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88.크리톤-플라톤(2)
*역시 이 글도 북플에서는 안 보인다고 해서 다시 올립니다.^^
나에게는 이 책이 하나의 책처럼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이 책이 네 개의 분리된 책이 한 권으로 묶인 것으로 보인다. 그건 고전독서모임의 영향이 크다. 고전독서모임을 시작하면서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천병희 번역본의 <플라톤 전집1>을 첫 책으로 선정했다. 모임 진행에서는 이 책을 한꺼번에 다 읽고 모임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네 번 나누어서 모임을 진행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따로, <크리톤> 따로, <파이돈> 따로, <향연> 따로 하는 식으로. 당연히 나는 하나의 책에 모아진 네 개의 작품들을 모임 시기에 맞추어서 다 따로따로 읽었다. 다 따로따로 읽은 탓인지, 지금 이 책을 봐도 여전히 내게는 네 개의 작품이 한 권에 모아진 느낌이 든다.
과거의 기억 때문인지, 나는 이 책을 작품마다 다 따로따로 읽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따로, <크리톤> 따로. 두 책의 인상은 과거와 달랐다. 과거에 <소크라테스의 변론>의 소크라테스를 광인으로 생각했던 나는, 다시 읽으며 소크라테스에게 설득됐다. <크리톤>은 과거의 읽은 느낌과 거의 유사했다. 거의라는 말을 쓴 것은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나는 이 책이 위험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위험하다는 느낌은 다시 읽으면서 더 커졌다.
어떤 면에서 더 위험하다고 나는 생각했을까? 이걸 말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책의 가치에 대해 먼저 말해야 한다. 이 작품의 가치에 대해 말하려면 '축의 시대'라는 말부터 시작해야겠다. '축의 시대'.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이 말은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고안한 표현으로,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를 일컫는 말로, 세계의 주요 종교와 철학이 탄생한 인류사의 가장 경이로운 시기라는 말이 나온다. 예수, 부처, 공자, 노자, 묵자, 소크라테스 같은 이들이 이 시기에 등장하면서 인류사는 그 이전 시기와는 전혀 다른 시대가 되어버렸다고도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주요 종교와 사상의 원형이 만들어진 시기라고도 할 수 있고. 그렇다면 이 시기와 그 이전 시기는 어떤 면에서 다른 것일까?
4대 성인이니 기독교, 불교, 유교, 도교, 고대 그리스 철학의 탄생 같은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축의 시기'는 그 이전 시기와는 다르다. 그 이전 시기를 대표하는 어떤 특정한 흐름이나 조류를 알기 위해서는 고대를 다룬 역사책이나 역사 교과서를 펼쳐볼 필요가 있다. 세계사를 다룬 역사책의 앞부분에서 볼 수 있는 것 중에 함무라비 법전이라는 것이 있다. 함무라비 법전에 담겨 있는 주요한 정신은 무엇인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변되는 응익주의. 당한 만큼 돌려준다는 정신. 세계사뿐만이 아니다. 한국사를 다룬 역사책을 살펴보라. 고조선 파트를 보면 8조법이라는 것이 등장한다. 8조법에 담긴 정신은 무엇일까? 바로 당한 만큼 돌려주는 응익주의이다. 세계사와 한국사의 앞부분에 등장하는 법조문이 공통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응익주의라는 것을 알고 나면 ,고대의 주요한 정신적이고 사상적인 흐름이 응익주의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예수, 부처 같은 이들은 달랐다. 이들은 당당하게 응익주의를 거부한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고, 부처는 자비를 주장했다. 응익주의를 거부한, 당한만큼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의 발견, 더 나아가 그것이 어쩌면 도덕적, 윤리적으로 좋은 것일 수도 있다는 발견은 시대를 뛰어넘은 진일보한 발전이다. 이들은 그렇게 한 시대를 뛰어넘은 주장을 해왔다. 소크라테스도 예수, 부처와 함께한다. <크리톤>을 통해서.
<크리톤>은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있는 소크라테스를 친구인 크리톤이 찾아오면서 시작되는 대화편이다. 둘은 감옥에서 대화를 나눈다. 크리톤은 죽을 위기에 처한 소크라테스를 살리기 위해 어떻게든 감옥에서 내보내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이 권하는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특유의 산파술을 이용해서 알리고, 친구를 자기 의지에 따르게 설득한다. 자기 목숨 살리려는 친구를, 옳지 못하다는 이유로 설득시키는 소크라테스는 여전히 내게 미지의 존재이지만(^^;;), 그가 크리톤에게 말하는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가 얼마나 그 시대의 시대 조류에서 앞서나갔는지 알 수 있다. 그는 국가가 자신에게 현재 불의를 저질렀다고 해서, 내가 그 불의를 똑같이 행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한다. 자기가 사랑하고 따랐던 국가이고, 자신에게 과거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이제 국가가 자신에게 불의를 저질렀다고 해서 불의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옳은 행동이 아니라는 식으로. 직접적으로 소크라테스는 응익주의가 옳지 못하다고 말하며, 자신은 응익주의를 따를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크리톤>은 한 시대의 지배적인 흐름에서 벗어난, 시대를 앞서간 책이다. 그러나 앞서간 흐름을 주장하면서 펼쳐놓은 내용중에 독재자나 권위주의자들이 좋아할 만한 부분이 많은 책이기도 하다. 국가나 국가주의에 대한 옹호, 이미 만들어진 법률에 대한 정당화나 옹호가 들어있기에. 독재자나 권위주의자들이 그 부분만 발췌해놓고 자신들 입맛에 맞게, 자신들의 행동이나 생각을 정당화하는 식으로 충분히 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크리톤>이 시대를 앞서간 주장을 하는 뛰어난 책이면서 동시에 충분히 위험한 책이라는 생각을 한다. 뛰어나면서도 위험한, 위험하면서도 뛰어난, 시대를 벗어나서 발전하려는 흐름과 한 시대를 고착시키려는 움직임이 공존하는,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책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