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민주주의 - 새로운 위기, 무엇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가
야스차 뭉크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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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차 뭉크의 The People VS. Democracy를 번역한 이 책은 원제의 의미심장한 부제, Why our freedom is in danger & How to save it 이 전면에 씌어져 있는데요. 국문으로 번역된 책의 부제 또한 원서와 연계된 ‘새로운 위기, 무엇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가’ 입니다. 이 글의 저자는 특히 포퓰리즘의 부상과 그에 따른 민주주의 위기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자이자 연설가로, 현재 미국의 정치 분야 싱크 탱크인 뉴 아메리카 재단의 수석 연구원이자 토니 블레어 국제 변화 연구소의 전무 이사로 재직중입니다.

이 ‘위험한 민주주의’의 원인이라고 밝히는 것은 바로 ‘포퓰리즘, 포퓰리스트 즉 권위주의적 포퓰리즘 정치’ 입니다. 일례로 미국의 트럼프와 프랑스의 르펜, 그리고 이탈리아와 폴란드 사례를 긴밀히 서술하며 오늘날 전세계적인 이 포퓰리즘적 현상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1장부터 3장이 그 배경을 담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오늘날 전세계적 자유민주주의 위기에는 첫째로 반자유주의적 권위주의와 둘째로 권리보장이 없는 민주주의로 이러한 경향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급속도로 이처럼 왜곡되어 왔고, 사실상 자유민주주의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현실에서 더욱 이런 위기를 자초했다고 저자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에 4장과 5장은 위의 두 가지 위기에 대해 그 원인과 현상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밝히고 있고 이어 이러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왜곡이 결국 포퓰리즘과 포퓰리스트를 불러 왔다고 밝힙니다. 뿐만 아니라 선출된 권력에 대한 국민이 힘을 잃게 됨으로써 정치, 경제 엘리트들의 권력 강화가 이뤄졌고 미국의 금권 정치로 비롯되는 선출된 권력들이 기득권과 비선출 관료들에 다소 영향력 하에 들어감으로써 베이비 붐 세대 이후부터 정치를 불신하고 무시하는 국민들이 늘어나게 되었는데요. 이러한 현상에 저자는 상당히 기발한 해석을 하고 있는데요. 전반적으로 퍼지게 된 정치 불신과 환멸은 불안정의 징조라기 보다는 (유권자들)이 특히 성숙해졌다는 증거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꽤 역설적인 판단이라고 여겨지는데요. 하지만 뒤이어 나오는 포퓰리즘과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들의 공세에 보기에 따라 국민들의 이성적인 개입이 느껴지지 않는 행동은 앞서 저자가 설명한 ‘성숙해진 현상’이라기 보다는 그 반대로 느껴집니다.

특히 4장에서 이런 포퓰리스틀과 소셜미디어가 어떻게 결함되어 어떠한 파급을 일으켰는지에 대해 요목조목 살펴보고 있습니다. 과거에 티비 보도 매체를 비롯한 매스미디어들이 걸러야만 될 메시지를 미리 방지하는 파수꾼 역할을 해왔다면, 오늘날 소셜 미디어를 포함한 디지털 미디어는 소수 의견에 국한될 매시지들이 그 폭발적 전달력으로 인해 ‘시스템의 붕괴’가 이뤄졌고 이러한 상황에 가장 큰 이익을 본 집단이 포퓰리즘적 정치인들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현 미국의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의 사례는 트윗을 비롯한 그의 소셜 미디어를 CNN과 뉴욕타임즈와 같은 주류 언론들이 재언급을 시작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트럼프의 이해 안되는 주장들을 더 널리 광고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트럼프와 같은 포퓰리스트는 기존의 정치 체제를 부정하는 것과 동시에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가볍게 여기고 더군다나 인종주의적 편견으로 미국의 인종 갈등을 행정부의 수장이 더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즉 많은 정치이론가들이 오늘날의 현실을 설명하는 민주주의 3.0이 바로 이러한 민낯을 말하는 것이죠.

