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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전쟁이 지나간 아프가니스탄의 거리.
그 곳은 널려진 건물의 잔해와 함께
찢겨지고 조각난 사람의 시체가
몇분전까지 그들이 이곳에서 인간으로 살았음을
증명하고 있고,
울려퍼지는 비명소리, 울음소리는
이제 그곳이 삶에서 지옥으로 떨어졌음을
다시한번 확인한다.
 
그러나 그곳에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전쟁의 흔적이 지나가도,
절망이 몰아쳐도 그들은 아픔을
꾸역꾸역 삼키며 살아간다.
 
절망이 그들을 삼킬 지라도 
그들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것을
알고 살아간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이렇듯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폭력 앞에서
무력하게 희생되는
사람들의 삶을
미리암과 라일라라는 두 명의 여성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2.
그녀는 태어나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그녀의 존재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알려지는 순간
그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고,
그녀의 어머니를 제외한
다른 부인들은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그녀는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버려진 존재였고,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어머니와 함께 외따로 떨어져서 살아가던
그녀는 아버지의 따스한 품을 그리워했다.
 
일주일에 한번 와서 선물과 좋은 말만 해주는 걸로는
그녀에 품에 가득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채워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머니 몰래
아버지를 찾아나선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녀를 집에 들여놓지 않고,
그녀는 실망하여 집으로 돌아간다.
 
열다섯살의 치기가 불러일으킨 행동.
이 행동은 그녀를 파멸로 몰고간다.
어머니의 죽음과 뒤이은 아버지집에서의 고독한 생활
그리고 마흔다섯 살의 라시드와의 결혼.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가부장적 권위주위에 파괴되는 삶 뿐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암.
 
'마리암, 그게 우리 팔자다. 우리 같은 여자들은 그런 거다.
참는 거지.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다. 알겠느냐?'
 

3.

소련이 지배했었던 한때
일군의 인물들이 서구의 근대적 사고를
여성들에게도 가르친다.

 
그녀는 그 교육의 수혜자였다.
서구적 교육을 받은 그의 아버지는
그녀를 능동적이고, 세상에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여성으로 키울려고 노력한다.

 
'나는 네가 지금 이걸 이해하고 알았으면 싶다.
결혼은 늦출 수 있지만 교육은 그럴 수 없는 거란다.
너는 아주 영리한 아이야. ...
너는 원한다면 뭐든지 될 수 있어. 나는 알아. ...
여자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면 사회는 성공할 수가 없는 거다.
그럴 수가 없지.'

 

그녀의 어머니는 살아있지만
그녀에게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반군활동을 위해 집을 뛰쳐나간
그녀의 오빠들만 생각하고
그녀는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녀에게는 실제적으로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친구도 있었고,
좋아하는 남자도 있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술에 미소를 머금게 만드는
그의 이름은 타리크.

 
그러나 소련군이 물러나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내전은
그녀의 삶을 찢어놓기 시작한다.

 
친구들의 죽음. 타리크의 실종.
최종적으로 그녀의 눈앞에서
먼지가 되어버린 그녀의 어머니, 아버지.


그녀는 그렇게 시대의 폭력앞에서
라시드의 첩이 된다.
 
'아마드와 누르는 죽었고, 하시나는 어디로 가고 없고,
기티는 죽었고, 엄마는 죽었고, 아빠도 죽었고,
이제 타리크마저...' 
 

그녀의 이름은 라일라 

4.

구세대를 여성을 대표하는 마리암과
구세대의 가부장적 남성의 대표주자 라시드.
 
신세대 교육을 받고 자란 라일라과 타리크.
 
그 대비되는 두 세대는
마리암과 라일라의 만남으로
새로운 조화의 장을 마련한다.
 
마리암은 라일라의 실제적 어머니 역할을 하고
희생을 통해 라일라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준다.
 
구세대의 희생을 통해
신세대는 내일의 살아갈 힘을 얻는다.
라일라는 아프고 힘들더라도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그녀의 뒤에서는
카불의 폐허를 아름답게 비추는
천개의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름답게...
 

