 너희들은 잘 있니?
항상 우리들의 집을 지켜주고 우리와 함께 놀았던 해피,메리,쫑,독구 같은 개들과 고양이 나비야 너희들은 어디로 갔니?
골목길에서 울고 웃었던 우리의 이웃들,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아저씨와 아줌마들은 다 어디로 가셨습니까?
차분한 빗소리로 우리 머리를 헹궈주었던 지붕아 너는 어디에 있니?
비를 피하게 해주고, 겨울에는 고드름도 보여주고, 연인들의 몰래 키스의 장소도 되었던 처마야 너도 사라진거니?
누구나 쉴 수 있었던 평상아, 불량식품을 팔고 있었던 구멍가게야 너희들은 어디로 사라진거니?
도대체 너희들은 어디로 간거니?
이게 인생인거니? 너희들을 잊어버리고 다람쥐 쳇바귀 돌듯 살아가는게 인생인 거니?

그런 거였구나. 그게 인생이었구나............

 
오늘 그들이 그리워진다.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이 진정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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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랜드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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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감상
1.
네버랜드. 피터팬이 요정 팅커벨과 날아다니고, 후크 선장과 인디언소녀 , 인어, 시계 악어가 공존하는 환상의 세계. 그러나 네버랜드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곳에 사는 존재들이 늙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곳은 시간이 멈춘 곳이며, 시공간의 바깥에서 현실 세계의 물리 법칙의 영향을 받지 않는 환상의 공간이다.
 
2.
겨울방학을 맞아 대부분의 학생이 빠져나간 전통있는 남학교의 기숙사 쇼라이칸. 그곳에는 단 4명의 학생들만 남아있었다.
 
책에 나오는 인물중 가장 평범하고 솔직하며 감성적인 육상소년 요시쿠니.
운동을 잘하며 인간 관계에 능수능란한 호남아 간지.
독특하고 특별한 발상을 가진 창조적 소년 오사무.
냉정하고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며 사람의 마음을 간파하는 눈을 가진 미쓰히로.
 
그들은 자신들외에는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밀려드는 외로움과 서로에 대한 호기심으로 진실게임을 하게 된다.
첫날 벌어진 진실게임. 단,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한 번의 거짓말을 할 수 있도록 만든 룰은 존재했다. 그들도 서로의 발가벗은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카드게임의 패자로 가장 먼저 자신의 진실을 말하게 된 오사무.
그는 요새 죽은 어머니의 유령이 보인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렇게 된 이유가 자신이 어머니의 죽음을 원했고, 보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은 계속되는 어머니의 잔소리와 참견을 참지 못하고 어머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며, 실제로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죽었던 그날 오사무는 '엄마를 죽이려고 다가갔다. 그때 정체모를 푸른 손이 다가가서 전기면도기를 엄마가 있던 욕조에 떨어뜨렸다.' 그렇게 오사무의 어머니는 죽음을 맞는다. 그날 이후 오사무는 죄책감과 충격으로 어머니의 유령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그 다음날, 간지는 오사무의 거짓말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오사무가 보았던 그 푸른 손의 정체를 간파해낸다.
'너의 어머니의 푸른손이 나와서 전기 면도기를 집었어. 그렇지?'
 
그렇다. 오사무는 어머니의 자살을 목격한 것이다. 그때 그 충격, 그리고 당시 가졌던 자신의 감정이 그의 기억을 왜곡하고 어머니의 유령을 불러왔던 것이다.
 
첫날 밝혀진 한 사람의 진실. 이제 소설 속 소년들은 자신들이 간직한  충격적이고 슬픈 진실을 진실게임을 통해 털어놓기 시작하는데....
 
'들어! 이런 이야기가 듣고 싶었잖아? 너희는 늘 그래...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만두라고 하지. 자기가 듣고 싶어해놓고 도저히 못 듣겠다고 하지.'
'늘 그래. 어른들은 다들 그래... 내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서 이해해 달라고 그래... 아무도 내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하면서 나더러 자기를 이해해 달라고 그래.'
 
그들에게 그 겨울은 진정 잊지못할 영원한 네버랜드의 기억이었다.
 
3.
우리에게도 네버랜드와 비슷한 기억이 있을까? 어쩌면 우리의 기억에서 그 비슷한 시절을 찾는다면 아마 사춘기 시절이 아닐까.
이 책의 저자 온다리쿠는 아마 나와 비슷한 시각을 가진 듯하다.
 
극도의 불안감과 강렬함이 공존하는 그 시간.
부서질 듯한 연약함과 미숙함, 열정과 젊음이 공존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뭉친 시절임에도 학교라는 공간의 폐쇄성과 주위의 시선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속으로 삼켜야만 하는 시기.
괴담과 입시 스트레스와 풋풋한 사랑과 욕망이 꿈틀대던 신비한 시절.
모두가 피터팬이었고, 후크였으며, 시계 악어였던 그 시절.
 
온다 리쿠는 서정적이고, 꾸미지 않은 문제로 그때 그 시절을 살아가는 소년들의 불안함과 우울을 드러내 보이며 현실에 찌들어서 자신의 과거를 잃고 사는 나 자신에게 사춘기가 네버랜드 였음을 알려줬다.
 
인생에서 영원할 것 같았던 그 시절. 우리는 정녕 그 시절을 잊고 사는 것이 아닐까? 그 시절을 잊고 앞만 보고 달리며 삶의 목적을 잃고 틀에 박힌 로보트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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