따라서 이러한 현실을 타파하고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수많은 포퓰리스트들이 그들의 권력 강화로 사용하는 손쉬운 수단인 민족주의적 편견이 깃든 주장을 약화시키고 많은 시민들의 신뢰를 잃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되살리긴 위한 몇가지 방법들을 저자는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어려운 상황에 대해 똑바로 마주하고 (특히 정치가들이) 대중의 언어로 설명하고 유권자들의 관심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며,(마찬가지로 정치가들) 포퓰리스트들의 흠잡기에 열중하기보다 긍정적인 메시지 전달에 더 초점을 두어야한다고 현실 이론적인 방안을 우리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민주주의 수호자들이 현상 유지를 선호한 것처럼 보이는 이상 포퓰리스트들과 싸워 이길 수 없다” 강조하는데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밝히는 많은 정치가들은 두려움에 기대어 유권자들에게 다가가기 보다는 현재의 체제를 더 개선시키고 발전시킬 수 이는 방안들로 무장하고 긍정적인 메시지들을 현실적인 방안의 형태로 끊임없이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특별히 책 후반부에 우리나라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퇴출과 관련된 평화적 시위와 관련된 우리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언급하고 있는데요. 행동으로 나서는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야 말로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들과 포퓰리즘적 정치 왜곡에 확실한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경각심과 결단력을 보여주는 아주 훌륭한 사례로 저자는 여기고 있더군요.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중요한 것은 여러 엘리트들과 기득권들로부터 일반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체제이기 때문일겁니다. 전세계에 많은 기득권들은 민주주의 체제에 직간접적으로 불만이 많고 각계의 엘리트들은 무지한 대중들보다 자신들이 이끄는 정치 체제로 견고한 시스템 화를 이룩해야한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더욱더 이성적이고 수많은 지식으로 무장한 일반 시민들의 적극적 현실 정치 참여야말로 민주주의 뿐만 아니라 국가 체제에 대한 바람직한 보호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가 처한 현실, 제대로 바라보기 어려운 정보의 범람 속에서 좋은 길라잡이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인내심을 갖고 읽어보셨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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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번영 - 비판적 경제 입문서
다니엘 코엔 지음, 이성재.정세은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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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고등사범학교의 경제학 교수로 재직중인 다니엘 코엔의 이 책은 유럽 출신의 경제학자 답게 자본주의에서 무분별한 성장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담겨 있는데요. 인류가 수렵 문화에서 정착지에서의 농경으로 인한 수확 경제를 확립한 이후 인간의 욕망의 차원에서 소비가 어떻게 해석 및 발전되어 왔고 그것의 영향이 어떠했는지를 세계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와 함께 서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된 배경은 유럽이 되고 있는 관계로 곁가지로 유럽 전체의 역사를 함께 조망하고 있습니다.

우선 저자는 문명의 발전이라는 과정에서 발생한 전쟁과 전염병, 수많은 폭력에 대해 어떤 계몽주의적 접근보다는 매우 직설적인 방법으로 이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멜서스의 이론을 제법 많이 인용했듯이 자연적인 인구 증가와 전쟁과 대규모 전염병에 의한 인구 감소 등에 직접적인 인간들의 희생이 간혹 인간사회를 구원했다고 보고 있는데요. 뒤에 전쟁이 근대 사회에서 경제 성장에 이바지 할 수 있다는 케인즈의 이론을 인용한다든지 산업혁명 이전의 영국의 인구 증가가 부양 인구를 효과적으로 감당하게 되었다는 측면의 해석은 인간으로 비롯된 사회 자체를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 보였는데요. 경제 이론 자체를 경제 성장을 주로 잡고 그로 인한 사회 경제적 번영을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주로 적지 않은 경제학자들이 갖고 있는 태도로 보여집니다. 인간의 욕망에 기대어 소비가 촉진되는 것이 자본주의의 병폐이냐 아니면 자연스러운 성장 요소로 볼 것이냐는 분명 오래된 질문입니다만 저자의 입장이 정확이 어느쪽인지는 다소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다만, 의사들의 진단 결과를 환자들이 딱히 반박하기 여려운 현실과 그에 따른 비용 청구, 이와 관련하여 보험 회사의 적절치 않은 비리가 더해지면 이중 고리에 의한 의료보험제도의 방만이 이루어지는데요. 