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하게 말해보자. 고전은 분명 낡은 책이다. 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고전은 결코 우리 시대의 우리 감각에 맞춰진 책은 아니다. 고전은 자신이 나온 시대상과 자신을 만든 이의 생각과 삶을 품안에 담고 있는 것이다. 다만 고전은 반드시 읽어볼만한 책이다. 그러니까 고전은 낡았지만 반드시 읽어볼만한 책이다. 낡았지만 우리 시대에도 충분히 유효한 책.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나만의 고전의 정의다.

한 가지 더 말할 것이 있다. 우리가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 가에 대한 것이다. 먼저 고전에 대한 맹신을 거부해야 한다. 고전을 종교적 믿음의 대상으로 삼아 그것이 무조건 옳고, 정당하며 그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태도는 종교적 광신도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고전에 대한 맹신과 더불어 고전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과 비하 또한 삼가해야 한다. 이건 고전에 대한 반대방향의 맹신이다. 고전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고전 읽기를 무조건 거부하며, 고전의 가치를 지나치게 평가절하하는 것 또한 다른 의미의 광신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남겨진 고전 읽기의 방향은, 맹신과 비하 사이의 길에 머물며 고전을 생생히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읽기이다. 그건 무조건적인 찬양과 비난 사이에서 때로는 고전의 가치를 몸으로 느끼며, 때로는 고전의 위험성을 자각하는 '고전과 나 사이의 생생한 대화과정'으로서의 고전 읽기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 보여줘야할 고전 읽기의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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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우연히 고전을 읽고 얘기하는 모임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지인분을 따라서

그 모임에 나가봤다.

나가서 모임을 진행하시는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머리가 알아서 그분의 얘기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나 자신을 깨닫고

'아, 나는 이 모임에 못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이 얘기하시는 게 그 고전에 대한 표준적인 해석이었는데,

왜 그렇게 끌리지 않던지...

그런데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가라타니 고진의 <철학의 기원>에는 나와 유사한 경험을 한 가라타니 고진의

글이 나온다.


나는 10대 중반에 철학소년은 아니었지만 소크라테스, 데카르트, 칸트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명하게 보이는 것을 근본적으로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제대로 읽지도 않을 때부터 그들은 내게 히어로였다. 하지만 이후 현대철학 책을 읽게 되자, 그들 대부분이 비판대상이 되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내게는 그것을 반박할 만한 식견이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을 옹호하는 담론이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이 표준적이었다. 하지만 내게 그것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결과 나는 철학 자체를 회피하게 되었다. 그래서 문학으로 향했던 것이다.(p.11)

표준적인 해석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나는 그저 표준해석에

매력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굳이 시간을 내어 나가서 그런 표준해석을 들을 필요를

못느낀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런 해석은 조금만 시간을 내어 찾아보면 내 스스로

알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나는 책을 읽다가 조금 독특한 것, 다른 것, 특별한 것을

원하는 취향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 모임에 나가서 나의 취향을 다시한번 실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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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6-19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사람은 자신의 해석이 반박당하고, 조금이라도 무시받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일 것 같습니다. 독서 모임을 참석할 때 본인 의견이 무조건 맞다고 여기고, 반박 의견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으면 듣는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런 사람 때문에 건전한 토론을 할 수 없어요. ^^

짜라투스트라 2015-06-19 20:03   좋아요 0 | URL
아, 맞습니다^^
 
국가는 잘사는데 왜 국민은 못사는가 - 부자를 위한 정책은 어떻게 국민을 추락시키는가?
도널드 발렛 외 지음, 이찬 옮김 / 어마마마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통계적으로 너무나 명확한 양극화. 충분히 객관적일 수 있는 현실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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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현정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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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갈망해서 창조해낸 공포를 독자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공포는 독자에게 현실이 된다. 비록 그것이 비현실적인 공포라고 해도. <어나더>가 제시한 공포는 그것의 환상성과 달리 내게 충분히 문학적인 의미에서 현실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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