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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샤 ㅣ 페이지터너스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지음, 정영문 옮김 / 빛소굴 / 2022년 12월
평점 :
2023-14.쇼샤-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결말을 알고 책을 읽으면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요? 뻔히 결말을 아는데 책이 재미있을 수가 있을까요? <쇼샤>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폴란드의 유대인 공동체가 배경이고 20세기 초반이 무대라면 그러면 결말이 정해진 거 아닌가. 여기 나오는 유대인들은 모두 다 수용소로 끌려가서 죽거나 그전에 비참하게 죽거나 아니면 운좋게 여기를 빠져나가겠지. 읽기도 전에 저런 생각을 하니 책을 읽는 흥미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읽었습니다. 제가 읽기로 결정했으니까요.
그런데 <쇼샤>는 예상밖이었습니다. 이 책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흘러갑니다. 우선 이 소설에 나오는 유대인들은 역사적 사료나 통계자로에 나오는 단순한 희생자로서의 유대인을 거부합니다. 이들은 희생자이기 이전에, 생생히 살아 있는 사람들로 나옵니다. 사진 속 시체이거나 참사나 폭력의 희생자로서 물화되기 이전의 인간 그 자체로서의 모습으로서. 이들은 울고, 웃고, 미워하고, 사랑하고, 질투하고, 즐거워하고, 어떤 때는 악하고, 어떤 때는 순수하고, 서로를 위하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려 하고, 다가오는 나치의 그림자 앞에서 두려워하고, 자신들의 욕망을 따라서 무언가를 이루려 하고, 유대인이라는 틈바구니 안에서 자신들의 생각을 정당화하고, 패거리를 이루어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증명하려 하고, 삶을 살아나가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 이 모든 걸 종합하면 이들은 인간입니다.
우리는 이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이 이후에 겪는 일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희생자 이전에 인간으로서 살았다는 사실을 쉽게 인식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들에 얼마나 처참하게 죽는지 알기에, 이들의 삶을 이후에 다가오는 참사의 예비과정으로서 인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이후에 무슨 일을 겪었든, 이들에게 중요한 건 현재의 삶입니다. 현재를 사는 것, 현재를 하나의 인간으로서 사는 것, 이것이 아직 나치가 다가오기 전에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일 겁니다. <쇼샤>가 보여주는 게 그겁니다. 나치 이전의 바르샤바 유대인 사회를 살았던 작가인 나와 신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던 여인 쇼샤의 사랑 이야기와 그 주변 유대인들의 삶을 그려낸 <쇼샤>가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주는 게.
작가가 나치가 다가오기 이전에 소설을 끝내고, 에필로그에 전쟁 이후의 모습을 잠시 보여주는 건, 참사 이전에 유대인들이 인간으로서 살았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건 소설의 어딘가 경쾌하고 아이러니하며 풍자적이며 지적이며 신비하며 어딘가 슬픈 분위기와 일치하기도 합니다. 학살을 세밀하게 묘사하거나 역사의 무게감을 부각시키는 대신에 인간 삶의 모습에 집중하면서 유대인들도 유대인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인간의 삶을 그리는 데 집중하면서 형상화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나치의 그림자를 예고하는 혐오의 만연과 언뜻언뜻 드러나는 위협은 이들의 삶이 역사와 어쩔 수 없이 이어져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것마저 뺄 수는 없었겠죠. 그 모든 것들도 삶과 이어져 있으니까요. 네, 분명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들도 인간으로서 인간의 삶을 살았다고. 그 속삭임 속에서 저는 명심 또 명심합니다. 역사 속 희생자들 이전에 그들의 삶이 먼저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