이처럼 이와 비슷한 현재 미국의 현실을 꼬집고 유럽의 각 정부는 이러한 시스템의 방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적절히 관리하고 있는 현실을 자본주의의 시장 방임과 관련하여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는 보기에 따라 다소 애매한 주장들이 얼마간 글을 이루고 있어서 저로서는 판단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론 유럽의 자본주의적 역사에서 케인스가 이룩한 이론과 몇가지 유럽의 실패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중국과 인도의 사례를 들며 이들 국가가 앞으로 번영에 이르게 되는 비유럽 국가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부분은 완전히 ‘유럽주의자’라고 볼 수는 없으나, 미국에 비해 기술의 발전이 상대적으로 더디는 것으로 여기며 아직도 유럽이 이에 미치치 못하다고 주장하는 요지가 정확히 무엇인지 어렵기도 합니다. 단순히 MS와 애플로 해석되는 기술 우위가 단순히 부러워 할 만한 것도 아니고 현재 유럽은 최소한 미국과는 달리 시민을 위한 보장이 그나마 갖춰지고 있는데 그런 미국을 긍정하지 않는것은 또 뭔가 주장이 정돈되지 않아 보이긴 합니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금융 시장의 비이성적인 발전과 2008년에 이르러 발생한 시장의 붕괴, 개도국들이 폭발적으로 경제 발전에 나서면서 가까운 미래의 중국인들이 개인의 욕망을 충족하려 각종 소비재들의 요구가 늘어나면 과연 지구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의 문제, 지금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환경 파괴와 ‘성장이 오로지 미덕’ 이라는 주변을 배려하지 않는 이 이기적인 가치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글 후반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만, 이미 어느 정도 번영의 길에 들어선 선진국들과 그렇지 않은 개도국들의 욕망을 무조건 무시하기란 어려운 현실이 있으며, 앞으로 중국인들과 인도인들의 생활 수준이 급격히 향상되면 거기에 따르는 폭발적 수요가 앞으로 큰 문제로 다가올 것입니다. 물부족과 같은 환경 문제나 세계 인구의 증가 또한 우려할 만한 상황일 것입니다.

인간의 거대한 탐욕이 세계사적 입장에서 4번이나 도래하여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한 전력이 있는 만큼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자정 능력을 강화시켜 나갈것인가 아니면 정부가 전통적인 야경국가만의 기능을 요구하는 반대편의 의견을 귀담지 않고 개입하여 적절히 조절할 것인가는 앞으로 우리가 직면해야 되는 문제일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소개되는 주장들이 다소 교과서적인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우리들에게 주위를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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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사용설명서 - 번영과 몰락의 성적표
다이앤 코일 지음, 김홍식 옮김 / 부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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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2014년 출간된 GDP : A Brief But Affectionate History를 번역 출간한 것인데요. 저자는 맨체스터대학교 공공정책학과의 교수이자 영국에서는 여성 경제학자로 유명한 다이앤 코일입니다.

원래의 원제와 일견 일맥상통하는 주제인 GDP에 대한 역사와 이를 바탕으로 한 경제학에 관한 이야기, 인류 행복을 위한 후생과 복지에 대해 경제학자로서의 의문과 사색이 글 전체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전문 경제학의 이론서라기 보다는 광범위한 경제 주제에 대한 에세이(essay)가 아닌가 싶은데요. 그렇다고 입문서 성격의 가벼운 것들은 아니고 독자들이 읽고 생각해 볼 만한 글이라 생각됩니다.

GDP 즉 gross domestic product 는 국내총생산이라는 뜻인데요. 세계2차대전 이후 유럽의 재건과 냉전의 대결이 첨예화 되고, 특히 1970년대에 OPEC에 의한 석유 파동과 미소간의 대결에서 서구 세계를 아우르는 제1세계의 경제 지표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서 학자들과 관료들에 의해 GDP라는 개념이 도입됩니다. 사실상 저자도 인정하고 있지만, GDP가 오늘날 공신력을 제법 갖고 있지만 이 결과를 도출해내는 자료와 통계의 어려움은 익히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다시 바꿔 말하면 GDP 자체가 한 국가의 경제 지표를 나타내는 보조적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지 명백하게 주관적이고 정확한 지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이와 관련하여 아프리카 대륙의 사하라 이남의 여러 국가들의 경제 수준을 GDP를 통해 완벽히 해석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이들 국가들은 물가 통계라든지 전체적인 경제 규모를 일선 통계의 부족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가나와 나이지리아와 같은 국가가 실제적으로 상당한 경제 규모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GDP가 명확히 설명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여기 글에 언급되어 있는데요. 하지만 OECD를 비롯해 여러 국제기구들이 국가들의 경제 규모를 재는데 이것을 적극 활용하고 있지만 중국과 같은 일부 국가들은 이를 추산하는데 필요한 통계 자료들이 정확하지 않아 WTO에 제공하는 자료들이 중국 정부의 작위적인 제공이라는 한계가 분명 있습니다.

