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사요코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

 

1.

'학교란 얼마나 이상한 곳인가.

같은 또래의 수 많은 소년소녀들이 모여들어

저 비좁은 사각 교실에 나란히 놓고 앉는다.

얼마나 신기하고 얼마나 유별난,

그리고 얼마나 굳게 닫힌 공간인가.'

 

학교라는 공간.

그곳은 신비의 공간이다.

많은 이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앉아서 비슷한 생활과 사고를 하는

동일화의 마법이 진행되는 곳.

동시에 그곳은 공포의 공간이다.

우리가 느꼈던 절망감, 슬픔, 아픔, 공포심이

뭉쳐서 무언의 공포를 형성하는 곳.

 

그래서였을까?

학교에는 유달리 괴담이 많다.

우리들의 공포를 먹고 자라는 괴담은

우리의 공포가 형상화된 것이다.

우리의 공포가 괴담을 만들고

공포심을 먹고 자란 괴담이

우리를 잡아 먹는 곳이 학교이다.

 

<여섯번째 사요코>는 바로

이 학교 괴담에 관한 이야기이다.

 

2.

우리 학교의 어떤 '행사'는 게임과 비슷해요.

그것이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해요.

그러나 이 행사는 3년에 한 번씩 어김없이 이루어지죠.

우리 학교의 행사에서는 게임의 '범인'에 해당하는 사람을

'사요코'라고 불러요.

'사요코'가 누구인지는 '사요코'자신과

그 '사요코'를 지명하는 바로 전의 '사요코'밖에 알지 못해요.


다음 '사요코'는 바로 전 '사요코'가 있었던

해의 졸업식 당일에 지명되요.

재학생이 졸업생에게 꽃다발을 건넬 때

어떤 메시지가 다음 '사요코'가

되어야 할 사람에게 전달된다고 하더군요.

이 메시지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사요코'가 될 것을 승낙했다는 증거로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 아침에

자기 교실에 빨간 꽃을 꽂아요.

빨간 꽃이 꽂힌 순간부터 그 해의 게임은 시작되죠.

'사요코'가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

자신이 '사요코'임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면 그것이

그 해가 '길할 징조'이고 그 해의 '사요코'가 이기는 것이다.

우리가 졸업하던 해는 '여섯 번째 사요코의 해'라고 불려요.

그런데 그해는 유달리 기이하고 무시무시한 일들이 많았죠.

 

<여섯번째 사요코>는 그 해에 일어난 일을 기록한 거에요. ^^

 

3.

여섯번째 사요코의 해에

사요코라는 여학생이 학교로 온다.

 

학교의 전설 속 주인공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요코.

 

그녀의 등장은 이제 학교에

새로운 괴담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 낡은 학교에는

그 안에서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뭔가가...'

 

그녀와 그녀 주변에 계속해서 일어나는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사건들.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녀는 우리의 공포가

만들어낸 존재인걸까?

 

3.

예전에 친구들이랑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수능시험날이 유달리 추운 이유는

대학에 못 가고 죽은 귀신들의

한 때문이라고.

웃으며 한 이야기.

그러나 이것은 학교 괴담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누군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상의

이야기를 한다.

그것을 들은 아이들은 다른 이들에게 그것을 전한다.

그런데 전하는 도중에 아이들의 이야기는 달라진다.

살이 붙고, 각색되고, 변형되면서 만들어진 이야기는

진짜로 무섭고 실제같은 괴담이 된다.

 

괴담의 생성.

그것은 학교라는 공간의 특수성과

그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학생들의 공포심이 함께 만들어낸

일종의 창작물이다.

 

괴담을 만들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환경.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잃고 살아가는 학생들.

불안하고 미숙한 청소년기의 학생들은

그렇게 자신의 텅 비어버린 영혼을 괴담으로,

연애인에 대한 동경같은 것으로 위로하고 있다.

 

학생들이 만들어낸 사요코.

학교라는 공간이 자신의 틀을 계속 고수한다면

사요코는 언제나 돌아올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공포심을 먹으면서.

'돌아왔어.'

 

*전교생을 모아놓고 학생 한 명마다

공포스러운 연극의 한 구절을 읊게 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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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의 7일
미우라 시온 지음, 안윤선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리뷰

1.

로맨스 소설 전문 번역가인 아카리는

혼란스러웠다.

 

그녀의 연인 칸나는

서른 살의 나이에

자기 맘대로 대책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겠다고 이야기하며

그들의 사랑을 흔든다.

 

그녀의 아버지는

칸나를 못 미더워하고

그녀를 종 부리듯이 부리려 한다.

