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의 쉐이크 - 영혼을 흔드는 스토리텔링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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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탁환의 쉐이크를 읽는다. 글쓰기 전 그가 하는 일 3가지를 재미있게 읽었다. 창을 열고, 첼로 연주곡을 틀고, 커피를 내리는 일.


첼로 연주곡을 튼다.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혹은 오페라나 가요가 아닌 오직 첼로다. 가사가 있는 음악은 그 노랫말이 이야기에 섞여들기 때문에 금물이다. 날카로운 바이올린과 청명한 피아노는 신경을 자꾸 건드린다. 모름지기 소설은 특히 장편은 착 가라앉아서 둔중하게 나아가야 한다. 처참한 풍광 앞에서도 비명 지르지 않고, 슬픈 이별을 당해도 눈물 쏟지 않은 채, 생이란 원래 그런 희로애락을 지녔다며 다 감싸 안고 도도히 흘러가는 강처럼 쓰고 또 써야 하는 것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첼리스트는 첼로의 음유시인 다닐 샤프란이다. 샤프란이 연주하는 바흐의 첼로 무반주 조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며, <파리의 궁녀, 리심>도 썼고, <노서아 가비>나 <99-드라큘라 사진관으로의 초대>와 같은 최근작들도 마무리를 지었다. 선율을 따라 손을 놀리다보면, 샤프란과 내가 하나가 되어 이야기를 짓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첼로의 쿵쿵쿵 깔리는 음이 내 심장을 쳐서 깨운 적도 여러 번이다.


요즈음은 요요마가 다큐멘터리 <新실크로드>를 위해 연주한 곡들을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 듣는 편이다. 2007년, 소설 <혜초> 답사를 위해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길을 다니면서 틈틈이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았다. 다클라마칸 사막을 따라 달리는 기차간에서 들은 요요마의 첼로 선율을 잊을 수 없다. 굽이굽이 흰 길, 아득히 나는 새, 텁텁텁텁 메마른 강의 이야기들이 그 속에 모두 담겨 흘렀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 그러나 지금 쓰고 있는 이 소설 때문에 멀리 가진 못할 때, 요요마의 이 곡이 없었다면 흔들리는 내 마음을 어떻게 달랬을까.


[김탁환의 쉐이크, 김탁환, 다산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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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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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는 <체스>라는 짧은 소설에서 몇 명의 사람들을 흥미롭게 관찰하며 분석하는데, 그 중 첫 번째는 자수성가한 인물로, 그런 사람이 범하기 쉬운 독선적이고 오만한 성격을 묘사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매코너로 스코틀랜드 출신의 지층 개발 기술자였다. 내가 듣기로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유전을 개발해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고 했다. 외모를 보면 거의 사각에 가까운 단단한 턱에 튼튼한 치아를 가졌고 권태로운 기미가 얼굴에 서려 있었다. 홍조를 띤 얼굴은 아마도,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위스키를 많이 마신 탓이었을 것이다. 눈에 띌 정도로 넓고 떡 벌어진 근육질의 어깨가 유감스럽게 체스 게임 중에도 특히 눈길을 끌었다.


매코너는 자기의 성공에 도취한 인물 유형에 속하는 사람으로, 하등 중요치 않은 게임에서도 실패하면 자부심이 손상된다고 느낄 정도였다. 살면서 주위를 배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관철하는 데 익숙하며, 현실에서 악착같이 자수성가해 오만해진 이 남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자신이 탁월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모든 저항은 무례한 거역이요 모욕과 같은 것으로서 그를 그를 격분시킬 정도였다. 첫판에서 졌을 때 그는 투덜거리며, 이건 그저 순간의 부주의 때문이라고 지나치다 싶을 만큼 독선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세번째 판에서 그는 자신의 패배를 옆방의 소음 탓으로 돌렸다. 그는 결코 한 판도 그냥 지지 않고 즉시 복수전을 신청했다. 


[체스이야기, 슈테판 츠바이크, 김연수 옮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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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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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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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글자 크기를 왜 이렇게 작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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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허풍담 1 - 차가운 처녀
요른 릴 지음, 백선희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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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있으라고?

로이빅이 매트리스에서 벌떡 일어났다.

- 이건 듣던 중 최악이군! 난 말할 틈도 없었는데 떠나겠다고? 이게 무슨 예의야? 너를 일주일 내내 재워 주고, 네가 가져온 싸굴 독주도 마셔 주고, 빌어먹을 횡설수설을 꾹 참고 들어 주지 않았어? 이건 아니지, 헤르버트. 그렇게 쉽게 로스 만을 빠져나갈 순 없지. 이제는 네가 내 말을 들어야 해, 내 말을!