또한 다이앤 코일은 이러한 GDP개념이 앞서 제가 언급한대로 어느 한 국가의 국민들의 행복을 정확히 잴 수 있는 수단이 아니며, 후생과 복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양적 견인만의 자료가 경제 발전으로 포함되어 이해되는 번영의 척도로도 정확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OECD 국가의 평균 GDP가 4만 달러인데 비해 후발 개도국들의 평균 GDP는 400달러 수준인데 애초에 국민들의 행복과 복지에 대한 관념은 경제 발전을 달성하고 나서야 의식이 고양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치권에 어떤 요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로지 산업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선진 국가들 정도만이 국민들 스스로의 삶의 행복에 대한 관념을 의식할 수 있다 해석이 가능하겠죠. 다만 소득 수준이 미미한 국가들의 국민들이 전부 불행하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에 후생과 복지를 나타내는 일련의 수단들이 정립되는게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제가 이해한 것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 경제와 경제학이 어떤 노력을 해야되는지에 대한 경제학자로서의 고민도 느껴졌습니다.

더불어 2008년 이후 경제학에 있어서 ‘금융 시장의 비이성적 가열’이 초래한 문제들과 오늘날의 금융 시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고민도 들어있는데요. 오로지 생산성의 지표로서 경제학의 본류를 이해했다면 과학 기술 발전과 그 혁신으로 통한 영향이 경제에 어떻게 작용했고 금융 시장의 고도화와 같이 경제 분야의 복잡성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어 앞으로 학자들과 관료들의 유능한 대응이 나날이 필요해진다고 봐야 되겠습니다. 전체적으로 과거의 GDP가 다소 기계적인 측면이 있었으므로 이것을 개선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학문적 고안이 필요하고 양적 규모로서의 경제만으로 각 국민들의 행복과 복지를 일괄적으로 재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전통적인 경제학만의 범위가 아니라 문화나 과학 기술과 같은 개념들까지도 차용해서 도안해보는 것이 어떤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 만큼이나 GDP가 아우르는 각 경제 주체들의 진보적이고 휴머니즘적 이해도가 마찬가지로 수렴되기를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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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이란 - 무기 수출과 석유에 대한 진실
존 W. 가버 지음, 박민희 옮김 / 알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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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공대의 국제관계학 교수인 존 W, 가버는 중국-이란, 중국-파키스탄 관계에 대한 연구로 미국 내에서 명성을 갖고 있는데요. 또한 중국과 북한 관계에 대한 연구 실적도 대단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중점으로 논하고 있는 중국-이란 관계 뿐만 아니라 이란에 대한 미사일 기술 협력과 무기 지원을 암묵적으로 맡은 북한의 역할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 복합적인 연구물은 읽는 내내 유익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선적으로 이란의 핵관련 기술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개안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기 전 이란은 왕정으로서 특히나 미국과 깊은 우호국이었는데요. 이란 왕정 자체가 대체로 권위주의적이었고 정권의 정당성 자체가 의심받는 상황이었지만 미국이 지원하는 여느 권위주의 정부들처럼 (미국의) 이익과 관련해 중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국가였습니다. 미국의 역외 균형 전략에 의하면 이란과 같은 지역 강대국은 견제를 받을 수 밖에 없었지만, 중동 내 미국의 혈맹인 이스라엘의 존재와 이란의 석유 등에 의해 (이란은) 미국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가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이슬람 혁명으로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습니다. 이란이 신정국가화가 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를 주장하게 되자 중동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규탄하게 되었고 이러한 배경에 석유 수출입의 중요한 호르무즈 해협을 이란이 봉쇄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미국이 적극적으로 이란을 굴복시키게 하는 강한 요인이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중국은 과거의 미국과 함께 이란의 오랜 우방국이었고 이란의 혁명 이후에도 특히 군사 기술, 무기 수출 및 핵기술 지원 등을 통해 ‘봉쇄국 이란’의 유일한 숨통이 되면서 미국의 외교 수단에 반하는 결과를 수차례 낳게 됩니다.