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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 1 ㅣ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평점 :
리뷰
1.
책을 읽다보면
종종 책 제목과는 다른
내가 생각하는 제목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
이 책도 그런 경우인데,
나는 이 책에 이런 제목을 붙이고 싶었다.
<사라진 운동권을 찾아서>.
한때 전공투로 대변되는 일본의 운동권은
우리나라의 운동권 저리가라 할 정도로
과격하고 거칠게 기성정치를 비판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의 운동권은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보다 훨씬 더 이념적이었던
일본의 운동권은
79년에 구소련이 행한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인해
구소련이 자신들이 생각한 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급격하게 몰락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조차 꺼리는 상황이 도래했다.
오쿠다 히데오는 그런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순수한 운동권 생활인을
등장시키는 소설을 만든다.
그것이 바로 <남쪽으로 튀어>이다.
2.
지로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프리라이터를 자처하며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은 기본이고,
지로에게 학교는 자본주의의 노예를
양성하는 곳으로 다니지 말라고 강요하고,
세금을 내라고 집에 온 공무원에게
국민연금 따위는 못 내겠다고
큰 목소리로 외치기까지 한다.
뿐만 아니라 가정방문을 온 담임 선생님에게
국기에 대한 경례와 기미가요 제창의 부당함을
지적하면서 당황케 하고,
국가 공무원과 경찰에 대한 위험한 발언을
거침없이 하는 인물이다.
이런 아버지를 지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부끄러워하며
그는 아버지를 감추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지로를 둘러싼 상황은
그의 가족을 가만 놔두지 않는 쪽으로
흘러간다.
지로와 그의 가족들은
어떤 일들을 겪을까?
단, 하나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아버지의 소원대로
그의 가족이 진짜 남쪽으로 간다는 점이다.
"그럼 나는 국민을 관두겠어."
아버지가 가슴을 쭉 젖히며 말했다.
"예?"
아주머니의 목이 앞으로 쑥 내밀어졌다.
"국민이기를 관두겠다고.
애초부터 원했던 일도 아니었으니까."
"...어디, 해외로 이주하시려고요?"
갑자기 목소리 톤이 낮아진다.
"내가 왜 해외에 나가?
여기 거주한 채로 국민이기를 관둘 거야."
...
"사람을 저희들 맘대로 국민으로 만들어놓고
이래저래 세금을 뜯어 간다니까.
그러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피지배층이라는 얘기야?
정말 웃기고 있어."
3.
한때는 저항과 이상의 분위기가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뭐라해도
자본이 부르는 승리의 찬가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쉽게 복종하고,
그렇게 쉽게 체제의 의지대로 끌려간다.
우리는 이제 혁명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학생은 토익과 자격증을 이야기하고,
성인들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만
외치고 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살기 위한
생존욕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기회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많이 가지기 위한 욕망을
가질 뿐이다.
그러나 노력한다고 해도
사회가, 우리의 삶이 나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삶은 더 피폐해지고
스트레스는 늘어나고
사회는 불만으로 가득차고 있는 실정이다.
오쿠다 히데오는 그런 사회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일본의 기성 세대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 소설을 쓴 듯하다.
젊은 시절 간직한 이상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좌파의 중앙집권적 경직성을 탈피한
이상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지로의 아버지는
그런 오쿠다의 분신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지배집단의 부조리에 항거하던
지로의 아버지가
남쪽 섬에서까지 쫓겨나며
진짜 남쪽의 이상의 섬으로 떠나는
모습은 현실에 대한
오쿠다의 외침처럼 들려온다.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 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p245)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2권 288~9쪽)
“하지만 너는 아버지 따라할 거 없어.
그냥 네 생각대로 살아가면 돼.
아버지 뱃속에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벌레가 있어서
그게 날뛰기 시작하면
비위짱이 틀어져서 내가 나가 아니게 돼.
한마디로 바보야, 바보.“(2권 245~6쪽)
4.
이 책은 재미있다. 경쾌하다.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오쿠다는 특유의 유쾌함으로
재미있는 소설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게 시종일관 즐겁다가도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생각의 여운을 남긴다.
남쪽으로 떠나버린 이상주의자들.
이상주의자가 떠나버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맞을까?
아마도 그건 우리만의 삶이리라.
그 우리만의 삶은
우리가 그려나가는 삶의 궤적이다.
그것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상주의자들을 남쪽으로 몰아내는 삶일 수 있고,
안보이는 한 구석에 그들이
남겨질 수도 있는 상황일 수도 있다.
아니면 현실만 가득한 삶일수도 있다.
그 어느 쪽이든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현실과 삶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대리라.
그러면 다시 남쪽을 꿈꾸고,
남쪽을 꿈꾸는 또다른 소설을 만나리라.
그렇게 삶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5.
남쪽으로 떠나는 꿈을 한번 꾸어본다.
아름다운 풍광 속에
지로의 가족들이 다투지 않고
뛰어다니는 그런 곳을.
우리 모두가 뛰어다니는 그런 곳을.
그것이 불가능할지라도.
*개인적으로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 중에서
이 소설을 가장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