[북극 허풍담1, 요른 릴, 열린책들]




- 엠마

그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조심스럽다 못해 용의 주도하게...

- 뭐라고?

빌리암이 놀란 눈으로 친구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 엠마, 라고 했어.

이번에는 한결 확신이 선 목소리로 매스 매슨이 말했다.

- 그게 뭔데?

- 엠마? 그녀를 제대로 묘사할 수 있을까?

매스 매슨은 모호한 눈길로 그을린 천장을 쳐다보았다.

- 그녀는 그냥 전부야, 아니 그 이상이야.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지.

그는 벅찬 듯 한숨을 내쉬고 마음속에 엠마의 모습이 완전히 그려지길 기다렸다. 그런 다음 마음속에 보이는 대로 그녀를 설명했다.

- 엠마는 말이야, 그래, 사과 도넛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여자야. 엉덩이며 가슴이며 뺨이며 모든 게 그래. 오직 도넛으로만 말이야. 그렇게 달콤한 케이크 한가운데 파란 하늘빛 눈과 빨간 입술이 있고...

빌리암은 매스 매슨이 쳐다보는 그을음 자국을 향해 눈을 들었다. 그러고는 그토록 먹음직한 엠마를 상상하려고 애썼다.

- 엠마랑 사귀었구나..., 아는 걸 보니?

- 그래.

매스 매슨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어쩌다 알게 되었지.

- 어디서 만난 거야?

매스 매슨은 눈을 찌푸린 채 엠마가 대답하길 기다렸다.

- 올보르에 사는 차가운 처녀였어.

그가 대답했다.

저 아랫동네에서 온 술병 라벨에서 본 것 말고는 가까이서 올보르를 본 적도 없었던 그는 대답하면서도 스스로 놀랐다.

[북극 허풍담1, <차가운 처녀>, 요른 릴, 열린책들]


그 후 엠마는 어떻게 되었나? 훌륭한 질문이다. 그런데 엠마는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나? 오래전부터 연안을 떠나지 않는 타락한 여자? 활기 넘치고 모험을 즐기는 여자? 아니면 그저 모두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싶어하는 순진한 처녀? 엠마는 이 모든 것이면서 그 이상이었다. 친히 이곳으로 오기 한참 전부터 그녀는 사냥꾼들 사이에 잘 알려졌으며, 고향인 올보르에서도 물론이고, 덴마크 전역에서, 거의 세계 곳곳에서 사랑받았다. 왜냐하면 엠마는 거의 모든 남자들의 마음속에 언제나 존재해 왔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극 허풍담2, <그 후 엠마는 어떻게 되었나>, 요른 릴, 열린책들]



흔히들 편지 말미에 덧붙이듯이, 이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봄 동안 사냥꾼들이 작은 교향악단과 유사한 뭔가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덧붙여야겠다. 비요르켄, 매스 매슨, 빌리암, 피오르두르, 로이빅, 밸프레드는 제각기 자신만의 악기를 만들었고, 두 달에 한 번씩 닥터와 모르텐슨의 집에 모여서 솔페주(음악의 기초 교육 중 악보 읽기, 악보 보고 노래 부르기, 청음 등의 능력을 키우는 교과 과정) 교육을 받고 연습을 했다. 

벨프레드만이 중간에 오케스트라를 떠났다. 그의 악기는 여덟 개의 병에 음계의 각 음에 맞춰 물을 채워 만든 것이었다. 밸프레드가 저녁 내내 온전한 음을 지키는데 어려움을 겪어서 닥터를 크게 좌절하게 만들었다. 원인을 찾아 그의 악기를 살펴보니 레와 파 음을 내는 병들이 순수한 물이 아니라 독주로 채워져 있었는데 밸프레드가 음게를 연습하면서 악기를 마셔 버리는 바람에 레는 반음 올린 파가 되었고, 반음 내린 미는 다시 라가 되었던 것이다. 밸프레드는 경고를 받았지만 이 파렴치한 행위가 계속되어 그를 내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북극 허풍담3, <콘서트>, 요른 릴, 열린책들]



* 창비에서 진행하는 <라디오 책다방>의 소개로 읽게 된 책. 좋은 책들을 많이 알게 된다. (2013.1201) 

* 1권과 2권을 읽고 3권으로 접어들었다. 현재 3권까지 출간됐다. 전 10권이라는데 4권 이후의 출간은 독자의 요청에 달려있다며, 출간 압박 메일을 보내라고 한다. 언제쯤 출간이 될지... 출간 촉구 메일(sajangnim@openbooks.co.kr 이메일 주소도 재미있다!)을 보내고 3권을 계속 읽고 있다. (2014.0713)

 

* 그러나 좋지 않은 소식 : 판매량 저조로 후속권 출간이 어렵다고 한다. 책 홍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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