 

자주 가는 술집의 여종업원

마사미는 칸나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거기다가 감당 못하는

여름날의 더위까지.

 

계속되는 혼란속에

아카리는 자기가 번역하고 있는

소설을 뒤바꾼다.

 

천편일률적인 선남선녀의

해피엔딩이었던 소설이

그녀의 개입으로

전혀 다른 형태의 소설로 바뀐다.

 

멋지고 잘생긴 주인공은

갑자기 칼을 맞아 죽고

'저질러버렸다. 드디어 워릭을 죽이고 말았다.'

조연에 불과한 남자 주인공의 친구는

주연에 가까운 활약을 펼친다.

'산도스의 활약이 있으면 좋을텐데.'

수동적이고 힘없는

캐릭터였던 여자 주인공은

위기를 능동적으로 극복하는

인물로 변신한다.

'나는 의지를 가진 한 인간이라고.'

 

<로맨스 소설의 7일>은

이렇게 그와 그녀의 사랑,

로맨스 소설의 내용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7일동안 기록한 소설이다.

 

2.

사랑은 로맨스 소설이 아니다.

사랑에는 삶의 굴곡이 있다.

현실 속의 사랑은

인간의 희노애락과 예기치 못한 행동들이 있다.

 

그리고 사랑은

반드시 잘생긴 인물들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사랑은 만인이 향유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로맨스 소설은

판타지다.

'로맨스 소설은 전부 판타지다.'

 

<로맨스 소설의 7일>은

그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의 천편일률성을

탈피할려고 아예 로맨스 소설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소설과 현실의 사랑을

비교하면서 소설의 환상성과

현실의 일상성을 섞고 있다.

 

힘들고, 아파하는 것도 사랑임을

환상의 목소리가 아닌

현실과 같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이 소설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환상이다.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로 변해버린

아카리가 창작한 로맨스 소설도 환상이고,

일상적인 듯 보이지만

따듯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아카리와 칸나의 사랑도 픽션이다.

 

하지만 이런 사랑이라면,

이런 로맨스라면,

환상의 날개를 벗어버린

일상의 무게가 느껴지는 사랑이라면

우리가 꿈꾸고 해 볼수 있지 않을까?

 

3.

로맨스 소설은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을 하는 순간

우리의 일상은 우리만의 로맨스 소설이 된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울고,웃고,힘들어하는

사랑의 삶이 우리를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사랑을 마음껏 할 필요가 있다.

그 혹은 그녀가 떠났다면

마음껏 슬퍼하고 괴로워하라.

 

그러나 그 상처가, 그 경험이

다음번에 펼쳐질

당신만의 로맨스 소설을 더욱 윤택하게 하리라.

 

그렇게 우리의 로맨스 소설은

더욱 풍성해지고, 알차게 될 것이다.

 

부디 우리 모두

열심히 로맨스 소설을 쓸 수 있기를

오늘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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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 삐에로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0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리뷰

1.



<이기적 유전자>의 표지에서

'인간은 유전자 보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기계이다.'

 

이기적 유전자를 처음 읽었을 때

이 이야기는 내 머리를 강타했다.

인간이 유전자의 욕망에 종속된

도구라는 발상은

인문학적 사고,진보,감성,예술같은 것들이

인간 생존 욕구의

변형된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나의 사고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허울좋은 위선을

걷어내는 시원한 폭로였는지도 모른다.

 

동시에 그것은 인간이 단지 유전자 생존의

노예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우리가, 여기 이렇게 글을 쓰는 내가

단지 번식과 생존의 욕구에 의해서만

조종되는 존재인가?

 

인간의 모든 것을 유전자로 환원하는

도킨스식 유전자 결정론은

인간을 완벽하게 설명하는가?

그것은 우리의 삶 1초1초를

빈틈없이 규명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 정도에 불과한가?

 

이사카 코타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는 <중력 삐에로>에서

'그것은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었다.

 

2.

<중력 삐에로>는 인간 사회의

중력에 도전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인간을 날지 못하게 얽어매는 중력.

그것은 인간 사회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강력한 중력은

유전자였다.

 

도킨스가 말한 대로라면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초강력 블랙홀인 유전자.

그 유전자라는 중력을 벗어나기 위한

세 남자의 몸부림이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동생을 아끼고 헌신하는 형 이즈미.

엄마의 강간사건으로 탄생한

피가 다른 동생 하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하루를 자기의 친아들처럼 사랑하고

응원하는 암 말기의 아버지.

 

이사카 코타로는

DNA라는 세 글자가 발생시키는

거대한 중력으로

무거워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즐겁고 상쾌한 문체로 유쾌하게

이끌어가고 있다.