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중국에 타이완 카드를 지렛대로 삼기 전까지 중국의 암묵적인 이란에 대한 다채로운 지원에 대한 무력화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중국에게 있어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이슬람 국가가 핵 능력을 갖는 상황이 서구의 군사적 힘을 이 지역에 얽어매고, 서구가 동아시아에 집중할 능력을 약화시킨다는 인식이 전제된 것이다”로 가버는 이를 이런식으로 해석하고 있는데요. 어떤분들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경제적 이득이 바탕이 된 중국의 현실 외교로 여러가지 차원의 고려가 있었겠지만 기본적으로 앞의 해석이 아주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중국과 이란의 숨겨진 비밀 외교는1997년 미 클린턴 행정부의 대만에 대한 F16 전투기 판매로 얼마간 변화가 이뤄지고 2004년에 중국이 MTCR(미사일기술통제체제)에 서명함으로써 공식적으로는 이란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지원이 해소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존 가버 역시 언급하고 있지만 중국에게 있어서 이란과의 관계는 비슷한 상황의 파키스탄과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점이었습니다. 중국은 인도를 견제하기 위한 카드로 파키스탄을 거의 준동맹국에 가까운 취급으로 미사일을 포함한 군사 기술 뿐만 아니라 핵심적인 핵기술까지 지원에 나서 오늘날 파키스탄이 핵무기를 보유하는데 큰 일조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중국에게 이처럼 파키스탄과는 다른 이란에게 있어서 중국에 의한 인식의 한계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현 국제 체제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 이 책을 통해 알 수가 있었는데요. 즉 MTCR체제가 미국과 서구가 주도한 ‘대량 살상 무기에 대한 기술 습득 제한’이 이러한 기술을 갖고 있지 않은 수많은 개도국들에 대한 미국과 같은 서구 선진국들의 공격 가능성을 포함한 매우 불평등한 조치라 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제한 조치가 본질적으로 세계 평화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중국인 미국의 대 타이완 카드와 수많은 압력에 의해 MTCR에 가입했지만 근본적인 인식은 미국과 서구 유럽에 의한 국제 체제에 기본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고 자신들이 논의에 참여하지 않은 이러한 레짐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으며, 자신들의 경제 발전으로 인한 근본적인 국제 사회에서 지위 향상을 획득하고자 하는 열망과 맞물려 앞으로 중국이 어떠한 길을 가게 될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지 않나 싶습니다.

“중국 지도자들이 페르시아 만과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혐오한다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저자는 단호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동에서의 석유와 관련해 중국 또한 강력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으며 말라카 해협과 같은 석유 수송로에 대한 중국의 인식은 전체적으로 미국이 고려하고 있는 자국의 이익과 비슷하게 그 궤가 유사합니다. 즉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의 일방적인 미국의 오판과 개입이 아니라 중국 또한 이란과 파키스탄에 대한 군사적 협력 및 지원 등이 미국과 거의 다를바가 없다는 점입니다. 어떤 헤게모니에 대해 이를 윤리적 기준으로 해석해 상대방과 자신을 차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현실주의 외교에서 매우 황당한 처사라고 볼 수 있겠죠. 결국에 MTCR과 NPT와 관련된 미국의 인식과 행동은 거의 국제 안보에 유익한 것이며 핵확산 금지와 관련하여 미국이 인도와 파키스탄에 보인 모순된 행동에도 기본적으로는 핵무기 확산에 대한 제한이 법적이고 공식적인 합의가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국가의 안보를 위해 대량 살상 무기가 될 수 있는 기술들을 자위권의 차원에서 무조건적으로 배척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중국과 같이 이해하는 것은 세계 안보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케네스 월츠처럼 ‘핵무기의 확산이 국제 평화에 이바지한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핵무기 확산은 그 위험성을 거의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급력이 크다고 생각해봅니다.

