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 피시 - 제23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오사키 요시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문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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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피시-오사키 요시오


우리는 과거를 잊는다고 말하지만, 그건 옳은 말이 아니다. 과거의 기억은 잊어지는 것이 아니라, 잊어지는 것처럼 내면속에 숨어서 조용히 움츠리고 있을 뿐이다. 움츠리고 있다 자신이 나올 순간이 되면 나와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때서야 우리는 깨닫게 된다. 결코 그것이 잊어버리거나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을. 따라서 나는 나의 과거를 운명이라고 받아들인다. 어찌할 수 없는, 바꿀 수 없는, 내 삶에 새겨진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서의 운명. <파일럿 피시>는 그 기억을 건드린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을 건드린 사건 때문에, 다시 과거를 되살리고, 되살린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돌아보고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는 우리의 주인공 야마자키. 주인공의 이름에 나의 이름을 집어넣어도 별 문제없으리라. 그만큼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에. 이 주인공과 똑같은 삶을 경험한 의미로서의 보편성이 아니라 누구나 과거의 기억에 완벽하게 벗어날 수 없는 의미에서의 보편성. 쓸쓸하고도 아름다운 문체와 문장이 빚어내는 문학의 힘에 의해 보편성을 맛보며 나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의 힘을 상기시킨 이 소설을 나의 내면의 '문학의 전당'에 소중히 집어넣는다. 언젠가 오사키 요시오의 작품을 다시 만나는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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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피시 - 제23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오사키 요시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예문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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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한번 만난 사람과는 두 번 다시 헤어질 수 없다. 인간에게는 기억이라는 능력이 있고, 따라서 좋든 싫든 그 기억과 더불어 현재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 어딘가에 그 모든 기억들을 담아놓는 거대한 호수 같은 곳이 있고, 그 밑바닥에는 잊어버린 줄만 알았던 무수한 기억들이 앙금처럼 쌓여 있다. 무언가를 떠올리고 무언가를 시작하려 할 때, 잠에서 막 깨어 아직 아무 생각도 없는 아침, 아주 먼 옛날에 까마득하게 잊어버렸을 기억이 호수 밑바닥에서 별안간 두둥실 떠오를 때가 있다.

그리로 손을 뻗는다.

호수에 떠 있는 보트에서 손을 뻗는다. 그러나 보트에서 호수 바닥이 훤히 보여도 그곳에 손이 닿지는 않듯이, 앙금으로 가라앉은 과거는 두 번 다시 손에 쥘 수 없다.

제아무리 펴내고 또 퍼내도 손에는 덧없는 물의 감촉만 남을 뿐, 힘껏 움켜쥐려 하면 할수록 그 물은 기세를 더하며 손가락 틈새로 새어나가 버린다.

그러나 손에 쥘 수는 없을지 몰라도 기억은 흔들흔들 아스라하게,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내 안에 존재하므로 그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11~12)

 

 

 

"... 난 생각했어. 네가 살령 내 앞에서 사라졌다 해도 둘이 보냈던 날들의 기억은 남아. 그 기억이 내 안에 있는 한, 나는 그 기억 속의 너에게 계속 영향을 받지. 물론 유키코뿐만 아니라 부모님이나 나베 씨, 지금까지 만났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의 기억의 집합체처럼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기억의 집합체?"

"그래. 그래서 말인데, 유키코. 난 너랑 헤어지지 않았어. 그게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의미 아닐까? 한번 만남 사람고는 두 번 다시 헤어질 수 없어."(23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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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새빌 경의 범죄 바벨의 도서관 14
오스카 와일드 지음, 고정아.이승수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해제 / 바다출판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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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M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

넘치는 기치와 재기발랄함, 세상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구애되지 않고 자신의 예술관을 펼쳐보이는 자신만만한 댄디 오스카 와일드. 그에게 예술은 종교이자 세계관이자 모든 것이었어. 그가 예술을 펼치지 못하는 순간이 오자 비참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였어. 이 책은 댄디 오스카 와일드의 넒은 문학적 스펙트럼을 만날 수 있어. 아주 슬픈 얘기부터 경쾌하고 즐거운 얘기까지. 개인적으로
<행복한 왕자>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동화야. 이 작품이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 책에 별 다섯 개를 준 거야. 그게 내가 이 작품이 내게 준 감동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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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크로메가스.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0
볼테르 지음, 이병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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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친구 M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

M, 나는 볼테르가 <캉디드>에서 비판하는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가 낙관주의처럼 보여지지 않아. 오히려 나는 그게 낙관주의라기 보다는 아주 극단적인 현실긍정주의처럼 보여. 현실을 극단적으로 긍정하는 사상은 오히려 현실을 감추면서 현실을 못보게 하지. 현실을 못보게 된다면 현실의 참혹함이 자기 앞에 닥치는 순간 그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게 돼. 이런 건 낙관주의가 아니지. 낙관주의라면 어떤 참혹한 순간에라도 의지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을 생성해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러니까 라이프니츠의 사상은 위장된 낙관주의에 불과하지. 낙관주의인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 앞에 무력한 힘없는 낙관주의. 오히려 세상에 대한 냉정한 시선이 힘 있는 낙관주의를 위해서는 필요한 셈이야. 나는 여기에 충분히 볼테르가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 <캉디드>가 그걸 증명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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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크로메가스 바벨의 도서관 13
볼떼르 지음, 이효숙.이승수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해제 / 바다출판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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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M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

볼테르의 소설에는 날카로운 현실비판의 칼날이 숨겨져 있어. 그것이 해학과 익살과 풍자의 외관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결코 그 칼날을 숨길 수는 없어. 우리는 볼테르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 현실비판의 칼날을 실감하는 거야. 근데 이 칼날이 재미있는 점은 우리의 몸이 베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칼날을 현실을 위해서 쓸 수 있게 되는 거야. 볼테르는 자신의 현실비판이라는 칼날을 소설 속에 담아서 우리가 그것을 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거지. 이것이 볼테르식의 계몽이 아닐까. 문학 속에 자신의 계몽주의의 도구들을 담아서 독자들에게 건네주는 것. 이 책에서 안타까운 건 볼테르 현실비판의 정점을 보여주는 <캉디드>가 없다는 것 정도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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