“지붕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었네."(P.532)


 

5.
호세이니는 놀라운 작가적 재능으로
현실앞에 파괴된 여성들의 삶을 재현해낸다.
그 앞에서 우리는 알지도 못했고,
별다른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던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삶을 실감나게 느끼게 된다.

그것은 공감으로 이어지며
파괴되고 찢겨진 삶을 살면서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 동화되게 만든다.
 
오직 살아있는 것만이 전부인 그들의 삶.
그것 또한 삶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네들의 삶에서
살아있음 그 자체가 축복임을
다시한번 배운다.
 
그래,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축복이다.
이제 축복을 알았으니
내일을 꿈꾸며 잠에 빠지자.
아마 꿈 속에서 우리를 비추는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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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

사랑.

사랑은 달콤향 향을 품긴다.
그것은 우리에게 따스하게 다가와
천국의 맛과 같은 즐거움과 황홀함을 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제어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이 숨어있기도 하다.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사랑

 

수학.

안에 분명히 공주가 있음을 알지만
막강한 괴물과 단단한 성벽때문에
공주를 구할 엄두를 못 내게 만드는 성처럼
넘볼 수 없는 개념.

 

오가와 요코는 이렇듯
상반되는 두 개념을 잘 섞어서
아주 멋지고 따듯한
작품을 하나 만들어내었다.
그 작품의 제목이 바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다.

 

 

2.

교통사고로 인해서
기억력이 80분밖에 지속되지 않는 수학천재 박사.
그들에게 우연히 다가온 미혼모 파출부 '나'와
그녀의 아들 루트.

 

"너는 루트다. 어떤 숫자든 꺼려하지 않고 자기 안에 보듬는 실로 관대한 기호, 루트야."
그러고는 당장에 소맷자락에 있는 메모지에 그 기호를 덧붙여 썼다.
'새 파출부...와 그 아들 열 살...√'

 
자신의 집에서 폐쇄된 생활을 하며
수학에 대한 열정만 불태우던 박사는
'나'와 루트를 만나고부터
인간에 대한 애정을 회복하고
그들에게 따스한 사랑을 베푼다.

 

'세상 사람들에게 내 능력이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아. 아무도 내 특기를 원하지 않을테니까. 난 루트만 칭찬해주면 그것으로 대만족이야.'

 
아들 하나를 혼자 키우는 미혼모로서
세상의 풍파를 견뎌온 '나'와 그녀의 아들 루트는
박사와의 따듯한 생활을 통해
사랑을 배우고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그의 마음 속에는 늘, 나는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존재인데... 하는 겸손이 흐르고 있었다. ... 우리들은 우리가 선물한 것 이상을 받은 것이다.'

 

80분 밖에 지속되지 않는 그의 기억.
그러나 그가 그들에게 가르쳐 준 것은
단순한 수식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랑이었다.

 
그렇게 그들에게 그는
저 영화 포스터의 말처럼
'영원히 남아 있게 된다.'

 

3.

골치아픈 스트레스로만 다가오던 수학이
이렇게 따듯하고, 정겹게 다가올 줄이야!
그것만으로도 오가와 요코는
박수받을 만하다.

 

그러나 더 핵심적인 것은
오가와 요코가 수학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외견상 딱딱해 보이는
수학이라는 도구를 통해서도
인간의 따스함과 사랑이 전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니 그녀는 더 나아가
수학이 원래 가지고 있던
세상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회복하고자 한다.

 
원초적 수학으로의 회귀.
세상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바탕으로
추상적인 숫자을 동원해 세상을 복원하고
진리를 밝히려는 진짜 수학으로의
복귀를 그녀가 꿈꾸는 것이다.

그녀의 문장을 통해서
수학은 그렇듯 삶이 되고, 사랑이 되고,
따스함이 되고, 인간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글을 통해
신의 언어이자 시의 언어이고, 사랑의 언어이기도 한
수학
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아름다움이었고, 떨림이었다.
항상 낮은 점수에 대한 고통과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의 나열로
괴로움만 남겨주었던 수학이
아름다움과 떨림으로 변한 것이다.