끝으로 이 책은 미국의 입장에서 중국과 이란의 관계를 해석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 이란 두 양국의 입장에서 거의 반세기가 넘는 시기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주 현실적인 외교적 수단들과 이들의 역학 관계 및 중동의 정세와 중국과 이란의 입장을 비교적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서 언급하긴 했습니다만 오늘날 이란의 핵기술 개발에 대한 거의 정확한 이해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책이 지난 2011년 출간됐음에도 현재 절판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의미한 책이 더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사실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출판사 측에서 앞으로 재간행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를 포함해 500여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일독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꽤나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연구물이 학자로서 온전한 평가로 남을 수 밖에 없는 독자들의 역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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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사회와 그 적들 - 그들이 말하지 않는 복지 국가에 대한 오해와 진실
가오롄쿠이 지음, 김태성 외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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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루이쿠 연구원 부원장이자, 중국 런민대 충양금융연구원의 연구원, 중국전문가학자협회 이사로 있는 경제학자인 가오롄쿠이의 이 글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경제학을 바탕으로 복지 연구에 평생을 건 학자로 유명한데요. 중국 체제가 덩샤오핑 집권기에 본격적으로 자본주의를 경제 시스템 안에 받아들인 이후 중국 국내의 경제학자들이 자유주의 경제학으로 기조를 전환했던 반면에 가오롄쿠이는 사회 경제학에 입각해 복지 사회 건설에 관한 입장을 일종의 사명으로 견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이 책이 나온 연유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우선 이 글의 1장과 2장은 ‘복지’에 대한 설명과 오해에 대해 언급하고, 3장에선 세계 최초로 복지 개념을 창안한 영국이 어떻게 이 ‘복지’를 저버렸는지, 더불어 미국과 함께 어떻게 국민들의 최소한의 사회적 복지를 버렸는지애, 4장은 복지 사회를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 열거하고, 5장은 세계 주요 국가들의 복지 현황, 6장은 큰틀에서 저자의 대안이라고 볼 수 있는 ‘저생존원가형 사회’에 대한 개념과, 이후 전체적 글의 마무리로서 중국 사회에 어떻게 하면 복지를 이식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여러 인식의 전환과 방안에 대해 설득과 이해를 시키고 있는데요. 모든 장들이 의미의 확장된 개념으로 짧은 시론의 형태로 저자의 주장을 보충 설명하면서 깔끔하게 정리된 형태인데요. 번역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라 글들이 수월하게 읽혀졌습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일종의 생존권과 비슷하게 사회적 보장을 적극적으로 해야한다는 전제로서 이에 따른 여러가지 근거가 있지만 우선적으로 소수의 부자들에게 부를 집중시켜 낙수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레이건과 대처 시기에 이미 허위로 판명났으며, 극심한 빈부격차를 해소하는데 이러한 복지 확대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복지를 전면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이 경제적 후퇴에 있기 보다는 오히려 더 경제적 활동이 활발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오늘날 전셰계 국가들 중 북유럽 5개국인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아이슬란드와 독일을 비교적 성공적인 복지 국가로 언급하고 있는데요. 특히 유수한 세계 기업들을 보유한 스웨텐의 사례를 상당히 할애해 설명하고 있고, 독일 또한 ‘사회 경제학’의 오랜 전통과 독일 정당들의 이러한 사회 복지 개념에 대한 인식 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를 통해 제시되는 자료들은 꽤나 현실적이고 “GDP 4만 달러에 이르는 본격적인 선진국 진입을 위해선 복지 제도의 확충이 시급하다”는 주장 또한 이러한 논거를 강화하시키고 있습니다. 즉 이 GDP 4만 달러의 기준은 앞서 소개한 북유럽 국가들의 기준으로 삼은 듯 했고, 비교적 성공적으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히 중요하게 저자는 여기고 있는데요. 다만, 이들 북유럽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인구수가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은 것이 복지 사회를 구성하는데 이점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시아의 4마리 용들중 싱가포르가 CPF를 포함한 성공적 복지 제도를 수립한 것은 인구가 적은 것이 한몫 했겠죠. 개인적으로는 이런 북유럽 국가들의 설명들 중에 부패가 거의 없다는 것이 복지 제도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판단해봅니다.