 

중력을 거부하는

하루라는 삐에로의 몸부림은

성공할 수 있을까?

 

'정말로 심각한 것은 밝게 전해야 하는 거야.

무거운 짐을 졌지만,

탭댄스를 추듯이.

저렇게 하늘을 붕붕 나는

삐에로에게는 중력이 없어.

즐겁게 살면 지구의 중력 같은 건 없어지고 말야.'

 

3.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에서

'우리는 덧없고, 우리는 형성도중이며,

우리는 가능성이다.

우리는 완벽하거나 완성된 존재가 아니다.'

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는 어쩌면 유전자의 욕구에 종속된

노예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가능성이 있다.

완벽하지 않기에, 불완전하기에

유전자에 종속된 욕구를 벗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가 걸어가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그 가능성을 형성하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 모습이, 인간 세상의 모습이

어둡고 힘들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능성과 꿈을 믿고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을 통해서

우리는 도킨스에게

'우리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고.'

말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4.

중력을 벗어나는 것은 너무 힘들다.

도중에 중력에 잡혀서

지상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삐에로의

몸부림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삐에로는 항상

하늘을 보고, 하늘을 꿈꾸니까.

 

저기 하늘이 있고, 별이 있기에

삐에로는 오늘도 몸부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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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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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1.

책을 읽다보면

종종 책 제목과는 다른

내가 생각하는 제목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

 

이 책도 그런 경우인데,

나는 이 책에 이런 제목을 붙이고 싶었다.

<사라진 운동권을 찾아서>.


한때 전공투로 대변되는 일본의 운동권은

우리나라의 운동권 저리가라 할 정도로

과격하고 거칠게 기성정치를 비판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의 운동권은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보다 훨씬 더 이념적이었던

일본의 운동권은

79년에 구소련이 행한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인해

구소련이 자신들이 생각한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급격하게 몰락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꺼리는 상황이 도래했다.

 

오쿠다 히데오는 그런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순수한 운동권 생활인을

등장시키는 소설을 만든다.

그것이 바로 <남쪽으로 튀어>이다.

 

2.

지로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프리라이터를 자처하며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은 기본이고,

지로에게 학교는 자본주의의 노예를

양성하는 곳으로 다니지 말라고 강요하고,

세금을 내라고 집에 온 공무원에게

국민연금 따위는 못 내겠다고

큰 목소리로 외치기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가정방문을 온 담임 선생님에게

국기에 대한 경례와 기미가요 제창의 부당함을

지적하면서 당황케 하고,

국가 공무원과 경찰에 대한 위험한 발언을

거침없이 하는 인물이다.

 

이런 아버지를 지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부끄러워하며

그는 아버지를 감추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지로를 둘러싼 상황은

그의 가족을 가만 놔두지 않는 쪽으로

흘러간다.

 

지로와 그의 가족들은

어떤 일들을 겪을까?

 

단, 하나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아버지의 소원대로

그의 가족이 진짜 남쪽으로 간다는 점이다.

 

"그럼 나는 국민을 관두겠어."

아버지가 가슴을 쭉 젖히며 말했다.
"예?"

아주머니의 목이 앞으로 쑥 내밀어졌다.
"국민이기를 관두겠다고.

애초부터 원했던 일도 아니었으니까."
"...어디, 해외로 이주하시려고요?"

갑자기 목소리 톤이 낮아진다.
"내가 왜 해외에 나가?

여기 거주한 채로 국민이기를 관둘 거야."
...

 "사람을 저희들 맘대로 국민으로 만들어놓고

이래저래 세금을 뜯어 간다니까.

그러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피지배층이라는 얘기야?

정말 웃기고 있어."

  

3.

한때는 저항과 이상의 분위기가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뭐라해도

자본이 부르는 승리의 찬가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쉽게 복종하고,

그렇게 쉽게 체제의 의지대로 끌려간다.

 

우리는 이제 혁명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학생은 토익과 자격증을 이야기하고,

성인들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만

외치고 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살기 위한

생존욕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기회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지기 위한 욕망을

가질 뿐이다.

 

그러나 노력한다고 해도

사회가, 우리의 삶이 나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삶은 더 피폐해지고

스트레스는 늘어나고

사회는 불만으로 가득차고 있는 실정이다.

 

오쿠다 히데오는 그런 사회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일본의 기성 세대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소설을 쓴 듯하다.

 

젊은 시절 간직한 이상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좌파의 중앙집권적 경직성을 탈피한

이상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지로의 아버지는

그런 오쿠다의 분신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지배집단의 부조리에 항거하던

지로의 아버지가

남쪽 섬에서까지 쫓겨나며

진짜 남쪽의 이상의 섬으로 떠나는

모습은 현실에 대한

오쿠다의 외침처럼 들려온다.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 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p245)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2권 288~9쪽)

 

“하지만 너는 아버지 따라할 거 없어.

