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비극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포레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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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비극-노리즈키 린타로 

 

과거에 추리 소설을 몇 권 읽지 않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의 나는 추리 소설이라는 신대륙을 탐

사하는 데 푹 빠져있었다. 추리 소설들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요소들을, 아이처럼 신비하고 즐겁

게 느끼면서, 추리 소설 자체의 재미를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향유했던 것이다. 그건 마치 범죄

사건을 몇 건 경험하지 않은 젊고 패기 넘치는 형사가 범죄 수사에 나서는 것에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추리 소설을 읽을 수 없다. 초창기의 재미와 느낌 때문에

추리 소설에 반해서 몇 백 권을 읽어버린 지금의 나에게 추리 소설은 과거의 신대륙이 아닌,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구대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추리소설 몇 백 권의 세계에 빠져든

경험은, 추리 소설을 읽을 때 더 이상 알 수 없는 것을 알아가는 '미스터리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긴장감 넘치게 확인하는 '서스펜스의 재미'를 느끼 

게 한다. 과거의 젊은 수사관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범죄 사건들에 익숙해져서 노회한 수사관이

되는 것처럼. 

 

이 말을 왜 했냐면, 내가 <1의 비극>을 읽으면서 노회한 수사관의 느낌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을 읽다가 중반도 되기 전에 범인이 누구인지, 범인이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알아

버렸다. 나머지 부분은 나의 추리가 맞는지를 확인하는 것에 불과했다. 이때의 독서란, 과거의

추리 소설 독서가 전해주던 쾌감이 사라진 독서이자 다른 방식의 안정된 재미를 가져다주는

독서였다. 물론 과거의 느낌이 그립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잘 알고 있다.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은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면서.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나만의 '1의 비극'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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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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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호메로스 

 

1. 

책을 다 읽고 나서 떠오른 건 카이사르의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는 너무나 유명한

말이었다. 이 말을, 책을 읽고 나서의 내 감정에 따라 바꿔봤다. '펼쳤노라, 읽었노라, 덮었

노라'로. 진짜 이런 말을 만들 정도로 <일리아스>를 읽고 나서 내 마음은 뿌듯함으로 가득

했다. 언제나 생각만 해왔던, 현대 유럽 문학의 시원이자 고대 그리스 문학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 중 한편을 읽었다는 사실 때문에. 무수히 많은 등장인물들

과 고대 그리스의 신들이 얽히고섥혀 만들어내는 무수한 이야기들의 집합체이자, 9년동안의

일들을 며칠 동안의 일을 통해 그려내는 시간의 압축체이자, 고대 그리스의 문화와 문명

예술과 종교가 뭉쳐 만든 응집체이자, 600페이지를 넘어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운문의 영웅

서사시인 이 책을 읽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보면, 나는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2. 

나는 누군가 강요해서, 내 삶에 실용적인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이 책을 읽은 게 아니다.

단지 읽고 싶고, 읽는 것이 좋다고 나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에 읽게 됐다. 읽었다고 누가

나에게 칭찬을 할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왜 그런 책을 읽냐고 구박이라도 받지 않으면 다행

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의 가치를, 읽지 않은 사람이 알 수 없는 읽은 사람만이 혼자서

느끼고 자신 안에 담아내는 것에 있다고 한다면, 이 책은 충분히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 수량

으로 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위한 가치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만 놀라운

힘을 가지는 주관적인 가치를. 나는 그 주관적 가치를 결코 잊지 않고 간직할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를 다음의 <오뒷세이아> 읽기에 가져가서, 지금과는 다른 그 순간의 가치를 만들 것

이다. 

 

*이 책을 읽는 데 강대진이 쓴 <일리아스, 영웅들의 전장에서 싹튼 운명의 서사시>라는 책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그 책의 도움이 없었다면, <일리아스>를 읽는 데 엄청 힘들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다 못읽고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 책을 먼저 읽고 이 책이 어떤 구성으로 되어

있고,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앞으로 읽을 생각인 <오뒷세이아>도 마찬가지로 강대진의 <오뒷세이아, 모험과 귀향, 일상의

복원에 관한 서사시>를 읽고나서 읽을 생각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 고전들의 원전을 꾸준히 번역하고 있는 천병희 씨의 행보에 경이로움을

표하며, 고맙다고 애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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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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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얼굴-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1. 

이 글은 이 책의 옮긴이가 마지막 부분에서 했던 얘기 때문에 쓰여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의 옮긴이인 김지선 씨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최근에 과연 독일 문학이 읽힐지 의문스

럽다는 심정을 토로한다. 나는 그 부분을 읽고 반드시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

다. 나는 옮긴이에게 얘기하고 싶었다. 많은 사람이 독일 문학을 읽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같이 꾸준히 독일 문학을 읽는 이들은 반드시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옮긴이가 걱정을 품는 것

은 괜찮지만, 걱정에 너무 얽매이지는 말라고. 따라서 나는 나의 결심을 알리기 위해 이 글을 쓰고, 다음에 읽을 독일문학의 제목까지 여기에 쓰기로 했다. 다음에 읽을 독일문학은 테오도어

폰타네의 <에피 브리스트>다. 책을 읽고 기회가 된다면, <에피 브리스트>의 감상문을 올려보

도록 하겠다.(나의 고질병인 게으름을 이겨낼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이다.

그런데 과연 내가 게으름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2.