“문명 국가는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복지 사회를 수립하고 공공재와 공공 서비스의 제공을 확대할 뿐, 결코 상업 보험을 발전시키지 않았다”는 주장은 오늘날 미국과 일본, 영국의 무분별한 상업 보험에 대한 일침과 자본주의 시장이 주식 시장과 같은 투기성 제도에 기반해 제도 자체의 현실이 오로지 부유층의 배를 불러주는 역할을 해왔다고 보는데요. 미국이나 일본은 부유층에 의한 부의 집중이 날로 심각해졌으며, 중국은 세계 최대의 빈부격차를 보이는 국가로서 시민들의 생존에 대한 문제가 오로지 개인의 역할에 달려있어 우려할 만하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개인주의가 일반적으로 큰 정부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복지에 대한 이론이 자유와 개인의 부를 박탈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특히 미국에 있어서 이런 복지 제도에 대한 저항이 유달리 거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미국인들의 인식에도 과거 양 루즈벨트 행정부가 정부 지출을 통한 사회 제도 정비와 국민들의 소득 증대에 기여한 역사가 있는데, 이후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의 초대형 감세안 등에 힘입어 기본적으로 복지가 희생되어 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국가의 정부들이 재정적 압박을 받을때 제일 먼저 고려하는 것이 복지에 대한 비용들이며 또한 우선적으로 복지 비용에 대한 축소가 있어 왔습니다. 반대로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 만이 사회적 보장의 시민 사회와 정부의 공통된 인식에 의해 보호되어 왔고 그 국민적 합의라는 것은 소득에 있어서 적지 않은 직접세 부담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서로 상이한 개념인 것을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면, 자본주의가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많은 국가들에게 이행되었는데 이러한 배경에는 모두가 참여하는 민주주의가 일부 기득권과 엘리트들의 이익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에 특별한 프로파간다로서 자유주의 시장과 자본주의적 확대에 자유주의가 이용되어 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시장 자유주의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많은 학자들과 일반인들에 의해 오독되어 왔다는 것은 조반니 아리기와 같은 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는데요. 이 책의 저자인 가오롄쿠이 역시 이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앤서니 기든스가 일찍이 사회학에서 ‘위험 사회 이론’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 것처럼 오늘날의 현대 사회는 시민 개개인들이 자신들의 소득 만으로는 생존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이는 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에 이르는 ‘고정적인 생활 유지비’가 물가와 같이 지속적으로 때로는 급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정부들이 외치는 실질적 소득 증대가 아닌 ‘생활 비용’에 입각한 소득 수준의 재정비를 저자는 옹호하고 있는데요. 이것이 종장에 언급되어 있는 ‘저생존원가형 사회’의 개념입니다. 저로서도 매우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이론입니다. 독창적이면서도 반박할 수 없는 주장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현재 세계적 경쟁이 총수요의 경쟁’을 띠고 있는 시점에 세계 경제가 지속적으로 확장과 경쟁의 상태에 놓여 왔습니다. 자유 시장의 가치에 논하기 앞서 다수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그들의 헌법에서 밝히고 있는 시민 개개인의 기본권과 사회 보장권을 현실적인 부분에서 고려하고 받아들여 건전한 민주 사회를 만드는데 복지를 등한시 하면 안될 것입니다. 이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부패와 빈부 격차가 사회를 병들게 하는데 일차적인 원인이며, 이를 모두가 기본적으로 건강한 생존을 보장받는 사회 경제권 보장을 통해 해소할 수 있으며, 시민들이 자유 시장의 그늘에서 신음하지 않게 하는 긴밀한 대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으로 복지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는데 많은 부분을 저자가 할애하고 있는데요. 물론 이 뿐만 아니라 경제와 경제학의 아주 기본적이고 유용한 지식들을 같이 제공하고 있어서 저는 읽는 내내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 막연한 복지 개념에 대한 원초적 거부를 갖고 있는 분들도 이 책을 일독하시면 일종의 인식 전환이 되실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많은 분들께 일독을 추천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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