그 아름다움과 떨림은
나를 사랑으로 이끌었다.
 

그렇다. 어느새 나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내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기억하는 한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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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1.
다니엘 페냑 <소설처럼>
마르그라트 뒤라스 <연인>
파트리크 모디아노 <서커스가 지나간다>
파트리크 모디아노 <잃어버린 거리>
츠지 히토나리 <사랑을 주세요>
파스칼 키냐르 <떠도는 그림자>
구효서 <깡똥따개가 없는 마을>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르 클레지오 <황금물고기>
쉼브르스카 <여인의 초상>
이선 호크 <웬즈데이>
브라우티건 <미국의 송어낚시>
레몽 쟝 <오페라 택시>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배수아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무라카미 하루키 <렉싱턴의 유령>
....
 
위 책들의 공통점은?
바로 모두 <백수생활백서>에 나온 책들이라는 점이다.
위의 리스트는 이 책에서 소개된 것의 일부분에 불과하고
그외의 책들과 책의 구절들, 책에 관련된 사항,
책을 쓴 저자의 이야기까지 포함하면
이 책이 거의 책 이야기로 이루어진 소설임을 알게 된다.
 
도서관같은 소설. 소설 자체가 도서관인 소설. 
 
주인공은 스스로가 책 매니아이자 지독한 독서가로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실제 독자인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책에 대한 사랑과 예찬을 늘어놓는다.
 
나는 그래서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2.
'심심해지면 책을 펴면 된다.
그 속에는 무궁무진한 다른 세계가 있고
그 세계를 상상하는 시간만으로도 나는 지루하지 않다.
진짜 지루하고 심심한 건 심심해하는 인간들과 함께 있을 때이다.'
 
'현재로서는 책이 나를 계속 살아갈 수 있게 하고 
살고 싶게 만든다는 것 밖에는 알지 못 한다.'
 
'홀로 책을 읽으면서 지내도 누구보다 행복할 자신이 있다.'
 
 
오직 책 읽는 것만이 삶의 의미이자 목표인 28살의 백수 '나'.
책을 사기 위해 돈을 벌고 그 이상의 수입이나 소비를 바라지 않는
책 중독자인 나는 삶에서는 무기력한 모습이다.
 
'더 이상은 추락할 곳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올라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없고 세상이 바뀌어야 할 이유도 나에게는 없다.'
'나는 미래에 대한 어떠한 약속도 기대도 갖지 않은 채로 비교적 잘 살아왔다.'
 
그녀의 독서는 무기력과 공생한 상황.
삶의 무기력이 독서를 뒷받침하고,
독서는 그것을 바탕으로 더욱 무럭무럭 자란다.
반대로 독서에 대한 열정이 너무 강하기에
그녀의 무기력 또한 삶에서 강하게 뿌리를 박고 있다.
결국 현재 나의 삶이란 독서와 무기력이 동전의 양면처럼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책 거래를 통해 한 남자를 만나면서
그녀의 삶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거기에 그녀 주변의 인물들이 겪는 변화까지 겹치며
그녀의 변화없었던 삶은 요동치기 시작하는데...
 
3.
독서에 갇힌 삶으로 시작해서
책으로 인한 인연으로 변화를 겪으며
책을 넘어서서 사람에 대한 온기와
세상에 대한 긍정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일종의
책 매니아 백수의 성장기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 성장기는
책에 대한 욕망이 사람에 대한 욕망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 욕망의 변천사로서
폐쇄에서 개방으로 나아가는 구조를 가진다.
 
그 구조는 다시 동화적 구조와 유사성을 가지는 바
이 소설에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책 매니아 백수 공주의 도서관 탈출기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소설이 잠자는 숲 속의 공주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기에)
 
그녀는 책 속을 탈출해 세상으로 나아간 셈.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이 책의 진짜 역설이 나온다.
독서의 폐쇄적 공간에서 밖으로 빠져나와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된
그녀의 삶 자체가
책 속의 이야기라는 사실.
 