그냥 네 생각대로 살아가면 돼.

아버지 뱃속에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벌레가 있어서

그게 날뛰기 시작하면

비위짱이 틀어져서 내가 나가 아니게 돼.

한마디로 바보야, 바보.“(2권 245~6쪽)


 

4.

이 책은 재미있다. 경쾌하다.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오쿠다는 특유의 유쾌함으로

재미있는 소설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게 시종일관 즐겁다가도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생각의 여운을 남긴다.

 

남쪽으로 떠나버린 이상주의자들.

이상주의자가 떠나버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맞을까?

 

아마도 그건 우리만의 삶이리라.

그 우리만의 삶은

우리가 그려나가는 삶의 궤적이다.

그것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상주의자들을 남쪽으로 몰아내는 삶일 수 있고,

안보이는 한 구석에 그들이

남겨질 수도 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

아니면 현실만 가득한 삶일수도 있다.

 

그 어느 쪽이든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현실과 삶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대리라.

그러면 다시 남쪽을 꿈꾸고,

남쪽을 꿈꾸는 또다른 소설을 만나리라.

 

그렇게 삶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5.

남쪽으로 떠나는 꿈을 한번 꾸어본다.

아름다운 풍광 속에

지로의 가족들이 다투지 않고

뛰어다니는 그런 곳을.

우리 모두가 뛰어다니는 그런 곳을.

그것이 불가능할지라도.

 

*개인적으로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 중에서

이 소설을 가장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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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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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물기가 쫙 빠진 걸레와 인테리어 없는 초실용적인 건물

 

상상을 한번 해보자.

 

첫번째 상상

상상의 공간 속에 걸레가 하나 있다.

그런데 이 걸레에 잉여 물기는 거의 없다.

마치 인간이 아닌 기계가 한 것 같은 걸레의 물기짜기.

그러나 이 걸레의 물기를 짠 인물은 인간이다.

 

두번째 상상

이번에는 상상의 공간 속에 건물을 하나 떠올려 보자.

이 건물은 오직 주거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모든것을 희생한 초실용적인 건물이다.

인테리어는 하나도 없는 아주 삭막한 건물.

 

물기가 쫙 빠진 걸레와 인테리어 없는 초 실용적인 건물.

<호숫가 살인 사건>를 읽고 내가 떠올린 이미지였다.

 

모든 것이 결말로 연결되는 소설

 

<호숫가 살인사건>은

미사여구나 수사, 잉여적 주장이

거의 배제된 채 하나의 결말로 달려가는

꽉 짜인 구성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냉정하게

결말과 주제를 위해서 모든 것을 거세시킨 상태로

분산된 조각들이 하나의 퍼즐을 완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퍼즐 속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떠오른다.

 

사람잡는 교육현실.

 

사람잡는 교육

 

한국의 교육이 심각하게 과열된 상태인 것은 맞다.

그러나 <호숫가 살인 사건>에서 드러난

일본의 교육현실은 한국의 교육보다

더한 모습을 보여준다.

 

초등학교 때 이미 유명 사립중학교에 가기 위해서

부모들끼리 그룹을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칠 과외선생을 뽑고,

과외스케줄을 작성하며

과외합숙을 시키고,

 

아이가 입시에서 혹시라도 떨어질까봐

사립중학교의 임원들을 매수하고,

성접대까지도 하는 교육 현실.

 

이미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

광기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그 광기의 블랙홀은

인간들의 인성을 잡아먹는 것도 모자라

사람의 목숨까지 삼켜 버린다.

 

호숫가를 맴도는 원혼

 

아이들의 과외합숙을 따라서 호숫가로 온 부모들.

그들은 평온하고 별일없는 나날을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사태는 그들의 예상을 벗어난다.

갑자기 들이닥친 살인사건으로 인해서

그들은 모두가 공범이 되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노력한다.

 

<호숫가 살인사건>은 그 은폐의 과정을

생생하고 기록한 소설이다.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아닌,

인성과 사람을 죽이는 교육과

과열된 교육 현실이 불러일으킨 참사.

 

그 속에서 살해당한 원혼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호숫가를 맴돌고 있었다.

 

동시에 영혼이 파괴된 아이들과 부모들의 영혼도

호숫가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누구의 책임인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

 

책을 덮고 나서

피할 수 없는 무거움이 나를 덮쳤다.

 

*마지막의 반전은 히가시노 게이고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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