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도 익숙해지면 몸의 일부가 된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희망은 불편하다. "희망고문"을 당하느니 차라리 편안한 절망을 택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니엘 튜더는 이렇게 말한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희망이라면, 기다리기만 하지 말고 우리가 직접 오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익숙한 절망,불편한 희망> 알라딘 책 소개 글 중에서)

최근에 여러 상황이 겹치며 너무 쉽게 분노하기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을 무심코 깨달았습니다. 분노에 익숙한 나 자신을 깨닫는 순간, 한 가지 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 계속되는 분노하기가 바뀌지 않는 현실의 벽앞에 놓인 이들이 보여주는 정신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을. 저는 바뀌지 않는 현실의 벽 앞에서 분노하기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내적인 스트레스를 풀어왔던 겁니다. 물론 정신의학적으로 봤을 때 화내야 할 때 화내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건강한 행동입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분노하기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은 제가 생각하기에 저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건 절망의 다른 표현이겠죠. 우리에게 익숙한 절망의 해소책으로서 정신이 분노하기를 계속 지속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제나마 너무나 빠르고 성급한 분노 대신 상황이나 사건을 최대한 넓고 객관적으로 보면서 다른 방식의 사유를 하려고 노력할 생각입니다.(최근의 어떤 사건에 대해서 이미 그런 변화를 하고 있고요.^^;;) 한 번 해보니 괜찮더군요. 이제 익숙한 절망 대신 불편한 희망을 한 번 차분하고 신중하게 선택해 보렵니다. 그게 더 힘든 길이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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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들의 여왕 바벨의 도서관 12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 지음, 김훈.이승수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해제 / 바다출판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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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M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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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해설을 읽고나니 모험가이자 언어의 천재인 리처드 프랜시스 버턴에게 있어서 번역이란 창조의 영역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이 넘치는 삶의 에너지를 가진 인물에게 번역은, 단순히 외국어를 자신의 모국어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외국어의 영역을 자신만의 창조의 영역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나봐. 그러니까 <천일야화>의 번역은 버턴에게 있어서 자기화한 '천일야화'의 탄생이었던 것이지.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중에서 가장 두꺼운 이 책에 담겨 있는 모험과 환상의 이야기 속에서 헤매다 보면, 버턴이 왜 그렇게 해야했는지 깨닫게 돼. 왜냐하면 천일야화에 가득 담겨 있는 이야기의 에너지가 버턴으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게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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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04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일야화를 환상문학의 시초로 보는 평가도 있어요. 그만큼 천일야화가 세계문학사에서 절대로 빠지면 안 되는 걸작이죠.

짜라투스트라 2015-07-04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맞습니다.^^
 
죽음의 친구 바벨의 도서관 11
페드로 안토니오 데 알라르콘 지음, 정창.이승수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해제 / 바다출판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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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M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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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세르반테스>로 근대 문학의 문을 연 스페인이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문학 사조적인 측면에서 뒤처져 있다는 걸 실감했어. 유럽에서 문학으로 유명한 다른 나라들에서 이미 유행이 지나간 '낭만주의'의의 향기를 짙게 느꼈거든. M, 그래도 오해는 하지 마. 뒤처져서 싫다는 말을 하려던 건 아니거든. 나는 뒤처진 이들의 낭만성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거야. 다른 이들이 열심히 앞서 나가며 하나의 흐름을 형성한다면, 뒤처진 이들은 앞에서 흘러가는 이들이 이미 잊어버린 방식으로 물을 헤쳐나가며 자신만의 낭만성을 형성하거든. 나는 이런 낭만성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고 있어. 더군다나 스페인의 경우에는 '뒤처진 이들의 낭만성'의 대상이 '낭만주의'라는 문학 사조니까 더 신기하지. 어쨌든 알라르콘의 두 편의 소설을 읽으며 잊어버린 것들의 가치, 사라져가는 것들의 의미를 떠올렸어. 사라져가는 것들은 그 '사라져감'으로 인해서 언제나 가치와 의미를 생성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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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테크 바벨의 도서관 10
윌리엄 벡퍼드 지음, 문은실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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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M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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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테크>는 진짜 아마추어가 쓴 소설이 맞는 것 같아. 읽다보면 뭔가가 이상해. 이야기의 구성에서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인물들의 등장과 퇴장도 어색한 부분이 있고, 사건의 전개 과정도 작의적인 느낌이 나는 장면이 있는데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화자의 목소리에도 어색한 부분이 있어. 하지만 이 소설은 바로 그 아마추어적인 느낌 때문에 자신의 매력이 생겨나는 것 같아. 프로 작가라면 하지 않았을 전개와 구성을 보이면서 자신의 매력을 만들어나간다는 말이야. 마지막의 극단적인 지옥의 형상도, 전문적인 작가라면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 그러나 벡퍼드는 주저하지 않고 밀어붙여 다시 없을 지옥의 형상을 창조해내지. 거기에는 아마추어만이 보여주는 아마추어의 힘이 담겨 있어. 전문적인 작가는 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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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것들에 대한 옹호 박람강기 프로젝트 5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 지음, 안현주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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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M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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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책 전부에 대한 짧은 서평을 쓰고 다른 책들에 대한 짧은 서평을 쓰려고 했었는데, <아폴로의 눈>에 대한 글을 쓰다보니 체스터턴의 또다른 책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다른 체스터턴의 책에 대한 글을 쓰게 됐어. 아까 적은 글에서 나온 체스터턴의 이상함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선택했어. 이 에세이집에서 체스터턴은 시종일관 모더니즘에 반대하며 자신의 독특한 생각을 유머와 풍자를 섞어서 유쾌하고도 독특하게 써내려가.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더라. 영국식 블랙 유머의 힘이라고나 할까. 진정 체스터턴은 이상함의 달인이야. 이상함, 다름, 특별함, 독특함을 바탕으로 그는 자신의 문학세계를 완성해나가지. 하지만 거기에는 그 특유의 휴머니즘과 성찰이 담겨있지. 그렇기에 그는 단순한 풍자 작가가 아니라 비평가적인 작가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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