최종적으로 작가가 그녀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폐쇄적 공간에 빠져 있지 말고 세상으로 나아가자'
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이 메시지는 과거의 동화에서부터 데미안을 거쳐 현재의 소설까지
종종 제시되는 고전적인 것으로서
너무 익숙해진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박주영은
그런 고전적 메시지를
책 매니아의 독서 열정이라는
신선한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익숙한 메시지의 신선한 전달.
이것이 이 책의 진짜 신선한 점이다.
 
어쨌든 이제 작가의 말처럼 자신을 감싼 폐쇄적 공간을 벗어나보자.
그것이 책이든 알껍질이든 두려워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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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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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불이 꺼진다.
영사기는 돌아가고
화면속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나는 어느새 영화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독서의 시작
 
 
일본 소설을 종종 읽다보면 만화같은 느낌이 확 든다.
소설보다는 오히려 애니메이션이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느낌의 소설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이다.
 
미국의 대중 소설은 
헐리우드 블럭버스터 영화같은 느낌의 글들이 많다.
그 소설들은 아마도 영화화를 생각하고 쓰여졌으리라.
 
그에 비해 한국의 소설이나
유럽의 소설들은 영상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지는 않는다.
특히 프랑스 소설들은 톡톡튀는 지적인 유머나 독설,
자기만의 철학세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것이 강해서
영상적인 느낌보다는 관념적이고 지적인 면모가 느껴진다.
 
그런데, 그런데,
기욤뮈소의 글들은 다른 것 같다.
그의 글은 정말 영화 같다.
 
영화같은 줄거리, 영화의 씬들을 묘사하는 것 같은 문체.
로맨스와 미스터리, 액션, 호러, 판타지의 절묘한 퓨전.
헐리우드식 이야기 구조에 유럽적 감성이 어울렸다고나 할까?
 
프랑스 영상세대의 기수라는 표지의 말이
그대로 들어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은 팝콘같다.
영화를 보면서 씹어대는 팝콘처럼
별다른 생각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의미이다.
 
신의 문제니 인간의 자유의지니 운명이니 하는
문제를 들먹이지만
이 작품의 주제는 읽다보면 간단하게 읽혀진다.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지니.'
 
그래,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신의 문제보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따스하고 살가운 사랑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그 메시지를 느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만족한 독서였다.
 
'불이 커졌다.
관객들이 하나둘씩 나가고 있다.
나도 그들을 따라 나가고 있다.
영화가 끝남과 동시에
나는 영화 속 환상의 세계에서
차갑고 냉정한 현실의 세계로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다시 현실의 시작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기욤 뮈소와 다시 만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영화관을 나서고 있었다.
거리의 불빛이 차갑게 느껴졌다.
순간 내 폰으로 문자가 날라왔다.
문자의 내용은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할지니
 
-독서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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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창비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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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김영하가 돌아왔다.
나의 기억속에서 김영하는 랄랄라 하우스의 주인이자 20대에 이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외쳤던 작가이자, 아랑은 왜? 라고 물었던 소설가이며 만화가 이우일과 함께 영화 이야기를 했던 만담가였다.


 
 
그는 확실히 일상적 표피의 세계를 건드려 그 안에 숨겨진 속살을 바탕으로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세계관을 만들어가는 김연수에 비해 쉽게 읽히는 이야기를 구성해내고, 이야기의 묘미에 빠져들게 하는 작가이다.


그것은 읽기의 속력과 연관되고 동시에 이야기꾼으로서의 김영하의 자질과 이어진다.
특유의 우울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흡입력 있는 문체와 이야기는 그만의 매력으로 빛난다.
그래서 <오빠가 돌아왔다>라는 제목을 봤을 때 나는 그가 내게 돌아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2.
         오빠 생각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 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귓들 귓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고, 소식도 없던 오빠가 돌아왔다.
근데 돌아온 오빠의 곁에는 비단구두도, 동생을 기쁘게 해 줄 멋진 선물 대신에 어디서 왔는지 모를 미성년자 여자애가 서 있었다.
더구나 오빠는 돌아오자마자 예전에 자신을 때리던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거꾸로 마구 패기까지 한다.
그것을 말리지도 않고 가만히 지켜보는 여동생.
 