이 책의 저자가 눈앞에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독일 최고의 스타 문학비평가, 독일 문학의 교황

이라는 <작가의 얼굴>의 저자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비평가의 역할이란 문학과 대중을

이어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비평가의 첫째 임무는 정직함이고, 명료함은 예의이며, 비평

가는 항상 대중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비평가들만 알 수 있는 글이나 동료 비평가와

작가들에게 영합하는 글을 거부하고, 동료 비평가들과 작가들의 온갖 비난과 공격, 논쟁에 굴하

 않고 자신만의 명료하고 명징한 글을 쓰면서 대중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불가침의 영역은 

다면서 신랄한 독설을 날렸고, 권위 따위는 무시하며 언제나 논쟁의 중심에 서서 자신의 주장을

전개했으며, 사람들에게 잊힌 작가와 작품들을 어떻게든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물론 그에게도 문제점은 있다. 정직성과 명료성을 글의 모토로 하는 사람답게, 그의 글은 일정

정도의 단순화를 가질 수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강력한 주관성과 강력한 단언들로 채워진 글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평론이 언제나 독서대중을 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비평가에게 단점이 아닌 장점이 되어,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나는 <작가의 얼굴>을 통해서 그의 무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의 글에서는 어려운 이론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난해하기 그지없는 개념과 관념과 단어들도 없었다. 그는 그저 작가의 작품, 작가의 삶, 작가와 동시대인들의 사회문화적 배경, 자신의 삶과 작가의 작품 사이의 연관성을 통해서 독

일 문학을 수놓은 작가들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의 글에서 알 수 없는 난해하고 현학적인 부분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단지 독일 역사와 독일 문화, 독일 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다면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이 글이 독일 독자들을 상정하고 쓴 글이라는 사실을 잊지

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의 글은 특유의 표현, 리듬감과 경쾌한 속도감으로 흡입력과 가독성

뿐만 아니라 문학성도 놓치지 않는다. 한마디로 그의 글은 읽는 맛이 있다. 그리고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그가 소개한 작품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3. 

그래서 나는 독일 문학으로 향하는 길을 걷기 시작할 생각이다. 그건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먼저 걸어간 길을 그를 뒤따라서 걷는 행위이자, 그가 걸어가면서 경험한 것들을 얘기 듣고 나도

따라 걸으며 다시 확인하는 경험이었다. 물론 그때의 나의 경험은 그와는 다른 나만의 경험이 될

것이다. 나에게 남은 건 걷는 것일 뿐. 나는 이제 테오도어 폰타네의 <에피 브리스트>로 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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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민음사 모던 클래식 58
모옌 지음, 심규호.유소영 옮김 / 민음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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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모옌 

 

<개구리>는 나에게 하나의 사건이었다. 지금까지 중국 소설들을 예외적인 읽기의 대상으로

여겼던 나에게, <개구리>의 독서 경험은 이제 더 이상 중국 소설을 예외의 대상으로 두지 않

고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게 만들었다. 구라와 현실을 섞어서

절묘하게 엮어내려가며 가독성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구성 방식이나, 어려운 표현이나 언어를

거의 쓰지 않고 쉽고도 일상적인 문장만으로도 세상과 현실에 대해서 성찰하게 만드는 언어

구사 능력이나, 소설과 희곡을 섞어 쓰면서 마지막에 열린 구성으로 마무리 짓는 미학적인

스타일을 통해서 다양하고 다층적인 해석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 나는 '참을 수 없는

중국 소설'에 대한 욕구를 느꼈다. <백년의 고독>이 중남미 소설에 대한 문을 열어젖혔고,

<자기 앞의 생>이 유럽 소설을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든 것처럼, <개구리>도 나로 하여금 중국

소설이라는 거대한 길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나에게 남은 건 그 길을 걷는 것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그 길을 걸을 수 있어서 무척 기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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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윤정 옮김, 무라카미 요오코 사진 / 문학사상사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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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요오코(사진) 

 

하루키는 이 책에서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입니다.'(p.15) 라고 애기하고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만약 이 책의 언어가 위스키라

고 한다면 굳이 내가 시간을 내어 이 책을 다 읽을 필요 없이, 책 속 위스키 맛만 보면 됩니

다. 굳이 책을 읽고 느끼고 상상할 필요 없이 위스키 맛만 보고 우리는 알게 될 겁니다. 하

루키가 얘기하고 싶었던 맛을. 하지만 언어는 위스키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키가 

느끼고 체험한 것을 록한 글을 통해,  가 느꼈던 위스키 맛을 추리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루키가 경험하고 묘사했던 풍경들과 생활들에세 배여들어 형성된 위키의 맛을 우리는

오직 하루키가 써내려가는 글로만 알아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이건 명탐정이 살인

사건의 범인을 밝혀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명탐정이 살인 현장에 가서 오

감을 모두 동원해서 범인에 대한 힌트를 얻어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오직 우

리 자신의 시각과 눈앞에 보여지는 하루키의 글밖에 없으니까요. 우리는 시각에서 미각을

창조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부여받은 겁니다. 더군다나 저 같이 스카치 위스키나 아이리

시 위스키나 상관없이 스키를 한번도 마셔 보지 못한 인간에게는 더욱 힘든 과제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은 저에게 의미 있는 일이 될 겁니다. 왜냐하면 그 맛은 세상에

서 오직 저만이 만들 수 있는 맛이기 때문입니다. 이 전무후무하고 유일무이한 상상의 맛 

만들기를 위해 이제 집중해보렵니다. 그리고 그전에 이 맛을 만들 수 있게 도와준 이 책과

루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네요.^^;; 그럼 저는 이제 가상의 맛을 만들어야 하

기 때문에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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