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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밑 페스티벌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물밑 페스티벌-츠지무라 미즈키
그 남자의 독서노트1
그는 사라졌다. 작디작은 방안 가득한 책과 노트들을 남겨두고. 언제나 부스스한 몰골로 작은 자기 방안의 작은 책상에서 영혼이 책에 빨려 들어간 것처럼 책을 열심히 읽어나가던 그를 우연히 만날 때마다, 나는 그가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그렇게 파멸을 예감하게 만드는 위험한 감각이 있었다. 책을 너무 많이 읽었고, 지나치게 열심히 읽었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현실과 책을 구분하지 못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이 ‘책’이라고 주장했다. 삶이라는 제목의 책에 자신이 글을 써나간다는 그의 주장은 광기의 수준을 넘어서서 묘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믿는 수준이 아니라, 그것이 당연하기에 일상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식으로 나른하게 말을 하는 그의 얘기를 들으며 나는 생각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몇 달 전부터 그와 연락이 되지 않으며, 불길함을 느낀 나는 그의 방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나는 책과 노트만 가득한 방을 보게 되었다.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였지만 오직 그만 없는 그 방을 보며 나는 그가 드디어 사라졌음을 알았다. 그의 휴대폰도, 그의 지갑도, 그가 목숨처럼 아껴서 언제나 넣어 다니던 작은 수첩과 볼펜도 언제나 놓여 있던 자리에 있었는데, 제자리에 있어야 할 그만 없었다. 그는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책들과 독서노트들을 남겨두고 어디로 간 것일까? 섣부른 추측 따위는 하고 싶지 않는 나는, 예전에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는 혹시라도 자신이 사라진다면 자신의 책들은 내 마음대로 하고 독서노트는 챙겨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그의 말에 따라서 우선 노트들을 집에 가져가기 위해 챙겼다. 그 외의 방의 물건은 그대로 놔두고 그의 방을 나섰다. 언젠가 그가 다시 돌아온다면 그것을 반기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 문득 그의 독서노트 중 하나를 펼쳤다. 독서노트 63권. 중간 부분을 우연히 펼치니 바로 일본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명인 츠지무라 미즈키의 <물밑 페스티벌>에 관해서 그가 적어놓은 글들이 보였다. 여기에 그 글 중 일부와 내가 쓴 글들을 적어 보겠다.
‘이 마을은 괴물이다.’라고 그는 적었다. 그 밑에는
‘괴물인 마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괴물이 되어야 한다. 괴물이 되어야만 마을 자체가 괴물이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괴물이기에 그들은 마을이 괴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마음껏 괴물스러운 행동을 벌일 수 있다.’라고 적혀 있다. 다시 조금 더 내려다보니 이런 글이 적혀 있다.
‘괴물들은 자신들의 행동이 절대로 괴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오만과 자만이야말로 괴물들이 괴물들로서 살아나가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것이다. 자신들이 괴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마음껏 괴물성을 향유하며, 마을이라는 괴물을 지켜나가게 된다.’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도대체 이 책은 무슨 책이기에 괴물이라는 말만 잔뜩 있는 것일까?
나는 호기심에 <물밑 페스티벌>을 읽었고, 읽고나서야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게 됐다. 낭만적이고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이자 일종의 성장소설이기도 한 이 소설은 읽다보면 책 자체가 괴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소년의 비극적 사랑을 만든 원인부터, 사랑의 과정에서부터 비극적인 결말까지, 악습과 억압이라는 물밑에 가득 잠긴 마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괴물인 마을에서 살아가는 얼마나 괴물스러운지 보여준다. 가장 무서운 건, 괴물들의 자기 정당화나 그것들을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생각이 아니라,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무 탈 없이 일상을 유지해나가려는 그들의 욕망이다. 분명히 부당하고, 폭력적이며,부도덕하기 그지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그것들을 자신들의 일상이라고 여기면서 그것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그들의 욕망이야말로 '괴물의 진정한 핵심'이다. 그도 그걸 알고 글로 썼다.
'마을은 계속 괴물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괴물이 괴물로서의 일상을 유지해갈 수 있다. 자신들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괴물들은 계속 괴물들을 양산해내며, 괴물로서의 변화를 거부한 자가 생기면 어떤 식으로든 그들을 포섭하려 한다. 포섭에서도 그 사람이 괴물로서의 변화를 거부하면, 그들은 한순간의 양심의 가책이나 망설임 없이 그들을 제거한다. 도덕성과 윤리 의식, 이상주의에 사로잡혀서 괴물로서의 변화를 거부하는 이들을 그들을 순식간에 으스러뜨린다. 사랑의 광기와 낭만성에 사로잡혀 괴물이 되는 것을 거부한 소년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괴물성 앞에서 소년의 순수함과 사랑은 먼지가 되어 사라진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이 책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괴물되기냐 괴물되지 않기냐' 하는 실존적인 물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지금 이 삶에서 중요한 것은 '죽느냐 사느냐'가 아니라 '괴물되기냐 괴물되지 않기냐'이다.
‘제발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세요. 다음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유키미를 지킬 것이다. 아무리 우스꽝스러워도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손을 다시는 놓지 않을 것이다.'
‘평온한 일상을 ’되찾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마을에서는 언제 어느 때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저 먼 옛날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