표제작 '오빠가 돌아왔다'는 진정한 콩가루 집안의 표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기존의 통념과 거리가 먼 가족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고, 가치관과 거리를 두는 그들의 해학적인 삶은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품고 있던 가족관을 왜곡하고 비틈으로서 당대의 현실이 이상과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는지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이 소설집은 일단 거기에 방점을 찍고 소설들이 전개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권선징악을 설파하는 동화들과 정당하고 바른 삶을 권고하는 교육의 이념이 말하는 이상과는 다른 살벌한 태도가 지배하는 현실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혼란과 이중적 태도를 김영하는 특유의 술술 읽히는 이야기로 풀어가고 있다.
 
첫번째로 소설인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한 소설가의 이야기이다. 그는 냉소적인 소설가로 신부가 된 대학 동창생 바오로와 미경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신부로서의 이상과 여성의 육체에 대한 욕망으로 괴로워하는 바오로. 꿈과 열정을 현실의 무게 때문에 가슴에 묻은 채 살다가 자연발화로 죽은 미경의 남편 정식. 그리고 그 때문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친구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미경. 열정과 이상도 사라지고 그렇다고 완벽하게 냉소적이지도 못해서 현실과 이상의 틈바구니에서 회색인으로 살아가는 나.
그들은 모두 그림자를 판 사람들이 아닐까?
 
<이사>. 주변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던 이사라는 행위가 이삿짐 센터 직원들의 횡포로 악몽으로 변함을 보여줌으로서 언어와 관념으로서의 개념이 현실과 다름을 보여주는 이야기.
 
<너를 사랑하고도>. 사랑에 대한 저마다의 꿈을 품고 있지만 현실적인 조건 때문에 '너를 사랑하고도' 모욕당하고 실패하는 사랑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젊은 날의 성적인 욕구 때문에 한 여자와 모두 성관계를 가진 세명의 대학 동창생.
시간이 흘러 갑자가 그들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 그순간 그들은 자신들의 평온한 삶이 무너질까 두려워 '그녀를 죽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그들은 그녀가 살해당했음을 알게 되고 서로를 의삼하게 되는데...
평온한 일상에 감추어진 이중성과 이상과 다른 우리 삶의 추악함을 이야기하는 소설이었다.
 
<너의 의미>. 영화감독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모델, 연기자, 연기자 지망생과 성의 향연을 벌이던 한 영화감독이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작가에게 꼼짝없이 사로잡힌다는 이야기. 꿈을 꾸는 한 작가가 그 이상적 에너지로 현실적인 한 남자를 옭아매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보물선>. 이순신 동상이 친일파의 음모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파괴해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상주의자 형식과
적당히 운동권에 몸담고 있다가 졸업 후에 펀드매니저가 되어 승승장구하는 재만. 그둘이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를 통해 현실과 이상의 이중주를 김영하 특유의 냉소적인 해학으로 풀어가는 소설.
 
'그제야 재만은 자신의 동업자들에게 철저히 냉소적인 조지 소로스의 심정을 속속들이 이해하게 되었다.'
'수천 명의 재산을 간단하게 꿀꺽하고도 아침이면 호텔 식당의 메로구이를 발라먹는 저 놀라운 식욕. 추악한 욕망'
 
3.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울고 웃고 파멸하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읽다가 어느새 나는 내가 책을 다 읽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순간. 나는 소설이 아닌 현실에 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동시에 내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라는 틈에 살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우리는 완벽하게 현실적이지도, 그렇다고 완벽하게 이상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현실과 이상의 그 어디쯤엔가 걸치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순적인 행동과 고민을 하며 힘겹게, 꿈을 꾸며 살아가는 셈이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이란 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힘들더라도, 어렵더라도 꾸역꾸역 버티며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히 걸어가야 할 것이다. 꾸역꾸역 세상의 풍파를 견디며, 한걸음 한걸음 차분히 걷다보면 멋진 꿈의 대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 그것은 이 리뷰에서 소개하지 않은 소설인 <마지막 손님>의 이야기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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