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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ㅣ 창비시선 344
김선우 지음 / 창비 / 2012년 3월
평점 :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김선우
저는 아직 시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닌가 봅니다. 읽어도 잘 이해가 안 되거든요. 읽고 또 읽어도 이해가 안 된다는 건 원래부터 시를 읽을 수 없는 사람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시가 저랑 안 맞아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몰라도 시를 읽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시가 몰라서 재미있고, 낯설어서 재미있고, 이해 못해서 재미있고(뭔가 말이 안 되는 소리군요.^^;;), 가끔 이해되면 더욱 재미있고, 나의 마음을 울리는 표현이나 단어가 나오면 너무 좋고, 그 외의 이런저런 이유들로 시를 읽는 걸 좋아합니다. 주저리주저리 여러 이유를 말했지만 무엇보다 시를 읽다 보니 읽는 걸 좋아하게 됐다는 게 가장 정확한 이유인 것 같습니다. 잘 안 읽혀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읽다보니 시를 읽게 됐고, 이후로는 운명이려니 생각하며 시를 지금까지도 읽고 있는 것이죠. 수능시험 치고 나서 ‘이제는 시와는 절교다’고 외친 나같은 인간이 어느 순간 시를 읽고 있다는 사실이 운명이 아니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운명으로서 시 읽기라는 내 삶의 운명의 여정에 또 하나의 시집을 더해 봅니다. 운명처럼 다가온 김선우 시인의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너무 좋았습니다.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라니, 캬~ 너무 멋지지 않나요? 시인은 시인 체게바라가 되고 싶었던 걸까요? 이런 쓰잘데기없는 낭만적이고, 호르몬 과다 분비 남학생 같은 생각을 하며 시집을 펴들었는데... 펴들었는데... 분명히 글을 보고, 단어를 보고, 문장을 보고, 시집을 본 건 맞는데... 근데 왜 읽어도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걸까요? 분명히 한국말이고, 한글이고, 내가 지금까지 평생토록 써온 말이고, 평생 읽어온 글인데, 읽어도 왜 모르는 걸까요? 더 재미있는 사실은 모르겠고, 이해하지도 못하고, 굉장히 낯설었는데 다 읽고 나서는 내 뇌가 ‘좋았다’고 저 자신에게 속삭이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엥? 이해도 못하고, 무슨 말인지도 몰랐는데 좋았다고? 이거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인데...(왜 이 시집과 관련된 일들은 온통 이해 못할 일 투성이일까요?^^;;) 아무리 이해가 안 되는 일이라도, 분명한 건 내 뇌가 좋다고 얘기했다는 점입니다. 결론적으로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는 저에게 좋은 시집이었습니다.
음, 이걸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읽고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좋았다’라는 저 자신의 상황을 표현할 말을 쉽게 찾을 수 없네요. 그래도 이왕 이렇게 글을 썼으니 이 이해 못할 상황을 한번 저 자신의 생각을 담아 표현해볼게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저는 이 시집을 이해하지 못한 게 확실합니다. 시인이 자신만의 감수성과 감정과 시각과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떠올린 것들을 자신만의 언어적 정련 작업을 거쳐 만들어낸 시들을 저는 전체적인 틀 속에서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그런데 시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정신의 산물을 전체적인 틀로서 파악하는 게 가능할 일일까요?) 하지만 저와 마주친 시의 일부분이, 반짝반짝 빛나는 시의 언어들이, 표현들이 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더군요.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그 시의 일부분들이 내 머리와 가슴 속으로 파고 들어와서 자리를 차지하고는 저를 뒤흔들었습니다. 그건 마치 사랑과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사랑을 할 때, 우리는 왜 사랑을 하는지 정확하게 얘기하지 못합니다. 사랑에 ‘왜?’는 부질없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저 사람이 왜 좋은지?’ 정확하게 얘기하지 못합니다. 그저 저 사람이 있기에 사랑한 것이고, 사랑하기에 저 사람이 좋은 겁니다. 이 시를 읽고 나서의 저의 기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 좋은지 정확하게 말하지 못하겠지만 그 시가 저기 있어서, 그 시가 나의 눈앞에 있어서, 읽다보니 그 시가, 그 표현들이, 그 언어들이 좋아서 좋아하게 됐습니다. 말장난 같겠지만, 좋으니까 좋은 겁니다. 어쩌면 사랑이라고도 부를 수도 있겠네요.
아, 맞습니다. 저는 시인이 쓴 시와 사랑에 빠졌습니다.(시인과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이걸 유의해주세요.^^)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소외되고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아픔과 고통과 슬픔과 소중함을 보이게 하고, 들리게 하고, 느끼게 하는 시인의 시를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니까 그것들이 나의 일처럼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그건 시인의 말을 따르자면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피와 폭력의 냄새를 풍기는 폭력이 아니라, 사랑하면서 이루어지는 혁명. 보고 듣고 알고 느끼면서 이루어지는 연대와 공감과 애정과 관심의 집합체로서의 혁명. 폭력과 포연과 피가 없는 지극히 사적이지만 충분히 위력적인 혁명. 이 혁명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혁명입니다. 사랑이면서 혁명이고, 혁명이면서 사랑입니다. 사랑-혁명. 혁명-사랑. 바꾸고 또 바꾸어도 같아지는 두 개의 단어가 보여주는 사랑과 혁명의 무한한 순환. 시가 보여주는 세계에 저는 매료되었고, 매료된 순간 저는 시가 좋고 사랑스러웠습니다. 물론 그 모든 건 혁명이고요.
하지만 이 혁명은 완벽히 이상적인 혁명의 구현은 아닙니다. 이 혁명은 아직 오지 않은, 어쩌면 제 살아생전에는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우리가 끊임없이 기다려야 할 혁명은 아닙니다. 이 혁명은 그 혁명을 기다리며 현재라는 순간순간에 우리가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는 혁명입니다. 그러니 이 혁명은 무한히 계속되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우리에 속하는 나라는 각각의 개인이 현재 속에서 무한히 구현하는 것이 이 혁명입니다. 혁명을 사랑으로 바꾸면 현재 속에서 이루어지는 무한한 사랑의 몸부림이자 구현이 이 혁명의 실체입니다. 이런 충격적이고 아름다운 얘기를 저에게 이성이 아닌, 느낌을 통해서 깨닫게 만든 것이 이 시집의 힘이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이 시집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까지 제가 느낌과 감정으로서 알게 된 것을 나름대로 길게 풀어서 써봤습니다.(이게 정확한지는 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저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확실한 건 이 시집이 저에게 사랑으로서의 혁명, 혁명으로서의 사랑을 얘기해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일단 얘기 들었으니 멈출 수는 없습니다. 저는 지금 당장 이 혁명을, 사랑을 시작해야겠습니다. 무한한 혁명의 시작을 외치며 이제 이 글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지금부터 나와 좋은 관계를 맺을 사람들이여, 내 앞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것들이여,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